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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은 들음 에서 나며 | [Live] 들어야 생기는 믿음 (로마서 10:14-21)_아침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200815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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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1-21)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성경을 어떻게 깨들을 것인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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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lphis.or.kr

Date Published: 9/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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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들음에서” (Faith comes from hearing)

<17절> 의 ‘들음’ 이라는 말은 실제로 ‘누구 아래에서 듣는다’ 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어떤 권위 아래에서 듣는다’ 는 의미요, ‘그 권세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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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kbchurch.org

Date Published: 6/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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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롬 10:16-21)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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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tynch.kr

Date Published: 6/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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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믿음 은 들음 에서 나며

  • Author: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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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실시간 스트리밍 시작일: 2020. 8. 1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g6bkWbYwpUM

(로마서 10:1-21)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성경을 어떻게 깨들을 것인가에 대하여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그런 류의 모든 대답이 바로 이 말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듣는다’는 것에 대하여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의심이 들어도 그냥 듣고 있으면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하고, 목사나 잔도사가 이야기 하는 것을 잘 들어야 한다고도 하고, 때로는 신령한 은사나 기적을 행하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듣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가진 의를 수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들었는데 그 들은 것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간혹 ‘사오정’이라고 합니다. 말한 사람의 의도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말한 사람의 의가 그 사람의 것이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데 듣고 있는 것은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알고 싶지 않고 말하는 사람의 의를 자신을 것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말할 때 반대만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듣는 것으로 여겨달라는 것에 불과합니다. 목사나 전도사가 말하는 것이라면 그냥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신앙을 세상의 경쟁방식으로 이겨내었다면 무조건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이니 그것은 자기의 신앙이 애굽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은사를 행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들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신령한 은사를 행하는 것만을 의로운 것으로 여기는 신이라고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신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서 그것이 자기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 들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수동적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수동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으로 나타나도록 사람이 수동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는 것은 그 듣는 것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순종이라고 하였으니 들음이라는 것은 잠자코 듣고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왼쪽으로 돌릴 때 체결되는 왼나사는 일반적인 오른나사를 박는 너트나 홀에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순종이라 할 수 없듯이 사람이 그 정체성에 부합되지 않는 것을 억지고 듣고 있는 것을 순종이나 들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니 교회가 이야기하는 것을 무조건 듣고 있으라고 하는 것이나,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니 또 교회가 하는 일에 순종하라는 것과 같은 것은 궤변입니다. 주인이 물에 던진 강아지가 주인에게 순종한답시고 가만히 빠져 죽는 것이 듣는 것이나 순종이 아닙니다. 물에 빠진 강아지는 생명의 본능에 순종하고 생명의 본능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서 물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들었을 때 사람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이거나, 특정한 조건이나 부류에게만 해당되는 복음이라면 그것은 듣고 싶어도, 순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목사라야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다? 그 목사라는 신분이 어떻게 얻어진 것입니까?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서로 경쟁하고 시험치고 스펙으로 비교 우위에 서서 얻은 자리 아닙니까? 그 자리가 목사라고 괜찮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훔쳐도 도둑이고,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쳐도 도둑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방법으로 목사가 되어서 그렇지 못한 사람은 복음을 누리고 전함에 있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의 정체성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에 있어 육신의 어떤 조건, 예를 들어 남자라야 한다거나, 모태신앙이라야 한다거나, 도덕적이어야 한다거나, 사회적 지위가 좋다거나 하는 것들이 있어야 의로워지는 것이라고 하거나, 그런 것이 있으면 좋다고 하는 타협도 다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은 순종이나 듣는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과도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것이 자기의 것이 되고 그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바로 믿음이고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들음은 사람의 어떤 조건, 혈통이나 신분이나 성별이나 지식이나 재물의 정도나 고상함과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어떤 수고를 했다는 것도 상관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과 십자가로 보여주신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보이신 그 말씀을 보고 듣고서,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이 바로 들음입니다. 하늘을 나는 백조를 보고 자신이 백조라는 것을 알게 된 미운 오리새끼의 이야기가 바로 어떤 것이 들음인지, 어떤 것이 순종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전하는 일에 있어 어떤 것도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조건은 하나, 그것은 사람이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성품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지은 존재니, 사람이 그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정체성이고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들음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고 믿음을 가지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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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by Google)

(Romans 10: 1-21)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about Christ.(Rm 10:1-21)

‘Faith is heard from hearing’ There are many people asking how to hear the Bible. Maybe this is the answer of all kinds. However, many people simply think about this “listening”. Sometimes they say that they should listen to what they hear, but sometimes they listen to the spiritual gifts or miracles.

‘Listening’ is not simple. To listen means to accept the right of the speaker. I heard people who do something quite different from what they hear. If the intention of the person who spoke is not communicated, it is not heard if the person’s righteousness is not the person’s.

So what I’m talking about is not my story, but what I’m listening to is that I do not understand. I do not want to know the details of the person who speaks, but rather just asking him to think that he is listening to himself who does not object to him when he speaks. If a pastor or evangelist is speaking, he or she must listen, and if you have defeated faith in the way of the world’s competition, you must obey it unconditionally, and that is to acknowledge that your faith belongs to Egypt. And if we are to hear the words of a man who is doing spiritual gifts, it means that God considers God’s act of spiritual gifts to be God’s righteousness.

Paul said that the hearing of the apostles is due to the Word of Christ. These are the words of Christ about being of oneself. It is heard that the Word of Christ is to be His, to hear the word of Christ and to manifest it in His life. This means that faith is passive. Passive means that man’s passive acceptance of God’s righteousness manifests itself as a person, but when it comes from the hearing of faith, it means that hearing is his own.

This is called obedience, so listening to it can be thought of as listening. However, the left thread that is tightened when turned to the left can not be placed in a nut or hole with a normal right-hand thread. But accepting it can not be said to be heard, nor can it be called obedience. It is not obedience or hearing that people are suppressing and listening to things that do not match their identity.

Therefore, faith is heard from the hearings of the church to hear it unconditionally, but obedience is better than sacrifice, and it is like slavery to obey the work of the church. It is not the listening or obedience that the puppy thrown into the water by the owner sinks and dies quietly in obedience to the master. A puppy in water is obedient to obey the instincts of life, hear the sound of life’s instincts, and get out of the water.

Likewise, if you hear the word of God and you can not accept it, or if it is a gospel that belongs only to certain conditions or classes, you can not even want to hear it or obey it. Can a pastor proclaim the Word? How did you get the status of that pastor? Is not it a place where people compete and try to succeed in the world and stand by their comparative advantage in specs? It can not be said that the place is a pastor. Stealing the Bible is a thief, and stealing a candle for reading the Bible is a thief. If a person who is not a pastor in the way of the world enjoys the gospel and is not satisfied with the conditions in the battleship, it is said that it is Jesus who has sent Jesus Christ for all to hear the word of God, Can you do that? It is not possible.

It is also said that there must be some condition of the body in the belief in God and obedience to the Word, such as being a man, being maternal faith, moral, or having good social status , And compromise that there is such thing is all the same. It has nothing to do with obedience or hearing, nor has anything to do with being justified before God.

It is the faith and believer’s trust in God to hear only the words of Christ, that is, what Christ has seen is his and that he will live in the form of Christ, faith and justification before God . And it is totally irrelevant to any condition of a person, pedigree, identity or gender, level of knowledge, or level of wealth. It does not even matter what effort you make in the church.

It is the only hearing that we see and hear the Word of God as our flesh, as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God for our life, which is shown through the Word of Christ and the cross, and that it is its identity . The story of a Ugly Duckling who has seen a swan in the sky and finds himself a swan is to know what is heard and what is obedient.

Therefore, nothing can be a condition in believing and communicating in Christ. The condition is one, it is only a person. Man is the only thing God created to express His character, and if it is heard that man accepts that God’s righteousness and will is his identity and destiny, it is enough for it. It is only necessary to have faith in God before God.

“믿음은 들음에서” (Faith comes from hearing)

“믿음은 들음에서” (Faith comes from hearing)

“믿음은 들음에서”

(Faith comes from hearing)

10-28-18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10:16,17

16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But not all the Israelites accepted the good news. For Isaiah says, “Lord,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

[설교요약]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그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우리가 믿음을 소유하는 영적 메카니즘을 핵심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본문의 ‘16,17절’은 그 복음을 듣는 자에게 집중되는 말씀 입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앞절, <롬. 10:14,15절>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전도자의 삶’을 묘사하고 나서, <16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v.16) 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입니다.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민족이 복음을 복종치 않았다고 사도바울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 입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복음을 순종치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v.17) 라고 선언 합니다. 우리 성도의 진정한 믿음은 복음을 듣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며, 그 듣는 것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 무엇이 복음을 듣는다는 뜻인가요? ” (What means to hear the gospel?)

첫째, ‘내가 어떤 복음을 듣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는 뜻 입니다: 20세기의 탁월한 복음 전도자이자 순교자였던 독일의 <디트리히 본훠퍼>목사는 그의 책, ‘제자도의 댓가’에서 “값싼 은혜는 회개 없이도 죄를 용서하는 설교요, 죄의 고백도 없이 참여하는 성만찬이요, 십자가없는 은혜요 ~ 값비싼 은혜는 우리를 제자(도)로 부르신 것,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내어 주신것” 이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곧 ‘복음’ 입니다. 값싼 은혜는 거짓복음이요, 값비싼 은혜는 바로 진정한 복음이요,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빠진 메세지는 값싼 은혜요, 거짓 복음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떤 복음을 듣고 있습니까?

둘째, ‘신앙주의가 아니라 신앙으로 듣는다’ 는 뜻 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여러차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막. 4:9) 고 그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도전 하셨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선포되는 말씀조차도 들을수 없는 귀가 있다는 것 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성경말씀을 읽고, 좋은 청각으로 복음의 메세지를 듣는다 할찌라도 진정한 신앙이 없다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의 껍질과 외형만 추구하는 ‘신앙주의’ 가 아니라, 겸손함과 진지함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신앙’의 눈과 귀를 성도 여러분은 가졌습니까?

셋째, ‘복음에 순종한다’ 는 뜻 입니다: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책, ‘로마서강해’ 에서 “내가 외적인 귀 뿐 아니라 내면의 귀를 통하여 정말 복음을 들었는지? 그를 통해 참된 믿음을 얻게 되었는지?를 우리 스스로 확인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 (touchstone) 은 <순종> 이다” 라고 말 합니다. 무엇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셔서 순종하는 자세인지 아십니까? 첫째, 말씀을 청종하는 변화 입니다. 둘째,죄를 회개하고 미워 합니다. 셋째, 기쁨과 감사로 열매맺는 삶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단순히 복음을 듣는 것에서 거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참된 권세와 영광에 순종함으로 그의 뜻을 행하는 충성된 제자들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설교전문]

<서 론>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그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우리가 믿음을 소유하는 영적 메카니즘을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믿음의 출발이 바로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 내가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 를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믿음의 출발을 통해 살펴 봄으로서 참된 믿음위에 굳게 서는 소중한 개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 론>

저는 이번 가을학기를 시작하는 시점쯤에 <롬. 10:13~15> 설교말씀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그때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들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스러워 하기 때문’ 이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도록 허락 하셨기 때문’ 이며, ‘이 복음 안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는 위대한 진리가 있기 때문’임을 그 말씀을 통해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로마서 10장의 ‘13~15절’말씀은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자에게 임하는 은혜와 복음의 능력이 그 주제가 될 것 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오늘본문의 ‘16,17절’은 그 복음을 듣는 자에게 집중되는 말씀임을 우리는 알수 있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해 나가는데 있어서 먼저 다시한번 성도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은 <롬. 9~11장>은 일차적으로 사도바울의 동족, 이스라엘민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왜 이스라엘민족이 구원에서 제외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죄와 불순종의 결과인 것 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 (롬. 10:2,3) 고 유대인들의 진정한 영적 문제점을 지적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유대인들 가운데 ‘남은 자들’을 남겨 두시고 , 이방인들의 구원받음으로 그들을 시기나게 하셔서 장차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게 될때 그들이 회심케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계시를 통해 밝히고 있는 것 입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14,15절>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전도자의 삶’을 묘사하고 나서, <16절>에서 이렇게 반대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v.16) 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 입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바로 일차적으로 구원의 복음을 받은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민족이 복음을 복종치 않았다고 사도바울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 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일까요? 복음전하는 자가 믿음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니면, 그들을 보내신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복음을 순종치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사도바울이 ‘복음을 믿는다’는 것과 ‘복음을 순종한다’ 는 것을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 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그는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라는 <이사야 53:1> 의 글 입니다. 바울은 먼저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 하였도다” 라고 밝히고 나서, 이사야가 선언한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 입니다. 구약에서 이사야선지자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자들이 전한 복음을 그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받아 들이지 않고 배척 했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을 믿지 않고 배척한 것’을 그는 <복음을 순종치 않았다/ they did not obey the gospel> 라고 묘사한다는 사실 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함께 물어보아야 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다시말해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그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순종치 않고, 그 전한 복음을 믿지 않았다고 선언한 것이 실제로 어떤 영적 상태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어지는 <17절>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v.17) 라고 말 입니다. 우리 성도의 진정한 믿음은 복음을 듣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며, 그 듣는 것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물어보지 않을수 없는 중요한 질문은 이것 입니다. “ 무엇이 복음을 듣는다는 뜻인가요? ” (What means to hear the gospel?)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내가 어떤 복음을 듣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It means that I should discern about what kind of gospel I do hear) 한다는 뜻 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 ~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 갈. 1:6,7) 갈라디아 교인들이 다른 복음을 좇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 다른 복음이란 바로 ‘거짓복음’이라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 <17절> 에서 진정한 믿음이 듣는 것에서 시작되고, 그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비롯된다고 말할때 이 논리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한가지 단어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은 이해하십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 (the Word of Christ)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그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서 우리 성도의 믿음을 결정짓는 것은 듣는 것을 통해서 되어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바울의 논리에서 우리는 이해하게 되는 것 입니다. 결국 만약 ‘그리스도의 말씀’이 빠진 메세지는 거짓복음이요, 헛된 복음이요, 이런 메세지를 아무리 많이 듣는다고 해서 진정한 믿음을 얻을수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 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원인이요, 그것을 통해 얻게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결과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복음을 듣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나는 어떤 복음을 듣고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복음은 다 같은 복음 아닌가? 서로 다른 복음이 있는가?’하고 성도 여러분 중에 질문하는 분들도 있을 것 입니다. 여기에 대한 가장 훌륭한 대답중 하나는 20세기의 탁월한 복음 전도자이자 순교자로서 짧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충성된 삶을 살다간 독일의 <디트리히 본훠퍼>목사의 글을 인용해 보는 것이 좋을 것 입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이도 죄를 용서하는 설교요, 공동체 훈련도 없이 베푸는 세례요, 죄의 고백도 없이 참여하는 성만찬이요, 인격적인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입니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시고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 이것이 값싼 은혜입니다” “그것은(값비싼 은혜는) 우리를 제자도로 부르기 때문에 값비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기 때문에 은혜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자신의 삶을 대가로 지불하게 하기 때문에 값비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을 내어 준 것으로 인해 그들을 살게 하기 때문에 은혜이다. 그것은 죄를 정죄하기 때문에 값비싼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죄인을 의롭다 해주기 때문에 은혜이다. 무엇보다도, 은혜가 값비싼 것은 하나님께서 큰 대가를 지불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내놓게 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이 은혜인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생명을 아깝다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내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본훠퍼목사는 그의 책 ‘제자도의 댓가’라는 책에서 무엇이 값싼 은혜이고 무엇이 값비싼 은혜인 것인가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곧 ‘복음’ 입니다. 값싼 은혜는 본훠퍼목사가 살아 있을때 뿐 아니라 언제나 존재해던 거짓복음이요, 값비싼 은혜는 바로 진정한 복음이요,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말씀’ 입니다. 아무리 그것이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양심의 감동을 주고 인간의 발전을 촉진하는 듯한 반가운 소식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빠진 메세지는 값싼 은혜요, 거짓 복음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떤 복음을 듣고 있습니까?

둘째, ‘신앙주의가 아니라 신앙으로 듣는다’ (It means that I hear the gospel not by ‘fideism’, but by ‘fides’) 는 뜻 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무엇이 복음을 듣는다는 뜻인지를 살펴봄에 있어서 ‘우리가 듣는가?’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이해해야 하는 것 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들은 것이 아니다고 말 합니다. 이사야가 복음을 전했을때도,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을때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그것은 동일할 것 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귀를 통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말을 들을수 있는 청각기능이 떨어져서 말소리를 잘 못알아 듣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듣기는 듣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를 못한다는 것 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여러차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막. 4:9/ 마. 11:15) 라고 그의 진리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도전 하셨습니다. 진리의 복음을 선포하실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데 바로 그분에게서 선포되는 말씀조차도 들을수 없는 귀가 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비극인 것 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알려주는 무서운 영적 진리인 것 입니다. 진리요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을수 있는 귀를 모두가 가지지 못했다는 것 입니다. 주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고 듣는 자들에게 도전하시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복음을 듣을수 있는 귀를 가졌느냐 혹은 가지지 못했느냐?’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이미 예정하셨으면 복음을 들을수 있고, 예정하시지 않았다면 들을수 없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우리 인간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 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을 귀 있는자는 들으라’ 고 힘주어 강조하시고, 또한 사도바울이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고 선언했을때 이것은 결코 하나의 운명주의가 아닙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도전하는 것은 ‘너희가 마음의 문을 열고 듣고자 하는 신앙이 있느냐?’ 는 것 입니다. 이것은 바로 듣는자의 책임인 것 입니다. 내가 인격적으로 나의 ‘지정의’를 통하여 말씀에 반응하여 신뢰함으로 나아가는 것 입니다. 저는 ‘신앙주의’와 ‘신앙’을 구별해서 사용 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다를까요? 내가 아무리 좋은 시력으로 성경말씀을 읽고, 좋은 청각으로 복음의 메세지를 듣는다 할찌라도 진정한 신앙이 없다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하나의 껍질과 외형만 추구하는 ‘신앙주의’ 가 아닌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들을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습니까? 겸손함과 진지함으로 살아 있고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리고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내 영의 눈과 귀로써 ‘신앙’을 통해 보고 들을수 있는 눈과 귀가 있습니까?

셋째, ‘복음에 순종한다’ (It means that I obey the gospel) 는 뜻 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책, ‘로마서강해’ 에서 “내가 외적인 귀 뿐 아니라 내면의 귀를 통하여 정말 복음을 들었는지? 그를 통해 참된 믿음을 얻게 되었는지?를 우리 스스로 확인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 (touchstone) 은 <순종> 이다” 라고 말 합니다. <17절> 의 ‘들음’ 이라는 말은 실제로 ‘누구 아래에서 듣는다’ 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어떤 권위 아래에서 듣는다’ 는 의미요, ‘그 권세와 권위 아래에서 들음으로 복종하고 듣은 바를 온전히 굴복한다’ 는 뜻 입니다. 주의 복음,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하나의 사실을 지적으로 긍정한다는 뜻이 아닌 것 입니다. 그것은 그 진리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뜻 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선언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롬. 1:5) 라고 말 입니다. 사도바울과 이미 믿은 성도들 뿐 아니라, 모든 이방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한다는 것은 그들이 그 진리의 말씀으로 그 예수의 이름아래, 그 영원하신 권세와 능력아래 복종함으로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로 세우신 목적이라는 것 입니다. 여러분이 진리에 대해 인정할수는 있지만 그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 입니다. (행. 16:14, 자주장사 루디아) 무엇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셔서 순종하는 자세인지 아십니까? 첫째, 말씀을 청종하는 변화 입니다. 둘째,죄를 회개하고 미워 합니다. 셋째, 기쁨과 감사로 열매맺는 삶 입니다 (살전. 1:5,6).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듣고 순종함으로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참된 믿음을 얻기 원합니까? 사도바울은 진정한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듣음을 통해서 시작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듣는다는 것은 내 육신의 귀로 듣는것이 아니라, 내 내면의 귀로 내 영적 귀로 듣는 다고 말 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거짓되고 값싼 복음을 속에서 참되고 값진 은혜의 복음을 구별해 내는 지혜로운 주님의 제자가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그리하여 단순히 듣는 것에서 거치는 것이 우리 주님의 참된 권세와 영광에 순종함으로 그의 뜻을 행하는 충성된 제자들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그로말미암아 언젠가 주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잔치에 참여할찌니라” (마. 25:23) 는 칭찬과 영광을 얻는 복된 삶 모두 사시길 간절히 축원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롬 10:16-21) – 새벽기도 설교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1. 먼저,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하여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16절)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 53:1을 보면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 같이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성경에 예언된 대로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지만 그를 배척하였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기적을 베푼 갈릴리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불신했다고까지 증언하고 있습니다(마 11:20-22).

또한 사도바울이 각 나라에 흩어진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힘써 복음을 전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여러분, 그들은 왜 그렇게 복음을 믿지 않고 불순종했을까요?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불순종의 습성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3:29-32).

또 세상 영광과 영예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이 맹목적으로 율법주의 종교를 신봉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미 2-3절에서 “너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증언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정치적인 메시아관을 지닌 것도 영적인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지 못한 한 이유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예수님과 사도들과 성도들이 그렇게 열심으로 복음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복음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에도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 또한 다양합니다.

이 시간에 그 이유를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인본주의에 물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보다 이 세상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것에 전혀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아무리 열심히 전해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전하는 복음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여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복음을 순종할 것이요, 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누가 하나님이 택하시고, 누가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우리의 사명에 충실하여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꼭 기억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지는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씀하는데, 이 말씀은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말씀은 16절의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관련하여 순종의 중요성을 보다 강조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기서 ‘들음’이란 그냥 말을 귀로 듣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순종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의 말을 거스르는 자녀에게 꾸중할 때 ‘제발 말 좀 들어라’고 합니다.

이때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 뿐 아니라 순종까지도 포함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믿음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데서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우리가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 따라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8:15에서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믿음을 갖기 위해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의 자세입니다.

물론 순종은 믿음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믿음과 순종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인 것입니다.

순종으로 믿음에 이르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결국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것이 믿음과 순종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먼저 순종하고 그로 말미암아 또한 믿어 더 큰 순종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18절 함께 읽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우리는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믿지 못했다’고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복음이 그들에게 전파되었기 때문임을 시편 19:4을 인용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여러분, 유대인들은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핑계 댈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사도들의 사역으로 예루살렘 교회에만 하여도 믿는 자의 수가 수만 명이나 되었습니다(행 21:20).

또한, 바울을 통해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어느 곳에서든지 유대인들을 향하여 먼저 복음을 전하였기에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복음을 들을 기회가 있었으므로 결국 그들은 복음 전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핑계 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들도 우리 주변의 믿지 않는 이웃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복음을 듣지 못해서 주님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핑계대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만일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어느 불신 이웃이 “나는 저 성도와 친하게 지냈는데 한번도 복음을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핑계 댄다면 그 때에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과 친지는 물론 직장의 동료나 사업의 거래처 사람들에게도 틈만 있으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영혼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복음 전파의 일차적 목적은 영혼 구원에 있지만 그것은 복음을 거부한 자들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핑계 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이어지는 19절은 복음을 배척한 유대인들이 시기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펴시게 될 것을 신명기 32:21을 인용하여 강조한 내용이고, 20-21절 말씀도 이사야 65:1-2을 인용하여 이방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반복하여 언급한 내용입니다.

이 구약 성경의 말씀들은 복음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 세계로 퍼져나갈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의 섭리’로 이방세계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영접할 것을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어떻게 처음 이방세계로 전파되었습니까?

그것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한 결과 흩어진 성도들이 이방 세계로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행 8:1)

또한 그렇게 해서 세워진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가 성령의 지시로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 세계 선교사로 파송함으로써 복음이 본격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행 13:1-3).

그러므로 여러분, 만일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받지 않았다면 복음이 그렇게 신속하게 이방 세계로 전파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당한 일과, 그 결과 성도들이 이방 세계로 흩어지게 된 일은 복음을 이방 세계로 전파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같은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순종하여 성도들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전부터 하나님을 섬겼습니까?

하나님을 알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기독교 선교사들은 우리가 초청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찾아 들어와 복음 사역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요일 4:19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리 충성하고 믿음이 좋은 성도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이방인들로 지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들이 어떤 위치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혜에 겸손하게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큰 은혜를 받았지만 자신들의 육신의 정욕을 포기하지 못해 결국에는 복음에서 버려진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문을 열고, 들을 때 생겨나는 것인데, 하나님, 저희들이 복음을 전할 때, 상대의 마음 문이 열려 질 수 있도록, 먼저 우리의 삶을 선하고 의로운 삶으로 이끄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능력있게 전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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