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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장로 프로필 |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간의 비밀\”을 감춘 이유ㅣ당신이 그냥 지나친 성경 속 \”시간\”의 비밀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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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교도관으로 근무하며 재소자들에게 묵묵히 복음을 전해온 서울구치소 교도대장 박효진 장로(48․ 명문교회)가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담안의 선교사’인 박장로는 그동안 25명의 사형수들과 신앙교제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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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장로의 합심기도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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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분들께서 남겨주신 댓글은 제가 빠짐없이 모두 읽고 있습니다.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다른 분들의 댓글에 위로와 응원의 말씀을 남겨주시는 분들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채널이 신앙이 회복되고 영육이 치유되며, 구독자분들 서로가 격려하고 소통하는 작은 공간이 되길 희망합니다.
2. 본 영상에 표시되는 광고의 종류와 내용은 본 채널과 전혀 무관하며,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재생됩니다. 시청에 주의를 요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공식이메일 : [email protected]
연락이 필요하신 분은 위 이메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신앙 상담 요청이 많아 바로바로 답변해 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중보기도 신청 사연은 엄선하여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동천성야 – https://youtu.be/WRu6waPIN6Y
🎵Track : 노을의 저편에서 – https://youtu.be/-8aP4tZa12Y
🎵Track : 시골풍경 – https://youtu.be/aRolBdUKJ3s
🎵Track : 할머니의 피아노 – https://youtu.be/BZRlGrwJh50
🎵Track : Dwarves’ Kingdom – https://youtu.be/zlCu66G1DQc
🎵Track : Medium Lucky – https://youtu.be/L1SlVog4mQw
🎵Track : 6.6 – https://youtu.be/LrtnRjRTADE
🎵Track : Equality – https://youtu.be/VfImFoOi5EU
🎵 사진설명출처 www.retailinasia.com
🎵 사진설명출처 Philippine Tatler
🎵 사진설명출처 [허핑턴포스트 사이트 캡처]★(전도용)박효진 장로 싸인책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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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가는 사형수- 박효진 장로님 – 네이버 블로그

하늘가는 사형수- 박효진 장로님. 프로필. 더욱 사랑. 2017. 3. 18. 19:25. 이웃추가 … 윤도형이의 신앙은 무엇이며 박효진 장로가 믿어 온 신앙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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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13/2022

View: 2337

올림픽장로교회 박효진 장로 간증집회 첫째날 <영적 전쟁>

(Photo : 기독일보) 박효진 장로(전 청송교도소 교도관, 소망교도소 부소장). 지난해 5월에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91세를 사시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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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r.christianitydaily.com

Date Published: 12/24/2021

View: 8281

박효진장로가 20년 만에 공개적으로 아들에게 사과한 이유는?

본 영상에 따라 붙는 광고의 내용과 종류는 본 채널과 전혀 무관하며,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표시됩니다. 시청에 주의를 요하는 내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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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tv.christiandaily.co.kr

Date Published: 3/8/2022

View: 2393

박효진 장로/ 감옥안의 구원 파노라마 – 교회와신앙

나이도 50대 중반이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사형수가 되었을까”라며 의아해 할 정도로 도사였다. 수양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바늘로 누가 옆구리를 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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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mennews.com

Date Published: 9/12/2022

View: 981

“저들은 들킨 도둑놈, 나는 안 들킨 도둑놈” : 선교 – 크리스천투데이

현지시간 지난 5월 6일 미국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올림픽장로교회(정장수 목사)에서 ‘영적 전쟁’이란 주제로 열린 집회에서 박효진 장로는 청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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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9/19/2021

View: 8443

[스크랩] 박효진 장로 간증이야기 모음 – Daum 블로그

박효진 장로 간증시리즈 모음 ☆ ◇ 박효진 장로 프로필 ◇ 청송감호소, 청송교도소 근무 서울구치소 경비교도대대장 역임 법무연수원 교정관 역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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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8/28/2022

View: 9920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박효진 장로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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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박효진 장로 프로필

  • Author: 박효진장로
  • Views: 조회수 15,446회
  • Likes: 좋아요 1,071개
  • Date Published: 2022. 8. 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HcKU_Onqh6w

사형수이야기 박효진장로

그날 밤 성열이의 귓전엔 앵앵거리는 모기소리 같은 것이 계속됐다.그건 모기소리가 아니라 낮에 자신이 배식구에 외쳐댄 성경구절이었다.그도 차츰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독방의 재소자들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성열이가 변화될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이제 세 사람의 성도가 독방교회 초대집사가 됐다.그들 사이사이에 수용된 다른 재소자들도 세 사람의 불덩어리 같은 전도에 끌려 하나 둘씩 예수 그리스도의 품으로 들어와 믿음의 동역자들이 되기 시작했다.다른 사람이 전하는 예수라면 모르겠거니와 천하에 소문난 저 세 사람의 기쁨 넘치는 삶과 신앙의 뜨거운 폭발은 능히 다른 흉악범 재소자들의 가슴을 두드려 깨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독방에 수용된 재소자 중 정신질환자 두세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새로운 삶에 눈을 뜬 것이다.

“우리도 예배를 한 번만 드렸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었다.그러나 엄격하게 독거 수용된 이곳의 형편상 예배라는 것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었다.모두가 예배에 대한 목마름으로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기상천외한 예배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다.외부에선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예배 인도를 맡게 된 것이다.󰡒지금부터 우리 독방교회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독방이 늘어서 있는 복도 중간쯤에서 예배의 시작을 선포하며 앞을 보면 조그만 배식구에 엎드려 귀를 밖으로 대고 있는 재소자 형제들의 모습이 보였다.꿇어 엎드려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필사적인 모습 앞에 심장이 찢어지는 감동을 느꼈다.

다같이 신앙고백을 하자고 외치는 나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각 방의 배식구에 보이던 그들의 귀는 즉각 입으로 변했다.그들의 절박하고 순박한 심령에 성경 본문을 읽어주는 것보다 더 큰 설교는 없었다.그들은 흐느껴 울었다.그들은 울퉁불퉁 살아온 험악한 인생의 뒤안길에서 영원히 버림받은 삶으로 끝날 줄 알았던 자신의 생애에 이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실 줄 몰랐다고 기도했다.배식구에 입과 귀를 번갈아 대어 외치며 기도하고 찬송하는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제 더 이상 죄인이 아니었다.

독방교회 사람들의 변화되는 모습은 죄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던 나를 건져주시고 이들과 함께 복음을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게한다.어린시절부터 철저히 유교와 불교가 혼합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한 난 1년에 제사를 13번이나 지내는 종가집 종손이었다.

1979년 2월 어느 날 친척 할머니의 소개로 선을 보았다.다방에서 그녀를 만난 순간 눈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평범한 외모를 지닌 여성이었으나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평소 같았으면 “저는 밀양박가 규정공파 대종가집 대종손인데요.우리 집엔 1년에 제사가 13번있어요.자신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텐데 이번엔 “저는 종손이고요,동생들이 좀 많아요.그래도 착한 동생들이라 속 썩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우린 3개월 후 친지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결혼 후 아내는 우리 집안의 풍습에 익숙해졌고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냈다.그러나 귀여운 딸아이가 옹알이를 할 무렵이었다.그날도 교회의 새벽종소리가 들렸다.매일 듣던 종소리였지만 아내는 아내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울기 시작했다.그순간 아내의 심령 속에 들려 오는 소리가 있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너는 나를 떠났다고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너를 떠난 적이없다.네가 우상 앞에 절하는 순간에도 너를 떠나기는커녕 오히려 탄식하며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지금도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다.내 딸아,돌아오너라” 결혼 전 아내는 독실한 신앙인이었다.맞선보는 자리에서 󰡒예수를 믿으세요? 평생 주일성수 하실 수 있나요? 철저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나요?󰡓라고 말할 정도였다.그러나 이런 신앙이 결혼의 걸림돌이 되자 아내는 회의를 갖게 됐고 신앙을 포기한 채 나와 결혼하게 된 것이었다.사실 그때까지 우리 집안은 그녀가 기독교신자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내가 심령 속에 들은 소리는 복음이었다.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한번 구원받은 자녀들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버림받지 않는다는 진리였다.아내는 베개가 흥건히 젖도록 울고 또 울었다.잃었던 믿음을 회복한 아내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애비야,아무리 봐도 우리가 며느리 하나는 참 잘얻었대이 ”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우리 며느리는 요즘 냉장고가 시원찮다고 시장도 얼마나 잘 다니는지 몰라.일요일 낮에도 시장을 가고 빠뜨린 게 있다고 일요일 저녁에도 시장을 간다.또 더 살 게 있다고 수요일 저녁에도 시장을 가고 야시장에 가면 싼 물건이 많다면서 금요일 밤에도 시장을 간다니까.싱싱한 생선과 신선한 야채를 사서 시부모 밥상에 올리려는 며느리가 기특하구나”

내 어깨는 으쓱해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초풍할 사실이 드러났다.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 아내의 가장 큰 소망과 즐거움은 예배였다.주일예배와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를 드리기 위해 시장 핑계를 댄 것이다.얼른 시장을 본 후에 교회 뒷자리에 앉아 남몰래 주님을 만난 것이다.

아내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활기찼고 내막을 모르는 시부모님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며느리 자랑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와보니 아내는 중죄인처럼 머리를 숙이고 아버님은 대청마루 한가운데서 분기탱천하여 고함을 지르고 계셨다.

“이놈아! 니 마누라가 예수쟁인줄 알고 결혼했어,모르고 결혼했어!”

절구통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아버님 절대로 몰랐어요”

“잘 들어라 너 오늘부터 야소(예수)를 버리고 우리 집안 풍습을 따르든지 이혼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라.세상에 우리집안 종부가 예수쟁이라니…” 나는 중재를 해야 했다.

“아버님,저한테 3개월만 시간을 주세요.3개월 내로 꼭 개종시키겠습니다.만약 개종이 안 되면 이혼할테니 걱정마세요.”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심성이 부드럽고 고운 아내를 개종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약속대로 3개월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참 희한하게도 아버님께 약속드린 그대로 개종이 되긴 되었다.그런데 개종된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나였다.

아내를 개종시키겠다고 큰소리치던 내가 도리어 개종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회사 동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처음에 장난으로 시작한 화투판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 있었다.빚독촉을 견디다 못해 아내에게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그러나 화를 내고 못살겠다고 고함을 지를 법한데 아내는 쌩끗 웃으며 말했다.

“소영이 아빠예, 소영이 아빠만 하나님 앞에 돌아온다면 그까짓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능교? 걱정 마이소, 내가 우째 한번 만들어 보지요”

`천사표’가 된 아내를 바라보며 `예수를 믿으면 다 저렇게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아무튼 이렇게 해서 위기는 넘겼지만 이날 이후 난 빚을 갚기 위해 결혼패물까지 팔아버린 아내에게 죄인이 된 기분이었고 아내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교회에 나간 것이다.

어느 날 아버님은 정식으로 나를 부르셨다.“야, 니가 느그 댁을 개종시킨다더니 알고 보이 니까정 예배당에 나간다꼬? 이놈아 죽을라고 환장을 했제?”

신앙을 부모님께 들켜버린 아내는 그때부터 드러내 놓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부모님과 우리부부 사이에 종교적 갈등이 극심해지자 난 매사에 의욕을 잃어갔다.내가 근무하던 대구시 중구청 세무과는 그런 대로 만족할 만한 생활이었다.그러나 머릿속엔 `이 지겨운 환경속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어느 날 신문광고에 `교정직 7급’ 공개채용 시험공고를 봤다.교정직원은 2,3년 근무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전국구 공무원이었다.전국 40여개의 교도소 구치소 감호소가 있으니 내가 찾는 조건에 맞는 직장이었다.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내는 나의 전직을 기쁜 마음으로 찬성했다.그 때 난 직업을 통해 선교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아내는 벌써 내 생각을 앞지르고 있었다.

1995년 11월,전화 벨이 다급하게 울렸다.”장로님,오늘 사형집행이 있는데 오셔서 가는 형제들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해주실 수 있습니까?”

복사뼈에 염증이 생겨 경찰병원에서 오른쪽 발을 수술하기로 예약한 날이었다.그러나 서둘러 목발을 짚고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내게 전화를 건 사람은 서울구치소에 근무하는 정집사인데 그가 사형자 명단에 호성이가 있다고 전한 것이다.호성이의 이름을 듣게 되자 목구멍에 돌멩이라도 걸린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서울구치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형집행이 시작된 후였다. 호성이가 사형장으로 연결된 지하실 계단을 직원들에게 이끌려 묵묵히 올라오고 있었다.계단을 거의 다 올라와서 무심코 고개를 든 호성이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장로님,어떻게 여길 오셨어요?” 사형집행은 철저한 보안 속에 이루어진다.그런데 당시 성동구치소에서 근무하는 내가 그 아침에 사형장으로 찾아왔으니 놀랍기도 했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 나라에 가는 날인데 오지 않을 수 있나? 주님만 꼭 붙들고 마음 단단히 먹어라.믿음으로 이겨야 한다.알았지.떨리진 않니?” 호성이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걱정마세요.준비는 벌써 됐어요.근데 어디 다치셨어요” 목발을 짚고 나타난 나에게 물었다.

사형집행을 위한 마지막 인정심문 절차가 진행됐다.사람이라면 누구나 긴장하고 두려워할텐데 그는 죽음조차 잊어버린 듯 평안해 보였다.집행에 앞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소장님이 마지막으로 종교행사를 가지겠느냐고 물었다.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마지막 임종예배를 드리기 직전 호성이는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내 손을 꼭 붙잡고 다시 한 번 근심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박장로님,정말 발목 아프지 않아요?” 천진한 표정으로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는 호성이의 깊고 맑은 눈동자 속에서 내 기억은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바늘을 타고 그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92년 어느 날 퇴근무렵이었다.그날도 구치소에서는 매일 반복되는 신입행렬이 이어졌다. “계장님,장위동 일가족 5명 살해 암매장 사건의 범인입니다.” 성북구 장위동에 사는 친부모와 친형,형수,조카 등 5명을 죽이고 그 집 정원에 암매장했다는 끔찍한 사건을 듣고 전율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장본인이었다.교도관이라는 직업상 수많은 범법자들을 접하다보니 웬만한 범죄형은 직감으로 가늠할 수 있다.그런데 그를 보니 살인은커녕 돈 100원짜리도 빼앗을 사람같지 않았다.그가 바로 호성이었다.그는 가끔씩 움찔 놀라거나 입속으로 웅얼거리는 모습이 정신착란증환자의 모습이었다.틀림없이 그의 주변에 악한 영이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니 옆에 뭐가 있지?” “어떻게 아셨어요.무서워 죽겠어요.” 호성이는 공부를 많이 못했지만 천성은 착했다.변변한 직장도 없이 혼전 동거생활을 하다가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부모에게 돈을 타서 썼다. 사건 당일,돈을 얻으러 갔다가 퇴짜를 맞고 빈손으로 2층을 내려오는데 악령이 호성이를 가로막으면서 `올라가서 죽여라’고 말했다고 한다.그는 악령의 명령에 따라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또 악령은 구치소에 가면 그날을 넘기지 말고 죽으라고 방법까지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날 나를 만난 것이다.호성이를 붙들고 큰 소리로 기도했다.희대의 살인마와 단둘이 있다는 사실에 처음엔 두려워서 큰 소리로 기도했고 나중엔 성령에 사로잡혀 혼신을 다해 기도했다.깊은 밤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에 직원들이 뛰어왔지만 돌려보냈다.

“아저씨,갔어요!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어요” 몸과 정신을 휘감고 있던 기분 나쁜 공포와 역겨움이 사라지고 평화로움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펑펑 울면서 내 손을 잡고 있는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구원의 기쁨을 전해주는 것뿐이었다.나는 땀을 흘려가며 최선을 다해 용서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그의 결단을 요구했다.

차츰 신앙 안에서 안정을 찾아가던 호성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선고받았다.2심 사형선고를 받던 날 호성은 내 사무실에서 많이 울었다.”호성아,사형선고 받은 게 슬퍼서 우냐?” “아닙니다.억울하거나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벌써 지옥에 가 있어야 할 몸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적 같아서 우는 거예요”

호성이 다른 방으로 옮겨갈 때마다 사람들은 긴장했다.그러나 그는 밝은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주었다.사람들은 매번 그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그때마다 호성은 복음을 전했다.하나님께선 한 사람의 사형수를 통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가장 낮은 곳,가장 어두운 감옥의 한 귀퉁이에서 만세 전에 선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불러내셨다.

그런 호성이 지금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앞자리의 집행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죽음의 그림자가 사형장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담담한 표정으로 모든 절차에 순응하던 호성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서로 잡은 손바닥 사이로 땀이 배어나왔다.

“유언을 남기겠습니까?” “예” 일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하늘가는 사형수- 박효진 장로님

* 하늘가는 사형수 *

박효진 장로

청송감호소, 청송교도소 근무

서울구치소 경비교도대대장 역임

법무연수원 교정관 역임

현재 민영 소망교도소 부소장으로 근무

서울 명문교회(예장합동) 시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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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평신도로 부름 받은 현장에서의 삶을 많은 교회와 성도 님들과 나누어왔습니다. 부족하고 허물 많은 저의 인생임에도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변함 없는 사랑으로 역사하셔서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10년이 넘는 긴 세월, 담장을 나와서 평신도 사역자로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증거하면서 살아 왔는데 지난 8월,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남은 생애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진실되게 부름 받은 사명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으로 민영 교도소인 소망교도소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철커덩 하고 여 닫히는 철창소리가 어찌 그리 정겨웁고 수용자 형제들의 땀 내음마저 향기처럼 느껴지는 저의 진정한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15척 담장 속에서 갇힌 형제들의 복음을 위해 밤 낮으로 기도하며 헌신하는 교도관 선, 후배들의 따스한 사랑과 격려와 손잡음으로 저의 제 2의 사역에 신실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립니다.

모든 분들께 언제나 샬롬의 은총이 가득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신앙간증

저는 생일이 3개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귀 빠진 날은 다 가지고 있겠죠.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날. 그리고 두 번째 생일은 예수 믿는 사람은 다 가지고 있겠죠. 거듭난 날. 중생한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듭나서 우리 영이 깨어져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를 주라 부르게 되고 교회에 출석하고 이런 사람들은 이미 다들 거듭났습니다. 근데 어떤 사람들은 쫌 특별나게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고 거의 다는 모르고 삽니다. 언제 거듭난 지도 모르고 어쨌든 거듭난 삶을 삽니다. ‘죽어도 나는 이제 세상으로 못 나가. 이젠 누가 내 목을 빼도 세상으로 흘러갈 수 없어. 이제는 주님과 한 평생 살아야 돼.’이미 그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다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저도 이 두 번째 거듭난 삶을 쩌-기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진보교회라는, 제 모교회가 그 곳인데 거기 있는 청송감호소에서 근무를 할 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만나게 되고 그 못난 세상의 삶을 다 정리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1987년 1월 달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 놀라운 그 체험을 하자마자 제일 먼저 와 닿은 것이 ‘아, 너무 아까왔다. 지금까지 허송세월로 보낸 세월이 너무너무 아까왔다. 내가 지금 이 중년에 들어가지고 인제서야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니’ 젊은 학생들 특히 유년주일학교 학생들 보면 부러워 몬살겠어요. 야, 쟤들이 너무너무 행복이다. 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알게 되고 저 때부터 주님을 섬긴다니 너무 부러와요. 어쨌거나 늦게 찾은 하나님을 알고 나니까 그때부터 하루하루 사는 게 기적이고 이거는 뭐라 그럴까요. 사이다 퐁퐁 뛰듯이 그런 충격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담도 열심히 막 그냥 열성을 내게 됩니다. 시골교회니까 여러분들 생각해보세요. 시골교회는 1년에 열 명 전도하기가 참 쉽지가 않습디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였어요. 저기 꼴짜기에 있는 교회니까 1년에 대여섯 명 이사와서 올까 말까 새신자 전도라는 것이 거의 어렵지요. 근데 제가 그 근무하던 감호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열심이 특심이 되니까 내 밑에 부하직원들, 친하게 지내는 직원들 막 꼬시고 공갈을 치든 막 해서 한 주에 꼭 너덧 명씩 줄줄줄 끌고 옵니다 인자. 그러니까요. 그 시골교회에서 눈이 번쩍뜨였습니다. 야, 주일마다 너덧 명이니까 한달 같으면 20명이 막. 그러니 매 달마다 인제 “이번 달도 전도왕은 박효진 집사님입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상품, 고무 다라이”고무 다라이 상품 무지하게 받았어요. 그기다가 이제 또 늦게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성경을 읽고 싶어 미치겠죠. 그러니까 주야로 성경 읽는 겁니다. 또 근무하는 환경이 성경을 읽을 만한 시간이 있었으니까 주야로 성경을 읽는 겁니다. 성경을 안 보고는 몬 살 정도로 그 열심을 하나님이 내게 하신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매 주마다 구역 보고를 하니까 매주 성경 읽은 장 수를 적어서 냅니다. 그래 내가 보니까는 와, 우리교회 전부 다 뚜드려 뭉쳐도 내하고 비슷비슷하구나. 그 담에는요. 기도도 막 열심히 하고 싶으니까 만날 주여, 주여… 십자가 밑에서 자다가 그 다음 날 눈만 떠도 또 주님 십자가… 그렇게 하니까 교회 목사님이나 장로님, 집사님들이 저만 보면 하는 말이 “집사님, 우째 그래 성경을 많이 읽능교”“우째 그래 전도를 많이 하능교.

우째 그리 기도를 많이 하노!”막 보는 사람마다 칭찬이죠. 그 때마다 저 집사 9년짜리니까 아주 멋지게 대답합니다. 아주 겸손한 표정으로“아고, 아입니다. 다 주님이 하셨지요~ 다 성령님의 역사지요~”이래 막 철저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껍데기는 그런데 내 속은요. 이게 미칠 지경입니다. 내 마음으로는 ‘맞아. 맞아. 내 겉이 성경 마이 보는 사람이 어딨노. 내처럼 전도 마이 하는 사람이 어딨어. 아이고~ 장로, 아~ 웃낀다. 전도도 하나 몬 하면서 무슨 장로 대표 기도 한다꼬 올라가 있노.’이게 속으로는 막 우습다 싶고 그라면서도 어쩝니까. 껍데기는 ‘아~유,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게요.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올라옵니다. 막 커나갑니다. 제가 감을 잡았어요. 눈치를 챘십니다. 어, 이거 위험하다이… 요게 위험하다 하는 걸 알지요. 이라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싶어도 이걸 내뻐릴 용기가 안 납니다. 요게 얼마나 달콤한지. 독약인 줄 알지만도 우찌나 달콤하고 기분이 좋습니까. 고 먹고 삽니다. 그라니 이제 겉으로는 겸손하고 속으로는 다할 수 없는 교만이 점점점 턱으로 차올라 옵니다. 그라고 몇 년 지다나 보니까 장로가 됐습니다. 장로가 되니까 이건 뭐 폼이 더 잡힙니다이. 아마 고 상태로 갔으면 지금쯤 무지하게 골치아픈 장로가 됐을 낍니다. 내 기질 몬됐죠. 아주 편협하지요. 한번 내 입으로 내뱉은 거는 천하가 없어도 죽어도 맞다고 하고 죽어야 내 속이 시원하지 말 바꾸는 거는 죽기보다 싫어요. 그 정도 골치 아픈 기질 위에 하나님 은혜를 받았다꼬. 내가 장로가 됐다꼬. 내가 어떻게 뭘 했다꼬 아무리 한들. 결국은 어느 날 어느 순간 가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교회를 거치고 성도들 심령 속에 못을 박는 그런 사람이 분명히 됐을 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게도 저를 서울구치소 사형장으로 딱 불러주셔서 그 사형장에서 제게 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그 사형장에서 제가 깨진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들을 그 사형장으로 모시고 갈라고 달려 왔습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처음 오신 분이든 마이 믿으신 분이든 누구든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끌고 내가 사형장 데리고 갈라고 왔습니다. 오늘 저하고 사형장 가입시다. 할렐루야. 사형장 가야 됩니다. 거기서 인자 오늘 끝장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평신도로서 같이 만나게 하시고 여기서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여러분하고 격식 없이 대화를 나누게 하신 것은 여러분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사형장으로 다 끌고 오라고 하신 겁니다. 거기 연세 많은 할무니도 저하고 같이 가입시데이. 자, 같이 가입시다. 우선 사형장을 가기 위해서 우리가 패스포트를 하나 끊어야 됩니다. 입장권을 끊어야 되니까 로마서 1장 함 보겠습니다. 28절부터 제가 읽을게요.

(롬 1:28-32)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아멘하기가 쫌 껄끄랍죠? 아멘할라 보니 전부 다 사형순데. 우리는 보통 그런 생각 합니다. 저 사형수들은 아주 나쁜 놈들이다. 죽어 마땅한 사형수들이다. 사람을 토막살인하고 철사쭐로 몸을 묶아 가지고 돌을 메달아 연못에 떤져 죽이고… 도대체 상상할 수도 없는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마땅히 목매달려 죽을 사형수라고 인정을 합니다. 그란데 우리는. 우리는 죄인은 죄인이지만. 물론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이지만 그 사형수만큼은 아이다. 그래도 우리는 쫌 수준 높은 죄인이고 우리는 그래도 쫌 괜찮은 일을 하는 죄인이고, 제법 그래도 배운 죄인이고, 제법 잘 살고 제법 착한 일을 하는 죄인이라고 그런 착각을 할 때가 참 많십니다. 그 착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간증에 들어오면은요. 많은 분들이 우는데요. 그 눈물은 어떤 거냐 하면 불쌍해서 흘리는 동정의 눈물입니다. 안됐다, 불쌍하다, 저렇게 죽는구나, 생떼같이 젊은 나이에… 그냥 뭐 앉아가지고 연극 구경하듯 불쌍하게 바라보는 그것밖에 할 수가 없는데 근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그게 아이고 성경이 말씀하시길,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이 21가지의 죄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수근수근 이거 한두 번은 다 해봤을 낍니다. 비방도 미워도 해봤고 교만도 해봤을 것이고 자랑도 했을 겁니다. 살인? 안 찔러 죽였다 뿐이지 딴 데서 다 걸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살인을 저질렀든 불의를 저질렀든 비방했든 교만했든 자랑했든 몽땅 마지막 순간 결판을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한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라고 시작을 합니다. 우리에게 착각하지 말고 우리 전부 다가 아무리 넥타이를 메고 좋은 일을 하고 좋은 곳에 있고 잘 살고 사장이고 많이 배우고 했다고 해도, 아무리 이쁘고 좋은 옷을 입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껍데기일 뿐이지 우리 주님 앞에서는 우리의 영적 근본 자체가 간증 앞에서 그리고 성경 앞에서 여기 모든 분들이 하나님 앞의 한 분도 빠짐없는 사형수라는 것을 일단 인정하고 저와 함께 서울구치소 사형장에, 우리가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이고 죽으러 가야 됩니다. 우리 모두 이 죄목에 걸려서 사형선고 받은 사형수로서 죽으러 가는 겁니다. 우리 목에 밧줄이 털커덕 걸리는 그 순간에, 바로 그기서 주님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목에서 그 거친 밧줄을 벗겨내시면서 “내가 이미 너를 위하여 죽었노라. 내가 너의 죗값을 지고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노라.” 그리하여 여러분과 제 목에서 이 죽음의 밧줄을 벗겨 내시고, 거기서 구원이 뭔지 알고 새 생명이 뭔지 바로 깨닫고 다시 이 교회당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까지 다시 보내셔서 남아있는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걸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이 말씀을 선포하시기 위하여 저와 함께 서울구치소 사형장을 여시고 계십니다. 모두 가뿐하게 가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제가 서울구치소에서 보안계장으로 근무할 때의 간증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청송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한 8년 사열을 하다가 하나님 은혜로 서울구치소로 올라 왔습니다. 와보니까 서울구치소는 차암 큽니데이. 재소자 수만 해도 4천 2-3백 명이 넘습니다. 직원 수가 경비 경호대까지 합쳐서 천 명입니다. 그러니까 5천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담장 속에 삽니다. 을마나 복잡합니꺼. 바글바글… 정신이 없십니다. 청송에 살던 촌놈이 올라오니까는 눈이 핑핑 돕니다. 그 많은 재소자들을 몇 백, 몇 천명을 만나고 스쳐 지나고 하는데, 참 관심이 가는 사람들이 그 사형수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가슴에 붉은색 명찰을 달고 댕깁니다. 멀리서 봐도 아, 사형수구나 이걸 벌써 압니다. 노란색 명찰은 멀리서 봐도 마약이구나. 아편, 히로뽕, 마약… 뭐 이런 마약 사범들. 새파란 명찰을 달았다 하면 아, 저건 청송 갈 감호자구나… 이런 식으로 벌써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명찰 색깔을 구분해가지고 알게 되죠. 붉은색 명찰을 단 사형수들하고는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피 냄새가 납니다. 비릿비릿~한 피 냄새. 사람을 죽인 이 살인자들한테서만 느낄 수 있는 끈적끈적한 그런 냄새가 납니다. 이게 꼭 코로 맡아지는 건 아니고 거의 다가 감각적으로, 영감으로 와 닿는 냄새입니다. 굉~장히 기분 안 좋습니다. 40명이 넘는 사형수들이 서울구치소에 있었어요. 내일 죽을 지 모레 죽을 지. 내일 아침에 죽을 지 오후에 죽을 지 아무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40명. 근데 그 중에서 윤도형이라고 하는 서울구치소 사형수 세계의 대부입니데이. 조그마난 서너 평 되는 상담실에서 만났는데 처음 딱 보는 순간에 아… 정말 못됐어요. 너무너무 몬 됐어요. 표정부터 풍겨 나오는 모든 것들이 아… 정말 몬 됐어요. 아, 힘 쫌 들겠다 싶지만도 그래도 니는 신분이 사형수고 내는 보안계장인데, 신분차이가 하늘과 땅 차인데 니가 내 손에서 뭐 어쩌랴 하는 자신감이 있었죠. 앉아가지고 아주 이제 말을 합니다. “내는 청송에서 왔고 명문교회 시무장로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이래이래 해서 만났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이렇게 주님이 나의 모든 거를 바꾸어 놓으시고… 그 많은 흉악범들을 어떻게 변화시켜주셨던가. 그리고 청송감호소가 어떻게 교회로 바꿔졌던가…”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그 얘기들을 쫘악~ 해줬죠. 다 마치고 가만히 표정을 보니까 이상합디다. 그 얼굴을 이렇게 보니까… 감동 제로. 흐으음~ 기쁜지 즐거운지 김이 팍 새버려요. 그래 가만히 생각하니까 어? 이거 봐라. 지가 아무리 감동을 안 받아도, 일반적으로 놓고 보더라도 보안계장이 그렇게 뜨겁게 열심히 이야기 하면은 감동이 없어도 사형수는 체면상으로도 감동받은 척 이야~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쏙으로 말이죠. 더 앙심을 품고 얼굴 표정을 따-악 굳히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전도하다가 열 받아 본 적 있죠? 그렇죠. 어떨 때는 전도하다가 열 되게 받혀요. 제가요. 되게 웃기는 실패담을 하나 얘기해 드릴게요. 청송감호소에서 그 초창기에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너무나 좋십니다. 하나님이 그냥 을매나 좋은지 누구한테 전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막 하나님을 전하고 싶은 거라. 그래서 제가 평상시 애끼던 재소자들을 몇 명 쫙 앉혀놓고 침을 튀겨가며 간증을 했습니다. 그래 놓고 이제 “결론적으로 느네들 다 하나님을 믿어야 돼! 알았어?!”“예!” ”너도 믿지?””예!””너도!” “예!”그 다음 너도! “어…어…저는 아아안…믿습니다.””뭐? 왜 안 믿어!””저는 불도가 세서 안 믿습니다”아니

이놈 아가 불도가 세가 안 믿는대요. “야, 불도 다 필요 없어. 무조건 믿어야 돼. 알았어!”아니 막 이게 죽어도 안 믿겠대요.

“진짜!?” “예.” 와…진짜 안 믿겠대요. 그래서 퍽!“에라이, 싸가지 없는 놈아.”하고 싸대기를 왕복으로 막 갖다 때려버렸어요. 신나게 패놓고는 꼴도 보기 싫다 가라꼬. 그러고 며칠 지나서 내 집에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는데요. 내가 미친 짓을 한 거예요. ‘전도하다 우째 패노… 전도하다가 말 안 듣는다고 우야 사람을 패노…’ 와, 이게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하나님 얼굴에 먹칠했다 싶기도 해서 고민고민 하다가 인자 회개를 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를 불러 놓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래… 내가 미안하데이.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니는 죽어도 안 믿겠다카지. 욕심은 앞서지. 니는 내가 평상시 이쁘고 사랑했던 사람인데 도저히 안 믿겠다카니까 욕심이 받쳐가지고 때렸는데 마 미안하다. 잘못했다. 이해해라”그라고 울었죠 뭐. 우니까 한참 있다 어깨가 들썩들썩…하더니만 같이 어엉~엉 울어요. 그라더니 “엉엉…아이고 주임님…저도 예수 믿을게요…” 그래 너무너무 좋긴 좋은데 속으로 생각하니까“아이고 참, 빙신같은 거. 줘 터지지 말고 믿지. 괜히 터지고”

그래 이게 또 교도소 안이니까 그런 특수성이 있지. 여러분은 그라믄 안됩니데이. 경찰서 갑니다. 그렇게 전도하다 보면 막 열이 받치고 그러는데 그 날도 어김없이 도형이 때문에 열이 팍 받칩니더. 그런데 내가 속으로 ‘아, 내가 옛날 같은 그런 실수는 또 하면 안된디.’그라면서 억지로 참았죠. 그래도 분이 삭이지가 않아요. 자존심이 상했어요. 생각해 보세요. 구치소 안에서 보안계장하고 사형수는 하늘과 땅 차입니다. 무릎으로 실실 기어야 되는 놈이. 내가 이토록 피땀 흘리면서 한 시간 열강을 해도 표정하나 안 변하고 으으으음…하고 꼴아보니. 벌써 대적하고 있는 눈빛이에요. 그 영이 나한테 벌써. 그러니 제가 막 부글부글 끓죠. 그래서 하나 물었습니다. “도형아, 내가 하나 물어볼까? 니 말이야… 혹시 죽을 준비 됐나?”아~주 몬됐죠. 죽을 준비 됐나? 왜냐면 사형수들이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죽는다 소리거든요. 사형수들 앞에서는 교도관들도 죽음, 죽는다 소리 입 밖에도 안 꺼냅니다. 예의상. 근데 제가 바로 눈 앞에서 꺼낸 거에요. 그랬더니 안 그래도 굳은 얼굴이 더 시멘트마냥 푸악 굳어집니다. 내가 느끼기에 그나마 저하고 열려 있던 대화의 창이 철커덕 하고 셔터를 닫아뻐렸어요. 눈을 밑으로 내려 깔고 저를 쳐다보도 안 해요. 이야기도 안 할라 해. 그래 그 때부터 가만 생각하니까 ‘아, 또 내가 실수했구나. 또 이거하고 원수 만들면 안 된다. 어쨌든 내가 도형이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는데 붙들고 달래야겠다’ 싶어가 방향을 또 이제 바깠죠. “도형아. 니 내 얘기 잘 들어래이. 니만 사형수가 아니라. 따지고 보면 내도 사형수라. 그리고 내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태어날 때 이미 날 받아 논 사형수 아니냐. 날 때는 순서가 있어서 순서대로 태어났지만 갈 때는 순서가 있더냐. 갈 때는 하나님이 정해놓은 집행 날짜가 되면 남녀노소 안 가리고 너너너 집행 당해 가잖아. 그런 면으로 보면 니 기분 나빠할 거 없다. 니 어차피 예수 믿는 사람 아니냐. 너나 나나 예수 믿는데 죽음의 준비, 삶의 준비, 신앙의 준비 당연히 해야 될 거 아니냐. 그런 차원으로 내가 물었는 거니까 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고 내 말을 새겨 들어라.” 달랬죠. 근데 아무리 달래도 이 친구 표정은 완전히 똥 씹은 얼굴입니다. 꼴도 보기 싫다 이거야. 빨리 쫌 가줬음 좋겠다 이거지. 그래 제가 봐도 제가 눈치가 빠른데 오늘은 어떤 말로 얘를 꼬셔도 마음이 안 돌아오겠다 하는 확신이 섭니다. 그래서 결론은, 오늘 돌아가자. 작전상 후퇴를 하고 며칠 쫌 쉬었다가 마음 좀 가라앉고 나면 그 때 간지러 가면서 그 때 가서 얘기를 쫌 해야겠다 싶어서 등허리를 한번 툭툭 쳤죠. “도형아, 오늘은 내 간다. 다음에 보자이.” 딱 일어서서 갈라 카는데 제 마음에 부담이 확 하나 땡기는 거 있죠. 그래도 명색이 장로가~ 한 시간을 붙들고 하나님 얘기를 하다 기도도 안하고 간다는 건 쫌 모양이 영 너무 이상하다. 싶은 거에요. 근데 또 한 쪽 면에서는‘에이, 기도는 무슨 기도. 이런 놈한테! 무슨 기도!’ 이런 두 마음이 갈등을 잠시 일으킵니다. 기도할까, 말까. 그런데 그래도 다음을 생각해서 일단 모양을 갖춰놓는 게 낫겠다 싶어서 우선 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죠. 앉아서 도형이 손을 잡고 “도형아 우리 기도 한번 하자.” 하고 손을 딱 잡은 채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근데 감이 딱 잡히겠지마는 기도가 은혜롭게 당연히 안 되겠죠. 되겠습니까? 무슨 감동이 있겠습니까. 내도 짜증났는데. 스트레스 받치고 미운데. 앞에 이 친구는 내 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적대감마저 생기는 그런 상황이니 이걸 붙들고 기도를 해도 대충대충 입으로, 형식적으로 때우는 그런 기도입니다. 빨리 때우고 가버릴라꼬.“하나님 아버지, 우리 도형이에게 은혜를 주시고…”몇 마디를 하는데 근데 그 순간 이상한 걸 느낍니다. 아무리 믿음 없이, 아무리 대충대충 하는 기도라 하더라도 그래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0.1%라도 뭔가 와 닿는 느낌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근데요. 이게 감이 전~혀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어떤 이런 벽 앞에 딱 붙어 서서 기도하는 기분이라. 막막하게. 쇠 떵어리가 머리 위에 천근머리가 짓누르는 기분. 아주 막 땁땁하죠. 그거 뿐이 아닙니다. 쪼끔 지났는데 제 등허리에 송충이나 뱀이 엉금엉금 기 댕기는 그런 막 스물스물~하고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야릇한 기분입니다. 그러니 입으로는 기도하면서 속으로 ‘뭐 이런 게 있노?’싶어요. 그래 하도 이상해서 순식간에 눈을 딱 떴죠. 근데요. 그 순간 딱 눈을 떴는데… 도형이 눈동자하고 땡그랑 부딪쳐 버렸어요.눈동자끼리 딱 부딪친 거에요! 딱 뜨니까 이 친구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꼴아 보고 있는 기라. 을마나 놀랬는지 얼른 깜았지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간증이니까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지 그 때 전 죽는 줄 알았어요. 챙피 중 제일 견디기 힘든 게 영적 챙피 아닙니까. 그렇죠? 영적으로 무안 당하고 나면요. 그건 몬 삽니다. 그런데 쪼금 전까지만 해도 폼 잡고 하~ 내가 뭐,뭐, 교회 장로고 우째 하나님을 만났고, 청송감호소가 우쨌고, 조셰형이가 어쨌고 막 신나게 폼은 다 잡고, 또 일어나 갈라 카다가는 기도 한번 하자더니 기도하다가 초등학생도 안 하는 짓을 하다 들켜 뻐렸으니. 이건 뭐 스타일은 다 망가져 뻐리고 체면은 다 박살 나 버렸어요. 그 짧은 순간에 제 마음이 완전히 불덩거리같이 화닥거립니다. 챙피하죠. 부끄럽죠. 성경적으로 표현하자면은 어, 심히 쪽 팔리고 쪽 팔렸더라… 미칠 지경입니다. 말이 안돼 막. 이 말 저 말 막 헷갈려가 말이 안 나옵니다. 그 당황하고 헷갈리는 가운데서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무슨 언어가 연결돼야 하는데 가장 간단한 언어 체계가 다 깨져 뻐렸어요. 너무 챙피스럽고 당황하니까. ‘아버지, 주여, 하나님’막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막 헷갈립니다. 근데 그 짧은 순간 속인데도요. 성령께서는 저를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내 마음을 딱 건드렸는데 느껴집니다.‘그 자리에 꿇어 앉아라. 땅바닥에 내려 앉아 꿇어 앉아서 기도해라.’이런 감동이 탁 치고 올라오는데 제가 이거는 뭐 딴 생각을 가질 여유가 없죠. 너무 답답하고 황당하니까. 그러니 의자에 앉아있다가 그 대로 바닥에 내려와서 도형이를 잡은 채로 무릎을 딱 꿇게 됐죠. 근데요. 무릎이 땅바닥에 닿는 그 순간에! 그게 이제 기적입니다. 무릎이 땅바닥에 딱 대이는 순간, 불과0.1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답답하고 챙피스럽고 황당한 기분이 안개같이 싸악 사라지면서 바로 그 순간 제 마음에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평안이, 그 모든 게 다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이 촥 몰려오는데 와…하는 바로 그 찰납니다. 두 번째로 평생 처음 당해보는 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아, 참 놀랬어요.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이 도형이. 사형수의 이 영혼 아니면 그의 어떤 내면, 심적 상태가 제게 탁 전달되어 옵니다. 와, 희한하대요. 그 마음이요. 제게 그냥 알게 되는데, 그냥 터프한 사나이. 세상에… 그래 강한 사나이. 대창으로 찔러도 피 한 빵울 안 날 것 같은 징그럽고 흉측한 살인범. 그렇게 알아왔던 사형수 세계의 대부. 근데 그 도형이가 알고 보니까 그거는 다 껍데기였어요. 껍데기. 한 꺼풀만 들춰 보니까 어떻게 그렇게 통곡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울고 싶은 마음으로 그냥 완전히 농축돼가 있어요. 강해요? 아니요. 완-전히 해삼같이 흐물흐물 흐물 늘어져있고 찢어지고 늘어지고… 말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사나이의 영혼이 저에게 느껴지는 겁니다. 바로 이거구나 싶으니까는 1초 전까지 그렇게 밉고 짜증스럽던 그 친구가 바로 그 순간에 너무 불쌍한 영혼으로 바꿔지기 시작했어요. 이것 저것 생각할 여유도 없이 꿇어앉은 그 상태로 ‘아, 도형이가 이랬구나. 이게 도형이의 진실이고 내면이구나.’이게 깨달아지자 마자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집니다.

아, 하나님…이 불쌍한 영혼을 우짜시렵니까… 이 영혼을 살려 주십시오. 이 영혼을 도와주십시오… 그 때부터 막 울면서 통곡을 시작해 버렸습니다. 근데 그 때부터 문제가 심각해 졌습니다. 도형이가 이제 깝깝해져 버렸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하게 폼 잡고, 오 만가지 폼은 다 잡고 뭐 기도하자 캐놓고 죽을 준비 됐나 했다가 기도하자 했다가 또 눈 떴다가 들켰다가 별 짓을 다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 앞에 무릎을 떡 꿇고 앉아서 우니까 이게 꼴이 이상해 진 거에요. 앉아 있으니 답답합니다. 지나가는 직원들이 보죠? 보니까 사형수가 꿇어앉아야 하는데 이 사형수는 쇼파에 떡 앉아있고 보안계장은 앞에 죄인처럼 꿇어 앉아가 찔찔 울고… 도형이가 도망 갈라니 손은 붙잡혔지. 제가 놔 줬겠습니까. 그러니 도망도 못 가고 그냥 앉아 있을라니 답답하고. 그래 꿈틀꿈틀 하더니만 제일 좋은 게 지도 똑 같은 모양으로 있어야 편하니까 지도 그만 앉습디다. 무릎을 꿇고 똑같이 마주보고 앉는데 한 5분쯤 지났을까요. 어깨가 들먹들먹 거리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그냥 하나님…하나님…하고 우는데 제 감각이 얘가 어깨가 들먹거리는 거 같애요. 어? 싶어 살짝 눈 떠가 컨닝하고 눈 감고 울다 찔끔 쳐다보고 그 날 제가 컨닝 많이 했습니다. 또 쫌 있다 싹 보니까 도형이 눈이 뻘겋게 달아 올랐는데요. 이빨을 악물고 터져 나오는 통곡을 지 이를 꽉 물고 참고 있는 거예요. 저는 그게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 앞에서도 눈물 한 방울 안 보이고 가장 강한 사나이로, 가장 징그럽고 냉혈한 인간으로 그렇게 자부하며 살아온 자기 인생이 지금 와서 운다는 게 자기에게도 용납이 안돼. 그러니까 막 참고 있는 거에요. 참는데 내가 느끼기에 ‘니 오늘 몬 참는디. 하나님이 손 댔는데 니가 우째 참겠노…’막 확신이 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5분쯤 지나니까 결국 터집니다. 흐엉 터지는데 그 때부터 한번 터지니까 봇물입니다. 통곡을 하면서 제 목과 등허리를 끌어 안고 울기 시작합니다. 저도 그의 등허리를 끌어안고 같이 울었습니다. 둘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도형이가 눈물이 인제 쪼금 진정이 됩디다. 그러고 나서 도형이가 말합니다. ”하는데‘하나님, 참 기구합니다… 세상에 도와줄 게 없어서 죽는 걸 도와줍니까…’이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또 아픕니다. 어쨌거나 우리 도형이가 바로 그날을 기점으로 해서 드디어 변화가 되기 시작합니다. 도형이의 변화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그 때까지 감방 속에서 사형수는 무섭습니다. 얼마나 폼 잡고 군림하는지요. 사형수는 감방 속에서 진짜 무서운 존잽니다.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존재가 누굽니까. 죽기를 각오한 사람입니다. 그보다 무서운 사람 없습디다. 우리 애들이 그런 농담을 해요. 아빠, 눈 뜬 사람하고 장님하고 싸우면 꼭 장님이 이긴대요. 눈에 암 껏도 뵈는 게 없어서요. 무조건 이긴대요. 또 소방수하고 경찰하고 싸워도 소방수가 무조건 이긴대요. 물불을 안 가리고 싸우기 때문에.

그와 똑같이 목숨 내놓은 사람하고 안 그런 사람하고 싸우면요. 이길 방법이 없십니다. 그들이 사형수입니다. 그 중에 도형이는 대장입니다. 깜방 안에서 얼마나 무섭게 군림했겠습니까. 근데 어느 날 밖에 나가서 펑펑 울고 들어와가는 그 이튿날부터 하는 짓이 그저 풀 죽은 배추같이 앉아가지고 틈만 나면 질질 웁니다. 질질 울다가 성경 보다가 또 기도하다가… 또 창틀 붙잡고 찬송 부르다가 또 울다가… 그게 일입니다. 그러니 한 감방 속에 있는 재소자들이 오히려 더 겁이 나가지고 쳐다봅니다. 저러다 갑자기 더 해까닥 도는 거 아닌가 해가지고요. 근데 그 변화가 얼마나 무서운지요. 도형이는 성경책을 자기 가슴에서 떼어놓지를 않습니다. 꼭 끼고 다니다가 다른 사형수를 복도에서 만나면요. 옛날 같으면 “형님~”인사하면“어, 밥 잘 먹었어?”폼 잡던 이 친구들이거든요. 근데 다른 사형수가 “형님!”인사하면요. 도형이가 하는 첫 인사가 무조건 “야, 너 죽을 준비 해라!”죽을 준비 하래요. 만나는 사형수마다 죽을 준비… 처음엔 그 말에 다른 사형수들이 쇼크를 먹고 무슨 그런 농담을 하냐고 막 따지죠. 재수 없이 그런 말 한다고. 그러면요. 도형이가 “아니야…”그러면서 웁니다. 울면서 우리 죽을 준비 해야 돼…”하는 그 말에, 우리 교도관 집사님들이 한 달씩 붙들고 1대 1로 애를 먹어도 문이 열릴 듯 말 듯 했던 그들의 마음이 도형이가 울면서 하는 말 한마디에 삐거덕 삐거덕 문들이 다 열려서 기가 막힌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야간 근무를 하는데 법무부에서 대외비 공문이 발송돼 왔습니다. 열어 보니까 그 이튿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사형집행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8명이 집행되도록 명령이 왔는데 젤 첫 번째 순서에 윤도형이라는 이름이 딱 쓰여 있어요. 명단을 보는 순간에 제 다리가 바짝 얼어붙죠. 바짝 얼어 붙으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와, 하나님 정말 꼼꼼하시다… 하나님 정말 너무너무 세밀하고 정확하시구나… 우리 도형이의 마지막 날을 이미 다 정해놓으신 하나님께서 그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데도 전혀 준비되지 못한 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셔서 저 머나먼 청송 시골 땅에서 촌놈같이 살고 있는 못난 나 같은 거를 끄집어 내셔서 도형이하고 만나게 하시고, 이 모양 저 모양 대화하다가 ‘니 죽을 준비 됐나?’ 하는, 도저히 보통으로는 물어볼 수 없는 그 질문을 돈키호테같이 던지게 하시고 그걸 끈으로 해가지고 결국은 변화시키시고 준비된 가운데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가시는 구원의 완벽한 드라마 이걸 생각하니까 와, 정말 무섭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밀하게 역사하시나 싶은 게 가슴이 떨립니다. 근데 그 날 밤이 너무 짧아요. 뭐 이런 저런 생각에 젖을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우리 교도관들끼리 쭉 연락을 하고 ‘이제 큰일났다’ 내일 집행인데 어떻고 저떻고 의논을 합니다.

아침이 됐습니다. 40명 내지 50명 되는 직원들이 이미 차출이 돼서 사형 준비에 들어갔어요. 많은 준비들을 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교도관들은 다 모이니 11명입니다. 기독교 신우회 회원이 저를 포함해 11명인데 다 모여서 의논을 했습니다. 오늘 여러 형제들이 이 땅을 떠나 가는데 우리가 그냥 저들만 무서운 사형장에 던져 놓을 수는 없지 않느냐. 우리 같이 복음을 나누고 믿음의 형제들이 같이 들어가서 저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마지막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잘 보내줘야 안 되겠나… 우리가 지원 근무를 해서라도 들어가는 게 맞다… 결론을 내고 11명이 사형장에 찾아 갔습니다. 대한민국에 교도소가 42갠데요. 사형장은 다섯 군데밖에 없습니다. 서울구치소, 대전교도소, 광주교도소, 대구구치소, 부산구치소 이렇게 다섯 군데만 사형장이 있고 나머지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서울구치소 올라 와서야 처음으로,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그 날 사형장에 들어가보는 겁니다. 딱 들어가보니까요. 여기 교회처럼 꼭 같이 생겼어요. 요렇게 반원 모양에… 앞쪽 중간에는 3단으로 되어있고 중간에 소장님이 앉아있고, 여기 검사님들이 앉습니다. 그러고 법무부장관님이 앉아계시고 이쪽에는 부소장과 각 과장, 옆에는 의사들이 앉아있고요. 제일 오른쪽에는 맨 앞에 목사님, 그 뒤에 신부님, 그 뒤에 중님.ㅋㅋ 이렇게 각 종파 별로 종교 별로 앉아서 식을 치르게 됩니다. 사형수는 끌려 와서 어디 앉느냐면 요요요요 앞에(명당에 앉으셨네요) 앉은 다음 심문을 받습니다. 본인이 맞나 안 맞나 전부 다 확인을 한 뒤에 끝나고 나면 고 한 10미터 뒤에 밧줄이 추욱- 내려와 있습니다. 그럼 그 밧줄에 목이 딱 매이고 두건을 덮어 씌우면 뒤에 저 문 쪽에서 스위치를 딱 누릅니다. 그러면 밑에 있는 널빤지가 철커덕 하고 열려 버립니다. 그럼 목이 매인 채로 이미 지하실로 뚝 떨어져 허공에 매달린 채로 죽습니다. 그게 바로 사형장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끌려 나와서 터버억 터벅 걸어 오면서

인생 최후의 마지막 외쳐 부르는 이름이 어머니랍니다.

‘어머니이이!! 어머니이이이!!’목이 터져라고 어머니를

부르고 ‘엄마아아아, 엄마아!’엄마를 외치면서 사형장

까지 죽으러 온다는 겁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이 죽음입니다.

또 한 발자국 디디면 밧줄 밑입니다. 한 발짝만 더 가면

사형장입니다. 그러니 이 걸음을 빨리 걷질 못 한대요.

그래 천천히, 쫌 오래 살고 싶어서… ..요렇게

한 발 한 발 쉬면서 요렇게… 그나마도 어떤 사람들은요. 이렇게 걷다가 자기 고무신이나 운동화를 일부러 벗습니다. 일부러 벗고는 한참을 걷다가 옆에 있는 교도관을 툭툭 칩니다. “저 신발 벗어졌어요…”그래서 또 돌아서요. 돌아서서 신발 신으로 다시 갑니다. 천천히 똑같이, 왔던 걸음을 쫌 더 신발 핑계로 되돌아 가면서 고 시간 만큼 더 살아 보겠다고… 그냥 몸부림이죠. 처절한 몸부림. 제가 그 얘기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절대로 이 사형수들을 저승사자처럼 죽음으로 끌고 오는 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가 그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우리가 다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끝까지 그 걸음을 걸어 오면서 그들에게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기쁨을 계속 전해주고 그들에게 찬송가를 불러 주고 기도해 주고, 끝까지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면서 한 영혼이라도 악한 영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 예수 믿는 교도관들이 그 일을 해야 안 되겠나…. 이렇게 합의를 한 거에요. 그래서 우리 직원들을 보내게 됐어요. 제일 믿음 좋은 집사님 네 분을 골라 가지고 이 분들에게 인제 가서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면서 그 길을 와야 한다고 하고 보냈어요. 저는 이제 현장에서 왔다 갔다 감독을 해야 되니까요.

한 15분, 20분쯤 됐을까요. 저 지하실에서 사람 걸어오는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 옵니다. ‘아, 드디어 오는구나…’싶은데 그때부터 제 마음이 막 쿵닥쿵닥 거립니다. 이제 도형이가 죽는 겁니다. 생떼 같은 목숨이 제 눈앞에서 죽습니다. 두근두근 거리는데 갑자기 제 귀에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소리가 들려 옵니다. 계단을 쭉 올라 오는데 할렐루야~ 할렐루야~ 소리가 들려 오는데요. 그 때부터는 인자 참았던 눈물이 고마 줄줄줄 쏟아집니다. 저 혼자 그런 독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사형장이 대한민국에 생긴 이후로 여기까지 오는 이 무서운 길에 오늘처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면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를 몇 번이나 들어보셨습니까. 하나님… 오늘은 꼬오옥 은혜 주셔야 됩니다. 오늘 우리 도형이 꼬옥 살려주셔야 됩니다.”이게 마 내 기도에요. 한참을 그렇게 눈물을 찔찔 흘리면서 기도를 하는데 일행이 문을 열고 계단을 쭉 타고 올라 옵니다. 올라오는 그들을 보는 순간 제가 너무 놀라 뻐렸어요. 옆에 같이 올라오는 집사님들 얼굴이 사형수 얼굴이 돼가 있습니다. 전부 얼어 붙어 뻐렸어요. 전부 얼어 붙어버리고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잠시 후에 죽을 사형수가 하는 거에요. ‘할렐루야~ 할렐루야~’하면서 올라 옵니다. 상황이 완전 꺼꾸로 디비져 버린 거에요. 도형이가 자기 자리에 딱 앉습니다. 소장님과 인증 심문을 합니다.“윤도형 씨가 맞습니까”생년월일, 주소… 몇 마디를 이제 주고 받습니다. 와, 한 마디 흐트러짐 없이 또박또박 대답을 합니다. 인증 심문 절차가 끝나고 소장님께서 종이를 하나 꺼내 읽습니다. 이 종이에는 도형이가 저질렀던 끔찍한 죄들이 다 적혀 있습니다. 언제 누구를 죽이고, 언제 누구를 죽이고… 쭈우욱 내용이 있고 마지막에 몇 월 며칠 법무부장관 명령에 의하여 사형을 집행한다는 최종 선고문입니다. 그거를 소장님이 읽기 시작합니다. “사형수 윤도형은 천구백 몇 년 몇 월 몇 일…” 읽기 시작하는데 도형이가 뭔지 알았어요. 앉아 있다가 갑자기 우리 도형이가 손을 듭니다. “소장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아, 무엇입니까?”그러나 도형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예, 소장님… 지금 소장님께서 읽으시는 그 죄들 제가 다 지었습니다. 제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죄는 제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였습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 이와 같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늦었지만 제가 하나님을 믿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억도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8년 긴 세월 믿고 살다가 오늘 이렇게 아버지 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안 하시는 그 더러운 죄를 또 제 귀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용서받은 영혼 깨끗한 그대로 아버지 나라에 갈 수 있도록 제발 그 더러운 죄를 읽지 말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조리 있고 얼마나 따박따박 말을 잘 하는 지요. 예수를 안 믿는 소장님이신데도 도형이 말이 끝나자 마자 인간적으로 얼마나 감동을 받아 버렸는지 그만‘흐흐흑…’ 흐느낍니다. 소장님 얼굴 두 눈에 눈물이 핑 흐릅니다. 저 자신도 충격입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제 마음 속에 이상한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하, 이상하다… 이상하다… 아무리 이럴 수가 있나… 아무리 지가 은혜를 받았기로서니 죽음 앞에서 이럴 수가 있나… 도형이 지가 아무리 잘났기로서니 이럴 수가 없는데…’이 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제 마지막 예배, 임종예배를 드립니다. 둘러 선 저희들은 다 울었습니다. 아무리 울지 않으려고 해도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헤어지는 아쉬움에 울었죠, 육신으로는 이별하는 이 마지막 이별에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도 우시고 저희들도 둘러 서서 웁니다. 그런데 정작 죽을 사람은요. 울기는커녕 시간이 흘러 갈수록 그 얼굴이 점점 더 밝아지고 막 정말 해같이 빛나지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깁니다. 제가 이런 간증을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요. 쪼끔 의심을 하는 분들도 있어요. “진짭니까? 거 쫌 포장했는 거 아입니까? 장로님, 막 간증하려고 이렇게 멋지게 만들어낸 거 아입니까?” 저보고 묻습니다. 근데 그게 아닌 증거가 있지요. 왜냐하면은 이 간증은 제가 혼자 보고 들은 게 아니고 아까 말씀대로 수십 명의 직원들, 외부 인사들이 그 놀라운 현장을 눈을 부릅뜨고 같이 보고 들었습니다.

모든 예배가 끝났습니다. 도형이에게 묻습니다. “유언을 하시겠습니까””예, 하겠습니다”모든 사람들이 귀를 기울입니다. 저도 귀를 기울였지요. 무슨 유언을 할까… 도형이는요. 그 때 대학 들어간 딸이 있습니다. 딸이 그 때 대학에 입학했어요. 그리고 아내가 있고 부모님이 계십니다. 이 땅에 남은 한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가족들에게, 또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모두가 귀를 쫑긋 하고 듣습니다. 도형이가 마지막 유언을 합니다. “소장님, 검사님들, 그리고 부소장님과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제 마지막 유언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모두가 다 제가 믿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충격이지요. 전 그냥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어요. ‘야, 이 성경책 속에서 스데반 집사나 바울이나 베드로나. 이 정도 사람들한테서나 들어볼 거라 생각했던 죽음 앞에서의 위대한 신앙 고백이 딴 곳도 아닌 구치소 사형장 바닥에서, 딴 사람도 아닌 사형수 입에서…’ 죽음 앞에서의 마지막 신앙 고백이 아무 것도 필요 없고 여기 계신 모두가 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란다는 확고한 믿음의 내용을 남기고 그는 밧줄 밑으로 끌려 갔습니다. 목에 밧줄이 걸리우고 두건이 씌워졌습니다. 잠시 후면 이제 죽습니다. 모두가 다 뒤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안 쳐다 봅니다. 사형수를 보지 않고 다들 뒤를 돌기 시작해요. 나중에 듣고 보니까, 사람이 허공에 목 매달려 있는 걸 보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 모습이 눈만 감으면 어른어른 거리고 몇 달 동안 그냥 자꾸 보여서 정상적인 생활이 너무 힘들대요. 그래서 안 본답니다. 그래도 우짭니까. 우리 기독교, 신우회 회원들이, 우째 우리 마저 돌아 설 수가 있겠어요. 저희들은요. 손에 땀을 쥐고 그 밧줄을 사이에 두고 비잉- 둘러 서서 도형이를 바라보면서 다같이 손을 잡았어요. 그리고 마지막 모습을 쳐다봅니다. 손에 땀이 막 밀립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릴 지경입니다. 너무나 긴장되니까. 바로 그 때입니다. 그 순간 그 두건 속에서 조용하게 찬송가가 들립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이 찬송가가 울려 나옵니다. ‘야, 이럴 수가 있나. 목에 지금 밧줄이 걸려 가 있는데. 지금 5초 후에 죽을 지 1초 후에 죽을 지 모르는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찬송가를 부를 수가 있냐. 우리들도 못 부르는 찬송가를…’ 그 찬송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결국은 털커덕! … 찬송도 끝나고 모든 게 끝나버렸어요. 밧줄만 삐그덕- 삐그덕- 조용합니다. 모두가 다,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지요. 그 죽음의 소리가 모든 걸 다 삼켜 버렸어요. 도형이의 시체는 그 마지막 유언장대로 의사들에게 내 줬습니다. 도형이는 유언장을 그렇게 썼어요. ‘형이 집행되고 나면 내 눈과 신장과 모든 장기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두 무상으로 나누어 주고, 내 시체도 의과대학에 기증을 할 테니 해부실습 용으로 시신을 보내달라’그리고는 갔습니다.

도형이가 떠나가고 난 뒤에 그 때부터 저는 빈 자리에 앉아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도형이가 불쌍하거나 안 돼서가 아니고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이상하다. 죽음 앞에서 저토록 당당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도형이가 갔다… 그런데 나는? 만약 내가 지금 도형이 입장이 됐다면, 내가 지금 도형이 같이 밧줄에 매달려 죽는 자리에 와 있다면… 과연 도형이가 보여 준 저 놀라운 모습, 저 위대한 신앙 고백을 나는 남길 자신 있나?’내가 저보고 물었죠. 즉각 자신이 없습니다. 솔직히 진짜 자신이 없어요. 여러분들도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 보십시오. 그렇게 솔직히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자 마음이 휘청합니다. ‘그럼 사형수는 누구이며 장로는 누구인가. 윤도형이는 무엇이며 박효진이는 뭔가. 윤도형이의 신앙은 무엇이며 박효진 장로가 믿어 온 신앙은 뭔가. 지금까지 박효진 장로 니는 누구보다 성경도 많이 읽고 누구보다 기도 많이 하고 누구보다 전도 많이 했다 자부하고, 사형수 믿음 정도야 아주 우습게 보면서 높은 위치에 있다고 아주 막 자부해 왔는데 그러면, 가장 심각한 삶과 죽음이 딱 갈리는 밧줄 앞에서 사형수가 보인 이 엄청난 모습은 무엇이며 나의 이 한계는 뭔가.’이게 깨달아 지니까요. 와, 미치겠습니다. 그 때부터 내 자신이 막 고통스럽습니다. 제 마음 속에 지금껏 쌓여왔던 모든 교만이, 지금까지 가졌던 신앙의 탑, 내 삶의 탑들이 우르르르 금이 쩍쩍쩍 가면서 흔들흔들 무너지기 시작하는 걸 느낍니다. 안 무너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요. 도형이 뿐만이 아닙니다. 그 뒤를 따라오는 우리 사형수들의 모든 모습들이 한결같습니다. 그러니 이게 지금부터 진짜 기적입니다.

예수 믿는 네 명, 그러니까 도형이를 포함한 네 명이 차례차례 올라 옵니다. 하나같이 마찬가진데요. 얘는 믿음이 별로 없는데 괜찮겠나, 되겠나 싶은데 그건 내 생각이에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요. 한번 더 말씀 드립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빠짐이 없이 29명. 지금껏 예수 믿는 스물 아홉 명의 사형수가 이 땅을 떠나가는 걸 봤거든요. 정말 단 한 명도 떨거나, 두려워 하거나, 실족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다 해같이 밝은 모습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천국 가는 소망을 이야기하고 예수 믿고 죄사함 받은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자기의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주신 그 분을 너무너무 감사해 하면서 찬양하고 이 땅을 떠나 갑니다. 그 때부터 이제 충격입니다. 도형이는 성령의 불을 받았으니까 뭐 그렇다 치더라도! 이 아이들은 뭔가. 특히 네 번째로 올라 온 우리 태화는 제게 충격 중의 충격을 던져 버렸습니다. 태화는 스물 여섯 살짜리였습니다. 옛날 구로동 샛별 룸살롱 사건을 일으켰던 그 주범이었습니다. 스물 여섯 살. 근데 애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대리석으로 얼굴을 조각한 거 같애요. 윤곽이 아주 또렷~한 것이 도대체 저런 녀석이 어떻게 사형수가 됐을까 싶어요. 그랬던 녀석인데 한 가지 애석한 것은 그 녀석이 믿음이 별로 없어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 내가 봐도 전혀 거듭나지 못했다 싶을 정도로 아직까지 믿음이 별로 없었는데 그 날 집행장에 올라옵니다. 걱정스러웠습니다. 우리 교도관 집사님들이 처음에 도형이를 데리고 올 때는 그 분위기에 눌려 가지고 그렇게 쑥스러워 했지만은 도형이의 그 위대한 모습 앞에서 충격 받고 불을 받고 나니깐 그 때부터 집사님들이 막 불덩어리가 돼 버렸습니다. 무슨 부흥집회에 온 듯이 사형수들과 함께 찬양하면서 기도하면서 사형장을 들락날락 거립니다. 이제 태화가 올라올 차례인 거에요.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죠. 그런데 태화가 문을 열고 올라 오는데 저는 도형이보담도 더 큰 기적을 봅니다. 태화 얼굴에서 얼마나 그 화아아아아아아안한 빛이 나는지요. 저는 저 혼자만 본 줄 알았죠. 근데 안 믿는 직원들 그 사람들이 요즘도 저를 보면 그렇게 얘기합니다. “장로님, 그 때 태화 얼굴 지인짜 빛나대요!” 사람 얼굴에 어떻게 빛이 납니까. 근데 사람 얼굴에서도 빛이 납디다. 사람 얼굴에서 진짜 빛이 납디다. 성령으로 충만해 지니까요. 빛이 납니다. 그렇게 걱정했던 스물여섯 살 태화 얼굴에서 얼마나 광채가 나던지 그러면서‘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찬양을 하면서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요. 자기가 장로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만 꼭 좋게 얘기하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아주 나쁘게 얘기하는 거 아니냐 그런 오해를 하겠다 싶지만서도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이게 사실 그대로니까 어쩔 수 없어요. 증거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제가 쓴 책이 하나 있습니다.‘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인데 혹시 여러분 가지고 계신 분 있으면 꼭 한번 돌려 보십시오. 왜냐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사형장 간증밖에 해드릴 시간이 없지만 이 책에는 그 검은 청송 땅에서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기가 막히게 역사하시고 어떻게 그 많은 감호자들이 예수 앞으로 돌아 왔는지, 그 담장 속에서의 하나님 역사가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걸 읽으시면서 오늘 이 간증과 함께

여러분들이 완성을 시켜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 책을 읽으시기만 하면 모든 하나님의 역사가 완성되어질 겁니다. 꼬옥 돌려 돌려 가면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책에도 그들의 최후가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일부러 꾸며서 불신자들을 나쁘게 얘기했다면은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 저를 뜯어 물었을 거에요. 근데 아무리 조사해보고… 여러분, 진짜 조사까지 하대요. 어떤 종파에서는요. 진짜 이 간증이 맞나 안 맞나 그 현장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 자기 종교인 사람들 불러다 물어보고 확인까지 다 했어요. 그러나 사실이니까 방법이 없잖아요. 또 한 사람은 말입니다. 그 형장에 끌려 올라 왔는데 그나마 쫌 배짱이 있습니다. 벌벌 떨고 두려워하진 않습니다만 이렇게 말합니다. 8년 세월 너무 길었다고. 쫌 더 일찍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으면 좋았을 거라고. 8년은 내게 너무 긴 세월이어서 너무 힘들었다고 쫌 더 일찍 나를 죽여주는 게 나를 위한 배려였는지 모른다고. 뭐 그럴듯하게 말은 합니다. 그는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혀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습니다. 신앙에 대한 고백은 0.1%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이야기는 하나또 없습니다. 그저 인간적인 말 몇 마디 하고는 마지막 소원이 담배 한 대 피우게 해 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담배피우는 직원 누가 담배를 하나 줬습니다. 그랬더니 담배를 그냥 뽈때기가 뿌라지도록 담배를 빨아 땡깁니다.‘포오오-옥’ 필터가 다 타가도록 담배 한 대 피우고 그 담배 연기가 폐에서 빠져 나가기도 전에 목이 매달려 죽습니다. 그게 끝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이죠. 멍…. 아까 그 예수 믿는 사람들의 죽음과는 완전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일곱 번째로 집행 당할 사람은 별명을 우리가 도사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인데 얼마나 불경도 많이 외우고 막 참선도 많이 해가지고 상당히 인격자였습니다. 누가 바늘로 푹 찔러도 한 5분쯤 있다가 아이야~ 할 정도로 인격이 수양된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그를 데리러 직원들이 갑니다. 우리끼리도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도사라고 해도 우리가 알거니와 천하 인간이 구원 얻을 이름은 오직 예수 이름 외에는 없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니 그냥 오지 말고 혹시나 모르니까… 성경 보면 십자가 한 쪽 편의 강도가 마지막 죽음 직전에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그 순간 구원을 얻더라.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구원 받기로 작정된 사람이라면, 만세 전부터 예정된 주의 백성이라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고 와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있다 올라오는데요. 전혀 아닙니다. 이 계단을 자기 발로 올라오지를 못합니다. 다리에 힘이 다 빠져 버렸으니까 이렇게 팔짱을 껴서 끌려 올라옵니다. 자기 발바닥으로 계단을 못 밟고 계단 턱에 터그덕 터그덕 발이 질질 끌려오는 거에요. 그러고 나서 밧줄을 봤죠. 밧줄을 보자 마자 첫 번째 반응이 ‘어흐흑 어흐흐으윽’그냥 주저 앉아 버립니다. 그러고는 바지 가랑이 사이로 오줌을 싸 버립니다. 줄줄줄. 자리에 앉혀 놨지요. 자기 자리에 앉아서 인증 심문을 하는데 몇 마디 주고 받다가, 우리가 느끼기에 이 사람이 갑자기 끈 떨어진 연이 돼 버렸어요. 연 날리다가 갑자기 끈이 툭 떨어져 버리면 고마 펄럭펄럭 지 멋대로 날듯이 묻지도 않는 말을 이 말 하고 저 말 하고 왔다 갔다 횡설수설하기 시작합니다. 몇 마디 횡설수설하다가는 또 그 때부터 원망합니다. “내 죽여놓고 잘사나 함 보자. 내 죽여놓고 잘사는가 함 보자!”이빨을 악 물고 원망합니다. 그러고 욕설로 이어집니다. “개새끼들, 나쁜 새끼들!”막 욕을 해댑니다. 소장님이 “조용하시오. 조용하시오”아무리 지적을 해도 소용없어요. 통제불능. 옆에 있는 직원들이 어깨를 흔들면서 입 다물라 조용히 하라 해도 안 됩니다. 벌써부터 넋이 나가버렸어요. 막 욕을 해댑니다. 소장님이 아무리 뭘 해도 안되니까 그냥 “땅땅땅, 바로 집행하시오.” 모든 절차 생략. 바로 집행입니다. 곧장 끌려가 목에 밧줄이 걸렸습니다. 떨어지기 직전까지도 “개새끼들!!!”욕 하다 그냥 가버렸습니다. …사형장 바닥에는요. 많은 직원들이, 소장님과 높은 양반들이 모두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똑 같은 사형장 속에서, 똑 같은 시간에, 똑 같은 사형수인데 어느 누구는 너무나 너무나 밝고 아름답고, 그 무서운 죽음마저도 훌쩍 뛰어넘어 기쁨으로 이 땅을 떠나가는 사형수가 있고, 어느 누구는 욕하고 울고 불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건 뭔가. 모두가 멍해집니다. 예수 안 믿는 직원들이 제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합니다. “계장님, 진짜 뭔가 있긴 있나 봐요…진짜 뭔가 있긴 있는가 봐요…”하나님을 모르니까 자기들끼리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근데 저는 그때도 걱정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용필이. 용필이가 제게는 너무너무 걱정입니다. 용필이는 예수를 믿는다고 기록이 돼있지만 실제로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용필이는 전혀 아닙니다. 적어도 도형이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서울 구치소의 골치투성이였습니다. 한번은 제가 용필이를 붙들고 꼬셨습니다. “용필아, 니가 우째 됐든 예수만 믿으면은 내 아는 사람 중에 돈 많은 사장 집사님이 하나 있는데 니하고 내가 탁 자매결연 맺어줄게. 그라믄 매주마다 너를 찾아와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도 막 사주고 영치금도 넣어주고 책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너를 최대한 도와 줄 테니까 니 어찌됐든 예수만 믿으라. 그람 내가 다 책임질게.”하니까 그게 상당히 쫌 땡겼던 가봐요. 눈을 딱 내리 깔드니만“계장님이 꼭 굳이 그래 말씀하신다면야 내가 고려해보지요.”그래서 “야야, 뭐 고려할 게 어딨노. 기왕 내친 김에 약속하자.”막 그렇게 억지로 해가지고 “좋습니다. 내 예수 믿을게요.”결국 약속을 받았어요. “그래, 약속하지? 약속. 도장 찍자! 도장. 싸인도 하자, 싸인도.”그날 제가 뛰쳐 나오면서 춤을 췄습니다. 여러분. 천하의 용필이가 어쨌든 지 입으로 예수 믿겠다고 했다 이것만 가지고 막 기쁘죠. 제가 뛰면서 신우회 회원들한테 막 자랑을 했습니다. 용필이 전도 했다꼬. 그랬더니 우리 직원들이 저보고 또 “역시, 장로님 캡!”이래 저도 막 어깨가 으쓱 올라갔죠. 그러고 나흘 만에 용필이가 죽는 거에요. 나흘 만에. 이 나흘 동안 제가 용필이에게 찾아가보지를 못했어요. 바쁘다고. ‘쫌 조용할 때 가서 복음을 제시하고 영접기도도 시키고 구원의 확신을 주고 고백을 받아야지’그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오늘,내일,사흘,나흘 바삐바삐 하다 보니까는 손도 못 대고 그날 올라오게 된 거에요. 후아…내 마음이 미칠 지경입니다. ‘하나님, 다만 몇 달만이라도 시간을 줘야 안 되겠습니까. 한 달 만이라도 시간을 주셔야지요. 이렇게 델꼬 가가 우야겠단 말입니까. 그러면 용필이는 구원의 백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요. 만약에 그렇다면은 하나님, 용필이가 지 입으로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약속 하나만 가지고라도 혹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으니까 그 약속 하나만 가지고라도 구원 쫌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별 마음이 다 듭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용필이는, 억지로라도 이렇게 예수 믿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델꼬 가시면 우얍니까…’별 생각 다 듭니다. 우리 집사님들도 용필이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았나 봐요. 오면서 용필이에게 기도해주고 복음 전하고 사영리를 가르쳐주고 아무리 했는데도 안 됐나 봐요. 올라오는 모습을 보는데 제가 봐도 용필이 혼이 다 빠졌습니다. 완전히 아닙니다. 얼굴이 말입니다. 어, 중풍 걸려가지고 와사증 걸린 사람처럼 입이 반쯤 돌아갔습니다. 얼굴이 그러니까 침이 막 줄줄줄 흘리고 눈이 다 풀려가지고 이렇게 끌려오고 있어요. 다리가 역시 인형다리 똑 매달린 것처럼 덜렁덜렁 끌려옵니다. 자리에 앉혀놨는데요. 역시나 인증 심문이 제대로 안 됩니다. 혼이 이미 다 나가버렸습니다. 옆에서 용필이를 보고 있으려니 딴 사람보다도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하… 그날 내가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용필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왔어야 되는 긴데… 그날 밤에 붙들고 결국 복음 전했으면 오늘 이 꼬라지는 안 만났을 낀데…’도저히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소장님이 이제 마지막으로 혹시 예배 드리겠냐고 묻습니다. “예!”우리 직원들이 예배 드리겠다고 움직입니다.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드릴 준비를 합니다. 제가 부랴부랴 성경을 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펴가지고 용필이 눈앞에 갖다 댔습니다. “용필아! 요기요기! 요한복음 1장 12절인데 요거

니 큰 소리로 몇 번 읽어봐래이!”하면서 용필이에게 줬죠. 근데 용필이가 받으려고 땡겼다가 놨다 땡겼다가 놨다 하면서 노력을 하는데도 못 받습니다. 극심한 공포 때문에 동공이 다 풀려버렸는데요. 초점이 안 맞아요. 그러니까 읽을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읽어지니까 성경책을 떤져버려요. 마음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큰일났다… 싶어서 용필이 귀에 대고 소리를 쳤습니다. “용필아, 내가 읽어줄게. 잘 들어라…”목이 터져라 외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목 터지게 외쳤습니다. 혹시나 듣다가라도, 용필이 귀에 이 소리가 들어가서 어찌면 한 줄기 구원과 머리털 하나라도 걸려서 구원받기를 간절히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계속 외치는데 아무리 해도 허사에요. 소 귀에 경읽기라. 이미 아무 소리도 감각이 없습니다. 이거 저거도 다 안 되니까 우리 소장님께서 결국 집행 명령을 합니다. “집행하시오…”기다렸다는 듯이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 오더니만 양쪽 팔을 딱 끼워서 벌떡 일으켜 세우고 밧줄 밑으로 뒷걸음질 해서 끌고 갑니다. 용필이가 뒤로 찔찔 끌려 가는데 바로 그 순간 제가 용필이 얼굴을 봤죠. 세상에… 사람 얼굴이 그렇게 무섭게 변할 수가 있습니까. 와아, 정말 놀랬습니다. 얼마나 무섭던지. 으으아아아악… 꼭 옛날에 영화, 엑소시스트 보면 귀신 덮어쓰니까 얼굴이 돌아 가더라구요. 그 모습이랑 똑 같은 걸 막 보는데 내 마음 속에 ‘아이고, 이거 지옥이구나! 지옥이다…’너무나 강한 확신이 드는데요. 지옥이라는 생각이 딱 들자마자 ‘그날 밤에 붙들고 앉아서 밤을 새워서라도 복음을 전했어야 될 거 아니냐. 기껏… 기껏 우리 손에 쥐었다가 어떻게 해보도 못하고 뺏겨 버렸다 또. 잡았다 뺏기니까 이게 또 더 아까운 거 있죠. 아 이거를 지옥으로 뺏겼다 싶으니까 가슴이 막 찢어질 거 같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했는데… 이게 우리 손에 다 왔는데 놓쳐뿌렸다 싶으니까 내 마음 속에 미칩니다 미쳐. ‘미친놈아. 이 나쁜 놈아. 니가 또 시간이 있을 줄 알았지! 니는 항상 또 시간이 있을 줄 알고 그랬지. 이래 나흘 만에 끝날 수도 있다… 나흘 만에 끝날 수도 있어…’하면서요 막. ‘아니야… 이틀 만에 끝날 수도 있지. 아니야. 어떨 때는 하루… 아니 한 시간 만에 끝날 수도 있겠다’우리는 늘 건강하게 살고 늘 만나니까 항상 시간이 있을 줄 알지만 여러분과 나의 만남이, 너와 나의 만남이 한 시간 후가 끝이 될 수도 있겠다 싶으니까요. 막 이 생각이 드니까 복음 전하는 게 너무너무 급한 거에요. 가슴 속에 아직도 믿지 않고 있는 나의 일가 친척들 얼굴이 막 다다닥 떠오릅니다. 그래… 이렇게 나흘 만에 끝날 수도 있는데… 미치겠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막연히 끌려가는 용필이만 쳐다보고 따라 갑니다. 그래 용필이가 밧줄 밑에 거의 다 갔죠. 그 때, 제 심령 속에서 ‘쿵. 그냥 보내면 안 된다! 절대로 그냥 보내선 안 돼. 어떤 일이 있어도 그냥 보내서는 안 돼.’ 이 마음이 푹푹푹 치고 올라옵니다. 그래,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 이 마음이 탁 치고 나오자 마자 뭐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후다다다닥 몇 걸음을 뛰어 뻐렸어요. 하나님이 뛰어 가도록 만드는 거에요. 뛰어 가서 그냥 밧줄 밑에 있는 우리 용필이를 끌어 안아버렸습니다. 불끈 끌어 안고 옆에 있는 직원한테 “어이, 이 팔 쫌 놔라. 니 팔 쫌 풀어봐라.” 하고 두 사람 팔을 풀었어요. 팔을 풀고 용필이를 끌어 안고는 삥글 돌아서서 소장님과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소장님,

시간을 쪼금만 주십시오. 소장님, 이대로 보낼 수가 없습니다. 소장님… 쪼끔만요. 쪼끔이면 됩니다. 예? 소장님… 예? 예?”아예 그냥 애원입니다. 몸부림이에요. “소장님 쫌만 주십시오. 예! 예?”한참 저를 보시다가 소장님이 뭐에 씌운 듯이 “아, 예예… 좋습니다”고개를 끄떡거려 줍니다.

죽음 밑에 갔던 이 형제를 다시 끌고 왔습니다. 이제 다시 앉혀놨는데 용필이는 이미 식물인간이 돼 뻐렸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지 정신이 밧줄 밑으로 끌려간다는 걸 느끼는 그 순간에 혼비백산해서 다 날라가 버리고 그냥 멍- 해 있어요. 저희 직원들이 다 나와서 둘러 쌌습니다. 용필이는 믿음도 없다, 용필이는 확신도 없다, 용필이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나 용필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 우리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용필이를 보내주자… 기도라도 하고 하나님께로 보내야 될 거 아니냐. 그래 우리 기도합시다!

이 말이 떨어지자 마자 우리 집사님들이 벌떼같이 용필이에게로 매달립니다. 우르르르 매달려서 그 때부터 집사님들 마음 속에 그 아픔과 고통이 폭발되어 나오지요. 어떤 집사님은 용필이 허리통을 붙들고 몸부림을 칩니다. 용필아아아아!!! 용필아!! 붙들고 웁니다. 어떤 집사님은 용필이 팔을 잡고 흔들면서 주여, 주여, 우리 용필이 좀 살려주십시오. 하나님께 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용필이 좀 살려주세요. 와글와글와글 깨구리들 울 듯이 막 용필이 하나 붙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저도 용필이의 머리를 제 가슴으로 끌어 안았지요. 그 때부터 제 마음 속에 오기가 생깁니다. ‘그래! 용필이 이제 우리끼다. 용필이 이제 죽어도 안 놔줄끼다. 오늘 밤을 새봐라. 절대 안 놔준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기 전에는 절대로 안 놔준다. 용필이 우리끼다. 인제는 마 절대로 안 놔줄끼다…’이 생각이 마음에 독같이 올라 옵니다. 그런데 이거는 제 욕심이지요. 현실적으로는 안 내줄 수가 없잖아요. 그 갈등 속에 미칩니다. 우리 집사님들도 벌써 목이 다 쉬었어요. 을마나 그 짧은 시간에 고함을 지르고 악을 썼든지 목이 다 쉽니다. 저도 탈진 상탭니다. 거의 탈진상태.

바로 그 때입니다. 바로 그 때, 퍼질고 앉아있던 용필이가 몸을 꿈뜰, 꿈틀, 꿈뜰… 일어섭니다. 그러더니만 일어서서 손을 반쯤 듭니다. 들더니만 눈을 감은 채로 첫 마디가 “주여, 주여…”요 두 마디를 외칩니다. 까암짝 놀라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마음 속에는 ‘아, 용필이가 완전히 헤까닥 돌았나보다.’그 무서운 공포 속에 집사님들이 붙들고 주여 주여 하고 몸부림을 치니까 거기에 도취돼가지고 자기도 그냥 같이 주여 주여 그러는 구나…

그랬지요. 그런데 한 10초쯤 더 지났는데 용필이가 딱 서서 자기 팔을 쫙 쳐 듭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고 눈을 감고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팍팍팍 쏟아지는데 그 때 비로소 용필이가 손을 들고 주여 주여-만 외치다가 “주여! 이 죄인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외치는 거에요. 할렐루야!

위대한 구원을 이루어주신 우리 하나님께 박수로 영광 돌립시다. 그 때부터 야, 뭔가 일이 생겼구나, 엄청난 기적이 생겼구나 싶은데 용필이가 그 때 끊임없이 외칩니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폭포 같은 눈물이 추욱 흐르는데 저희들은요. 기도를 하면서도 믿음이 얼마나 없는지 이런 응답이 있을 줄 몰랐어요. 기도를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이런 이런 일을 이루어달라고 기도조차 못 한거죠. 그냥 눈물로 기도했을 뿐인데 하나님이 이루신 일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용필이가 끊임없이 주여,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외치다가 자기 손으로 눈물을 닦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서 저희하고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와, 사람 얼굴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없어요. 아까만 해도 침을 흘리고 그렇게 무섭게 벌벌 떨더니 그런 얼굴은 온데 간데 없고요. 얼마나 환~~~~~~하고 복숭아빛처럼 발그래한 지 그 이쁜 얼굴이 제 손을 붙들고 고맙다고, 직원들 손을 잡고 감사하다고 막 인사를 합니다. 소장님은 너무 충격을 받아가 입을 반쯤 벌리고 용필이를 보고 있습니다. 용필이가 소장님을 봤어요. 갑자기 소장님 앞으로 몇 걸음 걸어 가더만은 너무나 공손하게 인사를 딱 합니다. 소장님은 막 놀래가지고 궁둥이를 반쯤 들고 인사를 받아요. 용필이가 이렇게 말 합니다. “소장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만수무강하십시오. 그리고 꼭 승진하셔서 우리 같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 많이 해 주십시오.” 그러고 인사를 꾸뻑 합니다. 소장님이 인사를 받다가 끝내 고개를 못 들고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허물어 집니다. 울기 시작합니다. 고개를 못 들고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그냥 우는 겁니다. 그래요, 지금까지 예수믿는 사람들이 보여줬던 그 엄청난 모습들에 충격, 또 충격, 또 충격을 받았던 소장님 앞에, 마지막 순간 처절하게 허물어가던 한 인간이 그렇게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가 되어서 자기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에게 최고의 축복을 다해주는 저 밝은 모습 앞에 소장님이 허물어져 삔 겁니다. 그리고는 이제 우리를 보고 용필이가 하직 인사를 합니다. 제가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용필이 손을 잡고 “용필아, 참 감사하다.그치? 고맙다.그치?”딱 그 때입니다. 갑자기 용필이 손 끝을 통해서 저는 백만 볼트가 넘는 엄청난 고전압을 느낍니다. 더더더덕 거리는데 와, 이게 뭐냐싶어 깜짝 놀라 보는 순간 용필이의 온 얼굴과 몸과 영혼 가운데 제가 보기에도 하나님의 그 성령이요. 충만에 충만, 충만하게 갖다 쏟아 붓고 계시는 걸 느꼈습니다. 할렐루야. 굉장했습니다. 진짜 대-단했습니다. 야, 그 성령 충만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잡고 있는 그 손을 통해서 제게 전달이 될 정도입니다. 그 순간 그 성령 충만을 이기지 못해서 또 용필이가 두 손을 듭니다. 그러고는 또 “주여, 이 죄인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얼굴이 확 달아올라 울면서 외칩니다. 주여, 주여, 감사합니다… 그때서야 우리 직원들이 삥 둘러서서 용필이를 향해 주님을 찬양하는 게 심령 속에 끓어 오릅니다. 용필이는 계속해서 “주여! 주여! 감사합니다!!” 를 외치는데요. 성령 충만이 거의 막 클라이막스에 닿아 가는 그게 느껴져요. 올라오는데 갑자기 우리 용필이가요. 주여! 주여! 그러다가는 “인애하신 구세주여”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딴 사람은 몰라도요. 저는요. 진짜 충격입니다. 왠 찬송가냐 용필이가… 내가 알기로 용필이는 찬송가의 찬도 모르는데 그가 찬송을 하고 있어요. 우와… 저는요. 지금도 천국가면 제일 만나보고 싶은 게 용필이에요. 또, 확인해볼 게 있어요. 과연 그 찬송을 어떻게 알았느냐. 진짜 꼭 알고 싶어요. 니가 평소 알고 있던 거냐. 아니면 성령께서 그 순간 니 입에 부르도록 넣어 주신 거냐. 알고 싶어요. “내 말 들으사…”한 두 번 부르고 우리가 다 같이 불렀습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따라 부르는데 그 성령 충만이 용필이에게 극에 달했나봐요. 용필이가 몸을 둥실 거리더니마는 그 기쁜 표정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얼마나 기쁜지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그 춤 속에 우리 교도관 11명도 그 죽음의 밧줄 밑에서 한 명의 사형수와 11명의 교도관들이 손을 높이 쳐들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고 찬양을 합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그 춤은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 하거나 비웃지 못하는 놀랍고 놀라운 주님의 역사였습니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337장 우리 한 번 불러볼까요? 용필이를 생각하면서. 주님을 생각하면서…(찬송) 할렐루야.

어느 누구도 그 찬송가 춤 앞에서 비웃지 못했습니다. 평상시 예수 믿는 사람을 그렇게 놀리고 핍박하던 직원들마저도 그 많은 숫자가 엄청난 모습으로 죽음의 밧줄 앞에서 춤추며 찬양하는 그 모습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가눌 수가 없어서 꿇어 앉아요. 퍽퍽퍽 우는 모습을 보았고 그 중 많은 숫자가 주님께로 돌아와 신실한 종들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와 너무나 놀라웠죠. 이제 그들도 갔고 용필이도 갔습니다. 다 떠나고 저 혼자 남았을 때, 그 때서야 제 마음 속에 위대한 세 번째 생일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응답해 주십니다. 지금껏 제가 그토록 짓눌려왔던, 나는 용필이보다 못한가, 나는 태화보다 못한가, 도형이보다도 경수보다도 못한가, 나는 그들보다도 더 못한 존재였던가. 그들보다 못한 믿음이었던가… 그 처절했던 내 고통을 주님께서 잠재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사형수들도 네가 보기에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신앙 고백을 남기고 초인적인 믿음을 보인 것 같지만 사실 저들도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믿는다 믿는다 했을 지라도 벌벌 떨고 오줌 싸고 욕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한계를 가진 인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형수였지만 저들이 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들에게 예수의 이름이 있었다…” 할렐루야! 예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 그 하나가, 우리 눈에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요.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를 믿는다는 그 한 마디, 그 말을 가지고 있는 순간 성경책에 약속된 대로, 예수 이름을 가진 자는 절대로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 사형수들과 함께하시니까. 우리 눈에는 일개 사형수일지 모르지만 이미 하나님 성령께서,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그 분께서, 사형수들의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든 것 되시고 누에고치처럼 저들을 뺑뺑 싸잡아 안으시고 인간의 모든 두려움, 공포를 다 제하시고 천국 소망으로 가득 채워 넣어주셨구나! 그들 마음 속에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그 기쁨과 행복을 석류알 같이 파파팍 담아 두셔서 우리 눈에는 사형수라도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힌 구원의 백성이었구나!

그렇구나… 그 때부터 제 마음 속에는 ‘나도 할 수 있구나, 내 인간 박효진 장로로서는 죽어도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내게도 예수의 이름이 있고, 나도 예수를 믿어 성령께서 내가 어떤 위험한 순간 속에 들어간다 할 지라도 끝까지 붙드시고, 저 사형수들을 붙잡아 주신 그 능력으로 나를 붙드시고 위대한 구원 속으로 날 인도해 주시겠구나.’이게 확실히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이 한 마디가 그토록 소중했던가. 예수님이라는 말 한 마디가 이토록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던가! 세상 사는 사람은 그저 주일날 어디 갑니까 하면 나 예수 믿습니다. 교회 갑니다. 하고 겉으로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 한 마디 같지만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이 한 마디에 이토록 놀라운 역사가, 사형수까지도 이렇게 징그럽고 무서운 살인죄를 저질렀던 그들도 끝까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사형장에까지라도 찾아오셔서 그들을 구원해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도 오늘 선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교회에도 선포가 되었습니다. 제가 책을 읽다보니까 옛날 로마시대 때는 예수 믿는 죄 때문에 남녀노소 전부다 붙잡혀서 말뚝에 꽁꽁 묶어놓고 며칠씩 굶긴 사자를 풀어놓으면 그 사자들이 다리를 뜯어 먹고 내장을 파 내 먹고 머리를 먹고 팔을

뜯어 먹는 그 처참한 상황, 그 속에서도 단 한 명도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지 아니하고 모두가 천사 같은 얼굴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찬송하며 죽어갔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때는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에이, 이건 그래도 쫌 너무 심했다. 아무리 믿음이 좋기로서니 우째 사자가 자기 눈 앞에서 퍽 뛰어 들어가지고 자기 허벅다리를 뜯어가 아그작아그작 먹는데 그 가운데 어떻게 할렐루야~ 아멘~ 에이, 그거는 쫌 너무 심했다.

그건 좀 과장이다.’이래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사형장에서 해답이 주어졌습니다. 그렇구나. 그 순교자들. 우리 눈에는 너무나 두려울 것 같지만 이미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 성령께서 그들 순교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꼬옥 붙드셔서 그들 마음 속에 있는 인간적인 모든 약함을 전부 다 빼내시고 하늘의 완벽한 것들로 채우셔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과 능력으로 아픔과 고통도 모두 차단시키니까 주님의 그 전능하신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그 역사가 가능했고, 그게 사형장에서 우리들에게 주어졌구나. 그 때부터 제가 눈을 떴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지금껏 잘났다 하면서 살아 온 게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내가 믿음을 가졌다 해도 벌벌 떨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인데, 내가 바로 사형수인데. 정말 모든 걸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셨구나… 성령 안에서만 나의 존재가 가치 있어 지는 거구나. 하나님 성령 안에서만 나의 믿음이 존재하는 거고, 내가 성령 안에 있을 때 예수 이름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싶은 게요. 그래, 사형수가 알면 얼마나 알겠노. 사형수가 가졌으면 뭘 얼마나 가졌겠노. 사형수가 잘났으면 뭐 얼마나 잘났겠노. 내 한평생 사는 날 동안 하나님 앞에 나가는 그 날까지 내 어떤 순간도 바닥을 엉금엉금 기면서, 사형수라는 사실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지.

아침에 눈 뜨면 내 눈 앞에 덜렁거리는 밧줄을 바라보면서‘주님, 오늘도 이 밧줄 앞에서 또 하루를 삽니다. 주님, 오늘도 한 시간 한 시간 부끄럽지 않은 한 시간을 살게 해 주십시오…’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주님, 하룻밤 또 주님께 기도합니다. 오늘도 내 등 뒤에 밧줄이 놓여져 있는 걸 압니다. 주님, 오늘도 내 목에 밧줄을 걸지 않고 내 생명 또 하루 연장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도와 주십시오.’하며 매 순간 매 순간 밧줄 앞에 놓인 거에요. 예배당 들어갈 때는‘주님, 오늘도 죽으러 들어갑니다. 한 주간 지은 죄 때문에 이 곳에 죽으러 옵니다. 오늘도 강단에서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되는 구원의 말씀 속에 다시 한번 우리의 목에서 밧줄을 벗겨내고 다시 새생명이 되어 바깥으로 나가, 또 많은 사람들의 밧줄을 벗겨내는 그 일에 생애를 다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때부터 여러분과 함께 나눌 필생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모든 영광 올려 드립니다.

올림픽장로교회 박효진 장로 간증집회 첫째날 <영적 전쟁>

지난해 5월에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91세를 사시고 돌아가셨다. 슬프거나 울 겨를이 없었다. 매일 매일이 신비로웠고 아버지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너무 놀랍고 감동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데 뭐가 기쁘냐’고 하시는데, 내가 아는 한 우주에서 제일 안 맞는 분이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물과 기름처럼 생각도 다르고 만나면 싸우셨고 도란도란 마주보고 웃으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젊어서 아버지는 영혼이 자유로운 분이라 2,3달 집에 안 들어오신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어머니와 싸우셨다.그렇게 안 맞는데도 신기하게도 6남매를 낳았다.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가슴에 박힌 대못이 200개가 넘는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내가 아는 여자 중에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사셨고 불쌍한 인생을 사셨다. 그렇게 사시다 연세가 70세가 넘어가니 전세가 바뀌었다.

눈물의 기도, 하나님 앞에 간절히 몸부림친 결과 두 분이 교회를 나가게 되셨다. 제가 ‘예수님을 믿으셨으니까 아버지를 용서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세상 사람 다 용서해도 너희 아버지 용서 못한다’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고난의 20년을 사시다가 작년 2월부터 몸이 안좋아지셨다. 91세 노인이 고기를 끊으시고 일주일째 되니 완전히 말라서 힘들었던 생애를 끝내고 먼 죽음을 향한 여행을 떠나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시고 고소해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세상과 단절된 가운데 있지만 영은 살아 계셨다. 제가 다가가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하면 얼굴이 밝아졌고, 제 손을 잠시 잡으셨다가 5초면 힘이 없어서 손을 놓으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버지가 누우신 지) 10일이 지났는데 ‘너희 아버지가 참 불쌍하다, 저렇게 밥도 못 먹고 측은하다’고 하셨다. 평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가 아버지 침상 옆에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 갔다. 거의 하루 종일 아버지 곁을 안 떠나셨다. 끊임없이 얘기를 하시는데, ‘영감, 내가 참 못된 여자요. 내가 당신에게 너무 막말하고 못되게 했소. 나를 용서하시오’라고 하셨다. 그러면 아버지는 베갯머리가 젖을 정도로 우셨다. 아버지 어머니는 한 살 차이셨는데, 90 넘어서 러브스토리를 쓰셨다.

아버지가 자리에 누우신 지 38일째 되던 날, 어머니가 ‘내가 너희 아버지에게 미안하고 오늘 아버지 얼굴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난생 처음으로 영감, 내가 당신 사랑합니다. 난생 처음으로 사랑고백을 했다. 그랬더니 내 온몸이 불 타듯이 너무 놀랍고 황홀한 경험을 했다. 이렇게 좋은 게 사랑인 줄 알았으면 진작 사랑할 것 그랬다’며 하염없이 우셨다.

아버지는 아기처럼 밝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가족 누구도 운 적이 없다. 하나님의 손길이 너무 놀라웠다. 문상 온 분들이 초상집에 눈물도 없고 6남매가 기쁜 축제가 벌어진 것을 보고 놀라셨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금식 기도의 응답…’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라’

28년동안 수천 번 집회를 했다. 능력, 권세 별로 없습니다. 저는 솔직히 집회를 다니며 능력 받은 강사들, 손만 대면 병이 다 낫고 각양 은사를 가진 분들이 부럽다. 그래서 늘 기도한다. ‘하나님 저도 하나 주세요.’ 10년 넘게 기도해도 주지 않으신다. 안양의 갈멜살 기도원에 금식할 작정으로 올라갔다. 새벽 2시쯤 울면서 기도했다. 새벽 2시경에 10년 기도 끝에 응답을 받았다. 내 귀에 대고 누가 말하듯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교도소 구치소 안에 행하신 주님의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베푸시는 현장을 보면서 제 가슴에 불을 받았다. 이 집회에서 조그마한 성냥불을 나눠 줄 것이다. 작은 성냥불이라도 잘 받아 심령에 잘 보존하면 번지고 번져 등불을 이루고 산불을 이룰 수 있다.

우리 집은 예수 믿은 것이 기적이다.

우리 집은 일년 제사가 41번 드리는 종갓집이었다. 집에 사당이 있고 사당 제사가 한달에 두번씩이라 예수 믿는 분들 주일 돌아 오듯 제사가 돌아오는 가정이었다. 그런 제가 결혼을 했다. 나중에 보니 제 아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처녀 때 주님을 믿고 성령 체험을 했다. 결혼을 앞두고 예배를 빠지고 슬금슬금 빠지고 교회를 안 다니기 시작해, 저와 결혼할 때는 이미 ‘지옥 갑니다’ 생각하고 종갓집에 시집을 왔다.

결혼 한지 2년 후, 아내가 인근 교회 종소리에 잠이 깼다. 갑자기 처음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고 했다. 아내는 누워 있다가 혼자 이렇게 말했다. ‘주님 잘못 찾아 왔습니다. 저는 주님을 떠난 지 오래됐고 지옥 갈 결심하고 종갓집에 결혼을 왔습니다.’ 성령께서 터치하는 것을 느꼈고 계속 가슴이 울렁거려서 나중에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막았다고 한다. 교회 종소리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소리가 울려왔다. 난생 처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는 나를 떠났지만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다. 다시 돌아오라.’ 아내는 주님을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지옥 문 앞까지 따라 오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악착같은 은혜를 제 아내가 그때 깨달았다. 베갯잇이 다 젖도록 울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매일 어른들 드실 신선한 음식을 사러 시장에 가는 아내, 알고보니….

몇달이 지난 후 아버지, 어머니가 입만 열면 며느리 칭찬을 하셨다.

‘우리 집 며느리는 얼마나 착한데. 냉장고에는 어른들 드실 음식을 넣으면 안 됩니다. 아내는 ‘냉장고에 넣어 두면 신선도가 떨어져서 매일 시장에 가서 사와야 한다’며 시장에 가는 것처럼 하고 잠깐이라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던 건데, 뭣 모르고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셨다. ‘종갓집 종부가 교회에 가더라’ 하는 소문이 돌고 돌아 아버지 어머니에게 들어왔다. 두 분은 배신감에 넘어지셨다. 우리 문중이 ‘어떻게 하면 좋냐’를 놓고 모여 회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우리 부부가 피고인 석에 앉아 있고.. ‘자네가 믿는 예수를 버리든지 이혼을 하든지 결정해라.’ 아내는 ‘어머니 아버님 저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를 버리지 못합니다. 이혼도 못합니다.’ 그래서 매일 이혼 독촉을 받았다. ‘이러다가 다 죽겠다’ 싶어, ‘어떻게 하면 살릴까?’

고민을 하는데 길이 보였다. ‘제가 교회를 나가는 것’이 방법이었다. 제가 말씀을 드리자, 어버지 어머니가 충격을 받으셨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예수 믿는 병이 너무 깊어요. 제가 교회에 다녀서 확실한 비리를 찾겠습니다.’ 제가 아내에게도 거짓말로 ‘당신 혼자서 받는 고난을 눈뜨고 못 보겠어. 내가 방패가 되어줄 게.’ 라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2~3년 다니다가, 아내를 설득해서 교회를 나오게 해야지.’

하나님께 한번 붙잡히면 끝장이다. 절대 놔주지 않으신다.

아내 따라 다니는데, 교회가 얼마나 인심이 좋은지 저에게 집사를 하라고 하셨다. 누가 봐도 교회 안에서는 1등 집사, 그런데 제 심령 속에는 9년이 될 때까지도 0.001초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에 대해 눈을 못 떴다. 아무리 믿어보려고 몸부림을 쳐도 믿지 못했다. 없는데 믿는 것처럼 믿고 사는 존재 정도로 생각했다. 중고등부 교사로 봉사도 하고 집사로서 할 것은 다 한다. 그러나 교회 밖으로 나가면 마음껏 먹고 마시는 데 1등이다. 폭탄주 공장 공장장이, 체인스모커가 제 별명이었다. 노래방 가자고 하면 신나게 노는 데 1등이죠. 교회 안에서는 믿음의 집사로 칭찬 받고, 나가서는 세상의 동료들이 칭찬해 준다. ‘예수를 믿으려면 저렇게 믿어야 한다. 할일 다하고. 저렇게 교회를 열린 마음으로 다녀야 한다’고. 당시에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어깨가 올라간다. 내 기준으로 보니, ‘내가 맞지. 너무 열심히 믿는 사람은 지나쳐. 기도할 때마다 왜 우나. 왜 모든 걸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 감사가 왜 이렇게 많나. 너무 자기 합리화하고 사는 불쌍한 인생들. 저게 신앙인인가.’라고 생각했다.

말씀의 능력, 하루만에 그를 변화시켜

38세 되던 해, 성령께서 생각지도 못한 저를 찾아와, 말씀이 비수처럼 마음에 꽂혔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0.1초 보다 더 짧은 시간에 말씀이 저를 사로 잡는데, 제 지정의, 제 몸을 사로잡는데 튀어나온 말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네!’

술잔만 봐도 먹기 싫고 담배 연기가 들어와도 창자가 끊어지는 듯 했고 더러운 장소들이 지옥의 밑바닥 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단 하루 만에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다.

사형장에 대한 증인은 제가 마지막일 것 같다. 사형집행은 거의 이제 못한다. 세계적 추세가 그러하고 인권의 문제 때문에. 여러 제약을 받기 때문에.. 사형장에 관한 최후의 증인이 저입니다.

역사의 사생아 청송 감호소…질서와 규율은 바닥

제 인생이 달라졌다. 청송 감호소는 우리 역사상 가장 아팠던 시대에 잉태된 역사의 사생아다. 청송 감호소가 생기자 마자 징역 5년을 살았는데 안 내보낸다. 위험하니까 10년 사회보호를 부과하니, ‘끝났는데 왜 가둬 놓느냐’라고 불만이 쌓이고, 자포자기에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15~20년. 나가봤자 환갑 진갑이 넘는다. 나가 봤자 돈도 없고 가족도 없다. 전과 5범정도 되면 보통 교도소에서 날고 긴다. 그러나 청송감호소에서는 명함도 못 내놓는다.

가족들도 손사래를 친다. 관계를 단절하고 주민등록 말소하고, 이제 남은 건 분노와 증오와 버림 받음 밖에 없다. ‘사회가 우리를 버리지 않았냐’, ‘가족도 우리를 버렸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버렸다. 그때부터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을 위한 마음 마저 놓쳐버렸으니 짐승보다 못하다. 규율과 질서가 바닥이다. 교도관이 끌고 갈 법은 바닥. 힘의 균형이 역으로 간다. 그것을 보니 너무 위험하다 판단. 이대로 가다가는 담장 너머로. 누군가는 이 질서와 통제권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이것을 제가 앞장선 것이다. 누구도 그러지 못했다. 내가 죽더라도 해야겠다.

그때부터 그들과 싸웠다. 볼 때 마다 그들이 밉다. 조금만 그들의 죄를 이야기하면 아침을 드시기 힘들 정도로 징그러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연약한 여자들 상대로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인신매매 저질러 술집에 팔아 먹고 마약 하고…이런 놈들이다. 손에 몽둥이를 들고 그 나름대로의 명분에 사로 잡혀서 그 길을 달려갔다. 위험한 고비도 많이 넘겼다. 칼로 목을 찔리기도 했다.

저는 법이 허용하는 한 잔인하게 그들을 대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들이 제 옆에 오지 않는다. 제 아내도 제 곁에 오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거울을 보면 제 얼굴이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타인을 판단하며 산다. 꼭 무엇인가를 향해 쏘면, 그 곱하기 3배가 나에게 돌아온다. 이웃을 사랑하면 3배의 사랑이 저를 찾아옵니다. 이웃을 용서하면 3배의 용서가 나를 찾아온다. 상대를 판단하면 3배의 판단이 저를 찾아온다.

지옥에서 온 박 주임, 싸늘한 태양

흉악한 인간들, 암같은 인간들 미워하고 짓밟은 그 해악이 곱하기 3으로 제 인생을 찔러 왔다. 인생의 파탄이었다. 제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지옥에서 온 박 주임’, ‘싸늘한 태양’이 죄수들이 제게 붙인 별명이었다.

지금은 옛날 제 모습이 아무리 봐도 안 보인다. 이렇게 악을 쓰고 그들을 휘어잡은 제가 제가 제 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출근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죽여버리고 싶은 흉악범들이 주님이 저를 찾아오시고 은혜를 받은 후 한 사람 봐도 눈물이 나고 두 사람 봐도 눈물이 나고 이 눈물이 통제가 안된다. 눈물은 외부에서 오는 느낌이 제 내부를 자극해서 나는 것인데 길을 걸어가도 눈물이 줄줄 나고 밥을 먹는데 반찬 그릇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베갯머리가 젖어 있고 몇달 동안 눈물을 흘렸다. 날마다 눈물이 흘러 눈가가 따가웠다.

눈물 속에 떠오른 죄수의 얼굴

‘왜 저들을 두들겨 팼나’ 후회가 됐다. 알고 보니 저들은 들킨 도둑놈 너는 안 들킨 도둑놈. 차라리 들킨 도둑놈이 우리 보다 순수할 수 있다. 더 순박할 수 있다. 우리가 더 교활하고 거짓될 수 있다. 그 눈물 속에 가끔 죄수의 얼굴이 들어온다. 그리고 손이 모아지고 기도가 된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네요. 법을 뛰어넘어 저들을 너무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흉악범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게 일이 되었다.

하루는 눈물 속에 이영호가 떠올랐다. 최고 악질이었다. 사람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 무도했다. 판결문을 2장만 읽어도 구토가 날 정도의 인간이다. 그런데 그 녀석이 생각났다. ‘주님 제가 영호에게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기도를 하는데 평상시와 달랐다. 평상시에는 기도하면 마음이 평안해 지는데 그때는 이상하게 마음이 더 뒤틀리고 해결이 안됐다. 문득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혼자 기도할 게 아니고 영호를 찾아가 마주보고 사과해야겠다. 영호를 불러내자, 그가 얼굴에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왔다. 그의 손을 잡고 ‘너 얼마전에 나에게 두들겨 맞았지?’라고 물었다. 영호는 한참 동안 저를 보더니 ‘그런 적 없는데요’ 라고 거짓말을 한다. ‘너 얼마전에 담배 때문에 조사 받고 징벌 받았잖아’라고 하자, ‘징벌은 받았지만 주임님께 두드려 맞은 적은 없지요’라고 거짓말을 한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나님 알고 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미안하다 용서해라.’

우리 영혼은 성령과 엇박자

영호는 어쩔 줄 몰라서 내 눈만 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영호의 황당해 하는 눈빛과 몇 번 부딪혔다. 제 안에서 울리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여러분 안에서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말씀 만이 아니라 통곡하고 탄식하신다. 우리 안의 온갖 더러운 죄가 끊임없이 그 음성을 누르고, 교만과 아집이 자가 생산되고 있어 성령께서 아무리 탄식하시고 통곡하시고 책망하셔도 영적으로 감지가 안된다. 아무리 일류 연주자가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한다 해도 저 피아노 안이 온갖 더러운 것들로 채워져 있으면 자기 음을 내지 못하는데 여러분과 제가 저 악기보다 더 예민한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니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울고 계시는데 우리는 세상 것을 보고 낄낄 웃고 있는 게 우리의 한계다. 음악 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엇박자가 가장 연주에서 골치 아픈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인생이 엇박자 같다. 심령을 깨끗하게 정리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내 안에 깨달아져서 성령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너 무슨 용서를 그렇게 구하고 있니’

그날 영호의 손을 잡고 우는데 제 속에서 너무나 분명하고 뚜렷하게, ‘너 무슨 용서를 그렇게 구하고 있니. 꿇어 앉아.’라는 음성이 들렸다. 귀로 들은 음성보다 더 분명하고 또렷했다. 청천벽력 같이 그 음성이 들렸다. 그런데 제 자아가 제동을 걸었다.

‘여기서 어떻게 꿇어앉나. 신분의 차이, 제복의 차이가 어떤 것인데 어떻게 꿇어앉나.’

두 마음이 싸웠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존심이 걸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제가 그때 집사 9년차였다. 집사 9년차 동안 한번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없고 말씀에 귀 기울인 적도 없었지만 귓등으로 들었던 설교 제목이 생각났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죄수 앞에 무릎을 꿇자마자 강렬한 밝은 빛이…

드디어 마음이 꿇어앉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근처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3초 정도만 꿇어 앉으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내가 무릎 꿇고 용서 빌게 용서해라’ 하고는 무릎을 꿇었다. 제 원래 계획대로라면 1,2,3초 후에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무릎을 꿇자 마자 ‘꽝’하고 눈 앞에 밝은 빛이 비춰져 눈을 뜰 수 없었다. 쓰나미처럼 감당이 안되는 환희가 밀려 왔다. 부끄럽다는 생각도 없고 평생 이렇게 살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무릎 꿇고 2,3분이 지나서는 제 등과 목을 와락 끌어 안더니 통곡을 했다. ‘주임님, 저는 짐승 보다 못한 놈이요, 죽일 놈이요’ 저는 그러면 ‘아니다, 내가 죽일 놈이다’ 하며 서로 우겼다. 서로 ‘내가 죽일 놈이요’ 라고 우기며 사나이와 사나이가 땅 바닥에 끌어안고 울었다. 원수 중의 원수 그 둘이 가슴을 끌어 안고 운다. 그 동안의 증오와 살기가 눈 녹듯 녹아 내리고 그렇게 울면서도 신기하게 서로 대화가 됐다. 울다가 감동이 되어서 ‘영호야, 너 예수님이 너를 위해 돌아가신 거 아나?’ ‘네, 압니다.’ 가장 아름다운, 가장 멋있는 가장 충격적인 눈물이 그날 흘린 눈물이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울다가 주위를 보니 창문 가에 구경꾼이 바글바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청송감호소에 탑뉴스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예수님을 받아들인 영호와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친구가 된다. 자다가도 영호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오고, 찬양 중에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과 원수가 친구로 바뀐다’의 가사처럼, 지옥의 벼랑 끝에서 영호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하나님이 살아있는지 모르겠지만 영호가 바뀌는 것을 보니까 부인할 수 없었다.

아주 무서운 말이 여러분에게 전해졌다.

‘죄수 하나가 바뀌니 그의 바뀐 삶을 통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가로 짓는 기준이 된다. 여러분은 어떤가? ‘저 사람 보니까 교회 다닐만하구나’ 우리 표정 하나가 그런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우리가 중요한가. 과거는 다 털고 잊어버리고 오늘부터 새롭게 시동버튼을 누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영호는 나보다 눈물이 더 많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했던 용납의 눈물이 항상 베어있다. 또 아직도 예수 몰라 지옥 갈 형제들을 생각하며 운다. 그가 ‘우리 이제 인간답게 살아보자. 언제까지 짐승처럼 살 수는 없잖아. 박효진 주임도 예수 믿고 인간 됐다’라고 하면 대부분이 알았다고 영혼의 눈물 앞에 엎어 진다. 흉악범이 변화되면 100명의 죄수들을 변화시킨다. 그 흉악범의 눈물이 떨어진 곳마다 변화가 일어나 9개월 만에 1,600명이 예수를 영접했다.

제 생애의 가장 놀라운 부흥의 기적이 청송감호소에서 일어났다. 증오와 미움이 하늘을 찌르는 곳, 그곳의 영호와 흉악범들에게 예수님 이름이 떨어지자 마자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곳으로 변화됐다.

그들의 피맺힌 기도에 응답하셔서 청송감호소는 문을 닫고 청송 직업훈련소로 바뀌었다. 그 교도소에서 첨단 기술을 익혀서 사회로 내보내는 생명의 도장이 되었다. 청송감호소는 문을 닫았고 전국 교도소 마다 입버릇처럼 외치는 ‘무사고’의 가장 밑바닥에는 복음 밖에 없다. 저는 벼랑 끝의 선교사다. 마지막으로 저들을 붙들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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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장로/ 감옥안의 구원 파노라마

박효진 장로/ 서울 명문교회, 전 서울구치소 경비교도대 대대장

나는 술이 만취가 되서 탁자를 짚고 일어서려 했다. 그 때 구석에 있던 수족관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 빛 속에 고기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인다. 그 수족관에 볼을 댄 체로 안을 들여다 보니 세상에, 그 상황에서 눈물이 다 쏟아졌다. 만취된 가운데서도 눈물이 줄줄줄 쏟아졌다.

“고기야, 니는 내보다 낫네. 니는 나같은 고민도 없고 괴로움도 없지. 물 속에서 헤엄치고 살다가 때가 되서 죽으면 그 뿐이지. 나는 직장에서는 간부고, 교회가면 집사고, 집에 가면 남편이고 아빠고, 누가 봐도 그럴 듯해 보이는데 내 자신은 나를 잘 알잖아. 양파 껍데기보다 더 많은 껍질로 쌓여서 벗겨도 껍데기고, 또 벗겨도 껍데기고 마지막까지 벗겨내도 마침내 껍데기인 내 자신, 아내와 자식도 사랑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내 자신이 괴롭다.”

수족관을 붙들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직원들이 부축해서 나를 끌고 나왔다. 직원들은 아마 내가 실신한 줄 알았던 것 같다. 자기들끼리 이런 얘기를 했다.

“야, 이 박주임, 이거 완전히 갔다. 이제 술주정하다가 하다가 고기 붙들고 술주정을 하네.”

속으로 또 눈물이 나왔다. ‘아니다. 너희들은 모른다. 너희들은 내 마음을 모른다. 너희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냐?’

그 때가 86년도 말이었다. 집사 생활 만 8년 딱 차가던 시절, 교회를 다니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껍데기 같은 인생을 살며 방황하던 내 인생의 처량한 단면이다.

나는 교회 집사 생활을 통틀어서 구년했다. 구년…. 우습게도 집사 생활 9년 동안 한 번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꿈 속에서도 느껴보질 못했다. 그 9년 동안에 나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외면했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존재는 내게 있어서 상상 속의 하나님, 인간의 머리 속에 만들어 놓은 이념의 하나님, 종교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그래서 교리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이었다. 굳이 하나님에 대해서 논한다고 하면 우리 나라에 단군신화가 있듯이 이스라엘을 세운 건국신 여호와, 그 이스라엘의 건국신화가 우리 나라에 흘러 들어와 종교로 정착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인도에서 발상한 불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하나의 종교로 자리잡듯이, 이스라엘의 건국신화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기독교가 되었고 그 추종자가 많아지니 예배당이 많아진 것이 아니냐? 결국 법당과 교회당에 차이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일관된 나의 마음이었다. 집사 생활 벌써 9년이 될 때까지도 겉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어서 은혜로운 집사인 척, 하나님 잘 믿는 집사인 척 살았던 모습이다. 내가 그렇게 사니 자연스럽게 다른 성도들도 다 나같이 사는 줄 알았다.

‘저 사람도 실제로는 나하고 똑같이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교리상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마치 수학의 공리와 같이, 뭐,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없다?

당시에 다니던 직장은 경북 청송에 있는 청송감호소(구치소-재판을 받을 때까지의 미결수가 머무는 곳, 교도소-형이 확정된 사람이 형을 사는 곳, 감호소-상습적 전과자들의 보호 감호를 집행하는 곳)였다. 신앙이 없는데다 특수한 직장환경으로 인해 내 영혼이 황폐하던 시절이다.

초임간부 시절에 이곳에서 생활했는데, 와서 보니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눈빛이 보통이 넘었다. 나도 나름대로 배짱도 있다고 해서 들어왔지만 청송감호소에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일반 교도소에서는 전과 3-4범만 되도 큰소리를 뻥뻥친다. 대단한 존재다. 그런데 청송 감호소에 가면 별 3-4개는 현미경으로 찾아봐도 없을 지경이다. 5-6범 정도가 일반적이다. 대한민국의 전과자 중에서도 전과자들만 골라 놨으니까 5-6범 해봐야 교회로 말하면 초신자 정도 수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초급간부 생활을 한 것이다. 세상이 감당못할 사람들이라 날이면 날마다 사고를 쳤다. 지금도 잊지 못할 몇몇 재소자들이 있다.

초급 간부로서 처음 발령을 받아 갔을 때 독방(한 평이 채 되지 않는다)을 죽 돌아보던 중에 일어났던 일이다. 잠깐 독방에 대해 설명을 하면, 독방은 사고를 치고, 도저히 다른 사람과 융화하지 못하고 둘만 있어도 물고 뜯고 싸우는 성격 파탄자들, 인격 파산자들을 어쩔 수 없이 가둬 격리를 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곳은 거의 매일 난리가 났다.

이런 곳을 또 매일 순시하는 것이 나의 일과 중 하나였다. 그래도 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는 한다. 교도관과 수용자 간에 최소한의 예의는 있으니까. 그들은 누웠다가도 교도관들을 보면 일어나 앉아서 인사를 했다.

“갱생!”,

인사구호가 ‘새롭게 살자’는 뜻의 ‘갱생’이다. 이렇게 인사를 주고 받으며 중간 쯤 갔는데 한 사람이 일어나서 몸을 굽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나를 보고 당연히 ‘갱생’할 줄 알고 나도 미리 ‘갱…’하고 손을 올리다가 멈췄다. 보니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떡하니 앉아서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냥 그 곳을 지나치려 하다가 머릿 속에 그 잔상이 남았다. ‘조금 전에 얼핏 보았던 눈빛이 보통 눈빛이 아니다. 분명히 시비를 걸며 도전하는 눈빛이다.’

그대로 보아 넘길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서서 그 감방 앞에 섰더니 재소자가 아까보다 눈에 힘을 더 주고 노려보는 것이었다. 철창이 가로막혀 있으니까 나도 질세라 아랫배에 힘을 주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둘의 눈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보는데 감방 안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건방지게도 “뭘 보우?”라고 물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서 한다는 소리가 “너 본다, 왜?”였다.

나도 질세라 대답을 하자 이 때부터 눈싸움은 끝나고 말싸움이 벌어졌다. 티격태격하다가 욕은 재소자가 아니라 감독자인 내가 먼저하게 되었다.

내가 “나쁜 놈…운운.”하자 재소자가 “왜, 욕하냐?”며 덤볐다. 따라서 싸움은 마른 장작에 휘발류 뿌리고 불을 붙인 듯 달아 올랐다.

하나님을 알았던 때였다면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접근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나는 힘의 논리가 최선의 방법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누가 더 강하냐? 누가 더 욕을 해도 더 세게 하냐?’라는 식으로 제압하려 한 것이다.

그 친구는 감독자인 내가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열이 받아서 자기 머리를 벽에 받기 시작하는데 역도산이 박치기 하듯 그냥 막, ‘쾅, 쾅’ 받아댔다. 그것도 잠시 “나, 죽는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와서 말리기 시작했다. 그 재소자와 나를 말릴 때에야 비로소 나는 못이기는 척하고 돌아오려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재소자를 붙들고 직원들이 사정을 하는 게 내 귀를 자극했다.

“야, 야, 제발 니가 좀 참아라. 저 주임이 온 지 얼마 안 되서 아무것도 모른다.”

아 이게 무슨 거꾸로 된 일인가? 뭐 이런 동네가 다 있나. 나 보고는 참으란 소리 한 마디도 안하고 그 길길이 뛰는 전과 6범 보고 참으라고 하다니….

보안과에 앉아서 하도 어이없어 나름대로 분을 삭이고 있는데 비상벨이 울렸다. 불길하게도 위치를 보니 조금 전 싸웠던 그 감방이다. 기동 타격대와 함께 출동을 했다. 달려가 보니 그새 이 녀석이 바느실로 자기 눈을 꿰매 버린 상태였다. 그것도 잘 보이라고 까만 실로 꿰맸다. 일부러인 듯했다. 그리고는 피를 똑똑 흘리고 앉아 있었다. 본격적인 길들이기를 시작한 것만 같았다.

나는 나름대로 흉악범들이 눈 꿰멘다는 얘기는 듣기는 들었지만 보기는 처음이었다. 사지가 덜덜 떨려왔다. 속에는 매스꺼운게 막 올라오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감독자였다. 감독자답게 그를 말리고 점잖게 다그쳤다. 그러자 이 친구 하는 말이 “세상 꼴도 보기 싫고 당신 꼴도 보기 싫어 꿰맸시다”는 거였다. 나도 질 수 없어서 한마디 덧붙였다.

“임마, 아무리 사람이 꼴 보기 싫어도 니 눈깔을 니가 꿰매냐?.”

“화 나니까 자꾸 말 시키면 입도 꿰맬거요.!”

나는 속으로 ‘설마 입이야 꿰매겠냐’ 싶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 소리가 떨어지자 마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 대(竹)못을 딱, 집어 들었다. 보아하니 대나무 젓가락을 부러뜨려서 화장실 시멘트 바닥에 갈고 갈아 초대형 이쑤시게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걸 갖고는 입을 잡고 산적 꿰듯이 푹 찌르니 볼 것도 없이 쑥 들어가 버렸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했다. 그 안에서 사람보기 싫다고 자기 눈 꿰매고, 말하기 싫다고 자기 입 찌르는 건 보통이었다. 이러니 직원들이 와서 오히려 나를 타박을 놓는다.

“주임님, 왜 자꾸 건드려서 사고치게 만듭니까? 이리 와 계세요.”

나를 한쪽으로 몰아 놓고는 또 그 재소자에게 사정을 했다.

“야, 야 니가 좀 참아라. 왜 그러냐?”

수인들과의 전쟁

그런데 이 재소자의 예는 주일학교 수준 밖에 안 되었으니 얼마나 기가막힌 노릇인가. 중고등부 수준 쯤 되면 마구 배를 짼다. 칼이나 유리로, 수틀렸다 하면 째는 것이다. 북북, 다 찢어서 피범벅을 만들었다. 그나마 기술껏 껍데기만 째면 다행인데 어떤 사람들은 복강까지 째버린다. 그러면 속의 내용물이 삐죽 삐죽 나온다. 이쯤되면 보통사람은 뒤로 자빠질 텐데 눈도 깜짝 안하고 자기 손으로 ‘들어가거라. 들어가거라’할 정도다.

또 어떤 재소자는 형광등을 깨서 혓바닥을 가로 세로로 얼마나 썰었는지 걸레 쪽을 다 만들었다. 너덜너덜한 채로 병원에 끌고 가면 봉합수술만 4-5시간 걸렸다. 나중에 다 낫고 난 뒤에 물었다.

“야, 니는 남보다 살도 많은데 허벅지나, 엉덩이를 째지, 하필 혀를 째냐?”

그는 내 얘기를 듣자 “히 히” 웃으면서 말했다.

“주임님, 뭐 잘 모르시는구먼요. 의사들이 제일 깁기 힘든 데가 어딘 줄 알아요? 혀죠. 해면체라 바늘도 잘 안들어가고 가위도 잘 안 짚이고 물컹 물컹해서 의사들이 제일 애 먹는데가 혀예요. 내가 이왕 째는거. 누군지 몰라도 의사 거 애먹일라고 혓바닥을 쨌어요.”

이러니 신앙도 없었던 내게는 그들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미웠겠는가? 1년 가까운 기간은 그들과 전쟁이었다. 나도 기강을 잡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그대로 두면 사고치고 범죄하니까 제압을 해야 되는데 방법은 딴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난폭한 인간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내가 더 난폭해져야 한다. 저 잔인한 인간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잔인해져야 하고 흉폭한 인간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내가 더 흉폭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게는 국가가 입혀 준 제복이 있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사용권이 있으니까 두들겨 잡는다. 한 일이 뭐냐? 너희들이.’

인정사정 볼 것 없었다. 한평생 남들이 피땀 흘려 벌어놓은 돈, 밤에 들어가서 목에 칼대고 온 가족들을 위협해서 재물을 다 뺏아서 집을 패가망신시키고,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부녀자를 윤간해서 가정을 파괴하고, 봉고차에 처자들을 납치해서 사창가에 팔고, 이렇게 살아오며 온갖 행악을 자행한 이 인간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 이들은 법이 좋아서 살려놨지 인간이 아니다. 이들은 쓰레기로 말하면 재활용도 하지 못할 폐품이다라며 늘 그렇게 바라보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미워하고 그래서 늘 그러한 기준점을 갖고 있다가 걸렸다 하면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 때에 따라서는 그 한계를 벗어 나서도 그들을 다스리고, 징계하고 징치하고 살았다.

그러자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직원들과 재소자들은 그대로 전면 전쟁일 뿐이었다. 거의 매일 전쟁양상이었다. 난동, 폭동, 인질, 죽음을 각오하고 그들과 맞붙어 싸우는 것이었다. 그 일 년 동안은 완전히 나도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위안되는 것은 있었다. ‘나는 국가의 공권력을 확립하기 위해서 의로운 싸움을 한다. 나는 정의다. 인간도 아닌 것들을 잡아야 하는 정의다’면서 하등의 양심의 가책이나 양심의 아픔이 없었다.

일 년 동안을 그렇게 미친 듯이 두드려 잡다 보니 공권력을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결국 질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딱 잡혔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바로 나의 정신이 황폐해져 간 것이다.

황무지에서의 만남

어느날 집에서 아내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어린 남매는 자고 있었다.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세상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바람같은 것이 마음을 휙 훑고 지나갔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내인 것은 틀림없지만 아무 정감도, 아무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부간의 정, 끈끈한 정이 0.1%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남매에 대한 감정도 아무 사랑도 없이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고 삭막하기만 했다.

처음 며칠 간은 이렇게 생각을 했다. ‘내가 요즘, 직장에서 많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시적으로 찾아오는 현상이겠지. 며칠 지나면 낫겠지.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러나 갈수록 갈수록 골짜기는 깊어만 갔다. 미칠 지경이었다. 가슴을 칼로 찌르는 듯 고통스러웠다.

신앙없는 사람이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노상 집밖으로 나와서 술집만 드나드는 것이었다. 알코올이 내 중추신경을 마비시켜야만 질질 끌려 집에 들어와 자는 거지 그 외에는 집에 들어올 용기가 안 났다. 이것이 매일의 일상이었다. 재소자들은 제압했으면서도 나 자신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어서 망가져갔다.

그 당시에는 아내가 많은 기도로 나를 뒷받침해줬다. 자다가 새벽녘에 목이 말라 눈을 뜨면 어김없이 아내는 내 머리 맡에 앉아 울며 기도하고 있었다.

“하나님, 우짜면 좋십니꺼? 좀 살려 주이소.”

내가 일어나 앉으면 아내가 무안하고 쑥스러워할까봐 목마른 것을 참고 실눈을 뜨고 그 모습을 가만히 보기만 했다.

“우리 남편 살려 주이소, 언제까지 이렇게 방황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타락해야 합니까?”

남편된 입장에서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 뿐 ‘이 미련한 여편네야,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 이 새벽에 잠이나 자지. 누가 듣기나 하냐? 봐주기를 하냐? 하나님은 없다’고 속으로 호통을 쳤다.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일상이 계속됐다. 회복의 길은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그 해 연말에 이상한 소문이 들렸왔다. 그 당시에 내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읍내의 학교에 교편을 잡고 있는 이덕진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분이 은혜를 받았다는 소문이었다. 받아도 보통 받은 것이 아니라 엄청난 은사를 받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분의 기도를 받은 문제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그 순간부터 하나님 앞에 돌아와 모범생이 된다는 믿기지 않는 일들도 일어났다고 했다. 마치 사도행전을 다시 보는 기분이 들었다.

좁은 바닥이라 동네 기독교인의 모든 관심이 이선생님에게 쏠렸다. 골수 예수쟁이였던 아내도 이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지사다. 하루는 내가 아내를 점잖게 불러서 말했다.

“항간에 듣자하니 이선생이란 분이 은혜가 충만하다는데 은혜가 별 게 아니다. 자기 감정에 도취되어 펄떡댈 수도 있다. 잘못된 세계를 볼 수도 있다. 사이비로 빠질 가능성도 충분하니까, 당신은 절대 그런데 관심을 갖지 말고 오직 말씀 중심으로만 살면 되는 거야!”

믿음은 없으면서도 집사 경력 8년이니 입만 영글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지났는데 또 들리는 이야기가 이 양반이 사람을 보기만 하면 그 속을 다 뚫어 본다는 거였다. 품고 있는 생각, 숨겨진 죄, 영적 상태 할 것 없이 거울같이 본다는 얘기였다. 믿음이 없는 나였지만 그 소리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좁은 바닥에서 설사 길을 가다가도 마주쳐서는 안 된다. 만약에 지나가다 내 속을 들여다 보면 꼬라지가 뭐가 될까? 집사라는게 술 . 담배 . 화투에 절어있지, 아내와 자식도 사랑 못할 정도로 파괴된 심성이지, 집사 8년인데도 하나님을 믿어보려고 조금도 노력하지 않지….’ 그 양반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치는 거다. 이것이 은혜받았다는 이덕진 선생님에 대한 행동지침 1호였다.

그런데 행동지침을 무색케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87년 시무식을 하고 며칠 지났을 때다. 이덕진 선생님과 학부형 관계에 있다는 절친한 선배집사님이 내게 전화를 했다.

“박집사, 그 은혜많이 받은 이집사님 알지? 그분 모시고 오늘 박집사님 집에서 예배 한 번 드리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20m 밖에서 봐도 튀기로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예배라니….’ 생각할 것없이 “절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선배는 당황했다.

“아니, 예배 드리자는 데 왜 그렇게 질색을 하냐?.”

번지르르한 나의 변명.

“선배님, 예배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 교회 교역자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려야지 근본도 모르는 뜨내기를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다가 가정 제단을 쌓을 수 있습니까? 목회 윤리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멋지게 한마디했다. 집사 생활 9년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제의를 거절했는데 웬걸 집에 오니 상황은 달랐다. 이 선배가 그새 아내를 설득해 놓고 이덕진 선생을 초청한 것이다. 결국 내가 마음을 바꾸었다. ‘내가 한 번 창피당하지. 이덕진 선생이 은혜받은 사람이라니까 내 속을 자기 혼자 보고 말겠지. 떠벌이겠어? 우리 교회 교인이라면 안되겠지만 남의 교회 교인이니까 피하면 되고, 까짓거, 오늘 한 번 불쌍한 아내를 위해서라도 예배를 드리자.’

마음을 바꾼데는 겨울이니까 내복을 많이 껴 입어서 이선생이 내 속을 들여다 보는데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무식한 용기도 작용을 했다. 일종의 방탄복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밤 9시쯤 이덕진 선생이 왔다. 그때부터 뚫려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만하다가 오히려 역공을 취하기로 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앉아서 당하느니 공격부터 하자는 심산이었다. 나는 그가 자리에 앉자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듣기에 은혜를 많이 받으셨다는데 제가 묻는 것 몇 가지만 대답을 듣고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성경 속에서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있는데 술 먹지 말라는 것은 눈을 닦고 봐도 없습디다. 그리고 저는 담배를 하루 한 갑 반 이상을 피우는 줄 담뱁니다. 성경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는 구절은 또 어디 있습니까? 저는 또 고스톱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예요. 고스톱 치지 말라는 구절이 있으면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묻자 그 선생은 잠시 묵도를 하더니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딱 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더니만 나를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대뜸 말을 시작했다.

“집사님, 집사님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는 집사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집사님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드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게 하시는 이 놀랍고, 중요하고, 엄청난 진리를, 이 놀라운 말씀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아직도 눈뜨지 못했느냐? 니 마음에 아직도 확신이 없느냐?라는 물으심입니다.”

이선생은 그러더니 성경을 딱 덮고 “굳이 성경을 논하지 않고 얘기를 해봅시다”며 말을 이었다.

“집사님 절에 다니는 사람들도 절에 갈때는 옷을 깨끗하게 갈아 입고 경건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얼음 깬 물에 목욕을 해서 정결하게 절에 갑니다. 그중에 경건한 사람들은 절에 갈 때까지 입에 수건을 물고 가죠. 부정한 말 한마디도 안하려고, 세상적인 말 한마디 안하려고 수건을 물고 가는 거예요. 다시 대웅전 앞에서는 자기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나무와 돌이나 쇠로 만든 우상 앞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배를 올립니다.

그런데 집사님을, 대웅전보다 위대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부르시고, 아무리 추하고 병들고 못났다 할지라도 우리 속에 죽은 우상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게 하신 이 놀라운 은혜 앞에서 술을 마실까, 담배를 피울까 따져보기 이전에 하루에 한 갑 반씩 담배 연기를 집어 넣었다가 뺐다가 이 성전을 굴뚝으로 만들 필요가 무엇입니까? 불교신자들이 대웅전에 들어가서 술 마시고 주정하는 것 본 적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 온갖 술들을 다 집어 넣어서 이 성전을 술독으로 만들 이유가 무엇입니까? 화투를 칠까 말까 따지기 이전에, 대제사장 한 명만이 그것도 일 년에 딱 한 번 온 민족의 죄와 자기의 죄를 들고가 벌벌 떨며 회개하던 지성소가 집사님 안에 완성되어 있는데 이 지성소를 모시고 기껏 술자리, 음란 비디오를 틀어 놓은 자리, 도박자리에 성전을 끌고 다녀야 될 필요가 무엇입니까?’

쉬운 이야기였는데도 내 가슴을 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순간 ‘어, 맞다. 일리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동의가 아니라 내 생애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전적인 동의, 전인격적인 동의였다. 내 영혼이 아멘하는 순간이었다.

그 날 밤은 그분이 그냥 갔다. 나는 혼자서 잠이 들 때까지 계속 그 날 있었던 대화를 생각했다. ‘하나님의 성전, 성령, 담배, 연기, 술, 술독, 제사장….’ 생각이 꼬리를 물고 맴돌았다. 그러다가 잠이 들고 다음날 눈을 떴다.

새로운 피조물

1987년 1월9일 아침이었다. 내게는 새로운 날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놀라운 대변화의 중간단계에 아무것도 주시지 않고 꿈도 한 번 꾸게 하지 않으시고 환상도, 내적, 외적 체험 등 느낄만한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다. 단, 분명한 원인자 하나가 있었다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는 말씀에 따른 이선생의 말씀 해설과 그에 대한 나의 아멘만이 있었다. 이것만으로 하나님은 소중한 변화를 허락했다.

그 날 아침 출근하니까 나의 모든 것은 이미 다 바뀌어져 있었다. 담배연기도 냄새를 못 맡게 되었다. 술은 먹기는커녕 잔도 못들게 되었다. 직장 동료들은 어제까지 잘먹던 후배가, 잘 마시던 친구가 죽어도 안 먹겠다니까 아연실색을 했다.

“입술만 댔다 떼라!”

“그것도 안 됩니다.”

“잔만 받아라!”

“잔도 못 받습니다.”

“에라, 이 놈!”

술을 확 끼얹는 상관도 더러 있었다. 다 덮어 썼다. 술을 덮어 쓰고 울었다. 그 눈물은 결코 서러움의 눈물이 아니었다. 내게는 감격과 감동의 눈물이었다. 주님이 나를 변화시킨데 대한…. 나는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내 유익과 직장에서의 이익과 출세를 위해서는 충분히 먹고 마시고 아부할 수 있는 사람이다. 뇌물까지라도 갖다 바칠 수 있는 내 기질을 내가 잘 안다. 이것이 내 본질이다.

이를 아시는 주님께서는 근본적인 생각부터 욕구까지 보혈의 손을 대셨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앉아서 술잔을 덮어쓰고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저 같은 인생에게 이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까?’라며 감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술 . 담배 . 화투 모든 것이 팽개쳐져 버렸다.

그렇게 먹던 술을 한 잔은커녕 냄새도 못맡을 정도로 완벽하게 하나님이 바꿔놓았다. 내 자신이 ‘술을 안 먹어야 겠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겠다. 화투를 치지 말아야 겠다’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성령께서 나의 욕구와 욕심과 생각의 근원을 틀어놔 버렸다. 그렇게 피우던 담배를 오늘 이 순간까지 냄새도 못 맡도록 근본적으로 만드셨고 지나가다 쓰레기통에 화투장이 버려진 것을 보면 ‘와, 팔공산 고돌이 팬데. 저거’라던 나, 화투치는 자리가 있으면 그냥 그 자리에 끼고 싶었던 과거의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이 영혼을 강권적으로 바꿔 놓으니까 화투라는 것을 내가 쳤던 기억이나 있었던 사람인가 할 정도로 바꿔 놓으셨다.

그 다음에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토록 미웠던 감호자들이 하나하나 눈물의 대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매일 끌어안고 우는 게 일이 되었다. 앉아서 울다가, 울다가 생각하면 또 다른 감호자가 떠오른다. ‘내가 00에게 너무했구나.’ 생각나면 그가 있는 감방으로 찾아 간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렇게 옮겨진다. 인간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도 간부직원이자 감독자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 속에서 감독자라는 것을 다 집어 던지고 나의 발걸음을 그 감방 속까지 인도를 하셨다. 그 속으로 들어가 감호자들과 울며 불며 “내가 잘못했다. 나를 이해하고 용서해 달라”며 “내가 하나님을 알고 나니까 네게 했던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 용서해달라”고 했다.

그 때 왜 그렇게 주님이 눈물을 주셨던 걸까. 하나님이 심령을 새롭게 하신 다음 눈을 뜨고 보니 하나님이 감호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순간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는 누구도 미움과 저주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증오의 대상이었고 미움의 대상이었고, 정죄와 판단의 대상이었고, 때려 죽여도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던, 그 저주스러웠던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하나 보면 눈물이 나고, 뒤통수만 봐도 눈물이 펑펑펑 흘렀다.

내 자신이 눈물을 통제해 보려고 발버둥을 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몸부림을 쳐봐도 멎지를 않았다. 넉달 동안을 눈물 속에서 살았다. 출근하는 순간부터 눈물이 줄줄줄 흘렀다. 잠시만 눈을 감아도 지금까지 미워하고 묶고 두들겨 패며 악을 쓰며 독을 피우던 내 모습과, 그들의 처참한 모습들이 하나 둘, 하나 둘 계속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니까 내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서러움, 후회, 죄스러움,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기 시작하여 눈물의 샘이 멎지를 않았나 보다. 평생 울 것을 그 때 다 울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나를 변화시킨 눈으로 바라보니, 지금까지 생각하고 판단해온 것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한 순간에 깨달아졌다. ‘아니었구나.’ 이 형제들을, 이 제소자 형제들은 미워할 대상이 아니고, 이들은 저주하고 판단할 대상이 아니고 어느 한 사람 빠짐없이 불쌍한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들의 배후에서 그들의 전인격을 지배하고 그들을 조정하고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던 미혹의 영들과 더럽고 추악한 음란의 영들의 문제가 하나님앞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간 그 자체, 껍데기만 보고 전과 5범, 전과 6범, 흉악범이라는 것만 보고 이들을 판단할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이 한순간에 깨달아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또한 넘쳤다고 하시는 말씀같이 전에는 저주받은 곳, 형벌의 땅이 이제는 주님이 찾아 오시는 장소가 되었다. 주님은 교회와 마찬가지로 관심과 뜨거운 사랑을 가지시고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피흘리는 손바닥을 앞세우시고 그 15자 담장을 넘어서, 철장을 넘어서 찾아 오셨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들도 찾아 오셔서 흉악범이든, 전과 8범이든, 9범이든, 사형수든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올리시면서 구원해 내시는 구속의 역사를, 담장 속에서 펼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내가 다니는 직장마다 함께 하셨지만 이 중에서 지면관계상 다른 것은 생략하고 서울 구치소에서의 일을 말하고자 한다.

“니 죽을 준비 됐나?”

서울 구치소에 와서 가장 놀라웠던 일은 사형수를 만나는 것이었다. 가슴에 붉은 색 명찰을 찬 사형수들을 지나칠 때면 느낌인지 몰라도 피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사형수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피냄새다. 느끼한 듯, 비릿한 듯 끈끈한 점액질 냄새가 감으로 와 닿았다. 그들은 눈빛도 달랐다.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눈이 번질번질하고 일반 재소자와는 사뭇 달랐다.

이들을 먼저 전도하자는 마음으로 40여 명의 사형수들의 성분을 조사했다. 종교적 성분을 조사해보니 17명이 기독교인으로 등록돼 있었다. 그나마 17명, 다행이었다. 그래서 일단 17명부터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전도 전략도 세웠다. 기독교인 중 제일 센자부터 잡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찾아보니까 두영(가명)이라고 하는 자가 보스였다. 힘도 좋고, 덩치도 커서 다른 사형수들의 형님 격인 사람이었다.

그와 대면을 했다. 조그마한 방의 소파에서 마주 앉아 수인사를 하며 “나는 청송감호소에서 온 박효진 장로다. 앞으로 잘해보자”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거듭남의 체험이 있는 사람인지 아무리 느껴 보려고 해도 안되었다. 영적인 냄새가 전혀 맡아지질 않았다. 참 답답했다. ‘이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래가 되겠나?’ 이런 마음이 계속 생겼다. 그래서 이말저말 하다가 아예 정공법으로 나가기로 했다.

“야, 두영아. 니 죽을 준비 됐나?”

이렇게 묻자 말자 그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마음에 셔터내리는 소리가 ‘철커덩’하고 들리는 듯했다.

사실 사형수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죽는다’는 소리다. 죽음과 관련된 단어는 사형수들이 절대로 듣기 싫어한다. 하나의 ‘금기’인 것이다. 내가 “죽을 준비 됐냐”고 묻자 반갑지도 않은 손님인데다 금기까지 깨트리니 만정이 떨어졌나 보다. 눈을 내리깔고 빨리 가주었으면 하는 자세다.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두영아. 니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왜 기분 나쁘게 ‘죽을 준비 됐냐’고 묻겠냐? 그러나 두영아 따지고 보면 너만 사형수가 아니고 우리도 다 사형수 아니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사형수다. 하나님 앞에 전부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형수들이다. 너희만 사형수가 아니야. 언제 갈 지 모르는 인생, 너희만 죽을 준비하는 게 아니고 사실은 나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런 차원에서 하는 얘기이니 고깝게 생각지 말고 내 말 들어라.”

그래도 그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오늘은 틀린 것 같았다. 다음에 며칠 있다가 마음 가라 앉으면 살살 달래가며 이야기하자는 생각으로 일어서려다가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인데 기도라도 하고 헤어져야 안 되겠나’는 마음으로 다시 앉아서 손을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냉랭하고 형식적인 기도였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두영이에게….”

아무리 형식적인 기도라도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 있는 법인데 오히려 돌덩이, 쇳덩이를 앞에 두고 기도하는 기분이었다. 심지어는 등어리에 송충이가 스물스물 기어가는 느낌이었다. 너무너무 이상했다. 한 번도 기도하다가 이런 느낌이 든 적은 없었는데…. 그래서 도대체가 이상해서 입으로는 기도를 하며 눈은 살그머니 뜨고 두영이를 보았다. 그 순간 두영이의 눈과 내 눈이 딱 마주쳤다. ‘뗑그랑!’ 종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기도하는 처음부터 두영이는 눈을 뜨고 나를 꼬나보고 있었나 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살그머니 조심스럽게 작은 눈을 떴고 눈을 마주쳐 버린 것이다. 얼마나 놀랐겠는가. 가슴에 불이 떨어지는 것 같아 얼른 눈을 다시 감았다. 그 때부터 마음에는 온갖 생각이 왔다 갔다했다. ‘아이고, 창피해라. 부끄러워라.’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영적으로 이런 창피가 없었다. 명색이 장로라면서, 사형수에게 ‘니 죽을 준비됐나?’라고 그럴 듯하게 말해 놓고는 완전히 체면을 꾸겨버린 격이었다.

기도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언어와 언어가 연결이 안되고 단어와 단어는 혼란스러워졌다. 중언부언이었다. 그 때 어김없이 심령 속에서 ‘꿇어 앉아라, 꿇어 앉아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문제 해결 안 되면 꿇어 앉는데서부터 시작하면 됐다. 마음 속에 들리는 음성대로 두영이의 손을 잡고 꿇어 앉으며 기도를 하자 아까 느꼈던 수치심도 사라지고 어느덧 눈물이 쏟아졌다.

“주님, 주님. 앞에 있는 두영이가 불쌍합니다. 영혼이 너무너무 안 됐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 영혼, 이 강퍅한 것을 보니까 내 마음이 찢어질 듯합니다. 주님, 우리 두영이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우리 두영이를 살리소서.”

한참, 울면서 기도하자 두영이의 반응도 아까와는 달라졌다. 이제는 아예 두영이의 목을 끌어 안게 만들었다. 두영이도 주춤주춤 하더니만 나의 목을 끌어 안게 되었다. 결국은 같이 목과 가슴을 끌어 안고 기도할 때부터 눈물과 눈물이 교차되며 기적이 일어났다. 두영이가 한참을 울다가 얘기했다.

“계장님, 저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죽음이 무섭습니다. 죽는다는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죽음을 생각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봤는데요. 이제는 알겠습니다. …준비를 해야죠.”

그는 통곡을 했고 이후부터 기적적으로 변화되었다. 감방에 앉아서 날마다 찬송하고, 성경보고, 기도하고…. 두영이의 삶이 그 날의 기도를 계기로 극과 극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운동을 나가도 성경을 품에 갈무리를 해서 떼놓지를 않았다. 그것도 폼(?)을 잰다고 목까지 잡아 올려서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게다가 동료 재소자들을 만나면 “00아!” “네, 형님!”, “우리, 죽을 준비하자, 잉!” 그러면 사형수들이 기겁을 했다.

“형님, 미쳤수? 재수없이 죽을 준비라뇨?”

“아니야. 죽을 준비해야돼. 죽을 준비하자!”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죽을 준비를 하자고 했다. 두영이의 변화된 모습은 서울구치소의 사형수 세계에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와! 두영이 형이 변했다.”

“두영이 형이 저럴 수가 있나!”

구치소 안의 화제거리였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형수들 사이에서도 그의 회심은 큰 충격이고 도전이었다. 나도 이 모습을 보고 큰 소망을 갖게 되었다. 우리 사형수 형제들에게 성경공부반을 만들어서 멋지게 운영을 해보자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해가 다가기 전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사형집행 소식이었다. 명단을 보니 기가 막히게도 그 많은 사형수 중 두영이가 제 1순위로 내정이 돼 있었다. 그것은 서울구치소에서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명단을 보자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졌다.

‘하나님, 꼼꼼하시고 세밀하신 하나님, 두영이의 마지막 날을 정하시고 그 날이 가까워 오게 되자 지금까지 전혀 준비되지 못했던 그의 영혼을 사랑하셔서 이 촌놈, 청송감호소 바닥에서 살고 있는 나를 이곳까지 끌어 오셔서 그의 죽음을 준비시키셨구나.’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여정을 묵상해보니까 그냥 하나님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 날 신우회원들이 모여 “오늘, 마지막으로 가는 저 형제들을, 그 무서운 사형장에 그냥 던져 놓을 수 있겠나. 우리가 가서 같이 위로해 주고, 같이 기도해 주고, 하나님 나라 가는 그 길을 배웅하자”며 마음을 정하고 사형장 지원근무에 들어갔다.

사형장이 ‘하늘가는 밝은 길’로

사형수들은 자신이 지내던 감방에서 불리워 나와 긴 지하복도를 걸어서 자신이 목 매달려 죽을 지하실 밑을 통과한다. 사형장 밑을 통과하면 바로 문이 있다. 사형수들은 계단을 올라 문을 밀고 집행하는 곳에 앉게 된다. 그게 사형장이다. 나도 그 때 사형장은 처음 와 본 것이다. 처음 들어오니 얼마나 삭막하던지…. 신우회원들은 일단 이 곳에 들어와서 굵은 밧줄밑에 둘러서 통성기도부터 했다. 밧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을 옭아 죽였는지 기름이 묻은 듯 반질반질했다. 그것을 보니 비위가 휙 뒤틀렸다. 매스꺼움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믿음이 생기질 않았다. 오늘 이곳에서 목 매달려 죽어야 하는 믿음의 형제들, 불쌍한 사형수들이라는 인간적인 애처로움과 서러움이 계속 베어 나왔다. 나는 그래도 믿음이 조금 있는 줄 알았는데 사형장에서 정말 믿음없는 사람임을 되새겼다. 절망의 상황에서 믿음이 있고 없음이 드러나는 법인데 그 사형장에서 내 자신이 진실된 깊은 믿음이 없음을 통감했던 것이다.

어쨌든 통성기도를 하고 한 교도관 집사가 마무리 기도를 했다. 기가막힌 기도였다.

“하나님, 우리도 무섭습니다. 우리도 두렵습니다. 하물며 이 자리에서 이 땅을 떠나야 할 사형수 형제, 자매들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 저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이곳이 죽음을 맞는 공포의 자리가 아니라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는 천국의 문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해 주십시오. 절대로 이것이 죽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으로 가는 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시오.”

이 기도를 듣고서야 나는 ‘저게 맞다’며 안심을 하고 정리가 되며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 저것이 바로 믿음이요, 이 자리에서 성도들이 내릴 수 있는 정답이다.’ 나도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하이고 집사가 장로보다 낫데이’라고 감탄을 했다.

사형수들을 데려오는 일을 우리가 하기로 했다. 사형수들이 감방에서 사형장까지 오는 길은 죽는 것보다 더 무서워 하는 길이다. 이 길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감방 안에 앉았다가 ’00번 나와!’라는 소리를 들으면 발버둥을 친다. 쇠창살을 붙들고는 ‘나는 안 가! 못 가! 살고 싶어, 죽기 싫어!’하며 발버둥을 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팔을 비틀어서라도 수갑을 채워서 들고서라도 목을 매달아 집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끌려 오면서 그렇게 어머니를 찾는데 ‘어머니, 어머니’ 그렇게 목놓아 울며, 부르며 그 길을 온다. 창틀 사이에 조그만 들풀이 피어 있어도 그곳에 코를 대고 폐부가 찢어 지도록 풀냄새를 맡는 이도 있다. 마지막으로 조그만 쪽문을 들어서기 전에는 창문틈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고 땅 한 번 바라보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수갑을 차고 끌려 오면서도 생의 마지막 발걸음들이 두렵고 아쉬워 그냥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보폭이 5cm도 될까 말까 하게 발걸음을 뗀다. 그렇게 오다가 일부러 자기 신발을 벗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담당님, 저 신발 벗겨졌습니다’라면 다시 신발을 주으려 또 돌아온다. 그만큼 더 살겠다고. 또다시 신발있는 데로 돌아와서 신발을 신고 돌아서고 한발자욱이라도 벌며 1분, 1초라도 좀 더 살아보고 싶었던 생명에 대한 처절한 애착이다. 죽음의 길에서 보여주는 사형수들의 모습이다.

그날은 사형수 데리고 오는 일을 신우회원들이 맡아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뜨거운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간다는 이 위대한 소망을 계속 그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을 복음으로 충만하게 세워 주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혹시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한쪽 편의 강도처럼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신우회가 그 일을 맞게 되었다. 교도관 중 제일 믿음 좋은 집사님 4-5분을 골랐다. 우리는 그 때 집사님들에게 부탁했다.

“집사님들 사형수들을 데리고 오실 때 절대 그냥 오지 말고 잠시 잠깐 걷더라도 할렐루야, 하나님의 나라를 찬양하고, 불신자들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 복음을 전하고 끝까지 도와줘야 합니다.”

한참 후에 두영이가 올라왔다. 나는 가슴 속에서 치미는 서러움을 꾹 참고 있었다. 서러운 표를 안 내려고, 안타까운 표를 안 내려고 억지로 참으며 덤덤하려고 애썼다. 그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아까 약속한 대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에 참았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졌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선 두영이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옆에 따라오던 집사님의 얼굴은 사형수처럼 긴장되어 굳어 있고 오히려 두영이가 복도에 늘어선 직원들을 볼 때마다 큰 소리로 “할렐루야, 할렐루야”하고 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들었던 “할렐루야”는 잠시 후에 사형이 집행될 두영이가 외치는 소리였다. 아까 입을 맞춘 집사님들은 생전 처음보는 사형장의 그 무섭고 음산한 분위기에 짓눌려 오히려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인간적으로 너무나 안스럽고 애처로워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고개만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데 두영이가 오더니만 내 앞에서 서서 손을 꼬옥 잡았다. 나도 손을 잡았다. 할 말이 없어 한참을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두영아, 그래. 니 먼저 하나님 나라 가그래이.”

세상에 이런 인사가 있을까? 생떼같이 젊은 사람을 먼저 가라고 하다니. 어색한 가운데 두영이의 대답은 의외로 강한 어조로 되돌아왔다.

“예, 장로님. 저 아버지 나라 먼저 갑니다. 천국에서 만납시다.”

너무나 당당한 목소리에 놀라서 그때서야 두영이의 얼굴을 봤다. 그 순간 나는 뒤로 떠밀릴 정도의 놀라운 영적 권위와 권능이 그의 온 몸에서부터 확 끼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이 오로라같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이 권능과 권위는 어디서부터란 말인가. 이해가 안 되었다. 두영이의 얼굴은 절대 평안이었다. 5분 뒤면 죽을 사형수의 절대적인 당당함, 소망, 기쁨, 이 모든 것이 복합된, 표현하기 어려운 그 표정. 사람으로서 지어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좌중을 압도하는 가운데 두영이는 인정 심문받는 자리에 앉았다. 그 곳에서 심문을 마친 뒤에 그가 저지른 그 끔찍한 죄상을 읽는 순서였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살해하고….”

소장이 상세하게 읽고 있는데 갑자기 두영이가 말을 끊었다.

“소장님, 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소장님, 소장님이 읽으시는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제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죄는 제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었던 죄였습니다. 만일 제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지금 소장님이 읽은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늦게나마 하나님을 알고 난 뒤에 그분은 제 모든 더러운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억도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믿고 8년 긴 세월 살다가 오늘 아버지 나라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그 더러운 죄, 하나님께서 기억도 않으시겠다는 그 죄를 또다시 제 귀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하나님이 깨끗게 해 주신 영혼과 육신 그대로 아버지 나라 갈 수 있도록 제발 그 더러운 죄목을 읽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담담하고도 당당하고도 조리있는 말 앞에 소장도 인간적으로 그만 감동이 되어서 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었다.

두영이가 예배를 다 드리고 마지막 하직인사를 마치고 유언을 하는 시간이 왔다. 두영이의 입 가까이에 녹음기를 갖다댔다. 마지막 유언은 녹음을 다 해서 최대한 들어주려고 힘써 준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하고 유언을 했다.

“소장님, 검사님, 그리고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 제 마지막 유언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제가 믿는 하나님을 다 믿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잠시 후면 죽을 사형수의 유언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유언이었다. 나는 얼핏 스데반 집사님이 생각났다. 그리고는 이내 혼란스러워졌다. ‘이건 이상하다. 두영이가 이럴 수 없다. 겨우 자기 믿음 하나 지키기도 급급한 상태였는데….’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두영이는 밧줄 밑으로 끌려갔다. 그 얼굴에 흰 두건이 쓰여지고 목에는 밧줄이 걸렸다. 이제 스위치만 누르면 떨어져 죽는 순간이다. 전부 다 긴장해 있다.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들릴 정도의 적막이 계속되었다. 신우회원들은 손을 맞잡고 안타깝게 두영이를 보내고 있었다.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 침묵의 시간이었다. 바로 그 때였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일을 많이 보고 늘 근심하여도….”

찬송가가 울려 나왔다. 깜짝 놀랐다. 누가 부르는가 살펴보니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운 두영이가 그 속에서, 목에 밧줄을 걸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이 찬송을 담대하게 부르던 중 ‘덜커덩’ 소리가 났다. 그러더니 저 무서운 지하실로 그의 몸이 뚝 떨어져버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그 밧줄 밑에 내 형제가 매달렸다. 그 영혼은 아버지의 나라로 갔지만 육신의 생명이 끊어지는 과정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허공에 매달린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렇게 두영이는 갔다. 두영이의 시체는 마지막 유언대로 해부실습용으로 의사들에게 내어 주었고 눈, 신장 등 쓸 수 있는 장기들은 떼내어져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뉘어졌다.

구원 방주에 오른 지각생

사형장에는 작은 충격이 일었다. 사형집행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의아해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를 따르는 사형수 형제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형제들, 끔찍한 살인 사건을 일으켰던 태호와 용수, 그 젊은 아이들, 26, 27세의 꽃다운 젊은 아이들이 차례차례 올라왔다.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한 이들이었다. 비록 믿음의 삶은 충만하게 따르지 못했더라도 그들은 예수의 이름 앞에 갈등하다가 결국 예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얼마나 놀랍게 변했던지 그 젊은이들의 유언을 듣고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범죄 속에 뛰어 들어서 죄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오다가 오늘, 이렇게 젊은 나이에 사형장에서 제 일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어버리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난 뒤에 저는 너무 너무 귀중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저는 그 예수님을 만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 손에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기도해왔습니다. 오늘 아버지 나라로 가는데요.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그분들의 유가족들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기도하겠습니다. 제 마지막 유언은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제가 만난 이 하나님을 똑같이 만나시고 저와 함께 천국에서 꼭 다시 한 번 저를 만나 주시는 겁니다. 그곳에서는 사형수 태호가 아니고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 태호로서 여러분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태화의 얼굴에도 똑같이 두건이 씌워지고 목에는 밧줄이 걸렸다. 마찬가지로 그도 찬송을 부르며 갔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사형장 내에 충격은 더해갔다. 이제 남은 용수도 그러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형수들은 어느 한 사람 빠짐없이 똑같은 모습으로, 해같이 밝은 모습으로, 담대히 주님의 나라를 증거하며, 천국가는 소망을 감사하고, 마지막까지 예수를 전하다가 갔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못나게 말할 필요도 없다. 본 그대로이다. 한 사람은 코미디언 같이 히죽거리다 갔다. 신앙고백도, 유언 한마디도 옳게 들을 수 없었다. 히히덕 거리기만 했다. 죽음 앞에서 넋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다음 사형수는 더욱 가슴이 아프다. 처음부터 끝까지 울다가 갔다. 울어도 그냥 운 것이 아니다.

“어으흥, 어으흥, 어흐, 어흐”

이 울음은 20분 동안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도 신앙고백, 유언 한 마디 못남기고 그렇게 악스럽게 울다가 갔다.

다음 차례로 올라온 사형수는 별명이 ‘도사’였다. 행동이 점잖고 수양도 많이 된 사람이었다. 나이도 50대 중반이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사형수가 되었을까”라며 의아해 할 정도로 도사였다. 수양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바늘로 누가 옆구리를 쿡 찌르면 한 5분쯤 있다가 “아~ 야”할 것만 같았던 사람이다. 그 사람이 사형장으로 왔다. 계단을 올라오는데 기가 막혔다. 자기 발로 걸을 수 있는 힘을 다 잃어 버린 모습이었다. 계단 하나를 오르지 못해 질질 끌려 오다시피 했다. 그가 밧줄을 보는 순간에 “어흐”하는 괴상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 상태로 인정심문하는 자리에 앉았기에 제대로 될 수 없었다. 한두마디 하고 나서부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전혀 딴 말만 내놓았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그러다가 5분쯤 지나자 원망을 시작했다.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잘되는가 보자.”

저주하고 원망하다가 결국 터져나오는 것은 욕설밖에 없었다. 그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개새끼들”이라는 한마디였다.

구원방주에 오른 지각생

똑같은 공간, 똑같은 상황에서 예수의 이름을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의 마지막 모습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가장 진실한 최후의 모습이 천양지차로 갈라졌다. 그 차이를 두 눈을 뜨고 똑바로 본, 예수를 믿지 않는 직원들의 마음 속에까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이 휘도는 듯했다.

마지막 순서가 되었다. 나의 입술이 달싹여졌다. ‘용필이, 용필이….’ 그에 대한 기억이 아쉽게 떠올랐다.

그는 구치소 내에서 직원들에게는 ‘꼴통’, 같은 재소자들에게는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예를 들어 감방에서 같이 앉아 밥을 먹다가 용필이가 갑자기 젓가락을 들고 쳐다보기 시작한다. 그러면 전부 다 식사를 중단하고 용필이를 봐야 한다. 그가 입을 열고 이렇게 말한다.

“아, 요새 말야, 꿈자리도 어수선한데 아무래도 곧 집행이 있을 것 같아. 이번에 내가 달릴 것 같은데 이걸로 오늘밤에 누구 눈깔이나 팍, 파버릴까?”

그러면 그날밤에 눈알을 파일까 싶어서 아무도 잠을 이루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매사에 그는 문제아였다. 사고나면 ‘용필이’였다. 남의 것 뺏어 먹었다 하면 ‘용필이’, 폭력을 휘둘렀다 하면 ‘용필이.’ 어느날 내가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

“용필아, 예수 믿고 천국가야 한다.”

“아, 웃기는 소리하지 마세요. 그런 것 없어요.”

“영혼 구원을 받고, 예수믿고 천국가야 한다.”

“그런 사치스런 소리는 어디가서 배부른 사람한테나 해 보쇼. 계장님 내 신세되보세요. 그런 소리 나오는가. 우리하고는 관계 없습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하다하다 안 되서 전도전략을 바꿨다.

“용필아 그러면, 내가 아는 분들 중에서 부자에다가 돈 잘 쓰는 집사님을 소개해 줄테니까, 그 집사님이 매주 한 번 너를 찾아와서, 물론 올 때는 빈손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니 좋아하는 치킨, 옷, 물품을 사오도록 해 줄테니까 예수 한번 믿어라. 그리고 성경공부 한번 해보자.”

이렇게 얘기하자 구미가 당겼던지 두번째 나를 만날 때는 “생각해 봤는데 꼭 계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믿어보죠”라고 했다. 그 소리가 곧 내게는 기적이었다. 저 입에서 ‘예수 믿는다’는 소리 한마디가 기적 중에 기적이었다. 그런데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용필이에게 집행 날이 다가온 것이다. ‘양육한 번 못해 보고….’ 복음 한 번 전해보지 못했다. 사도신경이 무엇이며, 예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한 번 전해보지 못하고 사형 당하게 생겼다. 그러니 내 마음이 어땠겠는가. 하나님 앞에 원망도 토해 놓았다. 하릴없이 집사님들께 “용필이가 복음을 모르니까. 오는 도중,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복음의 진리를 완벽하게 전하고 그 입으로 신앙고백을 받고 오십시오”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사형대에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 무엇이 급해서 그렇게 빨리 데려가십니까? 몇 달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하다 못해 예수 믿고 천국간다는 그 고백이라도 하고 가야하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사도신경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용필이를 어쩌실렵니까?”

기도하며 마음에 오기마저 생겼다.

“하나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전에 용필이가 ‘예수 믿죠’라고 한 그 한마디도 주의 이름을 부른 겁니다. 그러니 구원해 주셔야 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주님, 구원해 주십시오.”

기도를 한 30분 했는데 용필이가 올라왔다. 그런데 아까 올라왔던 불신자는 용필이에 비하면 오히려 신사였다. 용필이는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다리에 힘을 잃어 덜렁거리듯 매달려 오는데 안면 근육은 완전히 돌아갔고 입으로는 침을 질질 흘렸다. 신경이 다 마비된 듯했다. 동공도 풀려 있었다. 인정심문하는 자리에 앉혔는데 용필이가 하는 짓이라고는 입을 벌리고 앞을 보다가 뒤에 있는 밧줄을 쳐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앞을 보다가 뒤를 보다가, 이 짓만 기계처럼 되풀이했다. 소장이 한참 보다가 더 볼 것 없다는 듯 “집행하시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직원들이 우루루 달려와서 용필이의 양쪽 팔을 쥐고 밧줄 밑으로 질질 끌고 갔다. 끌려가는 순간 용필이는 그나마 남아 있던 의식세계가 해체되버린 것 같았다. 극심한 공포로 완전히 실성한 모습이었는데 그것을 본 순간, 나의 심령 속에서 ‘그냥 보내면 안 된다’라는 음성이 가슴을 쳤다. ‘절대로 그냥 보내면 안 된다.’ ‘이대로 보내서는 안된다’는 성령님의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음성이 내 영혼을 타고 올라왔다.

‘그냥 보내면 안 되! 그냥 보내면 안 되!’ 내가 이 음성에 동의하자 말자 거의 반사적으로 뛰어가 밧줄 밑에 다가간 용필이를 가슴으로 끌어 안게 되었다. 성령이 강하게 몰아 붙인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직원에게 “니 팔쫌 놔라!”며 팔을 풀고 끌어 안고 그 길로 돌아서서 소장님과 딱 눈을 마주쳤다.

“소장님, 시간을 조금만 주십시오. 소장님,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소장님, 이대로 보낼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십시오.”

나는 절규했다.

“예, 예, 예? 소장님 조금만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예수 믿는 자들의 역사 앞에 소장도 감동이 되었던 것 같았다. 나를 보더니 “좋습니다”라는 허락을 했다.

용필이를 내 앞에 눕혔다. 몸이 완전히 물먹은 솜처럼 풀어져 있었다. ‘용필이는 복음이 뭔지도 모르고 믿음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를 눕혀 두고 집사님들을 보고 부탁을 했다.

“여러분 우리가 용필이를 위해서 한번 기도해 주십시다.”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졌던 집사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팔을 잡고, 다리를 잡고, 몸통을 붙들고, 그냥 쓰러져 울부짖기 시작했다.

“용필아, 용필아!”

그의 영혼이 불쌍해서 우는 울음이었다. 사형장은 한순간에 눈물의 통곡장으로 변해 버렸다. 사형장 천장이 떠나갈 지경이었다. 나도 용필이의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 안았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 이제 용필이는 우리 꺼다. 우리 꺼다. 절대로 안 놔줄 꺼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기 전에는 용필이를 안 놔줄꺼다. 오늘밤이 다 지새봐라 죽어도 안 놔준다. 강제로 끌고가서 목을 매달아 죽여봐라. 우리도 다같이 매달려서 같이 죽어버릴 끼다. 안 놔준다. 안 놔준다.’ 오기가 생겼으나 욕심에 불과했다. 직원들 손에 용필이를 넘겨 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 사이의 갈등이 너무 아팠다. 우리들의 목이 다 쉬어갔다. 그런데도 소장도 그만하라는 얘기도 못하고 직원들도 어느 누구하나 그만하라고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전부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용필이가 일어서려고 꿈틀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손을 다 놔주어 용필이가 일어서도록 해주었다. 그가 반쯤 일어서더니만 수갑찬 손을 기도하듯 꽉 쥔 채로 갑자기 “주여, 주여!”라는 말을 턱 내뱉었다. 그 순간 우리는 착각을 했다. 용필이가 두려움과 공포 속에 넋이 나가버린 상태, 정신적 공황 속에서 많은 직원들이 “주여, 주여!”를 외치니까 그 소리에 용필이가 도취되어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에서 무의식 중에 뇌까린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서서 두 손을 높이 들더니만 소리높여 외쳤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두 마디를 몇 번이고 외치기를 시작했다. 얼마나 담대하게 외치던지 우리도 새로운 눈으로 용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폭포같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입으로는 자신을 받아 주신데 대한 감사를 계속해서 외쳐대고 있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외쳐 대더니 조금 진정이 되었나 보다. 두 손으로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는데 그 순간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위대한 기적을 보았다. 용필이의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하게 할 수 있었을까? 무엇으로 그를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10분 전까지만 해도 온몸의 근육이 다 마비되고 동공이 풀리고, 침까지 질질 흘리며 걸레처럼 끌려오던 그가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붙들자 말자 먼저 간 두영이에게서 보았던 완벽한 평화의 모습, 죽음을 앞에 두고도 복음을 가졌기에 당당했던 사형수 형제들의 모습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의 눈이 뜨여진 것이다. 그가 소장과 눈이 마주치자 말자 수갑찬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 예를 다한 인사 앞에 소장은 자기도 모르게 “어, 예…”하며 반쯤 인사를 받았다. 인사 후 용필이의 얘기가 이어졌다.

“소장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소장님,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사시고, 승진하셔서 저희 같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장님 만수무강하십시오.”

또 깊이 인사를 했다. 사형수의 공손한 인사와 유언 앞에 소장마저 마침내 격앙된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만 손수건을 꺼내서 얼굴을 파묻고 나즉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용필이의 상상을 넘어선 변화 앞에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대비되어서였을까? 소장으로서는 그 신비한 상황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우리는 용필이의 손을 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바로 그 때였다. 그의 손을 통해서 나는 몇백만 볼트가 넘는 전류의 충격을 받는 듯했다. 이것은 성령 충만이 극치에 달한 상황이었다. 손으로 감지될 정도의 성령의 강력한 능력에 사로잡힌 감격과 기쁨과 감사가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용필이를 보았다. 그는 건드려도 터질 듯한 충만과 충만으로 벅차오르고 있었다. 그 벅찬 감격을 이기지 못해 용필이는 또 손을 들었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에서 바라보던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 순간 하늘의 문을 여시고 온 우주의 성령 충만함을 용필이에게 다 부어주는 것 같았다. 용필이는 기쁨의 소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형장 안에는 기이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굵은 밧줄, 여러 사람의 목을 옭아 기름이 반질반질한 줄을 가운데 두고 사형수 한 명과 교도관 신우회 직원들이 “주여, 주여 내 말들으사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하며 덩실 덩실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 놀라운 모습앞에 누구하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웃는 사람이 없었다. 충격이었으리라.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는 그 거룩한 충격 앞에 어느 누구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압도되었다. 시간이 되어 결국 용필이도 이 땅을 떠나갔다. 여러 사형수 형제들을 보내고 나는 사형장의 차디찬 바닥에 앉아 울고, 또 울었다.

‘내 눈을 뜨게 해 주신 주님, 믿음의 본질을 깨닫게 해 주신 주님, 저는 지금까지 두영이의 믿음이 위대했고 태호와 용수의 믿음이 대단했고 용필이의 신앙이 놀라웠다고만 알아 왔는데, 나를 포함한 이들 모두가 다 똑같이 본질상 사망의 세력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 예수의 이름을 가진 그 자가, 그가 잘 믿든, 못 믿든, 예수 이름을 가졌다는 그거 하나로 하나님의 성전을 삼으셔서 마지막 죽음 앞에서 순식간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그들의 영을 덮기 시작하면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느낄 수밖에 없는 죽음의 공포를 성령께서 몰아내 주시고 모든 사망의 두려움을 천국의 소망으로 바꿔주시니까, 그들이 그토록 담대한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앞에 눈을 떴습니다. 할렐루야!’

그 사형수들이 대단한게 아니었다. 사형수들의 믿음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하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 그대로 성령을 보내셔서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내시고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끌어 가시는 구원의 절대 주권이 선포된 것이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위대할 뿐이다. 여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박효진 장로 인터뷰

4.5m 담 안의 선교사

정윤석 기자

▲ 박효진 장로

박효진 장로(서울 명문교회 . 49)의 사무실(서울구치소 경비대대 본부)까지 가는 길에는 4.5m 높이의 담벼락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갑갑한 기분이 든다. 감옥에서 복음 전하는 어려움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다. 재소자들의 마음에도 그 담벼락만큼이나 높은 담이 있을 것같은 분위기다.

사무실에서 만난 박효진 장로도 이 점을 인정한다. 재소자들의 마음까지 가는 길은 어쩌면 그보다 더 높은 담이 에워싸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을 구원시키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박장로는 오히려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 구원받은 자의 영혼을 해부하면 그 속에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만일 해부가 가능하다면 구원받은 자의 영혼 속에는 수없이 많은 복음의 씨앗들이 촘촘이 박혀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마치 해바라기씨처럼, 복음이 인간의 영혼을 채우고 채우다 결국에는 ‘한 송이 국화’처럼 구원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재소자들이 구원을 받기 까지는 박장로가 알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복음의 씨가 그들의 마음을 두드려왔다는 얘기다.

따라서 박장로의 구치소에서의 전도 전략은 중 . 장기적으로 긴 안목을 갖고 세워진다. 복음의 씨를 자주, 오랫동안 뿌릴 뿐 아니라 재소자와 대화하고, 상담하고, 필요를 채우고, 인간의 정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 회심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확신이다. 교도소 안에 있는 110여 명의 신우회 직원들도 이를 위해 철저히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그 결과 구치소는 사형수 형제들의 영혼이 구원받는 생생한 구원의 현장이 되었다.

독특한 현장 얘기들은 교인들에게도 매력이 있었다. 교회와 교인들의 초청이 끊이지 않아 지금까지 500여회의 간증 집회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 그 사실을 잘 얘기해 준다.

“살아있는 동안 들풀 하나, 공기 한 모금에도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겠다.”(혜림교회 이종혁 성도)

“하나님은 누구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과 변화된 사람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점을 생생하게 일깨워준 간증이었다. 강퍅했던 재소자들, 흉악한 살인자들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사역을 목회현장에도 동일하게 나타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평성교회 송영수 목사)

밖에서는 담장 안의 기적들이 큰 도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박장로는 이에 대한 도전이 결국 재소자들이 사회로 나갔을 때도 적응을 하며 받아 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8년 2월호)

★ 박효진 장로 간증시리즈 모음 ★

◆ 박효진 장로 프로필 ◆

청송감호소, 청송교도소 근무

서울구치소 경비교도대대장 역임

법무연수원 교정관 역임

현재 민영 소망교도소 부소장으로 근무

서울 명문교회(예장합동)시무장로

국내외 [회복과 섬김의 부흥회]인도중

◆ 저서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 (홍성사) ◆

◆ 홈페이지 http://www.parkhyojin.com/ ◆

박효진 장로 간증1 – 영적전쟁

박효진 장로 간증2 – 사랑은 허다한 죄를

박효진 장로 간증3 – 하나님의 성전

박효진 장로 간증 4 – 잃어버린도끼

박효진 장로 간증 5 – 강청

박효진 장로 간증 6 – 독방의 예배

박효진 장로 간증 7 – 나와 내집은

박효진 장로 간증 8 – 사형선고

박효진 장로 간증 – 바리새인 껍질깨기 – 토론토 주사랑 교회

박효진장로 간증 – 하늘 가는 사형수

박효진 장로 – 귀신들린 사형수 이야기

박효진 장로 간증 – 종갓집의 산제사 – 토론토 주사랑 교회

박효진장로간증 – 사형수 이호성1편

박효진장로간증 – 사형수 이호성2편

박효진 장로 밴쿠버집회(1) 1/3 20110315

박효진 장로 밴쿠버집회(1) 2/3 20110315

박효진 장로밴쿠버 집회(1) 3/3 20110315

박효진 장로 밴쿠버집회(2) 1/4 20110316

박효진 장로 밴쿠버집회(2) 2/4 20110316

박효진 장로 밴쿠버집회(2) 3/4 20110316

박효진 장로 밴쿠버집회(2) 4/4 20110316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이 간증을 듣는 모든분들에게 넘치게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좋은친구 원글보기 : 좋은친구

메모 : 감사합니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박효진 장로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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