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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 장 19 절 | [묵상]끝을 묻는 자들에게(창세기 3장 19절)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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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19절), “하와”라는 이름(20절),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14절),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22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15절), 타락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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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성경공부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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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창세기 3장

창세기 3장 · (창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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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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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3/17) 말씀 묵상 (창세기 3장19절, Genesis 3:19)

오늘의 (3/17) 말씀 묵상 (창세기 3장19절, Genesis 3:19) …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By the sweat o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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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 창세기3장17절-19절, 환경의 변화 – 다음블로그

여자의 후손 시리즈 제9강, 환경의 변화 (창3:17-19) 창세기3장17절부터19절입니다, 우리같이 읽겠습니다,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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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19절 / Genesis 3:19 – 말레이시아 어학원(eskyedu)

“너는 먹기 위하여 얼굴에 땀을 흘리고, 열심히 일하다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는 네가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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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주일설교 창세기 3장 19절 너는 흙이니

창세기 3장 19절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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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설교문] “인간의 저주”(창3:16-19) – 복음 빵집

예수님은 아담이 파괴시켰던 것을 예수님은 다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인간이 죄악으로 파괴되어 도저히 하나님께 저주받은 것을 해결할 수가 없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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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19절 주석 | 헤르메네이아 미문

창세기 3장 19절 주석 … 19절과 20절은 삶과 죽음 그리고 탄생의 원리를 소개한다. 삶은 더 이상 태만한 것이 아니다. 침이 아닌 땀이 흘러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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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창세기 3 장 19 절

  • Author: 십자가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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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1. 1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TLdnZWcH5Y

창세기 3장에 나타난 생명의 개념

It is revealed in Genesis 1-2 that God was the Creator, who not only created the lives of the human beings, but also those of the animals and plants, and all lives in the ecological system in the universe. However, it is described in Genesis 3 how the whole ecological system, including the human beings and the animals and plants, lost their lives because of the Fall of man. Genesis 3 shows how the decree that “when you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you will surely die” in Gen 2:17 was fulfilled in the lives of Adam and Eve. This article first attempted to exegete the passages in Genesis 3 which contain the concept of ‘life’ in its context. The following passages are analyzed: “for you are dust, and to dust you shall return” (v. 19; ESV), the name of “Eve” (v. 20), “dust you shall eat all the days of your life” (v. 14; ESV), “lest he reach out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ever” (v. 22; ESV), “he shall bruise your head, and you shall bruise his heel” (v. 15; ESV), and man’s psychological changes after the Fall and God’s judgment (vv. 7-19). After analyzing these passages, the author attempted to synthesize the data to define the concept of life revealed in Genesis 3. As a result of this study, the concept of life was suggested as follows. (1) It means the physical life in contrast with the physical death. (2) It means the spiritual life in contrast with the spiritual death. (3) Eternal life means the living relationship with God. (4) Life not only means the concept of life in contrast with that of death, but also means the concept of restoration to the original order of creation which was severely damaged by the Fall of man. In short, God is the Creator, the Provider, and the Taker of all lives. According to Genesis 3, it is revealed that the human beings not only lost the physical lives, but also the spiritual lives because of the Fall. Owing to the Fall of man, the animals lost their lives (Gen 3:17), and the whole ecological system including the plants suffered under the shadow of death as well (Gen 3:17). However, God did not stop there, but delivered an exciting message of hope that man would be restored to life through the descendant of the woman (the Messiah).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의 생명과 모든 생태계의 생명을 창조하신 창조주로 계시하고 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는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가 어떻게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창세기 3장은 창세기 2장 17절에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금령이 어떻게 아담과 하와의 삶에 성취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본 논문은 먼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생명과 관계된 개념들이 나오는 구절들을 문맥 속에서 주석을 하였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19절), “하와”라는 이름(20절),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14절),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22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15절), 타락 후 인간의 심리적 변화와 하나님의 심판(창 3:7-19) 등의 구절들을 분석하였다. 이들 구절들을 분석한 후에 데이터를 종합하여 창세기 3장에 나타난 생명의 개념을 정의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 내린 생명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1) 육체적 죽음과 대립된 개념으로서의 육체적 생명을 의미한다. (2) 영적인 죽음과 대립된 개념으로서의 영적인 생명을 의미한다. (3) 영생은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의미한다. (4) 생명은 죽음 자체의 반대 개념일 뿐만 아니라, 타락의 결과 생긴 것들을 원래의 창조의 질서대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창조자요, 생명의 수여자요, 생명을 취하시는 분이시다. 창세기 3장에 의하면,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육체적 생명뿐만 아니라 영적 생명까지 잃게 되었다. 타락의 결과 동물도 생명을 잃게 되었고(창 3:14), 식물을 포함한 생태계도 함께 죽음의 그늘아래서 고통하게 되었다(창 3:17).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여자의 후손(메시야)을 통하여 인간의 생명을 다시금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감격스러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여자의 후손 시리즈 제9강, 환경의 변화 (창3:17-19)

창세기3장17절부터19절입니다, 우리같이 읽겠습니다,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멘,

제가 며칠 전에 제 주변에 어릴 때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세상에서 다들 잘 나갔던 분들 이였는데 지금은 나이가 차서 소위 은퇴하고 어떻게 삶을 살아야 좋을지 잘 몰라가지고 아주불안해하는 모습들을 저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고 저에게 말까지 해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라고 물어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잠깐 운동하고 그다음에 무엇을 하여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한두 분은 교회를 다니지만 그래서 삶이 무료하다는 말을 이렇게 합니다,

그분들이 경제적으로는 걱정 없는 분들입니다 연금도 많이 타고 또 모아놓은 재산도 있고 빛도 없고 집도 대출 없이 있고 아이들도 다 잘 자라고 이런 사람들인데 어딘가 무료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반면에 제가 이렇게 선교지에 나가거나 주변에 하나님일하는 공동체 안에서 볼 때 그 나이또래의 사람들 중에서 바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신도들인데 전도하려 다니고 또 선교지에 열심히 방문하여가지고 거기서도 열심히 하나님 일에 봉사하고 아주 그냥 자기가 과거에 가졌던 모든 경험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그냥 기쁨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두 그룹을 보면서 우리교회 교인들은 어떤 그룹에 속하게 하여야 할까 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죠,

언젠가는 이 두 그룹 중에 한 그룹 중간그룹은 있을 수가 있지만 의미가 없습니다, 있다면 양쪽 중에 한쪽에 계셔야 됩니다,

제가 우리교인들 보면서 이분은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분은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라고 제 나름대로 보고 있습니다, 왜 그렸냐면 제가 지난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인간은 흙과 먼지로 지음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존재의 생활양상을 보면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면 근방 알 수가 있습니다, 아담과하와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모든 것이 다 편안하게 되어 버리니까 가질 것 다 가지고 육신의 죽음도 경험할 필요 없고 모든 걸 다 주어버리니까 거기에 사탄이 와서 이렇게 유혹을 했던 겁니다, 그럴 때 너무 편하면 사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흙으로 만든 우리는 가끔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가다가 왕 침을 맞아야 됩니다,

그래야지만 나의존재가 무엇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아담이 그렇기 때문에 소위 타락했다 그랬지 않습니까,

아담이 이렇게 타락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였냐면 과연 너는 흙이구나, 먼지구나 라고 하나님께서 다시 재확인 하시는 겁니다,

안 되겠다 내가 너에게 왕 침을 줘야겠다, 환경을 조금 변화시켜줘야겠다 그래서 이분이 환경을 변화시켜주었습니다 생태계도 변화시켜놓고 삶의 환경 삶의 조건 전부다 이것을 변화시켰습니다,

변화시킨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변화시켰습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이 다 편안하면 할 일이 없고 무료해지면 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먼지 흙이기 때문에 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딴 생각하지 말라고 환경을 변화를 시켜 주신 겁니다,

사랑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이제 땀을 흘리게 만들어 놓고 바쁘게 만들고 그렇게 되면 이제 주인의 다시 찾는 습성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는 그러한 습성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게 피조물이고 흙이기 때문에 그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환경을 변화시켜주실 때 꼭 우리주변에 여기 나오는 그 환경을 변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토지를 저주시키고 땀을 흘려야 너희들이 이제 먹고 살리라 이것만이 아니고 육적인 환경도 변화시켰습니다,

또 혼적인 환경도 변화시켰습니다, 혼이라는 것은 지. 정. 의 우리의 인격입니다 그다음에 영적 환경도 변화시켰습니다,

그것을 변화라는 말보다 성경에서는 뭐라고 그러냐면 저주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이 저주지 변화입니다 하나님이 감정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어떤 때는 격한 말씀도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인간의 약한 부분을 재확인 시켜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변화시켜 준다고 그랬지 않습니까, 환경을 더 나쁘게 만들어 주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 역사에 아담의 타락부터해서 예수님의 재림 그다음에 천년왕국 다시 새 에덴이 올 때까지의 인간역사의 흐름입니다, 땀을 흘리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게 합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해서부터 우리가 다시 새 에덴으로 들어가는 것이 7000년입니다 아담이 언제 지음을 받았는지는 모릅니다,

아담이 타락하는 그 순간부터 7000년 인데 하나님의 눈으로 시간을 보면 7일입니다 7일 동안 이런 일들이 있다가 나중에 신천 신지로 다시 들어가는 겁니다, 새 에덴이 다시 생겨나는 겁니다, 오늘은 제가 말씀 드리는 게 환경 변화가 어떻게 변화가 오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속에서 적용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7000년의 역사를 한 눈으로 간단하게 볼 수 있도록 설명하여 드리려고 그럽니다, 이 환경의 변화를 처음 우리에게 준 분야가 있습니다, 예컨대 육적 환경의 저주를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지금 아담이 타락한 후에 그 저주를 어떻게 주었냐면 아담이 본래는 육이 영원히 살게끔 되어 있잖아요,

그 육이 영원히 산다는 말은 그 육이 아주 영광 체로써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영광 체의 어떤 모습의 육인데 그 육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의 모습으로 되어 버린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보다도 훨씬 더 좋은 조건의 육입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이 아담부터 시작해서 노아까지 1000년 기간인데 이 기간 동안에 사람들이 1000년씩 살았습니다, 죽지 않고 그러니까 육의 조건이 지금 우리의 육의 조건과 다릅니다, 아마 보약을 먹지 않아도 천년씩 살았으니까 육이 특별한 육인 모양입니다 창세기5장에 보면 1000년씩 살았던 명단이 10명이 나옵니다, 아담을 1대로 보시면 아담은 930세를 살았습니다,

그다음에 2대는 셋인데 912세까지 살았습니다,

3대 에노스는 905세까지 살았습니다, 4대 게난은 910세까지 살았습니다,

5대 마할랄렐 이분은 895세까지 살았습니다,

6대 야렛은 962세까지 살았습니다, 7대 에녹은 365세에 들림 받았습니다,

8대 므두셀라는 969년 까지 살았습니다,

9대 라멕은 777세까지 살았습니다, 10대손 노아는 950살 까지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이 상대적으로 지금보다는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장수하였습니다, 여기 오늘 말씀 속에서 땅이 저주를 받고 이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고 했지만 또 땀을 흘려야만 된다고 했지만 지금 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이 1000년씩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천년씩 살았던 것이 그냥 천년이 아니고 우리가 과학적인 눈으로 볼 때 천년씩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왜 그렸냐면 환경을 주욱 보시면 첫째 이분들이 채식을 하였습니다, 18절에 보면 채소를 먹을 것이다,

그랬습니다, 에덴동산에 있을 때는 생명수 먹고 과일 먹고 이렇게 열매들을 먹었는데 이분들이 타락한 후에 몸이 변형되면서 이제는 식습관이 채식문화가 되어가지고 농사를 지어서 땀을 흘리면서 농사의 열매들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채식을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공기는 어떻습니까, 공기는 살림이 울창하고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 기후조건은 사계절이 없었습니다,

항상 약18도에서 20도 정도의 온도로 유지 되었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물 층이라고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위에 물 층이 파괴가 되지 않았든 것이거든요, 물 층이 온도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그랬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위에 물 층이 존재합니다, 물 층이 나중에 언제 없어졌습니까,

노아의 홍수 때 없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홍수가 일어난 후에 사계절이 생긴 겁니다, 창세기8장22절에 보면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시베리아에는 춥고 남쪽에 더운 나라도 있고 이렇게 그냥 환경이 변화되어 온도차이가 그때부터 생겨났기 때문에 사람의 생명도 나이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환경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에덴동산보다는 나쁩니다, 공기도 오염 없이 신선하고 물도 오염이 없고 오존층이라고 그것도 그대로 있고 지금은 오존층이 파괴되어 있잖습니까, 전자파도 없습니다, 핸드폰 이런 것도 없습니다,

지금 전자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게 지금 우리를 파괴시키거든요 이게 지금 암도 만들고 그러잖아요, 핸드폰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뇌 암이 온다고 그럽니다, 생활양상도 아주 단순하고 이렇게 보니까 마음도 편안합니다, 다른 생각 별로 안하니까 우리처럼 지금 핸드폰에 누구 메시지 왔나 확인 안하고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런 것이 없으니까 오래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육적인 삶은 그런데 이분들의 혼적인 삶에도 타락한 후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었냐면 이분들이 에덴동산에 살고 있을 때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질그릇 같은 토기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성품이 거기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도 있잖습니까, 항상 사랑이 있고 아가페사랑은 무조건 사람을 안아주고 껴안아주는 조건 없는 사랑 그런 마음이 항상 있고 그리고 항상 희락이 있고 기쁨이 항상 있고 그다음에 화평이 있고 평강이 오고 오래 참는 것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런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고린도전서13장에 하나님의 성품 사랑은 질투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왜냐하면 자랑하면 제3자가 마음 아파합니다, 모든 것을 제3자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자랑하지 않는 겁니다,

질투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 생각 안하고 모든 것 다 용납하고 참고 모든 것 다 믿고 모든 상항에서 다 견디고 이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아담이 처음에 그런 마음들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타락하면서 하나님의 인격이 점점 점 하루아침에 없어진 게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점점 없어지면서 마귀의 성품으로 대체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흙이기 때문에 질그릇에 보배를 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질그릇 자체가 이게 언젠가는 무너지고 깨어지는 존재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의 성품을 담아보니까 이게 온전치가 않는 겁니다, 온전치가 않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내가 승화되려도 승화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승화될 수 있는 최상의 존재가 누구였습니까, 에녹과 노아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분들도 질그릇 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황 목사가 제 아무리 승화되었다고 까불어 봐도 에녹을 따라 가지 못합니다, 노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는 겁니다,

한번 옆 사람을 보세요, 어느 수준인가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질 그릇 항상 깨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질그릇인 것을 깨달으면 옆 사람을 정제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질그릇이고 저 사람도 질그릇이야 질그릇이 이렇게 깨어졌잖아요, 하나님이 왜 이렇게 질그릇을 깨어지도록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질그릇은 깨어져야 됩니다, 안 깨어지면 교만하여 집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닮았지만 그 질그릇이 나 닮았다 내안에 모든 하나님의 성품이 다 있다 그러면 사람이 하루아침에 교만해져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냐면 너 교만한 티를 내기만 해봐라 내가 깨어버린다 그럽니다, 왜냐하면 너는 질그릇이야 너 가 어떻게 나처럼 되려고 그래 그러는 겁니다, 사람은 이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이 아주 원칙입니다 깨질 때 깨어져야 되고 깨질 때 무엇을 느끼게 하는지 아세요, 아하 나는 하나님이 될 수 없구나,

그런데 이 사탄은 하나님처럼 된다고 속였거든요, 하와에게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처럼 될 수 없구나, 이게 하나님의 성품을 내가 닮고 있지만 이게 깨지는구나, 불완전한 피조물이구나, 그러면서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이 질그릇 자체도 내가 유지 못하겠구나, 이것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자꾸 고백하게 하나님께서 만드는 겁니다,

이 질그릇이 깨어질 때 마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질그릇을 깨는 일을 하기 위해서 환경을 변화시키는 겁니다,

환경을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질그릇이구나,

내가 하나님형상대로 살 수 없구나, 하는 것을 고백하게 하는 겁니다,

우리 이 경우를 한번 봅시다, 아담이 이렇게 타락한 후에 아담의 아들들이 누구였습니까, 가인이었고 그다음에 아벨이었잖습니까,

이 가인이 질그릇입니다 아벨도 질그릇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타락이 있은 후에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하였다고 지난시간에 제가 말씀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의미하잖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가 다음시간에 말씀드리겠지만 이 가죽옷을 입혀서 동물을 잡아서 피 흘리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그 아들 가인과 아벨에게 이제 너희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뭐라고 그러느냐면 동물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라 이렇게 아담에게 하나님이 말씀 하셨으니까 너희들도 그렇게 해라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 아담이 두 아들들에게 말했는데 큰 아들 가인은 농사를 짓는 양반이었고 둘째아들 아벨은 양을 치는 아들 있었는데 제사를 아벨은 양을 치니까 양의 첫 새끼를 잡아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그렇게 안 하였다고 그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래서 가인보고 너 이놈아 너 왜 이렇게 하지 않았느냐 어떤 분은 그럽니다, 그분은 농사지으니까, 자기가 농사지은 일부를 바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피의 제사를 안 드렸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그랬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그랬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로마서10장17절에 그랬습니다,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을 한 것을 듣고 믿고 그냥 한 것은 아벨입니다 가인은 듣고서 안 한 겁니다,

가인이 불순종한 겁니다, 가인이 이렇게 불순종 했다는 것은 우리가 이분이 사탄의 마음이 그의 질그릇에 있었다는 겁니다,

이 가인의 불순종한 모습을 보면 우리모습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랬습니다, 너 이놈아 너 이렇게 불순종했느냐 그러니까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물어보니까 성경에 보면 4장5절에 그랬습니다,

가인이 하나님 앞에 심히 분을 내었다고 그랬습니다,

자기는 자기대로 다 했는데 하면서 그 분을 내는 것은 누구의 마음입니까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사탄의 마음입니다 벌서 이미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덤벼드는 겁니다,

그래놓고는 안색이 변하였다 그랬습니다,

안색이 변하여 가지고 막 덤벼들었습니다,

그 속에 이미 사탄의 마음이 있어서 그리고는 질투심이 유발되어 가지고 어떻게 했습니까, 동생을 죽였잖습니까, 살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서 그랬지 않습니까, 가인아 너 아우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이분이 무엇이라고 그랬는지 아세요, 거짓말을 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합니다, 그랬습니다, 그랬습니다,

이렇게 오리발을 내미는 겁니다, 이런 것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실수해놓고 무엇 하였느냐 그러면 자기가 해놓고 난 몰라요 그럽니다, 이게 다 마귀의 성품들입니다 그리고는 가인이 가지고 있는 마귀의 성품들이 있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부터 노아 홍수 때까지 노아홍수는 아담의 타락부터 해서 1600년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 1600년 동안에 죄악이 관영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가인을 닮은 성품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 바로 직전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 계획하는 것이 다 악했습니다,

이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이 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엇이라 그랬냐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 지으심을 보고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했다 어떻게 하나님이신데 미리 다 아시는 분이신데 한탄하시고 근심하십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이 되십니다, 질그릇에다가 하나님의 모습을 집어넣어주니 이놈들 가봐야 얼마나 가겠느냐 그냥 이 정도구나 그러면서 하나님이 한계가 있구나,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 질그릇이라는 것은 이렇구나,

라는 것을 하나님이 한번 다시 재확인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노아홍수가 있은 후에 누구누구가 살아났습니까,

노아의 8가족이 살아났습니다, 그 후부터 하나님은 노아홍수를 왜 일으켰냐면 하나님이1600년 동안 사람들이 점점 더 악해져 가는 겁니다,

질그릇이 이제는 깨어지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제는 안 되겠다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더 깨는 겁니다, 그것이 노아의 홍수입니다 더 깨어가지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환경의 변화를 더 나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홍수이후에 사람들을 다 점멸시키고 그 후에 나이도 더 격감을 시켜 버렸습니다, 나이도 급격한 격감이 일어납니다,

노아의 아들 셈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까지가 10대거든요, 그것도 창세기10장26절부터 보시면 나오는데요, 거기에 사람들 나이를 이렇게 보면 창세기5장에 나오는 아담에서부터 노아까지의 나이와 엄청나게 구별이 됩니다, 셈부터 시작해서 주욱 나오는데 그 후부터 나이가400세.300세.200세.100세 이렇게 나이가 내려갑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몇 살에 죽었느냐면 205살에 죽었습니다, 데라는 셈에서 9대손입니다 셈에서 10대손이 아브라함입니다 셈의 아버지 노아 때 까지만 하여도 근 1000년씩 살은 사람들이 환경이 나빠져 가지고 데라가 205세에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처사라는 127세에 죽었습니다, 이삭은 180세에 죽었습니다, 야곱은 147세에 죽었습니다,

요셉은 110세에 죽었습니다, 모세는 120세에 죽었습니다,

여호수아는 110세에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약 500년 후에 유명한 분이 다윗이 나옵니다, 주전1000년인데 아브라함 후 1000년 된 사람인데 다윗은 몇 살에 죽었냐면 70세에 죽었습니다, 다윗은 나이가 계속 급감하는 겁니다, 모세가120살까지 살았잖습니까, 그렇지만 모세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면 500년 후 사람이거든요 아담부터 시작하면 2500년 후 사람이 모세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면 1500년 전 분이십니다 모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70정도 밖에 못살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만 120살까지 살았습니다, 시편90편10절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모세가 쓴 글이거든요 우리연수가 70이요 강권하면 80이다 그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금부터3500년 전의 사람들의 나이가 70살 이었다는 겁니다, 잘 살면 건강하게 살면 80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를 보면 지금부터 2000년 전입니다 예수님 당시를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보고 내가 2000년 전에 아브라함하고 같이 지냈단다,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8장에 보면 그렇게 써놓았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유대인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여보 당신30세 된 젊은 사람이 어떻게 2000년 전에 아브라함과 같이 지냈다고 그러느냐 당신 지금 나이 50도 아닌데 우리말 같으면 환갑도 안 된 젊은이가 이런 말입니다 예수님 그 당시에는 50이 환갑이었든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병원도 좋지 않고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으니까 환경이 그렇게 나빴습니다, 오늘날도 환경이 나쁜 곳에서는 50살을 넘기지 못합니다,

특히 육식문화를 하는 사람들은 그렸습니다,

지난번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몽고사람들은 생선이나 채소를 싫어합니다, 성격이 아주 거칩니다, 육식음식문화가 나이가 수명이 이렇게 단축되는 겁니다, 그것도 저주 같습니다, 홍수가 일어난 후에 창세기8장에 보면 무엇이라고 써놓았는지 아십니까, 홍수가 일어난 후에 하나님이 살아있는 동물 육식을 먹게끔 하였습니다, 창세기8장22절을 보세요,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홍수이후에 사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9장3절에 3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 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째 먹지 말 것이니라, 왜냐하면 그 피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우리가 상징하기 때문에 이때부터 홍수이후에 그러니까 지금부터 몇 년 전입니까 홍수가 주전 2500년 전이거든요 지금부터는 4500년 전에 갑자기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육식은 이게 복입니까 저주입니까 이게 복이 아닙니다, 그러면 채식은 복입니까 복이 아닙니까, 그것도 저주의 상징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에덴동산에는 채식이고 육식이고 없었습니다,

다른 것을 먹었습니다, 한번 씩 혼내줄 때마다 음식을 주시는데 그 음식모양이 가면서 점점 나빠졌습니다, 혼 내 줄때마다 그런데 이 육식을 왜 먹게 되었을까요, 우리 육이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육이 단백질이 필요합니다,

탄소화물이 필요하고 단백질이 필요한데 모든 조직이 활성화 되려면 단백질이 필요합니다, 단백질의 재료가 채식에서 나오는 단백질은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속에서 삶이 어려워지고 환경이 나빠지니까 이제는 식물성 단백질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이 사회가 악하여져서 너희들 고민도 많고 욕심도 많고 경쟁도 많고 이런 복잡한 사회에서 너희 에너지를 다 뽑아버린다 그러니까 이제는 너희들 체식가지고 안 된다는 겁니다, 단백질 공급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동물을 잡아먹으라는 겁니다,

동물에서 나오는 단백질 그런데 동물을 먹을 때 기름을 먹지 말라 기름까지 먹으면 그것이 성인병으로 변하여 버리는 겁니다,

내장 먹으면 안 되고 그런데 우리는 내장 먹고 선지피 먹고 우리는 가리지 않고 다 먹습니다 얼마 전에 K B S에서 장수마을 프로그램 제가 유심히 보았습니다, 거기에 뭐가 나오느냐면 세계에 장수마을이 여러 곳이 있는데 그중에 두 곳은 어떤 곳이냐면 고기만 먹는 동네입니다 고기만 주식으로 하는데 장수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K B S카메라가 거기 가서 찍었습니다,

이분들이 어떻게 고기 육식을 먹는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장수 하는가 가서 보니까 이유가 있더랍니다, 어떻게 고기를 먹는가 하면 고기를 푹 삶아서 기름기 다 건져내고 또 삶고 그래가지고 기름을 다 제거한 고기를 국물은 먹지 않고 고기만 뜯어서 먹는 답니다, 카자흐스탄과 중국 국경지역입니다 이슬람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런데 보통 젊은 사람이 80. 90입니다 또 한군데를 보여주는데 일본 오끼나와를 보여 주는데 오끼나와에도 80. 90이 젊다는 겁니다, 왜 그렸느냐면 그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삶는데 한번 삶고는 기름기 다 뽑아내고는 또 삶고는 그다음에 거기에 소스 바르고 해서는 삶아서 기름기를 다 뽑아가지고는 소스를 발라서 먹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도 결론을 이렇게 내리는 겁니다,

고기를 삶아서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야 고기 안에 병균도 죽고 기름기가 다 빠진다는 겁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그 속에 들어있는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불고기 구워먹는 것 이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기름기가 안 빠진다는 겁니다, 삶아서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기름기를 뽑아내어야 된다는 겁니다, 식당에서 숯불에서도 화학 성분이 나온답니다, 그래서 불고기니 갈비니 구워먹는 것 절대로 먹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냉면집에 가면 수육을 먹어야 됩니다,

이렇게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이제는 이렇게 고기까지 못 먹게 만들어 놓고 고기도 우리가 선별해서 먹지 않으면 우리가 성인병 걸리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홍수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홍수 후에 육신의 변화만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의 변화 혼의 변화도 이것도 엄청나게 더 심화시켰습니다,

사탄의 성품으로 더 많은 혼의 마음이 사탄의 마음으로 변하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홍수이후부터 사람들 보면 지금은 더 심하지 않습니까,

마지막 때는 더 심하다 그랬습니다, 우리 속에 지금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세상 사람들 볼 것 없이 내 마음에 지금 뭐가 들어 있습니까,

마귀의 성품들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내 마음에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미움이 들어있고 질투가 들어있고 시기가 들어있고 다툼이 들어있고 혈연 지연 학연으로 편 가르고 있고 이게 전부 마귀의 성품들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면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습니다, 이기심. 분 내는 것. 원수 맺기. 술 취함. 당 짓기. 분쟁. 혈기 부리기. 불만. 불안. 초조. 이간질. 불평. 평강이 누구 보면 사랑스러운 모습보다도 그냥 밉기만 하고 이런 마음으로 꽉 차있습니다 그냥 찬양하고 뭘 다하는데 교회가 그것이 더 심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그런 것 없는 줄 알았는데 교회에오니 그런 사람이 더 많아 혼돈되어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헌금 많이 내고 성경 많이 알고 그런 사람인데 보니까 이런 것들이 더 많습니다, 이게 성령님과 하나님말씀이 믹서가 되어서 막 나오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혼 돈 되는지 아십니까,

이게 깨끗하지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이 이런 모습이 있느냐 없느냐 다 가지고 있지만 이런 걸 없애려고 노력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매일 눈물 흘리며 주여 내가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 보면서 저분이 저런 모습이 있구나, 나하고 똑같구나,

내가 더 심하구나, 자꾸 비교하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 마음이 있을 때 용서해주는 마음이 들어오고 우리가 이런 마음을 다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굴을 보면 웃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심각합니다,

또 우리가 성경 많이 알고 또 영적인 사람들 보면 더 심각합니다,

얼굴에 평강이 없는 겁니다, 왜 그렸습니까,

이게 영적으로 잘못된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일수록 밝아야 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마귀의 성품이 나갔다는 소리입니다 순진해지고 밝아지고 그런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인류역사는 계속해서 사람의 마음이 더 악해지고. 악해지고 악해지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고 왜 하나님이 악하도록 허락하여 놓았는가,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다 쥐고 계십니다, 우리가 더 못났고 우리가 너희들은 사탄의 밥이 될 수 있는 질그릇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점점 더 악하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소수의 사람들 너희들 그것을 깨달았느냐, 내가 이제 다 회복시켜줄게 그런 마음 겸손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가지도록 하나님이 지금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계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보고 너희 존재가 누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끼리 있으면서 아 저분의 존재가 저렸구나, 그래서 우리가 뭘 해주어야 됩니까, 저분이 질그릇이구나,

소위 용서해주고 이해하여주라는 겁니다,

너희들 똑같은 질그릇들이다 하나님이 내가 너희들 질그릇인데 오늘도 내가 너희들 알아주고 있지 않느냐 오늘 우리 모두 하나님이 율법가지고 따지면 여기 앉아 있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다리몽동이 다 부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안 하시잖아요, 너희들 질그릇이야 그러면서 안아주시고 또 안아주시고 나의마음을 받아서 너희들도 이웃들에게 똑같이 베풀어라 싸움하지 말고 베풀어라 잘났다고 도토리 키 재기 하지 말고 베풀어라 그래 베풀어라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겁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똑 같습니다 내가 조금 높아요, 높지 않습니다, 여러분이나 나나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이제 7년 환란이 큰일들이 3차 전쟁이라 하잖습니까, 앞으로 일어날 것 아닙니까 이제 그게 우리 눈에 보이잖아요, 3차 전쟁이 일어난 후에 이게 불의 심판입니다 일어난 후에 3차 전쟁이 끝나고는 천년왕국이 있습니다,

이 천년왕국은 물의 심판 전에 있었던 천년씩 살던 그 상황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겁니다, 물의 심판 전에 그래서 사람들이 천년씩 삽니다,

환경을 다시 회복시키는 겁니다, 과거에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그 천년기간의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그 때는 고기를 먹었습니까, 안 먹었습니까, 그 때는 고기를 아마 안 먹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불고기가게들은 전부 문을 닫아야 될 겁니다 채식문화를 가지게 되고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시니까 그러니까 천년씩 살 수 있을 겁니다,

천년씩 살지만 사탄은 아직 있고 세상은 어렵지만 과거보다는 덜 어지러운 겁니다, 그러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천년왕국이 끝난 다음에 심판이 있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새 에덴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새 에덴으로 들어가는 그것이 오리지널 아담을 만들었던 그 에덴으로 회복시키는 겁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지금 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불의 심판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태가 가장 나쁠 때가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 보면 이런 표현을 쓰서 죄송하지만 다 도둑놈들 같습니다, 하나같이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위주고 모든 사람들 다 죽일 놈들이고 이런 악한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에녹같이 되어야 되고 노아같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에녹은 어떤 사람 이였습니까, 하나님과 동행 했던 사람입니다 거기에 물들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성품이 하나님을 닮았던 사람 이였습니다,

우리는 그래야 됩니다,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들어있을 때 무엇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그랬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이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들어놓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임을 다시 확인하게 합니다,

나의 나약한 부분. 한시 성. 불완전성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내가 살 수 없다는 것을 자꾸 확인 시키거든요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하나의 인간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개인의 삶이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는 방법이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딱 보시고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조금만 환경을 좋게 하고 모든 걸 잘 해주면 교만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실패와 좌절을 허용하십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이끄십니다, 어떤 분은 그럽니다,

죽으라고 물질 달라고 10년을 기도하여도 나보다 악한 사람들은 돈을 잘 버는데 나에게는 어려움만 주고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 나는 안 되는군요 그렇지만 감사합니다,

나 이것 되기만 하면 완전히 딴 사람이 될 텐데요 주님 나 이것 투자하여 두 배의 이익이 되면 내가 선교하겠습니다,

하면 하나님께서 선교 좋아한다, 만약에 두 배 이익이 되면 너는 딴 짓할 거야, 주님이 아시고는 그런 사람에게 안 주십니다 그게 복입니다 그런데 저는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니야 너는 무엇인지 모르게 너는 교만하게 된다, 안돼 너는 진흙이야 너는 질그릇이야 자꾸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는 있는 그대로 만족해라 그러는 겁니다,

그 안에서 평강을 누려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오늘날 이 상황이 제일 좋은 상황이 구나 하면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세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평강을 주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용서하는 마음도 주시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도 주시고 주님 저 사람은 나보다도 잘 났지 않은데 모든 게 잘 풀립니까,

그런데 내가 영성으로 깊이 그 사람을 들여다보면 어리석다는 겁니다,

저게 하루아침에 다 없어질 텐데 저사람 보니까 교만기가 조금 보이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 제가 없는 것이 훨씬 좋군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는 하루 세끼 먹고 있잖아요, 이 훈련 그러면서 하나님의 위대성을 내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계속 깨닫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시구나, 나는 진흙이고 질그릇이시구나,

이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는 깊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 그게 영성이 깊다, 라는 겁니다, 우리가 영성이라는 것이 딴 게 아닙니다,

하나님중심으로 생각하시면서 오 하나님 너무나도 위대 하십니다,

나는 흙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자꾸 느끼는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아시겠지만 교만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말로 제가 K S마크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미국에 가서 할 것 다하고 대학생활만 20년 했다고 그랬습니다, 공부도 엄청나게 제가 많이 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모자란 사람입니다 공부만 하였으니까요 그러니까 공부벌레 아니면 학교 다니는 것이 저사람 직업이야 이런 식으로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자칫 잘못하면 교만하게 됩니다, 자랑거리가 많아지는 겁니다, 아는 체하고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하나하나 손보시는 겁니다, 손보시면서 이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나를 과거 10년 동안 밑바닥부터 다시 돌아가게 하여 선교 지를 많이 다니면서 밑바닥사람들과 같이 지내게 하시면서 그분들 보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구나 내가 이렇게 은혜를 많이 받았구나, 오지를 다니니까 태국까지만 오면 태국공항에 내리면 이게 천국 같습니다, 그리고 태국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타고 한국에 오면 낙원이구나,

그런 걸 느낍니다, 우리나라가 너무나 잘 삽니다 그러다가 미국가면 거기는 천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 천국에서 지옥으로 왔다 갔다 해 보았습니다 과거10년 동안 해보았는데 알고 보니 이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래서 지금도 여러분들이 저를 보면 제가 아직도 교만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더 많이 깨어져야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85세 까지 사역 좀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진흙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세요,

그것이 신앙생활이고 그것이 영성생활입니다,

여러분들 어떤 환경에 있든지 이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깨시려고 그러구나, 환경의 변화를 주님이 나에게 허락하시구나,

왜냐하면 기독교의 전체역사를 보니까 때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환경의 변화를 자꾸 주시는 겁니다,

이유는 너 가 누군가를 알아라, 내가 누군가를 알아라,

이걸 자꾸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있을 때 마다 이걸 해결하여 주십시오, 해결하여 주십시오,

하는 것 보다 주님 이걸 통해서 주님이 누구신가를 나에게 분명히 더 가르쳐 주시고 내가 누군가를 스스로 더 깨닫게 해 주세요 이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레이시아 어학원(eskyedu) :: 창세기 3장19절

“All your life you will sweat to produce food, until your dying day.

Then you will return to the ground from which you came.

For you were made from dust, and to the dust you will return.”

“너는 먹기 위하여 얼굴에 땀을 흘리고, 열심히 일하다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는 네가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직독직해 & 문법 & 중요 표현 및 단어]

All your life / you will sweat / to produce food / until your dying day.

네 평생을 / 넌 땀을 흘릴 것이다 /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 너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 넌 죽는 날까지 먹기 위해 평생을 땀을 흘릴 것이다.

[ until : ~까지 계속 ]

[창세기 3장 설교문] “인간의 저주”(창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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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3장 설교문 중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저주받은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의 저주”(창3:16-19)

오늘 말씀은 아담과 여자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면 결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나님은 강력하게 말씀하셨는데 인간들은 그것을 먹음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이 죄 때문에 결국 인간들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여자에게 저주의 내용을 말씀하십니다. 너는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여 받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짓기 전에는 해산의 고통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라는 단어는 (רבה라바)입니다. 히필을 사용하고 있고 강조 문입니다. 많아지게 하다, 넘치다, 강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자는 죄를 짓고 나서 임신하여 출산하는 고통을 엄청나게 많아지게 되고, 넘치게 되고, 강하게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고통을 하나님이 강력하게 주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라는 문장에서 ‘원하고’라는 단어는 (תשוקה테슈카)입니다. 뒤쫓다, 원하다, 갈망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나서 남편을 항상 뒤쫓아 사는 인생이 되고, 남편을 원하고, 남편의 그늘에서 사는 존재가 되고, 항상 남편을 갈망하면서 살게 되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남편은 아내를 다스린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스릴 것이니라’ 라는 단어는 (משל마샬)입니다. 통치하다, 주관하다, 다스리다, 라는 뜻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통치하고, 주관하며, 다스리는 관계가 됩니다. 원래는 동등한 위치였는데 여자가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남편의 통제를 받고,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완벽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어쩌면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죄를 지음으로 추락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고 다스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떨어진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은 신랑으로 표현이 되고 우리는 신부로 표현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죄악에서 구원받기 전에는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고 나면 신랑과 신부는 동등한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아담과 여자가 지은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주님과 동등한 입장으로 올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신랑과 신부의 관계에서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관계는 하나님과 동등의 관계가 되었으니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이런 말씀이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말도 조심스럽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이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파괴시켰던 것을 예수님은 다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인간이 죄악으로 파괴되어 도저히 하나님께 저주받은 것을 해결할 수가 없었는데 예수님은 이것을 완전히 자신이 희생함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해결해 주신 분입니다.

창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다음은 아담의 저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의 아내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다. 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담이 저주를 받았는데 왜 땅이 저주를 받았을까요? 이것도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땅은’ 이라는 단어는 (אדמה아다마)입니다. 붉어지다, 붉게 물들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실 때에 흙에서 아담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흙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말은 아담의 근원은 흙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담을 저주하게 되니 결국 땅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근원을 저주하여 고통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의 문장에서 ‘수고하여야’라는 단어는 (עצבון이차본)입니다. 근심하다, 슬퍼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결국 아담은 저주를 받아 평생토록 근심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죄로 인한 저주입니다. 육신이 힘든 것은 쉬면 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고통과, 마음의 고통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잠 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이렇게 심령의 근심은 사람의 뼈를 마르게 하여 골수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아담은 평생토록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번뇌하고, 슬퍼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육신이 사는 930세 동안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수고하지 않으면 땅에서 나오는 소산을 먹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열심히 일을 해야 먹고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만 섬기면 고통도 없고 평생 즐거운 삶을 살 수가 있었는데 한 순간 죄를 짓고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 즐거움과 낙을 찾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결국 일을 할 때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창 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땅은 저주를 받아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것들을 보면 가시가 많이 달려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벼도 가시가 있고, 보리나 밀도, 가시가 나와 있습니다. 과일로는 복숭아도 먹으려면 겉에 가시가 나와 있습니다. 밤도 가시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먹는 주식이 가시가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가시를 제하고 먹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영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고하고 애쓰면 더 은혜가 됩니다. 내가 말씀을 더 연구하고, 듣기를 사모하고, 열정을 가지고 말씀을 먹으려고 하면 꿀 송이처럼 달고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충대충 하면 말씀도 은혜가 되지 않고 나에게 별로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먹는 과일이나 주식들을 보면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알맹이는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것 같지만 속에는 아주 맛있는 것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벼도 속 알맹이를 먹고, 보리나, 밀도 알맹이를 먹고, 밤도 가시를 발라내야 먹을 수 있고, 호도도 껍데기를 까야 먹을 수가 있습니다. 포도도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만 먹습니다. 이렇게 많은 과일들이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를 먹는 것처럼 영적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이 흠모할 것도 없고, 외모적으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속으로 들어가면 엄청난 비밀이 있고 영생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영적인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진리를 깨닫기를 원한다면 이것은 법칙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나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많은 기도와, 수양과, 말씀을 읽게 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 깨닫게 되고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하늘에서 순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를 한 것입니다. 깨달음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기초적인 말씀의 기본이 있어야 하고 이것을 토대로 하나님도 깨달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창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은 땅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먹고사는 존재가 됩니다. 일을 하지 않고는 쉽게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흙에서 취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라는 문장에서 ‘취함을’이라는 단어는 (לקח라카흐)입니다. 푸알, 완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탈취하다, 강권하다, 잡혀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푸알로 강조수동입니다. 흙에서 취함을 받은 것이 엄청난 탈취와 강권함으로 잡혀 가듯이 아담은 흙에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쉽게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고뇌 속에서 어떻게 인간을 창조해야 할까?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탄생된 것입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도 평생 하나의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행착오와 열정을 가진 후에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시고 최고로 만들기 위해서 힘을 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탄생된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수억만의 경쟁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엄청난 축복입니다. 수억만 마리의 정자들과 싸워서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입니다. 지금도 수억만 마리는 난자를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난자를 만나 생명을 만들어 탄생시킨 하나님의 놀라운 걸작품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생명으로 지음을 받기 위하여 강조수동으로 정자들끼리 싸우고 경쟁하여 하나의 난자를 만나기 위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뱃속에서 10달 동안 열심히 먹고 자라나야 하고 이 세상에 나올 때는 얼마나 큰 고생이 있었습니까? 이렇게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여 자라게 하고 태어나게 하는 것이 고통입니다. 그러면 엄마는 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많은 고통을 인내한 후에 아이를 출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한 영혼을 잉태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엄청난 고통과 고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잉태할 때에 얼마나 큰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수억만 마리의 정자들과 경쟁하여 승리한 것과 같은 확률입니다. 이 세상에 60억 인구가 있는데 그곳에서 내가 선택받았다는 것은 정자가 난자의 선택을 받아 생명을 잉태하듯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은 엄청난 기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생명을 잉태하여 영원한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는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밖의 세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달의 인생을 살고 나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영원한 세상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각하듯이 엄마 뱃속이 전부다. 라고 살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으로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세상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예수님으로 생명이 잉태되었기 때문에 영원한 세계로 부활되어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장사하여 불에 태우면 남는 것은 한 줌의 흙 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성분을 조사하면 흙과 똑같은 성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생명을 잉태해야 합니다. 어쩌면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짧은 10달을 살면서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의 짧은 인생을 살면서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엄마 뱃속이 전부가 아니라 이 세상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곳은 거듭나지 않으면 갈 수가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생명이 잉태되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영원한 세계에 다시 태어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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