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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 14 21 | [Live] 주의 마음에 합한 기도 (에베소서 3:14-21)_주일 2부 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210103 14558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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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14-21 KRV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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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3/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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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토) “에베소서 3:14-21” / 작성: 최형철

[본문] 에베소서 3:14-21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본문은 바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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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4/18/2022

View: 6564

무릎을 꿇고 빈 기도 (엡 3:14-21) – 기멀전

설교 : 김성덕 목사 한 스승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궁금해하는 제자에게 가보로 내려오는 조각품을 주면서 값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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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9/12/2021

View: 4143

무릎을 꿇고 비는 기도(엡3:14-21) 20210725 > 설교문

세상 사람들은 겉 사람의 강건을 위하여 시간과 돈과 재물과 온갖 관심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속사람의 강건함을 통해서 겉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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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smc.kr

Date Published: 1/23/2021

View: 3845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엡 3:14-21) > 설교자료실 – 기독정보넷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엡 3:14-21) : 강문호 목사 길을 가다 얼른 본 광고입니다.어느 타이어 판매 가게 앞에 붙어 있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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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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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3장 14절 – 21절 – 하늘의 것을 구하며 주의 사랑 …

에베소서 3장 14절 – 21절 – 하늘의 것을 구하며 주의 사랑 안에서 풍요함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 주님 오늘도 은혜로 깨워 주시고 하루를 시작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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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2/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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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라 엡 3: 14-21절 1. 12. 14 – 기독뉴스

그러나 항해 나흘만인 4월 14일 밤 11시 40분, 타이타닉은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부류빙산과 충돌하는 불의의 사고로 2시간 40분 만에 침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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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ld.kidoknews.net

Date Published: 5/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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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3장 14-21절 말씀 묵상 – 네이버 블로그

에베소서3장 14-21절 말씀 묵상 … 유대인과 모든 이방인들 즉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은 바울은 하늘과 땅의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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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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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서 교회를 위해 드려야 할 기도(엡3:14-21) – 열린교회

고난 속에서 교회를 위해 드려야 할 기도 에베소서3:14-21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는 책이 있습니다. 강원희 의료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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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olin.or.kr

Date Published: 2/4/2021

View: 3120

내면의 변화를 갈구하는 기도 (엡 3:14~21)

내면의 변화를 갈구하는 기도 (엡 3:14~21) … 21절 –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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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anho0324.tistory.com

Date Published: 6/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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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주의 마음에 합한 기도 (에베소서 3:14-21)_주일 2부 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210103
[LIVE] 주의 마음에 합한 기도 (에베소서 3:14-21)_주일 2부 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210103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엡 3 14 21

  • Author: 베이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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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실시간 스트리밍 시작일: 2021. 1. 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UAkawJ3udY

에베소서 3:14-21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

에베소서 3:14-21 KRV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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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0(토) “에베소서 3:14-21” / 작성: 최형철

[본문] 에베소서 3:14-21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본문은 바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는 1장과 3장 두 번에 걸쳐 바울의 기도문이 등장합니다. 본문의 기도는 에베소서의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들어가는 통로의 역할을 합니다. 1~3장은 주로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말씀을 담고 있다면, 4장부터 시작되는 후반부는 주로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내용을 담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을 다루는 후반부의 삶을 위해서는 사람의 능력이나 계획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그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4~15절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고 밝히며, 16~19절은 그가 간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20~21절은 기도를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맺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비노니(14-15절)] [(14-15)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본문은 ‘이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이러므로’는 앞서 3장 1절에서의 ‘이러므로’와 동일한 의미를 지닙니다. 즉, 바울은 2장 20-22절까지 에베소교회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함께 지어져간다고 증거했는데, 이제 함께 지어져가는 교회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라고 고백합니다. ‘각 족속’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가족 된 모든 교회를 뜻합니다. 앞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가족(권속)이라고 증거했었습니다(엡 2:19). 즉,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이란 하늘에서 이미 영광 중에 있는 성도들과 아직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포함해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어느 곳에 살든지, 그 신분이 무엇이든,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부하든 가난하든, 어떤 피부 색깔을 가지고 태어났든지 한 아버지의 자녀이며, 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차별이 없으신 분이심을 기억해야 하며, 더욱 하나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무릎을 꿇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을 통해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간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구하노라(16-19절)] [(16-17a)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바울은 먼저 성령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올곧게 세워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육신이 지배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새롭게 살아가는 속사람이 강건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속사람이 강건하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세상의 유혹과 고난, 핍박 속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질 때 세상의 어떤 유혹과 핍박, 어려움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했을 때 그들은 드디어 담대히 나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었으며, 더이상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상황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해지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는 것은 사실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는 것은 바로 성령에 의한 것이고, 그분이 우리 가운데 내주하실 때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바로 속사람의 강건함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게 해달라는 간구를 할 때, ‘거주하다’라는 의미의 ‘카토이케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나그네가 하룻밤 묵어가는 것이 아닌, 자기 집에 있는 주인의 거처를 명확하게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즉,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언제나 거주하여 주시기를, 그래서 우리를 통제하고 주관하고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성전, 기도하는 집으로 가꾸어 주실 것입니다.

[(17b)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바울은 사랑에 기초가 된 삶을 간구하며, 농업의 비유와 건축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두 비유는 다 구약과 예수님의 가르침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굳게 뿌리가 박히는 것의 중요성은 이사야 선지자가 이 세상 통치자에 관해 말한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이사야 40: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뿌리 박지 않은 것의 위험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대조적으로, 바울은 성도가 그들의 뿌리를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에 깊게 박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바울은 성도의 삶의 터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굳어지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이 비유 또한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건축자(마 7:24)를 말씀하셨던 내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무의 뿌리와 집의 터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굳건한지 평소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련의 폭풍우가 올 때, 사랑 안에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해집니다. 바울은 비록 감옥에 갇힌 자(3:1) 되었고, 여러 환난을 당하였으나 자신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의 중심에 굳건하였고 삶의 초석이 되었기에 사랑 안에서 삶을 세워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18-19)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울을 통해 충분히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에베소서 1장과 2장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신 예수님의 사랑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의 무한한 너비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성도를 세상에서 강건하게 지키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기도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능력과 주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만큼 그 사랑에 보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란 온전하신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함의 수준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달라는 바울의 기도가 담대함을 넘어 무모해 보입니다. 여전히 죄악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충만하신 상태를 꿈꾸며,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이며, 비록 여전히 죄악 속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수준이 얼마나 온전한지를 보여줍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언젠가 영화로운 순간이 다가오면 하나님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게 되겠지만,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충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아직 완전한 충만함은 아니지만 이미 시작된 충만의 단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앙은 더욱 성숙해져가야 하며, 우리의 인격은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연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고, 더욱 하나님의 충만하심 안에서 온전해져야 합니다.

바울은 결코 이것이 에베소교회의 성도들 스스로의 힘으로나, 바울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지금 하나님 아버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강건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굳건하게 하시며,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20-21)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상황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을 믿으십시다. 우리가 생각하고 기도했던 것보다 더 넘치도록 이루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그 권위를 인정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지기보다 겉사람을 치장하기 위해 힘썼으며,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으로 삶의 기초를 삼기보다 세상의 자랑거리에 마음을 쏟았으며, 신앙의 연수가 많아질수록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보다 더 자기중심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진리의 말씀 안에서 주님께 간구하는 인생 되게 하옵시고, 날마다 우리의 인생을 기도하는 집으로 가꾸어가는 은총을 허락해 주옵소서. 연약한 우리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품고 나아가오니 오늘도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본문이 왜 에베소서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잇는 통로가 됩니까?

2. 바울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3. 어떻게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질 수 있습니까?

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 뿌리가 되고 기초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작성: 최형철)

무릎을 꿇고 빈 기도 (엡 3:14-21)

– 설교 : 김성덕 목사

한 스승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궁금해하는 제자에게 가보로 내려오는 조각품을 주면서 값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 제자는 먼저 양곡상에 들러서

[ 이 보물을 드리면 내게 무엇을 주겠소? ] 하고 물었더니

[ 쌀 한말을 주겠소. ] 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동네에 부자집 영감님에게 찾아갔습니다.

부자는 평소 소장품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 소 한 마리와 비단 한 필을 주겠다 ] 고 합니다.

그러나 제자는 거절하고 골동품상으로 찾아갔습니다.

조각상을 유심히 살펴본 골동품상 주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 이 물건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대로 주인을 만나면 부르는 것이 값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이 말을 듣고 스승에게 돌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제자의 설명을 들은 스승은 말하기를

[ 사람은 배를 채우는 쌀 한 말에 자신을 팔아 넘길 수도 있고,

얼마만큼의 돈을 받고 팔아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을 잘 만나면 자신을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 ] 고 하더랍니다.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 에 따라 우리 인생의 가치가 달라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주인의 손에 붙들려지느냐? 에 따라 값이 달라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향해 귀중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기원하는 기도한 내용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기도하는 데 세 가지 자세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서서 기도하는 자세입니다(막11:25절).

이것은 그 당시 보통 유대 사람들이 기도 드리는 자세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눅18장13 절에 나오는 세리와 같이

엎드려 기도 드리는 자세로 이것은 보통 자복하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간절한 기도, 겸손한 기도의 자세를 말합니다(엘리야의 기도처럼)

오늘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빈다고 합니다. 왜 무릎을 꿇고 빌며 그리고 무릎을 꿇고 빈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봄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깨닫는 귀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먼저 사도 바울이 누구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본문은 ‘이러하므로’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엡 3:1-13절을 받는 말씀으로서

[ 하나님께서 내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게 하셨고, 하나님의 일군이 되게 하셔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전하게 하셨으므로 ] 라는 말입니다

나도 너희에게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앉겨다 주기 위해

이렇게 너희를 위해 무릎 끓고 빈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14-15절에

[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되시는 하나님은

1) 모든 이름을 주관하시는 우주 만물의 통치자이십니다.

2) 동시에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아버지가 되십니다.

여기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이란 말은

이름은 존재 가치, 존재 의미를 말합니다.

지난 1998년 11월 2일에 미국 뉴욕시 맨허튼 중심가 센트럴 파크 공원에서

많은 시민과 기자들이 모여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후 1시 12분

드디어 양손에 특수 지팡이를 짚은 한 중년부인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중증 장애인 <조 코플로위츠(50세)>라는 여자였습니다.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이 된 그 여자분은 절룩거리며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98년 뉴욕시티 마라톤 대회 마지막 주자였습니다.

기록은 31시간 9분이었습니다.

그는 25세때 다발성 경화증이란 병으로 신경이 굳어지고

언어, 시력장애, 운동마비 등의 증상으로 고통받는 장애우였습니다.

그는 모든 대회 참가자 3만 1천 3백34명의 참가자가 골인한 뒤

대회가 끝나고 교통통제가 풀리고 자동차가 다시 거리에 들어찼지만

지팡이를 짚고 걷고 또 걸어서 결승선에 도착했습니다.

당뇨증세로 걷다가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걸었습니다.

모든 시민이 잠들었을 때도 걸었습니다.

그녀는 왜 이렇게 힘든 마라톤 경기에 아픈 몸으로 참가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 이 마라톤에 참가했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느낍니까?

지금 무엇으로 내가 존재 가치가 있다고 느낍니까?

지금 무엇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까?

바울은 지금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교회로서의 존재 가치를 심어주기 위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빌고 있습니다.

그 존재 가치가 무엇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

그리고 내게 존재의미와 존재가치를 부여해 주신 창조주 하나님 <3>

그 분은 바로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여기서 아버지라는 표현은 바로 친권적인 관계로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간절함이 필수적입니다만

그 이전에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은

바로 내게 존재가치를 부여해 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바로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 사도 바울이 무릎을 꿇고 비는 기도의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16절 [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존재가치를 가지고 살려면

가져야 할 것 중의 하나로서

곧 강건한 능력이 있어야 함을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특히 속사람이 강건해야 함은 겉사람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겉사람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 즉 속사람을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세상 사람들이 갖는 능력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강건한 능력을 가져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능력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돈, 권력일 수도 있고, 학식과 명예와 각양 재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그런 세상적인 힘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능력을 어떻게 우리가 가질 수 있는가?

바로 우리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에게 임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거짓된 세상에서 진실 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이기주의적 세상에서 이타주의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옵시고 라고 무릎 꿇고 비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고 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사탄은 항상 교회의 존재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4>

방해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약하면 흔들립니다, 힘없으면 넘어갑니다.

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하는 후계자요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딤후2:1절에 내 아들아 은혜 받아 강해야 한다 라고 권면 하면서

당시 무적군대 로마 군인들을 보라고 합니다.

당시 월계관을 쓴 경기자들을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들판에서 땀 흘려 수고하는 농부들을 보라고 합니다.

강건해야 만이 승리하고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라는 말은

바로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라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어라 는 말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담대해집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담대해지게 됩니다.

신학자 칼 발트는 [ 성령 충만이란, 하나님께 예만 하는 것이다. ] 라고 했습니다. 칼 발트 교수는

어느 날 손자가 말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손자에게 말을 가르치는데“예”부터 가르쳤다고 합니다.

한번은 아이가 싫어서 고개를 흔들면서도

입으로는“예”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여러 번 되풀이한 말이라 싫어도“예”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때 칼 발트 교수의 머리 속에 성령충만한 자의 대답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생각이 성령으로 차 있는 사람이면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싫어도“예”하는 고백이 나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께 예만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순종이 그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앞에 두시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되

마26:39절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버지 내가 원치않는 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예 하게 하옵소서 ] 라는 기도입니다.

이로 인해 만왕의 왕이 되게 하셨으며,

인류의 무릎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꿇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속사람이 강건한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두 번째 기도를 드립니다. <5>

17절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신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브라이언 카바노프>가 쓴 [ 마음의 정원 ] 이란 책에 보면

우리 마음은 정원과 같다고 합니다.

정원에는 잡초가 나기도 하고 좋은 꽃이 자라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잡초는 심지 아니하여도 잘 나고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지만 좋은 꽃은 씨를 심어도 잘 나지 않고 잘 자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잡초와 꽃이 함께 있으면

잡초는 무성해지고 꽃은 시들시들하다가 죽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잡초를 제거하고 김을 매주어야

땅에서 오는 좋은 양분을 흡수하여 꽃이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정원도 못된 생각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무성하게 자랍니다.

그러나 좋은 생각, 착한 마음은 보전하려고 애를 써도

어느 사이에 시들어 버려서 욕심이 들어오고 화를 내고 시기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을 예수님이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뜻에서

[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 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 변장은 할 수 있어도 예수님 닮아 가는 변화는 없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께 붙들려지는 마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만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속에 예수가 없이 예수 있는 체 하는 신앙의 삶은

언젠가 급한 일 부딪치면 낭패 당할 수밖에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바울의 세 번째 기도의 내용이 무어입니까?

18절은 [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 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있어서 ‘알아'(gnw’nai)는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이고 인격적인 지식임을 강조하는 용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떻게 묘사되었습니까? 19절에

[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즉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고 했는데 원문을 살펴보면

이 말은 하나의 관사 ‘토'(to;)에 의해서 제한되는 문장인데 <6>

그리스도의 사랑의 특성과 광대함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오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종교재판소는

이단 색출이라는 빌미로, 고발자나 재판 절차를 비밀에 붙인 채,

고문과 위조를 일삼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종교재판 중에서도 15세기 스페인의 종교재판이 가장 악명 높습니다.

당시 스페인 종교 재판은 적어도 30만 명 이상을 화형시켰습니다.

지구가 둥글다고 했던 갈릴레오가

발언을 취소하고 살아 나온 곳도 바로 스페인 종교재판소입니다.

그러니 감옥 안 죄수들의 참상이 어떠했겠는가.

시간이 지나 19세기 초,

나폴레옹 군대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을 침략했을 때,

종교재판소가 사용하던 감옥의 문이 열렸습니다.

신앙 때문에 투옥 당한 죄수들의 흔적이 드러난 것입니다.

특히 지하에 있는 한 감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미 썩어 미이라간 된 시신의 발목에는 착고와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는데, 감금 상태에서도 울부짖었다는 것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작고 음침한 감방 벽에는

한 신실한 그리스도챤 군사가 긁어서 새겨놓은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네 마디의 스페인어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십자가 위에는 “높이”, 십자가 밑에는 “깊이”,

왼쪽에는 “넓이”, 오른쪽에는 “길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의 현장에서도

이 죄수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깨달았고,

그것을 증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통로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사랑의 범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범위는 한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전 세계 모든 시대,

모든 종족과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다 품고도 남음이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창세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고,

현재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영원토록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7>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의 깊이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기까지 참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바다보다 더 깊은 사랑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이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살아계시며,

우리를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감당하시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직분을 감당하고 계시는 사랑입니다.

그레서 장차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왜 바울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 길이 높이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야 된다고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면 알수록 강한 자가 됩니다.

젊은이들이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을 아무도 이기지 못합니다.

사랑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을 아무도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빠지면, 우리를 이길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의 인생의 짐이 무거워도 그 무거운 짐 앞에 꺾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내 마음이 고통스럽고 비참해도

그 비참한 운명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경험하는 사람은

그 사랑의 힘에 꽉 붙들려서 절대로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넉넉히 이깁니다.

롬8장35절 이하의 말씀은

이를 얼마나 웅변적으로 잘 선언하고 있습니까?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냐? ]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다 당해 보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극한적인 상황을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선언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사랑의 힘 때문에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 사랑을 깨닫게 해 달라고 무릎 꾾고 빌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암으로 계속 투병 중에 있습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그분의 병상에 가서 <에드워드 페이슨>이라는

미국 목사님의 글을 하나 읽어 드렸다고 합니다.

그분은 44세 되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분입니다.

그가 병상에 있을 당시 자신의 누이에게 보낸 편지 중 한 토막입니다.<8>

[ 하나님은 내가 받을 축복을 하나씩 차례로 빼앗아 가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없어졌을 때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오셔서 대신 그 자리를 채우셨습니다.

비록 지금 나는 불구가 되어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내 생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합니다.

죽음의 강이 내 앞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 죽음의 강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면

한발로 뛰어 넘을 수 있는 조그마한 개울일 뿐입니다. ]

이런 사람을 누가 꺾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런 사람을 패배시킬 수 있습니까?

죽음도,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그를 패배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꽉 붙잡혀 있기 때문에 강합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까?

19절에 [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이란? 하나님의 높으심과 완전하심을 총칭합니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 편재 등과 같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들은 인간이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갈 때 점점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여지고,

하나님의 영광의 풍요함이 넘쳐나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도록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바울이 기도하고 말씀하는 핵심입니다.

또한 교회가 세워진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교인들이

이 핵심적인 것은 외면한체 종교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뭔가 핵심이 빠져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풍자한 페러디가 있습니다.

어느 장학사가 학교에 장학 지도를 나갔습니다.

과학 교재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 앞에 지구본이 있었습니다. <9>

알다시피 지구본은 공전과 자전 때문에 23.5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장학사가 학생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 학생, 이 지구본이 왜 기울었지요? ]

그러자 학생이 당황하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 제가 안 그랬는데요. ]

놀란 장학사가 옆에 있는 담임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 이게 무슨 말입니까? ] [ 아~! 그건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

장학사는 어이가 없는 듯 곁에 있는 교감에게 물었습니다.

[ 이게 무슨 말입니까? ] [ 그건 사올 때부터 본래 그랬다는 말입니다. ]

장학사는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화가 나서 교장에게 물었습니다.

[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

교장 선생도 당황해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 국산품 원래 다 그런 것 아닙니까? ]

오늘의 교육 현장을 꼬집는 풍자적인 이야기이지만 마음이 씁쓰레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 교인들이

교회가 왜 세워졌는지 모르면서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충만으로 가득 채워지고

하나님의 충만을 나타내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이란 송영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말합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

바울은 이제 마음 깊은 데서부터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에베소서 1-3장에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비밀의 계시를 다 말했습니다.

특히 이방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고,

유대인들과 동일한 하나님의 권속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 가시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입을 벌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온갖 구하는 것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10>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심지어 생각하는 것까지도

더욱 넘치도록 풍성하게 행하십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하여,

그들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도록,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알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가 기도한 것 그 이상으로,

마음에 생각했으나 기도로 표현하지 못한 것 그 이상으로

기도를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믿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로 구하거나 감히 생각하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높고 풍성하게 행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변화와 영적 성장을 위해 드리는 우리의 간구에 대하여 믿기 어려울 만큼 넉넉히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넘치는 은혜입니다.

딤전1:14절 [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

문제는 이런 풍성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얼마나 가난뱅이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방법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도 무릎을 꿇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필요합니다.

[ 주님 제가 지금 제 심령이 메말라 있습니다.

온 세상을 소유하신 분 가운데 살면서 저는 가난뱅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 고백하고 내 마음을 내려놓고

그분의 충만하신 것으로 내 심령을 채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 문을 열고 말씀을 갈급한 심령으로 받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고 그분의 사랑에 깊이 뿌리를 내려서 내 심령을 채우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솔직히 여러분 자신들을 털어놓고 채워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내 삶에서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나님의 그 충만하신 그 충만이

내 심령을 채우도록 무릎꿇고 그에게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넘치는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무릎을 꿇고 비는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일까요?

바울이 지금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무릎 꿇고 비는 기도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해야 하고 <11>

그리스도가 내 마음을 붙들어 줘야 하고

왜 그리스도의 사람을 깊이 깨달아야 하는가?

바로 성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21절 [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

이것이 바로 바울의 기도의 핵심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핵심입니다.

제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데요, 좋은 교훈을 배웁니다.

핸드폰은 항상 밧데리를 충전시켜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늘 하나님 가까이 가서 그분의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를 다시 충전시키지 아니하면

절대로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빈 껍데기만 가지고 다니지 마시기 바랍니다. 충전을 시켜야돼요.

기도로 충전시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기도한 세 가지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지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믿음으로 계시게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여러분이 충만하게 되기를 위해서

우리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4-09-05

무릎을 꿇고 비는 기도(엡3:14-21) 20210725 > 설교문

무릎을 꿇고 비는 기도(엡3:14-21) 2021. 7. 25

여러분은 언제 무릎을 꿇고 기도해 보았는가. 아니면 요즘도 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태도는 간절한 기도의 모습을 말한다.

사도 바울을 기도의 사람이었다. 특히 사도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기도 생활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에베소서 3장 15절에 보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무릎 꿇는 기도 생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사도행전 20장 36절에도 보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사역을 마무리하며 교회의 장로들과 작별 인사를 하던 중에 무릎을 꿇고 그 모든사람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사도행전 7장 60절에 보면, 스데반 집사도 순교 직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다니엘 6장에 보면, 다리오 왕이 어명을 내려서 자기 외에는 그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도록 기도 금지령을 내렸다. 그런데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명령을 어겼다.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하였다.

열왕기상 8장 54절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 앞에 봉헌 기도드리는 솔로몬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보면,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밤을 새워가며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는 장면이 나온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되”라고 하였다. 그 앞 절에 보면,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는 절대 절명의 기도의 심정을 설명하고 있다. 예수는 이처럼 죽음의 잔이 그에게서 옮겨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무릎을 꿇는 기도란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한 기도 자세가 아니다.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무릎을 꿇는 것은 간절함과 진실함을 표현하는 최고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자, 그러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무슨 기도를 드렸는가.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시기를.

사도 바울은 사람을 속 사람과 겉 사람으로 구분하였다. 16절의 ‘속 사람’이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려는 믿음의 사람을 말한다. 로마서 7장 22절에 보면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라고 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겉 사람’이란 타락한 인간의 본성과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아담의 형상을 닮은 모습을 일컫는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는 말씀으로 주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변화의 모습을 자세하게 교훈하였다.

이처럼 사도 바울의 “어떻게 하면 겉 사람을 헌 옷을 벗어 버리듯이 벗어 버리고 새 옷을 갈아 입듯이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 질 수 있을까”라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하였다.

16절의,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라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 여기서 언급하는 ‘영광의 풍성함’이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충만하심을 표현하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지혜, 은혜, 그리고 진리의 충만함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능력과 지혜와 은혜와 진리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으신 완전하신 전능자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서 성도들 구원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의 영과 혼과 육을 강건하게 하신다.

요한 계시록 5장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네 생물들가 장로들 사이에서 천천 만만의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주님을 경배하는 찬송이 나온다. 그 찬송이 가사가 12절이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그렇다. 사도 바울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은 분명하다. 바울은

“하나님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을 믿는 성도의 속 사람을 강간하게 하시기를”기도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겉 사람의 강건을 위하여 시간과 돈과 재물과 온갖 관심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속사람의 강건함을 통해서 겉사람도 더불어 다스려지는 경건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늘 새롭게 추구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게 하시기를.

바울 사도의 또 하나의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각 성도들의 마음에 계시기를 간구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시게 한다는 말은 성령의 임재, 성령의 충만, 성령의 동행을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마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계시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대답이 에베소서 3장 17절 앞 부분에 나온다.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 말이다. 그렇지 않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하였다.

그렇다. 신앙 생활이란 예수께서 내 마음에 계신 상태를 말한다. 예수께서 어쩌다가 잠시 잠깐 내 마음에 계신 것이 아니라 늘 내 마음에 상주하시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을 ‘예수의 내주(內住)하심’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상태, 즉 내주(內住)의 상태에 대하여 요한복음 14장 20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계시다”. 혹은 “성령께서 내 마음에 계시다”는 상태를 예수께서는 장차 임할 성령의 임재 시대에 대하여 예언하시듯이 설명해 주셨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이와 같은 성령을 예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라는 약속으로 교훈해 주셨다. 그렇다. 요즘과 같은 비대면의 예배 생활 중에 각 성도가 어른이든 어린이이든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예수께서 계시고, 각 사람의 마음 속에 성령께서 계시는 임재의 상태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풍성하게 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의 소중함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 각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따라 연합한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예수의 임재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 각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선언하였다. 1장 18절에서는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나. 에베소서 1장 18절 말씀의 내용은 사도 바울의 각 성도들을 향한 기도인데

누가 내 마음의 눈을 밝히셨는가.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찾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영광이 풍성하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17-23절이 성도 각 사람의 영적 성숙을 위한 바울의 기도라면 오늘 본문은 성도들의 연합인 교회를 위한 기도 내용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라는 용어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1장 22절과 23절 그리고 3장 10절에서도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라고 말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땅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셔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영혼 구원의 역사를 성취해 가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에베소서 3장 마지막 절인 21절에서도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동격화하는 내용을 접하게 된다.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과 교회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는”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만 한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거나 성령을 훼방하면 성령이 각 사람의 마음에서 떠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계시고, 성령이 내 마음에 계시게 하려면 주님을 환영하고, 성령님을 환영할 뿐만 아니라 동행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주를 믿는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포하였다.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고린도 전서 6장 19절에서는 주를 믿는 각 사람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6:19)

요즘 어느 TV 프로그램 중에 보면 동남아 며느리나 러시아 며느리 등 이웃 나라의 며느리들이 한국에 시집와서 한국 시어머니와 다른 문화 충격으로 마음고생하고 겨우 배워 조금씩 의사소통하며 서로 답답하게 대하며 살아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을 다루는 내용을 접해 보게 된다. 산 넘어 산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셔 들이고, 성령을 내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은 대하기 불편하고 어려운 시어머니 대하듯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잘 통하는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나와 함께 계신 것과 같은 상태여야 한다.

요즘처럼 답답하고 힘 겨운 때에 각 사람의 마음 속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반드시 계시기를” 서로 축복하고 간구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마음에 계신 상태를 식물과 건물에 비유해서 교훈해 주었다. 17절의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는 용어의 바탕은 사랑이다. 사랑이 뿌리가 깊고 깊게 박히고 사랑의 터가 견고해져서 굳어지는 상태를 말씀한다. 18절에서 교훈하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라는 말씀은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사랑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지식이란 것이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라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십자가 사랑이 아닌가. 그렇지 않나. 십자가의 사랑이란 것이 벽에 걸고 목에 거는 십자가 장식의 사랑이 아니쟎나. 그 사랑은 예루살렘 영문 밖으로 끌려 나가신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 나무 십자가 꼭대기에 어린양처럼 붙잡혀 매다려 죽임 당하시며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지도 모두 다 내어 주신 완전한 희생의 사랑이 아닌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그 사랑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알아야 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거룩한 연합을 이룬 공동체인 교회가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멀리하거나 교회를 거부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는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신 적이 있다. 거기서 예수는 세상 사람들의 반응을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에 예수께서는“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는 세상 사람들의 반응을 들으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셨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축복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를 멀리하면 안된다. 사도 바울이 끊임 없이 강조하는 바가 이것이다. 그 당시나 오늘날이나 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안에는 별의 별 문제와 말거리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의 거룩한 연합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싫다. 예수는 좋은데 성도의 교제는 싫다. 예수는 좋은데 뭐는 싫다.”이런 수렁에 빠져 들면 않된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성도와의 거룩한 연합을 통해서 주님이 오늘 날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는 시대적인 선교의 사명을 다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그걸 강조하는 사도 바울의 기도의 내용이 오늘 본문의 17절 하반부에서부터 이어진다. 이 땅의 온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사도 바울은“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9) 라는 입체적인 설명으로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해 보려고 씨름하고 있다. 여기서 말씀하는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이라는 이 충만(充滿)이란 온전하고 완전한 상태를 말씀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상태를“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는 말씀으로 교훈해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란 하나님이 내 마음에 찾아 오셔서 내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차고 넘치는 상태를 말한다. 즉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죄 사함 즉 대속(代贖)의 목적, 구원(救援)의 완성(完成)을 말씀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 보면 29절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로마서 8장 30절에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또 미리 정(定)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義)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榮華)롭게 하셨느니라.”

예정(豫定, predestination)

소명(召命, calling)

칭의(稱義, justification)

성화(聖化, sanctification)

영화(榮華, glorification)

이러한 은혜는 20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충만한 능력으로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무궁한 영광의 충만을 서로 축복하고 간구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무릎을 꿇고 빌던 사도 바울의 기도의 심정을 본 받아 성도 다운 성도, 교회다운 교회의 지체를 이루어 가는 복된 믿음 생활의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에베소서 3장 14절 – 21절 – 하늘의 것을 구하며 주의 사랑 안에서 풍요함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2019년 12월 17일 묵상 본문 : 에베소서 3장 14절 – 21절 – 하늘의 것을 구하며 주의 사랑 안에서 풍요함을 누리는 자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은혜로 깨워 주시고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주와 교제하는 삶으로 이끄심을 감사합니다.

주 안에 거함이 기쁨이며 삶의 능력이기에 오늘도 은혜의 보좌를 향해 나아갑니다.

내 안에 죄로 인한 부정함과 주 앞에 온전치 못한 연약함을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시고 주의 의로 옷 입게 하시며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님의 진리를 기쁨으로 대하게 하시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함께 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본문 해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를 전한 바울은 이어서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먼저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각 족속에서 이름을 주셨다는 표현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선포하며 그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간절함을 보여준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속사람(성령이 임재하시는 곳)이 강건하기를 기도한다.

이어서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에 계시기를 간구하며 성도들이 주의 사랑 가운데 거하여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간구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으며 높은지를 깨닫기를 기도하며 사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그들이 참여하여 그 사랑에 이르기를 간구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하는 것에 능력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게 하시는 분이심을 선포하면서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하기를 간구한다.

나의 묵상

이방인을 향해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되는 은혜를 증거 한 바울은 그들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그 기도의 중심적인 내용은 에베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충만함에 이르기를 간구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땅에 있는 것의 풍요함을 구하지 않고 하늘의 것,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풍요함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구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바로 하늘의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었음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두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들은 대부분 땅에 속한 것이다.

재물, 건강, 만족, 기쁨, 풍요함 등등 수많은 것의 본질은 땅의 것으로 만족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기도의 제목들도 모두 땅에 속한 것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의 필요성을 아시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채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가 땅에 것에만 눈을 두지 않고 속사람, 하늘의 것,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그것을 바라보며 소망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이야기하며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시겠다고 선포하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 6절에서 분명하게 선포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가끔씩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으셨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에 낙심을 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힘쓰고 애쓰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지만 얻지 못한 아쉬운 마음과 때로는 것이 상처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망하는 것의 대부분은 땅에 속한 것에 있으며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과 생각에서 시작된 것들이 많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를 간구하시며 자신이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간구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성도에게 주어진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이며 큰 희생과 큰 능력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알기를 간구했다.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사랑의 위대함을 알 때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않고 온전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가지고 놀던 딱지와 구슬은 그 어린 아이의 가치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겠지만 더 크고 좋은 것을 알고 더 값진 보석의 가치를 아는 성인은 아이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늘의 가치를 알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능력과 깊이를 아는 자가 하나님의 것, 하늘의 것을 구하며 그것을 얻고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들어가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성도의 성숙은 땅의 것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하늘의 것을 사랑하며 그것을 구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것의 이루어짐을 보며 기뻐하고 그것을 전하는 모습이 된다.

요한은 자신과 제자들을 향한 주의 사랑을 기억하며 요한복음 13장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오늘도 그 사랑에 힘입어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반응하여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풍성함을 경험하며 살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사랑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주의 말씀으로 하늘의 소망을 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베푸시는 은혜가 내 삶을 메마르지 않게 하시고 하늘의 것을 구하게 하십니다.

그 은혜가 크고 넓음을 고백하며 더욱 그 은혜 가운데 거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원하는 것이 잘 되지 않고 마음을 낙심케 하는 것들이 많아도 주의 신실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시며 땅의 것보다 하늘의 것을 더 사모하는 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그 은혜를 따라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며 주와 교제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로 풍성케 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라 엡 3: 14-21절 1. 12. 14

기독뉴스 개편사이트 안… 2022년 08월 12일 교계 | 사회 | 선교 | 인물/기관 시론/사설 | 칼럼 동영상뉴스 | 포토뉴스 | 설교방송 행사홍보 | 구인구직 | 벼룩시장 | 주소록 | 독자마당 | UCC | 자료실 뉴스 | 칼럼 전체섹션 뉴스 방송/사진 2세뉴스 오피니언 OR AND 기사등록 I 독자마당 I 광고후원 뉴스홈 > 오피니언 > 칼럼 > 김엘리야칼럼 2014년01월11일 18시51분 글자크기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라 엡 3: 14-21절 1. 12. 14

1911년에 타이타닉 호는 길이 260m, 너비 28m, 높이 20m의 4만 6천 톤급 세계최대 호화여객선으로 제작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2년 4월 11일, 2208명을 태운 여객선 타이타닉은 고동소리와 함께 그 위용을 자랑하며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뉴욕으로 처녀항해를 떠난다. 그러나 항해 나흘만인 4월 14일 밤 11시 40분, 타이타닉은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부류빙산과 충돌하는 불의의 사고로 2시간 40분 만에 침몰한다. 그리고 15일 새벽 2시 20분, 타이타닉은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칠흑의 밤에 대서양 검푸른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갔다.

2208명의 승선자 중에서 1513명의 희생자를 내어 세계를 놀라게 한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은 해양사상 가장 큰 악몽의 해난사고로 기록된다. 당시 세계최대의 거대하고 호화스럽던 Cruiser 타이타닉 호는 물을 막아주는 16개의 수밀격실(水密隔室)로 이루어진 이중저(二重底: 밑바닥이 두 겹) 선체를 가지고 있었고 그 중 네 개는 물이 차도 부력에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침몰위험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타이타닉의 선장 스미스(Smith)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의 노련한 일류급 의 선장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타이타닉의 비극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바다에 떠있는 빙산과 충돌하면서 두 동강이 났고 선체는 2시간 40분 만에 4000m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타이타닉 침몰사건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빙산(氷山)이다. 빙산은 말 그대로 얼음산이다. 만년설로 이루어진 빙하의 한쪽이 떨어져 나와 바다에 떠다니는 얼음산인 빙산은 물 위로 보이는 것은 10%정도며 물속에 잠겨있는 덩어리는 90%나 되는 얼음덩어리다. 그래서 빙산과 충돌하는 배는 큰 배, 작은 배 할 것 없이 모두 파선한다.

자신의 화려한 경력과 세계 최고 최강의 여객선을 자부했던 스미스선장이 ‘빙산 경고’를 무시하고 타이타닉을 달렸다가 빙산에 부딪혀 파선의 비극을 맞았듯 오늘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유명인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종교의 거물들이 자신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연약하여 유혹들을 이기지 못해 못하여 한 순간에 파멸의 비극을 맞고 있는가?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라!

1. 겉 사람과 속사람

성경은 사람을 겉 사람(Outward man; 고후 4: 16)과 속사람(The inward man; 고후 4: 16, The inner man; 롬 7: 22, 엡 3: 16), 밖으로 나타난 사람과 속에 숨어 있는 숨은 사람(The hidden man; 벧전 3: 4)으로 구분해 말하고 있다. 밖으로 나타난 사람과 겉 사람은 물 위에 떠있는 빙산과 같고, 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바닷물 속에 잠겨있는 빙산과 같다.

그래서 진짜의 자신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번지르르한 외모의 겉 사람이 아니라 사람 속에 숨어있는 내면의 사람인 속사람이다. 밖으로 노출된 당신은 빙산의 일각이고 진짜의 당신은 바닷물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빙산덩어리처럼 당신 속에 숨어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지식과 사회적 지위, 체면과 수양도덕, 철학과 종교 뒤에 숨어있는 사람 그가 바로 진짜 당신이다.

얼마 전 플로리다에 사는 유명한 사회사업가가 아동 포르노와 성학대죄로 구속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름 있는 대학교수와 사회사업가로 30년 이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 박학다식한 그의 대학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였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과 구제사업과 선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던 그가 유소년 아이들의 포르노 사진을 찍어서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작품을 내고, 미성년 성폭력 죄로 구속됐는데 구속 당시 그의 집에는 수천 개의 아동포르노 CD와 책들이 있었고, 사진 촬영에 필요한 기계들이 증거물로 압수됐다. 그 사람의 진짜는 존경받는 유명한 대학교수와 사회사업가가 아니고 성에 타락한 추잡하고 더러운 한 인간실존이었다.

북한의 제이인자였던 장성택의 처형을 두고 괴상한 소문들이 무성하다. 김정은이 보는 앞에서 장성택과 추종자 몇 명이 안대로 눈을 가리고 나무에 묶인 채 사격수들에 의해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수백발의 총에 맞아 그 몸의 살과 뼈가 산산조각이 난 후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없앴다는 소문에서 엊그제부터는 나무에 묶인 장성택과 추종자 몇 명을 3일 동안 굶긴 사나운 개 300마리를 풀어 그들을 뜯어먹게 했다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어떻게 처형됐건, 장성택은 조카 김정은에게 하루아침에 죽임을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전 세계는 30대 젊은 청년 김정은의 엽기적 사형집행에 놀라면서 앞으로의 이북과 남북관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 중에 김정은이 2년 전에 권력을 잡자마자 아버지 때의 보위사령관이었던 원흥희의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 시체를 총살시킨 부관참시(剖棺斬屍)사건이 드러났고, 지금까지 수백 명이 숙청돼 공개처형 당했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장성택과 연결된 사람들이 숙청당하고 있고 앞으로 몇 만 명이 숙청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원흥희는 죽을 당시 김정일이 화환까지 보낼 정도로 아버지가 아끼던 부하였는데 그런 사람을 부관참시할 정도며, 고모부까지 잔인무도하게 처형할 정도라면 과연 진짜 김정은은 누구일까? 선진국 스위스 유학을 다녀온 사람으로 개방과 개혁을 주도해 철의 장막을 열고 이북을 21세기 역사주역으로 만들 사람일까? 아니면 2200만 북한을 도탄에 빠뜨리고 7500만 남북한을 불행하게 만들 패역자일까? 김정은의 진짜는 누구이겠는가?

물 밖으로 나온 빙산처럼 밖으로 나타난 겉 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를 가진 존재로 본능의 욕구를 따라 사는 지구촌의 75억 모두를 가리킨다. 그러나 속사람(The Inner Man, The Inward Man; “내면의 사람”)은 겉 사람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자신, 숨은 사람(The Hidden Man)을 가리킨다. 물속에 잠겨있는 얼음덩어리가 빙산의 90%가 돼 그것이 실제 빙산, 사실상의 빙산이듯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실제의 자기 자신, 그 사람(Himself)인 것이다.

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중생의 경험이 없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의 속사람이다. 바울은 그런 사람을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사람(The one who is dead in trespasses and sins; 엡 2: 1)이라고 말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단절된 사람, 그리하여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으로 살지 않고 본능의 욕구로만 살고 육체의 소욕대로만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모든 불의, 추악(醜惡),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猜忌),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凌辱)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 29-31)고 했고, “육체(肉體)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 19-21)라고 했다.

빛이신 하나님이 없고, 생명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없으므로 속사람(The Inner Man)에 영적생명(靈的生命)이 없는 죽어 있는 자, 그리고 숨은 사람(The Hidden Man)이 흑암의 총본산 마귀사탄의 종과 노예로 육체의 본능만을 따라 더러움과 악한 것을 추구하며 사는 어둠에 속해 사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좀비처럼 육체는 살았으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인 영혼이 죽은 사람들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영혼이 거듭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영혼이 새롭게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Born Again 성도는 ⑴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아이가 있다(고전 3: 1-3, 히 5: 11-14) 이런 사람들은 말 그대로 Baby in Christ들이다. 어린아이가 젖이나 먹고 밥이나 단단한 음식은 먹지 못하듯 어린아이성도는 아직도 육신에 속해서 마음 속에 시기와 분쟁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섭섭 마귀’도 잘 들어오고, ‘괘씸 마귀’도 잘 들어와 시험에 드는 일이 많고, 미움 마귀, 시기질투 귀신, 게으름 귀신들이 자주 들락날락해 한 달에 한두 주일은 교회를 빠지고, 한 번 교회를 방학하면 몇 달 동안 교회를 멀리하며, 예배드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교인을 말씀 듣는 것이 둔한 교인, 벌써 선생이 돼 있을 교인임에도 말씀의 초보에서 머물러 있는 교인,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교인, 영적으로 단단한 식물은 소화시키지 못하는 교인이라고 했다.

이런 성도의 숨은 사람(Hidden Man)과 속사람(Inner Man, Inward Man)은 영적수준과 영적인 능력이 낮고 약해서 죄와 싸울 힘이 없고, 유혹에 약해서 지며, 말씀 때문에 당하는 시험이나 시련에도 쉽게 넘어지며,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기는 것보다는 지는 쪽이 많다. 그래서 교회생활의 연륜이 10년 20년 40년…오래돼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가 됐음에도 교회를 올 때마다, 신앙패배자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가 애창곡인 교인들이다.

바울도 신앙이 어렸을 때, 속사람이 나약하고 숨은 사람이 연약해서 마귀에게 지고 유혹에 넘어지며, 시험에 빠지고 자신에게 패배하므로 “오호라,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O wretched man that I am!(아, 불행하고 비참한 나여-아, 구역질나도록 싫은 나여-아, 쓸모없는 나여!) who shall deliver me from the body of this death?(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롬 7: 24)며 절규했던 때가 있었다. ‘차라리 예수 믿지 않았을 때가 더 편했다’며 넉두리(푸념)하는 신앙패배의 성도들처럼 자신이 비참하도록 싫었을 때가 있었다. 이것은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연약한 신앙의 어린아이(Baby in Christ)들이 모두 겪는 성장과정이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고 불같은 시련들을 잘 견뎌 신앙훈련이 잘된 장성한 성도들은 숨은 사람(Hidden Man)이 강해지고 속사람(Inner Man-Inward Man)이 담대해져서 성령으로 충만했던 바울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아도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롬 8: 35-37)를 외칠 수 있다. 신앙이 장성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음에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강하고 담대하며,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벧전 3: 4)으로 무장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⑵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성도(Grown-up Christian)다. 바울은 이런 성도를 영적으로 단단한 식물도 잘 소화시키는 성도며, 자기의 지각을 사용해 지혜롭게 이기는 성도며,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성도로 완전한데 나아가는 성도들이라(히 6: 1-2)고 했다. 이런 성도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초대형 태풍이 휘몰아치고 거대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가도 깊은 바다 속 심연은 조용한 것처럼 어떤 시험과 시련에도 그 마음이 고요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동요하지 않으며, 생활 속에서 좋은 일이나 나쁜 일 어떤 일을 만나도 욥처럼, 다윗처럼, 다니엘처럼, 바울처럼 요한처럼 자족하며 감사한다.

물론 신앙이 장성한 사람, 속사람이 예수로 충만하고 숨은 사람이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도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은 돼지 꿀꿀이죽통이 겉으로는 맑은 물이지만 바가지로 한번 휘저으면 콩나물 미역 김치조각, 무 배추 시금치, 소고기 생선가시 밥찌꺼기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다 나오듯 성령과 말씀이 충만한 거룩한 사람 속에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의 온갖 악한 생각(막 7: 21-22)이 다 있다.

심리학자들은 ‘건강한 사람은 매 27초마다 음란한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여기엔 예외가 없다. 전 세계가 성현(聖賢)으로 앙망하고 우러르는 교황청의 교황도, 일평생 동안 도를 닦은 명산고찰의 고승(高僧)도, 40일 금식기도를 열 번 스무 번을 한 거룩한 목사(牧師)도,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정치가도, 그리고 연예인 가수 노동자도 예외가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악한 생각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 악한 생각과 더러운 생각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강해질 때이다.

2.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을 강건케 하라

본문 14-18절은 바울이 에베소교인들을 위한 기도내용이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서서 기도하는 것이 관례였는데(마 6: 5, 눅 18: 11) 15절에서 바울이 “아버지 앞에 내가 무릎을 꿇고 빈다”(I bow my knees before the Father)고 한 것은 바울이 얼마나 이것들을 간절한 마음과 복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는가를 보여준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According to the riches of His glory; 16상) 기도했다고 했다. 그렇다. 성령을 통해 성도들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이뤄진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지혜와 은사인 하나님의 영광은 풍성하다. 모자람이 없다. 제한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구하는 대로 영광(榮光)을 넘치도록 채워주신다.

바울은 에베소교인들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지기’ (To be strengthened with might by His Spirit in the inner man)를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간구했다.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길만이 모든 성도들의 인생승리 신앙승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내 속사람(The Inner Man-The Inward Man)과 숨은 사람(The Hidden Man)이 강건해 지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인생승리, 신앙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속사람과 숨은 사람을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케 하지 않고 겉 사람으로만 흑암세력인 죄와 저주, 마귀와 유혹에 맞서서 싸우려는 것은 100%의 자기가 아닌 10-20%의 자기로 마귀와 싸우는 사람과 같다. 그런 사람은 부상선수가 9명이나 되는 축구팀이 게임을 이길 수 없고, 부상으로 손과 발을 못 쓰고 머리만 가지고 싸우는 격투기 선수처럼 인생과 신앙에서 백전백패일 뿐이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슥 4: 6)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죄를 이기고 대적 마귀를 이기며, 저주를 이기고 질병을 이기며, 나를 이기고 유혹을 이기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것은 당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안 된다. 당신의 결심이나 경험으로도 되지 않는다. 당신의 지식이나 머리로도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신,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김목사도 죄와 유혹에 수없이 넘어지고 마귀에게 져서 저주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부끄러운 과거도 많이 있었지만, 지난 46년 동안 주님을 섬겨 여기까지 온 오늘날, 이렇게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승리를 선언하며 나의 달려갈 길을 달음질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내 속사람(My Inner Man)과 내 속의 숨은 사람(My Hidden Person)이 쉽게 깨지지 않는 다이아몬드 금강석처럼 강인해져 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성령께서 능력으로 강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지기를 축원한다.

어떻게 해야 속사람, 숨은 사람을 강건하게 할 수 있는가? 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마 4: 1-11, 눅 4: 1-13) 마태와 누가는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므로 마귀의 시험을 이겼다고 기록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부부는 성령의 인도함 없이 자기들의 힘과 지혜로 마귀와 맞섰지만 허무하게 마귀시험에 졌고,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광야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마귀시험을 이기셨다.

바울은 성령이 우리 영, 우리 속사람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자녀인 것을 증거(證據)한다(The Spirit Himself bears witnes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children of God; 롬 8: 16)고 했다. 내 속사람, 내 속에 숨은 사람과 끊임없이 내가 하나님자녀인 것을 증거하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속사람이 지칠 줄 모르는 강한 사람이 되고 그 강한 사람으로만이 마귀를 이길 수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숨은 사람, 속사람(Hidden Man, Inner Man)이 날마다 강한 자가 되기를 축원한다.

⑵ 성령으로 기뻐할 것이다(눅 10: 21) 누가는 Jesus rejoiced greatly in the Holy Spirit: “예수께서 성령 안에서 크게 기뻐했다”고 했다. 전도보고를 하는 열두제자와 70문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게 된 것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 그리고 그들이 예수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권세가 있게 된 것을 성령으로 크게 기뻐했다는 말씀이다. 자신이 하나님자녀된 것을 성령으로 기뻐하고,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과 예수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특권 주신 것을 성령 안에서 기뻐할수록 우리 속사람과 내 속에 숨은 사람 Hidden Man은 날마다 시간마다 분초마다 강한 사람이 돼 간다. 성령으로 기뻐하므로 속사람이 강해지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

⑶ 성령의 말씀으로 무장하라(엡 6: 17) 31,102절, 신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1189장 안에 기록된 1260개의 예언은 야훼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서 입으로 말하고 책에 기록한 것이다(벧후 1: 21, 딤후 3: 16, 사 34: 16)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항상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인간의 숨은 사람과 속사람인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과 생각과 뜻까지도 감찰하는(히 4: 12) 성령의 말씀이다. 성령이 말씀이신 성경으로 마음과 영혼이 무장되는 사람은 그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강한 사람’이 된다. 빙산에 부딪히는 배들마다 파선돼 산산조각이 나듯 당신이 성령의 말씀으로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무장돼 강한 자가되므로 도전해오는 모든 문제들이 산산조각 나는 기적이 일어나길 축원한다.

아메리칸 인디언 속담 중에 ‘누렁이와 검둥이 두 마리 개가 싸울 때, 어떤 개가 이기는가? 답은 밥을 많이 먹는 개가 이긴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사람의 육신은 건강하기 위해서 소식(小食)을 하거나 때때로 Diet가 필요하지만 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는 사람이 건강하고 그런 사람이 영적싸움에서 이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게 먹거나 Diet 하는 사람치고 영적투쟁에서 이기는 사람 없다. 말씀을 많이 먹어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강해지길 축원한다.

⑷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미하라. 육체건강에서 운동은 필수적이다. 건강했던 사람도 병원에 입원하거나 여행 때문에 한두 달 운동을 안 하면 팔다리 근육이 풀어져 살이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지고 기운도 없어지며, 약했던 사람도 몇 달 동안 열심히 운동하면 근육이 불어나고 단단해지며 건강해 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찬미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미하면 우리의 영인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강해진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만일 방언(方言)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For if I pray in an unknown tongue, my spirit prays)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I will pray in tongues-I will pray by my spirit)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I will sing in tongues)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 14-15)고 했다.

방언기도(方言祈禱)와 방언찬송은 내속에 숨은 사람(The Hidden Man)과 내 속사람(The Inner Man)을 몇 갑절로 강하게 해주는 로열젤리(Royal Jelly)와 인삼녹용과 같다. 이 비밀을 안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이 하는 방언기도를 합친 것보다 방언을 더 많이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전 14: 18)고 했고. 그 고백대로 바울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초특급의 초능력을 소유한 영의 사람이 됐다.

그래서 주께서 바울의 손을 통해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자를 고치고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나는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고(행 14: 3-20) 점쟁이 귀신을 쫓나내는 기적(행 16:16-18), 그의 찬송과 기도로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의 쇠사슬들이 풀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셨고(God was performing extraordinary miracles by the hand of Paul; 행 19: 11-12)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든 자에게 얹어도 병들이 떠나고 악귀들도 떠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다. 속사람과 속사람의 대결에서 이김의 역사들이 나타난 것이다.

팔운동을 많이 하면 팔에 근육이 붙고 팔 힘이 강해지며 다리 운동을 많이 하면 다리 근육이 단단해지듯, 한국말로 하는 마음의 기도와 마음의 찬양은 마음을 든든하게 하지만 영혼의 기도와 찬양인 방언기도와 방언찬송은 속사람과 숨은 사람을 강하게 해준다. 방언기도 방언찬송으로 영혼이 강해지고 속사람, 숨은 사람이 강해지므로 당신을 통해 사도행전의 기적들이 나타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

⑸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 솔로몬은 잠언에서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한다”(잠 12: 25),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 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But a broken spirit dries up the bones; 잠 17: 22)고 말하므로 마음의 근심은 육체의 건강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뿐 아니라 뼈까지도 마르게 하여 피골이 상접한 사람이 되게 한다고 했다.

우리 마음에 숨은 사람과 속사람을 강하게 해주시는 성령을 근심시키면, 우리 속사람이 병들고 피골이 상접해진다. 성령을 근심시키는 신앙생활로는 우리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강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 30-32)고 했다.

성령을 근심시키면 구원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간음과 호색의 도덕적인 타락으로(벧후 2: 2, 유 1: 7) 하나님을 근심시켰던 노아시대 사람들이 홍수심판으로 멸망을 당했고(창 6: 6) 성령을 근심시켰던 출애굽 1세들이 광야에서 멸망 받아 가나안 입성에 실패했듯(사 63: 10)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로 구원에서 낙오되는 성도들이 주기도문 교회에 한 사람도 없기를 축원한다.

⑹ 성령을 소멸치 말라(Do not quench the Spirit; 살전 5: 19) 소멸(消滅)하는 것의 헬라어 스벤뉴테는 “불을 끈다”는 뜻이니 성령의 역사, 성령의 감동, 성령의 지시와 가르치심을 불을 끄듯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성령은 깊고 넓고 높은 지성과 예민한 감정과 굳센 의지를 가진 인격자이시고,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For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pths of God; 고전 2: 10)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다.

그 성령은 때때로 내 마음에 하나님을 위한 생각, 교회를 위한 기발한 생각, 목사님의 사역을 돕는 좋은 아이디어, 전도를 위한 열망, 선교를 위한 불타는 생각과 욕망, 기도하고 싶은 생각, 이웃을 위한 좋은 생각을 주신다. 그럴 때 성령의 욕구(Desire)를 소멸치 말고 성령께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그때마다 놀랍게 우리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강해지는 축복이 있다. 그러나 성령은 인격자시기 때문에 당신 마음에 한두 번 뜨거운 열망을 주실 때, 당신 생각으로 순종하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거역하면 성령은 소멸된다.

어느 기도 많이 하는 권사님이 일주일을 금식했다. 금식 마지막 날 밤 10시, 2시간 후에 금식이 끝나면 먹으려고 죽을 준비하려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같은 동네의 어느 집을 심방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평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밤늦게 찾아가는 것이 부담이 돼 망설이는데 성령께서 강하게 ‘그를 찾아가라’ 하신다. 할 수 없이 옷을 입고 그 집을 찾아갔는데 그날 그 권사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그 집주인은 일 년에 한두 번 교회를 나왔던 사람이었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날 밤에 약을 먹고 자살을 하려고 했다가 자살 바로 직전에 권사의 심방을 받고 기도를 받은 후 새로운 사람이 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만일 권사가 성령의 소욕을 소멸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성도가 돼 속사람이 날마다 강해지는 성도, 신령한 은혜로 충만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⑺ 경건훈련을 잘 받아라(딤전 4: 7-8) 훈련은 시련과 연단을 잘 견디는 인내이다. 돌덩어리가 순도 90도 이상 되는 황금이 되기 위해서는 수천도가 되는 뜨거운 불을 통과해야 하고, 황금이 순도 95도 이상의 순금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수천도의 불속을 지나야하며 순금이 100%의 정금이 되기 위해서는 또다시 수천도가 넘는 불속을 통과해야 된다. 우리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초강력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로 불같은 시험을 견뎌야 하고 혹독한 경건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

내가 집에 있는 역기를 처음 들었을 때, 30번을 들어올렸다. 일주일 후 50번을 들었을 때, 손이 부들부들 떨렸는데. 1년 후엔 한번에 100번, 5년 후엔 300번까지 들어 올리게 됐다. 그렇게 10여년이 지나자 한번에 400번에서 500번을 들어 올리게 돼, 스스로도 놀랄 정도가 됐었는데, 18년차인 금년 초부터는 한번에 700번까지 들어 올리게 되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비록 100여 파운드의 가벼운 무게지만 일주일에 4-5번 하는 운동에서 한주 평균 15,000번 이상을 들어 올리게 된 것은 끊임없는 훈련과 인내의 경과다.

내 속에 숨은 사람(The Hidden Man)과 내 속사람(My Inner Man)이 강(强)해지는 경건도 훈련이다. 자기 혀를 재갈 먹여 필요치 않는 말을 극도로 아끼고 삼가는 언어의 경건(개인적으로 나는 구변이 부족해 말의 실수를 줄이려고 모임에 불참하거나 말을 적게 하는 편이다)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경건, 고아와 과부를 환난에서 돌아보는 경건,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약 1: 26-27) 풍족해도 궁핍해도 예수 안에서 만족하는 Contentment(지족(知足)하는 마음), 모든 환경을 초월해 만족해하며 흡족해 하는 마음의 경건(딤전 6: 6) 기도해야할 때를 알고 주를 만날 만한 기회를 알아서 기도하는 경건(시 32: 6) 그다음 믿음에서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에까지 도달하는 여덟 단계에서 여섯 번째 단계인 경건(벧후 1: 5-7) 그리고 이러한 ‘예수 안에 경건’을 위해 불 시험으로 다가오는 핍박들을 잘 견디는 믿음(딤후 3: 12)의 훈련이 경건(敬虔)이다.

이렇게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강한 경건훈련이 잘 된 성도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택한 사람이 되는 축복이 있고(시 4: 3), 기도응답이 잘 되는 사람이 되며(요 9: 31) 하나님의 비밀계시인 주의 우림(Urim)과 툼밈(Thummim)이 있으며(신 33: 8) 은혜시대에서의 모든 시험과 대환난의 큰 시험에서 건져주시는 축복(벧후2: 9)과 대환난이 오기 전에 휴거케 하시는 축복(시 12; 1)이 있다. 경건훈련을 잘 받아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천하를 정복할 수 있도록 강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3.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마음에 계시게 하라(17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by faith) 이것이 에베소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두 번째 기도였다. 그렇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실 수 있는 것은 By faith!, Through faith!(믿음으로!)이다. 천지와 우주만물과 나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Jesus is my personal saviour)시며, 장차 세상에 오실 심판의 주이심을 믿으며, 성령하나님이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영으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이심과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 속에 예수님이 계신다. 이 믿음이 흔들리면 안 된다. 이 믿음이 바뀌어도 안 된다.

오늘 이 땅에는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같이 우리 믿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케 하는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거짓 사도들과 다른 영을 받게 하는 궤휼의 역군들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단의 일군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

예수만 구원의 길이 아니라 ‘예수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나의 노력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초월주의와 초월명상, Post-Modernism, ‘구제와 선행의 착한 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공덕설과 윤회사상, ’인간의 잠재의식을 계발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신념만능주의와 적극적사고와 사차원의 능력, 그리고 카리스마 성령운동을 내세워 성령의 은사를 빙자하여 자기 맘대로 예언하고 방언통역을 하면서 더러운 이익을 추구하며 온갖 지저분한 죄를 다 저지르는 등, 겉옷은 예수로 입히고 내용은 순수복음이 아닌 것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때에 바울의 간절한 기도처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Unfeigned faith; 거짓이 없는 믿음, 진실한 믿음, 성실한 믿음)을 갖고 그것을 지킬 것이며(딤전 1: 5, 딤후 1: 5) 야고보 선생의 가르침처럼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질 것이며(약 2: 17, 20, 26) 베드로의 교훈처럼 보배로운 믿음을 가질 것이며(벧후 1; 1) 예수님의 동생 유다의 설교처럼 거룩한 믿음을 갖고 지킬 것이다(유 1; 20) 이런 믿음이 아닌 거짓 믿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공생애에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말씀을 일곱 번이나 하셨는데(7 occurrences of ‘Your faith has made you whole’; 마 9: 22, 막 5: 34, 10: 52, 눅 7: 50, 8: 48, 17: 19, 18: 42) 그때마다 사람들의 불치병과 난치병을 고쳐주셨고, 귀신들을 쫓아내 주셨으며, 죄를 용서해 주셨고,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다. 진실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거룩한 믿음으로 2014 갑오년 청마의 해에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4.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하게 하소서!(17중-19)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의 세 번째 기도는 에베소교인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의 완성인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는 성도(Being rooted in love) 사랑 안에 터가 굳어지는 성도(Being grounded in love)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서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는 성도가 되기를 간구했다. 이것은 에베소교인만 아니라 너나없이 지구촌 모든 성도들이 깨달아 알고 도달해야할 마지막 하나님의 충만(充滿)이다.

저 광활한 우주궁창보다 넓고, 끝이 없도록 길고 길며, 몇 억조의 광년을 달려가도 도달할 수 없는 저 높은 하늘보다 높고, 인간의 언어로 그 깊이를 표현할 수 없도록 깊고 깊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광대함을 무엇으로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찬송가 404장의 고백대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이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이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는 성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도달하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는 삶, 그리스도 사랑의 터에 인생의 집을 짓는 성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한 삶이되기를 축원한다.

5. 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넘치게 하시는 분(엡 4: 20-21)

바울은 우리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지고, 진실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고 하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充滿)인 사랑으로 충만해지면, 우리의 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까지 응답을 받는 축복이 있다고 했다. 기도응답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1966년에서 69년까지 있었던 모택동의 문화혁명 때에 있었던 일이다. 문혁으로 중국에서 모든 종교는 대청소로 말살됐고, 기독교 목사들은 순교를 당하거나 투옥됐으며, 모든 신학교는 폐쇄됐고 교회들도 불에 타 없어졌으며 교인들은 깊은 산이나 동굴로 피신했을 때였다. 그때 해산이 가까워 피신하지 못한 여성도와 그를 보살피는 선교사부인이 있었다. 소와 말, 돼지와 닭 모든 짐승을 다 잡아먹은 홍위병들은 시간마다 동리를 시찰하고 먹을 것은 없는데 부인이 여러 시간 동안 극심한 진통을 겪은 후 아이를 낳았다. 그런 위급한 상황 중에 그들은 마루 밑에 파놓은 지하실 굴로 들어가 숨을 죽이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지하실엔 비상식품의 쌀과 마실 물이 조금 있었는데, 지쳐있는 산모에겐 자신과 갓난아이 젖을 위해 영양을 보충할 고기가 필요했지만 어디서도 고기를 구할 방법이 없다. 그저 생각으로 ‘고기가 있었으면’하는 때였다. 산모와 선교사부인이 땅굴에서 새벽까지 기도하고 고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장 닭 한 마리가 담을 넘어 앞마당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닭을 잡아 세 사람이 어려움을 넘겼는데 놀라운 일은 그런 일이 석 달 이상이나 계속됐다는 간증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어 간구하는 기도를 응답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까지 응답해주시는 분이다(God is able to do exceeding abundantly beyond all that we ask or think)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기도를 응답해주시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응답해주시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성경은 사람을 겉 사람(Outward man; 고후 4: 16)과 속사람(The inward man; 고후 4: 16, The inner man; 롬 7: 22, 엡 3: 16), 밖으로 나타난 사람과 속에 숨어 있는 숨은 사람(The hidden man; 벧전 3: 4)으로 구분해 말하고 있다. 밖으로 나타난 사람과 겉 사람은 물 위에 떠있는 빙산과 같고, 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바닷물 속에 잠겨있는 빙산과 같다.그래서 진짜의 자신은 사람들에게 노출된 번지르르한 외모의 겉 사람이 아니라 사람 속에 숨어있는 내면의 사람인 속사람이다. 밖으로 노출된 당신은 빙산의 일각이고 진짜의 당신은 바닷물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빙산덩어리처럼 당신 속에 숨어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지식과 사회적 지위, 체면과 수양도덕, 철학과 종교 뒤에 숨어있는 사람 그가 바로 진짜 당신이다.얼마 전 플로리다에 사는 유명한 사회사업가가 아동 포르노와 성학대죄로 구속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름 있는 대학교수와 사회사업가로 30년 이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 박학다식한 그의 대학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였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과 구제사업과 선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던 그가 유소년 아이들의 포르노 사진을 찍어서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작품을 내고, 미성년 성폭력 죄로 구속됐는데 구속 당시 그의 집에는 수천 개의 아동포르노 CD와 책들이 있었고, 사진 촬영에 필요한 기계들이 증거물로 압수됐다. 그 사람의 진짜는 존경받는 유명한 대학교수와 사회사업가가 아니고 성에 타락한 추잡하고 더러운 한 인간실존이었다.북한의 제이인자였던 장성택의 처형을 두고 괴상한 소문들이 무성하다. 김정은이 보는 앞에서 장성택과 추종자 몇 명이 안대로 눈을 가리고 나무에 묶인 채 사격수들에 의해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수백발의 총에 맞아 그 몸의 살과 뼈가 산산조각이 난 후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없앴다는 소문에서 엊그제부터는 나무에 묶인 장성택과 추종자 몇 명을 3일 동안 굶긴 사나운 개 300마리를 풀어 그들을 뜯어먹게 했다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어떻게 처형됐건, 장성택은 조카 김정은에게 하루아침에 죽임을 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데, 전 세계는 30대 젊은 청년 김정은의 엽기적 사형집행에 놀라면서 앞으로의 이북과 남북관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그런 중에 김정은이 2년 전에 권력을 잡자마자 아버지 때의 보위사령관이었던 원흥희의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 시체를 총살시킨 부관참시(剖棺斬屍)사건이 드러났고, 지금까지 수백 명이 숙청돼 공개처형 당했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장성택과 연결된 사람들이 숙청당하고 있고 앞으로 몇 만 명이 숙청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원흥희는 죽을 당시 김정일이 화환까지 보낼 정도로 아버지가 아끼던 부하였는데 그런 사람을 부관참시할 정도며, 고모부까지 잔인무도하게 처형할 정도라면 과연 진짜 김정은은 누구일까? 선진국 스위스 유학을 다녀온 사람으로 개방과 개혁을 주도해 철의 장막을 열고 이북을 21세기 역사주역으로 만들 사람일까? 아니면 2200만 북한을 도탄에 빠뜨리고 7500만 남북한을 불행하게 만들 패역자일까? 김정은의 진짜는 누구이겠는가?물 밖으로 나온 빙산처럼 밖으로 나타난 겉 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를 가진 존재로 본능의 욕구를 따라 사는 지구촌의 75억 모두를 가리킨다. 그러나 속사람(The Inner Man, The Inward Man; “내면의 사람”)은 겉 사람 속에 숨어있는 또 다른 자신, 숨은 사람(The Hidden Man)을 가리킨다. 물속에 잠겨있는 얼음덩어리가 빙산의 90%가 돼 그것이 실제 빙산, 사실상의 빙산이듯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실제의 자기 자신, 그 사람(Himself)인 것이다.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중생의 경험이 없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의 속사람이다. 바울은 그런 사람을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사람(The one who is dead in trespasses and sins; 엡 2: 1)이라고 말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단절된 사람, 그리하여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으로 살지 않고 본능의 욕구로만 살고 육체의 소욕대로만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다.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모든 불의, 추악(醜惡),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猜忌),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凌辱)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 29-31)고 했고, “육체(肉體)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 19-21)라고 했다.빛이신 하나님이 없고, 생명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없으므로 속사람(The Inner Man)에 영적생명(靈的生命)이 없는 죽어 있는 자, 그리고 숨은 사람(The Hidden Man)이 흑암의 총본산 마귀사탄의 종과 노예로 육체의 본능만을 따라 더러움과 악한 것을 추구하며 사는 어둠에 속해 사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좀비처럼 육체는 살았으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인 영혼이 죽은 사람들이다.둘째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영혼이 거듭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영혼이 새롭게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Born Again 성도는 ⑴ 그리스도 안에서의 어린아이가 있다(고전 3: 1-3, 히 5: 11-14) 이런 사람들은 말 그대로 Baby in Christ들이다. 어린아이가 젖이나 먹고 밥이나 단단한 음식은 먹지 못하듯 어린아이성도는 아직도 육신에 속해서 마음 속에 시기와 분쟁이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마음속에 ‘섭섭 마귀’도 잘 들어오고, ‘괘씸 마귀’도 잘 들어와 시험에 드는 일이 많고, 미움 마귀, 시기질투 귀신, 게으름 귀신들이 자주 들락날락해 한 달에 한두 주일은 교회를 빠지고, 한 번 교회를 방학하면 몇 달 동안 교회를 멀리하며, 예배드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교인을 말씀 듣는 것이 둔한 교인, 벌써 선생이 돼 있을 교인임에도 말씀의 초보에서 머물러 있는 교인,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교인, 영적으로 단단한 식물은 소화시키지 못하는 교인이라고 했다.이런 성도의 숨은 사람(Hidden Man)과 속사람(Inner Man, Inward Man)은 영적수준과 영적인 능력이 낮고 약해서 죄와 싸울 힘이 없고, 유혹에 약해서 지며, 말씀 때문에 당하는 시험이나 시련에도 쉽게 넘어지며,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기는 것보다는 지는 쪽이 많다. 그래서 교회생활의 연륜이 10년 20년 40년…오래돼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가 됐음에도 교회를 올 때마다, 신앙패배자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가 애창곡인 교인들이다.바울도 신앙이 어렸을 때, 속사람이 나약하고 숨은 사람이 연약해서 마귀에게 지고 유혹에 넘어지며, 시험에 빠지고 자신에게 패배하므로 “오호라,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O wretched man that I am!(아, 불행하고 비참한 나여-아, 구역질나도록 싫은 나여-아, 쓸모없는 나여!) who shall deliver me from the body of this death?(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롬 7: 24)며 절규했던 때가 있었다. ‘차라리 예수 믿지 않았을 때가 더 편했다’며 넉두리(푸념)하는 신앙패배의 성도들처럼 자신이 비참하도록 싫었을 때가 있었다. 이것은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연약한 신앙의 어린아이(Baby in Christ)들이 모두 겪는 성장과정이다.그러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고 불같은 시련들을 잘 견뎌 신앙훈련이 잘된 장성한 성도들은 숨은 사람(Hidden Man)이 강해지고 속사람(Inner Man-Inward Man)이 담대해져서 성령으로 충만했던 바울처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아도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롬 8: 35-37)를 외칠 수 있다. 신앙이 장성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음에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강하고 담대하며,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벧전 3: 4)으로 무장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⑵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성도(Grown-up Christian)다. 바울은 이런 성도를 영적으로 단단한 식물도 잘 소화시키는 성도며, 자기의 지각을 사용해 지혜롭게 이기는 성도며,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성도로 완전한데 나아가는 성도들이라(히 6: 1-2)고 했다. 이런 성도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초대형 태풍이 휘몰아치고 거대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가도 깊은 바다 속 심연은 조용한 것처럼 어떤 시험과 시련에도 그 마음이 고요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동요하지 않으며, 생활 속에서 좋은 일이나 나쁜 일 어떤 일을 만나도 욥처럼, 다윗처럼, 다니엘처럼, 바울처럼 요한처럼 자족하며 감사한다.물론 신앙이 장성한 사람, 속사람이 예수로 충만하고 숨은 사람이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도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은 돼지 꿀꿀이죽통이 겉으로는 맑은 물이지만 바가지로 한번 휘저으면 콩나물 미역 김치조각, 무 배추 시금치, 소고기 생선가시 밥찌꺼기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다 나오듯 성령과 말씀이 충만한 거룩한 사람 속에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의 온갖 악한 생각(막 7: 21-22)이 다 있다.심리학자들은 ‘건강한 사람은 매 27초마다 음란한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여기엔 예외가 없다. 전 세계가 성현(聖賢)으로 앙망하고 우러르는 교황청의 교황도, 일평생 동안 도를 닦은 명산고찰의 고승(高僧)도, 40일 금식기도를 열 번 스무 번을 한 거룩한 목사(牧師)도,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정치가도, 그리고 연예인 가수 노동자도 예외가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악한 생각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 악한 생각과 더러운 생각들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강해질 때이다.본문 14-18절은 바울이 에베소교인들을 위한 기도내용이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서서 기도하는 것이 관례였는데(마 6: 5, 눅 18: 11) 15절에서 바울이 “아버지 앞에 내가 무릎을 꿇고 빈다”(I bow my knees before the Father)고 한 것은 바울이 얼마나 이것들을 간절한 마음과 복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는가를 보여준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According to the riches of His glory; 16상) 기도했다고 했다. 그렇다. 성령을 통해 성도들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이뤄진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지혜와 은사인 하나님의 영광은 풍성하다. 모자람이 없다. 제한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구하는 대로 영광(榮光)을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바울은 에베소교인들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해지기’ (To be strengthened with might by His Spirit in the inner man)를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간구했다.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길만이 모든 성도들의 인생승리 신앙승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내 속사람(The Inner Man-The Inward Man)과 숨은 사람(The Hidden Man)이 강건해 지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인생승리, 신앙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속사람과 숨은 사람을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케 하지 않고 겉 사람으로만 흑암세력인 죄와 저주, 마귀와 유혹에 맞서서 싸우려는 것은 100%의 자기가 아닌 10-20%의 자기로 마귀와 싸우는 사람과 같다. 그런 사람은 부상선수가 9명이나 되는 축구팀이 게임을 이길 수 없고, 부상으로 손과 발을 못 쓰고 머리만 가지고 싸우는 격투기 선수처럼 인생과 신앙에서 백전백패일 뿐이다.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슥 4: 6)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죄를 이기고 대적 마귀를 이기며, 저주를 이기고 질병을 이기며, 나를 이기고 유혹을 이기며,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것은 당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안 된다. 당신의 결심이나 경험으로도 되지 않는다. 당신의 지식이나 머리로도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신, 성령으로만 가능하다.김목사도 죄와 유혹에 수없이 넘어지고 마귀에게 져서 저주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부끄러운 과거도 많이 있었지만, 지난 46년 동안 주님을 섬겨 여기까지 온 오늘날, 이렇게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승리를 선언하며 나의 달려갈 길을 달음질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내 속사람(My Inner Man)과 내 속의 숨은 사람(My Hidden Person)이 쉽게 깨지지 않는 다이아몬드 금강석처럼 강인해져 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성령께서 능력으로 강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지기를 축원한다.어떻게 해야 속사람, 숨은 사람을 강건하게 할 수 있는가? 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마 4: 1-11, 눅 4: 1-13) 마태와 누가는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므로 마귀의 시험을 이겼다고 기록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부부는 성령의 인도함 없이 자기들의 힘과 지혜로 마귀와 맞섰지만 허무하게 마귀시험에 졌고,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광야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마귀시험을 이기셨다.바울은 성령이 우리 영, 우리 속사람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자녀인 것을 증거(證據)한다(The Spirit Himself bears witnes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children of God; 롬 8: 16)고 했다. 내 속사람, 내 속에 숨은 사람과 끊임없이 내가 하나님자녀인 것을 증거하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속사람이 지칠 줄 모르는 강한 사람이 되고 그 강한 사람으로만이 마귀를 이길 수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숨은 사람, 속사람(Hidden Man, Inner Man)이 날마다 강한 자가 되기를 축원한다.⑵ 성령으로 기뻐할 것이다(눅 10: 21) 누가는 Jesus rejoiced greatly in the Holy Spirit: “예수께서 성령 안에서 크게 기뻐했다”고 했다. 전도보고를 하는 열두제자와 70문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게 된 것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 그리고 그들이 예수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권세가 있게 된 것을 성령으로 크게 기뻐했다는 말씀이다. 자신이 하나님자녀된 것을 성령으로 기뻐하고,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과 예수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특권 주신 것을 성령 안에서 기뻐할수록 우리 속사람과 내 속에 숨은 사람 Hidden Man은 날마다 시간마다 분초마다 강한 사람이 돼 간다. 성령으로 기뻐하므로 속사람이 강해지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⑶ 성령의 말씀으로 무장하라(엡 6: 17) 31,102절, 신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1189장 안에 기록된 1260개의 예언은 야훼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서 입으로 말하고 책에 기록한 것이다(벧후 1: 21, 딤후 3: 16, 사 34: 16)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항상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인간의 숨은 사람과 속사람인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마음과 생각과 뜻까지도 감찰하는(히 4: 12) 성령의 말씀이다. 성령이 말씀이신 성경으로 마음과 영혼이 무장되는 사람은 그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강한 사람’이 된다. 빙산에 부딪히는 배들마다 파선돼 산산조각이 나듯 당신이 성령의 말씀으로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무장돼 강한 자가되므로 도전해오는 모든 문제들이 산산조각 나는 기적이 일어나길 축원한다.아메리칸 인디언 속담 중에 ‘누렁이와 검둥이 두 마리 개가 싸울 때, 어떤 개가 이기는가? 답은 밥을 많이 먹는 개가 이긴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사람의 육신은 건강하기 위해서 소식(小食)을 하거나 때때로 Diet가 필요하지만 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는 사람이 건강하고 그런 사람이 영적싸움에서 이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게 먹거나 Diet 하는 사람치고 영적투쟁에서 이기는 사람 없다. 말씀을 많이 먹어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강해지길 축원한다.⑷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미하라. 육체건강에서 운동은 필수적이다. 건강했던 사람도 병원에 입원하거나 여행 때문에 한두 달 운동을 안 하면 팔다리 근육이 풀어져 살이 바람 빠진 공처럼 물렁물렁해지고 기운도 없어지며, 약했던 사람도 몇 달 동안 열심히 운동하면 근육이 불어나고 단단해지며 건강해 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찬미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미하면 우리의 영인 숨은 사람과 속사람이 강해진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만일 방언(方言)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For if I pray in an unknown tongue, my spirit prays)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I will pray in tongues-I will pray by my spirit)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I will sing in tongues)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 14-15)고 했다.방언기도(方言祈禱)와 방언찬송은 내속에 숨은 사람(The Hidden Man)과 내 속사람(The Inner Man)을 몇 갑절로 강하게 해주는 로열젤리(Royal Jelly)와 인삼녹용과 같다. 이 비밀을 안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이 하는 방언기도를 합친 것보다 방언을 더 많이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전 14: 18)고 했고. 그 고백대로 바울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은 초특급의 초능력을 소유한 영의 사람이 됐다.그래서 주께서 바울의 손을 통해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자를 고치고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나는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고(행 14: 3-20) 점쟁이 귀신을 쫓나내는 기적(행 16:16-18), 그의 찬송과 기도로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의 쇠사슬들이 풀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셨고(God was performing extraordinary miracles by the hand of Paul; 행 19: 11-12)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든 자에게 얹어도 병들이 떠나고 악귀들도 떠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다. 속사람과 속사람의 대결에서 이김의 역사들이 나타난 것이다.팔운동을 많이 하면 팔에 근육이 붙고 팔 힘이 강해지며 다리 운동을 많이 하면 다리 근육이 단단해지듯, 한국말로 하는 마음의 기도와 마음의 찬양은 마음을 든든하게 하지만 영혼의 기도와 찬양인 방언기도와 방언찬송은 속사람과 숨은 사람을 강하게 해준다. 방언기도 방언찬송으로 영혼이 강해지고 속사람, 숨은 사람이 강해지므로 당신을 통해 사도행전의 기적들이 나타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⑸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 솔로몬은 잠언에서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한다”(잠 12: 25),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 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But a broken spirit dries up the bones; 잠 17: 22)고 말하므로 마음의 근심은 육체의 건강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뿐 아니라 뼈까지도 마르게 하여 피골이 상접한 사람이 되게 한다고 했다.우리 마음에 숨은 사람과 속사람을 강하게 해주시는 성령을 근심시키면, 우리 속사람이 병들고 피골이 상접해진다. 성령을 근심시키는 신앙생활로는 우리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강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 30-32)고 했다.성령을 근심시키면 구원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간음과 호색의 도덕적인 타락으로(벧후 2: 2, 유 1: 7) 하나님을 근심시켰던 노아시대 사람들이 홍수심판으로 멸망을 당했고(창 6: 6) 성령을 근심시켰던 출애굽 1세들이 광야에서 멸망 받아 가나안 입성에 실패했듯(사 63: 10)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로 구원에서 낙오되는 성도들이 주기도문 교회에 한 사람도 없기를 축원한다.⑹ 성령을 소멸치 말라(Do not quench the Spirit; 살전 5: 19) 소멸(消滅)하는 것의 헬라어 스벤뉴테는 “불을 끈다”는 뜻이니 성령의 역사, 성령의 감동, 성령의 지시와 가르치심을 불을 끄듯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성령은 깊고 넓고 높은 지성과 예민한 감정과 굳센 의지를 가진 인격자이시고,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For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pths of God; 고전 2: 10)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다.그 성령은 때때로 내 마음에 하나님을 위한 생각, 교회를 위한 기발한 생각, 목사님의 사역을 돕는 좋은 아이디어, 전도를 위한 열망, 선교를 위한 불타는 생각과 욕망, 기도하고 싶은 생각, 이웃을 위한 좋은 생각을 주신다. 그럴 때 성령의 욕구(Desire)를 소멸치 말고 성령께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그때마다 놀랍게 우리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강해지는 축복이 있다. 그러나 성령은 인격자시기 때문에 당신 마음에 한두 번 뜨거운 열망을 주실 때, 당신 생각으로 순종하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거역하면 성령은 소멸된다.어느 기도 많이 하는 권사님이 일주일을 금식했다. 금식 마지막 날 밤 10시, 2시간 후에 금식이 끝나면 먹으려고 죽을 준비하려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같은 동네의 어느 집을 심방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평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밤늦게 찾아가는 것이 부담이 돼 망설이는데 성령께서 강하게 ‘그를 찾아가라’ 하신다. 할 수 없이 옷을 입고 그 집을 찾아갔는데 그날 그 권사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그 집주인은 일 년에 한두 번 교회를 나왔던 사람이었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날 밤에 약을 먹고 자살을 하려고 했다가 자살 바로 직전에 권사의 심방을 받고 기도를 받은 후 새로운 사람이 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만일 권사가 성령의 소욕을 소멸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성도가 돼 속사람이 날마다 강해지는 성도, 신령한 은혜로 충만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⑺ 경건훈련을 잘 받아라(딤전 4: 7-8) 훈련은 시련과 연단을 잘 견디는 인내이다. 돌덩어리가 순도 90도 이상 되는 황금이 되기 위해서는 수천도가 되는 뜨거운 불을 통과해야 하고, 황금이 순도 95도 이상의 순금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수천도의 불속을 지나야하며 순금이 100%의 정금이 되기 위해서는 또다시 수천도가 넘는 불속을 통과해야 된다. 우리의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초강력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로 불같은 시험을 견뎌야 하고 혹독한 경건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내가 집에 있는 역기를 처음 들었을 때, 30번을 들어올렸다. 일주일 후 50번을 들었을 때, 손이 부들부들 떨렸는데. 1년 후엔 한번에 100번, 5년 후엔 300번까지 들어 올리게 됐다. 그렇게 10여년이 지나자 한번에 400번에서 500번을 들어 올리게 돼, 스스로도 놀랄 정도가 됐었는데, 18년차인 금년 초부터는 한번에 700번까지 들어 올리게 되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비록 100여 파운드의 가벼운 무게지만 일주일에 4-5번 하는 운동에서 한주 평균 15,000번 이상을 들어 올리게 된 것은 끊임없는 훈련과 인내의 경과다.내 속에 숨은 사람(The Hidden Man)과 내 속사람(My Inner Man)이 강(强)해지는 경건도 훈련이다. 자기 혀를 재갈 먹여 필요치 않는 말을 극도로 아끼고 삼가는 언어의 경건(개인적으로 나는 구변이 부족해 말의 실수를 줄이려고 모임에 불참하거나 말을 적게 하는 편이다)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경건, 고아와 과부를 환난에서 돌아보는 경건,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약 1: 26-27) 풍족해도 궁핍해도 예수 안에서 만족하는 Contentment(지족(知足)하는 마음), 모든 환경을 초월해 만족해하며 흡족해 하는 마음의 경건(딤전 6: 6) 기도해야할 때를 알고 주를 만날 만한 기회를 알아서 기도하는 경건(시 32: 6) 그다음 믿음에서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에까지 도달하는 여덟 단계에서 여섯 번째 단계인 경건(벧후 1: 5-7) 그리고 이러한 ‘예수 안에 경건’을 위해 불 시험으로 다가오는 핍박들을 잘 견디는 믿음(딤후 3: 12)의 훈련이 경건(敬虔)이다.이렇게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강한 경건훈련이 잘 된 성도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하여 택한 사람이 되는 축복이 있고(시 4: 3), 기도응답이 잘 되는 사람이 되며(요 9: 31) 하나님의 비밀계시인 주의 우림(Urim)과 툼밈(Thummim)이 있으며(신 33: 8) 은혜시대에서의 모든 시험과 대환난의 큰 시험에서 건져주시는 축복(벧후2: 9)과 대환난이 오기 전에 휴거케 하시는 축복(시 12; 1)이 있다. 경건훈련을 잘 받아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천하를 정복할 수 있도록 강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by faith) 이것이 에베소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두 번째 기도였다. 그렇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실 수 있는 것은 By faith!, Through faith!(믿음으로!)이다. 천지와 우주만물과 나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Jesus is my personal saviour)시며, 장차 세상에 오실 심판의 주이심을 믿으며, 성령하나님이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영으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이심과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 속에 예수님이 계신다. 이 믿음이 흔들리면 안 된다. 이 믿음이 바뀌어도 안 된다.오늘 이 땅에는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같이 우리 믿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케 하는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거짓 사도들과 다른 영을 받게 하는 궤휼의 역군들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단의 일군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예수만 구원의 길이 아니라 ‘예수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나의 노력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초월주의와 초월명상, Post-Modernism, ‘구제와 선행의 착한 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공덕설과 윤회사상, ’인간의 잠재의식을 계발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신념만능주의와 적극적사고와 사차원의 능력, 그리고 카리스마 성령운동을 내세워 성령의 은사를 빙자하여 자기 맘대로 예언하고 방언통역을 하면서 더러운 이익을 추구하며 온갖 지저분한 죄를 다 저지르는 등, 겉옷은 예수로 입히고 내용은 순수복음이 아닌 것들이 판을 치고 있다.이런 때에 바울의 간절한 기도처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Unfeigned faith; 거짓이 없는 믿음, 진실한 믿음, 성실한 믿음)을 갖고 그것을 지킬 것이며(딤전 1: 5, 딤후 1: 5) 야고보 선생의 가르침처럼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질 것이며(약 2: 17, 20, 26) 베드로의 교훈처럼 보배로운 믿음을 가질 것이며(벧후 1; 1) 예수님의 동생 유다의 설교처럼 거룩한 믿음을 갖고 지킬 것이다(유 1; 20) 이런 믿음이 아닌 거짓 믿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다.예수님은 공생애에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말씀을 일곱 번이나 하셨는데(7 occurrences of ‘Your faith has made you whole’; 마 9: 22, 막 5: 34, 10: 52, 눅 7: 50, 8: 48, 17: 19, 18: 42) 그때마다 사람들의 불치병과 난치병을 고쳐주셨고, 귀신들을 쫓아내 주셨으며, 죄를 용서해 주셨고,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다. 진실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거룩한 믿음으로 2014 갑오년 청마의 해에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바울의 세 번째 기도는 에베소교인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의 완성인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는 성도(Being rooted in love) 사랑 안에 터가 굳어지는 성도(Being grounded in love)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서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는 성도가 되기를 간구했다. 이것은 에베소교인만 아니라 너나없이 지구촌 모든 성도들이 깨달아 알고 도달해야할 마지막 하나님의 충만(充滿)이다.저 광활한 우주궁창보다 넓고, 끝이 없도록 길고 길며, 몇 억조의 광년을 달려가도 도달할 수 없는 저 높은 하늘보다 높고, 인간의 언어로 그 깊이를 표현할 수 없도록 깊고 깊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광대함을 무엇으로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찬송가 404장의 고백대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이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이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노래하는 성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도달하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는 삶, 그리스도 사랑의 터에 인생의 집을 짓는 성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한 삶이되기를 축원한다.바울은 우리 속사람과 숨은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지고, 진실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고 하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充滿)인 사랑으로 충만해지면, 우리의 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까지 응답을 받는 축복이 있다고 했다. 기도응답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1966년에서 69년까지 있었던 모택동의 문화혁명 때에 있었던 일이다. 문혁으로 중국에서 모든 종교는 대청소로 말살됐고, 기독교 목사들은 순교를 당하거나 투옥됐으며, 모든 신학교는 폐쇄됐고 교회들도 불에 타 없어졌으며 교인들은 깊은 산이나 동굴로 피신했을 때였다. 그때 해산이 가까워 피신하지 못한 여성도와 그를 보살피는 선교사부인이 있었다. 소와 말, 돼지와 닭 모든 짐승을 다 잡아먹은 홍위병들은 시간마다 동리를 시찰하고 먹을 것은 없는데 부인이 여러 시간 동안 극심한 진통을 겪은 후 아이를 낳았다. 그런 위급한 상황 중에 그들은 마루 밑에 파놓은 지하실 굴로 들어가 숨을 죽이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지하실엔 비상식품의 쌀과 마실 물이 조금 있었는데, 지쳐있는 산모에겐 자신과 갓난아이 젖을 위해 영양을 보충할 고기가 필요했지만 어디서도 고기를 구할 방법이 없다. 그저 생각으로 ‘고기가 있었으면’하는 때였다. 산모와 선교사부인이 땅굴에서 새벽까지 기도하고 고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장 닭 한 마리가 담을 넘어 앞마당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닭을 잡아 세 사람이 어려움을 넘겼는데 놀라운 일은 그런 일이 석 달 이상이나 계속됐다는 간증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어 간구하는 기도를 응답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까지 응답해주시는 분이다(God is able to do exceeding abundantly beyond all that we ask or think)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기도를 응답해주시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응답해주시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김엘리야 목사(워싱톤주기도문교회 담임)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김엘리야칼럼섹션 목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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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3장 14-21절 말씀 묵상

에베소서3장 14-21절 말씀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에베소서3장 14-21절

에베소서3장 14-21절 말씀 묵상

새번역,,,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무릎을 꿇고<14절>하늘과 땅에 있는 대 가족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15절>은혜가 풍성하신 영광의 아버지께서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하게 하시고<16절>

유대인과 모든 이방인들 즉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은 바울은 하늘과 땅의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다른 성경들에는 족속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합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이름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하늘에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알고 그 하나님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경외심으로 기도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하는 기도는 우리들도 늘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은혜가 풍성한 영광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너희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전에는 우리의 겉과 속이 다 타락한 사람들이였지만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였으니 먼저 우리의 속 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우리의 영과 혼입니다. 우리의 영에 성령이 계셔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려주셔야 합니다. 육신을 이기고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해야 합니다. 

새번역,,,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계시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박고 기반을 다져<17절>모든 성도들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폭과 길이와<18절>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모든 풍성하신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기도합니다.<19절>

또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셔서 너희가 사랑가온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주님과 늘 함께 해야 합니다. 주님과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하며 주님과 더욱 친밀해집니다. 친밀해질수록 주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안에 계시며 그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한 없는 주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우리들에게도 부어지고 우리는 주님을 닮고 주님을 따라 살수 있습니다.

새번역,,,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께<20절>교회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길이길이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21절>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그들의 속 사람의 강건함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채워지기를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되 자기가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게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서 교회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와 또 다른 이들을 위해서 성령으로 충만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알아가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게 허락하실 하나님이심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확신하며 날마다 더욱 변화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기 원합니다.

승리하시기를 기도하며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고난 속에서 교회를 위해 드려야 할 기도(엡3:14-21)

고난 속에서 교회를 위해 드려야 할 기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신6:18)

에베소서3:14-21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는 책이 있습니다. 강원희 의료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소명3’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나왔습니다. 80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입니다. 부부가 의사와 간호사로 만나 세브란스 출신 1호 의료선교사가 되어 히말라야,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 오지에서 근 30년을 선교사로 봉사하신 분입니다. 한 참 잘 나가던 나이에 돈버는 자리를 마다하고, 안락한 자리를 마다하고, 병원장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의 인생 몸통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지금도 네팔에서 의료 선교를 감당하고 계십니다. 이 책에 감동적인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30대 중반쯤 되는 부인이 배가 몸씨 아파 병원에 왔는데 진단결과 ‘장폐색’이었다고 합니다. 마취를 하고 황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데 최신 의료 장비가 없어 그물망 마스크를 환자의 입에 밀착시키고 그 위에 마취약을 떨어뜨려 마취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답니다. 그런데 위험한 것은 음식물이나 역류한 소화액이 폐에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흡인성 폐렴에 걸려 폐가 순식간에 손상되어 사망에 이른답니다. 수술이 다 끝날 무렵 환자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구토한 오물이 폐에 들어가 흡인성 폐렴에 생겨 폐 절반가량이 하얗게 변해버렸답니다. 고름덩어리가 된 폐를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답니다. 환자는 의식이 없어졌고 산소가 부족했지만 산소를 주입할 기계도 없었답니다. 쇼크 상태라 수축기 혈압은 60, 맥박은 130을 가리켜 죽음의 문턱에서 절망적인 상황이었답니다. 그 때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병원의 조용한 곳을 찾아 기도하였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 저 환자를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 능력 밖의 일이오니 주님이 저 생명을 살려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세 시간 반 동안을 기도했답니다. 환자가 있는 회복실로 가보니까 환자가 살아나 있었답니다. 맥박이 정상이 되었답니다. 기도하는 동안 폐의 죽었던 세포가 생명의 세포로 바뀌었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탄성을 질렀답니다. 그 순간 ‘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어서 내가 그 기도의 은혜를 입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르더란 것입니다. 오늘날도 고난 가운데서 절망할 것만 아닙니다. 사업하다가 좋은 일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낙심할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오늘 성경에 보면 이제 죄수가 되어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엡1:17-23절의 기도가 성도들의 개인적인 영적 성숙을 위한 기도라면 오늘 본문의 기도는 성도들 전체 즉 교회 차원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의 기도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14-15절은 “기도의 대상과 자세”입니다.16-19절은 “기도의 내용”입니다.20-21절은 “기도의 결론”입니다.1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권속이므로”(2:19)라는 말씀입니다. 과거에는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육체의 욕심 따라 살았습니다.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의 권속, 시민,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믿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아시는 우리 아버지입니다. 구속함을 받은 모든 족속의 아버지입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족속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자유자나 노예자나 산자나 죽은 자나 구별이 없습니다. 더 이상 에베소 교인들은 이방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동일한 상속자입니다.어떤 자세로 기도합니까? 아버지 앞에 기도합니다. 마주 대한다는 말입니다. 정면으로입니다. 허공에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비 인격체에 기도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보시고 계십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유대인은 보통 서서 기도합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말은 특별히 간절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에스라가 이스라엘의 죄를 참회할 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스데반이 순교의 고된 시련 가운데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으면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막을 수 없습니다. 환경과 상황을 초월합니다. 설교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으나 기도할 수는 있었습니다. 기도도 사역입니다. 바울을 감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라도 기도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무슨 기도를 드립니까?(16-19)세부적으로 나누면 다섯 가지 기도입니다. 첫째가 속사람을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16), 둘째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17), 세 째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게 하옵시고(17), 넷째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옵시고(18), 다섯째가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19)입니다.오늘 본문은 본래 동사는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 달라는 것 하나입니다. 그것과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고난 속에서 교회를 위해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인가 의미적으로 분류하여 세 가지만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1.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성도들의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원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16).사람은 무엇보다 건강해야 합니다. “돈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를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물을 잃는 것은 일생의 일부를 잃은 것입니다. 명예를 잃었다고 해서 인생의 전부를 잃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으면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돈 잃었다고 건강까지 잃으면 그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건강 잃으면 인생의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건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영적 건강이 중요합니다. 영적 생명을 잃어버리면 영원을 잃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수 없고 영원한 형벌을 받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천국이 없다면 상관없지만 영원한 천국이 있으면 영혼의 문제만큼 심각한 것은 없습니다. 인생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후의 또 다른 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이 천국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고난 가운데 처해 있다할 지라도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부모를 위해 기도할 때,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겉사람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속사람의 건강 역시 더욱 중요하다는 말입니다.속사람이 무엇입니까? 거듭난 자아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을 말합니다.속사람은 겉사람과 대비된 말씀입니다. 고후 4장 16절에 보면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로마서 7장 22절에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7:22)”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속사람은 영적인 부분입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난 감정, 지성, 의지, 양심 우리의 영혼입니다. 사탄이 세상 풍속과 육신의 욕심을 통하여 속사람을 감염시킵니다. 사탄은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겉 사람과 함께 부패하게 만듭니다. 지성을 병들게 하여 고집과 아집 교만하게 만듭니다. 의지를 병들게 만들어 습관의 노예, 욕심의 노예가 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감성과 양심을 감염시켜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양심의 감각을 상실하여 화인맞은 사람처럼 되게 만듭니다. 조그마한 상실에도 낙심하게 만듭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 고난 속에 낙심하게 만듭니다. 회의가 들게 만듭니다. 예수 믿고 잘 된다면서 자기 스스로 잘못되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되어야 할 텐데 사업이 망해간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떨어집니다. 속사람이 흔들입니다. 요즈음 몇몇 가정이 사업이 잘 안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개업 예배를 드리고 사업이 잘 되기를 위해 계속 기도했는데 안 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목회자가 잘못한 것처럼 마음이 낙심됩니다. 회의가 들게 됩니다. 속사람이 병들 수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 관점의 차이입니다.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물입니다. 누가 에디슨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누가 바울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누가 아브라함 링컨을 실패한 인간으로 보겠습니까? 죽지 않았다면 지금의 실패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고난이 결국 우리는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하게 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무엇보다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어떻게 우리가 속사람을 강건하게 할 수 있습니까?세상은 무수히 많은 세균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서 육체의 저항력을 기르기 위해서 사람들은 네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첫째는 운동을 합니다.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폐에 신선한 공기를 넣어 줍니다. 신진 대사를 원활하게 해 줍니다. 둘째는 약품을 사용합니다. 직접 세균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감염된 기관을 제거 수술합니다. 넷째는 예방접종을 하여 면역성을 길러 줍니다.우리가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단순한 한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오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속사람이 강건해 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부어 주시는 강력한 힘으로 우리는 강건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공급하여 주실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바라볼 때 비록 현실은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소망을 가지며 낙심도 하지 않게 됩니다.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풍성하신 것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힘으로 능으로 못하는 것도 성령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지혜를 얻습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회의가 들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성령의 갖가지 은사가 나타납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회의가 사라집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 낙심에서 일어납니다. 성령으로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사사기 6장에 보면 기드온이란 젊은이가 나옵니다. 두려움과 의심과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많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6:15) 그런데 성령이 임하게 되자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 모아서 적군을 물리치는 큰 용사가 됩니다.(삿6:34) 오순절 성령의 충만을 받으니까 무력했던 제자들이 새힘을 얻고 담대하게 나아가 병자를 일으킵니다. 복음을 전하여 세상을 바꿉니다. 요엘서 2장 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여,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현상과 현실을 넘어 꿈과 비전을 말하는 존재들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속사람이 강건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나아갑니다. 속사람 강건한 다윗이 골리앗 앞에 담대히 나아가 승리합니다. 속사람이 강건한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앞에서도 금신상 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이 당하는 환난을 보며 낙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속사람이 강건해 지면 이 낙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2. 우리는 고난 속에서 성도들의 마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경영하시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사람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살아갑니다. 마음이 오늘 교회에 가겠다고 결심하여 오늘 예배에 참석했을 것입니다. 마음이 오늘 날씨 좋은데 가족과 함께 해변으로 가야하겠다고 생각하신 분은 아마 다들 해변에 가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움직임대로 인생은 가고 삶이란 결국 마음의 결정체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누가 경영하는냐에 따라 인생은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늘 자신이 경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종 결정권을 자신이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이성, 자신의 지혜로 마음을 경영합니다. 두 번째 종류의 사람은 마음을 자신이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경영하게 합니다. 사탄이 경영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세상 풍속과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삶의 특징입니다. 세 번째의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마음을 경영하도록 맡기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에베소 교인들을 위한 두 번째 기도는 이 마음을 주님께서 경영하도록 맡기라는 기도입니다. 흑자 인생이 되려면 주님이 경영해야 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실패와 성공은 결국 관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시간으로 인생을 바라보아야 결국 최종적인 성공을 할 수 있습니다. 주제권을 주님께 드리라는 기도입니다.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주님께 왕의 자리를 내어 놓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이미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그런데 왜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에 이미 예수님이 계시는데 이런 기도를 할까요? 거하다는 말은 두 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시적으로 거한다(파로이케오 paroikeo)입니다. 손님처럼 나그네처럼 거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구적으로 거한다(카토이케오 katoikeo)라는 말입니다. 주인으로 정착하여 거주하심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집으로 삼고 그 안에 살게 한다는 말입니다. 영구적으로 거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온전히 자유롭게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거함인 것입니다.그런데 교회 다니면서도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를 싫어합니다. 일정한 부분만 다스려 달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주님이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었지만 관계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삶의 주인이 되게 에베소 교인들의 권리를 주님 앞에 내려놓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예수님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의 감정과 의지에 거하시고 생활 전체를 지배 통제 지도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마음 중심과 삶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자리 잡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마음을 주님께서 경영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예수님께 내 왕좌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납니다.이것이 신앙생활에, 교회 생활에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인의 마음이 목사에게 지배되고, 장로에게 지배되고, 돈에게 지배되고, 세상 풍속에 지배되면 강건한 교회가 될 수가 없습니다.주님은 인격적입니다. 폭군이 아니십니다. 문밖에 두드립니다.어떻게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17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내 안에 내주 하시고 믿음으로 행함으로 예수의 사람으로 능력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믿음으로 그 고난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과 힘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 권력은 힘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으로 산 사람입니다. 힘이 이길 것 같지만 결국 믿음이 승리합니다. 믿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각종 질병을 치유시켜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12년 동안 혈루증 앓는 자가 났습니다. 믿음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손마른 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약5:15)”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라고 했습니다. 바로 주님이 내 안에 내주하여 나의 마음을 경영하게 하려면 어떤 경우든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3. 우리는 고난 속에서 성도들이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충만하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17-19)17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감옥에서 에베소 교인들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사랑 가운데 뿌리를 박고 떠가 굳어지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뿌리는 나무를 비유하고 터는 건축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환난 가운데 고난 가운데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아야 합니다. 돈에 뿌리 박고, 권력에, 명예에 뿌리를 박으면 안 됩니다. 시기 질투에 뿌리를 박으면 안됩니다. 사랑이 우리 삶의 뿌리를 내리게 할 토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우리의 삶을 세울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힘은 이 사랑에 있습니다. 교회의 참된 힘은 바로 이 사랑에 있습니다. 사람 가운데 뿌리를 박을 때 참된 힘이 나옵니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는데 그건 철학자의 말이고 그리스도인의 강력한 힘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고전 8:1을 보십시오. “지식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랑 대신 지식을 앞세울 때 분파와 분열이 생겼습니다. 만일 사랑이 아닌 것을 제일로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사랑이 아닌 것을 기초로 하면 타락합니다.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에 뿌리를 두지 않은 지식은 교만과 거만을 나을 뿐입니다.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 역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했습니다.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사역도 사랑이 없으면 공허와 분열만 남을 따름입니다.설교자가 설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업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사랑으로 세상을 녹여가는 삶입니다. 모든 것은 사랑이 있을 때 힘을 얻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사랑하니까 칠년을 수일같이 보냅니다(창29:20) 사랑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일과 활동을 위한 참되고 유일한 동기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바울이 고난 가운데 주의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도다”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지 못하고 터가 굳어지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일과 활동 속에는 궁극적인 가치가 없습니다.(고전13장)우리가 뿌리를 내려야 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 것입니까?이 사랑은 지식에 넘치는 사랑입니다. 이성의 한계를 뛰어 넘는 사랑입니다. 지식을 능가하는 사랑이고 지식으로 다 깨달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사랑입니다.사랑의 너비는 모든 족속에게 미칩니다(계5:9,11) 사랑의 제한 없습니다. 사랑의 길이는 끝이 없습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릅니다(렘31:3) 사랑의 깊이는 가장 낮고 낮은 자에게까지 미칩니다. 심오합니다. 사랑의 높이는 우리를 들어 올리는 사랑입니다. 그와 함께 살아나고 부활 하늘나라에 앉히는 사랑입니다(요17:24).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인류를 포함할 정도로 충분히 넓고 영원토록 계속될 될 만큼 충분히 길며 각각 타락한 죄인에게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깊으며 하늘로 올리올 만큼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충만한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순준까지 도달하는 것입니다.경제가 인생을 뿌리채 흔들려고 합니다. 건강이, 자식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걱정이 폭풍이 되어 인생을 뿌리채 흔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으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충만한데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를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말씀합니다.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돌아 가신 것이 아니고 아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구하는 것 이루십니다.생각하는 것을 이루어 주십니다.우리의 구함 생각보다 더 넘치도록 해주십니다.바울처럼 감옥에 갇혀 있습니까? 질병의 감옥, 돈의 감옥, 미래의 두려움에 대한 감옥, 어쩔 수 없는 유혹의 감옥,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감옥, 바꿀 수 없는 습관의 감옥에 갇혀있습니까? 고난의 현장에서 회의 하고 있습니까? 바울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하나님 어떤 고난 속에서도 성령 충만을 주어 속사람이 강건하게 하옵소서.하나님 어떤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 인생에서 주님이 왕되심을 선포하면 살게 하옵소서.하나님 어떤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박고 그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1.6.5

내면의 변화를 갈구하는 기도 (엡 3:14~21)

내면의 변화를 갈구하는 기도

[에베소서 3장 14절~21절]

14절 –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절 –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절 –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절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절 –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절 –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절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절 –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바울은 각 족속에 이름을 주신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해지고,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하실 하나님께 영광이 무궁하기를 원합니다.

1. 속사람에 뿌리내린 견고한 믿음 (14~17절)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뿌리내린 교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교회를 향한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입니다.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시기에 우리는 그분께 모든 것을 아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겉으로 보이는 성공이나 안전이 아닌 속사람의 강건함과 그리스도의 내주하심, 사랑의 체험과 성장을 간구합니다. 성도는 성공과 번영을 따르지 않고 복음에 기초한 능력과 헌신을 겸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속적 가치에 붙들리지 않고 절대 진리 안에서 은혜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 바울이 고백하는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요? 내가 하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2. 그리스도의 사랑의 크기 (18~21절)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응답하십니다. 초대교회 영지주의 이단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피상적이며 지적 수준이 낮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야말로 어떤 이론이나 철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한 영적 지식이요 구원의 지혜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모든 사람을 품을 만큼 ‘넓고’, 영생에 이르기까지 ‘길며’, 죄인에게 도달할 만큼 ‘깊고’, 그 죄인을 하나님의 보좌로 인도할 정도로 ‘높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도록 간구한 것입니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식을 넘어 사랑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요? 내게 베풀어 주신 주님의 사랑은 어떠하며, 나는 주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제 기도와 소망보다 더 풍성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연약하고 상처 난 제 속사람을 성령의 능력으로 싸매시고 강건하게 하소서. 제 마음에 분명하게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기 원합니다. 넓고 길고 높고 깊은 주님 사랑에 힘입어 담대히 믿음으로 행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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