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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 하여 선 을 이루시 는 하나님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2794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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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고전 2:9) 그것은 성경에 “아무도 보거나 듣거나 생각조차 못한 것을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두셨다” 라고 한 말씀과 같습니다
(벧전 5:10, 현대인의 성경) 얼마 동안 여러분이 고난을 겪고 나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영원한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여러분을 친히 완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며 튼튼하게 세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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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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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2/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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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크리스천투데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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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1/17/2022

View: 3595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 기독정보넷

이 이야기는 본문인 로마서 8:28의 이해를 돕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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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2/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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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28, 합력하여 선을 이르시는 하나님 – 성경강해 1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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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8/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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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ll Things for Good)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일부의 어떤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 혹은 우리에게 유익처럼 보이는 것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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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ridgesforpeace.com

Date Published: 4/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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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캘거리순복음중앙교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말을 합니다. 이 뜻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생활 현장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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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algarychurch.org

Date Published: 1/18/2022

View: 7659

(로마서 8:26-30)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과의 대화(마 19장, 막 10장, 눅 18장)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선(善)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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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lphis.or.kr

Date Published: 2/10/2022

View: 2841

[12/04]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뉴저지초대교회

로마서 8:2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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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jchodae.org

Date Published: 9/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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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삶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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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astorcho.kr

Date Published: 4/3/2022

View: 9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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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합력 하여 선 을 이루시 는 하나님

  • Author: 갓Jesus 날마다 1분이라도 성경묵상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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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8.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QmgM1xtFBGQ

로마서 8:28-3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로마서 8:28-30 KRV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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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28, 합력하여 선을 이르시는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는 본문 말씀은 많은 성도들이 애송(愛誦)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합력(合力)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는 말씀은, 구속사(救贖史)를 대변해주는 결론(結論)이기도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善)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하고 말합니다.

사탄은 해하려고 대적하나 그 때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사”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추진해 오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문제에 대한 해답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미련한 인간이 저지르고, 하나님은 이를 “선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많은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용기(勇氣)를 준 말씀입니다.

①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합니다.

㉠ 사도는 우선적으로, “우리가 알거니와”(28상) 합니다. 이는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26중) 한 것과 대조(對照)를 이루는 말씀입니다. 이를 문맥적으로 보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18상) 한, “고난”(苦難)과 결부가 되는데, 이런 뜻입니다. 어떤 시련을 당하게 될 때에,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그 원인(原因)은 알지를 못하나, 그러나 “우리가 알거니와”, 즉 내가 확신하는 것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28하) 하는, 결과(結果)만은 안다는 것입니다.

② 그런데 아무나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해당이 된다는 것입니다.

㉠ 성경의 많은 말씀 중에서, 시험과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만큼 위안과 용기를 주는 말씀이 달리는 없다 하겠습니다. 지금은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또 빌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합력(合力)하여 결과(結果)는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이것 하나만은 확신(確信)한다는 것입니다.

㉡ “모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모든 것 속에는 좋은 것, 그래서 누구나 바라고 갖기를 원하는 것보다는 원치 않는 것들, 즉 앞에서 말씀한바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고난들을 가리킨다 하겠습니다. 좋은 것을 가지고 선을 이루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③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여 실수하고 넘어져서 더럽힌 것들,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상처입고 괴로움 당하는 것들, 대적 마귀로부터 침노를 받아서 겪게 되는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 시험과 고난들, 이런 것들을 빚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 사도는 어떤 근거에서 이것을 확신할 수가 있었을까요? 사실 고난을 당하면 바울만큼 당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참고 고후 11:23-33). 그런 중에서도 바울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첫째로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29절의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라는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 둘째로 “하나님의 전능”(全能)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31절의 “누가 대적하리요” 하는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능력이 없다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32절의 “자기 아들을 내어주셨다”는 표현에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결국은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시작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주권(主權)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점이 “끊어지지 않는 연결고리”(29-30)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8장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 하고 마치고 있는 것입니다.

㉡ 사도는 전지(全知) 전능(全能)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한번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信實)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고 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④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표현 속에는,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섭리(攝理)하시며, 전능(全能)하신 하나님께서 성취해 나가신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확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⑤ 구속사(救贖史)에 있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십자가사건입니다.

㉠ 십자가사건 자체는 비참한 것이며, 저주의 십자가였고, 악의 극치(極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죄인이 의인이 되고, 사탄의 노예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옥에 떨어져야할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놀라운 선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은 사건이 인간이 저지른 “악”(惡)의 극치였다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악을 선”으로 바꿔 놓으신, “선”(善)의 극치였던 것입니다.

⑥ 그러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한, “선”(善)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 성경이 말씀하는 선은 인간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 같은, 모든 것을 잘되게 한다, 즉 만사형통과는 다른 것입니다.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은 유익(有益)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실패가 유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병듦이 유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선”이란 인간이 당장 보기에 좋다고 여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는, 최종적인 선, 곧 우리의 영원한 구원(救援)을 의미합니다.

⑦ 사도는 빌립보서 1: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이 “선”(善)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날” 동안 잘 된다 하여도,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잘못된다면 이것을 어찌 “선”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는 말씀은, 어느 한 부분(部分)이나 과정(過程)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最終的)인 결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 마지막은 사망이니라,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6:21, 22) 하고, 마지막이 다르다고 말씀했습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한 과정(過程)만을 보고 낙망해서는 아니 됩니다. 멀리 그 날을 내다보는 원시(遠視)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한다”(벧후 1:9) 하고 말씀합니다. 성경도 구속사라는 선(線)으로 보지를 못하고, 점(點)으로 보기 때문에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⑧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18상) 한, “고난”에 관한 문맥(文脈)에서 주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만 합니다. 11장에는 토기장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진흙 한 덩이로 귀히 쓸 그릇을 만들고자 하는데 굽는 과정에서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이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하십니다.

㉡ 형제여, 고난이란 “환난→ 인내→ 연단→ 소망”을 이루는 과정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다. 이점을 요셉의 생애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운명은 기구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 하고 진술합니다. 요셉은 모든 사건들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의 손이 있다는 점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⑨ 다음으로 생각할 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28중)이라는 표현입니다.

㉠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主權)을 세우는 말씀입니다. 사도의 표현방식을 주목해 보십시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다가,

㉯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고 표현을 바꾸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왜 그렇게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만 말한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근거(根據)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오해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초점이 사람에게 맞춰지게 되고, 인과응보(因果應報) 사상이 되어서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는 얼른,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고 표현을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시고 구원계획 속에 포함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를 성취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권적인 “하나님의 뜻”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⑩ 그렇다면 어찌하여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을 했을까요? 왜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는 하지 않았을까요?

㉠ 형제여, 사도가 로마서 1장에서 이 말씀을 했다면,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본문이 놓여 있는 위치(位置)는 영광스러운 복음진리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단계(段階)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다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고난 중에도 “우리가 알거니와” 하고 말할 수 있는 자입니다.

⑪ 말씀을 마치기 전에 다시 한번 28절이 놓여 있는 문맥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 26절에서는,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말하고,

㉡ 28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는 문맥입니다. 이 두 말씀을 결부시키면 어떤 뜻이 되는가? 이 사람은 자기가 왜 이런 고난(苦難)을 당해야만 하는지 그것은 알지를 못하나, 그러나 한 가지 아는 것은 사랑의 하나님, 전능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 이것만은 확신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⑫ 결론(結論)은 선(善)입니다. 이 원리(原理)만은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 형제여,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밖에는 없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28상)입니다.

㉮ 형제여, 고난이 닥치거든,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나이다” 하고 말씀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위로 중에,

㉯ “내가 너를 택하였노라” 대답하실 것입니다.

㉰ 그러면 형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ll Things for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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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8:28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말을 합니다. 이 뜻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생활 현장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말은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고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자리에도 이미 하나님을 만나본 분들도 있고, 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합니까? 하나님을 만나면 분명히 인생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좋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하나님을 만났는데 그는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만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같이 알아보므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고 기쁨이 더욱 충만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언뜻 보면 혼자 창조하신 것 같지만 실지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창조의 사역을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1:26) 그리고 하나님은 계절을 만드실 때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새, 물고기, 짐승, 각종 수목들이 합력하여 생태계를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도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므로 부부가 합력하여 살도록 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극치는 바로 에덴 동산입니다. 에덴 동산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해함도 상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과 합력하여 행복하게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타락하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는 깨어지고 분열하여 악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기주의, 미움, 분노, 전쟁, 다툼, 시기, 원망 같은 많은 문제가 발생하므로 인류는 고통을 받다가 결국 영원한 심판의 길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합력하려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장차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을 예언하시고 예수님이 오시면 또 다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일으키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완전히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가 이루어 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고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면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아갈 수가 있고, 또 다시 에덴 동산의 기쁨과 축복과 행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와 같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야곱의 11번 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는 형들보다 좋은 옷을 입고, 맛난 음식을 먹고, 힘든 일도 하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이 형들보다 크게 높아지는 꿈도 꾸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로 인하여 형들로부터 시기, 질투,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부릅니다. “요셉아, 네 형들이 세겜 지방에서 양들을 치고 있는데 살펴보고 와서 보고를 하여라”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간 요셉은 거기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평상시 요셉을 미워했던 요셉의 배다른 형들이 요셉을 보고 죽이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맏형인 르우벤이 “그래도 우리의 형제인데 그럴 필요야 있느냐! 그냥 구덩이에 집어넣어 단단히 버릇을 가르치자” 하면서 요셉을 구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요셉은 지나가는 미디안 상인에게 은 20냥에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질질 끌려가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형들에게 “나 좀 살려줘 !” 하고 아무리 눈물로 애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요셉은 보디발 장군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인정을 받아 가정 총무로서 성실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다시 시련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요셉의 용모가 준수한 것을 보고 주인 마나님이 동침하자고 유혹을 합니다. 요셉이 이를 뿌리치자, 여인은 더욱 결사적으로 달라붙어 요셉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립니다. 결국 요셉이 도망하다가 잡힌 옷이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게 웬일입니까? 이 여인이 소리를 지릅니다. “아이고, 이 요셉이란 녀석이 나를 겁탈하려 하는구나 !” 이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뛰어와서 보니 아닌게 아니라 요셉이 벌거벗고 허겁지겁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요셉은 마나님을 강간하려는 배은 망덕한 놈으로, 천하에 몹쓸 놈으로, 괘씸죄를 짓는 모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심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눈물도 많이 흘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신매매를 당하여 고향을 떠난지 13년 만에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7년 풍년과 7년 기근을 겪는 중 형들을 만납니다. 형들이 국무총리가 된 요셉을 바라보자 그 얼굴이 사색이 되고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으므로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근이 올 줄 알고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이곳에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그런 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8)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을 구원하려 하셨도다”(창50:20) 할렐루야 !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요셉과 같이 시기와 질투를 당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문제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았습니까? 문제의 노예로 팔리지 않았습니까? 기구한 운명,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럴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시고 기뻐하시고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의 경우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제가 26살에 은혜를 받자 세 살 위의 누님이 저를 꽤 핍박했습니다. 방에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려고 하면 “나가 놀아라 !” 하면서 바가지로 머리를 치고, 나무 빗자루로 때리곤 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나가 놀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날마다 삼각산에 올라가서 목놓아 부르짖어 기도하는 습관이 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밖에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도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즉 저의 누님의 핍박을 통하여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저의 어머님의 경우도 이렇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수원에서 공장을 짓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저희 어머님이 염려가 되어 현장에 내려가 아버님을 보좌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님이 술에 취하여 말을 합니다. “여자가 여기에는 뭐하려고 오나 ! 서울로 당장 올라가라.” 그러면서 방문을 잠그고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은 열려지지 않습니다. 할 수 없어 저희 어머님은 “서울로 올라가야 되겠다 !” 하고 발길을 돌리며 시골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골 조그만 길이라 차가 제대로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서울 올라가는 차를 보내어 주세요.” 그런데 기도를 마치자 웬 자가용이 앞에 서면서 말을 합니다. “아줌마, 서울 올라가시면 타세요.”

그 차를 타니 방향이 여의도였습니다. 밤중 늦게 여의도에 도착하니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보입니다. 저희 어머님은 당시 장로 교인이었지만 순복음 교회는 날마다 철야 예배를 드리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철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또다시 저희 아버님의 건축 현장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도 저희 아버님은 “아니, 왜 여자가 자꾸 건축 현장에 오는 거야? 서울로 가지 않고 !” 하면서 방문을 또다시 걸어 잠그고 말았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다시 시골길을 걸으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제도 서울 올라가는 차를 보내어 주셨는데 오늘도 차를 보내어 주세요.” 그러자 또다시 지나가는 차가 서면서 말을 합니다. “혹시 서 울로 가시면 타세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날의 자가용은 어느 교회 집사님 차였고, 그 다음 날의 자가용은 어느 교회 장로님 차였습니다.

그리도 두 번째 날도 차의 방향은 역시 여의도 쪽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깨달았습니다. “아하, 괜히 염려하여 현장에 내려가지 말고 철야 기도를 하라는 것이구나 ! 하나님은 나를 철야 기도시키기 위하여 남편의 마음을 그렇게 강퍅하게 움직였고, 또 자가용을 보내어 철야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구나 !” 할렐루야 !

여러분, 성경에 보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들의 고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믿음의 왕인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동방의 의인이면서 너무나 큰 환난을 당한 욥이라는 분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리이다.”(욥23:10)

또한 신약 시대 온 유럽에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12)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와 같은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특히 성도들 가운데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를 펼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하나님이 모세를 부릅니다. “모세야, 내가 너를 바로 왕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리라.” 그러자 모세가 대답합니다. “하나님, 내가 누구관데 그들이 나를 듣습니까? 나는 입이 뻣뻣하고 말이 둔하여 할 수 없나이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느냐? 그가 너를 대신하여 말하리라.” 즉 하나님은 모세를 도와 같이 합력하여 일을 할 만한 사람을 묶어주셨습니다. 또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도 같이 합력하여 일할 수 있는 짝을 묶어주셨고, 예수님도 제자들 중 둘씩 짝을 묶어주어 합력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서로 인격이 틀리고, 학벌이 틀리고, 자라난 환경이 틀린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모습이 당장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이 말씀을 분명히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로마서 8:26-30)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과의 대화(마 19장, 막 10장, 눅 18장)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선(善)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의에 부합되는 것만이 선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선하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칭찬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을 선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는 좀 다른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보편적으로 어느 것들끼리의 차이면 문제가 없지만, 절대 기준과의 차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과 사람이 생각하는 선이 다르면 그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선은 선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이 말씀, 제법 유명해서 어지간한 사람은 암송하고 있는 이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에 나오는 ‘선’, 모든 것이 협력하여 이루어내는 선(善) 역시 하나님이 선하게 여기시는 것, 그 하나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로마서 8장 전체를 흐르는 맥락과도 일치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바라는 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 –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은 하나님의 목적을 표현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맥락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善)’이란 역시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나타나는 것 그것입니다.

여기서 일반적인 안목으로 보면 눈에 띄지 않지만 의외에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을 이루는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선을 이루려면 선한 것이 모이고, 선한 것을 추구할 때 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모든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란 예외가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악한 것조차 선을 이루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편적 가치관으로 볼 때, 선을 이루는 일에 악이 협력한다는 것은 용납되기 힘듭니다.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 없다.’는 말에서 보듯이 그럴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이 악한 것인가?’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세상의 모든 것, 모든 피조물은 다 하나님께서 그 의도하신 목적이 있어 만드신 것으로 악하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디모데전서에서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로마서 8장에서도 바울 사도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목적을 표현하는 아들을 고대하는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에서만 봐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있고 그것을 표현할 때 선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따라서 선을 이룬다는 것,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협력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가진 생각, ‘선을 이루는 것은 선함’이라는 생각은 사람의 가치 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가치기준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사람을 부끄럽게도 여기는 그런 가치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즉 세상에 악한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악한 것으로 규정하는 사람의 선악에 대한 기준 그 하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자청년과 나누신 대화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보고 ‘선한 선생’이라고 부른 청년을 꾸짖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자기가 가진 선과 악에 대한 기준으로 판단해 보니 선한 선생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그 마음 안에 선과 악에 대한 판단 기준, 곧 선악과를 먹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고 답을 하시는 것은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합당하면 선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에 실패한 것이나 악한 것을 만드셨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랬단 말입니까? 그것이 아닌데 세상에 악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에 악한 것이 있는데 어떻게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악한 것으로 보는 안목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것이라면 악한 것과 연관을 짓습니다. 자기 기준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육신의 삶이 세상과 삶의 본질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되면 하나님의 은혜고,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힘든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 곧 자기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만 알아도 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선과 악, 본질과 허상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선을 이루는 것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 곧 하나님의 의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이 표현되는 것에 있는데, 그런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있어 수고스럽고, 힘든 일이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 곧 현재의 고난을 감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세상에 악한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악은 제외하고 하나님의 선을 이루자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악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이 악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을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나누고 서로 선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서로가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선함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없어서 서로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셨다는 것, 그 하나가 인정이 되지 않아서 세상이 시끄럽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은 이것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선한 것이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선함을 위하여 창조된 피조물이기에 그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는 것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도 그 피조물이므로 사람에게 주신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에 소비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입히신 육신을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하나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드러났듯, 육신을 가진 모든 인생은 육신의 수고로움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 그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가진 모든 것, 육신의 모든 것은 선과 악으로 나누지 말고 다 합하여 하나님의 선을 나타내는 것에 소비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산제이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신이 불편해지는 것은 곧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진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육신이 병원에 가는 수고를 하지 않고 병이 낫는 것을 은혜라 여기고, 몸이 아픈 것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 여깁니다. 아프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을 때도 육신의 수고 없이 기적적으로 나을 때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어야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런 안목과 가치관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법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것은 하나님이 동원하실 수 있는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과 능력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수고하는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그 마음 안에서 선을 이루는 것은 모든 것이 아니라 자기 기준으로 판단한 선으로만 선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신앙과 안목일 뿐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Romans 8:28)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Romans 8:28).

Jesus said in the conversation with the rich youth (Matthew 19, Mark 10, Luke 18) that only God is good. Therefore, goodness is only good that conforms to God’s righteousness. It is a bit different from what people usually think of doing good things that do not cause social, moral, and praiseworthy things about good things. There is no problem if the differences are universal, but the difference is different from the absolute standard. If the line that God speaks is different from the line that man thinks, it is not the line that man thinks is good.

This is what the apostle Paul says: “Good” in the words of Romans 8:28, which is recited by a person who is famous and well-known, and the good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That is what you are talking about. This is consistent with the context of the whole passage of Romans 8. All the creatures hope that the appearance of the Son of God – the creation of all Gods – is consistent with the context of being an expression of God’s purpose. So ‘goodness’ is also the manifestation of God’s intent.

Here, in a general sense, it is not noticeable but there is something to be surprised about. It is about the process of being good. From a general point of view, good things come together to do good, and good things come from when we seek good things. But the apostle Paul says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to make good. “Everything” does not mean that there are exceptions. In other words, it can be said that even the evil is to cooperate in the work of good.

Then, in terms of universal values, it is unacceptable for evil to cooperate with good work. As you can see from the words ‘I can not steal the candle because I read the Bible’, this is not possible. But this is about what is evil? The apostle Paul tells us that everything in the world, all creation, is not evil because God made it for his intended purpose.

This is what Jesus said in 1 Timothy, but above all, Romans 8 tells us that Paul is saying that all creatures in the world are anticipating the Son who expresses God’s purpose. God has an intention of God, and God has an eye for good in expressing it.

For everything God created is good, and nothing is to be rejected if it is received with thanksgiving, (1 Tim. 4: 4)

Therefore, to make good, to fulfill God’s righteousness is to say that all things in the world cooperate. However, the idea that people have the idea of ​​’being good is good’ is about people’s value standards. The value standard of the person is about a value standard that is ashamed of those who say that God was very good to see. In other words, what is evil in the world is that there is only one standard for the good and evil of a man who defines what God has made evil.

This is the will of God, which is well integrated in the conversation that Jesus had with the rich youth. When Jesus saw Himself as the Son of God, He rebuked a young man who was called a “Good Teacher.” The reason is not different. He judged Jesus as the standard of good and evil he had, and judged him as a good teacher. So this young man is the one who ate the standard of judgment on good and evil in his heart, the good and the bad.

Jesus answered, “Only one God is good.” The standard for good and evil is God. If you are worthy of God’s righteousness, you are good, otherwise you are evil. Then did God make a failure or an evil thing when he created this world? Is the God of all-powerful love doing this? Where is the evil in the world? How could you be able to rest after the creation of something evil in the world?

Evil is nothing else. It is because of the discernment of what God has done as evil. People associate with evil if it is disadvantageous to them. It is because I have an idea of ​​my own standards. It is because the life of the flesh is the essence of the world and life. It is the grace of God according to his own thoughts, and it is because he does not do the will of God if he does not do what he thinks. But knowing that the world is hard is for one reason only, it is not what you want, but you can see that people are sharing good and evil, nature and illusion on their own standards.

It is the goodness of God, the righteousness of God, which is expressed in the character of God through all the creatures of the world, which is a laborious and hard work in the process of the righteousness of God There are evil things in the world when those who do not want to happen, those who do not suffer the present sufferings, see. And to think that we should do God’s good except for such evil.

There is nothing evil in the world if you admit that God is the Creator of Himself. The wickedness of the world is that man divides what God has made into good and evil, and pursues what is good for one another. The reason for the war is that it is different from the goodness of thinking that each other should be accomplished. So we can not cooperate and achieve God’s good, so we kill each other. That is to say, God made life, one can not be recognized and the world is noisy.

The apostle Paul’s words are about this. Everything in the world is good, and all creatures in the world are creatures created for the good of manifestation of the righteousness of God, so that all things in the world exist for the coming forth of the Son of God to manifest His intention.

And that man is the creature, so it is reasonable to mobilize all that he has given to man and spend it in expressing God’s character. That is a hardship. Just as Jesus revealed the identity of the Son of God by giving the body of God on the cross, all life with the flesh is the purpose of that being to express God’s righteousness through the hard work of the flesh. All that we have for it, all things in the flesh, do not divide into good and evil, but consume them to represent God’s good. It is a sacrifice, a life in which God is a temple.

But people think that discomfort in the body is a departure from the blessings of God. Therefore, it is grace that the body does not go to the hospital, but the sickness is healed, and the body is sick because it is wrong with God. You should not be sick. And when we are good and we are miraculous without physical labor, we are considered to be God’s grace. It is grace to have no trouble.

Such discernment and values ​​do not know how everything works together to form good. To them everything is like a miracle that God can mobilize. It is believed that God uses miracles and power to represent the glory of God. So, the more people do not have to labor, the more God thinks that he is God’s grace. It is a faith and an obsession that believes that what is already in the mind is not everything, but that good is done by the line that is judged on its own standards.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삶

주 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삶

본 문: 로마서 8장 28-30절

설교자: 조 성 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은 퍼즐 맞추기 게임을 아시나요.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맞춰가는 게임입니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나 풍경사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맞추곤 하는데 이 퍼즐 조각은 제 자리가 아니면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퍼즐 조각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게 될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완성된 그림을 모른 채 다만 조각들을 맞춰가면서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잘 맞을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잘 맞지 않습니다. 모든 조각들을 다 맞추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그림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자기인생을 통해 그린 그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인생은 각자가 하나님께 받은 퍼즐조각 상자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8)”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서로 한 조각 한 조각이 맞아서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성된 그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합니다. 그러나 다 맞추었을 때는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아서 우리가 보기에는 잘 맞아 보이지 않지만 결국 그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모든 인생들은 각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퍼즐 조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고전 7:7)” 이 말씀을 보면 우리 각자가 달려갈 길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자 맞춰가는 퍼즐의 그림이 다른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보면,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힘든 삶을 살았고 감옥에 갇혔으며 목이 잘려 죽었지만, 그의 삶은 아름다운 하나의 그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어떠합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 21:18-19)” 이 말씀은 앞으로 베드로가 어떤 삶을 살다가 죽을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요한을 가리키며 주님께 그의 운명을 묻자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 21:21-22)”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의 의미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아는 대상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삶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숨 쉬는 것이나 건강이나 재산이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바꿔놓으십니다. 우리가 오해하지 말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무슨 일이든 잘 되리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그리스도 중심의 의미입니다.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살지만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하늘나라에서 볼 때 우리에게도 복이 되는 삶입니다. 이것은 마치 훌륭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다가 까만 물감이 묻은 곳을 멋진 의자로 만들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

삶에 있어서 좋은 환경이나 나쁜 환경이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선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모세는 애굽인을 살해하였습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일을 좋은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서 모세를 광야로 보내시고 그곳에서 훈련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의 배후에서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 백성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이해할 수 없더라도 말입니다. 야곱은 아주 교활한 사람으로 자신의 형과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야곱을 어머니의 고향으로 보내시고 그곳에서 결혼을 해서 이후에 애굽으로 이끄십니다. 그가 소중한 아들 요셉의 피 묻은 옷을 보았을 때,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퍼즐 조각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이들을 애굽으로 이끄는 일을 위해 아름답게 이뤄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었던 일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성도 간에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을 하는 것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선교팀을 두 팀으로 만드시고 일하게 하십니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의 행적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만 바나바 등 다른 여러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일한 것도 하늘나라에 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뿐이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해당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협력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맞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으로 교회에 나가서 신앙심을 표현할지 몰라도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롬 1:28)”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19)”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29-3)” 퍼즐은 이미 완성된 그림을 맞춰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완성된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성경의 진리에는 양면이 있는데 모든 삶이 완성된 그림이라는 것은 예정론 쪽에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의 삶은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지나 온 삶을 되돌아보면 그 때는 한 조각의 그림을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들어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이 꼭 필요한 조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세상을 이긴 자들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하나님께서 영화롭다고 선포하신 삶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우리를 대변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복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선포하셔서 아무도 정죄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끝난 게임입니다.

결론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영원히 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고,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에 의해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가르침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말씀을 죄를 많이 지어야 한다는 의미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연약해서 넘어질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그림의 모습으로 합력해서 바꿔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은 삶을 살아오면서 한 조각의 퍼즐조각을 가지고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까. 남편의 실직, 경제적 어려움, 질병, 큰 사건 등 사방을 둘러보아도 솟아날 구멍이 없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림과 맞을 것 같지 않는 퍼즐 조각을 들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워 한 적이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남은 퍼즐으르 다 맞추고 하늘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가지고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셨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협력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여러분에게 복이 되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님 감사합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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