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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강해 | [하루 한 장] 히브리서7장_의의 왕, 평강의 왕 2794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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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2 (금) [하루 한 장]“의의 왕, 평강의 왕” (히7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히브리서 7장은 예수님께서
레위지파도 아닌데 어떻게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지를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을 통해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러
318명을 데리고 가서 네 나라의
왕들과 싸워서 승리했을 때
그는 자신조차도 그 승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럴 때 살렘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그에게 나타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도우셨음을 알려줬고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그 존재가 감춰진
매우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그는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입니다
바로 불의한 우리에게 의를 주시며
이로써 평강을 허락해주시는
구원자 메시야 예수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레위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그에게
축복을 받았으니 그는 레위지파가
아니라도 좋은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레위지파가 아니지만
그보다 더 높으신 분으로서
우리를 구원하는 대제사장 되시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는 온전한 대제사장이십니다.
====================================
* 부산 성민교회 : 부산시 사하구 승학로 201(괴정동).
http://sungminch.com/
성민교회 홈페이지에 오시면 더 많은 성민가족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홍융희 목사의 설교 mp3모음 USB구입은 교회 사무실로 전화 문의 바랍니다.
분홍목사의 사역 신청 문의도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51-204-0691 (담당 : 성민교회 박지선 간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루 한 장]과 여러 영상들을 통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http://www.youtube.com/c/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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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 홍융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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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설교말씀]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본체(히 7:1~28)

오늘은 히브리서 7장을 강해합니다. 히브리서는 총 13장으로 이뤄진 서신이니 7장은 꼭 중간지점이면서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만난 멜기세덱 제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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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edesd153.tistory.com

Date Published: 9/19/2021

View: 9048

헬라어 히브리서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후토스 가르 호 멜키세뎈 바실류스 살렘 히에류스 투 데우 투 휲시스투 호 쉬난테사스 아브라암 휘포스트레폰티 아포 테스 코페스 톤 바실레온 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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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7/25/2022

View: 3687

[히브리서 7장 – 교사용]

히브리서 7장. [ 1~19: 멜기세덱의 계열로서의 대제사장 예수님의 탁월성, 20~28: 구약의 제사장과의 비교로서 대제사장 예수님의 탁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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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9/20/2022

View: 2508

[히브리서 7장 헬라어 주석 강해]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히 7:1-3)

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7장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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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rn153.tistory.com

Date Published: 1/7/2022

View: 778

성서연구 – 히브리서 7장

근데 히브리서 기자가 특이한 관점으로, 이게 신약성경에 보면 다른 것도 많잖아요. 바울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거론한 부분이 있나요? 바울이 예수님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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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abia.net

Date Published: 5/10/2022

View: 7993

[히브리서 7장 은혜로운 설교말씀] 멜기세덱의 더 좋은 소망(히 7 …

히브리서 7장에서는 멜기세덱의 반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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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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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히브리서7장_의의 왕, 평강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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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히브리서 7장 강해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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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ssOfRNoihgU

[히브리서 7장 설교말씀]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본체(히 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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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7장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본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히브리서 7장은 구약의 멜기세덱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 십일조를 드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모두 구원을 얻게 됩니다. 죄악에서 고통당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순간 모든 죄악의 고통은 사라집니다. 주님은 멜기세덱과 같은 영원한 제사장으로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단 한 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죄를 지을 때마다 동물로 제사를 드려야 하지만 신약에서는 주님이 단 한 번으로 제물이 되어 주셔서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영원한 속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원죄가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목: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본체” (히 7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히 7:1~28

요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히 7:17)

주제: 예수님은 창 14장의 멜기세덱의 본체로 영원무궁한 대제사장이시다.

오늘은 히브리서 7장을 강해합니다. 히브리서는 총 13장으로 이뤄진 서신이니 7장은 꼭 중간지점이면서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만난 멜기세덱 제사장의 본체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시편 110편을 주석하고 있는 히브리서는 이미 살핀 6장에서 ① 예수님은 천사보다 우월하심(1장) ② 예수님은 무궁하신 구원자이심(2장) ③ 예수님은 모세보다 우월하심(3장) ④ 예수님은 참된 안식(4장) ⑤ 예수님은 무궁한 대제사장이심(5장) ⑥ 예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마지막 성취(6장) 으로 예수님이 누구시냐?에 대한 변증으로 영원무궁하신 대제사장이심을 점층적으로 증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의 그림자 멜기세덱(히 7:1~10)

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들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 의의 왕이요 둘째는 살렘 왕이니 곧 평화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축복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1~2절에 멜기세덱(Melchizedek)은 창세기 14:18-20에 처음 등장하는 제사장입니다. 당시 정치와 종교가 일치하는 시대 즉 제정일치 시대에 그 분은 살렘의 왕이기도 했습니다. 북방왕 엘람(Elam)의 그돌라오멜(Chedorlaomer)이 시날 왕 아므라벨(Amraphel of Shinar)과 엘라살 왕 이리옥(Arioch of Ellasar)과 열방의 왕 디달(Tidal of nations) 등 네 왕들이 연합해서 아브라함의 조카가 살고 있던 남방을 공격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방에는 소돔 왕 베라(Bera of Sodom), 고모라 왕 비르샤(Birsha of Gomorrah), 아드마 왕 시납(Shinab of Admah), 스보임 왕 세메벨(Shemeber of Zeboiim), 벨라 곧 소알 왕(the king of Bela, which is Zoar) 등 다섯 왕들이 다스리던 나라들이 남방이었습니다. 성경고고학에서 이 남방의 5개 지명이 역사적인 사실로 확인된 것은 그리 오래전이 아닙니다. 1955년 시리아의 한 농부가 다마스커스(성경의 다메섹)에서 약 320km 북쪽에 위치한 알레포(Aleppo)로부터 55km 남쪽에 있는 텔-마르디크(Tell Mardikh=에블라 Ebla)에서 우연히 돌로 된 사자 조각과 돌로 만근 성구(聖具)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 발견품을 Aleppo 박물관으로 이전되었지만 별 주의를 끌지 못했습니다. Ras Shamra로부터 90km 내륙에 위치한 이 지역은 거대한 “tell”(인공 언덕, 지정학적인 위치가 좋아 전쟁으로 파괴된 지역 위에 또 다른 도시가 건설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팔레스타인 지역에 고고학 발굴지역이 대부분 텔 지역임) 지역입니다. 56 헥타(hectar,3000평, 2.5 acre)의 규모로 140 에이크에 해당하는 넓은 지역입니다.

1962년 시리아 정부는 이탈리아와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고고학 발굴팀을 요청해서 1964년 로마대학의 고대 근동 연구소 중심으로 Missione Archeologica Italiana in Siria를 구성하고 그 책임자로 22세의 Paolo Matthiae가 임명되었습니다. 여기서 Tell-Mardikh을 발굴지로 선정하였지만 이로부터 4년간 많은 유물과 유적을 발굴했으나 문자 기록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도자기들이 대량 발굴되어 시대가 대개 EB IIIb – MB I (주전 24세기 – 2000 BC)과 MB IIa – IIb (2000-1600 BC)에 속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거 에블라 문명이 있던 곳으로 확인이 된 후 더욱 발굴 작업에 동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1975년 EB IIB1 (2400-2250 BC)층의 왕궁(G)에서 방대한 분량의 토판 문서가 발견되었고(약 1,000여개). 이어서 토판 창고(L 2769)가 발견되었는데 약 15,000개의 토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중 완전히 보존된 것은 2000개이며, 파손된 부분이 있는 것은 4000개이고, 나머지는 단편적인 조각들입니다. 발굴된 토판의 80% 정도가 경제적인 문서들과 행정 문서들입니다. 경제문서들은 대개 에브라 지역에서 이루어진 상거래에 대한 것으로 주요 품목은 방직섬유류, 금속종류 이며 비교적 활발한 경제활동을 보여 주고 있으며, 행정문서는 에블라 왕실 관리들과 지방 행정관리들에 대한 급여기록, 왕실에서 신전에 바친 제물들의 기록, 왕실에 보내온 여러 가지 보고문서, 곡식경작, 동물사육, 금속채광, 직조물생산, 목재채벌에 관한 기록들입니다. 나머지 20%는 역사문서 및 법률문서, 사전종류(lexical texts), 문학문서인데 신화, 신들에게 바치는 찬양시, 주술문, 경구, 잠언집 등이 있었습니다. 언어는 아카디언의 방언으로 판정되었다. G.E. Wright는 에블라 문서를 고증하던 중 창세기 14:2에 나오는 남방의 나라들이 성경에 나오는 순서대로 기록된 것을 발견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벨라(소알).

이때 남방왕들이 12년 동안 북방왕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13년에 배반하여 14년째에 그는 주변의 3왕들과 연합하여 남방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소돔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재물도 노략당하여 북방으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도망 나온 자가 아브라함에게 알렸습니다(창 14:11~13).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던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리고 훈련한 가신 318명(창 15:2에 언급한 아브라함의 노종 “엘리에셀 Eliezer”(나의 하나님께서 도우심)의 이름을 히브리어 숫자로 계산하면 318임, 히브리어 자음 한 자 한 자에는 숫자가 가치가 있음, Eliezer=1+30+10+70+7+200=318)을 인솔하여 북방에 가서 단과 호바까지 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그이 재물과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 남방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창 14:14~16).

이때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왕의 골짜기)로 나와 환영하였고,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the Most High God 엘 엘리온אֵל עֶלְיוֹן)의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이 성찬식의 그림자인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그의 손에 그 대적을 붙이시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전쟁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멜기세덱은 역사적 인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며 예표(豫表)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이라는 히브리어는 ‘의(義)의 왕’이라는 뜻이며 살렘이라는 말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9:6-7에 보면, 의의 왕과 평화의 왕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 명칭입니다.

3절에 이 멜기세덱이 ① 아버지도 없고 ② 어머니도 없고 ③ 족보도 없고 ④ 시작한 날도 없고 ⑤ 생명의 끝도 없어 ⑥ 하나님 아들과 닮아서 ⑦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말합니다. 멜기세덱의 부모나 족보나 출생이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을 신비한 베일에 감추신 것은 그를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과 예표로 삼으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닮은 자로 역사상 잠시 언급된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영원무궁한 제사장이신 메시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입니다. 시 110:4에서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무궁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멜기세덱은 예수님의 그림자요 예표(모형)입니다.

4~7절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논란의 여지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가 아브라함에게서 노략물 중에서 십분의 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족장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을 보면,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 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고 율법의 규정에 따라 자기 형제들에게 십일조를 받았지만, 레위가 태어나기 전,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취하였습니다. 둘째는,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후 그를 축복합니다. 7절에 ‘논란의 여지없이’(개역에는 폐일언지하고“) 즉 ‘변론할 것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습니다. 이런 점들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임이 나타납니다.

8~10절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 멜기세덱을 비교해 볼 때, 레위 지파 제사장들은 다 죽을 자들로서 십분의 일을 받았지만, 멜기세덱은 무궁토록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자로서 십분의 일을 받았습니다. 이 점에서도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보다 뛰어납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 때 레위는 아직 그 조상 아브라함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점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뛰어난 점일 뿐 아니라, 그가 레위 지파 제사장들보다 뛰어난 점임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구약시대 아브라함 때에 나타났던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그의 이름이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의(義)의 왕’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메시아의 명칭입니다. 또 그는 살렘 왕인데, 살렘은 ‘평화’라는 뜻으로 메시아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또 멜기세덱은 부모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시작한 날이나 죽은 날도 없습니다. 그에 대한 인간적인 기록이 없다는 뜻입니다. 메시아는 그 신적 본질에 있어서 아비도 없으시고 어미도 없으시며 족보도 없으시며 시작한 날이나 죽은 날도 없으십니다. 그는 영원히 살아계신 신적 존재이시며,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레위 지파의 아론의 자손들인 대제사장들보다 더 높음을 보입니다. 그것은 메시아의 예표이며 모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 같은 분이십니다. 그는 의의 왕이시며 평화의 왕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으신 신적 존재이십니다. 그는 구약의 율법제도보다 더 높으시며 하나님이십니다.

2. 더 나은 제사장 직분의 필요성(히 7:11-19)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이는 제사 직분이 바뀌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는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임이기 때문이라. 14 이는 우리 주님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분은 육체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이는 전에 있던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였기 때문이라. 19 (이는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하기 때문이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율법제도가 폐지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은 부족하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the Levitical priesthood)이 불완전함이 없었다면 아론의 반차(order)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order)를 따르는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온전함은 ‘완전한 사죄, 완전한 화목, 완전한 교제의 회복’을 가리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흠과 점이 많았고 종종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부패되었고 육신적으로도 죽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제물도 죄인에게 참으로 사죄(赦罪)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실상 장차 오실 메시아의 속죄사역의 모형과 그림자와 예표(豫表)에 불과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 사람이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을 세울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의 율법제도는 폐지되고 복음의 새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분은 물론 구약시대의 율법과 무관하지 않으십니다. 구약의 율법은 그분과 그분의 대속사역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와 예표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와 대언자들에게 증거를 받으셨습니다(롬 3:21). 그분은 율법이나 대언자나 폐하러 오지 않으셨고 완성하러 오셨습니다(마 5:17). 그분은 구약시대의 율법, 즉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죄인들에게 완전한 사죄, 완전한 의, 완전한 화목, 완전한 교제의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롬 3:21-22; 10:4).

12~13절 “이는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이는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기 때문이라.” 제사장 직분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단지 제사장 직분의 변화가 아니고 결국 율법제도의 변화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론 자손의 제사장이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으로 대체되듯이, 구약시대의 율법제도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고 복음의 새 형식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움에 대해 말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12지파에 속하지 않는 다른 제사장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예배와 제단 일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 즉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 맡겨진 일이고 다른 지파 사람들은 그 일에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전혀 다른 족속에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110편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한 제사장을 메시아로 보내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신약시대의 새 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14-15절 “이는 우리 주님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주 예수님께서는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에서 나십니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해 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제사장으로 오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와 율법제도를 영원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분은 메시아를 유다 지파에서 나게 하지 않으시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으로 일어나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메시아가 유다 지파에서 나셨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으로 오신 것을 보면,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와 율법제도가 폐지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16-17절 “그분은 육체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아론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육체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육체에 관계되는 계명의 법을 따르는 구주가 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 구주가 되셨습니다. ‘무궁한 생명’이란 70~120년에 제한된 육신의 생명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생명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제사장들과 달리 하나님의 영원무궁하신 아들이십니다.

18-19절 “이는 전에 있던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였기 때문이라. 19 (이는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하기 때문이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따라’ 보내신 이유는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가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합니다.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합니다(롬 3:20).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나 율법제도는 그 자체로는 연약하고 무익합니다. 그것은 단지 앞으로 오실 완전하신 메시아에 대한 그림자와 모형과 예표이며 길의 안내자(guide) 뿐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셨으므로 그림자와 모형과 예표인 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소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義)가 되십니다(롬 10:4; 고전 1:30). 우리의 의는 오직 이것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다. 찬송 252장(통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후렴)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3. 더 나은 제사장 (히 7:20-28)

20 또 예수님께서 제사장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님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님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무궁토록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 이와 같이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님은 영원무궁토록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28 이는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기 때문이라.

20-21절에 “또 예수님께서 제사장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님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님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무궁토록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써 제사장이 되셨다는 점에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보다 더 우월하십니다. 율법 아래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심으로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시 110:4).

22절 “이와 같이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이와 같이’라는 원어(카타토수톤katatosouton)는 ‘이만큼’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맹세만큼이란 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큰 것 곧 하나님의 맹세에 의하여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더 좋은 언약’이란, 구약이 예표적, 예언적 성격의 언약이었으나 신약은 실체적, 성취적 성격의 언약임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새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새 언약을 확실히 깨닫게 되고 확신케 되었습니다.

23~24절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님은 영원무궁토록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계시다는 점에서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보다 더 우월하십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죽는 인생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효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분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무궁토록 살아계신 분이시며 따라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않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습니다. ‘갈리지 않는다’는 원어(아파라바토스 aparabatos)는 ‘임시적이지 않다, 변하지 않다, 영속적이다’라는 뜻입니다.

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분께서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자기를 힘입어’라는 말은 ‘그를 통하여’라는 뜻이고, ‘온전히’라는 말은 ‘끝까지, 영원히, 완전히’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끝까지, 영원히,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까닭은 그분께서 항상 살아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간구한다’(ἐντυγχάνειν)는 뜻은 ‘중재한다, 중보의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26-27절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라.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들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셨고, 단번에 자신을 드려 속죄사역을 이루셨고 의(義)를 이루십니다. ‘단번에 once’라는 말(에파팍스ephapax ἐφάπαξ)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이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제사가 필요 없습니다.

28절 “이는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완전한 이유는 그분이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 즉 신적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온전케 되었다’는 말은 구주로서의 그분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속죄사역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멜기세덱의 본체이시며 만인의 죄를 대속하신 무궁하신 대제사장이십니다. 아론의 제사장 반차가 생기기 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멜기세덱을 만나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미리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은총을 모두 받도록 오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여 단번에 속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예수님의 멜기세덱 반차를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죄를 씻으며 구원받을 수 있는 은총을 주신 예수님을 믿게 하심도 감사드립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오늘날 저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은혜의 언약으로 저희들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죄 사함을 받고 다시 태어나는 중생의 씻음으로 새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은 믿음의 완성자(히 1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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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히브리서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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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토스 가르 호 멜키세뎈 바실류스 살렘 히에류스 투 데우 투 휲시스투 호 쉬난테사스 아브라암 휘포스트레폰티 아포 테스 코페스 톤 바실레온 카이 율로게사스 아우톤

개역개정,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새번역,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여러 왕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에, 그를 만나서 축복해 주었습니다.

우리말성경,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는 왕들을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했습니다.

가톨릭성경,1 이 멜키체덱은 “살렘 임금” 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 로서, “여러 임금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영어NIV,1 This Melchizedek was king of Salem and priest of God Most High. He met Abraham returning from the defeat of the kings and blessed him,

영어NASB,1 For this Melchizedek, king of Salem, priest of the Most High God, who met Abraham as he was returning from the slaughter of the kings and blessed him,

영어MSG,1 Melchizedek was king of Salem and priest of the Highest God. He met Abraham, who was returning from “the royal massacre,” and gave him his blessing.

영어NRSV,1 This “King Melchizedek of Salem, priest of the Most High God, met Abraham as he was returning from defeating the kings and blessed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 ουτος γαρ ο μελχισεδεκ βασιλευς σαλημ ιερευς του θεου του υψιστου ο συναντησας αβρααμ υποστρεφοντι απο της κοπης των βασιλεων και ευλογησας αυτον

라틴어Vulgate,1 hic enim Melchisedech rex Salem sacerdos Dei summi qui obviavit Abrahae regresso a caede regum et benedixit ei

히브리어Modern,1 כי זה מלכי צדק מלך שלם כהן לאל עליון אשר יצא לקראת אברהם בשובו מהכות את המלכים ויברכהו׃

성 경: [히7:1]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 이 멜기세덱은…복을 빈 자라 – 본절은 창 14:17-20에 대한 언급으로, 저자는 멜기세덱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 살렘 왕이요 – ‘살렘’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estcott). (2) 혹자는 세겜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XX 창 33:18, Kirland). (3) 혹자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시 76:2, Morris, Lane, Vincent, Winter).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 제정(祭政)이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에 왕이 제사장 직책을 수행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최고의 하나님’이란 의미로(Hewitt) 하나님의 초월적인 신성을 암시한다(Lane, Hanlon, Philo).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이에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제사장으로 인식하여 십일조를 그에게 바친다(창 14:19,20).

󰃨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 창 14:17-20(LXX)에서는 ‘아브람’으로 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아브라함'(‘A )으로 되어 있다. 이런 변화가 있다 할지라도 저자는 본절의 내용을 70인역에서 인용한 듯하다(Lane). 한편 저자는 인용 과정에서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연합한 왕들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에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영접한 부분은 삭제하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사건과 아브라함이 얻은 것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준 사건(2절)만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변개를 통해서 저자는 4-10절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탁월함을 강조한다(Lane, Williamson).

호 카이 데카텐 아포 판톤 에메리센 아브라암 프로톤 멘 헤르마뉴오메노스 바실류스 디카이오쉬네스 에페이타 데 카이 바실류스 살렘 호 에스틴 바실류스 에이레네스

개역개정,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새번역,2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란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요, 다음으로, 그는 또한 살렘 왕인데, 그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성경,2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10분의 1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첫째로 ‘의의 왕’이고 다음으로 ‘살렘 왕’, 곧 ‘평화의 왕’입니다.

가톨릭성경,2 그리고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먼저 그의 이름은 ‘ 정의의 임금’ 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영어NIV,2 and Abraham gave him a tenth of everything. First, his name means “king of righteousness”; then also, “king of Salem” means “king of peace.”

영어NASB,2 to whom also Abraham apportioned a tenth part of all the spoils, was first of all, by the translation of his name, king of righteousness, and then also king of Salem, which is king of peace.

영어MSG,2 Abraham in turn gave him a tenth of the spoils. “Melchizedek” means “King of Righteousness.” “Salem” means “Peace.” So, he is also “King of Peace.”

영어NRSV,2 and to him Abraham apportioned “one-tenth of everything.” His name, in the first place, means “king of righteousness”; next he is also king of Salem, that is, “king of peace.”

헬라어신약Stephanos,2 ω και δεκατην απο παντων εμερισεν αβρααμ πρωτον μεν ερμηνευομενος βασιλευς δικαιοσυνης επειτα δε και βασιλευς σαλημ ο εστιν βασιλευς ειρηνης

라틴어Vulgate,2 cui decimas omnium divisit Abraham primum quidem qui interpretatur rex iustitiae deinde autem et rex Salem quod est rex pacis

히브리어Modern,2 ואשר חלק לו אברהם מעשר מכל שמו יפרש מלך הצדק ועוד מלך שלם הוא מלך השלום׃

성 경: [히7:2]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저자는 본절에서 멜기세덱의 두 가지 칭호를 제시한다.

󰃨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 ‘멜기세덱’은 ‘나의 왕’을 의미하는 ‘말키'(*)와 ‘의'(義)를 의미하는 ‘체뎌'(*)이 결합된 형태로 문자적인 의미는 ‘나의 왕은 의롭도다’이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여호와 우리의 의'(렘 23:6)로 부른 것과 연결된다.

󰃨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살렘’이라는 지명(地名)은 ‘평강’을 의미하는 ‘샬롬'(*)과 동일한 어근에서 비롯된 단어로 ‘평화’로 번역될 수 있다(Morris). 장차 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평강의 왕'(사 9:6)이라 칭한 것과 연결된다. 저자는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통하여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와의 관련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참된 평강을 주러 오셨으며(마 11:28), 자신의 의를 통하여 공의가 넘치는 나라를 완성하며 다스리신다(사 9:7;11:1-5).

아파토르 아메토르 아게네알로게토스 메테 아르켄 헤메론 메테 조에스 텔로스 에콘 아포모이오메노스 데 토 휘오 투 데우 메네이 히에류스 에이스 토 디에네케스

개역개정,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새번역,3 그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아서, 언제까지나 제사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우리말성경,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습니다. 생애의 시작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 항상 제사장으로 있습니다.

가톨릭성경,3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

영어NIV,3 Without father or mother, without genealogy, without beginning of days or end of life, like the Son of God he remains a priest forever.

영어NASB,3 Without father, without mother, without genealogy, having neither beginning of days nor end of life, but made like the Son of God, he abides a priest perpetually.

영어MSG,3 Melchizedek towers out of the past–without record of family ties, no account of beginning or end. In this way he is like the Son of God, one huge priestly presence dominating the landscape always.

영어NRSV,3 Without father, without mother, without genealogy, having neither beginning of days nor end of life, but resembling the Son of God, he remains a priest forever.

헬라어신약Stephanos,3 απατωρ αμητωρ αγενεαλογητος μητε αρχην ημερων μητε ζωης τελος εχων αφωμοιωμενος δε τω υιω του θεου μενει ιερευς εις το διηνεκες

라틴어Vulgate,3 sine patre sine matre sine genealogia neque initium dierum neque finem vitae habens adsimilatus autem Filio Dei manet sacerdos in perpetuum

히브리어Modern,3 באין אב באין אם באין יחש ולימיו אין תחלה ולחייו אין סוף כי אם נדמה לבן האלהים הוא עומד בכהנתו לנצח׃

성 경: [히7:3]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파토르 아메토르'(*)는 사생아나 천한 신분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경우에 따라 성적(性的)인 것을 초월하여 태어난 신적인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Morris). 이것은 저자가 멜기세덱을 천사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경에 멜기세덱의 부모에 대한 언급이나 족보에 대한 기록이 없음을 나타낸다(Lane). 멜기세덱의 부모와 족보가 없다는 사실은 그의 탄생이 기적적으로 되어졌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제사장적인 특질을 설명하려는 것으로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탄생이나 족보와 같은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거나 레위계통의 제사장직의 승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임을 나타낸다(5:5, 6, Lane, Horton)

󰃨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 저자는 멜기세덱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언급이 창세기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에 착안하여 그의 제사장직이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것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임을 나타낸다. 저자는 이러한 예표와 강조를 통해서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다른 제사장임을 진술한다(Spicq). ‘방불하여’의 헬라어 ‘아포모이오메노스'(*)는 ‘유사하여’라는 의미로 멜기세덱과 하나님의 아들이 외형적인 형태에 있어서 유사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 본문은 창 14:18-20의 내용에 대한 해석인 시110:5(LLX)의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저자는 시110:5(LLX)의 ‘영원한'(*, 에이스 톤 아이오나)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항상'(*, 에이스 토 디에네케스)으로 변형시켰다. 이런 변형은 저자가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멜기세덱의 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영원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데오레이테 데 펠리코스 후토스 호 카이 데카텐 아브라암 에도켄 에크 톤 아크로디니온 호 파트리아르케스

개역개정,4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새번역,4 멜기세덱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족장인 ㉠아브라함까지도 가장 좋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아브라함은’

우리말성경,4 그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족장 아브라함도 그에게 10분의 1을 바쳤습니다.

가톨릭성경,4 그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선조 아브라함도 가장 좋은 전리품에서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영어NIV,4 Just think how great he was: Even the patriarch Abraham gave him a tenth of the plunder!

영어NASB,4 Now observe how great this man was to whom Abraham, the patriarch, gave a tenth of the choicest spoils.

영어MSG,4 You realize just how great Melchizedek is when you see that Father Abraham gave him a tenth of the captured treasure.

영어NRSV,4 See how great he is! Even Abraham the patriarch gave him a tenth of the spoils.

헬라어신약Stephanos,4 θεωρειτε δε πηλικος ουτος ω και δεκατην αβρααμ εδωκεν εκ των ακροθινιων ο πατριαρχης

라틴어Vulgate,4 intuemini autem quantus sit hic cui et decimam dedit de praecipuis Abraham patriarcha

히브리어Modern,4 ראו עתה מה גדול הוא אשר גם אברהם אבינו נתן לו מעשר מראשית השלל׃

성 경: [히7:4]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4-10절까지는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함을 논증한 진술이다.

󰃨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 ‘어떻게 높은 것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펠리코스'(*)는 영탄법(詠嘆法)으로 멜기세덱의 위대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일체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략물 중 좋은 것’의 헬라어 ‘아크로디니온'(*)은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는 ‘아크로스'(*)와 ‘무더기’를 뜻하는 ‘디스'(*)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 ‘쌓인 것들 중에 가장 높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진리품 중에서 가장 좋은것을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주었다는 표현으로 전리품 중 가장 좋은 것을 받은 멜기세덱의 권위를 시사한다. 아브라함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존재이다. 이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주었다는 사실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멜기세덱에게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십일조를 드렸음을 나타내며, 멜기세덱이 레위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위대하고 우월함을 암시한다(Cockerill).

카이 호이 멘 에크 톤 휘온 레위 텐 히에라테이안 람바논테스 엔톨렌 에쿠신 아포데카툰 톤 라온 카타 톤 노몬 퉅 에스틴 투스 아델푸스 아우톤 카이페르 엨셀렐뤼도타스 에크 테스 오스퓌오스 아브라암

개역개정,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새번역,5 레위 자손 가운데서 제사장 직분을 맡는 사람들은, 자기네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비록 그 백성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율법을 따라 십분의 일을 받아들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 ㉡그, ‘형제들’ ㉢그, ‘허리에서 나왔지만’

우리말성경,5 레위 자손 가운데 제사장 직분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 형제인 백성들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지만 율법을 따라 그들에게서 10분의 1을 거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가톨릭성경,5 레위 자손 가운데에서 사제직을 맡는 이들에게는, 율법에 따라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거두는 규정이 있습니다. 백성 역시 그들의 형제로서 같은 아브라함의 소생인데도 그렇습니다.

영어NIV,5 Now the law requires the descendants of Levi who become priests to collect a tenth from the people–that is, their brothers–even though their brothers are descended from Abraham.

영어NASB,5 And those indeed of the sons of Levi who receive the priest’s office have commandment in the Law to collect a tenth from the people, that is, from their brethren, although these are descended from Abraham.

영어MSG,5 Priests descended from Levi are commanded by law to collect tithes from the people, even though they are all more or less equals, priests and people, having a common father in Abraham.

영어NRSV,5 And those descendants of Levi who receive the priestly office have a commandment in the law to collect tithes from the people, that is, from their kindred, though these also are descended from Abraham.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οι μεν εκ των υιων λευι την ιερατειαν λαμβανοντες εντολην εχουσιν αποδεκατουν τον λαον κατα τον νομον τουτεστιν τους αδελφους αυτων καιπερ εξεληλυθοτας εκ της οσφυος αβρααμ

라틴어Vulgate,5 et quidem de filiis Levi sacerdotium accipientes mandatum habent decimas sumere a populo secundum legem id est a fratribus suis quamquam et ipsi exierunt de lumbis Abrahae

히브리어Modern,5 הן אלה מבני לוי אשר נחלי את הכהנה יש להם חק על פי התורה לקחת את המעשרות מן העם מן אחיהם אשר אף הם יצאי ירך אברהם׃

성 경: [히7:5]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 저자는 본절과 6절에서 십일조에 관한 문제를 놓고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 멜기세덱을 비교하여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논증한다. 율법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바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민 18:21, 24), 레위인들은 다시 그들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주도록 의무화하고 있었다(민 18:26). 이런 제도는 바벨론 유수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느 10:38,39). 이와 같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모두가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받아 기업으로 삼았다. 한편 ‘허리에서 난 자’에서 ‘허리’의 헬라어 ‘오스퓌오스'(*)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활동을 위한 준비 태세’나(왕상18:46) ‘힘의 근원'(나 2:1)을 의미하기도 하나 본절에서는 잉태와 출산에 관련된 생식 기능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라 할지라도 제사장들은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취했음을 나타낸다. 즉 제사장들이 백성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형제로서 본질적으로 동등한 존재이며 그들이 십일조를 걷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율법이 그렇게 명시하고 있기 때문임을 나타낸다(Morris).

호 데 메 게네알로구메노스 엨스 아우톤 데데카토켄 아브라암 카이 톤 에콘타 타스 에팡겔리아스 율로게켄

개역개정,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새번역,6 그러나 멜기세덱은 그들의 족보에 들지도 않았지만,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그 사람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우리말성경,6 그러나 이들로부터 나오지 않은 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10분의 1을 취했고 약속을 받은 그를 축복했습니다.

가톨릭성경,6 그런데 멜키체덱은 그들의 족보에 들지 않았으면서도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고, 약속을 받은 그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영어NIV,6 This man, however, did not trace his descent from Levi, yet he collected a tenth from Abraham and blessed him who had the promises.

영어NASB,6 But the one whose genealogy is not traced from them collected a tenth from Abraham, and blessed the one who had the promises.

영어MSG,6 But this man, a complete outsider, collected tithes from Abraham and blessed him, the one to whom the promises had been given.

영어NRSV,6 But this man, who does not belong to their ancestry, collected tithes from Abraham and blessed him who had received the promises.

헬라어신약Stephanos,6 ο δε μη γενεαλογουμενος εξ αυτων δεδεκατωκεν τον αβρααμ και τον εχοντα τας επαγγελιας ευλογηκεν

라틴어Vulgate,6 cuius autem generatio non adnumeratur in eis decimas sumpsit Abraham et hunc qui habebat repromissiones benedixit

히브리어Modern,6 ואשר איננו מתיחש למשפחתם הוא לקח את המעשר מן אברהם ויברך את אשר היתה לו ההבטחה׃

성 경: [히7:6]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십분의 일을 취하고 –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율법에 의해 십일조를 거두었으나 멜기세덱은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다(2절; 창 14:18-20). 저자는 앞절과 본절에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 멜기세덱을 십일조를 받는 문제로 비교하여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멜기세덱이 훨씬 우월한 존재임을 진술하고 있다.

󰃨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 ‘그 약속 얻은 자’는 아브라함을 가리킨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복을 빌어 주었다(1절;창 14:19,20). 고대 사회에서 축복의 행위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신분상(身分上)으로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Morris).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준 사실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코리스 데 파세스 안틸로기아스 토 엘랕톤 휘포 투 크레잍토노스 율로게이타이

개역개정,7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새번역,7 두말할 것 없이, 축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입니다.

우리말성경,7 두말할 필요 없이 축복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7 따질 것도 없이, 축복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서 받는 법입니다.

영어NIV,7 And without doubt the lesser person is blessed by the greater.

영어NASB,7 But without any dispute the lesser is blessed by the greater.

영어MSG,7 In acts of blessing, the lesser is blessed by the greater.

영어NRSV,7 It is beyond dispute that the inferior is blessed by the superior.

헬라어신약Stephanos,7 χωρις δε πασης αντιλογιας το ελαττον υπο του κρειττονος ευλογειται

라틴어Vulgate,7 sine ulla autem contradictione quod minus est a meliore benedicitur

히브리어Modern,7 והנה נכון הדבר כי הקטן יברך על ידי הגדול ממנו׃

성 경: [히7:7]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 – ‘폐일언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리스 데 파세스 안틸로기아스'(*)는 파피리(Papyri)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관용구로서 저자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확실성을 강조할 때 사용된 표현이다. 한편 ‘높은’의 헬라어 ‘크레이트토노스'(*)는 비교급으로서 ‘더 나은’, ‘더욱 탁월한’ 혹은 ‘더욱 위대한’이란 의미로 본서에 자주 사용된 용어이다(19,22절;8:6;9;23;11;40). 본절의 이런 ‘비교급’ 표현은 창 14:18-20의 내용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1절)이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보다 더욱 위대한 존재였음을 암시한다(Cockerill).

카이 호데 멘 데카타스 아포드네스콘테스 안드로포이 람바누신 에케이 데 마르튀루메노스 호티 제

개역개정,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새번역,8 한 편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십분의 일을 받고, 다른 한 편에서는 살아 계시다고 입증되시는 분이 그것을 받습니다.

우리말성경,8 앞의 경우는 죽게 될 사람들이 10분의 1을 받았고 뒤의 경우는 살아 있다는 증거를 받은 사람이 10분의 1을 받은 것입니다.

가톨릭성경,8 그리고 한쪽에서는 언젠가 죽을 인간들이 십일조를 받고, 다른 쪽에서는 아직도 살아 있다고 성경에서 증언하는 이가 그것을 받았습니다.

영어NIV,8 In the one case, the tenth is collected by men who die; but in the other case, by him who is declared to be living.

영어NASB,8 And in this case mortal men receive tithes, but in that case one receives them, of whom it is witnessed that he lives on.

영어MSG,8 Or look at it this way: We pay our tithes to priests who die, but Abraham paid tithes to a priest who, the Scripture says, “lives.”

영어NRSV,8 In the one case, tithes are received by those who are mortal; in the other, by one of whom it is testified that he lives.

헬라어신약Stephanos,8 και ωδε μεν δεκατας αποθνησκοντες ανθρωποι λαμβανουσιν εκει δε μαρτυρουμενος οτι ζη

라틴어Vulgate,8 et hic quidem decimas morientes homines accipiunt ibi autem contestatus quia vivit

히브리어Modern,8 ופה בני אדם שימותו לקחים את המעשר אבל שם לקחו מי שהועד עליו כי הוא חי׃

성 경: [히7:8]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 6,7절에서 멜기세덱을 아브라함과 비교하여 멜기세덱이 더 위대함을 논증한 저자는 본절에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을 가리키는 ‘여기는'(*, 호데)과 멜기세덱을 가리키는 ‘저기는'(*, 에케이)을 통해서 표현된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십일조를 백성에게서 받았으나 멜기세덱은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로서 십일조를 받았다. 여기서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는 저자가 3절에서 언급한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표현이다. 성경은 멜기세덱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멜기세덱과 죽을 수 밖에 없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을 비교하여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카이 호스 에포스 에이페인 디 아브라암 카이 레위 호 데카타스 람바논 데데카토타이

개역개정,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새번역,9 말하자면,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까지도 아브라함을 통해서 십분의 일을 바친 셈이 됩니다.

우리말성경,9 말하자면 10분의 1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을 통해 10분의 1을 바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성경,9 이를테면 십일조를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을 통하여 십일조를 바친 셈입니다.

영어NIV,9 One might even say that Levi, who collects the tenth, paid the tenth through Abraham,

영어NASB,9 And, so to speak, through Abraham even Levi, who received tithes, paid tithes,

영어MSG,9 Ultimately you could even say that since Levi descended from Abraham, who paid tithes to Melchizedek,

영어NRSV,9 One might even say that Levi himself, who receives tithes, paid tithes through Abraham,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ως επος ειπειν δια αβρααμ και λευι ο δεκατας λαμβανων δεδεκατωται

라틴어Vulgate,9 et ut ita dictum sit per Abraham et Levi qui decimas accipit decimatus est

히브리어Modern,9 ויתכן לומר כי גם לוי הלקח את המעשרות היה מעשר בעשר אברהם׃

성 경: [히7:9]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있나니 – 레위인들은 십일조를 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멜기세덱 제사장에게는 아브라함을 통해 십일조를 바쳤다. ‘할 수 있나니’의 할라어 ‘호스 에포스 에이페인'(*)은 신약성경에서 본서에만 등장하는 저자 특유의 표현이다. 본서의 저자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길게 다루지 않고 주위를 환기시켜 간결하게 끝맺고자 할 때 이런 표현을 주로 사용하였다(Lane, Westcott, Morris).

에티 가르 엔 테 오스퓌이 투 파트로스 엔 호티 쉬넨테센 아우토 멜키세뎈

개역개정,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새번역,1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는,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 아브라함의 ㉣허리 속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 ㉣또는 ‘몸’

우리말성경,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레위는 아직 조상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0 멜키체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레위가 자기 조상의 몸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0 because when Melchizedek met Abraham, Levi was still in the body of his ancestor.

영어NASB,10 for he was still in the loins of his father when Melchizedek met him.

영어MSG,10 when we pay tithes to the priestly tribe of Levi they end up with Melchizedek.

영어NRSV,10 for he was still in the loins of his ancestor when Melchizedek me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10 ετι γαρ εν τη οσφυι του πατρος ην οτε συνηντησεν αυτω ο μελχισεδεκ

라틴어Vulgate,10 adhuc enim in lumbis patris erat quando obviavit ei Melchisedech

히브리어Modern,10 כי עוד בירך האב היה בצאת מלכי צדק לקראתו׃

성 경: [히7:10]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제사장 멜기세덱]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앞절에서 언급된 ‘레위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진술에 대한 이유임을 시사한다.

󰃨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 때 레위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그러기에 레위가 직접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할 수는 없으나 레위를 대표하는 조상인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으므로 그것은 곧 레위가 바친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Lane).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는 레위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동시에 아브람함의 후손(後孫)임을 암시한다. 비록 레위는 태어나지 않았고 직접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다 할지라도 성경에서 유대인들이 조상을 말할때 그의 후손까지 포함하였기 때문에(창 25:23; 고전 15:22)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레위가 바친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저자는 그리스도의 모형인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강조하여 결국에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시사하고 있다(Morris).

에이 멘 운 텔레이오시스 디아 테스 레위티케스 히에로쉬네스 엔 호 라오스 가르 엪 아우테스 네노모데테타이 티스 에티 크레이아 카타 텐 탘신 멜키세뎈 헤테론 아니스타스다이 히에레아 카이 우 카타 텐 탘신 아아론 레게스다이

개역개정,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새번역,11 그런데 이 레위 계통의 제사직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으로 지령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제사직으로 완전한 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아론의 계통이 아닌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다른 제사장이 생겨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말성경,11 만일 레위 계열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 완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런데 백성들은 이것을 근거로 율법을 받았습니다) 아론의 계열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가톨릭성경,11 백성은 레위의 사제직을 바탕으로 율법을 받았는데, 만일 그 사제직으로 완전성에 이를 수 있었다면, 아론과 같은 사제를 임명하지 않고 멜키체덱과 같은 다른 사제를 세울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영어NIV,11 If perfection could have been attained through the Levitical priesthood (for on the basis of it the law was given to the people), why was there still need for another priest to come–one in the order of Melchizedek, not in the order of Aaron?

영어NASB,11 Now if perfection was through the Levitical priesthood (for on the basis of it the people received the Law), what further need was there for another priest to arise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and not be designated according to the order of Aaron?

영어MSG,11 If the priesthood of Levi and Aaron, which provided the framework for the giving of the law, could really make people perfect, there wouldn’t have been need for a new priesthood like that of Melchizedek.

영어NRSV,11 Now if perfection had been attainable through the levitical priesthood–for the people received the law under this priesthood–what further need would there have been to speak of another priest arising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rather than one according to the order of Aaron?

헬라어신약Stephanos,11 ει μεν ουν τελειωσις δια της λευιτικης ιερωσυνης ην ο λαος γαρ επ αυτη νενομοθετητο τις ετι χρεια κατα την ταξιν μελχισεδεκ ετερον ανιστασθαι ιερεα και ου κατα την ταξιν ααρων λεγεσθαι

라틴어Vulgate,11 si ergo consummatio per sacerdotium leviticum erat populus enim sub ipso legem accepit quid adhuc necessarium secundum ordinem Melchisedech alium surgere sacerdotem et non secundum ordinem Aaron dici

히브리어Modern,11 על כן אלו היתה שלמות על ידי כהנת בני לוי אשר בה נתנה התורה לעם למה זה צריך לקום עוד כהן אחר על דברתי מלכי צדק ולא יאמר על דברתי אהרן׃

성 경: [히7:11]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 본절은 ‘에이'(*, ‘만약’)로 시작하는 가정법으로 율법과 연관된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불완전함을 나타낸다. ‘온전함’의 헬라어 ‘텔레이오시스'(*)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혹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온전한 행위를 뜻한다(Lane, Robertson).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실패하였다(Moffatt). 왜냐하면 레위 제사장들의 제사 행위로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9:9;10:1)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받은 율법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해줄 뿐 그것을 완전히 준수해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롬5:20). 그래서 아론을 좇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 대신에 멜기세덱을 좇는 별다른 제사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별다른’의 헬라어 ‘헤테론'(*)은 ‘전혀 다른 종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새 제사장이 과거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며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이 할 수 없었던 ‘온전케 함’을 하시는 분이심을 암시한다.

󰃨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 ‘그 아래서'(*, 에프 아우테스)에서 ‘그’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우테스'(*)는 본절 상반절의 ‘레위계통의 제사 직분’을 가리키는 말이며 ‘아래서’의 헬라어 ‘에프'(*)는 ‘…을 근거로 하여’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을 근거로 하여 율법을 받았으니’라는 의미로 제사장직과 율법이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시사한다(Morris).

메타티데메네스 가르 테스 히에로쉬네스 엨스 아낭케스 카이 노무 메타데시스 기네타이

개역개정,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새번역,12 제사직분에 변화가 생기면, 율법에도 반드시 변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우리말성경,12 제사장직이 변하면 율법도 반드시 변하게 됩니다.

가톨릭성경,12 사제직이 변하면 율법에도 반드시 변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영어NIV,12 For when there is a change of the priesthood, there must also be a change of the law.

영어NASB,12 For when the priesthood is changed, of necessity there takes place a change of law also.

영어MSG,12 But since it didn’t get the job done, there was a change of priesthood, which brought with it a radical new kind of law.

영어NRSV,12 For when there is a change in the priesthood, there is necessarily a change in the law as well.

헬라어신약Stephanos,12 μετατιθεμενης γαρ της ιερωσυνης εξ αναγκης και νομου μεταθεσις γινεται

라틴어Vulgate,12 translato enim sacerdotio necesse est ut et legis translatio fiat

히브리어Modern,12 כי בהשתנות הכהנה מן הצרך שתשתנה גם התורה׃

성 경: [히7:12]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 제사장 직분과 율법은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를 맺고 있다(11절).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이 불완전하여 백성을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제사장 즉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제사장직과 관련된 율법도 불완전하여 바뀌어야 함을 시사한다.

엪 혼 가르 레게타이 타우타 퓔레스 헤테라스 메테스케켄 앞 헤스 우데이스 프로세스케켄 토 뒤시아스테리오

개역개정,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새번역,13 이런 말이 가리키는 분은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에 속한 분입니다. 그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제단에 종사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말성경,13 이것들은 그분과 관련해 언급됐습니다. 그분은 다른 지파에 속했는데 그 지파에서는 아무도 제단에서 섬긴 적이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13 여기에서 말하는 분은 다른 지파에 속하신 분으로서, 그 지파에서는 아무도 제단에서 직무를 수행한 적이 없습니다.

영어NIV,13 He of whom these things are said belonged to a different tribe, and no one from that tribe has ever served at the altar.

영어NASB,13 For the one concerning whom these things are spoken belongs to another tribe, from which no one has officiated at the altar.

영어MSG,13 There is no way of understanding this in terms of the old Levitical priesthood,

영어NRSV,13 Now the one of whom these things are spoken belonged to another tribe, from which no one has ever served at the altar.

헬라어신약Stephanos,13 εφ ον γαρ λεγεται ταυτα φυλης ετερας μετεσχηκεν αφ ης ουδεις προσεσχηκεν τω θυσιαστηριω

라틴어Vulgate,13 in quo enim haec dicuntur de alia tribu est de qua nullus altario praesto fuit

히브리어Modern,13 כי אשר מדבר בו כזאת הוא משבט אחר אשר מעולם לא שרת איש ממנו את המזבח׃

성 경: [히7:13]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 본절은 12절에서 언급된 ‘율법의 변역’에 대한 내용이다. 율법은 오직 레위 지파만 제사장직을 감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새로운 제사장은 율법에 규정된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 곧 유다 지파에 속한 제사장이었다(Morris).이 유다 지파는 제사장 지파가 아닌 왕족 지파였기에 저자는 이 지파 사람 중 어느 한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았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는 유다 지파에 속했던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음이 나타난다(삼하 6:13,17,18:24:25; 왕상 3:4;8:62). 이러한 경우 다윗과 솔로몬이 직접 제사 의식을 집행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희생제물을 준비하고 제사장이 제사를 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Morris).

프로델론 가르 호티 엨스 유다 아나테탈켄 호 퀴리오스 헤몬 에이스 헨 퓔렌 페리 히에레온 우덴 모위세스 엘랄레센

개역개정,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새번역,14 우리 주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신 것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 이 지파와 관련해서는 말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말성경,14 우리 주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지파에 관해서는 모세가 제사장직과 관련해 아무것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가톨릭성경,14 우리의 주님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오신 것은 명확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사제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 이 지파를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영어NIV,14 For it is clear that our Lord descended from Judah, and in regard to that tribe Moses said nothing about priests.

영어NASB,14 For it is evident that our Lord was descended from Judah, a tribe with reference to which Moses spoke nothing concerning priests.

영어MSG,14 which is why there is nothing in Jesus’ family tree connecting him with that priestly line.

영어NRSV,14 For it is evident that our Lord was descended from Judah, and in connection with that tribe Moses said nothing about priests.

헬라어신약Stephanos,14 προδηλον γαρ οτι εξ ιουδα ανατεταλκεν ο κυριος ημων εις ην φυλην ουδεν περι ιερωσυνης μωσης ελαλησεν

라틴어Vulgate,14 manifestum enim quod ex Iuda ortus sit Dominus noster in qua tribu nihil de sacerdotibus Moses locutus est

히브리어Modern,14 כי גלוי לכל אשר אדנינו זרח מיהודה מן השבט אשר משה לא דבר אליו דבר על הכהנה׃

성 경: [히7:14]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 본절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닌 다른 지파의 제사장임을 나타낸다(Morris, Bruce, Hewitt).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셨음을 계속 증거하고 있다(마 1:2,3;2:6;눅 3;33;행 2:29-36;롬 1:3;딤후 2;8;계 5;5;22:16). 예수께서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고 유다 지파에 속한다는 사실은 그의 대제사장직이 혈통적인 것에 의존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秩序)에 의해서 결정되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좇아 나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테탈켄'(*)은 70인역이나 헬라 고전에서도 어떤 가문의 후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 ‘아나테탈겐’은 70인역에서 새로운 별이 나타나거나 가지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옴을 의미하는 말도 아마도 저자는 메시야를 예언한 구약의 예언들을 상기하면서 본 단어를 사용한 듯하다(민 24:17;렘 23:5, Schlier, Buchanan, Cockerill).

󰃨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 오직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파에 속한 예수께서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심을 암시한다.

카이 페리쏘테론 에티 카타델론 에스틴 에이 카타 텐 호모이오테타 멜키세뎈 아니스타타이 히에류스 헤테로스

개역개정,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새번역,15 멜기세덱과 같은 모양으로 다른 제사장이 생겨난 것을 보면, 이 사실은 더욱더 명백합니다.

우리말성경,15 그리고 이 사실은 멜기세덱과 흡사한 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볼 때 더욱 분명합니다.

가톨릭성경,15 멜키체덱과 닮은 다른 사제께서 나오시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영어NIV,15 And what we have said is even more clear if another priest like Melchizedek appears,

영어NASB,15 And this is clearer still, if another priest arises according to the likeness of Melchizedek,

영어MSG,15 But the Melchizedek story provides a perfect analogy: Jesus, a priest like Melchizedek,

영어NRSV,15 It is even more obvious when another priest arises, resembling Melchizedek,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περισσοτερον ετι καταδηλον εστιν ει κατα την ομοιοτητα μελχισεδεκ ανισταται ιερευς ετερος

라틴어Vulgate,15 et amplius adhuc manifestum est si secundum similitudinem Melchisedech exsurgit alius sacerdos

히브리어Modern,15 ועוד יותר ברור הוא אם יוקם על דמיון מלכי צדק כהן אחר׃

성 경: [히7:15]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은 시 110:4의 인용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11절). ‘더욱 분명하도다’ 에서 그 분명한 내용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11절에서 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그 효능을 상실하게 된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Westscott). (2) 혹자는 모세 율법이 폐지되었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ne). 이러한 세 가지 견해는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를 지닌다.

호스 우 카타 노몬 엔톨레스 사르키네스 게고넨 알라 카타 뒤나민 조에스 아카탈뤼투

개역개정,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새번역,16 그는 제사장의 혈통에 대해서 규정한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셨습니다.

우리말성경,16 그는 육체에 속한 규례, 곧 율법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생명의 힘을 따라 되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6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영어NIV,16 one who has become a priest not on the basis of a regulation as to his ancestry but on the basis of the power of an indestructible life.

영어NASB,16 who has become such not on the basis of a law of physical requirement, but according to the power of an indestructible life.

영어MSG,16 not by genealogical descent but by the sheer force of resurrection life–he lives!–

영어NRSV,16 one who has become a priest, not through a legal requirement concerning physical descent, but through the power of an indestructible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16 ος ου κατα νομον εντολης σαρκικης γεγονεν αλλα κατα δυναμιν ζωης ακαταλυτου

라틴어Vulgate,16 qui non secundum legem mandati carnalis factus est sed secundum virtutem vitae insolubilis

히브리어Modern,16 אשר איננו על פי חקת בשר ודם אלא על פי כח חיים בלתי נפסקים׃

성 경: [히7:16]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 본문은 11절의 부정적인 표현 곧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와 동일한 의미로 11절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Lane).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은 포괄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뜻하는 것으로 레위 계통의 합법적인 후손, 혹은 어떤 신체적 자격 요건 등을 가리킨다(Michel).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율법에 나타난 바대로 레위 자손의 혈통이나 외적 조건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다.

󰃨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 본문은 11절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과 연관된다. 저자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대조시켜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썩거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의 계명 즉 율법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된 것임을 강조한다(시 110:4,Lane). 그리스도는 성경이 증거하는대로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만세의 왕’으로서(딤전 1:17) 그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생명를 부여하는 영원한 것이다.

마르튀레이타이 가르 호티 쉬 히에류스 에이스 톤 아이오나 카타 텐 탘신 멜키세뎈

개역개정,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새번역,17 그를 두고서 말하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서, 영원히 제사장이다” 한 증언이 있습니다. / ㉤시 110:4

우리말성경,17 그렇기 때문에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르는 제사장이다”라고 증거됐습니다. 시110:4

가톨릭성경,17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하고 성경에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7 For it is declared: “You are a priest forever, in the order of Melchizedek.”

영어NASB,17 For it is witnessed of Him, “YOU ARE A PRIEST FOREVER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영어MSG,17 “priest forever in the royal order of Melchizedek.”

영어NRSV,17 For it is attested of him, “You are a priest forever,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헬라어신약Stephanos,17 μαρτυρει γαρ οτι συ ιερευς εις τον αιωνα κατα την ταξιν μελχισεδεκ

라틴어Vulgate,17 contestatur enim quoniam tu es sacerdos in aeternum secundum ordinem Melchisedech

히브리어Modern,17 כי העיד עליו אתה כהן לעולם על דברתי מלכי צדק׃

성 경: [히7:17]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 본절은 시110:4의 인용으로서 16절에서 저자가 말한 것 곧 그리스도가 무궁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이다. 저자가 본절에서 ‘증거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르튀레이타이'(*)를 사용한 것은 저자 자신이 시 110:4을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이 불완전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과 무관하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직임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완전함을 암시한다.

아데테시스 멘 가르 기네타이 프로아구세스 엔톨레스 디아 토 아우테스 아스데네스 카이 아노펠레스

개역개정,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새번역,18 전에 있던 계명은 무력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말성경,18 전에 있던 계명은 약하고 효력이 없어 폐지됐습니다.

가톨릭성경,18 예전의 규정은 무력하고 무익하기 때문에 폐지되었습니다.

영어NIV,18 The former regulation is set aside because it was weak and useless

영어NASB,18 For, on the one hand, there is a setting aside of a former commandment because of its weakness and uselessness

영어MSG,18 The former way of doing things, a system of commandments that never worked out the way it was supposed to, was set aside;

영어NRSV,18 There is, on the one hand, the abrogation of an earlier commandment because it was weak and ineffectual

헬라어신약Stephanos,18 αθετησις μεν γαρ γινεται προαγουσης εντολης δια το αυτης ασθενες και ανωφελες

라틴어Vulgate,18 reprobatio quidem fit praecedentis mandati propter infirmitatem eius et inutilitatem

히브리어Modern,18 בעבור כי המצוה הקדמת הוסרה בהיותה חלושה וקצרת יד מהועיל׃

성 경: [히7:18]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 본절과 다음절은 저자가 11절부터 언급한 내용의 결론이다. ‘계명’은 문맥상 제사장직에 관련된 율법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있느나(Lane), 16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모세의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타당하다(Morris). 한편 ‘연약하며’의 헬라어 ‘아스데네스'(*)는 율법자체가 연약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Lane). 또한 ‘무익하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펠레스'(*)는 율법이 단지 사람의 외형적인 것만을 정결케할 뿐 그 내적인 양심(良心)을 깨끗게 할수 있는 능력은 없음을 시사한다(9:9,10,14,23;10:14, Hewitt).

우덴 가르 에텔레이오센 호 노모스 에페이사고게 데 크레잍토노스 엘피도스 디 헤스 엥기조멘 토 데오

개역개정,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새번역,19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우리말성경,19 (이는 율법이 아무것도 완전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소망이 들어왔고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9 사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희망이 주어져,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갑니다.

영어NIV,19 (for the law made nothing perfect), and a better hope is introduced, by which we draw near to God.

영어NASB,19 (for the Law made nothing perfect), and on the other hand there is a bringing in of a better hope, through which we draw near to God.

영어MSG,19 the law brought nothing to maturity. Another way–Jesus!–a way that does work, that brings us right into the presence of God, is put in its place.

영어NRSV,19 (for the law made nothing perfect); there is, on the other hand, the introduction of a better hope, through which we approach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9 ουδεν γαρ ετελειωσεν ο νομος επεισαγωγη δε κρειττονος ελπιδος δι ης εγγιζομεν τω θεω

라틴어Vulgate,19 nihil enim ad perfectum adduxit lex introductio vero melioris spei per quam proximamus ad Deum

히브리어Modern,19 כי התורה לא השלימה דבר והנה נכנסה במקומה תקוה טובה ממנה אשר נקרב על ידה לאלהים׃

성 경: [히7:19]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 ‘온전케’로 번역된 헬라어 ‘에델레이오센’은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는 온전한 관계를 의미한다(11절). 율법은 단지 외형적인 것만 깨끗하게 하고 내적인 양심은 깨끗게 할 수 없어서(9:9,14)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즉 사람들은 제사장직이나 성결 의식과 같은 율법적인 제도에 의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온전한 관계를 이룰 수 없었다(Riggenbach , Michel).

󰃨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리라 – ‘더 좋은'(*, 크레이트토노스)이란 표현은 히브리서 저자의 독특한 표현이다(19, 22절;8:6;9:23). ‘더 좋은 소망’ 즉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레위적인 율법 제도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Lane).

카이 칻 호손 우 코리스 호르코모시아스 호이 멘 가르 코리스 호르코모시아스 에이신 히에레이스 게고노테스

개역개정,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새번역,20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 계통의 사람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말성경,20 예수께서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레위 계통의 사람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됐습니다.

가톨릭성경,20 이 일은 하느님의 맹세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은 하느님의 맹세 없이 사제가 되었습니다.

영어NIV,20 And it was not without an oath! Others became priests without any oath,

영어NASB,20 And inasmuch as it was not without an oath

영어MSG,20 The old priesthood of Aaron perpetuated itself automatically, father to son, without explicit confirmation by God.

영어NRSV,20 This was confirmed with an oath; for others who became priests took their office without an oath,

헬라어신약Stephanos,20 και καθ οσον ου χωρις ορκωμοσιας οι μεν γαρ χωρις ορκωμοσιας εισιν ιερεις γεγονοτες

라틴어Vulgate,20 et quantum est non sine iureiurando alii quidem sine iureiurando sacerdotes facti sunt

히브리어Modern,20 וכפי אשר לא היתה זאת בלי שבועה׃

성 경: [히7:20]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 본절과 다음절은 새로운 제사장이신 예수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사이의 비교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엄숙하신 맹세로 말미암아 제사장으로 지목된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맹세없이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부여받았다(28절). ‘맹세없이 된 것이 아니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 코리스 호르코모시아스'(*)는 시 110:4의 추론으로 하나님의 맹세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 됨으로 신자들은 그의 제사장직에 소망의 닻을 드리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6:18-20,Schneider, Thompson).

호 데 케타 호르코모시아스 디아 투 레곤토스 프로스 아우톤 오모센 퀴리오스 카이 우 메타멜레데세타이 쉬 히에류스 에이스 톤 아이오나

개역개정,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새번역,21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맹세하셨으니, 주님은 마음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영원히 제사장이다” 하셨습니다. / ㉥시 110:4

우리말성경,21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주께서 맹세하셨으니 그분은 마음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너는 영원히 제사장이다.”) 시110:4

가톨릭성경,21 그러나 그분께서는 “주님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 너는 영원한 사제다.’ ” 라고 하였듯이, 그분께 말씀하신 분의 맹세로 사제가 되셨습니다.

영어NIV,21 but he became a priest with an oath when God said to him: “The Lord has sworn and will not change his mind: ‘You are a priest forever.'”

영어NASB,21 (for they indeed became priests without an oath, but He with an oath through the One who said to Him, “THE LORD HAS SWORN AND WILL NOT CHANGE HIS MIND, ‘YOU ARE A PRIEST FOREVER'”);

영어MSG,21 But then God intervened and called this new, permanent priesthood into being with an added promise: God gave his word; he won’t take it back: “You’re the permanent priest.”

영어NRSV,21 but this one became a priest with an oath, because of the one who said to him, “The Lord has sworn and will not change his mind, ‘You are a priest forever'”–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 δε μετα ορκωμοσιας δια του λεγοντος προς αυτον ωμοσεν κυριος και ου μεταμεληθησεται συ ιερευς εις τον αιωνα κατα την ταξιν μελχισεδεκ

라틴어Vulgate,21 hic autem cum iureiurando per eum qui dixit ad illum iuravit Dominus et non paenitebit tu es sacerdos in aeternum

히브리어Modern,21 כי המה נתכהנו בלי שבועה וזה בשבועה על ידי האמר לו נשבע יהוה ולא ינחם אתה כהן לעולם על דברתי מלכי צדק׃

성 경: [히7:21]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는 시110:4의 인용이다(17절).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 부여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이 맹세하신 약속의 신실성으로 인해(Cockerill) 보증된 것이다. 반면에 율법하에서 이루어진 레위인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맹세나 약속 혹은 보증이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다만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16절)을 좇아 이루어진 직분에 불과하다. 이러한 두 제사장직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며, 완전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언약에 대한 보증임을 암시한다(22절).

카타 토수토 카이 크레잍토노스 디아데케스 게고넨 엥귀오스 예수스

개역개정,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새번역,22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우리말성경,22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더 좋은 언약을 보증해 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가톨릭성경,22 그러한 만큼 예수님께서는 더 나은 계약을 보증해 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영어NIV,22 Because of this oath, Jesus has become the guarantee of a better covenant.

영어NASB,22 so much the more also Jesus has become the guarantee of a better covenant.

영어MSG,22 This makes Jesus the guarantee of a far better way between us and God–one that really works! A new covenant.

영어NRSV,22 accordingly Jesus has also become the guarantee of a better covenant.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τα τοσουτον κρειττονος διαθηκης γεγονεν εγγυος ιησους

라틴어Vulgate,22 in tantum melioris testamenti sponsor factus est Iesus

히브리어Modern,22 גם הברית טובה ויתרה היא אשר ישוע ערב אותה׃

성 경: [히7:22]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특성]

󰃨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저자는 ‘언약’의 헬라어 ‘디아데케스'(*)를 본서에서 17회나 사용하여 중시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처음 나타난다. ‘디아데케’는 ‘유언’, ‘서약’, ‘의지’라는 의미로 70인역(LXX)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도 은혜로운 ‘의지’를 가리킨다(Lane). 동시에 그 단어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함축되어 있다(Morris). 문맥상 본절의 언약은 제의적(祭儀的)인 것으로(Lane) 옛 언약 즉 구약의 제의는 하나님께가까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었으나 외형적인 것만 정결케 하고 내적인 양심은 정결케 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었다(18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을 수립하시고(8:8-10;9:15-20), 새 언약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온전히 나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25절;9;14,15). 새 언약은 구약의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한편 ‘더 좋은 언약’인 새 언약에 대한 ‘보증’은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9절;13:20). ‘보증’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귀오스'(*)는 ‘보증인’이라는 의미로 이 보증인은 ‘중재자’의 뜻인 헬라어 ‘메시테스'(*)와는 달리(8:6;9:15;12:24) 보증인 자신의 인격과 생명을 담보로 자신이 행한 말에 대해 보증한다는 강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Michel).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의 구원에 대한 담보로 구원의 영원한 보증이 되신다.

카이 호이 멘 플레이오네스 에이신 게고노테스 히에레이스 디아 토 다나토 콜뤼에스다이 파라메네인

개역개정,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새번역,23 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

우리말성경,23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책을 계속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수가 많았습니다.

가톨릭성경,23 또한 다른 사제들은 죽음 때문에 직무를 계속할 수가 없어 그 수가 많았습니다.

영어NIV,23 Now there have been many of those priests, since death prevented them from continuing in office;

영어NASB,23 And the former priests, on the one hand, existed in greater numbers, because they were prevented by death from continuing,

영어MSG,23 Earlier there were a lot of priests, for they died and had to be replaced.

영어NRSV,23 Furthermore, the former priests were many in number, because they were prevented by death from continuing in office;

헬라어신약Stephanos,23 και οι μεν πλειονες εισιν γεγονοτες ιερεις δια το θανατω κωλυεσθαι παραμενειν

라틴어Vulgate,23 et alii quidem plures facti sunt sacerdotes idcirco quod morte prohiberentur permanere

히브리어Modern,23 ושם נתכהנו רבים מפני אשר המות לא הניחם להותר בארץ׃

성 경: [히7:23]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특성]

󰃨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 저자는 새 언약의 제사장은 예수 한분 뿐인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그 수효가 많음에 주목한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론부터 시작해서 A.D. 70년 예루살렘멸망에 이르기까지 83명의 대제사장들이 취임했었다고 한다(Antiq. 20,227).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수효가 많다는 것은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며 그들이 행하는 제의가 불완전함을 반영한다(1:1;10:1-4, Michel, Thompson).

호 데 디아 토 메네인 아우톤 에이스 톤 아이오나 아파라바톤 에케이 텐 히에로쉬넨

개역개정,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새번역,24 그러나 예수는 영원히 계시는 분이므로, 제사장직을 영구히 간직하십니다.

우리말성경,24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원히 사시는 분이시므로 제사장직을 영원히 누리십니다.

가톨릭성경,24 그러나 그분께서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사제직을 지니십니다.

영어NIV,24 but because Jesus lives forever, he has a permanent priesthood.

영어NASB,24 but He, on the other hand, because He abides forever, holds His priesthood permanently.

영어MSG,24 But Jesus’ priesthood is permanent. He’s there from now to eternity

영어NRSV,24 but he holds his priesthood permanently, because he continues forever.

헬라어신약Stephanos,24 ο δε δια το μενειν αυτον εις τον αιωνα απαραβατον εχει την ιερωσυνην

라틴어Vulgate,24 hic autem eo quod maneat in aeternum sempiternum habet sacerdotium

히브리어Modern,24 אבל זה בעמדו לעולם יש לו כהנה אשר לא תעבר ממנו׃

성 경: [히7:24]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특성]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을 인하여 제사장직을 감당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였던 반면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므로 뒤를 이을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뒤이을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행하신 사역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아파라바톤'(*)은 70인역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단어로 제사장이 그의 의무를 계속한다는 의미이다(Josephus). 예수의 영원성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일시성과는 달리 그의 제사장직이 영구적임과 동시에 최종적(最終的)인 것임을 시사한다(Lane).

호덴 카이 소제인 에이스 토 판텔레스 뒤나타이 투스 프로세르코메누스 디 아우투 토 데오 판토테 존 에이스 토 엔튕카네인 휘페르 아우톤

개역개정,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새번역,25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늘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십니다. / ㉦또는 ‘언제나’

우리말성경,25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가톨릭성경,25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영어NIV,25 Therefore he is able to save completely those who come to God through him, because he always lives to intercede for them.

영어NASB,25 Hence, also, He is able to save forever those who draw near to God through Him, since He always lives to make intercession for them.

영어MSG,25 to save everyone who comes to God through him, always on the job to speak up for them.

영어NRSV,25 Consequently he is able for all time to save those who approach God through him, since he always lives to make intercession for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25 οθεν και σωζειν εις το παντελες δυναται τους προσερχομενους δι αυτου τω θεω παντοτε ζων εις το εντυγχανειν υπερ αυτων

라틴어Vulgate,25 unde et salvare in perpetuo potest accedentes per semet ipsum ad Deum semper vivens ad interpellandum pro eis

히브리어Modern,25 אשר על כן יוכל גם להושיע בכל וכל את הנגשים על ידו לאלהים כי חי הוא תמיד להפגיע בעדם׃

성 경: [히7:25]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특성]

󰃨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덴'(*)은 본절이 23,24절의 논리적 귀결임을 나타낸다.

󰃨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 ‘온전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토 판텔레스'(*)는 ‘완전히’, ‘절대적으로’라는 의미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구원의 완전성을 뜻한다. 한편 ‘구원하실’의 헬라어 ‘소제인'(*)은 현재시상이다. 본서에 나타나는 ‘구원’이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인 유업을 가리키는 반면(1:14;5:9;9:28) 본절의 ‘소제인’은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 그리고 승천으로 말미암아 현재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구원’을 시사한다(2:3,4;6:4,5,9, Lane). 그리스도는 옛 언약의 제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새 언약인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에게 현재 구원에 참여케 하며 동시에 종말론적 구원에의 참여를 보증하신다.

󰃨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간구하심이니라’의 헬라어 ‘엔튕카네인'(*)은 ‘중재하다’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하나님께 특별한 복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심을 가리킨다(Lane, Snell, Morris). 이러한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할때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토이우토스 가르 헤민 카이 에프레펜 아르키에류스 호시오스 아카코스 아미안토스 케코리스메노스 아포 톤 하마르톨론 카이 휲셀로테로스 톤 우라논 게노메노스

개역개정,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새번역,26 예수는 이러한 제사장으로 우리에게 적격이십니다. 그는 거룩하시고, 순진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구별되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입니다.

우리말성경,26 이러한 대제사장이야말로 우리에게 합당합니다. 그분은 거룩하고 순결하고 흠이 없고 죄인들과 구별되시며 하늘보다 높은 곳으로 오르신 분이십니다.

가톨릭성경,26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영어NIV,26 Such a high priest meets our need–one who is holy, blameless, pure, set apart from sinners, exalted above the heavens.

영어NASB,26 For it was fitting that we should have such a high priest, holy, innocent, undefiled, separated from sinners and exalted above the heavens;

영어MSG,26 So now we have a high priest who perfectly fits our needs: completely holy, uncompromised by sin, with authority extending as high as God’s presence in heaven itself.

영어NRSV,26 For it was fitting that we should have such a high priest, holy, blameless, undefiled, separated from sinners, and exalted above the heavens.

헬라어신약Stephanos,26 τοιουτος γαρ ημιν επρεπεν αρχιερευς οσιος ακακος αμιαντος κεχωρισμενος απο των αμαρτωλων και υψηλοτερος των ουρανων γενομενος

라틴어Vulgate,26 talis enim decebat ut nobis esset pontifex sanctus innocens inpollutus segregatus a peccatoribus et excelsior caelis factus

히브리어Modern,26 כי נאוה לנו כהן כזה שהוא חסיד ותמים וטהור ונבדל מן החטאים ונשא מהשמים׃

성 경: [히7:26]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특성]

󰃨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 ‘이러한 대제사장’이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영원하시며(24절),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25절), 항상 살아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중재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새 언약에 합당한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도록 모든 길을 마련해 놓으신 분이다. 저자는 영원한 구원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신 대제사장 그리스도에 대해 다섯 가지로 묘사한다. 이 다섯 가지는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대제사장으로 지녀야 할 성품과 지위를 나타낸다(Hauck).

󰃨 거룩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시오스'(*)는 70인역에서 ‘충실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시 12: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 가운데서 보여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나타낸다(5:7,8).

󰃨 악이 없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카코스'(*)는 ‘교활하지 않은’, ‘순수한’이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순수하셨으며 어떠한 악과도 접촉하지 않으셨음을 시사한다(Moffatt, Grundmann, Bruce).

󰃨 더러움이 없고 – 이의 헬라어 ‘아마안토스'(*)는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이라는 뜻으로 제의적 순결성을 나타낸다(마카비 2서 15:34).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제의 의식을 통해서 외적으로 더럽혀진 자신을 깨끗이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더럽혀지지 않은 온전한 도덕적 순결성을 소유하셨다(Morris).

󰃨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 이것은 앞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성품과 연결된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도덕적으로 죄인들과 분리되어 있어 근본적으로 죄인인 인류와는 다른 존재이시다(Buchanan, Peterson).

󰃨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 ‘하늘보다 높이’의 헬라어 ‘휩셀로테로스 톤 우라논'(*)은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Lane). 예수께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는 달리 승천하셔서(4:14)곧바로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신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중재자가 되신다(Morris).

호스 우크 에케이 칻 헤메란 아낭켄 호스페르 호이 아르키에레이스 프로테론 휘페르 톤 이디온 하마르티온 뒤시아스 아나페레인 에페이타 톤 투 라우 투토 가르 에포이에센 에파팤스 헤아우톤 아네넹카스

개역개정,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새번역,27 그는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바치셔서 단 한 번에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27 그분은 다른 제사장들처럼 먼저 자신의 죄를 위해, 그 다음에 백성들의 죄를 위해 날마다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그분이 자신을 드려 단번에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7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영어NIV,27 Unlike the other high priests, he does not need to offer sacrifices day after day, first for his own sins, and then for the sins of the people. He sacrificed for their sins once for all when he offered himself.

영어NASB,27 who does not need daily, like those high priests, to offer up sacrifices, first for His own sins, and then for the sins of the people, because this He did once for all when He offered up Himself.

영어MSG,27 Unlike the other high priests, he doesn’t have to offer sacrifices for his own sins every day before he can get around to us and our sins. He’s done it, once and for all: offered up himself as the sacrifice.

영어NRSV,27 Unlike the other high priests, he has no need to offer sacrifices day after day, first for his own sins, and then for those of the people; this he did once for all when he offered himself.

헬라어신약Stephanos,27 ος ουκ εχει καθ ημεραν αναγκην ωσπερ οι αρχιερεις προτερον υπερ των ιδιων αμαρτιων θυσιας αναφερειν επειτα των του λαου τουτο γαρ εποιησεν εφαπαξ εαυτον ανενεγκας

라틴어Vulgate,27 qui non habet cotidie necessitatem quemadmodum sacerdotes prius pro suis delictis hostias offerre deinde pro populi hoc enim fecit semel se offerendo

히브리어Modern,27 אשר איננו צריך יום יום ככהנים הגדולים ההם להקריב בראשונה על חטאתיו ואחרי כן על חטאת העם כי זאת עשה בפעם אחת בהקריבו את נפשו׃

성 경: [히7:27]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특성]

󰃨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에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항상 자기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린다(5:3;레 4;3-12;16:6-10). 왜냐하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도 역시 불안전한 인간으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자신과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 제사를 드렸으나 저자는 본절에서 ‘날마다’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속죄일에 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드리는 것으로 표현한 이유는(9:7,25;10;1) 대제사장이 제사를 매일 드렸다는 의미보다는 그가 부주의로 죄를 범했을 때 매일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Bruce).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4:15)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리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드린 한 번의 제사는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친 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이다.

󰃨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 저자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을 그의 대제사장직의 핵심적인 기능으로 제사한다(Zimmermann). 죄 없으신 완전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완전한 자신을 제물로 드린 그의 속죄사역은 일시적인 레위 계통 제사장들의 속제 사역과는 달리 한 번으로 영구화(永久化) 될 수 있었다. 저자는 본절을 통해서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의 불완전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호 노모스 가르 안드로푸스 카디스테신 아르키에레이스 에콘타스 아스데네이안 호 로고스 데 테스 호르코모시아스 테스 메타 톤 노몬 휘온 에이스 톤 아이오나 테텔레이오메논

개역개정,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새번역,28 사람들에게 약점이 있어도 율법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지만, 율법이 생긴 이후에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우리말성경,28 율법은 연약함을 가진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으나 율법 후에 주어진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완전케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가톨릭성경,28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영어NIV,28 For the law appoints as high priests men who are weak; but the oath, which came after the law, appointed the Son, who has been made perfect forever.

영어NASB,28 For the Law appoints men as high priests who are weak, but the word of the oath, which came after the Law, appoints a Son, made perfect forever.

영어MSG,28 The law appoints as high priests men who are never able to get the job done right. But this intervening command of God, which came later, appoints the Son, who is absolutely, eternally perfect.

영어NRSV,28 For the law appoints as high priests those who are subject to weakness, but the word of the oath, which came later than the law, appoints a Son who has been made perfect forever.

헬라어신약Stephanos,28 ο νομος γαρ ανθρωπους καθιστησιν αρχιερεις εχοντας ασθενειαν ο λογος δε της ορκωμοσιας της μετα τον νομον υιον εις τον αιωνα τετελειωμενον

라틴어Vulgate,28 lex enim homines constituit sacerdotes infirmitatem habentes sermo autem iurisiurandi qui post legem est Filium in aeternum perfectum

히브리어Modern,28 כי התורה העמידה לכהנים גדולים בני אדם חלשים אבל דבר השבועה הבאה אחרי התורה העמיד את הבן המשלם לעולם׃

성 경: [히7:28]

주제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주제2: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특성]

󰃨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 저자는 본장을 결론지으면서 사람인 제사장과 온전하신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 세 가지 차이점을 제시한다. (1) 율법과 맹세의 말씀. 옛 언약에 속한 레위 제사장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물려받았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셔서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신실한 맹세의 약속을 성취하였으며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2) 사람과 아들. 옛 언약의 제사장들은 유한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반복적이고 일시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히 살아계셔서 온전한 중재 사역을 행하셨다. (3) 약점을 가진 자와 온전케 되신 자. 옛언약의 제사장은 약점을 가져서 불완전한 사역을 행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하셔서 지상 생활의 고난 가운데서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모든 믿는 사람의 구원의 근거가 되셨다(2:10;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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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헬라어 주석 강해]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히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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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히브리서 7장 헬라어 주석 강해 중에서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멜기세덱 살렘 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입니다. 예수님도 의의 왕이시고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선택받은 자들의 모든 죄를 속죄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오늘도 멜기세덱과 같으신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히 7:1-3)

1절 후토스 가르 호 멜키세데크 바실류스 살렘 히에류스 투 데우 투 휩시스투 호 쉬난테사스 아브라암 휘포스트레폰티 아포 테스 코페스 톤 바실레온 카이 율로게사스 아우톤

히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7:1

이 멜기세덱은…복을 빈 자라 – 본절은 창 14:17-20에 대한 언급으로, 저자는 멜기세덱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살렘 왕이요 – ‘살렘’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estcott). (2) 혹자는 세겜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XX 창 33:18, Kirland). (3) 혹자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시 76:2, Morris, Lane, Vincent, Winter).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 제정(祭政)이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에 왕이 제사장 직책을 수행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최고의 하나님’이란 의미로(Hewitt) 하나님의 초월적인 신성을 암시한다(Lane, Hanlon, Philo).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이에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제사장으로 인식하여 십일조를 그에게 바친다(창 14:19,20).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 창 14:17-20(LXX)에서는 ‘아브람’으로 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아브라함’으로 되어 있다. 이런 변화가 있다 할지라도 저자는 본절의 내용을 70인 역에서 인용한 듯하다(Lane).

한편 저자는 인용 과정에서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연합한 왕들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에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영접한 부분은 삭제하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사건과 아브라함이 얻은 것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준 사건(2절)만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변개를 통해서 저자는 4-10절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탁월함을 강조한다(Lane, Williamson).

2절 호 카이 데카텐 아포 판톤 에메리센 아브라암 프로톤 멘 헤르메뉴오메노스 바실류스 디카이오쉬네스 에페이타 데 카이 바실류스 살렘 호 에스틴 바실류스 에이레네스

히 7: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7:2

저자는 본절에서 멜기세덱의 두 가지 칭호를 제시한다.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 ‘멜기세덱’은 ‘나의 왕’을 의미하는 ‘말키’와 ‘의'(義)를 의미하는 ‘체데크’가 결합된 형태로 문자적인 의미는 ‘나의 왕은 의롭도다’이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여호와 우리의 의'(렘 23:6)로 부른 것과 연결된다.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살렘’이라는 지명(地名)은 ‘평강’을 의미하는 ‘샬롬’과 동일한 어근에서 비롯된 단어로 ‘평화’로 번역될 수 있다(Morris). 장차 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평강의 왕'(사 9:6)이라 칭한 것과 연결된다. 저자는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통하여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와의 관련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참된 평강을 주러 오셨으며(마 11:28), 자신의 의를 통하여 공의가 넘치는 나라를 완성하며 다스리신다(사 9:7;11:1-5).

3절 아파토르 아메토르 아게네알로게토스 메테 아르켄 헤메론 메테 조에스 텔로스 에콘 아포모이오메노스 데 토 휘오 투 데우 메네이 히에류스 에이스 토 디에네케스

히 7: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7: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파토르 아메토르’는 사생아나 천한 신분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경우에 따라 성적(性的)인 것을 초월하여 태어난 신적인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Morris). 이것은 저자가 멜기세덱을 천사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경에 멜기세덱의 부모에 대한 언급이나 족보에 대한 기록이 없음을 나타낸다(Lane).

멜기세덱의 부모와 족보가 없다는 사실은 그의 탄생이 기적적으로 되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제사장적인 특질을 설명하려는 것으로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탄생이나 족보와 같은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거나 레위M 통의 제사장직의 승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임을 나타낸다(5:5, 6, Lane, Horton)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 저자는 멜기세덱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언급이 창세기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에 착안하여 그의 제사장직이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것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임을 나타낸다. 저자는 이러한 예표와 강조를 통해서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다른 제사장임을 진술한다(Spicq). ‘방불하여’의 헬라어 ‘아포모이오메노스’는 ‘유사하여’라는 의미로 멜기세덱과 하나님의 아들이 외형적인 형태에 있어서 유사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 본문은 창 14:18-20의 내용에 대한 해석인 시 110:5(LLX)의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저자는 시 110:5(LLX)의 ‘영원한'(에이스 톤 아이오나)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항상'(에이스 토 디에네케스)으로 변형시켰다. 이런 변형은 저자가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영원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외식하는 바리새인 사두개인들(마 1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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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

오늘 우리가 같이 공부할 본문은 히브리서 7장입니다. 1절부터 28절까지 있어요. 비교적 긴 장입니다. 여기 멜기세덱이 핵심 주제입니다. 우리가 보통 때는 잘 듣지 못한 이름이죠. 멜기세덱이요. 그리고 성경에도 멜기세덱에 대해서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확인을 하지는 못했지만 알고 있는 것만 두 군데 정도에 불과해요. 근데 히브리서 기자가 특이한 관점으로, 이게 신약성경에 보면 다른 것도 많잖아요. 바울이 멜기세덱에 대해서 거론한 부분이 있나요? 바울이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교리적으로 토대를 한 사람이거든요. 신학화 했죠.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생애를, 거기도 나름대로 신학이 있습니다마는, 그냥 서술한 반면에 바울은 그걸 교리적으로 한 거예요. 신학 이론화를 한 거예요. 바울이 없었다면, 아까 우리 찬송 부를 때 말씀드린 그리스도론, 기독론이 짜여 지지 않는 거예요. 예수님은 구원 사건이잖아요. 하나님의 계시 사건이에요. 사건 자체에요. 그건 원형이에요, 원질. 그거를 사람들이 이해하려면 그냥은 안 됩니다. 이론적으로 해명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잘 한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근데 바울도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데 이 히브리서 기자가 고유한 어떤 시각에서 이 멜기세덱을 크리스톨로지에서의 중요한, 인물로 제시하고 있네요. 왜 그런지는 우리가 조금 지나봐서 알 겁니다. 앞에도 한, 두 번 나왔습니다마는 결국은 예수님이 참된 대제사장이다 그걸 말하려는 거죠. 그래서 이 멜기세덱을 끌어들이는데 왜 굳이 멜기세덱이냐 다르게도 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오늘 7장에 나옵니다. 자, 7장 1절부터 28절까지 있네요. 저와 여러분들이 교독해서 이 내용을 잘 눈여겨보면서 읽겠습니다.

1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절,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절,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4절,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5절,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6절,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절,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8절,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절,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10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11절,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절,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절,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절,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절,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절,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절,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절,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22절,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절,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절,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절,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절,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절,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느니라

어떻습니까. 우리가 한 번 읽었는데요. 전체적인 내용이 들어오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만약에 한 번 읽고 이거를 탁 파악했으면 정말 위대한 학자입니다. 신약학 박사라고 할 수 있겠어요. 여기에 많은 단어들이 나와요. 우리가 익숙하지 않는 단어들과 구약에 있는 여러 가지가 나오고요. 우리가 잘 쓰지 않는 관용어가 나오기도 하고요. 굉장히 복잡하게 여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 계급은 12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에서 나옵니다. 레위 지파가 다 제사장이 되는 건 아니고요 거기서 그 사람들이 성전 일을 하는 거예요. 옛날에 그들이 가나안땅을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정복할 때 12지파가 땅을 배분 받아요. 그러니까 유다는 어디, 누구는 어디 등등해서 12지파가 가나안 지역을 배분 받습니다. 그리고 그쪽을 지배를 하기위해 자기들이 공격을 해서 땅을 차지해야 됩니다. 그 때에 레위 지파에게는 땅을 배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전통이 세워졌어요. 그래서 나머지 지파들이 땅에서 나오는 소산을 십분의 일씩 레위지파에게 주고 그들이 그걸 기본으로 해서 먹고 살면서 성전업무 등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제사장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은, 아까 맹세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무슨 뜻이냐 하면요. 레위지파이기 때문에 혈통을 통해서 제사장이 되는 거예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들은 제사장이 되겠다고 맹세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레위지파에 속했기 때문에 제사장이 되는데 예수님의 경우는 하나님이 맹세해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이다. 더 확실하다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멜기세덱이 왜 등장하냐면 레위지파는, 이 논리를 조금 생각을 하셔야 돼요. 어떻게 보면 히브리서 기자가 얘기하는 게 비약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 사람의 설명이 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확실성을 말 하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근데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레위지파에서 내려오는 거란 말입니다. 그럼 여기에 전통이 있어야 되는데 이 레위지파의 우두머리는 어디에요. 레위지파는 야곱에게서 나온 거잖아요. 야곱에게 올라가고 야곱 위로 올라가게 되면, 이삭은 좀 생략됩니다. 이스라엘 족장 중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렇게 네 족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게 파(派)에요. 조금 더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사실은 할아버지, 아들, 손자, 증손자 내려가는 게 아닙니다. 그냥 아브라함 이야기, 이삭 이야기, 야곱 이야기, 12지파 이야기들이 따로따로 이스라엘 역사에 쭉 내려왔어요. 그게 일정한 시점에 편집한 어떤 성서 기자가 할아버지, 아들, 손자, 이렇게 정리를 다시 한 겁니다. 어쨌든 우리가 성경에서 알고 있는 건 할아버지, 아들, 이렇게 알고 있어요. 그걸 갖다가 제가 신학적인 그런 걸 말씀드렸지만 크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하여튼 성서가 얘기하는 걸 따라가게 되면 이 레위지파도 결국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인데 이삭은 좀 빠져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들어가게 되는데 그래도 참고적으로 말이 나왔으니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게 할아버지, 아들, 손자가 아니라 각각의 따로따로 있었던 전승이라는 걸 어떻게 아냐. 그건 학자들이 잘 연구하면 드러나게 되는 거고요. 그중에 하나의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똑같은 일들이 이삭에게도 일어나요.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런 일들이 비슷하게 일어나는 거예요. 이거는 따로따로 있었던 이야기들이 그 사람하고 붙어서 쭉 전해서 내려오다가, 보통 우리도 구전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구비문학이라고 해서 민요 이런 것들은 다 옛날에 입을 전해서 내려온 거예요. 이스라엘에도 성경이 있기 전에는 다 구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 계급의 레위가 결국은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에게 가요. 아브라함에게 가는 겁니다.

여기 10절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와요. 10절 후반절에 보면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섰음이라. 아브라함의 허리라고 하는 것은 생산 능력, 남녀 관계에서 하는 그런, 배 안에 이미 씨앗이 들어있다 그런 뜻으로 사용 한 겁니다. 레위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이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십분의 일, 전쟁에서 얻은 노략물이죠. 깨끗한 돈은 아닙니다. 자기 조카 롯을 구출하러 갔다가 구출만 해온 게 아니라 완전히 상대방을 초전박살 내버리고 많은 물건을 빼앗아 온 거예요. 그 중에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레위지파의 근원으로 올라가게 되면 아브라함인데 그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바쳤고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그 사람, 멜기세덱입니다. 구약에 보면 멜기세덱은 제사장으로 나오고 있어요. 이 멜기세덱이 이스라엘 종교의 제사장인지 아닌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일단 그 부분을 잠깐 볼까요. 창세기 14장 멜기세덱에 대한 창세기 이야기 14장 17절에서 20절입니다. 그 14장에 소제목이 이렇게 붙어있죠.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다. 롯이 사로잡혔다고 하는 걸 쫓아가서 구출 했어요. 그 당시에 이미 굉장히 개인적인 사병이라고 하죠. 군사를 거느릴 정도로 부호가 된 거예요. 전쟁을 해서 이겼고요. 그 다음에 17절부터 보면 이렇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기 전이 아브람이었어요. 아브람이나 아브라함이나 똑같은 사람입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소돔왕이면 소돔과 고모라, 별로 좋은 도시는 아닌데. 그렇게 됐고 그 다음 18절은 살렘왕은 샬롬, 이러한 뜻도 같이 있는 겁니다. 평화 이런 거죠.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살렘이에요. 왕 멜기세덱이, 예루살렘 왕 멜기세덱이, 예루살렘은 천연 요새라서요. 오랫동안 이스라엘 사람이 정복하지 못한 땅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들어갔지만 성공하지 못했고요. 다윗시대에 이르러서 겨우 예루살렘을 정복했습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이 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라고 하기에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약간 그런 쪽으로 온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제사장 계급이 생긴 것은 훨씬 후이니까요.

18절이요.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왔고요.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정리가 됐고 그 다음 19절,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축복했다고 그래요. 20절에는 아브람이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근거로 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의 제사장 지파인 레위보다도 이 멜기세덱의 전통이 더 우월하다. 그걸 강조하는 거죠. 그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 나왔잖아요. 멜기세덱의, 여기 제사장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그러한 서열을 따라서 예수가 정말 우리의 참되고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그걸 이제 얘기하려고 하는 거죠.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죠. 내용을 좀 천천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서 3절, 여기에는 멜기세덱에 대한 성서적 근거입니다. 우리가 지금 바로 본 거예요. 창세기 14장 17절에서 20절 사이에 나옵니다. 여기서 내용을 금방 바로 설명한 거예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3절에 히브리서 7장 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준 멜기세덱에 대해서 살렘의 왕이고 평강의 왕이라고 하면서 3절에 보면 조금 이해하기 힘든 말이 나와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이건 멜기세덱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것도 조금 비약이 약간 있는 듯 보입니다. 여기 멜기세덱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을까요. 성서가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아버지 없고 어머니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이유가 있겠죠. 왜 그럴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들 되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멜기세덱도 역시 그랬다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죠.

실질적으로는 아버지, 어머니 다 있죠. 예수님에게도 사실 요셉과 마리아가 있는 것처럼. 이런 것은 사람에게 아버지, 어머니 없이 태어날 수 있느냐 그렇게 따지고 들면 곤란하고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그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이 멜기세덱의 이야기 중에서 십일조가 연관돼서 나옵니다. 4절에서 10절까지예요. 그래서 간혹 교회에서 하는 십일조 헌금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말할 때 이 부분도 나오긴 합니다. 말라기서가 제일 많이 나오지만 이 부분도 나와요.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했다는 겁니다. 십분의 일 이거는 고대 유대인들의 12지파 중에서 레위지파가 땅도 받지 못했으니까 먹고 살기위한 전통도 있고요. 여기 멜기세덱 이야기하고 연관해서 십분의 일이 나오는 걸보니 고대인들에게는 통상적인 관례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공부 요약안 두 번째 해당하는 것 잠시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이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제사장들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을 십일조를 근거해서 설명한다. 레위지파들도 주변의 다른 지파들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아요? 안 받아요? 받지요. 그러나 레위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친 걸보면 이미 레위지파의 씨앗이라고 할까 그게 이미 아브라함에게 있는 거니까 멜기세덱이 훨씬 우월하다 그러한 논리입니다.

강의안을 좀 보십시오. 레위지파는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열두 아들에 기원한다. 레위지파는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땅 분배에서 제외 되었고 아까 설명한 겁니다. 다른 지파로부터 십분의 일을 받아서 살게 됐다. 레위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멜기세덱이 이스라엘 제사장 지파인 레위지파보다 우월하다 그렇게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을 하는 겁니다. 아주 히브리서 기자의 독특한 시각이에요. 신학적인 시각이에요. 아까 말씀드린 바울 같은 사람들은 이런 거 잘 얘기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주로 로마서에서 인용하는 구약 인물은 아브라함이에요. 아브라함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거론하는데 이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 십일조를 준 것에 의해서 멜기세덱을 더 우위에 놓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11절에서 14절 소제목으로 제가 옛 제사장직의 붕괴라고 적었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이 두 개를 대비시키고 있어요. 예수님이 참된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레위지파의 제사장 계급하고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가 시편 110편 4절에 근거해서 멜기세덱을 거기에 대립하는 그러한 제사장 계급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입장에 따르면 레위지파의 제사장 계급은 조금 부족한 거죠. 조금이 아니라 이거는 한계가 있는 거죠. 멜기세덱에 비해서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한계가 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평가가 됩니다. 그래서 11절에서 14절 사이에 레위지파의 제사장 직분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옛 제사장직의 한계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강의안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레위 지파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어떤 멜기세덱의 질서에 따라서 대제사장이 됐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제 이 제사장의 직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완전히 이스라엘 사람들의 제사장의 그것을 뒤집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율법도 새롭게 해석해야 합니다. 모세가 제사장과 연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유다지파, 그러니까 모세가 얘기했다고 하는 것은 율법을 가리킵니다. 율법에 의하면 레위지파가 제사장이 돼야하는 거고 유다지파는 제사장이 될 수 없어요. 그래서 모세는 제사장 문제와 연관해서 유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야곱의 몇 째 아들이죠? 세 번째, 네 번째? 그 정도 되죠. 그런데 유다지파는 다윗 가문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될 수 없었어요. 모세가 한 번도 제사장과 연관해서 유다지파를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제 멜기세덱의 더 우월한 제사장 직분에 근거해서 볼 때 이러한 율법도 새롭게 해석해야 된다. 레위지파에서 나온 제사장이라고 하는 그 율법의 어떤 관점, 흐름, 이런 것들이 새롭게 해석돼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 해석을 누가합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레위지파가 아니고 어느 지파가 해야 돼요? 유다지파가 되는 거죠. 이게 굉장히 아슬아슬한 거예요. 구약에 의하면 당연히 레위지파여야 되는데 그 레위지파가 아니라 유다지파에서 제사장, 참된 제사장이 나와야되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 얘기죠. 예수님이 유다지파라고 하는 거 맞나요? 맞지요? 성경에 여러 번 나와 있죠. 복음서에도 나와 있고 다윗 후손이라고 하니까 그게 다 같은 지파니까 분명한 것 같습니다. 12지파 중에서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은 레위지파여야 되는데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의 새로운 해석에 의하면 유다지파여야 된다. 그 근거의 출발을 어디서 잡아요? 멜기세덱이 참된 제사장이고 레위지파의 제사장들보다 먼저 있었고 레위지파 제사장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오히려 축복을 받고 축복을 할 때는 윗사람이 밑에 사람에게 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멜기세덱이 영적으로 훨씬 우월한 사람이었고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다 이러한 논리입니다.

대충 동의가 되나요? 아니면 조금 비약이 있어 보이나요. 내가 보기엔 그런 시각이 가능하다 생각이 됩니다. 약간 옆으로 나가는 말씀을 한마디만 드리겠습니다. 성서는 해석의 문제인 거예요.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해석하는 거잖아요. 구약에 있는 레위지파, 모세 율법, 멜기세덱, 아브라함, 이런 사건들을 해석하는 거죠. 이 사람의 독특한 해석이에요.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도 된다고 게 아니고 근거가 있어야 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죠. 그 다음, 15절에서 19절입니다. 율법의 한계에요. 요약문 잠깐 보겠습니다. 본문은 예수가 멜기세덱의 전통에서 오신 분이므로 율법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율법의 전통을 따르면 레위지파여야 되는 거예요. 멜기세덱의 전통에 있기 때문에 율법이 한계가 있는 거다.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한계다. 15절 성경보세요.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 보니 더욱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거죠. 16절에 그는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않고 이거는 레위지파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거예요. 율법을 따르지 않고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랐다. 이거는 부활을 가리킵니다. 불멸의 생명의 능력. 거기에 따라서 그분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다. 여기서 계속해서 율법의 한계, 그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이제 시편을 인용해서 하는 이야기에요. 이 히브리서 기자가 멜기세덱을 인용하는 건 딱 두 개, 아까 말한 창세기 14장에 있는 거하고 여기 시편 이 두 개 약간 좀 성서 근거로 보면 빈약하죠. 그래도 그것에 근거해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제사장이라고 하는 확신 가운데서 그렇다면 레위지파에서 오는 제사장 직분이 왜 문제가 있느냐. 하는 것을 신학적으로 논증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인용한 시편 110편 4절을 잠깐 확인을 해 드릴게요. 제가 읽을 테니까 여러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간단한 구절이에요.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 시편 110편이 메시아사상이 여기 있다 보고요. 그래서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서열에 따라 영원히 제사장이 된 분, 이미 시편기자가 말하고 있지 않냐.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결국 18절에 보면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였다. 계명은 물론 율법이고요. 또 여기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는 7장의 틀 안에서 본다면 레위지파에게 제사장 직이 대물림된다고 하는 한계를 얘기합니다. 그런 것들은 폐하게 됐다. 다음, 20절에서 22절. 여기는 맹세라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제가 공부 시작할 때 잠깐 말씀 드렸습니다. 레위지파는 맹세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대를 이어서 하는 거니까. 자기 족보만 있으면 되니까요. 예수님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다 얘기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대제사장이 되겠다고 맹세하셨다는 건 아니에요. 이것도 히브리서 기자의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맹세하신 거죠. 내가 예수 외아들을 십자가에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걸어가신 길. 그러므로 영원한 번제물로 드려지게 됐고 속죄의 길이 됐고 그래서 참된 제사장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맹세를 하셨다고 하네요. 하나님이 딱 맹세했다는 말은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도 아까 인용한 시편 110편 4절을 인용하는 거예요. 그 부분을 갖다가 하나님의 맹세다 표현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22절에 보면 이렇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정말 참된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22절에서 28절까지입니다. 여기 소제목은 하늘 대제사장 직의 영원성과 완전성입니다. 히브리서에서 7장이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합니다. 핵심이에요.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의 영원성과 완전성을 레위지파보다 더 우월한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고 십분의 일을 바치었던 그 시편 110편 4절에서 언급된 그 멜기세덱의 반차에 의한, 그리고 하나님의 맹세에 의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옳다 지금 말하고 있는 거죠. 강의 요약문 좀 보겠습니다. 본문은 레위지파의 제사장 직분과 그리스도 예수의 제사장 직분의 질적인 차이를 여기서 밝힌다. 레위지파 제사장들은 죽어야 되기 때문에 숫자가 많다. 계속 대를 이어서 끊임없이 제사장을 하게 되는데 예수는 죽지 않으시기에, 부활이에요. 제사장 직분은 누구에게 대를 잇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제사장. 한 번으로 완성된 그러한 제사장이다. 지금 대제사장, 제사장이 어떤 의미인지 아시는 거죠? 예수님이 제사장 가운 입고 성전에서 제사장 직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속죄하는 그런 일을 하셨다는 뜻에서 제사장이라는 말을 표현하는 겁니다. 그것의 핵심은 부활인 거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자기 몸을 던지셨고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들어가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은 계속 역할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근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은 분. 결정적인 예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이 부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차이를 지금 얘기하고 있습니다.

레위 제사장들은 죄인들이기에 스스로의 죄,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날마다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돼요. 두 양쪽을 비교하고 있는 겁니다. 반복해야 돼요. 왜냐하면 제사장 스스로도 죄인이기 때문에. 그런데 예수는 반복하지 않고 단번에 자기를 드렸다. 유일회성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과 생명 부활사건의 유일회성 인거죠. 그런 점에서는 히브리서 기자가 바울이나 다른 편지들과 조금 특이하게 접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의 신앙의 중심에 서있는 건 분명합니다. 단번에 드리심, 단번에 구원을 이루심, 이런 것이 바탕에 깔려 있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뭐 중요하나 여러분들이 혹시 생각할 수 있어요. 단번이면 어떻고 반복이면 어떠냐.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만약에 반복해야 된다면 오늘날에는 그리스도가 또 나와야 되는 거예요. 약간 자유주의적인 분들은, 그리고 훨씬 해방 신학적인 입장에 있는 분들은 모택동이 오늘의 그리스도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인간 해방을 했으니까. 그리고 또 민중 그리스도론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 한 번에 자기를 제물로 드렸다고 하는,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내려오는, 그리고 신학성서 곳곳에 배어있는 이러한 구원의 유일회성에 근거하면, 십자가의 드리심과 부활이라고 하는 유일회성에 근거하면, 반복되는 건 아니에요. 이미 그건 끝난 문제에요. 여기서부터는 더 이야기할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건 오늘 접어두고요. 레위 제사장들은 제사를 자꾸 반복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는 한 번에 끝난 겁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제사하고는 조금 다른 거예요. 다시 반복하는 건 아닌 거예요. 이미 그건 끝났습니다. 죄 용서 받는 이 사건은 더 이상 똑같이 우리가 반복할 필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끝나게 된 거고 그래도 여전히 죄에 휩싸여 있다는 딜레마 속에 있긴 있으나 그건 우리가 극복해야 될 문제이고 일단 그거는 유일회적으로 다 이룬 것으로 생각을 해야 됩니다.

조금 더 요약문 보십시오. 마지막 부분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지닌 인간을 제사장으로 세웠지만 율법 후에 하나님의 말씀은,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 부활의 예수를 제사장으로 세웠다. 그렇게 정리가 됐습니다. 28절만 읽어 보겠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어떻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쭉 끌고 가는 어떤 방향은 이해하시겠죠. 구도도 정확하게 나와 있는 거죠. 그 안으로 우리가 얼마나 깊이 들어 가냐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일단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려고 하는 신앙과 신학의 기본 구도, 이건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참된 제사장이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단 번에 이루셨다. 그래서 반복될 필요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회성입니다. 근데 왜 이걸 자꾸 구약에 있는 멜기세덱과 연결해서 반복해서 말 하냐. 왜 그러겠어요. 그런 걸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반론입니다. 레위지파의 제사장, 율법, 토라, 이런 것들을 여전히 관심이 있는 기독교인들이 그 당시에 당연히 있는 거죠. 거기서부터 유대교의 전통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투쟁을 한 거예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거기 남아 있는 거고. 적당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고요. 바울 같은 사람들은 완전히 빠져나왔고 신약성서에 기록된 이런 사람들은 다 그 공동체 전통으로부터, 그걸 부정하고 까부시는 건 아니되 왜 다르냐.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기본적으로 구약이 말하고 있는 바로 그분인데 유대 전통이 잘못 해석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율법을 넘어서는, 율법을 부정하지는 않되, 율법을 근원적으로 넘어서는 복음의 사건이다 그거죠. 저도 지난번에도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히브리서를 제가 여러 번 읽긴 읽었습니다마는 대게 그냥 지나가게 되네요. 근데 공부하려고 차분하게 읽고 하다보니까 좋은 영적인 시각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들에게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때인가 가서는 기독교 영성의 큰 틀 안에 들어가 있구나, 느끼게 될 겁니다. 단숨에 되는 건 아닙니다. 꾸준하게 이러한 공부에 참여하는 게 이런 점에서 중요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오늘 저희들 히브리서 7장을 함께 읽고 공부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런저런 일들로 쫓기는 가운데서도 시간을 내어 함께 읽고 공부하게 하신 것 하나님의 은총인 줄 알고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사순절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 그의 참된 대제사장 되심, 그것을 초기 기독교가 처한 독특한 상황에서 잘 풀어서 설명한 이 히브리서 기자의 오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또 귀한 공부시간에 참여한 우리 믿음의 식구들 각각의 삶을 주님께서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형편들이 다 다릅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그 모든 삶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함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삶에 토양들이 되도록, 그리고 토대가 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들을 늘 주님께서 감춰 주시기를 원하고 늘 새로워지는 우리의 삶이되기를 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히브리서 7장 은혜로운 설교말씀] 멜기세덱의 더 좋은 소망(히 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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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7장에서는 멜기세덱의 반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평강의 왕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게세덱과 레위 제사장의 반차를 비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레위 제사장은 일반 제사장이지만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사역을 감당하시고 영원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멜기세덱의 더 좋은 소망(히 7:1-28)

1-10절, 신비한 인물 멜기세덱

[1-2절]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 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 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 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멜기세덱은 창세기 14:18-20에 나오는 인물이다. 거기에 보면, 그는 살렘 왕으로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가서 싸워 이기고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그의 손에 그 대적을 붙이시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전쟁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 멜기세덱은 역사적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과 예표(豫表)이었다. ‘멜기세덱’이라는 히브리어는 ‘의(義)의 왕’이라는 뜻이다. 또 살렘이라는 말은 ‘평강’이라는 뜻이다. 이사야 9:6-7에 보면, 의의 왕과 평강의 왕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 명칭이다.

[3절]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본문은 멜기세덱의 부모나 족보나 출생이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뜻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을 신비한 베일에 감추신 것은 그를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과 예표로 삼기 위하심이었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비슷한 자로 역사상 잠시 언급된 것이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이신 메시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었다.

[4-7절]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 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점은 두 가지이었다. 첫째는, 그가 아브라함에게서 노략물 중에서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족장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을 보면,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 자인지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자손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받았고 율법의 규정에 따라 자기 형제들에게 십일조를 받았지만, 레위 족보에 들지도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취하였던 것이다. 둘째는,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했다는 점이다. 그는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후 그를 축복하였다. ‘페일언하고’ 즉 ‘변론할 것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는다. 이런 점들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임이 잘 나타낸다.

[8-10절]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 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 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 멜기세덱을 비교해 볼 때, 레위 지파 제사장들은 다 죽을 자들로서 십분의 일을 받았지만, 멜기세덱은 영원히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자로서 십분의 일을 받았다. 이 점에서도 멜기세덱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보다 뛰어났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 때 레위는 아직 그 조상 아브라함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드렸다는 점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뛰어난 점일 뿐 아니라, 그가 레위 지파 제사장들보다 뛰어난 점이었다.

1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구약시대 아브라함 때에 나타났던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와 모형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점에서 그러하였는가? 우선 그의 이름이 그러했다.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의(義)의 왕’이라는 뜻인데, 그것은 메시아의 명칭이다. 또 그는 살렘 왕인데, 살렘은 ‘평화’라는 뜻이다. 메시아는 평화의 왕이시다. 또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시작한 날이나 죽은 날도 없었다. 그것은 그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메시아는 그 신적 본질에 있어서 아비도 없으시고 어미도 없으시며 족보도 없으시며 시작한 날이나 죽은 날도 없으시다. 그는 영원히 살아계신 신적 존재이시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또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그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레위 지파의 아론의 자손들인 대제사장들보다 더 높음을 보인다. 그것은 메시아의 예표이며 모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 같은 인물이시다. 그는 의의 왕이시며 평화의 왕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으신 신적 존재이시다. 그는 구약의 율법 제도보다 더 높으시다. 우리는 그를 믿고 사랑하고 섬기자.

11-19절, 더 나은 제사장 직분의 필요성

[11절]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율법제도가 폐지되었음을 증거하는 책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은 부족하였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이 부족함이 없었다면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말한 온전함은 ‘완전한 사죄, 완전한 화목, 완전한 교제의 회복’을 가리킨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흠과 점이 많았고 종종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부패되었고 육신적으로도 죽을 자들이었다. 그들의 제물도 죄인에게 참으로 사죄(赦罪)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실상 장차 오실 메시아의 속죄사역의 모형과 그림자와 예표(豫表)에 불과하였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을 통해 사람이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을 세울 필요성이 있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의 율법제도는 폐지되고 복음의 새 시대가 시작된다. 그는 물론 구약시대의 율법과 무관하지 않으셨다. 구약의 율법은 그와 그의 대속사역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와 예표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으셨다(롬 3:21). 그는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오지 않으셨고 이루러 오셨다(마 5:17). 그는 구약시대의 율법, 즉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다. 그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죄인들에게 완전한 사죄, 완전한 의, 완전한 화목, 완전한 교제의 회복이 이루어졌다(롬 3:21-22; 10:4).

[12-13절]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는]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변역할 것임이니] [이는]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것임이니라].”

히브리서 저자가 제사장 직분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단지 제사장 직분의 변화가 아니고 결국 율법제도의 변화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론 자손의 제사장이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으로 대치되듯이, 구약시대의 율법제도는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고 복음의 새 형식으로 대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움에 대해 말한 이유는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제단 일은 레위 지파 제사장들 즉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 맡겨진 일이고 다른 지파 사람들은 그 일에 관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전혀 다른 족속에 속한 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110편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한 제사장을 메시아로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다. 여기에 신약시대의 새 제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암시되어 있었다.

[14-15절]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는]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분명함이라].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주 예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나신 것이 분명하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해 말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와 같이 주께서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제사장으로 오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와 율법제도를 영원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는 메시아를 유다 지파에서 나게 하지 않으시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으로 일어나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메시아가 유다 지파에서 나셨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으로 오신 것을 보면,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와 율법제도가 폐지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16-17절]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 . . .

본문은 또 말한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아론의 자손이어야 한다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아 구주가 되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구주가 되셨다. ‘무궁한 생명’이란 100년에 제한된 육신의 생명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제사장들과 달리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다. 앞에서 인용한 시편 110편에서 메시아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증거되셨다.

[18-19절]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는]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페하였음이라.] ([이는]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못함이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보내신 이유는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가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여지기 때문이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하였다.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롬 3:20). 구약시대의 제사장 제도나 율법제도는 그 자체로는 연약하고 무익하였다. 그것은 단지 앞으로 오실 완전하신 메시아에 대한 그림자와 모형과 예표일 뿐이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셨으므로 그림자와 모형과 예표인 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소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義)가 되셨다(롬 10:4; 고전 1:30). 우리의 의는 오직 이것뿐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11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의 요지는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과 율법제도가 사람에게 도덕적 완전함 즉 의(義)를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주실 의에 대한 그림자와 모형과 예표이었다. 성경은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다른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에 대해 말하였고 그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결국 구약시대의 제사제도와 율법제도의 폐지를 보이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의 새 형식의 도입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진리를 배운다. 첫째로, 우리는 구약시대의 제사제도와 율법제도의 예표적, 모형적, 그림자적 성격을 배운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속죄의 복음의 실체적, 완성적 성격을 배운다. 이것은 구약에 비추어 더 좋은 소망의 내용이다.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늘날 구약제도의 폐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바로 이해할 때, 우리는 오늘날 왜 우리가 더 이상 구약시대의 성전 예배의 의식을 지키지 않고 제사들과 절기들을 지키지 않는가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을 감사히 누리자.

20-28절, 더 나은 제사장

[20-21절] 또 예수께서 제사장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 . . .

본문은 또 말한다. “또 예수께서 제사장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써 제사장이 되셨다는 점에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보다 더 나으시다. 율법 아래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심으로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셨다(시 110:4).

[22절]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본문은 말한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이와 같이’라는 원어(카타 토수톤)는 ‘이렇게 큰 것에 의해’[이만큼]라는 뜻이다. 여기에 ‘큰 것’이란 하나님의 맹세를 가리킨다. 즉 예수께서는 이렇게 큰 것 곧 하나님의 맹세에 의하여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더 좋은 언약’이란, 구약이 예표적, 예언적 성격의 언약이었으나 신약은 실체적, 성취적 성격의 언약임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새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새 언약을 확실히 깨닫게 되고 확신케 되었다.

[23-24절] 저희 제사장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저희 제사장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계시다는 점에서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보다 더 나으시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죽는 인생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수효가 많았다. 그러나 한 분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며 따라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않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갈리지 않는다’는 원어(아파라바토스)는 ‘임시적이지 않다, 변하지 않다, 영속적이다’라는 뜻이다.

[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 . . .

본문은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자기를 힘입어’라는 말(디 아우투)은 ‘그를 통하여’라는 뜻이고, ‘온전히’라는 말(에이스 토 판텔레스)는 ‘끝까지, 영원히, 완전히’라는 뜻이 있다. 예수 께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끝까지, 영원히,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까닭은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이다. ‘간구한다’는 원어(엔튕카노)는 ‘중재한다, 중보의 일을 한다’는 뜻이다.

[26-27절]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 . . .

본문은 또 말한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들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시다. 그는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셨고, 단번에 자신을 드려 속죄사역을 이루셨고 의(義)를 이루셨다. ‘단번에’라는 말(에파팍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이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제사가 필요 없음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신 의(義)는 완전한 의이다.

[28절]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 . . .

본문은 말한다. “[이는]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세우셨음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완전한 이유는 그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 즉 신적 구주이시기 때문이다. ‘온전케 되었다’는 말은 구주로서의 그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뜻이다. 즉 그는 완전한 구주, 완전한 중보자가 되셨다는 말이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속죄사역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20절부터 28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새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보다 나은 점들은 첫째로 그가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이 되셨다는 점이며, 둘째로 그가 영원히 살아계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을 끝까지, 영원히,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점이며, 셋째로 죄 없으신 하나님 아들께서 단번에 자신을 드려 대속을 이루셨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의 완전함을 깨닫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하고 영원한 대속(代贖)을 받았고 완전한 의를 받았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 밖에 없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의 일을 하심을 깨닫자.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 된다. 우리는 만가지로 부족하지만, 구주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고 지금도 그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흠과 점이 없는 자들이 되게 하시고 마침내 영화로운 몸을 입게 하시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그러므로 하나님께 큰 감사와 헌신과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에 밝히 계시되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당하다.

[야고보서 1장 주석 성경말씀] 성도가 시험을 참음(약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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