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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장 강해 | [하루 한 장] 이사야51장_생각하여 보라 상위 173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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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19 [하루 한 장]“생각하여 보라” (사51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이사야 51장은 포로된 중에
막막한 현실을 아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너희가 흙덩이였을 때
너희를 창조한 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되도록
아이가 없어서 괴로울 때
자녀를 허락한 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의 고난과 아픔을
이기고 여기까지 온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그 은총을 잘 생각하면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찬양이 다시 회복됩니다
그 찬양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진하게 경험하게 합니다
오늘도 험난한 하루겠지만
생각하고 찬양합시다
분명, 다른 하루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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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목) \”이사야 51:1-23\” / 작성: 이영란

본문 이사야 51장 1-23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며, 의를 좇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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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4/16/2021

View: 8907

[스크랩] 이사야 51장 주석

이사야 51장 주석. =====51: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 – 이들은 바벧론 포로 생활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본국으로 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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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tiochministry.tistory.com

Date Published: 5/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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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이사야 51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쉬메우 엘라이 로데페 체뎈 메바크쉐 아도나이 합비투 엘 출 훛차브템 웨엘 맠케베트 보르 눜카르템 개역개정,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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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8/8/2022

View: 8479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이사야 51장 1-23절 – 네이버 블로그

이사야 선지자는 약 15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압재 아래에서 … (사51:1-8) “(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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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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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52:12장 – 교사용]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찬 회복의 날이 있을 것이다. 3.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가 아브라함과 사라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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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1/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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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51장

51:1 교회를 돌보시는 하나님 (이사야 51:1-3)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기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이 위안의 말이 그들에게 보내어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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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ngl.net

Date Published: 4/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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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사야 51장 1-8절) – 이한규 목사

이사야 51장 1-8절. (1절)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절) 너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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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hn316.or.kr

Date Published: 8/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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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장 구원의 확실성[사 51장] [내용개요] 본장에는 포로 …

구원의 확실성[사 51장] [내용개요] …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멸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임을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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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bpse.mireene.com

Date Published: 11/18/2022

View: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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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이사야 51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 Article author: tripol.tistory.com · Reviews from users: 27968 · Top rated: 4.5 · Lowest ra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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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odaithanhmai.com.vn

Date Published: 9/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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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이사야51장_생각하여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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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사야 51장 강해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5,061회
  • Likes: 좋아요 134개
  • Date Published: 2019. 2. 1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lwd5BiVrvNs

2019/03/14/(목) \”이사야 51:1-23\” / 작성: 이영란

본문 이사야 51장 1-23절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며, 의를 좇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므로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낙망하지 말라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내게 들을지어다(1-8절)

1-8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선민을 향하여 공의를 굳건히 할 것과 영원한 구원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2절입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들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

자식이 없어 소망없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벨론에서 고난당하며 삶의 소망이 없어 보이는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란 약속의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고 번성케 되는 길은 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

의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단지 공기의 진동에 의한 소리의 자극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이의 뜻을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살겠다는 의지적 결단으로 연결된 들음을 의미합니다. 언제나 이스라엘의 든든한 피난처 되시는 반석이신 하나님과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그들을 건져 내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던 일을 생각하라고 요청합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있는 그들을 돌보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은 과거 자녀가 없던 아브라함을 권고하사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을 다시금 각성케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로하신다고 합니다. ‘위로하여’라는 단어는 ‘숨을 깊이 들어쉬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자 하는 간곡한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따뜻하게 위로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막과 광야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에덴과 여호와의 동산은 하나님께서 베푸실 은총이 얼마나 완전한 것인지를 대변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하는 것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구속의 사역을 통해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새 생명의 은총으로까지 이어진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으로 인해 구원을 얻은 선민이 누리게 될 것을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일하는 소리’가 있을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노랫소리를 전혀 기대할 수조차 없었던 곳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인해 억누를 수 없는 흥겨운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

여호와께서 택하신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현재 이방 종교 문화 속에서 살고 있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든 그들은 본질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의하라’는 말은 ‘귀를 곤두세우고 경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듣고 싶은 말, 듣기 좋은 말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듣기 위해 필요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서 포로로 살게 된 근본 원인이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고 이방의 타락한 문화를 좇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포로에서 해방되어 귀환하게 되면 과거의 오염된 전철을 되밟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삶은 이스라엘을 넘어 만민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로 선포되었습니다.

8절 하반절입니다.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

여호와의 공의로운 통치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란 의미와 더불어 그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영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끊임없이 계속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구원의 역사 안에 살아가는 내가 오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안에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여부는 내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아닌지를 통해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교회 안에 있다고 하여 우리가 주님의 통치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거하든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삶의 자리에서 진지하게 말씀을 살아내는지를 통해 증명됩니다.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9-16절)

9절에서 11절 말씀은 바벨론 압제의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 달라는 선지자의 간곡한 부르짖음입니다.

12절에서 16절 말씀은 선지자의 간곡한 호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과 구원을 보장하시는 말씀입니다. 12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랴 .

이스라엘이 포로 된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두려울지라도 결코 위축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주님께서 위로하고 계십니다. 바벨론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그들은 무기력한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분은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실 수 있는 분, 땅의 기초를 정하신 분, 바로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스스로 밝히고 계십니다(15절). 현재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된 상태처럼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눌려 있다면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켜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억압되어 있다면 그 억압의 실체를 주님께 내어드리고, 주님의 백성 된 신분으로 우리가 주님만을 경외하며 살아가길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분노의 잔을 거두어서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17-23절)

17절에서 23절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약속에 근거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백성을 향하여 각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7절입니다.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

바벨론에 의해 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을 향하여 깨어 날 것과 일어 설 것을 촉구합니다. ‘깰지어다’는 스스로를 일깨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사불성의 만취상태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죄에서 돌이켜 의로운 자리에 서라는 요청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다 마셨음을 지적하며 이제는 깨어나 회복할 것이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인사불성의 만취상태인 이스라엘을 일어서게 하실 분, 절망에 빠져 소망의 빛이 전혀 없던 백성에게 허락된 진노의 잔을 거두실 분, 그들을 구원하고 위로하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이사야 선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자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지식으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위로와 격려하심이 실제로 경험되어지길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능력을 통해 우리의 문제만을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함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것이 더 크게 보이고, 더 중요하게 보이는 오늘을 살며, 세상을 두려워하고, 타인이 가진 것을 나는 갖지 못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짖누르는 죄와 어둠에서 일어나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주님을 실제로 경험하며 사는 한 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듯 사막과 광야를 헤매이는 내게 주님께서 찾아오신 경험을 기억해 보십시오.

2. 그 때 나를 찾아오신 주님으로 인해 누렸던 은혜는 무엇이었습니까?

3. 현재 내가 진노의 잔을 마시고 있다면 원인은 무엇입니까? 바벨론의 억압입니까? 내 속의 어둠입니까?

4. 나를 억압하는 죄에서 돌이켜 의로운 자리에 서라는 주님의 요청에 어떤 응답을 드리시겠습니까?

(작성: 이영란)

[스크랩] 이사야 51장 주석

이사야 51장 주석

=====51: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 – 이들은 바벧론 포로 생활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본국으로 귀환할 때를 고대했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를릉 다

포로 생활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던 자들이었다. 본문에서 이들은

‘의를 좇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칫하면 형식적 율법 준수에 집착

하는 것으로써 선민(選民)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구

절들은 바로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려고 하는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반석 … 구덩이 – 이 둘은 석수장이가 돌을 떠내서 움푹 패인 자리를 가리킨다.

무엇인가 암시하는 이미지인데, 그 내용은 2절에 설명되어 있는 것 곧 하나님이 그 주

권적 의지에 따라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언약 백성이 출현하게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용어가 포함된 문장과 2절 상반절은 공히 ‘생각하여 보

라’로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51:2

너희 조상 … 생각하여 보라 – 저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의'(5절 참조) 설명함에 있어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되어 많은 수의

민족으로까지 불어난 이스라엘 민족을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약속을 부여하시되 인간

의 안목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방법 곧 노인 사라를 통한 자손 출생을 통하여 그 약속

을 이루어 나가셨고,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큰 나라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이 위로를 받은 남은 자들은 구원에 관한 절대 주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의로워질 수 있는 근거를 이 소망 위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51:3

그 광야로 에덴 같고 – 여기 ‘에덴’은 하나님이 인간의 거주지로 정하셨던 최초의

장소인 에덴 동산을 가리키는데(창 2:8,9), 구약에서 이 호칭은 이상적인 목초지 혹은

농경지의 상징이 되고 있다(창 13:10;겔 31:8,9). 그러나 겔 36:35과 마찬가지로 본

호칭은 미래에 다시 회복될 처소를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본절은 종말

론적 관점에서도 이해 가능하다. 1차적으로 본절은 혼자였던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

족을 만드셨던 하나님이 포로지의 남은 자들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재건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고 그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완료형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는 ‘에덴’이란 호칭으로 미루어 볼 때, 본절은 메시야

를 통한 구속 사역의 완성 그리고 더 나아가 메시야의 재림 때에 있을 완전한 구속 사

역의 성취에 따른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까지 그 시야를 확산시키고 있다 하겠다.

=====51:4

내 백성 … 내 나라 – 각각 ‘암미'( ), ‘레움미'( )이다. 어떤 학

자들은 이 두 용어를 각각 ‘민족들’이란 뜻의 ‘아밈'( )과 ‘나라들’을 뜻하는

‘레우밈'( – )으로 바꿈으로써 본 구절의 청중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까지 포함한 만민들인 것으로 보려 하나 ‘만민’에 관한 언급이 따로 나오므로 원문 수

정까지 해가면서 굳이 그렇게 해석할 필욕는 없을 것이다.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 원문에 입각한 직역은 ‘나의 심판은 만민의

빛이 되리라’이다. 문맥상 본절의 ‘율법’과 본문의 ‘심판’은 동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본절과 5절 내용은 여호와의 날에 되어질 상황을 그린 2:3,4과, 이방에 공의를

베푸실 ‘종’의 노래에 해당하는 42:1 내용과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본문의 예언 역시 바벧론 포로 귀환뿐 아니라 메시야 시대에 되어질 일들을 통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 하겠다.

=====51:5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 계속해서 복합 성취를 겨냥한 예언이 나오

며, 특히 종말론적 색채가 짙은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와 이스라엘의 죄의 해결을 동시

에 만족시킬 대속주이신 메이야의 대속 사역을 암시한다. 한편 메시야의 대속 사역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의 택한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팔 –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하며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

님의 ‘능력'(롬 1:26)을 가리킨다.

=====51:6

하늘이 연기같이 … 죽으려니와 – 만물의 일시성,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묘사이지

만 종말에 되어질 어떤 징조에 대한 암시가 정혀 담겨 있지 않다고 볼 수도 없는 구절

이다. 이 같은 묘사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앞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톨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

와 이방의 선택받은 자의 구원은 결국 성취되고 말 분명한 사실이다 : “천지는 없어지

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시 102:26;히 1:11,12).

=====51:7

의를 아는 자들 …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 –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여호

와의 구원을 사모하여 율법대로 살아가고자 힘쓰는 이들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뜻한다. 이제 바벧론 포로 사건을 놓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가 어떻게 구원받겠느냐’라고 조롱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위기 때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성을 확신하는 이들은 결코 위축되지 않을 것이

다(마 10:28).

=====51:8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 좀이 의복을 갉아먹어버리듯이 무기력하게 멸망당하

고 말 악인들의 허망함과 유약함을 나타낸다(Fausset). 이처럼 유약한 인간이라면 그

가 내뱉는 조롱조의 말은 생명력도 없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하나

님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해(害)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며 따라서 그분에게서 나온 말

씀, 구원의 계시는 생명력이 있다.

=====51:9

깨소서깨소서 – 하나님의 과거의 전능 사역을 회고하며 아뢰는 이 호소는 ‘공동체

적 애가'(corporate lamentation)의 특성을 보여준다(시 44:1-3, 23;80:2). 하나님의

구원을 재촉하는 듯한 이 호소는 하나님의 무관심에 대해 원망하는 말이 아니라 긴박

한 현실 상황으로부터 한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에서 나온 말이다.

라합 – ‘애굽’의 시적인 이름이다. 이미 본서 저자가 사용한 바 있다 :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30:7).

용( , 탄닌) – 문자적인 뜻은 ‘악어’인데 악어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애굽 정복 뒤에 애굽의 동전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확인하였듯이 애굽을 상징하는 동

물이다. 특히 그 왕 바로를 가리킨다(27:1;시 74:13,14;겔 32:2). 선지자는 여기서

기적적인 출애굽 사건 중 바로의 항복기사를 회상하고 있다.

=====51:10

바다를 … 주가 아니시니이까 – 여기서 ‘바다’는 홍해를 가리킨다(43:6;출

14:21). ‘당신은 홍해 기적 사건을 일으키신 바로 그 전능자가 아니십니까?’라고 묻

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의 질문이다.

=====51:11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 1차적으로는 넓게 펼쳐진 광야를 지나 바벧론

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귀환민들에게 찬양과 감격이 가득할 것을 서술한 것

이다. 한편 본절이 9,10절의 애가적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하여 본절의 화자(話者)

를 하나님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으나, 원문상 9-11절과 12-16절은 서술 시점 및 사용

된 인칭에 있어 분명한 구별성을 보이고 있다.

=====51:12

나여늘 나여늘( , 아노키 아노키) – 보기 드물게, ‘아노키’가

두 번 사용되었는데 참위로자, 구원자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반복되는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고 슬

퍼하는 그의 백성에 대한 답답한 심정의 표출이기도 하다.

=====51:13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 원문 직역은 ‘너를 멸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이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표적을 정하고 활시위를 뒤로 잡아당긴 상태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시 7:13;11:2;21:12, Maurer). 사실 이와 같은 상태 속에 있다면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본절은 그와 같은 상태 속에 있더라도, 우주 안에 되어지

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가

르친다. 사람과 하나님 중에 누구를 더 의지할 것인가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

며 날마다 부딪혀야 하는 심각한 질문이다.

=====51: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 여기 ‘결박된 포로'( , 초에)의 문자적인

뜻은 ‘한 쪽으로 치우친 것’ 혹은 ‘기운 것’으로 담은 액체를 쏟기 위해 기울인 그릇

따위를 연상케 한다(헴 48:12). 그렇다면 이것은 포로로서 그 헐리를 구부린 모습으

로 바벧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회화적 표현이라 보면 적절하다. 이제

그 포로 상태에서 속히 놓인다면 본절의 시점은 포로 시대 말기 쯤이 될 것이다. 이

표현을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신약 교회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Fausset).

=====51:15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고 흉용케 하는 자 – 원문 직역은 ‘그 물결이 뛰는 바다를

나눈자’이다. ‘꾸짖어 뛰는 파도를 잠잠케 한 자’로 번역하는 역본도 있다. 이 같은

번역들을 종합할때 본 구절은 파도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흉용한 바다를 명령하셔

서 잔잔케 하시고 둘로 나누어 그 사이에 길을 내심으로 이스라엘로 무사히 건너게 하

셨던 홍해 도보 사건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51: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 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

러나 본문이 세 번째 종의 노래를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할 때(49:2), 이는 본

서에서 줄곧 암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을 통한 신기원적인 구원 사역을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다(49:2;50:4,5;59:21;신 18:18;요 3:34, G.W. Grogan).

=====51:17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 – 당시 바벧론의 포로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상

태를 분노의 잔을 마신 자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담긴 잔을

마신 자는 전적으로 파멸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비유는 그리스도에 대속적 죽음

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바 있다(막 10:38). 한편 9절에서 사용된 ‘히트오레리'(

) 곧 ‘깰지어다’가 여기서도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1차적으로 진

정 깨어나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될 것을 강력히 암시

하고 있다.

=====51:18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포로 상태의 이스라엘을 회복할 존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벧론으로부터의 귀환은 바사 왕 고레스의 개입에 의해 실현되었다. 아울러

본문은 영적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적 존재 곧 메시야를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51:19

이 두가지 일 – 정확히는 ‘이 두 가지일들’이다. 말하자면 두 쌍, 곧 네 가지 일

들을 가리키는데, 먼저 한 쌍은 땅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황폐와 멸망이며 또 다른 한

쌍은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기근과 칼, 곧 전쟁이다. 한편, 이를 내적 사건과

외적 사건으로 구분하는 견해(Aben Ezra, Kimchi), 혹은 기근으로 인한 황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멸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Clark).

=====51:20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 여기 ‘모퉁이'( , 로쉬)

란 그 문자적인 뜻이 ‘머리’, ‘꼭대기’인데 거리의 ‘머리'(꼭대기)란 당시 한 도시의

모든 거리와 도로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성문을 가리킨다. 당시 성문은 밤이 되면

폐쇄되었는데 문 안으로 들어오고자 했던 자로서 밤이 되어 그 문이 폐쇄되면 그 문

앞에 모여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모습 곧 여럿이 성문 앞에 모여있는

모습을 저자는 그물에 걸린 영양떼에 비유하고 있다. 어쩔 도리없이 그 발이 묶인 나

그네와 같이 이스라엘은 바벧론의 포로로 잡혀 있다.

=====51:21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 – ‘포도주 없이 취한 자’이다. 포도주 때문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으로 비틀거리고 쓰러진 이스라엘의 형편을 지적으로 표현이다(29:9;애

3:15).

=====51:22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 문자 그대로는, 다시는 바벧론 포로와 같은 시련

과 재난을 허락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

냐하면 예루살렘은 바벧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후에도 로마의 침공으로 동일한 시련과

재난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제 경

건한 참이스라엘 백성, 곧 남은자들은 세상에서는 시련과 재난을 겪으나 결국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결코 동일한 고통을 겪지 않고 살게 될 것이다.

=====51:23

그들의 앞에 … 하였느니라 –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잔혹하게 대하였던 사실에 대

한 생생한 묘사이다. 정복자들이 문자 그대로 그 피정복 국가 왕의 목을 밟았던 관습

은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수 10:24;66:11,12).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히브리어 이사야 51장 원어 성경 공부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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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메우 엘라이 로데페 체뎈 메바크쉐 아도나이 합비투 엘 출 훛차브템 웨엘 맠케베트 보르 눜카르템

개역개정,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새번역,1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도움을 받으려고 나 주를 찾는 사람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바위를 보아라. 너희가 거기에서 떨어져 나왔다. 저 구덩이를 보아라. 너희가 거기에서 나왔다.

우리말성경,1 “정의를 추구하며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아, 내 말을 잘 들으라. 너희를 떠낸 저 바위와 너희를 파낸 저 구덩이를 바라보라.

가톨릭성경,1 내 말을 들어라, 의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아 주님을 찾는 이들아. 너희가 떨어져 나온 반석을 우러러보고 너희가 퍼내 올려진 저수 동굴을 쳐다보아라.

영어NIV,1 “Listen to me, you who pursue righteousness and who seek the LORD: Look to the rock from which you were cut and to the quarry from which you were hewn;

영어NASB,1 “Listen to me, you who pursue righteousness, Who seek the LORD: Look to the rock from which you were hewn, And to the quarry from which you were dug.

영어MSG,1 “Listen to me, all you who are serious about right living and committed to seeking GOD. Ponder the rock from which you were cut, the quarry from which you were dug.

영어NRSV,1 Listen to me, you that pursue righteousness, you that seek the LORD. Look to the rock from which you were hewn, and to the quarry from which you were dug.

헬라어구약Septuagint,1 ακουσατε μου οι διωκοντες το δικαιον και ζητουντες τον κυριον εμβλεψατε εις την στερεαν πετραν ην ελατομησατε και εις τον βοθυνον του λακκου ον ωρυξατε

라틴어Vulgate,1 audite me qui sequimini quod iustum est et quaeritis Dominum adtendite ad petram unde excisi estis et ad cavernam laci de qua praecisi estis

히브리어구약BHS,1 שִׁמְעוּ אֵלַי רֹדְפֵי צֶדֶק מְבַקְשֵׁי יְהוָה הַבִּיטוּ אֶל־צוּר חֻצַּבְתֶּם וְאֶל־מַקֶּבֶת בֹּור נֻקַּרְתֶּם׃

성 경: [사51: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 – 이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본국으로 귀환할 때를 고대했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를릉 다포로 생활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던 자들이었다. 본문에서 이들은 ‘의를 좇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칫하면 형식적 율법 준수에 집착하는 것으로써 선민(選民)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바로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려고 하는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 반석 … 구덩이 – 이 둘은 석수장이가 돌을 떠내서 움푹 패인 자리를 가리킨다. 무엇인가 암시하는 이미지인데, 그 내용은 2절에 설명되어 있는 것 곧 하나님이 그 주권적 의지에 따라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언약 백성이 출현하게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용어가 포함된 문장과 2절 상반절은 공히 ‘생각하여 보라’로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합비투 엘 아브라함 아비켐 웨엘 사라 테홀렐켐 키 에하드 케라티우 와아바르케후 웨아르베후

개역개정,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새번역,2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고, 너희를 낳아 준 사라를 생각하여 보아라. “내가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에는 자식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은혜를 내려서, 그 자손을 수없이 많게 하였다.”

우리말성경,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바라보라. 내가 그를 불렀을 때 그는 혼자였지만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서 그 자손을 많게 했다.

가톨릭성경,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우러러보아라. 내가 그를 부를 때 그는 혼자였으나 나는 그에게 복을 내려 그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였다.

영어NIV,2 look to Abraham, your father, and to Sarah, who gave you birth. When I called him he was but one, and I blessed him and made him many.

영어NASB,2 “Look to Abraham your father, And to Sarah who gave birth to you in pain; When he was one I called him, Then I blessed him and multiplied him.”

영어MSG,2 Yes, ponder Abraham, your father, and Sarah, who bore you. Think of it! One solitary man when I called him, but once I blessed him, he multiplied.

영어NRSV,2 Look to Abraham your father and to Sarah who bore you; for he was but one when I called him, but I blessed him and made him many.

헬라어구약Septuagint,2 εμβλεψατε εις αβρααμ τον πατερα υμων και εις σαρραν την ωδινουσαν υμας οτι εις ην και εκαλεσα αυτον και ευλογησα αυτον και ηγαπησα αυτον και επληθυνα αυτον

라틴어Vulgate,2 adtendite ad Abraham patrem vestrum et ad Sarram quae peperit vos quia unum vocavi eum et benedixi ei et multiplicavi eum

히브리어구약BHS,2 הַבִּיטוּ אֶל־אַבְרָהָם אֲבִיכֶם וְאֶל־שָׂרָה תְּחֹולֶלְכֶם כִּי־אֶחָד קְרָאתִיו וַאֲבָרְכֵהוּ וְאַרְבֵּהוּ׃ ס

성 경: [사51: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너희 조상 … 생각하여 보라 – 저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의'(5절 참조) 설명함에 있어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되어 많은 수의 민족으로까지 불어난 이스라엘 민족을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약속을 부여하시되 인간의 안목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방법 곧 노인 사라를 통한 자손 출생을 통하여 그 약속을 이루어 나가셨고,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큰 나라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이 위로를 받은 남은 자들은 구원에 관한 절대 주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의로워질 수 있는 근거를 이 소망 위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키 니함 아도나이 치욘 니함 콜 하르보테하 와야셈 미드바라흐 케에덴 웨아르바타흐 케간 아도나이 사손 웨시므하 임마체 바흐 토다 웨콜 지메라

개역개정,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새번역,3 주님께서 시온을 위로하신다!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신다. 주님께서 그 광야를 에덴처럼 만드시고, 그 사막을 주님의 동산처럼 만드실 때에, 그 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깃들며, 감사의 찬송과 기쁜 노랫소리가 깃들 것이다.

우리말성경,3 그렇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셨다. 폐허가 된 시온의 모든 곳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분이 그 광야를 에덴처럼 만드시고 그 사막을 여호와의 동산처럼 만드셨으니 그곳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감사의 노랫소리가 그곳에 울려 퍼질 것이다.

가톨릭성경,3 주님께서는 정녕 시온을 위로하시고 그 모든 폐허를 위로하신다. 그 광야를 에덴처럼, 그 황무지를 주님의 동산처럼 만드시니 그 안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감사와 찬미 노랫소리가 깃들리라.

영어NIV,3 The LORD will surely comfort Zion and will look with compassion on all her ruins; he will make her deserts like Eden, her wastelands like the garden of the LORD. Joy and gladness will be found in her, thanksgiving and the sound of singing.

영어NASB,3 Indeed, the LORD will comfort Zion; He will comfort all her waste places. And her wilderness He will make like Eden, And her desert like the garden of the LORD; Joy and gladness will be found in her, Thanksgiving and sound of a melody.

영어MSG,3 Likewise I, GOD, will comfort Zion, comfort all her mounds of ruins. I’ll transform her dead ground into Eden, her moonscape into the garden of GOD, A place filled with exuberance and laughter, thankful voices and melodic songs.

영어NRSV,3 For the LORD will comfort Zion; he will comfort all her waste places, and will make her wilderness like Eden, her desert like the garden of the LORD; joy and gladness will be found in her, thanksgiving and the voice of song.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σε νυν παρακαλεσω σιων και παρεκαλεσα παντα τα ερημα αυτης και θησω τα ερημα αυτης ως παραδεισον κυριου ευφροσυνην και αγαλλιαμα ευρησουσιν εν αυτη εξομολογησιν και φωνην αινεσεως

라틴어Vulgate,3 consolabitur ergo Dominus et Sion consolabitur omnes ruinas eius et ponet desertum eius quasi delicias et solitudinem eius quasi hortum Domini gaudium et laetitia invenietur in ea gratiarum actio et vox laudis

히브리어구약BHS,3 כִּי־נִחַם יְהוָה צִיֹּון נִחַם כָּל־חָרְבֹתֶיהָ וַיָּשֶׂם מִדְבָּרָהּ כְּעֵדֶן וְעַרְבָתָהּ כְּגַן־יְהוָה שָׂשֹׂון וְשִׂמְחָה יִמָּצֵא בָהּ תֹּודָה וְקֹול זִמְרָה׃ ס

성 경: [사51: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그 광야로 에덴 같고 – 여기 ‘에덴’은 하나님이 인간의 거주지로 정하셨던 최초의 장소인 에덴 동산을 가리키는데(창 2:8,9), 구약에서 이 호칭은 이상적인 목초지 혹은 농경지의 상징이 되고 있다(창 13:10;겔 31:8,9). 그러나 겔 36:35과 마찬가지로 본 호칭은 미래에 다시 회복될 처소를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본절은 종말론적 관점에서도 이해 가능하다. 1차적으로 본절은 혼자였던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만드셨던 하나님이 포로지의 남은 자들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재건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고 그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완료형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는 ‘에덴’이란 호칭으로 미루어 볼 때, 본절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의 완성 그리고 더 나아가 메시야의 재림 때에 있을 완전한 구속 사역의 성취에 따른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까지 그 시야를 확산시키고 있다 하겠다.

하크쉬부 엘라이 암미 우레움미 엘라이 하아지누 키 토라 메이티 테체 우미쉬파티 레오르 암민 아르기아

개역개정,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새번역,4 나의 백성아, 나에게 귀를 기울여라. 나의 백성아, 내 말을 귀담아 들어라. 법은 나에게로부터 비롯될 것이며, 나의 의는 만백성의 빛이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4 내 백성아, 내게 주목하라. 내 백성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가르침이 내게서 나오고 내 공의가 뭇 백성의 빛이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4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어라. 내 겨레야, 내게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서 가르침이 나가리라. 나의 공정을 내가 민족의 빛으로 만들리라.

영어NIV,4 “Listen to me, my people; hear me, my nation: The law will go out from me; my justice will become a light to the nations.

영어NASB,4 “Pay attention to Me, O My people; And give ear to Me, O My nation; For a law will go forth from Me, And I will set My justice for a light of the peoples.

영어MSG,4 “Pay attention, my people. Listen to me, nations. Revelation flows from me. My decisions light up the world.

영어NRSV,4 Listen to me, my people, and give heed to me, my nation; for a teaching will go out from me, and my justice for a light to the people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ακουσατε μου ακουσατε λαος μου και οι βασιλεις προς με ενωτισασθε οτι νομος παρ’ εμου εξελευσεται και η κρισις μου εις φως εθνων

라틴어Vulgate,4 adtendite ad me populus meus et tribus mea me audite quia lex a me exiet et iudicium meum in lucem populorum requiescet

히브리어구약BHS,4 הַקְשִׁיבוּ אֵלַי עַמִּי וּלְאוּמִּי אֵלַי הַאֲזִינוּ כִּי תֹורָה מֵאִתִּי תֵצֵא וּמִשְׁפָּטִי לְאֹור עַמִּים אַרְגִּיעַ׃

성 경: [사51:4]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내 백성 … 내 나라 – 각각 ‘암미'(*), ‘레움미'(*)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두 용어를 각각 ‘민족들’이란 뜻의 ‘아밈'(*)과 ‘나라들’을 뜻하는 ‘레우밈'(*)으로 바꿈으로써 본 구절의 청중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한 만민들인 것으로 보려 하나 ‘만민’에 관한 언급이 따로 나오므로 원문 수정까지 해가면서 굳이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 원문에 입각한 직역은 ‘나의 심판은 만민의 빛이 되리라’이다. 문맥상 본절의 ‘율법’과 본문의 ‘심판’은 동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본절과 5절 내용은 여호와의 날에 되어질 상황을 그린 2:3,4과, 이방에 공의를 베푸실 ‘종’의 노래에 해당하는 42:1 내용과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본문의 예언 역시 바벨론 포로 귀환뿐 아니라 메시야 시대에 되어질 일들을 통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 하겠다.

카롭 치드키 야차 이쉐이 우제로아이 암밈 이쉬포트 엘라이 이임 예카우우 웨엘 제로이 예야헤룬

개역개정,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새번역,5 나의 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나의 구원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가 능력으로 뭇 백성을 재판하겠다. 섬들이 나를 우러러 바라보며, 나의 능력을 의지할 것이다.

우리말성경,5 내 정의는 가까이 왔고 내 구원은 이미 나타났다. 내가 내 팔로 뭇 백성을 심판하겠다. 그러면 섬들이 나를 갈망하고 내 팔에 희망을 둘 것이다.

가톨릭성경,5 내가 재빠르게 나의 정의를 가까이 가져오리니 나의 구원이 나아가고 나의 팔이 민족들을 심판하리라. 섬들이 나를 고대하며 나의 팔에 희망을 걸리라.

영어NIV,5 My righteousness draws near speedily, my salvation is on the way, and my arm will bring justice to the nations. The islands will look to me and wait in hope for my arm.

영어NASB,5 “My righteousness is near, My salvation has gone forth, And My arms will judge the peoples; The coastlands will wait for Me, And for My arm they will wait expectantly.

영어MSG,5 My deliverance arrives on the run, my salvation right on time. I’ll bring justice to the peoples. Even faraway islands will look to me and take hope in my saving power.

영어NRSV,5 I will bring near my deliverance swiftly, my salvation has gone out and my arms will rule the peoples; the coastlands wait for me, and for my arm they hope.

헬라어구약Septuagint,5 εγγιζει ταχυ η δικαιοσυνη μου και εξελευσεται ως φως το σωτηριον μου και εις τον βραχιονα μου εθνη ελπιουσιν εμε νησοι υπομενουσιν και εις τον βραχιονα μου ελπιουσιν

라틴어Vulgate,5 prope est iustus meus egressus est salvator meus et brachia mea populos iudicabunt me insulae expectabunt et brachium meum sustinebunt

히브리어구약BHS,5 קָרֹוב צִדְקִי יָצָא יִשְׁעִי וּזְרֹעַי עַמִּים יִשְׁפֹּטוּ אֵלַי אִיִּים יְקַוּוּ וְאֶל־זְרֹעִי יְיַחֵלוּן׃

성 경: [사51:5]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 계속해서 복합 성취를 겨냥한 예언이 나오며, 특히 종말론적 색채가 짙은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와 이스라엘의 죄의 해결을 동시에 만족시킬 대속주이신 메이야의 대속 사역을 암시한다. 한편 메시야의 대속 사역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의 택한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 팔 –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하며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26)을 가리킨다.

세우 라솨마임 에네켐 웨합비투 엘 하아레츠 밑타하트 키 솨마임 케아솬 니멜라후 웨하아레츠 캅베게드 티블레 웨요쉬베하 케모 켄 예무툰 위슈아티 레올람 티흐예 웨치드카티 로 테하트

개역개정,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새번역,6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아라. 그리고 땅을 내려다보아라. 하늘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땅은 옷처럼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하루살이 같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 구원은 영원하며, 내 의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6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 아래로 땅을 내려다보라. 하늘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땅은 옷처럼 해어져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살이처럼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 구원은 영원하고 내 정의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성경,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어라. 아래로 땅을 바라보아라. 하늘은 연기처럼 스러지고 땅은 옷처럼 해지며 그 주민들은 모기 떼처럼 죽어 가리라. 그러나 나의 구원은 영원하고 나의 의로움은 꺾이지 않으리라.

영어NIV,6 Lift up your eyes to the heavens, look at the earth beneath; the heavens will vanish like smoke, the earth will wear out like a garment and its inhabitants die like flies. But my salvation will last forever, my righteousness will never fail.

영어NASB,6 “Lift up your eyes to the sky, Then look to the earth beneath; For the sky will vanish like smoke, And the earth will wear out like a garment, And its inhabitants will die in like manner, But My salvation shall be forever, And My righteousness shall not wane.

영어MSG,6 Look up at the skies, ponder the earth under your feet. The skies will fade out like smoke, the earth will wear out like work pants, and the people will die off like flies. But my salvation will last forever, my setting-things-right will never be obsolete.

영어NRSV,6 Lift up your eyes to the heavens, and look at the earth beneath; for the heavens will vanish like smoke, the earth will wear out like a garment, and those who live on it will die like gnats; but my salvation will be forever, and my deliverance will never be ended.

헬라어구약Septuagint,6 αρατε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τους οφθαλμους υμων και εμβλεψατε εις την γην κατω οτι ο ουρανος ως καπνος εστερεωθη η δε γη ως ιματιον παλαιωθησεται οι δε κατοικουντες την γην ωσπερ ταυτα αποθανουνται το δε σωτηριον μου εις τον αιωνα εσται η δε δικαιοσυνη μου ου μη εκλιπη

라틴어Vulgate,6 levate in caelum oculos vestros et videte sub terra deorsum quia caeli sicut fumus liquescent et terra sicut vestimentum adteretur et habitatores eius sicut haec interibunt salus autem mea in sempiternum erit et iustitia mea non deficiet

히브리어구약BHS,6 שְׂאוּ לַשָּׁמַיִם עֵינֵיכֶם וְהַבִּיטוּ אֶל־הָאָרֶץ מִתַּחַת כִּי־שָׁמַיִם כֶּעָשָׁן נִמְלָחוּ וְהָאָרֶץ כַּבֶּגֶד תִּבְלֶה וְיֹשְׁבֶיהָ כְּמֹו־כֵן יְמוּתוּן וִישׁוּעָתִי לְעֹולָם תִּהְיֶה וְצִדְקָתִי לֹא תֵחָת׃ ס

성 경: [사51:6]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하늘이 연기같이 … 죽으려니와 – 만물의 일시성,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묘사이지만 종말에 되어질 어떤 징조에 대한 암시가 정확히 담겨 있지 않다고 볼 수도 없는 구절이다. 이 같은 묘사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앞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통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의 선택받은 자의 구원은 결국 성취되고 말 분명한 사실이다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시 102:26;히 1:11,12).

쉬메우 엘라이 요데에 체뎈 암 토라티 벨립밤 알 티레우 헬파트 에노쉬 우미기두포탐 알 테핱투

개역개정,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새번역,7 의를 아는 사람들아, 마음 속에 내 율법을 간직한 백성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비방하는 것에 놀라지 말아라.

우리말성경,7 정의를 아는 사람들아, 내 가르침을 마음에 두는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사람의 잔소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욕설에 겁먹지 말라.

가톨릭성경,7 내 말을 들어라, 의로움을 아는 이들아 내 가르침을 마음속에 간직한 백성아. 사람들의 모욕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악담에 낙심하지 마라. 그들을 옷인 양 좀이 먹어 버리고

영어NIV,7 “Hear me, you who know what is right, you people who have my law in your hearts: Do not fear the reproach of men or be terrified by their insults.

영어NASB,7 “Listen to Me, you who know righteousness, A people in whose heart is My law; Do not fear the reproach of man, Neither be dismayed at their revilings.

영어MSG,7 “Listen now, you who know right from wrong, you who hold my teaching inside you: Pay no attention to insults, and when mocked don’t let it get you down.

영어NRSV,7 Listen to me, you who know righteousness, you people who have my teaching in your hearts; do not fear the reproach of others, and do not be dismayed when they revile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7 ακουσατε μου οι ειδοτες κρισιν λαος μου ου ο νομος μου εν τη καρδια υμων μη φοβεισθε ονειδισμον ανθρωπων και τω φαυλισμω αυτων μη ηττασθε

라틴어Vulgate,7 audite me qui scitis iustum populus lex mea in corde eorum nolite timere obprobrium hominum et blasphemias eorum ne metuatis

히브리어구약BHS,7 שִׁמְעוּ אֵלַי יֹדְעֵי צֶדֶק עַם תֹּורָתִי בְלִבָּם אַל־תִּירְאוּ חֶרְפַּת אֱנֹושׁ וּמִגִּדֻּפֹתָם אַל־תֵּחָתּוּ׃

성 경: [사51:7]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의를 아는 자들 …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 –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사모하여 율법대로 살아가고자 힘쓰는 이들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뜻한다. 이제 바벨론 포로 사건을 놓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가 어떻게 구원받겠느냐’라고 조롱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위기 때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성을 확신하는 이들은 결코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마 10:28).

키 캅베게드 요클렘 아쉬 웨캋체메르 요클렘 사스 웨치드카티 레올람 티흐예 위슈아티 레도르 도림

개역개정,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새번역,8 좀이 옷을 먹듯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벌레가 양털을 먹듯이 그들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는 영원하며,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칠 것이다.

우리말성경,8 좀이 그들을 옷처럼 먹고 벌레가 그들을 양털처럼 먹을 것이지만 내 의는 영원하고 내 구원은 대대에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8 그들을 양털인 양 벌레가 먹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로움은 영원하고 나의 구원은 대대에 미치리라.

영어NIV,8 For the moth will eat them up like a garment; the worm will devour them like wool. But my righteousness will last forever, my salvation through all generations.”

영어NASB,8 “For the moth will eat them like a garment, And the grub will eat them like wool. But My righteousness shall be forever, And My salvation to all generations.”

영어MSG,8 Those insults and mockeries are moth-eaten, from brains that are termite-ridden, But my setting-things-right lasts, my salvation goes on and on and on.”

영어NRSV,8 For the moth will eat them up like a garment, and the worm will eat them like wool; but my deliverance will be forever, and my salvation to all generations.

헬라어구약Septuagint,8 ωσπερ γαρ ιματιον βρωθησεται υπο χρονου και ως ερια βρωθησεται υπο σητος η δε δικαιοσυνη μου εις τον αιωνα εσται το δε σωτηριον μου εις γενεας γενεων

라틴어Vulgate,8 sicut enim vestimentum sic comedet eos vermis et sicut lanam sic devorabit eos tinea salus autem mea in sempiternum erit et iustitia mea in generationes generationum

히브리어구약BHS,8 כִּי כַבֶּגֶד יֹאכְלֵם עָשׁ וְכַצֶּמֶר יֹאכְלֵם סָס וְצִדְקָתִי לְעֹולָם תִּהְיֶה וִישׁוּעָתִי לְדֹור דֹּורִים׃ ס

성 경: [사51:8]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 좀이 의복을 갉아먹어버리듯이 무기력하게 멸망당하고 말 악인들의 허망함과 유약함을 나타낸다(Fausset). 이처럼 유약한 인간이라면 그가 내뱉는 조롱조의 말은 생명력도 없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하나님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해(害)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며 따라서 그분에게서 나온 말씀, 구원의 계시는 생명력이 있다.

우리 우리 리베쉬 오즈 제로아 아도나이 우리 키메 케뎀 도로트 올라밈 할로 아트 히 함마흐체베트 라합 메홀렐렡 탄닌

개역개정,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새번역,9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힘으로 무장하십시오, 주님의 팔이여! 오래 전 옛날처럼 깨어나십시오! ㉠라합을 토막 내시고 용을 찌르시던 바로 그 팔이 아니십니까? / ㉠전설적인 바다 괴물, 혼돈과 악의 세력을 상징함. 때로는 이집트의 상징

우리말성경,9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힘으로 무장하십시오, 여호와의 팔이여! 옛날 옛적에 그랬던 것처럼 깨어나십시오! 라합을 갈기갈기 찢고 바다 괴물을 찌르신 분이 주가 아니십니까?

가톨릭성경,9 깨어나소서, 깨어나소서, 힘을 입으소서, 주님의 팔이시여. 옛날처럼, 오래전 그 시절처럼 깨어나소서. 라합을 베어 쓰러뜨리시고 용을 꿰찌르신 이가 당신이 아니십니까?

영어NIV,9 Awake, awake! Clothe yourself with strength, O arm of the LORD; awake, as in days gone by, as in generations of old. Was it not you who cut Rahab to pieces, who pierced that monster through?

영어NASB,9 Awake, awake, put on strength, O arm of the LORD; Awake as in the days of old, the generations of long ago. Was it not You who cut Rahab in pieces, Who pierced the dragon?

영어MSG,9 Wake up, wake up, flex your muscles, GOD! Wake up as in the old days, in the long ago. Didn’t you once make mincemeat of Rahab, dispatch the old chaos-dragon?

영어NRSV,9 Awake, awake, put on strength, O arm of the LORD! Awake, as in days of old, the generations of long ago! Was it not you who cut Rahab in pieces, who pierced the dragon?

헬라어구약Septuagint,9 εξεγειρου εξεγειρου ιερουσαλημ και ενδυσαι την ισχυν του βραχιονος σου εξεγειρου ως εν αρχη ημερας ως γενεα αιωνος ου συ ει

라틴어Vulgate,9 consurge consurge induere fortitudinem brachium Domini consurge sicut in diebus antiquis in generationibus saeculorum numquid non tu percussisti superbum vulnerasti draconem

히브리어구약BHS,9 עוּרִי עוּרִי לִבְשִׁי־עֹז זְרֹועַ יְהוָה עוּרִי כִּימֵי קֶדֶם דֹּרֹות עֹולָמִים הֲלֹוא אַתְּ־הִיא הַמַּחְצֶבֶת רַהַב מְחֹולֶלֶת תַּנִּין׃

성 경: [사51:9]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 깨소서 깨소서 – 하나님의 과거의 전능 사역을 회고하며 아뢰는 이 호소는 ‘공동체적 애가'(corporate lamentation)의 특성을 보여준다(시 44:1-3, 23;80:2). 하나님의 구원을 재촉하는 듯한 이 호소는 하나님의 무관심에 대해 원망하는 말이 아니라 긴박한 현실 상황으로부터 한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에서 나온 말이다.

󰃨 라합 – ‘애굽’의 시적인 이름이다. 이미 본서 저자가 사용한 바 있다 :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30:7).

󰃨 용(*, 탄닌) – 문자적인 뜻은 ‘악어’인데 악어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애굽 정복 뒤에 애굽의 동전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확인하였듯이 애굽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특히 그 왕 바로를 가리킨다(27:1;시 74:13,14;겔 32:2). 선지자는 여기서 기적적인 출애굽 사건 중 바로의 항복기사를 회상하고 있다.

할로 아트 히 함마하레베트 얌 메 테홈 랍바 핫사마 마아맠케 얌 데렠 라아볼 게울림

개역개정,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새번역,10 바다와 깊고 넓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의 깊은 곳을 길로 만드셔서, 속량받은 사람들을 건너가게 하신, 바로 그 팔이 아니십니까?

우리말성경,10 바다를, 깊고도 깊은 물을 완전히 말리시고 바다 속 깊이 길을 만드셔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건너가게 하신 분이 주가 아니십니까?

가톨릭성경,10 바다를, 그 큰 심연의 물을 말리신 이가 당신이 아니십니까? 구원받은 이들이 건너가도록 당신께서 깊은 바다를 길로 만드셨습니다.

영어NIV,10 Was it not you who dried up the sea, the waters of the great deep, who made a road in the depths of the sea so that the redeemed might cross over?

영어NASB,10 Was it not You who dried up the sea, The waters of the great deep; Who made the depths of the sea a pathway For the redeemed to cross over?

영어MSG,10 And didn’t you once dry up the sea, the powerful waters of the deep, And then made the bottom of the ocean a road for the redeemed to walk across?

영어NRSV,10 Was it not you who dried up the sea, the waters of the great deep; who made the depths of the sea a way for the redeemed to cross over?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η ερημουσα θαλασσαν υδωρ αβυσσου πληθος η θεισα τα βαθη της θαλασσης οδον διαβασεως ρυομενοις

라틴어Vulgate,10 numquid non tu siccasti mare aquam abyssi vehementis qui posuisti profundum maris viam ut transirent liberati

히브리어구약BHS,10 הֲלֹוא אַתְּ־הִיא הַמַּחֲרֶבֶת יָם מֵי תְּהֹום רַבָּה הַשָּׂמָה מַעֲמַקֵּי־יָם דֶּרֶךְ לַעֲבֹר גְּאוּלִים׃

성 경: [사51:10]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 바다를 … 주가 아니시니이까 – 여기서 ‘바다’는 홍해를 가리킨다(43:6;출 14:21). ‘당신은 홍해 기적 사건을 일으키신 바로 그 전능자가 아니십니까?’라고 묻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의 질문이다.

우페두예 아도나이 예슈분 우바우 치욘 베린나 웨시므하트 올람 알 로솸 사손 웨시므하 얏시군 나수 야곤 와아나하

개역개정,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새번역,11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입니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1 여호와께서 구해 내신 사람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이 노래하며 시온으로 올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에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고 슬픔과 한숨이 달아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1 주님께서 구해 내신 이들이 돌아오리이다. 환호 소리와 함께 시온으로 들어서리이다.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의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이다.

영어NIV,11 The ransomed of the LORD will return. They will enter Zion with singing; everlasting joy will crown their heads. Gladness and joy will overtake them, and sorrow and sighing will flee away.

영어NASB,11 So the ransomed of the LORD will return, And come with joyful shouting to Zion; And everlasting joy will be on their heads. They will obtain gladness and joy, And sorrow and sighing will flee away.

영어MSG,11 In the same way GOD’s ransomed will come back, come back to Zion cheering, shouting, Joy eternal wreathing their heads, exuberant ecstasies transporting them– and not a sign of moans or groans.

영어NRSV,11 So the ransomed of the LORD shall return, and come to Zion with singing; everlasting joy shall be upon their heads; they shall obtain joy and gladness, and sorrow and sighing shall flee away.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λελυτρωμενοις υπο γαρ κυριου αποστραφησονται και ηξουσιν εις σιων μετ’ ευφροσυνης και αγαλλιαματος αιωνιου επι γαρ της κεφαλης αυτων αγαλλιασις και αινεσις και ευφροσυνη καταλημψεται αυτους απεδρα οδυνη και λυπη και στεναγμος

라틴어Vulgate,11 et nunc qui redempti sunt a Domino revertentur et venient in Sion laudantes et laetitia sempiterna super capita eorum gaudium et laetitiam tenebunt fugiet dolor et gemitus

히브리어구약BHS,11 וּפְדוּיֵי יְהוָה יְשׁוּבוּן וּבָאוּ צִיֹּון בְּרִנָּה וְשִׂמְחַת עֹולָם עַל־רֹאשָׁם שָׂשֹׂון וְשִׂמְחָה יַשִּׂיגוּן נָסוּ יָגֹון וַאֲנָחָה׃ ס

성 경: [사51:1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 1차적으로는 넓게 펼쳐진 광야를 지나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귀환민들에게 찬양과 감격이 가득할 것을 서술한 것이다. 한편 본절이 9,10절의 애가적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하여 본절의 화자(話者)를 하나님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으나, 원문상 9-11절과 12-16절은 서술 시점 및 사용된 인칭에 있어 분명한 구별성을 보이고 있다.

아노키 아노키 후 메나헤므켐 미 아트 왙티르이 메에노쉬 야무트 우밉벤 아담 하치르 인나텐

개역개정,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새번역,12 “너희를 위로하는 이는 나, 바로 내가 아니냐? 그런데 죽을 인간을 두려워하며, 한갓 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너는 누구냐?”

우리말성경,12 “나, 내가 너희를 위로하는 이다. 너는 누구기에 죽을 운명의 사람을 두려워하고 풀 같은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가톨릭성경,12 내가, 바로 내가 너희의 위로자이다. 그런데 죽을 인생을 두려워하고 풀 같은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너는 누구냐?

영어NIV,12 “I, even I, am he who comforts you. Who are you that you fear mortal men, the sons of men, who are but grass,

영어NASB,12 “I, even I, am He who comforts you. Who are you that you are afraid of man who dies, And of the son of man who is made like grass;

영어MSG,12 “I, I’m the One comforting you. What are you afraid of–or who? Some man or woman who’ll soon be dead? Some poor wretch destined for dust?

영어NRSV,12 I, I am he who comforts you; why then are you afraid of a mere mortal who must die, a human being who fades like grass?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εγω ειμι εγω ειμι ο παρακαλων σε γνωθι τινα ευλαβηθεισα εφοβηθης απο ανθρωπου θνητου και απο υιου ανθρωπου οι ωσει χορτος εξηρανθησαν

라틴어Vulgate,12 ego ego ipse consolabor vos quis tu ut timeres ab homine mortali et a filio hominis qui quasi faenum ita arescet

히브리어구약BHS,12 אָנֹכִי אָנֹכִי הוּא מְנַחֶםְכֶם מִי־אַתְּ וַתִּירְאִי מֵאֱנֹושׁ יָמוּת וּמִבֶּן־אָדָם חָצִיר יִנָּתֵן׃

성 경: [사51:1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나여늘 나여늘(*, 아노키 아노키) – 보기 드물게, ‘아노키’가 두 번 사용되었는데 참위로자, 구원자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반복되는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그의 백성에 대한 답답한 심정의 표출이기도 하다.

와티쉬카흐 아도나이 오세카 노테 솨마임 웨요세드 아레츠 왙테파헤드 타미드 콜 하욤 미페네 하마트 함메치크 카아쉘 코넨 레하쉬히트 웨아예 하마트 함메치크

개역개정,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새번역,13 너희는 잊었다. 너희를 지으신 하나님, 하늘을 펴시고 땅을 세우신 주님을 잊었다. 압박자들이 너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 해서, 압박자들의 그 분노가 두려워서, 너희는 날마다 떨고 있다. 그러나 압박자들의 분노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말성경,13 너는 너를 지으신 여호와를 잊어버렸구나. 하늘을 펼치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신 여호와를 잊어버렸구나. 그러고는 파멸이 정해진 그 압제자의 분노 때문에 날마다 공포 속에 살고 있구나. 도대체 그 압제자의 분노가 어디에 있느냐?

가톨릭성경,13 너는 잊었다, 너를 만드신 주님을 하늘을 펼치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신 분을. 압제자가 너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였다고 너는 날마다 그의 노여움 앞에서 줄곧 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압제자의 노여움이 어디 있느냐?

영어NIV,13 that you forget the LORD your Maker, who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that you live in constant terror every day because of the wrath of the oppressor, who is bent on destruction? For where is the wrath of the oppressor?

영어NASB,13 That you have forgotten the LORD your Maker, Who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That you fear continually all day long because of the fury of the oppressor, As he makes ready to destroy? But where is the fury of the oppressor?

영어MSG,13 You’ve forgotten me, GOD, who made you, who unfurled the skies, who founded the earth. And here you are, quaking like an aspen before the tantrums of a tyrant who thinks he can kick down the world. But what will come of the tantrums?

영어NRSV,13 You have forgotten the LORD, your Maker, who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You fear continually all day long because of the fury of the oppressor, who is bent on destruction. But where is the fury of the oppressor?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επελαθου θεον τον ποιησαντα σε τον ποιησαντα τον ουρανον και θεμελιωσαντα την γην και εφοβου αει πασας τας ημερας το προσωπον του θυμου του θλιβοντος σε ον τροπον γαρ εβουλευσατο του αραι σε και νυν που ο θυμος του θλιβοντος σε

라틴어Vulgate,13 et oblitus es Domini factoris tui qui tetendit caelos et fundavit terram et formidasti iugiter tota die a facie furoris eius qui te tribulabat et paraverat ad perdendum ubi nunc est furor tribulantis

히브리어구약BHS,13 וַתִּשְׁכַּח יְהוָה עֹשֶׂךָ נֹוטֶה שָׁמַיִם וְיֹסֵד אָרֶץ וַתְּפַחֵד תָּמִיד* כָּל־הַיֹּום מִפְּנֵי חֲמַת הַמֵּצִיק כַּאֲשֶׁר כֹּוןֵן לְהַשְׁחִית וְאַיֵּה חֲמַת הַמֵּצִיק׃

성 경: [사51:1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 원문 직역은 ‘너를 멸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이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표적을 정하고 활시위를 뒤로 잡아당긴 상태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시 7:13;11:2;21:12, Maurer). 사실 이와 같은 상태 속에 있다면 두려워떨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본절은 그와 같은 상태 속에 있더라도, 우주 안에 되어지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람과 하나님 중에 누구를 더 의지할 것인가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며 날마다 부딪혀야 하는 심각한 질문이다.

미할 초에 레힢파테아흐 웨로 야무트 랏솨하트 웨로 예흐살 라흐모

개역개정,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새번역,14 갇혀 있는 포로들이 이제 곧 풀려 난다. 그들은 오래오래 살 것이며, 먹거리가 모자라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4 움츠린 죄수들이 곧 해방될 것이다. 그들은 죽어서 구덩이에 묻히지도 않고 빵이 부족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4 사슬에 묶인 이들이 곧 풀려나리니 그들은 죽지도, 구렁으로 내려가지도 않고 그들에게는 양식이 모자라지도 않으리라.

영어NIV,14 The cowering prisoners will soon be set free; they will not die in their dungeon, nor will they lack bread.

영어NASB,14 “The exile will soon be set free, and will not die in the dungeon, nor will his bread be lacking.

영어MSG,14 The victims will be released before you know it. They’re not going to die. They’re not even going to go hungry.

영어NRSV,14 The oppressed shall speedily be released; they shall not die and go down to the Pit, nor shall they lack bread.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εν γαρ τω σωζεσθαι σε ου στησεται ουδε χρονιει

라틴어Vulgate,14 cito veniet gradiens ad aperiendum et non interficiet usque ad internicionem nec deficiet panis eius

히브리어구약BHS,14 מִהַר צֹעֶה לְהִפָּתֵחַ וְלֹא־יָמוּת לַשַּׁחַת וְלֹא יֶחְסַר לַחְמֹו׃

성 경: [사51:14]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 여기 ‘결박된 포로'(*, 초에)의 문자적인 뜻은 ‘한 쪽으로 치우친 것’ 혹은 ‘기운 것’으로 담은 액체를 쏟기 위해 기울인 그릇 따위를 연상케 한다(헴 48:12). 그렇다면 이것은 포로로서 그 헐리를 구부린 모습으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회화적 표현이라 보면 적절하다. 이제 그 포로 상태에서 속히 놓인다면 본절의 시점은 포로 시대 말기 쯤이 될 것이다. 이 표현을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신약 교회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Fausset).

웨아노키 아도나이 엘로헤카 로가 하얌 와예헤무 갈라우 아도나이 체바오트 쉐모

개역개정,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새번역,15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고, 거친 파도를 일으키는 하나님이니, 나의 이름은 만군의 주다.

우리말성경,15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다. 바다를 휘저어 사나운 파도를 일으키는,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다.

가톨릭성경,15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바다를 뒤흔들어 파도를 울부짖게 하는 이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다.

영어NIV,15 For I am the LORD your God, who churns up the sea so that its waves roar–the LORD Almighty is his name.

영어NASB,15 “For I am the LORD your God, who stirs up the sea and its waves roar (the LORD of hosts is His name).

영어MSG,15 For I am GOD, your very own God, who stirs up the sea and whips up the waves, named GOD-of-the-Angel-Armies.

영어NRSV,15 For I am the LORD your God, who stirs up the sea so that its waves roar–the LORD of hosts is his name.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οτι εγω ο θεος σου ο ταρασσων την θαλασσαν και ηχων τα κυματα αυτης κυριος σαβαωθ ονομα μοι

라틴어Vulgate,15 ego autem sum Dominus Deus tuus qui conturbo mare et intumescunt fluctus eius Dominus exercituum nomen meum

히브리어구약BHS,15 וְאָנֹכִי יְהוָה אֱלֹהֶיךָ רֹגַע הַיָּם וַיֶּהֱמוּ גַּלָּיו יְהוָה צְבָאֹות שְׁמֹו׃

성 경: [사51:15]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고 흉용케 하는 자 – 원문 직역은 ‘그 물결이 뛰는 바다를 나눈 자’이다. ‘꾸짖어 뛰는 파도를 잠잠케 한 자’로 번역하는 역본도 있다. 이 같은 번역들을 종합할때 본 구절은 파도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흉용한 바다를 명령하셔서 잔잔케 하시고 둘로 나누어 그 사이에 길을 내심으로 이스라엘로 무사히 건너게 하셨던 홍해 도보 사건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와아심 데바라이 베피카 우베첼 야디 킷시티카 리네토아 솨마임 웨리소드 아레츠 웨레모르 레치욘 암미 앝타

개역개정,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새번역,16 내가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맡기고, 나의 손 그늘에 너를 숨겨 준다. 나는 하늘을 폈으며, 땅의 기초를 놓았고, 시온에게 ‘너는 나의 백성’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말성경,16 나는 네 입에 내 말을 담았고 내 손 그림자로 너를 덮었다. 하늘을 펼치고 땅의 기초를 놓은 내가 시온에게 말한다. ‘너는 내 백성이다.’”

가톨릭성경,16 나는 네 입에 내 말을 담아 주고 내 손 그늘에 너를 숨겨 준다. 나는 하늘을 심고 땅의 기초를 놓으며 시온에게 말한다. ” 너는 나의 백성이다.”

영어NIV,16 I have put my words in your mouth and covered you with the shadow of my hand–I who set the heavens in place, who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and who say to Zion, ‘You are my people.'”

영어NASB,16 “And I have put My words in your mouth, and have covered you with the shadow of My hand, to establish the heavens, to found the earth, and to say to Zion, ‘You are My people.'”

영어MSG,16 I teach you how to talk, word by word, and personally watch over you, Even while I’m unfurling the skies, setting earth on solid foundations, and greeting Zion: ‘Welcome, my people!'”

영어NRSV,16 I have put my words in your mouth, and hidden you in the shadow of my hand, stretching out the heavens and laying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and saying to Zion, “You are my people.”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θησω τους λογους μου εις το στομα σου και υπο την σκιαν της χειρος μου σκεπασω σε εν η εστησα τον ουρανον και εθεμελιωσα την γην και ερει σιων λαος μου ει συ

라틴어Vulgate,16 posui verba mea in ore tuo et in umbra manus meae protexi te ut plantes caelos et fundes terram et dicas ad Sion populus meus es tu

히브리어구약BHS,16 וָאָשִׂים דְּבָרַי בְּפִיךָ וּבְצֵל יָדִי כִּסִּיתִיךָ לִנְטֹעַ שָׁמַיִם וְלִיסֹד אָרֶץ וְלֵאמֹר לְצִיֹּון עַמִּי־אָתָּה׃ ס

성 경: [사51:16]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 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본문이 세 번째 종의 노래를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할 때(49:2), 이는 본서에서 줄곧 암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을 통한 신기원적인 구원 사역을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다(49:2;50:4,5;59:21;신 18:18;요 3:34, G.W. Grogan).

히테오르리 히테오르리 쿠미 예루솰람 아쉘 솨티트 미야드 아도나이 엩 코스 하마토 엩 쿱바아트 코스 핱타르엘라 솨티트 마치트

개역개정,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새번역,17 깨어라, 깨어라, 일어나거라, 예루살렘아! 너, 주님의 손에서 그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예루살렘아! 비틀거리게 하는 잔을, 네가 바닥까지 다 들이마셨다.

우리말성경,17 깨어나거라. 깨어나거라! 너, 여호와의 손에서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예루살렘아, 일어나거라! 너는 사람을 비틀거리게 하는 술잔을 모두 비워 버렸구나.

가톨릭성경,17 깨어라, 깨어라 일어나라, 예루살렘아. 주님의 손에서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너, 비틀거리게 하는 술잔을 바닥까지 마신 너.

영어NIV,17 Awake, awake! Rise up, O Jerusalem, you who have drunk from the hand of the LORD the cup of his wrath, you who have drained to its dregs the goblet that makes men stagger.

영어NASB,17 Rouse yourself! Rouse yourself! Arise, O Jerusalem, You who have drunk from the Lord’s hand the cup of His anger; The chalice of reeling you have drained to the dregs.

영어MSG,17 So wake up! Rub the sleep from your eyes! Up on your feet, Jerusalem! You’ve drunk the cup GOD handed you, the strong drink of his anger. You drank it down to the last drop, staggered and collapsed, dead-drunk.

영어NRSV,17 Rouse yourself, rouse yourself! Stand up, O Jerusalem, you who have drunk at the hand of the LORD the cup of his wrath, who have drunk to the dregs the bowl of staggering.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εξεγειρου εξεγειρου αναστηθι ιερουσαλημ η πιουσα το ποτηριον του θυμου εκ χειρος κυριου το ποτηριον γαρ της πτωσεως το κονδυ του θυμου εξεπιες και εξεκενωσας

라틴어Vulgate,17 elevare elevare consurge Hierusalem quae bibisti de manu Domini calicem irae eius usque ad fundum calicis soporis bibisti et epotasti usque ad feces

히브리어구약BHS,17 הִתְעֹורְרִי הִתְעֹורְרִי קוּמִי יְרוּשָׁלִַם אֲשֶׁר שָׁתִית מִיַּד יְהוָה אֶת־כֹּוס חֲמָתֹו אֶת־קֻבַּעַת כֹּוס הַתַּרְעֵלָה שָׁתִית מָצִית׃

성 경: [사51:17]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 – 당시 바벨론의 포로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분노의 잔을 마신 자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담긴 잔을 마신 자는 전적으로 파멸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비유는 그리스도에 대속적 죽음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바 있다(막 10:38). 한편 9절에서 사용된 ‘히트오레리'(*) 곧 ‘깰지어다’가 여기서도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1차적으로 진정 깨어나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될 것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엔 메나헬 라흐 미콜 바님 얄레다 웨엔 마하지크 베야다흐 미콜 바님 긷델라

개역개정,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네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새번역,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가운데 너를 인도하여 줄 아들이 없을 것이며, 네가 기른 모든 아들 가운데 너의 손을 이끌어 줄 아들이 없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8 자기가 낳은 모든 아들 가운데 저 여자를 인도할 아들이 없구나. 자기가 키운 모든 아들 가운데 저 여자의 손을 잡아 줄 아들이 없구나.

가톨릭성경,18 제가 낳은 모든 자식들 가운데 저를 인도해 줄 자 하나도 없고 제가 키운 모든 자식들 가운데 손을 붙잡아 주는 자 하나도 없는 신세.

영어NIV,18 Of all the sons she bore there was none to guide her; of all the sons she reared there was none to take her by the hand.

영어NASB,18 There is none to guide her among all the sons she has borne; Nor is there one to take her by the hand among all the sons she has reared.

영어MSG,18 And nobody to help you home, no one among your friends or children to take you by the hand and put you in bed.

영어NRSV,18 There is no one to guide her among all the children she has borne; there is no one to take her by the hand among all the children she has brought up.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ουκ ην ο παρακαλων σε απο παντων των τεκνων σου ων ετεκες και ουκ ην ο αντιλαμβανομενος της χειρος σου ουδε απο παντων των υιων σου ων υψωσας

라틴어Vulgate,18 non est qui sustentet eam ex omnibus filiis quos genuit et non est qui adprehendat manum eius ex omnibus filiis quos enutrivit

히브리어구약BHS,18 אֵין־מְנַהֵל לָהּ מִכָּל־בָּנִים יָלָדָה וְאֵין מַחֲזִיק בְּיָדָהּ מִכָּל־בָּנִים גִּדֵּלָה׃

성 경: [사51:18]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포로 상태의 이스라엘을 회복할 존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은 바사 왕 고레스의 개입에 의해 실현되었다. 아울러 본문은 영적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적 존재 곧 메시야를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쉬타임 헨나 코르오타이크 미 야누드 라크 핫쇼드 웨핫쉐베르 웨하라압 웨하헤렙 미 아나하메크

개역개정,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닥쳤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누가 너를 위로하랴

새번역,19 전쟁으로 땅은 황폐해지고 백성은 굶주려 죽었다. 이 두 가지 재난이 너에게 닥쳤으나, 누가 너를 두고 슬퍼하겠느냐? 폐허와 파괴, 기근과 칼뿐이니, ㉡누가 너를 위로하겠느냐? / ㉡사해 사본과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과 불가타를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겠느냐?’

우리말성경,19 이 두 가지 재앙이 네게 닥쳤지만 누가 너를 위해 함께 슬퍼해 주겠느냐? 폐허와 파멸과 굶주림과 칼뿐이니 누가 너를 위로하겠느냐?

가톨릭성경,19 이 두 가지가 너에게 닥쳐왔건만 누가 너를 동정하리오? 파멸과 파괴, 굶주림과 칼이 닥쳐왔건만 누가 너를 위로하리오?

영어NIV,19 These double calamities have come upon you–who can comfort you?–ruin and destruction, famine and sword–who can console you?

영어NASB,19 These two things have befallen you; Who will mourn for you? The devastation and destruction, famine and sword; How shall I comfort you?

영어MSG,19 You’ve been hit with a double dose of trouble –does anyone care? Assault and battery, hunger and death –will anyone comfort?

영어NRSV,19 These two things have befallen you–who will grieve with you?–devastation and destruction, famine and sword–who will comfort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δυο ταυτα αντικειμενα σοι τις σοι συλλυπηθησεται πτωμα και συντριμμα λιμος και μαχαιρα τις σε παρακαλεσει

라틴어Vulgate,19 duo sunt quae occurrerunt tibi quis contristabitur super te vastitas et contritio et fames et gladius quis consolabitur te

히브리어구약BHS,19 שְׁתַּיִם הֵנָּה קֹרְאֹתַיִךְ מִי יָנוּד לָךְ הַשֹּׁד וְהַשֶּׁבֶר וְהָרָעָב וְהַחֶרֶב מִי אֲנַחֲמֵךְ׃

성 경: [사51:19]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이 두가지 일 – 정확히는 ‘이 두 가지 일들’이다. 말하자면 두 쌍, 곧 네 가지 일들을 가리키는데, 먼저 한 쌍은 땅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황폐와 멸망이며 또 다른 한 쌍은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기근과 칼, 곧 전쟁이다. 한편, 이를 내적 사건과 외적 사건으로 구분하는 견해(Aben Ezra, Kimchi), 혹은 기근으로 인한 황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멸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Clark).

바나이크 울레푸 솨케부 베로쉬 콜 후초트 케토 미케마르 하멜레임 하마트 아도나이 가아라트 엘로하이크

개역개정,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도다

새번역,20 너의 자녀들은, 주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책망을 하도 많이 받아서, 그물에 걸려 있는 영양처럼, 거리 모퉁이 모퉁이마다 쓰러져 있다.

우리말성경,20 네 아들들은 여호와의 진노와 하나님의 질책을 너무나도 많이 받아서 그물에 걸린 영양처럼 거리의 모퉁이마다 정신을 잃고 뻗어 있구나.

가톨릭성경,20 네 아들들은 주님의 노여움을, 네 하느님의 질책을 가득 입어 그물에 걸린 영양처럼 실신하여 길모퉁이마다 쓰러져 있구나.

영어NIV,20 Your sons have fainted; they lie at the head of every street, like antelope caught in a net. They are filled with the wrath of the LORD and the rebuke of your God.

영어NASB,20 Your sons have fainted, They lie helpless at the head of every street, Like an antelope in a net, Full of the wrath of the LORD, The rebuke of your God.

영어MSG,20 Your sons and daughters have passed out, strewn in the streets like stunned rabbits, Sleeping off the strong drink of GOD’s anger, the rage of your God.

영어NRSV,20 Your children have fainted, they lie at the head of every street like an antelope in a net; they are full of the wrath of the LORD, the rebuke of your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οι υιοι σου οι απορουμενοι οι καθευδοντες επ’ ακρου πασης εξοδου ως σευτλιον ημιεφθον οι πληρεις θυμου κυριου εκλελυμενοι δια κυριου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0 filii tui proiecti sunt dormierunt in capite omnium viarum sicut bestia inlaqueata pleni indignatione Domini increpatione Dei tui

히브리어구약BHS,20 בָּנַיִךְ עֻלְּפוּ שָׁכְבוּ בְּרֹאשׁ כָּל־חוּצֹות כְּתֹוא מִכְמָר הַמְלֵאִים חֲמַת־יְהוָה גַּעֲרַת אֱלֹהָיִךְ׃

성 경: [사51:20]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 여기 ‘모퉁이'(*, 로쉬)란 그 문자적인 뜻이 ‘머리’, ‘꼭대기’인데 거리의 ‘머리'(꼭대기)란 당시 한 도시의 모든 거리와 도로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성문을 가리킨다. 당시 성문은 밤이 되면 폐쇄되었는데 문 안으로 들어오고자 했던 자로서 밤이 되어 그 문이 폐쇄되면 그 문 앞에 모여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모습 곧 여럿이 성문 앞에 모여있는 모습을 저자는 그물에 걸린 영양떼에 비유하고 있다. 어쩔 도리없이 그 발이 묶인 나그네와 같이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다.

라켄 쉬메이 나 조트 아니야 우쉬쿠라트 웨로 미야인

개역개정,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새번역,21 고통받는 자야, 마치 포도주라도 마신 듯이 비틀거리는 자야, 이 말을 들어라.

우리말성경,21 그러니 이제 이 말을 들어 보아라. 포도주도 아닌 것에 취해 버린 가엾은 사람아!

가톨릭성경,21 그러니 이 말을 들어라, 너 가련한 여인아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여인아.

영어NIV,21 Therefore hear this, you afflicted one, made drunk, but not with wine.

영어NASB,21 Therefore, please hear this, you afflicted, Who are drunk, but not with wine:

영어MSG,21 Therefore listen, please, you with your splitting headaches, You who are nursing the hangovers that didn’t come from drinking wine.

영어NRSV,21 Therefore hear this, you who are wounded, who are drunk, but not with wine: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δια τουτο ακουε τεταπεινωμενη και μεθυουσα ουκ απο οινου

라틴어Vulgate,21 idcirco audi hoc paupercula et ebria non a vino

히브리어구약BHS,21 לָכֵן שִׁמְעִי־נָא זֹאת עֲנִיָּה וּשְׁכֻרַת וְלֹא מִיָּיִן׃ ס

성 경: [사51:2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 – ‘포도주 없이 취한 자’이다. 포도주 때문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으로 비틀거리고 쓰러진 이스라엘의 형편을 지적으로 표현이다(29:9;애 3:15).

코 아마르 아도나이크 아도나이 웨로하이크 야립 암모 힌네 라카흐티 미야데크 엩 코스 핱타르엘라 엩 쿱바이트 코스 하마티 로 토시피 리쉬토타흐 오드

개역개정,22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새번역,22 너의 주, 그의 백성을 지키려고 싸우는 너의 하나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손에서, 비틀거리게 하는 그 잔 곧 나의 진노의 잔을 거두었으니, 다시는 네가 그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2 네 주 여호와, 그분의 백성을 위해 싸워 주시는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가 네 손에서 비틀거리게 하는 술잔, 내 진노의 잔을 빼앗았으니 네가 다시는 그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2 너의 주인이신 주님이시며 당신 백성을 변호해 주시는 너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보라, 내가 네 손에서 비틀거리게 하는 그 술잔을 거두리니 너는 내 진노의 술잔을 다시는 마시지 않으리라.

영어NIV,22 This is what your Sovereign LORD says, your God, who defends his people: “See, I have taken out of your hand the cup that made you stagger; from that cup, the goblet of my wrath, you will never drink again.

영어NASB,22 Thus says your Lord, the LORD, even your God Who contends for His people, “Behold, I have taken out of your hand the cup of reeling; The chalice of My anger, You will never drink it again.

영어MSG,22 Your Master, your GOD, has something to say, your God has taken up his people’s case: “Look, I’ve taken back the drink that sent you reeling. No more drinking from that jug of my anger!

영어NRSV,22 Thus says your Sovereign, the LORD, your God who pleads the cause of his people: See, I have taken from your hand the cup of staggering; you shall drink no more from the bowl of my wrath.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ουτως λεγει κυριος ο θεος ο κρινων τον λαον αυτου ιδου ειληφα εκ της χειρος σου το ποτηριον της πτωσεως το κονδυ του θυμου και ου προσθηση ετι πιειν αυτο

라틴어Vulgate,22 haec dicit Dominator tuus Dominus et Deus tuus qui pugnavit pro populo suo ecce tuli de manu tua calicem soporis fundum calicis indignationis meae non adicies ut bibas illud ultra

히브리어구약BHS,22 כֹּה־אָמַר אֲדֹנַיִךְ יְהוָה וֵאלֹהַיִךְ יָרִיב עַמֹּו הִנֵּה לָקַחְתִּי מִיָּדֵךְ אֶת־כֹּוס הַתַּרְעֵלָה אֶת־קֻבַּעַת כֹּוס חֲמָתִי לֹא־תֹוסִיפִי לִשְׁתֹּותָהּ עֹוד׃

성 경: [사51:2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 문자 그대로는, 다시는 바벨론 포로와 같은 시련과 재난을 허락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후에도 로마의 침공으로 동일한 시련과 재난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제 경건한 참이스라엘 백성, 곧 남은자들은 세상에서는 시련과 재난을 겪으나 결국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결코 동일한 고통을 겪지 않고 살게 될 것이다.

웨사므티하 베야드 모가이크 아쉘 아메루 레나프쉐크 쉐히 웨나아보라 왙타시미 카아레츠 게웨크 웨카후츠 라오브림

개역개정,23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네가 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새번역,23 이제 내가 그 잔을 너를 괴롭힌 자들의 손에 쥐어 주겠다. 그들은, 바로 너에게 ‘엎드려라, 우리가 딛고 건너가겠다’ 하고 말한 자들이다. 그래서 너는 그들더러 밟고 지나가라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길을 만들고, 허리를 펴고 엎드려서 그들이 너의 등을 밟고 다니게 하였다.”

우리말성경,23 이제 내가 그 잔을 너를 괴롭히던 사람들의 손에 쥐어 주겠다. 그들은 전에 네게 이렇게 말하던 사람들이다. ‘엎드려라. 우리가 딛고 지나가겠다.’그러면 너는 등을 마치 땅바닥인양, 행인들이 다니는 길바닥인양 만들지 않았었느냐?”

가톨릭성경,23 내가 너를 괴롭히는 자들의 손에 그 술잔을 놓으리라. 그들은 너에게 ‘ 엎드려라. 우리가 딛고 지나가겠다.’ 하였고 너는 네 등을 땅바닥처럼 만들어 그들이 바닥을 밟듯 그 위를 지나가게 하였다.”

영어NIV,23 I will put it into the hands of your tormentors, who said to you, ‘Fall prostrate that we may walk over you.’ And you made your back like the ground, like a street to be walked over.”

영어NASB,23 “And I will put it into the hand of your tormentors, Who have said to you, ‘Lie down that we may walk over you.’ You have even made your back like the ground, And like the street for those who walk over it.”

영어MSG,23 I’ve passed it over to your abusers to drink, those who ordered you, ‘Down on the ground so we can walk all over you!’ And you had to do it. Flat on the ground, you were the dirt under their feet.”

영어NRSV,23 And I will put it into the hand of your tormentors, who have said to you, “Bow down, that we may walk on you”; and you have made your back like the ground and like the street for them to walk on.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και εμβαλω αυτο εις τας χειρας των αδικησαντων σε και των ταπεινωσαντων σε οι ειπαν τη ψυχη σου κυψον ινα παρελθωμεν και εθηκας ισα τη γη τα μεταφρενα σου εξω τοις παραπορευομενοις

라틴어Vulgate,23 et ponam illud in manu eorum qui te humiliaverunt et dixerunt animae tuae incurvare ut transeamus et posuisti ut terram corpus tuum et quasi viam transeuntibus

히브리어구약BHS,23 וְשַׂמְתִּיהָ בְּיַד־מֹוגַיִךְ אֲשֶׁר־אָמְרוּ לְנַפְשֵׁךְ שְׁחִי וְנַעֲבֹרָה וַתָּשִׂימִי כָאָרֶץ גֵּוֵךְ וְכַחוּץ לַעֹבְרִים׃ ס

성 경: [사51:2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그들의 앞에 … 하였느니라 –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잔혹하게 대하였던 사실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 정복자들이 문자 그대로 그 피정복 국가 왕의 목을 밟았던 관습은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수 10:24;6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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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이사야 51장 1-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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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이사야 51장 1-23절2010년 9월 12일 주일 설교설교자 : 곽노아 목사지난 주 설교에도 저에 대한 간증을 잠간 하였지만 오늘도 잠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20년 전의 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져 몸도 마음도 그야말로 만신창이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 누구 한 사람 저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아마 누가 위로를 했다 할지라도 그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마음에 여유가 내게는 없었습니다.욥의 고난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욥과 비슷한 고난 속에서 그 누구의 위로도 없는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의 위로는 가뭄에 갈라진 땅에 임하는 소낙비와 같은 위로 였습니다.하나님이 말씀으로 찾아오신 그 날 새벽부터 울었던 눈물이 몇 일 몇 날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80년 1월 8일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날 밤에 성전을 찾았는데 그 날이 금요일이었습니다. 금요 철야 때 얼마나 울었던지 새벽에 성전을 나올 때는 눈이 부어서 앞을 잘 못 볼 정도였습니다.그러한 하나님의 위로가 오늘 본문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약 15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압재 아래에서 고통 받고 있을 때 절대로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어제 뉴스에 의하면 하루에 자살자가 40명으로 증가되었다는 것입니다. 36분에 1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할 때입니다. 100명의 사람의 위로보다 하나님의 위로만 있으면 우리 마음의 상처와 아픔은 완전하게 치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첫 번째. 지난 날을 생각하여 보라.(사51:1-8) “(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악몽처럼 뼈 아팠던 지난 날을 생각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몽 갔던 날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날을 회상한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은 “의를 좇으며 하나님을 구하는 자” 라고 칭하고 계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사람에게는 반드시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때 믿음이 있는 자와 믿음이 없는 자가 구별이 됩니다.지난 시간에도 순종한 자와 불순종 한자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니 말씀에 순종하며 살지만 믿음이 없는 자는 불평, 원망하다가 낙심하고 좌절하며 살아갑니다.하나님은 택함받은 자들이 어려운 가운데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주의하라고 하십니까?첫째로 너희를 택한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1-2절)하나님은 1절에서 떠낸 반석과 파낸 구덩이라는 비유로 말씀하시다가 2절에서 반석이 아브라함이고 구덩이가 사라 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택함을 받은 자들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택하시지 아니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존재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2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혈혈 단신” 이라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열국의 아비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어느 누구도 장차 그가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유랑하는 나그네였고 더욱이 나이 들어 단산한 늙은 노부부에 불과했던 것입니다.그러나 그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가 되는 복을 약속하셨고 훗날에 그의 후손들은 말씀대로 하늘과 별과 같이 창성한 민족이 되었습니다.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을 너희가 의지하고 믿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은혜 받으신 적 있으십니까? 그 은혜 잊지 않고 있으십니까? 절대로 그 은혜 잊어서는 안됩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은혜 잊고 살고 있다면 지금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예수님은 에베소서 교회에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촛대를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교회는 첫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예수님 말씀대로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내가 어떤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았는지 잊지 마시고 생각하며 살 때 하나님의 위로가 나에게 항상 함께 하실 것입니다.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실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3절)하나님이 위로하여 주셨다는 완료형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황폐화된 예루살렘이 반드시 에덴 동산처럼 회복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3차에 의해 침략하면서 광야처럼 황폐화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에덴 동산 같은 낙원으로 만드실 것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B.C 536년부터 3차에 걸쳐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여 무너진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 다는 믿으시기 바랍니다.(마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의 말씀이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마지막 예언책 계시록의 말씀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여러분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어떤 약속을 받으셨습니까? 조금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주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 또한 하나님께 받은 바 약속이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날마다 위로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셋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4-6절)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지 말라는 것은 그 약속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70년 이라는 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은 바벨론의 우상보다도 못한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기독교인들 30%가 점쟁이 집을 찾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본문 속에 율법, 공의, 의, 구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로 비롯될 구원의 말씀인 복음입니다. 그 복음은 “만민의 빛” 으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그 복음의 내용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고 있지만 이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위로를 뿌리치고 사람들에게나 세상에서 위로를 받겠다고 고집하며 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겠다는 것입니다. 4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데 무엇으로 귀를 기울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리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주의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주의하라는 것입니다.6절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하늘의 연기같이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도 연기와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옷처럼 헤어지게 될 것이고, 하루살이 인생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의심한 불신앙의 인생의 끝은 이처럼 비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넷째로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7-8절)1절에서 메시지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 이라고 하였습니다. 7절에서도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강조하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알고 믿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훼방과 비방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특히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더욱 더 그러할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산다는 것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존경과 찬사가 진실로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믿음을 가진 자들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24:9-10)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그러므로 그런 훼방과 비방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8절의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나를 훼방하고 비방하는 세력들이 하나님께 좀처럼 벌레처럼 심판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훼방과 비방 소리를 마음에 담지 말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는데 전심 전력을 다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두 번째. 선지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사51:9-16)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12)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 양식이 핍절하지도 아니하리라 (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로 흉용케 하는 자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려 하였음이니라”이사야 선지자의 기도가 9절부터 11절까지 나오고 하나님의 응답이 12절부터 16절까지 기록되고 있습니다.이사야의 기도는 곧 이스라엘 민족들의 마음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받기를 원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합니다. 기도하지 아니하여도 하나님이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실지 다 아시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라면 반드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기도하되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뜻대로 마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선지자의 기도 후에 하나님의 응답이 나오지만 이 응답이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약 150년 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우리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가 빠르게 응답되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이사야 선지자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그 옛날에 애굽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라합을 저미시고” 는 애굽을 의미하고 있고 “용”은 애굽 바로 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0절에 나오는 바다는 그 옛날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11절에서 이사야의 기도는 확신으로 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 하나님께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을 드리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을 하실 것입니다.(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2절부터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지는데 이스라엘의 회보고간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과연 그런 능역이 있는가 였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고 싶어도 그만한 능력이 하나님께 없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대적이 어떠한 존재이며 또한 자신은 어떠한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대적자는 어떤 존재입니까? 12절에 “죽을 사람” “풀 같이 될 인자” 라는 것입니다. 대적들이 아무리 강한 자들일지라도 그들은 흙으로 돌아갈 인간이며 잠시 잠간 있다 시들어지는 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같은 세력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대적의 실체를 밝힌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실체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은혜가 없어질 때 인간은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고 세상을 의지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하나님을 의지한 만큼 세상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비율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30%라면 70%는 세상을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70%라면 세상적인 마음이 30%뿐이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적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곧 믿음으로 나에게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14절부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들에게 또 다시 약속을 하여 주십니다. “결박이 풀릴 것이며, 결코 죽지도 아니할 것이며,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먹을 양식이 없어 굶어 죽지 아니할 것” 이라는 것입니다.16절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입에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손으로 나를 보호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이러한 하나님을 창조주이시며 자연을 다스리시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49장에서도 자신의 택하신 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사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이 우리 앞에 생긴다 할지라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세 번째. 하나님의 위로(사51:17-23)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찌기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이사야 선지자는 훗날에 예루살렘의 비참함을 예언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여호야김 시대부터 바벨론에 의해 3차에 의한 공격을 받고 폐허로 변해버렸습니다. 즉 1차 공격은 B.C 606년 여호야김 때에 있었고, 2차 공격은 B.C 597년 여호야긴 때에 있었고, 3차 공격은 B.C 586년 시드기야 왕 때 있었습니다.하나님의 진노의 큰 잔을 마신 예루살렘의 모습을 3가지로 예언하고 있습니다.첫째는 18절에서 백성들을 인도하고 양육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영적 지도자의 부재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후에 바벨론은 왕족들과 귀족들과 유력한 자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간신히 포로로 잡히지 않는 자들은 애굽으로 도망쳤습니다. (렘43:4-7)오늘날도 이 땅에 영적 지도자 부재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가 없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이 민족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신구약 중간사 400년 동안에 모든 악이 세상을 점령한 것은 영적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 날에도 하나님은 14만 4천 명을 통해서 마지막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곧 두 증인이 될 것이며 그들이 계시록 11장에서 순교한 후에 세상은 적그리스도의 악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아직도 이 땅에 소망이 있는 것은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있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언제인가는 이들도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올 것입니다.둘째로 19절에 황폐와 멸망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바벨론에게 3차의 공격을 받은 예루살렘은 황폐와 멸망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이러한 예루살렘을 보고 안타까워 하십니다.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어느 누가 이 고통을 감히 위로할 자가 있겠습니까?예루살렘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으나 예루살렘이 마신 그 분노의 잔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린 것이었기에 예루살렘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던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찾아온 이 고통의 시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이 70년이라는 긴 세월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받아들여야 했습니다.그리고 그들은 더욱 하나님께 회개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역사적으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에게 이러한 고통의 시간이 마지막 날에 이 땅에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할 때 믿는 자들은 마음을 겸비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지내야 할 것입니다.역사적이 아니더라도 우리 앞에 현실적으로 어떤 고난과 환난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 고통의 시간이 길다 할지라도 인내하며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얼마 전 아침 마당에 지선양이 나왔는데 수술을 30차례 받았지만 아직도 많이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는 지선양은 천사 그 자체였습니다.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사고 이전의 삶과 지금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겠어요?”?“아니요. 절대 바꾸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귀하고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보이는 것은 힘들어 보이지만 전 어떤 누구도 겪지 못한 고난을 겪으므로 더 값진 삶을 얻었고 보이는 잠깐의 유익이 나에게 가져다 줄 수 없는 지금의 삶은 천국과 같은 삶이예요.. 전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그녀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겠지만 하나님께서 큰 고난을 통해 더 공부하고 더 큰 것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값진 삶으로 이끄셨다고 고백을 했습니다.셋째로 20절에 곤비하여 쓰러질 것이라는 것입니다.예루살렘의 곤비한 모습은 “그물에 걸린 영양”에 비유되었습니다. 사냥꾼이 설치해 놓은 그물에 걸려든 영양이 빠져나오기 위해 계속 발버둥치고 허덕이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지쳐버린 채 땅에 드러누워 숨만 헐떡거리듯이 예루살렘의 신세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예루살렘은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깨우실 것입니다. 17절을 보세요“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다 죽어가는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깨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의 말씀을 21절부터 3가지로 주고 계십니다.첫째는 들으라는 것입니다. (21절)“쉐마” 즉 “들으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0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 말씀 한 번 듣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다면 하나님 말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내 영혼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둘째는 다시는 분노의 잔을 마시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2절)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다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고난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 후에도 헬라 제국에 점령 당하고 로마 제국에 철저히 멸망하여 2천 년 동안 나라 없는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마셨습니다.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다시는 이러한 분노가 없겠다는 것이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예수를 죽이고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해도 다시는 분노의 잔을 마시지 않겠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세상 끝 날 까지 내가 나와 함께하리라” “너는 내 것이니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 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가능한 말씀이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짝하고 말씀을 떠나 사는데도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님을 깨닫기 바랍니다.셋째로 하나님은 대적자들에게 분노의 잔을 쏟아 부으 실 것입니다. (23절)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바벨론이 예루살렘보다 더 의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들이 주인인양 이스라엘 민족을 무자비하게 짓밟았습니다.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교만하게 행동한 바벨론에게 분노의 잔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세상의 조롱과 모욕을 당한다 할지라도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훼방하는 세력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의 잔을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들의 권세와 부를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손이 징계의 손이었다면 바벨론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손은 심판의 손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이후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민족이 되었습니다.세상 끝 날에도 그렇게 큰소리를 치며 세상을 쥐고 흔들었던 악한 세력들이 산채로 유황 불속에 던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계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자들에게 때로는 하나님의 분노의 잔이 임할지라도 그것은 깨닫고 돌아오기 위한 징계의 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하나님의 징계의 손이 올 때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더욱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잠3:11-12) “(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 하지 말라 (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살아계신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 속에 깊이 임재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말씀을 맺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두려워 말라” 말씀이 366번이나 기록되어져 있다고 합니다.1967년 루마니아가 공산화 될 때 소련군이 쳐들어 와서 교회를 때려 부수고, 목사들을 죽이고, 성도들을 핍박 하였는데 기독교 지도자 리챠드 윔블란트 붙잡아서 죽이려고 했지만 너무 유명한 자라 죽이지 못하고 소련으로 붙잡아가서 감옥에 18년 동안 가두어 놓았습니다.감옥에서 18년을 지내면서 성경을 읽다가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이 “두려워 말라” 는 말씀이어서 몇 번 나오나 세워보았는데 366번이었습니다.그래서 윔블란트 목사님이 하시는 말이 “하나님은 윤달까지 계산 하셨구나 하나님은 매일같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구나”윔블란트 목사님은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감옥에서 십일조를 드렸는데 드릴 수 있는 십일조가 뭐가 있겠어요.배고플 정도로 밥을 주는데 거기서 십분의 일을 떼어서 배고픈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목마를 정도로 물을 주는데 거기서 십분의 일을 떼어 목마른 자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감옥에 있던 자들이 모두 예수 믿게 되었고 그들이 성만찬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간수에게 성만찬하게 떡과 포도주를 달라고 하자 똥과 오줌을 주면서 성만찬 안하면 성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윔블란트 목사는 똥과 오줌으로 성만찬 하였는데 똥을 가지고 “이는 내 몸이니” 오줌을 가지고 “이는 내 피니”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이러한 사실을 미국에 알려져서 윔블란트 석방 운동이 일어나 모금 운동을 하여 소련에게 돈을 주고 미국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윔블란트 목사는 VOM 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이 단체는 박해받는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을 돕고 이들의 박해를 전 세계에 알리는 목적으로 세워진 초교파적인 비영리단체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담대한 믿음을 주어서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위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우리의 영혼 속에 삶 속에 충만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예수훈련원으로 초대합니다.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이사야 51장 1-23절2010년 9월 12일 주일 설교설교자 : 곽노아 목사지난 주 설교에도 저에 대한 간증을 잠간 하였지만 오늘도 잠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20년 전의 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져 몸도 마음도 그야말로 만신창이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 누구 한 사람 저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아마 누가 위로를 했다 할지라도 그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마음에 여유가 내게는 없었습니다.욥의 고난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욥과 비슷한 고난 속에서 그 누구의 위로도 없는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의 위로는 가뭄에 갈라진 땅에 임하는 소낙비와 같은 위로 였습니다.하나님이 말씀으로 찾아오신 그 날 새벽부터 울었던 눈물이 몇 일 몇 날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80년 1월 8일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날 밤에 성전을 찾았는데 그 날이 금요일이었습니다. 금요 철야 때 얼마나 울었던지 새벽에 성전을 나올 때는 눈이 부어서 앞을 잘 못 볼 정도였습니다.그러한 하나님의 위로가 오늘 본문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약 15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압재 아래에서 고통 받고 있을 때 절대로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어제 뉴스에 의하면 하루에 자살자가 40명으로 증가되었다는 것입니다. 36분에 1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할 때입니다. 100명의 사람의 위로보다 하나님의 위로만 있으면 우리 마음의 상처와 아픔은 완전하게 치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첫 번째. 지난 날을 생각하여 보라.(사51:1-8) “(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악몽처럼 뼈 아팠던 지난 날을 생각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몽 갔던 날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던 날을 회상한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를 하나님은 “의를 좇으며 하나님을 구하는 자” 라고 칭하고 계십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사람에게는 반드시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때 믿음이 있는 자와 믿음이 없는 자가 구별이 됩니다.지난 시간에도 순종한 자와 불순종 한자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니 말씀에 순종하며 살지만 믿음이 없는 자는 불평, 원망하다가 낙심하고 좌절하며 살아갑니다.하나님은 택함받은 자들이 어려운 가운데 있을 때 무엇을 생각하고 주의하라고 하십니까?첫째로 너희를 택한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1-2절)하나님은 1절에서 떠낸 반석과 파낸 구덩이라는 비유로 말씀하시다가 2절에서 반석이 아브라함이고 구덩이가 사라 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택함을 받은 자들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택하시지 아니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존재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2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혈혈 단신” 이라는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열국의 아비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어느 누구도 장차 그가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유랑하는 나그네였고 더욱이 나이 들어 단산한 늙은 노부부에 불과했던 것입니다.그러나 그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가 되는 복을 약속하셨고 훗날에 그의 후손들은 말씀대로 하늘과 별과 같이 창성한 민족이 되었습니다.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을 너희가 의지하고 믿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은혜 받으신 적 있으십니까? 그 은혜 잊지 않고 있으십니까? 절대로 그 은혜 잊어서는 안됩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은혜 잊고 살고 있다면 지금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예수님은 에베소서 교회에 첫 사랑을 회복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면 촛대를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교회는 첫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예수님 말씀대로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내가 어떤 가운데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았는지 잊지 마시고 생각하며 살 때 하나님의 위로가 나에게 항상 함께 하실 것입니다.둘째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실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3절)하나님이 위로하여 주셨다는 완료형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 약속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황폐화된 예루살렘이 반드시 에덴 동산처럼 회복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3차에 의해 침략하면서 광야처럼 황폐화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에덴 동산 같은 낙원으로 만드실 것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B.C 536년부터 3차에 걸쳐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여 무너진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 다는 믿으시기 바랍니다.(마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의 말씀이 하나도 이루어진 것이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마지막 예언책 계시록의 말씀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여러분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어떤 약속을 받으셨습니까? 조금 더딜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주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 또한 하나님께 받은 바 약속이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날마다 위로를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셋째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4-6절)하나님의 약속을 의미하지 말라는 것은 그 약속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70년 이라는 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고 하나님은 바벨론의 우상보다도 못한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기독교인들 30%가 점쟁이 집을 찾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본문 속에 율법, 공의, 의, 구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로 비롯될 구원의 말씀인 복음입니다. 그 복음은 “만민의 빛” 으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그 복음의 내용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고 있지만 이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위로를 뿌리치고 사람들에게나 세상에서 위로를 받겠다고 고집하며 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겠다는 것입니다. 4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데 무엇으로 귀를 기울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리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주의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주의하라는 것입니다.6절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하늘의 연기같이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도 연기와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옷처럼 헤어지게 될 것이고, 하루살이 인생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의심한 불신앙의 인생의 끝은 이처럼 비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넷째로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7-8절)1절에서 메시지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 이라고 하였습니다. 7절에서도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강조하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알고 믿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훼방과 비방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특히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더욱 더 그러할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으며 산다는 것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존경과 찬사가 진실로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믿음을 가진 자들이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24:9-10)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그러므로 그런 훼방과 비방 때문에 너무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8절의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나를 훼방하고 비방하는 세력들이 하나님께 좀처럼 벌레처럼 심판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훼방과 비방 소리를 마음에 담지 말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가는데 전심 전력을 다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두 번째. 선지자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사51:9-16)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12)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 양식이 핍절하지도 아니하리라 (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로 흉용케 하는 자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려 하였음이니라”이사야 선지자의 기도가 9절부터 11절까지 나오고 하나님의 응답이 12절부터 16절까지 기록되고 있습니다.이사야의 기도는 곧 이스라엘 민족들의 마음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을 받기를 원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합니다. 기도하지 아니하여도 하나님이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실지 다 아시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라면 반드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기도하되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뜻대로 마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선지자의 기도 후에 하나님의 응답이 나오지만 이 응답이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약 150년 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우리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가 빠르게 응답되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이사야 선지자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그 옛날에 애굽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라합을 저미시고” 는 애굽을 의미하고 있고 “용”은 애굽 바로 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0절에 나오는 바다는 그 옛날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주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11절에서 이사야의 기도는 확신으로 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 하나님께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양을 드리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을 하실 것입니다.(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2절부터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지는데 이스라엘의 회보고간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과연 그런 능역이 있는가 였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고 싶어도 그만한 능력이 하나님께 없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대적이 어떠한 존재이며 또한 자신은 어떠한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대적자는 어떤 존재입니까? 12절에 “죽을 사람” “풀 같이 될 인자” 라는 것입니다. 대적들이 아무리 강한 자들일지라도 그들은 흙으로 돌아갈 인간이며 잠시 잠간 있다 시들어지는 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같은 세력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대적의 실체를 밝힌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실체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은혜가 없어질 때 인간은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고 세상을 의지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하나님을 의지한 만큼 세상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비율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30%라면 70%는 세상을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70%라면 세상적인 마음이 30%뿐이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적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곧 믿음으로 나에게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14절부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들에게 또 다시 약속을 하여 주십니다. “결박이 풀릴 것이며, 결코 죽지도 아니할 것이며,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먹을 양식이 없어 굶어 죽지 아니할 것” 이라는 것입니다.16절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입에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손으로 나를 보호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이러한 하나님을 창조주이시며 자연을 다스리시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49장에서도 자신의 택하신 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사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어렵고 힘든 상황이 우리 앞에 생긴다 할지라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세 번째. 하나님의 위로(사51:17-23)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찌기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이사야 선지자는 훗날에 예루살렘의 비참함을 예언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여호야김 시대부터 바벨론에 의해 3차에 의한 공격을 받고 폐허로 변해버렸습니다. 즉 1차 공격은 B.C 606년 여호야김 때에 있었고, 2차 공격은 B.C 597년 여호야긴 때에 있었고, 3차 공격은 B.C 586년 시드기야 왕 때 있었습니다.하나님의 진노의 큰 잔을 마신 예루살렘의 모습을 3가지로 예언하고 있습니다.첫째는 18절에서 백성들을 인도하고 양육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영적 지도자의 부재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후에 바벨론은 왕족들과 귀족들과 유력한 자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간신히 포로로 잡히지 않는 자들은 애굽으로 도망쳤습니다. (렘43:4-7)오늘날도 이 땅에 영적 지도자 부재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가 없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이 민족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신구약 중간사 400년 동안에 모든 악이 세상을 점령한 것은 영적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 날에도 하나님은 14만 4천 명을 통해서 마지막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곧 두 증인이 될 것이며 그들이 계시록 11장에서 순교한 후에 세상은 적그리스도의 악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아직도 이 땅에 소망이 있는 것은 곳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있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언제인가는 이들도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올 것입니다.둘째로 19절에 황폐와 멸망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바벨론에게 3차의 공격을 받은 예루살렘은 황폐와 멸망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이러한 예루살렘을 보고 안타까워 하십니다.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어느 누가 이 고통을 감히 위로할 자가 있겠습니까?예루살렘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으나 예루살렘이 마신 그 분노의 잔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린 것이었기에 예루살렘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던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찾아온 이 고통의 시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이 70년이라는 긴 세월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받아들여야 했습니다.그리고 그들은 더욱 하나님께 회개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역사적으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에게 이러한 고통의 시간이 마지막 날에 이 땅에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할 때 믿는 자들은 마음을 겸비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지내야 할 것입니다.역사적이 아니더라도 우리 앞에 현실적으로 어떤 고난과 환난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 고통의 시간이 길다 할지라도 인내하며 더욱 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얼마 전 아침 마당에 지선양이 나왔는데 수술을 30차례 받았지만 아직도 많이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는 지선양은 천사 그 자체였습니다.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사고 이전의 삶과 지금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겠어요?”?“아니요. 절대 바꾸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귀하고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보이는 것은 힘들어 보이지만 전 어떤 누구도 겪지 못한 고난을 겪으므로 더 값진 삶을 얻었고 보이는 잠깐의 유익이 나에게 가져다 줄 수 없는 지금의 삶은 천국과 같은 삶이예요.. 전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그녀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겠지만 하나님께서 큰 고난을 통해 더 공부하고 더 큰 것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값진 삶으로 이끄셨다고 고백을 했습니다.셋째로 20절에 곤비하여 쓰러질 것이라는 것입니다.예루살렘의 곤비한 모습은 “그물에 걸린 영양”에 비유되었습니다. 사냥꾼이 설치해 놓은 그물에 걸려든 영양이 빠져나오기 위해 계속 발버둥치고 허덕이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지쳐버린 채 땅에 드러누워 숨만 헐떡거리듯이 예루살렘의 신세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예루살렘은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깨우실 것입니다. 17절을 보세요“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다 죽어가는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깨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의 말씀을 21절부터 3가지로 주고 계십니다.첫째는 들으라는 것입니다. (21절)“쉐마” 즉 “들으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0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 말씀 한 번 듣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다면 하나님 말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내 영혼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둘째는 다시는 분노의 잔을 마시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2절)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다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고난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 포로 후에도 헬라 제국에 점령 당하고 로마 제국에 철저히 멸망하여 2천 년 동안 나라 없는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마셨습니다.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다시는 이러한 분노가 없겠다는 것이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고 예수를 죽이고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해도 다시는 분노의 잔을 마시지 않겠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세상 끝 날 까지 내가 나와 함께하리라” “너는 내 것이니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니라”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 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갈 때 가능한 말씀이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짝하고 말씀을 떠나 사는데도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님을 깨닫기 바랍니다.셋째로 하나님은 대적자들에게 분노의 잔을 쏟아 부으 실 것입니다. (23절)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바벨론이 예루살렘보다 더 의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들이 주인인양 이스라엘 민족을 무자비하게 짓밟았습니다.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교만하게 행동한 바벨론에게 분노의 잔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세상의 조롱과 모욕을 당한다 할지라도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훼방하는 세력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의 잔을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들의 권세와 부를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손이 징계의 손이었다면 바벨론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손은 심판의 손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이후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민족이 되었습니다.세상 끝 날에도 그렇게 큰소리를 치며 세상을 쥐고 흔들었던 악한 세력들이 산채로 유황 불속에 던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계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하나님의 택하심 받은 자들에게 때로는 하나님의 분노의 잔이 임할지라도 그것은 깨닫고 돌아오기 위한 징계의 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하나님의 징계의 손이 올 때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더욱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잠3:11-12) “(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 하지 말라 (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살아계신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사랑하는 여러분 영혼 속에 깊이 임재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말씀을 맺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두려워 말라” 말씀이 366번이나 기록되어져 있다고 합니다.1967년 루마니아가 공산화 될 때 소련군이 쳐들어 와서 교회를 때려 부수고, 목사들을 죽이고, 성도들을 핍박 하였는데 기독교 지도자 리챠드 윔블란트 붙잡아서 죽이려고 했지만 너무 유명한 자라 죽이지 못하고 소련으로 붙잡아가서 감옥에 18년 동안 가두어 놓았습니다.감옥에서 18년을 지내면서 성경을 읽다가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이 “두려워 말라” 는 말씀이어서 몇 번 나오나 세워보았는데 366번이었습니다.그래서 윔블란트 목사님이 하시는 말이 “하나님은 윤달까지 계산 하셨구나 하나님은 매일같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구나”윔블란트 목사님은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감옥에서 십일조를 드렸는데 드릴 수 있는 십일조가 뭐가 있겠어요.배고플 정도로 밥을 주는데 거기서 십분의 일을 떼어서 배고픈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목마를 정도로 물을 주는데 거기서 십분의 일을 떼어 목마른 자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감옥에 있던 자들이 모두 예수 믿게 되었고 그들이 성만찬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간수에게 성만찬하게 떡과 포도주를 달라고 하자 똥과 오줌을 주면서 성만찬 안하면 성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윔블란트 목사는 똥과 오줌으로 성만찬 하였는데 똥을 가지고 “이는 내 몸이니” 오줌을 가지고 “이는 내 피니”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이러한 사실을 미국에 알려져서 윔블란트 석방 운동이 일어나 모금 운동을 하여 소련에게 돈을 주고 미국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윔블란트 목사는 VOM 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이 단체는 박해받는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을 돕고 이들의 박해를 전 세계에 알리는 목적으로 세워진 초교파적인 비영리단체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담대한 믿음을 주어서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위로와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이 우리의 영혼 속에 삶 속에 충만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직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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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교회를 돌보시는 하나님 (이사야 51:1-3)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기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이 위안의 말이 그들에게 보내어지고 그들이 그것을 청종하도록 요청되고 있다(1절). 그들은 “의를 좇는” 자들이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기를 매우 바라고 갈구하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이다. 오직 의의 길에서만 우리가 그를 발견할 것을 바라고서 그를 찾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그들의 기원을, 그리고 그들의 발생의 미소(微小)함을 회상하도록 여기에서 어떻게 지시받고 있는가? “너희를 떠난 반석을 생각하여 보라(갈대아 우르에 있는 우상 숭배의 가정을, 즉 아브라함을 취하여 낸 그 가정을 생각하여 보고 그 자파들의 족장과 열조들로 이루어진 애굽에서의 노예 시대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하나님께서 너희로 백성을 조성하셨을 때 진흙과 같았던 것을 생각하여 보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기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이 위안의 말이 그들에게 보내어지고 그들이 그것을 청종하도록 요청되고 있다(1절). 그들은 “의를 좇는” 자들이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기를 매우 바라고 갈구하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추구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들이다. 오직 의의 길에서만 우리가 그를 발견할 것을 바라고서 그를 찾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들은 그들의 기원을, 그리고 그들의 발생의 미소(微小)함을 회상하도록 여기에서 어떻게 지시받고 있는가? “너희를 떠난 반석을 생각하여 보라(갈대아 우르에 있는 우상 숭배의 가정을, 즉 아브라함을 취하여 낸 그 가정을 생각하여 보고 그 자파들의 족장과 열조들로 이루어진 애굽에서의 노예 시대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하나님께서 너희로 백성을 조성하셨을 때 진흙과 같았던 것을 생각하여 보라.” 새로 태어남으로써 특권을 얻은 자들은 자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어떠했는가를, 자기가 어떻게 “죄악 중에 출생하고 죄 중에 잉태되었는가” 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다.” 우리를 떠 낸 반석은 얼마나 딱딱하고 잘 패여지지 않았으며 “우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 는 얼마나 초라했는가!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우리는 자신을 낮게 여기고 거룩한 은혜를 높게 여기는 생각으로 우리를 가득채워야 한다. 이제 출세한 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낮은 상태에서 시작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2절). “너희 조상, 믿는 모든 자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의를 좇은 모든 사람들의 조상(롬 4:11)인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그리고 너희가 잘 행하는 한 모두 그 딸들이 되는 사라를 생각하여 보자.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어떻게 그가 부름을 받고 복을 받고 창성케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너희는 그것에 힘입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사형 선고가 약속을 성취되게 하는 모든 수단 위에 엄습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렇게 하라. 특히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은 그것으로 격려를 얻어 비록 그들의 수효가 감소되고 극소수만 남아있을지라도 그들이 그들의 땅이 다시 찰 정도로 창성케 되리라는 것을 바라게 하라.” 야곱은 매우 작을지라도, 열국의 아비가 된 아브라함 만큼 작지는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무엇을 얻었는가를 보라. 그리고 복종으로써 하나님을 따른 그의 본을 따르라.” 3. 그들은, 그들이 현재 눈물로 뿌린 씨를 마침내 기쁨으로 추수하게 되리라는 것을 여기에서 어떻게 다짐받고 있는가?(3절) 땅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복음 시온은 때로 황폐하고 적막한 곳이 되었고, 교회의 여러 부분은 타락이나 박해로 인해 광야같이 되어 하나님께 실과를 드리지 못하거나 그 거민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온에게 위로의 말씀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해 은혜롭게 행하심으로써 “시온을 위로할” 시기와 방법을 찾아 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의 “황폐한 곳” 을, 중요시되거나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부분을 위로하신다.

(1) 그는 그들을 풍요하게 만드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즐거워할 이유를 주실 것이다. 시온의 황무함은 새로운 면모를 띨 것이며 에덴처럼 아름답게 보이고 “여호와의 동산같이” 모든 훌륭한 실과가 풍성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현재 눈물로 뿌린 씨를 마침내 기쁨으로 추수하게 되리라는 것을 여기에서 어떻게 다짐받고 있는가?(3절) 땅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복음 시온은 때로 황폐하고 적막한 곳이 되었고, 교회의 여러 부분은 타락이나 박해로 인해 광야같이 되어 하나님께 실과를 드리지 못하거나 그 거민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온에게 위로의 말씀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해 은혜롭게 행하심으로써 “시온을 위로할” 시기와 방법을 찾아 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의 “황폐한 곳” 을, 중요시되거나 귀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부분을 위로하신다.그는 그들을 풍요하게 만드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즐거워할 이유를 주실 것이다. 시온의 황무함은 새로운 면모를 띨 것이며 에덴처럼 아름답게 보이고 “여호와의 동산같이” 모든 훌륭한 실과가 풍성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바지하는 것과, 그가 기뻐하시는 그의 등산같이 되는 것이 교회의 가장 큰 위로가 된다.

(2) 그는 그들의 기분을 북돋워 주시고 그렇게 하여 그들에게 즐거워할 마음을 주신 것이다. “의의 열매” 와 함께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이 있으리라.” 즉 사람들은 거룩함을 많이 지닐수록 그리고 선을 많이 행할수록 더욱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쁨이 있어 그들이 만족하게 될 때에, 감사를 드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가 기뻐하는 일은 곧 감사해야할 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의 보답은 창화하는 소리로써 송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밤에 노래” 를 주실 때, 사막에 노래를 주실 때, 더욱 아름다운 선율로 들릴 것이다.

그는 그들의 기분을 북돋워 주시고 그렇게 하여 그들에게 즐거워할 마음을 주신 것이다. “의의 열매” 와 함께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이 있으리라.” 즉 사람들은 거룩함을 많이 지닐수록 그리고 선을 많이 행할수록 더욱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쁨이 있어 그들이 만족하게 될 때에, 감사를 드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가 기뻐하는 일은 곧 감사해야할 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의 보답은 창화하는 소리로써 송축되어야 하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밤에 노래” 를 주실 때, 사막에 노래를 주실 때, 더욱 아름다운 선율로 들릴 것이다.

51:4 교회에 대한 격려 (이사야 51:4-8) 이러한 선포들은(이렇게 칭해도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그의 구원이 영존할 것을 다짐하는 것과 같이 끝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와 구원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안위하기 위한 의도를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함께 놓고 보아야 한다. 이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이 위로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따로 세워 놓은, 그리고 나를 인정하며 나의 인정을 받고 있는 내 백성, 내 나라에게 이것이 속해 있다.” 하나님을 자기의 옹, 자기의 하나님으로 여겨 그에게 복종하고 그에게 충성을 바치며 또한 그의 보호를 받는 자들은 그의 백성이며 그의 나라이다. 그들은 “의를 아는” 백성이며 지식의 수단을 갖고 있고 의가 알려지게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단들을 이용하고 참과 거짓, 선과 악을 바르게 판단할 능력이 있는 백성이다. 그리고 그들은 선한 머리를 갖고 있는 동시에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그 속에 기록되어 있고 그곳에서 주관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에 그의 율법이 있는” 자들을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신다. 의를 알고 있으며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두고 있는 자들고 큰 환난과 슬픔에 처하고 비방과 멸시를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이 알고 있는 의와 그들이 그 마음에 두고있는 율법으로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Ⅱ.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속한 위로는 무엇인가? 1.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에 전파되고 공포될 것이다. “율법이,” 복음적인 율법, 그리스도의 율법, 믿음의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2:3). 이 율법이 그의 공의(심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이 지배를 받고 판단받게 될 자유의 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발하여질 뿐만 아니라 지속되고 잔존할 것이다. 즉 그것은 이 세상에 견고하고 깊게 뿌리박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으로 그것을 주시한 유대인들의 유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만민의 빛” 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귀를 기울여 청종 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 곧 이 율법, 이 공의이다.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귀를 막아버린다고 해서 어떻게 그것을 피할 수 있겠는가? 율법이 하나님께로부터 발하여질 때, “들을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2. 이 율법과 공의는 의와 구원을 초래할 것이며, 사람의 자손들에게 준비된 길을 열어 주어 그들이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잡을 수 있게 할 것이다(5절).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의” 와 “그의” 구원이라 칭하여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것들을 계획하고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전자의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받아들이시고 그것을 위해 우리를 받아들이시는 의이며, 그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너그럽게 용납하실 의이다. 후자의 것은 “여호와의 구원” 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에게서 끝나기 때문이다. 의가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의” 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그의 구원이 있을 것이다. 의롭다함을 얻고 성별케 된 자들, 그들만이 영화롭게 될 것이다.

3. 그의 의와 구원이 매우 빨리 나타날 것이다. “내 의가 가깝도다.” 그것은 시간적으로 가깝다. 보라,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또한 그것은 공간적으로 가깝다. 즉 멀리서 구할 필요가 없다. 말씀이 우리 가까이게 있고 그 말씀 안에 그리스도가, 그 말씀 안에 의가 있다(롬 10:8). “내 구원이 나갔느니라.” 구원에 관한 포고가 나갔다. 그 포고는 마치 그것이 이미 나간 것처럼 반드시 전해질 것이며, 그 시기가 가깝다.

4. 이 복음적인 의와 구원은 유대 민족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이방인들에게도 미칠 것이다.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라.” 하나님의 입의 심판에 항복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그의 손의 심판에 의해 박멸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심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섬 사람들이 그를 앙망하고” 그의 복음을 청할 것이며, 복음의 위로뿐만 아니라 그 명령을 환영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의 나라에게는, 무리가 그들에게 더하여지고 그 수효가 불어나 그들의 힘과 아름다움이 증가되리라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그들이 내 팔에 의지하리라” 는 사실이 부가되어 있으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여호와의 팔” 이다(53:1).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주목하라. 즉 하나님의 팔이 회개하지 않는 백성들을 심판할 것이나 다른 사람들은 그 팔을 의지하여 구원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만드는 데에 따라 우리에게 생명이나 사망의 냄새가 되기 때문이다.

5. 이 의와 구원은 “영원히 있고” 결코 폐하여지지 않을 것이다(8절). 그것은 메시야가 들여오신 영원한 의이며(단 9:24), 그가 장본인이 되시고 있는 그 영원한 구원이다(히 5:9). 그것은 세계 만방에 퍼져나갈 것이며 동시에 세세토록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복음 속에서 우리가 얻는 것 이외에 구원의 다른 길을, 평강의 다른 언약이나 의의 다른 원리를 결코 기대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거기에서 본 것은 끝까지 지속될 것이다(마 28:20). 그것은 영원하다. 그 결과가 영원까지 있을 것이며 이 자유의 법에 의해 사람들의 영원한 상태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영존과 그것이 가져오는 복된 것들이 이 세상과 그속에 있는 만물의 시들음과 멸함에 의해 예증되어있다.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라. 그것은 여지껏 존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존속할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곧 소멸되어 없어지는 “연기같이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두루마리처럼 말려질 것이며 그 빛들은 가을의 잎처럼 떨어질 것이다. 땅을 내려다보라. 그것도 잠시 동안은 지속된다(전 1:4). 그러나 그것은 입기에 남루한 ‘옷같이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거기 거한 자들이, 땅의 모든 거민들이, 심지어 거기에서 가장 훌륭히 정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한결같이 죽을 것이다.” 영혼은 이 세상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며 육신은 헤진 옷처럼 벗겨질 것이다. 그것은 쉽게 으스러질 것이며(욥 4:19) 하나도 남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천지가 없어질” 때, 모든 육체와 그 아름다움이 풀처럼 시들 때,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있으며 그 일점이나 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와 구원 속에 자기의 행복을 두는 자들은 때와 날이 찼을 때 그 위로를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에 전파되고 공포될 것이다. “율법이,” 복음적인 율법, 그리스도의 율법, 믿음의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2:3). 이 율법이 그의 공의(심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이 지배를 받고 판단받게 될 자유의 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발하여질 뿐만 아니라 지속되고 잔존할 것이다. 즉 그것은 이 세상에 견고하고 깊게 뿌리박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으로 그것을 주시한 유대인들의 유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만민의 빛” 을 위해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귀를 기울여 청종 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 곧 이 율법, 이 공의이다. 우리가 그것을 무시하고 귀를 막아버린다고 해서 어떻게 그것을 피할 수 있겠는가? 율법이 하나님께로부터 발하여질 때, “들을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이 율법과 공의는 의와 구원을 초래할 것이며, 사람의 자손들에게 준비된 길을 열어 주어 그들이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잡을 수 있게 할 것이다(5절).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의” 와 “그의” 구원이라 칭하여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그것들을 계획하고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전자의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받아들이시고 그것을 위해 우리를 받아들이시는 의이며, 그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너그럽게 용납하실 의이다. 후자의 것은 “여호와의 구원” 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에게서 나오고 그에게서 끝나기 때문이다. 의가 없이는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의” 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그의 구원이 있을 것이다. 의롭다함을 얻고 성별케 된 자들, 그들만이 영화롭게 될 것이다.그의 의와 구원이 매우 빨리 나타날 것이다. “내 의가 가깝도다.” 그것은 시간적으로 가깝다. 보라,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또한 그것은 공간적으로 가깝다. 즉 멀리서 구할 필요가 없다. 말씀이 우리 가까이게 있고 그 말씀 안에 그리스도가, 그 말씀 안에 의가 있다(롬 10:8). “내 구원이 나갔느니라.” 구원에 관한 포고가 나갔다. 그 포고는 마치 그것이 이미 나간 것처럼 반드시 전해질 것이며, 그 시기가 가깝다.이 복음적인 의와 구원은 유대 민족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이방인들에게도 미칠 것이다.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라.” 하나님의 입의 심판에 항복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그의 손의 심판에 의해 박멸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심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섬 사람들이 그를 앙망하고” 그의 복음을 청할 것이며, 복음의 위로뿐만 아니라 그 명령을 환영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의 나라에게는, 무리가 그들에게 더하여지고 그 수효가 불어나 그들의 힘과 아름다움이 증가되리라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그들이 내 팔에 의지하리라” 는 사실이 부가되어 있으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여호와의 팔” 이다(53:1).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주목하라. 즉 하나님의 팔이 회개하지 않는 백성들을 심판할 것이나 다른 사람들은 그 팔을 의지하여 구원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만드는 데에 따라 우리에게 생명이나 사망의 냄새가 되기 때문이다.이 의와 구원은 “영원히 있고” 결코 폐하여지지 않을 것이다(8절). 그것은 메시야가 들여오신 영원한 의이며(단 9:24), 그가 장본인이 되시고 있는 그 영원한 구원이다(히 5:9). 그것은 세계 만방에 퍼져나갈 것이며 동시에 세세토록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복음 속에서 우리가 얻는 것 이외에 구원의 다른 길을, 평강의 다른 언약이나 의의 다른 원리를 결코 기대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거기에서 본 것은 끝까지 지속될 것이다(마 28:20). 그것은 영원하다. 그 결과가 영원까지 있을 것이며 이 자유의 법에 의해 사람들의 영원한 상태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영존과 그것이 가져오는 복된 것들이 이 세상과 그속에 있는 만물의 시들음과 멸함에 의해 예증되어있다.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라. 그것은 여지껏 존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존속할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곧 소멸되어 없어지는 “연기같이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두루마리처럼 말려질 것이며 그 빛들은 가을의 잎처럼 떨어질 것이다. 땅을 내려다보라. 그것도 잠시 동안은 지속된다(전 1:4). 그러나 그것은 입기에 남루한 ‘옷같이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거기 거한 자들이, 땅의 모든 거민들이, 심지어 거기에서 가장 훌륭히 정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한결같이 죽을 것이다.” 영혼은 이 세상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며 육신은 헤진 옷처럼 벗겨질 것이다. 그것은 쉽게 으스러질 것이며(욥 4:19) 하나도 남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천지가 없어질” 때, 모든 육체와 그 아름다움이 풀처럼 시들 때,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있으며 그 일점이나 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의와 구원 속에 자기의 행복을 두는 자들은 때와 날이 찼을 때 그 위로를 얻을 것이다. Ⅲ. 그들은 이 위로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의와 구원이 그들 가까이에 있다면, 그때 그들은 “사람의,” 죽어야 하는 비참한 인간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비방에, 또는 악의에 찬 희롱에, 너희에게 시온에 노래를 부르라 하거나 “지금 너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고 비웃으면서 묻는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복음의 의를 받아들인 자들은 그들을 바알세불이라 칭하는 자들을, 그리고 그들에 대해 사악하게 모든 악한 말을 하려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이러한 자들을 두려워 말라. 이 모욕적인 언사에 동요되지도 말고 마치 그것이 그들의 명성과 영예를 훼멸하고, 그들이 영원히 그 짐 아래 눌려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것에 의해 불안을 느끼지도 말라. 그자들이 협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의무를 단념하거나 놀라서 어떤죄에 순응하지 말려, 자기의 안전을 위해 바르지 못한 과정을 택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리스도를 위해 한 마디 가혹한 말도 참지 못하는 자는 그를 위해 거의 어느 것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자. 왜냐하면, 1. 그들은 곧 잠잠할 것이다(8절).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다” (50:9). “그들은 양털같이” 또는 털옷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허가를 얻는다면,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의 비방을 멸시할 수 있다. 즉 벌레의 먹이가 되어야 하는 자들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는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그들의 악의로 인해 그들을 벌하고 사를 하나님의 심판을 시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그들을 벌하러 오실 때(유 14,15),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효과적으로 파멸될 것이다.

2. 우리가 고난당하는 사유는 비방될 수 없다. 그들의 훼방의 거짓됨이 간파될 것이며 진리가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신앙적인 사유의 의로움이 영원히 명료하게 나타날 것이다. 구름이 해를 가리우나 그 진로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곧 잠잠할 것이다(8절).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다” (50:9). “그들은 양털같이” 또는 털옷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허가를 얻는다면,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의 비방을 멸시할 수 있다. 즉 벌레의 먹이가 되어야 하는 자들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는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그들의 악의로 인해 그들을 벌하고 사를 하나님의 심판을 시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그들을 벌하러 오실 때(유 14,15),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효과적으로 파멸될 것이다.우리가 고난당하는 사유는 비방될 수 없다. 그들의 훼방의 거짓됨이 간파될 것이며 진리가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신앙적인 사유의 의로움이 영원히 명료하게 나타날 것이다. 구름이 해를 가리우나 그 진로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51:9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 (이사야 51:9-16)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Ⅰ.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 가운데 나타나시어 그의 백성을 구해주시고 그와 그들의 원수를 굴욕스럽게 만드시기를 바라는 기도.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9절).” 여호와의 팔은 그리스도이거나, 또는 그것은 시편(44:23)에서와 같이 하나님 자신의 팔을 뜻한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가 깨시기를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그가 그의 백성을 망보시고 항상 그들에게 선을 행하시기 위해 깨어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팔은, 자기 백성을 돕기 위해 평시보다 더욱 크게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될 때 깨어 있다고 일컬어 질 수 있다. 손이나 팔이 마비될 때, 우리는 그것이 잠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행동하기 위해 그것이 펼쳐질 때, 그것이 깨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어떤 일을 상기하시거나 자극받으실 필요가 없으시나, 우리가 겸손히 그에게 간청하는 것을 이처럼 허용하신다. 이와 같이 그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그의 찬미를 위한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을 베푸소서. 즉 능력을 발휘하소서. 우리가 옷을 입고 나타나듯이 주의 능력을 갖고 나타나소서” (시 21:13). 교회는 자기의 상황이 불리한 것을 본다. 그 원수들은 많고 강하며 친구들을 매우 적고 연약하다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기의 구원을 위해 단지 하나님의 팔의 힘만을 의지한다. “옛날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즉 옛날에 우리 열조를 위해 행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를 위해 행하소서.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이른 이적을 되풀이하소서” (삿 6:13). Ⅱ. 이 기도를 강력히 하기 위한 탄원. 1. 그들은 선조들과 저희 조상의 경험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큰 일들을 진술하고 있다. “여호와의 팔이 우리편에 노출되게 하라. 그것은 이와 같은 사유를 옹호하기 위해 옛날에 큰 일들을 행했고,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짧아지거나 연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그의 장자를 노예로 만들어 학대한 애굽 사람들에 대해 이적들을 행했다. 하나님은 연속적인 무서운 재앙으로 라합을 갈기갈기 저미시고, 바로와 용과 악어를(그것은 그렇게 칭해지고 있다. 시 74:13, 14)찌르셨다. 그것은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해 이적을 행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팔로 바다를, 즉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속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셨다” (10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관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 방법을 몰라 결코 당황하시는 일이 없고 어떤 방법을 찾아 내시거나 이루실 것이다. 과거의 경험은 믿음과 소망을 크게 부축해 주는 동시에 기도의 좋은 제목이 된다. “주께서 하셨나이다.” 이제 “주께서 아니하시겠나이까?” (시 85:1-6)

2. 그들은 약속들을 진술하고 있다(11절).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오리이다.” 즉(다음과 같은 말은 보충될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 이르시기를 그들이 돌아오리라고 하셨나이다.” 이것은 35장 10절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우리는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석방되었을 때, “노래하며 시온에 돌아오리라” 는 약속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죄인들은 죄의 속박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로 들어올 때,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노래하며 올 수 있다. 믿는 자들의 영혼은 그들이 육체의 감옥에서 풀려날 때, 노래하면서 천국의 시온으로 간다. 그때 이 약속은 온전히 성취될 것이며, 우리는 그 동안에 그것을 탄원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를 위해 이러한 기쁨을 계획하시는 그가 우리의 상황이 요구하는 그러한 구언을, 그동안에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지 않겠는가? 성도들이 천국에 올 때 그들은 “여호와의 즐거움에 참여하리라.” 그것은 그들의 머리에 불멸의 영예의 화관을 씌운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완전한 만족으로 채운다. “그들은” 그 눈물의 골짜기에서는 그들이 결코 얻을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 것이다.” 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것은 기쁨에서 슬픔으로 가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저 세상에서는 “슬픔과 탄식이 달아날 것이며” 결코 돌아오거나 다시 보이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선조들과 저희 조상의 경험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큰 일들을 진술하고 있다. “여호와의 팔이 우리편에 노출되게 하라. 그것은 이와 같은 사유를 옹호하기 위해 옛날에 큰 일들을 행했고,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짧아지거나 연약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그의 장자를 노예로 만들어 학대한 애굽 사람들에 대해 이적들을 행했다. 하나님은 연속적인 무서운 재앙으로 라합을 갈기갈기 저미시고, 바로와 용과 악어를(그것은 그렇게 칭해지고 있다. 시 74:13, 14)찌르셨다. 그것은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해 이적을 행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팔로 바다를, 즉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속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셨다” (10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관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 방법을 몰라 결코 당황하시는 일이 없고 어떤 방법을 찾아 내시거나 이루실 것이다. 과거의 경험은 믿음과 소망을 크게 부축해 주는 동시에 기도의 좋은 제목이 된다. “주께서 하셨나이다.” 이제 “주께서 아니하시겠나이까?” (시 85:1-6)그들은 약속들을 진술하고 있다(11절).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오리이다.” 즉(다음과 같은 말은 보충될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 이르시기를 그들이 돌아오리라고 하셨나이다.” 이것은 35장 10절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우리는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석방되었을 때, “노래하며 시온에 돌아오리라” 는 약속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죄인들은 죄의 속박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로 들어올 때,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노래하며 올 수 있다. 믿는 자들의 영혼은 그들이 육체의 감옥에서 풀려날 때, 노래하면서 천국의 시온으로 간다. 그때 이 약속은 온전히 성취될 것이며, 우리는 그 동안에 그것을 탄원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를 위해 이러한 기쁨을 계획하시는 그가 우리의 상황이 요구하는 그러한 구언을, 그동안에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지 않겠는가? 성도들이 천국에 올 때 그들은 “여호와의 즐거움에 참여하리라.” 그것은 그들의 머리에 불멸의 영예의 화관을 씌운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완전한 만족으로 채운다. “그들은” 그 눈물의 골짜기에서는 그들이 결코 얻을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 것이다.” 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것은 기쁨에서 슬픔으로 가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저 세상에서는 “슬픔과 탄식이 달아날 것이며” 결코 돌아오거나 다시 보이게 되지 않을 것이다. Ⅲ. 이 기도에 즉시 응답이 주어짐(12절).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이니라.” 그들은 그의 능력이 작용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은혜의 위로로써 그들에게 응답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그 기도에 대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옛날처럼 용을 찌르시고 바다를 말리시지 않으실지라도, 그가 고통 중에 있는 우리 영혼을 위로하신다면, 우리는 불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손의 구원의 힘으로” 즉시 응답하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 천사가 응답받은 것처럼 그가 우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슥 1:13) 대답하신다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백성을 위로하실 것을 결심하고 계신가를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그는 그의 사역자들에게 그것을 행하도록 명령하셨다(40:1). 또한 얼마나 그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는가를 보라. 그는 “낙망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것을 그의 명예로운 권리로 여기신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자들은 정말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들을 안위하시는 그의 일은 그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된다. 1. 그는 두려움 가운데 있던 자들을 위로하신다. 두려움에는 고통이 있으며 그것은 위로를 요한다. 사람의 두려움에는 올무가 있으며 그것을 제거하는 데는 위로가 필요하다. 그는 겁많은 자들을 구짖으심으로써 위로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 자신을 위로하는데 있어서 조금도 부적합한 방법이 아니다.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두려워하는고?” (12,13절)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사람들의 비방(7절)이나, 사람들의 힘과 크기가 위협적으로 자라나는 것이나, 그들이 우리와 우리 백성에게 어떤 해를 끼치려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몹시 당황하면서 불안해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실 것이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그러한 두려움의 어리석음. 우리가 두려움에 지는 것은 수치이다.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두려워하느냐?” 원문에는 그 대명사가 여성으로 되어 있다. 즉 사람이라 정할 가치가 없는 “여자여 너는 어떠한 자인고?” 당황케 하는 두려움에 지는 것은 이처럼 연약하고 여자 같은 일이다.

[1] 죽어가는 사람을 이처럼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죽은 사람을,” 반드시, 그리고 이윽고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 를, 시들어 짓밟히거나 먹히울 자를 “두려워하느냐?” 가장 큰 자들과 가장 거대한 자들, “생존자의 땅에서 강대한 자의 두려움” 이 되는 자들은 “인생일 뿐” 이며(시 9:20) “범인같이 죽을” 뿐이다(시 82:7). 그리고 그들은 땅을 쪼개고 나와서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는 풀에 불과하다. 그는 두려움 가운데 있던 자들을 위로하신다. 두려움에는 고통이 있으며 그것은 위로를 요한다. 사람의 두려움에는 올무가 있으며 그것을 제거하는 데는 위로가 필요하다. 그는 겁많은 자들을 구짖으심으로써 위로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 자신을 위로하는데 있어서 조금도 부적합한 방법이 아니다.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두려워하는고?” (12,13절)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이 사람들의 비방(7절)이나, 사람들의 힘과 크기가 위협적으로 자라나는 것이나, 그들이 우리와 우리 백성에게 어떤 해를 끼치려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몹시 당황하면서 불안해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으실 것이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그러한 두려움의 어리석음. 우리가 두려움에 지는 것은 수치이다.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두려워하느냐?” 원문에는 그 대명사가 여성으로 되어 있다. 즉 사람이라 정할 가치가 없는 “여자여 너는 어떠한 자인고?” 당황케 하는 두려움에 지는 것은 이처럼 연약하고 여자 같은 일이다.죽어가는 사람을 이처럼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죽은 사람을,” 반드시, 그리고 이윽고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 를, 시들어 짓밟히거나 먹히울 자를 “두려워하느냐?” 가장 큰 자들과 가장 거대한 자들, “생존자의 땅에서 강대한 자의 두려움” 이 되는 자들은 “인생일 뿐” 이며(시 9:20) “범인같이 죽을” 뿐이다(시 82:7). 그리고 그들은 땅을 쪼개고 나와서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는 풀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죽어야 할 자로 여겨야 한다.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자들은 사람이며,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지나치게 기뻐하거나 의지하지 말도록 하자. 또한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들은 연약하고 죽어야할 자로 여겨야 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들이, 오늘은 여기 있다가 내일이면 없어지는, 죽어가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2] “항상 종일 두려워하는” 것(13절). 결코 안정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또한 어떤 즐거움도 누리지 못할 정도로 우리 자신을 항상 고문대 위에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때로 위험이 절박하고 위협적일 수 있으며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분별있는 일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항상 시달리는 것은, 즉 매순간 위험을 몹시 경계하고 나뭇잎이 흔들릴 때마다 떠는 것은,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것이며(히 2:15) “네가 주야로 두려워하리라” 라는 경고되어 있는 그 쓰라린 심판을(신 28:66, 67) 우리 자신에게 임하게 하는 것이다.

[3]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네가 학대자의 분노를 두려워하도다. 학대자가 있다는 것과 그가 광포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기회가 있을 때 너를 해할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조심하는 것이 지혜롭다. 그러나 너는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그를 마치 그가 방금 네 목을 자를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막을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두려워한다.” 소심한 심령은 이처럼 매사를 최악으로 생각하기 쉬우며 위험을 실제보다 더 크고 더 가까운 것으로 느끼기 쉽다. 때로 하나님은 그러한 어리석음을 우리에게 즉시 보여 주시기를 원하신다.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그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며 그 위험은 네가 알아채기도 전에 끝난다.” 그의 마음이 돌이켜지거나 그의 손이 묶어진다. “애굽왕 바로는 소리뿐이며” 바벨론 왕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호통을 치고 그들을 위협하여 두렵게 했던 모든 광포한 압제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사라졌고 없어졌다. 그리고 이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2) 그 두려움의 불경건함. “너는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잊어버렸다. 그는 또한 온 세상을 지은 자이며 하늘을 펴고 땅을 기초로 정하셨으므로 모든 군대와 모든 권세를 통솔하시며 경영하시는 것이다.” “항상 종일 두려워하는” 것(13절). 결코 안정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또한 어떤 즐거움도 누리지 못할 정도로 우리 자신을 항상 고문대 위에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때로 위험이 절박하고 위협적일 수 있으며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분별있는 일일 때가 있다. 그러나 항상 시달리는 것은, 즉 매순간 위험을 몹시 경계하고 나뭇잎이 흔들릴 때마다 떠는 것은,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것이며(히 2:15) “네가 주야로 두려워하리라” 라는 경고되어 있는 그 쓰라린 심판을(신 28:66, 67) 우리 자신에게 임하게 하는 것이다.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네가 학대자의 분노를 두려워하도다. 학대자가 있다는 것과 그가 광포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기회가 있을 때 너를 해할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조심하는 것이 지혜롭다. 그러나 너는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그를 마치 그가 방금 네 목을 자를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막을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두려워한다.” 소심한 심령은 이처럼 매사를 최악으로 생각하기 쉬우며 위험을 실제보다 더 크고 더 가까운 것으로 느끼기 쉽다. 때로 하나님은 그러한 어리석음을 우리에게 즉시 보여 주시기를 원하신다.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그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며 그 위험은 네가 알아채기도 전에 끝난다.” 그의 마음이 돌이켜지거나 그의 손이 묶어진다. “애굽왕 바로는 소리뿐이며” 바벨론 왕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호통을 치고 그들을 위협하여 두렵게 했던 모든 광포한 압제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사라졌고 없어졌다. 그리고 이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그 두려움의 불경건함. “너는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잊어버렸다. 그는 또한 온 세상을 지은 자이며 하늘을 펴고 땅을 기초로 정하셨으므로 모든 군대와 모든 권세를 통솔하시며 경영하시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은 하나님께 대한 무언의 망각이 된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 자신을 불앙하게 할 때, 그것은 우리가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가장 큰 자라도 위에서 허락한 것 이외의 능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잊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섭리로써 그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들을 명하시고 주관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들과 그가 우리를 돌보시는 것에 대한 체험을 잊은 것이며, 그 학대자가 우리를 멸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가 여러 차례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알맞는 때에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 이레(Jehovah-jirehs), 여호와 신의 긍휼의 기념물들을 잊은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의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했다면, 우리는 그처럼 사람들의 찌푸린 얼굴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8:12, 13),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된 것이다(잠 28:14; 12:4, 5). 2. 그는 속박 가운데 있었던 자들을 위로하고 있다(14,15절). 여기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여” 추방되었던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의 관심은 “그가 구덩이로 내려가지 않게 하는 것” (불편한 감금 생활로 인해 죄수로 죽지 않는 것)이며 “그 양식이,” 감옥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가 먹어야할 양식이나 그가 그의 가정에서 책임지어야 할 양식이 “핍절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즉 그의 곳간이 거의 비었으므로 그는 석방되도록 서두르는 것이다. 그는 속박 가운데 있었던 자들을 위로하고 있다(14,15절). 여기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여” 추방되었던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의 관심은 “그가 구덩이로 내려가지 않게 하는 것” (불편한 감금 생활로 인해 죄수로 죽지 않는 것)이며 “그 양식이,” 감옥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가 먹어야할 양식이나 그가 그의 가정에서 책임지어야 할 양식이 “핍절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즉 그의 곳간이 거의 비었으므로 그는 석방되도록 서두르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그의 과오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지체되는 것에 대해 의혹을 품으며 참지 못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가 곧 해방되지 않으면 파멸하여 구덩이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것을 그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해석한다. 즉 문이 열려질 때, 그는 지체하지 않고 석방을 얻기 위해 매우 열심을 기울인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다음에,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 라는 구절이 따르고 있는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한다.

(2) 하나님 그들을 위해 그들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결박된 포로를 도울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그의 손에 갖고 계시다. 왜냐하면 그가 흉융한 파도가 교만한 학대자들의 무력한 위협보다 더욱 무서울 때, “바다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혹자가 주장하는 해석대로 그가 바다를 “진정시키” 거나 “평정케” 하셨다(시 65:7; 89:9). 이것은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그가 행하셨고 또 행하시리라는 것에 대한 모형이기도 하다. 그는 흉융한 광풍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아내실 것이며 그들을 안전하게 피난처로 인도해 내실 것이다.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그것은 영원한 그의 이름이며 그의 백성이 그것으로써 오랫동안 그를 알아온 이름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도우실 수 있으며, 동시에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고 약속하셨다. 그는 결박된 포로, “네 하나님” 이시고 언약상 네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것은 포로가 낙심하는 것을 저지시키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곧 놓이거나 구덩이에 들어갈 것임이 틀림없다는 단정을 내리지 않게 하라.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가 그들이 매우 약해졌을 때 그들을 건지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근면한 포로들을 격려한다. 그들은 자유가 선포될 때, 조금도 지체하지 않을 자들이다.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시며, 그들 자신이 이처럼 분투하는 한 그가 그들을 도우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

3. 그는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말한 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소망을 두는 그의 모든 백성들을 위로하신다. 선지자들이 말한 그 구원이 그들이 바라던 것처럼 빨리 오지 않거나 그들의 기대의 높이만큼 오르지 않았을 때, 그들은 낙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에 의해, 이 선지자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에 의해 격려받고 있다(16절). 그러나 대체로 이것은 이 선지자나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큰 선지자이신 그리스도에게 하신 말씀이다. 진리와 능력의 하나님이 여기에서처럼 그의 사자에게 “내가 내 말을 내 입에 두고” 그것으로써 “내가 하늘을 폈도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도록, 이 메시지를 전해받는 자들에게 그것은 큰 만족을 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로하셨다(12절). 그러나 아직도 그는 그의 선지자들과 그의 복음을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 그리고 그가 이것을 통해 위로하시기 위해, 그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씀하신다.

(1) 선지자들에게 주신 그의 말씀은 매우 참된 것이다. 그는 그들이 그가 지시하시고 명하신 것을 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계신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으니, 너와 그 말을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리가 그의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자의 것이며,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에 두신 그의 말씀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의 큰 지주가 된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들이 말한 것들을 그들에게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해야 하는 말씀을 그들에게 구술하셨다(벧후 1:21; 고전 2:13). 따라서 이것들은 하나님의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인 것이다.

(2) 그것은 매우 안전하다. 내가(49:2 에서와 같이)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다.” 이것은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언을,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기독교. 그리스도의 복음을 특별히 보호하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미쁘신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 빛을 끄려는 흑암 권세의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성취될 때까지 정성들여 보존될 것이다. 그들은 “다시 예언하게” 될 것이나(계 10:11) 그들이 직접 예언하지 않고 기록한 것으로 예언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항상 그의 손 그늘로 덮으셨고 특별한 섭리로 보존하셨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벌써 없어졌을 것이다.

(3) 이 말씀은 그것이 성취될 때, 매우 위대할 것이며, 그 예언의 위엄과 장엄함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으니 이는 그 말을 성취하여 민족을 세우거나 성읍을 만들려는것이 아니라,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려 하였음이니라. 내 백성을 위해 새 창조의 일을 행하려 하였음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이루어지는 큰 역사와 그의 거룩한 종교를 이 세상에 세우는 것을 멀리 내다본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처음에 지으시고(히 1:2) 그로 말미암아 구약 교회를 지으신 것과(슥 6:12) 마찬가지로, 그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의 입에 두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는,

[1] 새 세상을 세우실 것이다. 다시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실 것이다. 죄가 온 창조물을 혼돈으로 몰아 놓았으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어 만물이 다시 질서를 회복하게 하셨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화목케 되고 그렇게 하여 새로운 면모를 띄게 된다(골 1:20).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대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벧후 3:13), 선지자들은 이것의 증인이 되고 있다.

[2] 그가 새 교회를, 신약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그가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다 하실 것이다.” 복음 교회가 “시온” (히 12:22), 또는 “예루살렘” (갈 4:26)이라 칭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거기로 들어올 때, 그들에게 대해 “너는 내 백성이라” 고 일컬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 큰 구원을 역사하실 때, 그리고 특히 그가 큰 날에 그 구원을 완성하실 때, 그는 그 말씀으로써, 그 초라하고 멸시당하는 소수인들이 그가 택하시고 사랑하신 그의 백성임을 인정하실 것이다.

하나님 그들을 위해 그들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결박된 포로를 도울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그의 손에 갖고 계시다. 왜냐하면 그가 흉융한 파도가 교만한 학대자들의 무력한 위협보다 더욱 무서울 때, “바다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혹자가 주장하는 해석대로 그가 바다를 “진정시키” 거나 “평정케” 하셨다(시 65:7; 89:9). 이것은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그가 행하셨고 또 행하시리라는 것에 대한 모형이기도 하다. 그는 흉융한 광풍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아내실 것이며 그들을 안전하게 피난처로 인도해 내실 것이다.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그것은 영원한 그의 이름이며 그의 백성이 그것으로써 오랫동안 그를 알아온 이름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도우실 수 있으며, 동시에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고 약속하셨다. 그는 결박된 포로, “네 하나님” 이시고 언약상 네 하나님이신 것이다. 이것은 포로가 낙심하는 것을 저지시키고 있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곧 놓이거나 구덩이에 들어갈 것임이 틀림없다는 단정을 내리지 않게 하라.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가 그들이 매우 약해졌을 때 그들을 건지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근면한 포로들을 격려한다. 그들은 자유가 선포될 때, 조금도 지체하지 않을 자들이다.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시며, 그들 자신이 이처럼 분투하는 한 그가 그들을 도우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그는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말한 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소망을 두는 그의 모든 백성들을 위로하신다. 선지자들이 말한 그 구원이 그들이 바라던 것처럼 빨리 오지 않거나 그들의 기대의 높이만큼 오르지 않았을 때, 그들은 낙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에 의해, 이 선지자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에 의해 격려받고 있다(16절). 그러나 대체로 이것은 이 선지자나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큰 선지자이신 그리스도에게 하신 말씀이다. 진리와 능력의 하나님이 여기에서처럼 그의 사자에게 “내가 내 말을 내 입에 두고” 그것으로써 “내가 하늘을 폈도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도록, 이 메시지를 전해받는 자들에게 그것은 큰 만족을 준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로하셨다(12절). 그러나 아직도 그는 그의 선지자들과 그의 복음을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 그리고 그가 이것을 통해 위로하시기 위해, 그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씀하신다.선지자들에게 주신 그의 말씀은 매우 참된 것이다. 그는 그들이 그가 지시하시고 명하신 것을 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계신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으니, 너와 그 말을 받아들이는 자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리가 그의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자의 것이며,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에 두신 그의 말씀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신앙의 큰 지주가 된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들이 말한 것들을 그들에게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해야 하는 말씀을 그들에게 구술하셨다(벧후 1:21; 고전 2:13). 따라서 이것들은 하나님의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인 것이다.그것은 매우 안전하다. 내가(49:2 에서와 같이)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다.” 이것은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언을, 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기독교. 그리스도의 복음을 특별히 보호하시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미쁘신 말씀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 빛을 끄려는 흑암 권세의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성취될 때까지 정성들여 보존될 것이다. 그들은 “다시 예언하게” 될 것이나(계 10:11) 그들이 직접 예언하지 않고 기록한 것으로 예언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항상 그의 손 그늘로 덮으셨고 특별한 섭리로 보존하셨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벌써 없어졌을 것이다.이 말씀은 그것이 성취될 때, 매우 위대할 것이며, 그 예언의 위엄과 장엄함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으니 이는 그 말을 성취하여 민족을 세우거나 성읍을 만들려는것이 아니라,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려 하였음이니라. 내 백성을 위해 새 창조의 일을 행하려 하였음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이루어지는 큰 역사와 그의 거룩한 종교를 이 세상에 세우는 것을 멀리 내다본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처음에 지으시고(히 1:2) 그로 말미암아 구약 교회를 지으신 것과(슥 6:12) 마찬가지로, 그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의 입에 두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는,새 세상을 세우실 것이다. 다시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실 것이다. 죄가 온 창조물을 혼돈으로 몰아 놓았으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어 만물이 다시 질서를 회복하게 하셨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화목케 되고 그렇게 하여 새로운 면모를 띄게 된다(골 1:20).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대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벧후 3:13), 선지자들은 이것의 증인이 되고 있다.그가 새 교회를, 신약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그가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다 하실 것이다.” 복음 교회가 “시온” (히 12:22), 또는 “예루살렘” (갈 4:26)이라 칭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거기로 들어올 때, 그들에게 대해 “너는 내 백성이라” 고 일컬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해 큰 구원을 역사하실 때, 그리고 특히 그가 큰 날에 그 구원을 완성하실 때, 그는 그 말씀으로써, 그 초라하고 멸시당하는 소수인들이 그가 택하시고 사랑하신 그의 백성임을 인정하실 것이다.

51:17 예루살렘의 환난 (이사야 51:17-23)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기 위해 깨어계신 하나님께서, 여기에서는 52장 1절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깨어 있도록 요청하고 계신다. 그것은 죄의 잠에서 깨어나라는 요청이라기보다는(비록 그것도 역시 구원을 위한 준비로써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절망의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라는 요청이다. 예루살렘 거민들이 포로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불안감에 크게 눌려 있었으므로, 그들을 안위하거나 위로할 만한 어떤 것을 생각할 마음이나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동산에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제자들과 같았다(눅 22:45). 그러므로 그 구원이 이르렀을 때, 그들은 “꿈꾸는 것 같았다” 고 기록되어 있다(시 126:1). 그것은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 넣으라는 것처럼(겔 37:9) 잠에서 뿐만 아니라 사망에서 깨어나라는 부름이다. “깨어나, 네 주위를 보라. 그리하여 구원의 여명이 밝았음을 보고 그것을 환영할 준비를 하라. 네 의식을 되찾으라. 네 짐 아래 눌리워 있지 말고 일어나서 네 자신을 돕기 위해 분투하라.” 이것은 사도 바울 시대의 예루살렘에 적용될 수 있는데, 그것이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갈 4:25) “혼미한 심령” 의 권세 아래 있었다(롬 11:8)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깨어나서 그들의 영원한 평강에 속한 것들을 마음에두도록 요청받고 있다. 그렇게 될 때 떨림의 잔이 그들의 손에서 떠나고 평강이 그들에게 전해지며, 그들은 그들의 눈을 멀게하고 그들을 잠들게 한 사단을 무찌르게 될 것이다. Ⅰ. 예루살렘이 오랫동안 매우 한심한 상태에 놓여 있었고 깊은 비참함속에 빠져 있었음이 인정되어 있다. 1.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 아래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의 손에 “이 분노의 잔” 을, 즉 그의 진노의 몫을 두셨다. 예루살렘에 관한 그의 섭리의 시야가 이러했기 때문에 그것은 그가 자기에게 화나셨다고 생각할 만하였다. 예루살렘은 그를 격동시켜 몹시 화내시도록 만들었고 그 섭리의 쓴 열매를 맛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분노의 잔은 그것을 그 손에 쥔 모든 자들에게 “떨림의 잔” 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잔의 찌끼까지도,” 그 밑바닥에 있는 역겨운 앙금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라” 고 적혀 있다(시 75:8). 그러나 여기에서 예루살렘은 자기 자신을 땅의 악인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울여 마시도록 강요받고 있다. 간음의 잔이 있는 곳에는, 예루살렘이 우상을 숭배했을 때 그 손에 그 잔이 있었던 것과 같이, 조만간에 분노의 잔, 떨림의 잔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2. 예루살렘이 환난 중에 있을 때 도왔어야 할 자들이 그것을 실망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기대될 수 있었던 것만큼 예루살렘을 도울 능력이 없었거나 도우려하지 않았다(18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분노의 잔에 취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틀거리며 그 계획과 시도에 있어서 매우 불안정하다. 예루살렘은 자기가 말하거나 행하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더욱이 말하거나 행해야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불행한 상태에서 그것이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즉 예루살렘이 낳아 교육시킨(거기에는 유명한 자들이 많이 있었다. 시온에 관하여 “이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 고 적혀있는 것이다. 시 87:5) 아들 중에 “그 손으로 그것을 이끌 자가 없다. 예루살렘이 쓰러지거나 수치를 당하지 않게 그것을 붙잡아 주고 고통 중에서 도울 손이나, 그러한 예루살렘을 위로할 혀를 빌려 줄 자가 없다. 지혜롭고 선한 자들이 자기 자녀들에 대해 실망하는 것과 기대한 도움을 그들로부터 믿지 못하는 것을 이상스럽게 여기지 말라. 예루살렘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그것의 모든 아들 중에, 방백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 중에 그것을 도울 만한 의무감이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 자가 없을 때, 그들의 손에 있는 화살이었던 자들은 없을 때, 그들의 마음에 있는 화살로 드러나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원망한다(시 74:9).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이 실망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었다.

(1) 예루살렘의 고통을 매우 컸으나 그것을 동정하거나 도와 줄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19절) 네 황폐함과 멸망이 극심하도다. 또한 “기근과 칼” 의 두 가지 혹독한, 그리고 매우 무서운 심판이 네게 임하였다. 또는 그 두 가지 일은 성읍을 황무하게 한 “황폐와 멸망” 이며 그 시민들을 모든 멸망하게 한 기근과 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이 두 가지 일은 환난 그 자체(그것은 황폐, 멸망, 기근, 그리고 칼을 뜻한다)와 그 속에서 그녀가 도움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으며 위로를 얻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진정 슬픈 두 가지 사실은, 네가 이처럼 슬픈 상황에 있다는 것과 너를 불쌍히 여길 자가 없다는 것이다. 네 픔을 공감하거나 네 근심의 짐을 덜어 줄 자가 없다는 것이다. 네 슬픔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사실을 네게 암시하거나 너를 위해 네 불행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일을 행함으로써 너를 위로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에 임한 이 두 가지 일은 후에 바벨론에게 임한 두 가지 일, 즉 “자녀를 잃으며 과부를 잃는” (47:9) 그 비참한 경우와 같다. 그러나 “네가 네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것을 네 자신에게 임하게 했을 때,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그 경우는 위로를 요구하나 네가 네 고통 아래서 애태우고 불안해 할 때,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충고를 받으려하지 않는 자들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2) 예루살렘의 위로자가 되었어야 할 자들이 오히려 괴롭히는 자가 되었다(20절). “그들이 곤비하여” 완전히 기를 꺽이고 절망속에 빠졌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의 자제와 스스로의 즐거움을 지킬 만한 인내를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위로를 얻게 해 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고통에 격분하여 자기 자신을 땅에 내어던지며 거기에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면서(애 1:12), 필요한 식량의 부족으로 수척해져 가면서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워있다.” 거기에서 그들은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불안해하고 소란하게 하면서, 스스로를 돕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물을 잡아당기나,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스스로를 얽혀 들어가고 자신의 걱정과 불만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온유하고 평온한 심령을 가진 자들은 고통 하에서, 그물에 걸린 비둘기처럼 진정 슬퍼하나 조용히 참는다. 심술궂고 역정을 잘내는 심령을 가진 자들은 그물에 걸린들소처럼 불안해 하며 그 친구들에게 화를 내고 그들의 하나님을 격동시킨다. “그들에게 여호와의 본노와 우리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시며 그들과 다투신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러한 것만이 가득하며 그들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 속에 있는 지혜롭고 은혜로운 의도를 주목하지 않고, 왜 그가 그들과 다투시는지를 결코 묻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단지 하나님께 노하고 그와 싸우는 것밖에는 없다. 그들은 그들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의 시여에 대해 그에게 화를 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이 오랫동안 이러했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인지하셨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 아래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의 손에 “이 분노의 잔” 을, 즉 그의 진노의 몫을 두셨다. 예루살렘에 관한 그의 섭리의 시야가 이러했기 때문에 그것은 그가 자기에게 화나셨다고 생각할 만하였다. 예루살렘은 그를 격동시켜 몹시 화내시도록 만들었고 그 섭리의 쓴 열매를 맛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분노의 잔은 그것을 그 손에 쥔 모든 자들에게 “떨림의 잔” 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 잔의 찌끼까지도,” 그 밑바닥에 있는 역겨운 앙금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라” 고 적혀 있다(시 75:8). 그러나 여기에서 예루살렘은 자기 자신을 땅의 악인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울여 마시도록 강요받고 있다. 간음의 잔이 있는 곳에는, 예루살렘이 우상을 숭배했을 때 그 손에 그 잔이 있었던 것과 같이, 조만간에 분노의 잔, 떨림의 잔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예루살렘이 환난 중에 있을 때 도왔어야 할 자들이 그것을 실망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기대될 수 있었던 것만큼 예루살렘을 도울 능력이 없었거나 도우려하지 않았다(18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분노의 잔에 취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틀거리며 그 계획과 시도에 있어서 매우 불안정하다. 예루살렘은 자기가 말하거나 행하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더욱이 말하거나 행해야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불행한 상태에서 그것이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즉 예루살렘이 낳아 교육시킨(거기에는 유명한 자들이 많이 있었다. 시온에 관하여 “이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 고 적혀있는 것이다. 시 87:5) 아들 중에 “그 손으로 그것을 이끌 자가 없다. 예루살렘이 쓰러지거나 수치를 당하지 않게 그것을 붙잡아 주고 고통 중에서 도울 손이나, 그러한 예루살렘을 위로할 혀를 빌려 줄 자가 없다. 지혜롭고 선한 자들이 자기 자녀들에 대해 실망하는 것과 기대한 도움을 그들로부터 믿지 못하는 것을 이상스럽게 여기지 말라. 예루살렘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그것의 모든 아들 중에, 방백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 중에 그것을 도울 만한 의무감이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 자가 없을 때, 그들의 손에 있는 화살이었던 자들은 없을 때, 그들의 마음에 있는 화살로 드러나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원망한다(시 74:9).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이 실망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었다.예루살렘의 고통을 매우 컸으나 그것을 동정하거나 도와 줄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19절) 네 황폐함과 멸망이 극심하도다. 또한 “기근과 칼” 의 두 가지 혹독한, 그리고 매우 무서운 심판이 네게 임하였다. 또는 그 두 가지 일은 성읍을 황무하게 한 “황폐와 멸망” 이며 그 시민들을 모든 멸망하게 한 기근과 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이 두 가지 일은 환난 그 자체(그것은 황폐, 멸망, 기근, 그리고 칼을 뜻한다)와 그 속에서 그녀가 도움을 받지 못하고 버림받으며 위로를 얻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진정 슬픈 두 가지 사실은, 네가 이처럼 슬픈 상황에 있다는 것과 너를 불쌍히 여길 자가 없다는 것이다. 네 픔을 공감하거나 네 근심의 짐을 덜어 줄 자가 없다는 것이다. 네 슬픔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사실을 네게 암시하거나 너를 위해 네 불행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일을 행함으로써 너를 위로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에 임한 이 두 가지 일은 후에 바벨론에게 임한 두 가지 일, 즉 “자녀를 잃으며 과부를 잃는” (47:9) 그 비참한 경우와 같다. 그러나 “네가 네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것을 네 자신에게 임하게 했을 때,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그 경우는 위로를 요구하나 네가 네 고통 아래서 애태우고 불안해 할 때,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충고를 받으려하지 않는 자들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예루살렘의 위로자가 되었어야 할 자들이 오히려 괴롭히는 자가 되었다(20절). “그들이 곤비하여” 완전히 기를 꺽이고 절망속에 빠졌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의 자제와 스스로의 즐거움을 지킬 만한 인내를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위로를 얻게 해 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고통에 격분하여 자기 자신을 땅에 내어던지며 거기에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면서(애 1:12), 필요한 식량의 부족으로 수척해져 가면서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워있다.” 거기에서 그들은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불안해하고 소란하게 하면서, 스스로를 돕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물을 잡아당기나, 그럴수록 그들은 더욱 스스로를 얽혀 들어가고 자신의 걱정과 불만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온유하고 평온한 심령을 가진 자들은 고통 하에서, 그물에 걸린 비둘기처럼 진정 슬퍼하나 조용히 참는다. 심술궂고 역정을 잘내는 심령을 가진 자들은 그물에 걸린들소처럼 불안해 하며 그 친구들에게 화를 내고 그들의 하나님을 격동시킨다. “그들에게 여호와의 본노와 우리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노하시며 그들과 다투신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러한 것만이 가득하며 그들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 속에 있는 지혜롭고 은혜로운 의도를 주목하지 않고, 왜 그가 그들과 다투시는지를 결코 묻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단지 하나님께 노하고 그와 싸우는 것밖에는 없다. 그들은 그들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의 시여에 대해 그에게 화를 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이 오랫동안 이러했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인지하셨다. Ⅱ. 그러나 예루살렘의 환난이 마침내 끝나고 그 환난이 그것의 핍박자들에게 옮겨지리라는 사실이 약속되어 있다(21절). “그러므로 너 곤란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흔히 교회의 운명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럴 때, 교회가 듣고서 잘 행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말씀해 주실 만한 것을 항상 갖고 계신다. “너는 옛날처럼 포도주가 아니라도, 바벨론 기생들과 우상 숭배자들의 취하는 잔이 아니라고 고통의 잔으로 취한다. 이제 네 자신이 위로받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라.” 1. “주 여호와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네 여호와이며 네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강조적으로 표현되어 있다(22절). “주 여호와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셨다. 너를 도우실 능력이 있고 너를 구제할 것을 갖고 계시는 여호와, 네게 대해 변론의 여지가 없는 권리를 갖고 계시며 그것을 소홀히 여기시지 않을 네 주, 너와 언약하시고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계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환난이 어떠하든지간에, 그는 그들에 대한 그의 관계를 부인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들은 그와 그의 약속 가운데 있는 그들의 권익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2. “그는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즉 그는 그들의 후원자이며 보호자로서, 그들에 대해 벌어지는 일을 자기 자신에게 행해지는 것으로 간주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의 사유와 그들이 고백하는 거룩한 신앙의 사유는 의로운 사유이다. 그렇지 않다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옹호하기 위해 나타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잠시 무너지고, 마치 소멸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양심을 깨우치거나 그것과 싸우는 자들의 악한 계획을 격파함으로써 그것을 옹호하실 것이다. 그는 세상에 공의와 탁월함을 뚜렷이 나타나게 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옹호하는 자들을 성공케 함으로써 그것을 신원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의 사유이다. 따라서 그가 예루살렘을 지지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열렬히 그것을 변호하실 것이다.

3. 그들은 이윽고 그들의 환난에서 벗어나 그것에게 안녕을 고할 것이다. “내가 비틀걸음치게 하는 잔을, 그 쓴 잔을 네 손에서 거두리라. 그것이 네게서 지나가리라.” 우리는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을 거두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그것을 마시지 아니하겠고 마실 수도 없다” 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참을성 있게 복종한다면, 그것을 우리 손에 두신 자가 그것을 우리 손에서 거두실 것이다. 다음과 같이 사실이 약속되어 있다. “너도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너와의 쟁론을 그만 두셨고 그 재앙을 다시 환원시키지 아니하실 것이다.”

4. 그들의 학대자와 압제자들은 그들이 그처럼 깊이 들어마신 바로 그 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23절).

(1) 그들은 얼마나 오만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능욕하고 짓밟았는가? “그들은 일찌기 네가,” 네 생명에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였도다.” 그들은 너로 우상을 숭배하게 만드는 것에서 긍지와 즐거움을 느끼면서 네 양심에 그렇게 말했다. 이와 같이 신약 바벨론은 사람들의 양심을 압제하고 그들에게 법을 주며, 그들은 고문대 위에 올려놓고 죄를 따르도록 강요하면서, 그 옛 압제자들의 길을 답습했다.

“주 여호와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네 여호와이며 네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강조적으로 표현되어 있다(22절). “주 여호와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셨다. 너를 도우실 능력이 있고 너를 구제할 것을 갖고 계시는 여호와, 네게 대해 변론의 여지가 없는 권리를 갖고 계시며 그것을 소홀히 여기시지 않을 네 주, 너와 언약하시고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계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환난이 어떠하든지간에, 그는 그들에 대한 그의 관계를 부인하지 않으실 것이며, 그들은 그와 그의 약속 가운데 있는 그들의 권익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그는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즉 그는 그들의 후원자이며 보호자로서, 그들에 대해 벌어지는 일을 자기 자신에게 행해지는 것으로 간주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의 사유와 그들이 고백하는 거룩한 신앙의 사유는 의로운 사유이다. 그렇지 않다면,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옹호하기 위해 나타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잠시 무너지고, 마치 소멸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양심을 깨우치거나 그것과 싸우는 자들의 악한 계획을 격파함으로써 그것을 옹호하실 것이다. 그는 세상에 공의와 탁월함을 뚜렷이 나타나게 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옹호하는 자들을 성공케 함으로써 그것을 신원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의 사유이다. 따라서 그가 예루살렘을 지지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열렬히 그것을 변호하실 것이다.그들은 이윽고 그들의 환난에서 벗어나 그것에게 안녕을 고할 것이다. “내가 비틀걸음치게 하는 잔을, 그 쓴 잔을 네 손에서 거두리라. 그것이 네게서 지나가리라.” 우리는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을 거두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그것을 마시지 아니하겠고 마실 수도 없다” 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참을성 있게 복종한다면, 그것을 우리 손에 두신 자가 그것을 우리 손에서 거두실 것이다. 다음과 같이 사실이 약속되어 있다. “너도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너와의 쟁론을 그만 두셨고 그 재앙을 다시 환원시키지 아니하실 것이다.”그들의 학대자와 압제자들은 그들이 그처럼 깊이 들어마신 바로 그 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23절).그들은 얼마나 오만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능욕하고 짓밟았는가? “그들은 일찌기 네가,” 네 생명에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였도다.” 그들은 너로 우상을 숭배하게 만드는 것에서 긍지와 즐거움을 느끼면서 네 양심에 그렇게 말했다. 이와 같이 신약 바벨론은 사람들의 양심을 압제하고 그들에게 법을 주며, 그들은 고문대 위에 올려놓고 죄를 따르도록 강요하면서, 그 옛 압제자들의 길을 답습했다.

이한규의 온새기&월새기

이사야 51장 1-8절

(1절)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절)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3절)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4절)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절)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절)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절)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절)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비방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사야 51장 1-8절)

< 소망을 굳건하게 만드는 길 >

본문에는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일의 굳건한 소망을 주기 위한 여러 가지 권면의 말씀이 나옵니다. 내일의 소망을 굳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1-2절). 그러면 미래에도 그런 은혜와 축복이 있을 것이 더욱 굳게 믿어집니다. 과거의 상처는 물에 새기고 과거의 은혜는 돌에 새기십시오. 과거의 은혜에 대한 탁월한 기억력은 내일의 축복에 대한 소망을 뚜렷하게 합니다.

둘째,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4절). 오늘날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뚜렷한 목적지도 없으면서 남이 달리니까 자신도 무작정 달리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까?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소명을 알고 자신의 장점을 알고 자신의 길을 가십시오. 그것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에 주의를 두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잠깐 멈춰 서서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내일의 주인공이 됩니다.

셋째,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5-6절). 어느 날, 전국 기독 대학생 회장으로 있던 한 청년에게 한 전도자가 물었습니다. “학생! 구원의 확신이 있어요?” 그 회장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자신이 전국 기독 대학생 회장으로 있기에 자신은 당연히 구원의 확신이 있을 줄 알고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전도자가 떠난 뒤로 그 전도자의 질문이 맴돌면서 구원의 확신 문제로 왠지 불안했습니다. 그때부터 구원의 확신을 얻겠다고 책도 많이 읽고 여러 집회에 참석했지만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성경을 보다가 갑자기 한 성경 말씀이 가슴이 꽂히면서 구원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때 구원의 확신을 얻고 마음속에 깊은 평안이 임했습니다. 그 평안을 무기로 어떤 고난과 시련도 넉넉하게 극복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승리하는 삶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안전판입니다.

< 비방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마지막으로 비방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7절). 요새 기독교에 대한 다양한 비방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교인들을 보면 이렇게 비방합니다. “믿는 사람이 왜 저래?” 그러나 기독교인은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왜소함과 연약함과 부족함과 못됨을 절감해서 하나님이 없이는 못살겠다고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잘못이 있다고 해서 기독교인 전체를 비방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비방입니다. 믿는 사람만 그런 잘못을 합니까? 대개 보면 믿지 않는 사람이 그런 잘못을 더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잘못된 교회를 보면 이렇게 비방합니다. “교회가 왜 저래?” 그러나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약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교회도 얼마든지 허물을 보일 수 있습니다. 교회만 그런 잘못을 저지르겠습니까? 대개 보면 일반 공동체는 그런 잘못을 더 많이 저지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어떤 잘못으로 교회의 존재 자체를 깡그리 비방하는 것은 역시 정당하지 못한 비방입니다.

어떤 사람은 재난이 있으면 이렇게 비방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가? 하나님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재난이 있는 것’이 ‘하나님이 없는 증거’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입니다. 재난이 있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왜 선한 사람에게도 재난을 주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재난에 내포된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어떻게 사람이 정확하게 알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부당하고 야비하고 매몰찬 비방들을 접합니다. 그런 비방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비방을 통해서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반성하되 믿음이 흔들리거나 믿음을 포기하지는 마십시오. 정당하지 않게 비방하는 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8절). 그러므로 누가 비방해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들의 비참한 결말을 생각하며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정당한 비판과 부당한 비방을 잘 분별해서 비방으로 인해 자신의 믿음과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게 할 때 조만간 복된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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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새번역,1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도움을 받으려고 나 주를 찾는 사람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바위를 보아라. 너희가 거기에서 떨어져 나왔다. 저 구덩이를 보아라. 너희가 거기에서 나왔다.

우리말성경,1 “정의를 추구하며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아, 내 말을 잘 들으라. 너희를 떠낸 저 바위와 너희를 파낸 저 구덩이를 바라보라.

가톨릭성경,1 내 말을 들어라, 의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아 주님을 찾는 이들아. 너희가 떨어져 나온 반석을 우러러보고 너희가 퍼내 올려진 저수 동굴을 쳐다보아라.

영어NIV,1 “Listen to me, you who pursue righteousness and who seek the LORD: Look to the rock from which you were cut and to the quarry from which you were hewn;

영어NASB,1 “Listen to me, you who pursue righteousness, Who seek the LORD: Look to the rock from which you were hewn, And to the quarry from which you were dug.

영어MSG,1 “Listen to me, all you who are serious about right living and committed to seeking GOD. Ponder the rock from which you were cut, the quarry from which you were dug.

영어NRSV,1 Listen to me, you that pursue righteousness, you that seek the LORD. Look to the rock from which you were hewn, and to the quarry from which you were dug.

헬라어구약Septuagint,1 ακουσατε μου οι διωκοντες το δικαιον και ζητουντες τον κυριον εμβλεψατε εις την στερεαν πετραν ην ελατομησατε και εις τον βοθυνον του λακκου ον ωρυξατε

라틴어Vulgate,1 audite me qui sequimini quod iustum est et quaeritis Dominum adtendite ad petram unde excisi estis et ad cavernam laci de qua praecisi estis

히브리어구약BHS,1 שִׁמְעוּ אֵלַי רֹדְפֵי צֶדֶק מְבַקְשֵׁי יְהוָה הַבִּיטוּ אֶל־צוּר חֻצַּבְתֶּם וְאֶל־מַקֶּבֶת בֹּור נֻקַּרְתֶּם׃

성 경: [사51: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 – 이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본국으로 귀환할 때를 고대했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를릉 다포로 생활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던 자들이었다. 본문에서 이들은 ‘의를 좇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칫하면 형식적 율법 준수에 집착하는 것으로써 선민(選民)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구절들은 바로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려고 하는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 반석 … 구덩이 – 이 둘은 석수장이가 돌을 떠내서 움푹 패인 자리를 가리킨다. 무엇인가 암시하는 이미지인데, 그 내용은 2절에 설명되어 있는 것 곧 하나님이 그 주권적 의지에 따라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언약 백성이 출현하게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용어가 포함된 문장과 2절 상반절은 공히 ‘생각하여 보라’로 끝맺고 있기 때문이다.

합비투 엘 아브라함 아비켐 웨엘 사라 테홀렐켐 키 에하드 케라티우 와아바르케후 웨아르베후

개역개정,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새번역,2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고, 너희를 낳아 준 사라를 생각하여 보아라. “내가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에는 자식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은혜를 내려서, 그 자손을 수없이 많게 하였다.”

우리말성경,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바라보라. 내가 그를 불렀을 때 그는 혼자였지만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서 그 자손을 많게 했다.

가톨릭성경,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우러러보아라. 내가 그를 부를 때 그는 혼자였으나 나는 그에게 복을 내려 그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였다.

영어NIV,2 look to Abraham, your father, and to Sarah, who gave you birth. When I called him he was but one, and I blessed him and made him many.

영어NASB,2 “Look to Abraham your father, And to Sarah who gave birth to you in pain; When he was one I called him, Then I blessed him and multiplied him.”

영어MSG,2 Yes, ponder Abraham, your father, and Sarah, who bore you. Think of it! One solitary man when I called him, but once I blessed him, he multiplied.

영어NRSV,2 Look to Abraham your father and to Sarah who bore you; for he was but one when I called him, but I blessed him and made him many.

헬라어구약Septuagint,2 εμβλεψατε εις αβρααμ τον πατερα υμων και εις σαρραν την ωδινουσαν υμας οτι εις ην και εκαλεσα αυτον και ευλογησα αυτον και ηγαπησα αυτον και επληθυνα αυτον

라틴어Vulgate,2 adtendite ad Abraham patrem vestrum et ad Sarram quae peperit vos quia unum vocavi eum et benedixi ei et multiplicavi eum

히브리어구약BHS,2 הַבִּיטוּ אֶל־אַבְרָהָם אֲבִיכֶם וְאֶל־שָׂרָה תְּחֹולֶלְכֶם כִּי־אֶחָד קְרָאתִיו וַאֲבָרְכֵהוּ וְאַרְבֵּהוּ׃ ס

성 경: [사51: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너희 조상 … 생각하여 보라 – 저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의'(5절 참조) 설명함에 있어서 아브라함 한 사람으로 시작되어 많은 수의 민족으로까지 불어난 이스라엘 민족을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한 약속을 부여하시되 인간의 안목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방법 곧 노인 사라를 통한 자손 출생을 통하여 그 약속을 이루어 나가셨고,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큰 나라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이 위로를 받은 남은 자들은 구원에 관한 절대 주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소망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의로워질 수 있는 근거를 이 소망 위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키 니함 아도나이 치욘 니함 콜 하르보테하 와야셈 미드바라흐 케에덴 웨아르바타흐 케간 아도나이 사손 웨시므하 임마체 바흐 토다 웨콜 지메라

개역개정,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새번역,3 주님께서 시온을 위로하신다!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신다. 주님께서 그 광야를 에덴처럼 만드시고, 그 사막을 주님의 동산처럼 만드실 때에, 그 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깃들며, 감사의 찬송과 기쁜 노랫소리가 깃들 것이다.

우리말성경,3 그렇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셨다. 폐허가 된 시온의 모든 곳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분이 그 광야를 에덴처럼 만드시고 그 사막을 여호와의 동산처럼 만드셨으니 그곳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감사의 노랫소리가 그곳에 울려 퍼질 것이다.

가톨릭성경,3 주님께서는 정녕 시온을 위로하시고 그 모든 폐허를 위로하신다. 그 광야를 에덴처럼, 그 황무지를 주님의 동산처럼 만드시니 그 안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감사와 찬미 노랫소리가 깃들리라.

영어NIV,3 The LORD will surely comfort Zion and will look with compassion on all her ruins; he will make her deserts like Eden, her wastelands like the garden of the LORD. Joy and gladness will be found in her, thanksgiving and the sound of singing.

영어NASB,3 Indeed, the LORD will comfort Zion; He will comfort all her waste places. And her wilderness He will make like Eden, And her desert like the garden of the LORD; Joy and gladness will be found in her, Thanksgiving and sound of a melody.

영어MSG,3 Likewise I, GOD, will comfort Zion, comfort all her mounds of ruins. I’ll transform her dead ground into Eden, her moonscape into the garden of GOD, A place filled with exuberance and laughter, thankful voices and melodic songs.

영어NRSV,3 For the LORD will comfort Zion; he will comfort all her waste places, and will make her wilderness like Eden, her desert like the garden of the LORD; joy and gladness will be found in her, thanksgiving and the voice of song.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σε νυν παρακαλεσω σιων και παρεκαλεσα παντα τα ερημα αυτης και θησω τα ερημα αυτης ως παραδεισον κυριου ευφροσυνην και αγαλλιαμα ευρησουσιν εν αυτη εξομολογησιν και φωνην αινεσεως

라틴어Vulgate,3 consolabitur ergo Dominus et Sion consolabitur omnes ruinas eius et ponet desertum eius quasi delicias et solitudinem eius quasi hortum Domini gaudium et laetitia invenietur in ea gratiarum actio et vox laudis

히브리어구약BHS,3 כִּי־נִחַם יְהוָה צִיֹּון נִחַם כָּל־חָרְבֹתֶיהָ וַיָּשֶׂם מִדְבָּרָהּ כְּעֵדֶן וְעַרְבָתָהּ כְּגַן־יְהוָה שָׂשֹׂון וְשִׂמְחָה יִמָּצֵא בָהּ תֹּודָה וְקֹול זִמְרָה׃ ס

성 경: [사51: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그 광야로 에덴 같고 – 여기 ‘에덴’은 하나님이 인간의 거주지로 정하셨던 최초의 장소인 에덴 동산을 가리키는데(창 2:8,9), 구약에서 이 호칭은 이상적인 목초지 혹은 농경지의 상징이 되고 있다(창 13:10;겔 31:8,9). 그러나 겔 36:35과 마찬가지로 본 호칭은 미래에 다시 회복될 처소를 상징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본절은 종말론적 관점에서도 이해 가능하다. 1차적으로 본절은 혼자였던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만드셨던 하나님이 포로지의 남은 자들을 근거로 이스라엘을 재건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고 그 예언 성취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완료형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는 ‘에덴’이란 호칭으로 미루어 볼 때, 본절은 메시야를 통한 구속 사역의 완성 그리고 더 나아가 메시야의 재림 때에 있을 완전한 구속 사역의 성취에 따른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에까지 그 시야를 확산시키고 있다 하겠다.

하크쉬부 엘라이 암미 우레움미 엘라이 하아지누 키 토라 메이티 테체 우미쉬파티 레오르 암민 아르기아

개역개정,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새번역,4 나의 백성아, 나에게 귀를 기울여라. 나의 백성아, 내 말을 귀담아 들어라. 법은 나에게로부터 비롯될 것이며, 나의 의는 만백성의 빛이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4 내 백성아, 내게 주목하라. 내 백성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가르침이 내게서 나오고 내 공의가 뭇 백성의 빛이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4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어라. 내 겨레야, 내게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서 가르침이 나가리라. 나의 공정을 내가 민족의 빛으로 만들리라.

영어NIV,4 “Listen to me, my people; hear me, my nation: The law will go out from me; my justice will become a light to the nations.

영어NASB,4 “Pay attention to Me, O My people; And give ear to Me, O My nation; For a law will go forth from Me, And I will set My justice for a light of the peoples.

영어MSG,4 “Pay attention, my people. Listen to me, nations. Revelation flows from me. My decisions light up the world.

영어NRSV,4 Listen to me, my people, and give heed to me, my nation; for a teaching will go out from me, and my justice for a light to the peoples.

헬라어구약Septuagint,4 ακουσατε μου ακουσατε λαος μου και οι βασιλεις προς με ενωτισασθε οτι νομος παρ’ εμου εξελευσεται και η κρισις μου εις φως εθνων

라틴어Vulgate,4 adtendite ad me populus meus et tribus mea me audite quia lex a me exiet et iudicium meum in lucem populorum requiescet

히브리어구약BHS,4 הַקְשִׁיבוּ אֵלַי עַמִּי וּלְאוּמִּי אֵלַי הַאֲזִינוּ כִּי תֹורָה מֵאִתִּי תֵצֵא וּמִשְׁפָּטִי לְאֹור עַמִּים אַרְגִּיעַ׃

성 경: [사51:4]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내 백성 … 내 나라 – 각각 ‘암미'(*), ‘레움미'(*)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두 용어를 각각 ‘민족들’이란 뜻의 ‘아밈'(*)과 ‘나라들’을 뜻하는 ‘레우밈'(*)으로 바꿈으로써 본 구절의 청중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한 만민들인 것으로 보려 하나 ‘만민’에 관한 언급이 따로 나오므로 원문 수정까지 해가면서 굳이 그렇게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 원문에 입각한 직역은 ‘나의 심판은 만민의 빛이 되리라’이다. 문맥상 본절의 ‘율법’과 본문의 ‘심판’은 동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본절과 5절 내용은 여호와의 날에 되어질 상황을 그린 2:3,4과, 이방에 공의를 베푸실 ‘종’의 노래에 해당하는 42:1 내용과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본문의 예언 역시 바벨론 포로 귀환뿐 아니라 메시야 시대에 되어질 일들을 통해 온전히 성취될 것이라 하겠다.

카롭 치드키 야차 이쉐이 우제로아이 암밈 이쉬포트 엘라이 이임 예카우우 웨엘 제로이 예야헤룬

개역개정,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새번역,5 나의 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나의 구원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가 능력으로 뭇 백성을 재판하겠다. 섬들이 나를 우러러 바라보며, 나의 능력을 의지할 것이다.

우리말성경,5 내 정의는 가까이 왔고 내 구원은 이미 나타났다. 내가 내 팔로 뭇 백성을 심판하겠다. 그러면 섬들이 나를 갈망하고 내 팔에 희망을 둘 것이다.

가톨릭성경,5 내가 재빠르게 나의 정의를 가까이 가져오리니 나의 구원이 나아가고 나의 팔이 민족들을 심판하리라. 섬들이 나를 고대하며 나의 팔에 희망을 걸리라.

영어NIV,5 My righteousness draws near speedily, my salvation is on the way, and my arm will bring justice to the nations. The islands will look to me and wait in hope for my arm.

영어NASB,5 “My righteousness is near, My salvation has gone forth, And My arms will judge the peoples; The coastlands will wait for Me, And for My arm they will wait expectantly.

영어MSG,5 My deliverance arrives on the run, my salvation right on time. I’ll bring justice to the peoples. Even faraway islands will look to me and take hope in my saving power.

영어NRSV,5 I will bring near my deliverance swiftly, my salvation has gone out and my arms will rule the peoples; the coastlands wait for me, and for my arm they hope.

헬라어구약Septuagint,5 εγγιζει ταχυ η δικαιοσυνη μου και εξελευσεται ως φως το σωτηριον μου και εις τον βραχιονα μου εθνη ελπιουσιν εμε νησοι υπομενουσιν και εις τον βραχιονα μου ελπιουσιν

라틴어Vulgate,5 prope est iustus meus egressus est salvator meus et brachia mea populos iudicabunt me insulae expectabunt et brachium meum sustinebunt

히브리어구약BHS,5 קָרֹוב צִדְקִי יָצָא יִשְׁעִי וּזְרֹעַי עַמִּים יִשְׁפֹּטוּ אֵלַי אִיִּים יְקַוּוּ וְאֶל־זְרֹעִי יְיַחֵלוּן׃

성 경: [사51:5]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 계속해서 복합 성취를 겨냥한 예언이 나오며, 특히 종말론적 색채가 짙은 본문은 하나님의 공의와 이스라엘의 죄의 해결을 동시에 만족시킬 대속주이신 메이야의 대속 사역을 암시한다. 한편 메시야의 대속 사역은 1차적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2차적으로는 이방의 택한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 팔 –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하며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26)을 가리킨다.

세우 라솨마임 에네켐 웨합비투 엘 하아레츠 밑타하트 키 솨마임 케아솬 니멜라후 웨하아레츠 캅베게드 티블레 웨요쉬베하 케모 켄 예무툰 위슈아티 레올람 티흐예 웨치드카티 로 테하트

개역개정,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새번역,6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아라. 그리고 땅을 내려다보아라. 하늘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땅은 옷처럼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하루살이 같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 구원은 영원하며, 내 의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6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 아래로 땅을 내려다보라. 하늘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땅은 옷처럼 해어져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살이처럼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 구원은 영원하고 내 정의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성경,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어라. 아래로 땅을 바라보아라. 하늘은 연기처럼 스러지고 땅은 옷처럼 해지며 그 주민들은 모기 떼처럼 죽어 가리라. 그러나 나의 구원은 영원하고 나의 의로움은 꺾이지 않으리라.

영어NIV,6 Lift up your eyes to the heavens, look at the earth beneath; the heavens will vanish like smoke, the earth will wear out like a garment and its inhabitants die like flies. But my salvation will last forever, my righteousness will never fail.

영어NASB,6 “Lift up your eyes to the sky, Then look to the earth beneath; For the sky will vanish like smoke, And the earth will wear out like a garment, And its inhabitants will die in like manner, But My salvation shall be forever, And My righteousness shall not wane.

영어MSG,6 Look up at the skies, ponder the earth under your feet. The skies will fade out like smoke, the earth will wear out like work pants, and the people will die off like flies. But my salvation will last forever, my setting-things-right will never be obsolete.

영어NRSV,6 Lift up your eyes to the heavens, and look at the earth beneath; for the heavens will vanish like smoke, the earth will wear out like a garment, and those who live on it will die like gnats; but my salvation will be forever, and my deliverance will never be ended.

헬라어구약Septuagint,6 αρατε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τους οφθαλμους υμων και εμβλεψατε εις την γην κατω οτι ο ουρανος ως καπνος εστερεωθη η δε γη ως ιματιον παλαιωθησεται οι δε κατοικουντες την γην ωσπερ ταυτα αποθανουνται το δε σωτηριον μου εις τον αιωνα εσται η δε δικαιοσυνη μου ου μη εκλιπη

라틴어Vulgate,6 levate in caelum oculos vestros et videte sub terra deorsum quia caeli sicut fumus liquescent et terra sicut vestimentum adteretur et habitatores eius sicut haec interibunt salus autem mea in sempiternum erit et iustitia mea non deficiet

히브리어구약BHS,6 שְׂאוּ לַשָּׁמַיִם עֵינֵיכֶם וְהַבִּיטוּ אֶל־הָאָרֶץ מִתַּחַת כִּי־שָׁמַיִם כֶּעָשָׁן נִמְלָחוּ וְהָאָרֶץ כַּבֶּגֶד תִּבְלֶה וְיֹשְׁבֶיהָ כְּמֹו־כֵן יְמוּתוּן וִישׁוּעָתִי לְעֹולָם תִּהְיֶה וְצִדְקָתִי לֹא תֵחָת׃ ס

성 경: [사51:6]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하늘이 연기같이 … 죽으려니와 – 만물의 일시성,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묘사이지만 종말에 되어질 어떤 징조에 대한 암시가 정확히 담겨 있지 않다고 볼 수도 없는 구절이다. 이 같은 묘사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앞서 언급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통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의 선택받은 자의 구원은 결국 성취되고 말 분명한 사실이다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시 102:26;히 1:11,12).

쉬메우 엘라이 요데에 체뎈 암 토라티 벨립밤 알 티레우 헬파트 에노쉬 우미기두포탐 알 테핱투

개역개정,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새번역,7 의를 아는 사람들아, 마음 속에 내 율법을 간직한 백성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비방하는 것에 놀라지 말아라.

우리말성경,7 정의를 아는 사람들아, 내 가르침을 마음에 두는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사람의 잔소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욕설에 겁먹지 말라.

가톨릭성경,7 내 말을 들어라, 의로움을 아는 이들아 내 가르침을 마음속에 간직한 백성아. 사람들의 모욕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악담에 낙심하지 마라. 그들을 옷인 양 좀이 먹어 버리고

영어NIV,7 “Hear me, you who know what is right, you people who have my law in your hearts: Do not fear the reproach of men or be terrified by their insults.

영어NASB,7 “Listen to Me, you who know righteousness, A people in whose heart is My law; Do not fear the reproach of man, Neither be dismayed at their revilings.

영어MSG,7 “Listen now, you who know right from wrong, you who hold my teaching inside you: Pay no attention to insults, and when mocked don’t let it get you down.

영어NRSV,7 Listen to me, you who know righteousness, you people who have my teaching in your hearts; do not fear the reproach of others, and do not be dismayed when they revile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7 ακουσατε μου οι ειδοτες κρισιν λαος μου ου ο νομος μου εν τη καρδια υμων μη φοβεισθε ονειδισμον ανθρωπων και τω φαυλισμω αυτων μη ηττασθε

라틴어Vulgate,7 audite me qui scitis iustum populus lex mea in corde eorum nolite timere obprobrium hominum et blasphemias eorum ne metuatis

히브리어구약BHS,7 שִׁמְעוּ אֵלַי יֹדְעֵי צֶדֶק עַם תֹּורָתִי בְלִבָּם אַל־תִּירְאוּ חֶרְפַּת אֱנֹושׁ וּמִגִּדֻּפֹתָם אַל־תֵּחָתּוּ׃

성 경: [사51:7]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의를 아는 자들 …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 –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여호와의 구원을 사모하여 율법대로 살아가고자 힘쓰는 이들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특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뜻한다. 이제 바벨론 포로 사건을 놓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가 어떻게 구원받겠느냐’라고 조롱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위기 때 여호와의 언약적 신실성을 확신하는 이들은 결코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마 10:28).

키 캅베게드 요클렘 아쉬 웨캋체메르 요클렘 사스 웨치드카티 레올람 티흐예 위슈아티 레도르 도림

개역개정,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새번역,8 좀이 옷을 먹듯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벌레가 양털을 먹듯이 그들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는 영원하며,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칠 것이다.

우리말성경,8 좀이 그들을 옷처럼 먹고 벌레가 그들을 양털처럼 먹을 것이지만 내 의는 영원하고 내 구원은 대대에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8 그들을 양털인 양 벌레가 먹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로움은 영원하고 나의 구원은 대대에 미치리라.

영어NIV,8 For the moth will eat them up like a garment; the worm will devour them like wool. But my righteousness will last forever, my salvation through all generations.”

영어NASB,8 “For the moth will eat them like a garment, And the grub will eat them like wool. But My righteousness shall be forever, And My salvation to all generations.”

영어MSG,8 Those insults and mockeries are moth-eaten, from brains that are termite-ridden, But my setting-things-right lasts, my salvation goes on and on and on.”

영어NRSV,8 For the moth will eat them up like a garment, and the worm will eat them like wool; but my deliverance will be forever, and my salvation to all generations.

헬라어구약Septuagint,8 ωσπερ γαρ ιματιον βρωθησεται υπο χρονου και ως ερια βρωθησεται υπο σητος η δε δικαιοσυνη μου εις τον αιωνα εσται το δε σωτηριον μου εις γενεας γενεων

라틴어Vulgate,8 sicut enim vestimentum sic comedet eos vermis et sicut lanam sic devorabit eos tinea salus autem mea in sempiternum erit et iustitia mea in generationes generationum

히브리어구약BHS,8 כִּי כַבֶּגֶד יֹאכְלֵם עָשׁ וְכַצֶּמֶר יֹאכְלֵם סָס וְצִדְקָתִי לְעֹולָם תִּהְיֶה וִישׁוּעָתִי לְדֹור דֹּורִים׃ ס

성 경: [사51:8]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하나님의 구원 약속]

󰃨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 좀이 의복을 갉아먹어버리듯이 무기력하게 멸망당하고 말 악인들의 허망함과 유약함을 나타낸다(Fausset). 이처럼 유약한 인간이라면 그가 내뱉는 조롱조의 말은 생명력도 없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하나님은 그 무엇에 의해서도 해(害)를 받지 않으시는 분이며 따라서 그분에게서 나온 말씀, 구원의 계시는 생명력이 있다.

우리 우리 리베쉬 오즈 제로아 아도나이 우리 키메 케뎀 도로트 올라밈 할로 아트 히 함마흐체베트 라합 메홀렐렡 탄닌

개역개정,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새번역,9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힘으로 무장하십시오, 주님의 팔이여! 오래 전 옛날처럼 깨어나십시오! ㉠라합을 토막 내시고 용을 찌르시던 바로 그 팔이 아니십니까? / ㉠전설적인 바다 괴물, 혼돈과 악의 세력을 상징함. 때로는 이집트의 상징

우리말성경,9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힘으로 무장하십시오, 여호와의 팔이여! 옛날 옛적에 그랬던 것처럼 깨어나십시오! 라합을 갈기갈기 찢고 바다 괴물을 찌르신 분이 주가 아니십니까?

가톨릭성경,9 깨어나소서, 깨어나소서, 힘을 입으소서, 주님의 팔이시여. 옛날처럼, 오래전 그 시절처럼 깨어나소서. 라합을 베어 쓰러뜨리시고 용을 꿰찌르신 이가 당신이 아니십니까?

영어NIV,9 Awake, awake! Clothe yourself with strength, O arm of the LORD; awake, as in days gone by, as in generations of old. Was it not you who cut Rahab to pieces, who pierced that monster through?

영어NASB,9 Awake, awake, put on strength, O arm of the LORD; Awake as in the days of old, the generations of long ago. Was it not You who cut Rahab in pieces, Who pierced the dragon?

영어MSG,9 Wake up, wake up, flex your muscles, GOD! Wake up as in the old days, in the long ago. Didn’t you once make mincemeat of Rahab, dispatch the old chaos-dragon?

영어NRSV,9 Awake, awake, put on strength, O arm of the LORD! Awake, as in days of old, the generations of long ago! Was it not you who cut Rahab in pieces, who pierced the dragon?

헬라어구약Septuagint,9 εξεγειρου εξεγειρου ιερουσαλημ και ενδυσαι την ισχυν του βραχιονος σου εξεγειρου ως εν αρχη ημερας ως γενεα αιωνος ου συ ει

라틴어Vulgate,9 consurge consurge induere fortitudinem brachium Domini consurge sicut in diebus antiquis in generationibus saeculorum numquid non tu percussisti superbum vulnerasti draconem

히브리어구약BHS,9 עוּרִי עוּרִי לִבְשִׁי־עֹז זְרֹועַ יְהוָה עוּרִי כִּימֵי קֶדֶם דֹּרֹות עֹולָמִים הֲלֹוא אַתְּ־הִיא הַמַּחְצֶבֶת רַהַב מְחֹולֶלֶת תַּנִּין׃

성 경: [사51:9]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 깨소서 깨소서 – 하나님의 과거의 전능 사역을 회고하며 아뢰는 이 호소는 ‘공동체적 애가'(corporate lamentation)의 특성을 보여준다(시 44:1-3, 23;80:2). 하나님의 구원을 재촉하는 듯한 이 호소는 하나님의 무관심에 대해 원망하는 말이 아니라 긴박한 현실 상황으로부터 한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에서 나온 말이다.

󰃨 라합 – ‘애굽’의 시적인 이름이다. 이미 본서 저자가 사용한 바 있다 : “애굽의 도움이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30:7).

󰃨 용(*, 탄닌) – 문자적인 뜻은 ‘악어’인데 악어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애굽 정복 뒤에 애굽의 동전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확인하였듯이 애굽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특히 그 왕 바로를 가리킨다(27:1;시 74:13,14;겔 32:2). 선지자는 여기서 기적적인 출애굽 사건 중 바로의 항복기사를 회상하고 있다.

할로 아트 히 함마하레베트 얌 메 테홈 랍바 핫사마 마아맠케 얌 데렠 라아볼 게울림

개역개정,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새번역,10 바다와 깊고 넓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의 깊은 곳을 길로 만드셔서, 속량받은 사람들을 건너가게 하신, 바로 그 팔이 아니십니까?

우리말성경,10 바다를, 깊고도 깊은 물을 완전히 말리시고 바다 속 깊이 길을 만드셔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건너가게 하신 분이 주가 아니십니까?

가톨릭성경,10 바다를, 그 큰 심연의 물을 말리신 이가 당신이 아니십니까? 구원받은 이들이 건너가도록 당신께서 깊은 바다를 길로 만드셨습니다.

영어NIV,10 Was it not you who dried up the sea, the waters of the great deep, who made a road in the depths of the sea so that the redeemed might cross over?

영어NASB,10 Was it not You who dried up the sea, The waters of the great deep; Who made the depths of the sea a pathway For the redeemed to cross over?

영어MSG,10 And didn’t you once dry up the sea, the powerful waters of the deep, And then made the bottom of the ocean a road for the redeemed to walk across?

영어NRSV,10 Was it not you who dried up the sea, the waters of the great deep; who made the depths of the sea a way for the redeemed to cross over?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η ερημουσα θαλασσαν υδωρ αβυσσου πληθος η θεισα τα βαθη της θαλασσης οδον διαβασεως ρυομενοις

라틴어Vulgate,10 numquid non tu siccasti mare aquam abyssi vehementis qui posuisti profundum maris viam ut transirent liberati

히브리어구약BHS,10 הֲלֹוא אַתְּ־הִיא הַמַּחֲרֶבֶת יָם מֵי תְּהֹום רַבָּה הַשָּׂמָה מַעֲמַקֵּי־יָם דֶּרֶךְ לַעֲבֹר גְּאוּלִים׃

성 경: [사51:10]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 바다를 … 주가 아니시니이까 – 여기서 ‘바다’는 홍해를 가리킨다(43:6;출 14:21). ‘당신은 홍해 기적 사건을 일으키신 바로 그 전능자가 아니십니까?’라고 묻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의 질문이다.

우페두예 아도나이 예슈분 우바우 치욘 베린나 웨시므하트 올람 알 로솸 사손 웨시므하 얏시군 나수 야곤 와아나하

개역개정,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새번역,11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입니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1 여호와께서 구해 내신 사람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이 노래하며 시온으로 올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에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고 슬픔과 한숨이 달아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1 주님께서 구해 내신 이들이 돌아오리이다. 환호 소리와 함께 시온으로 들어서리이다.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의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이다.

영어NIV,11 The ransomed of the LORD will return. They will enter Zion with singing; everlasting joy will crown their heads. Gladness and joy will overtake them, and sorrow and sighing will flee away.

영어NASB,11 So the ransomed of the LORD will return, And come with joyful shouting to Zion; And everlasting joy will be on their heads. They will obtain gladness and joy, And sorrow and sighing will flee away.

영어MSG,11 In the same way GOD’s ransomed will come back, come back to Zion cheering, shouting, Joy eternal wreathing their heads, exuberant ecstasies transporting them– and not a sign of moans or groans.

영어NRSV,11 So the ransomed of the LORD shall return, and come to Zion with singing; everlasting joy shall be upon their heads; they shall obtain joy and gladness, and sorrow and sighing shall flee away.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λελυτρωμενοις υπο γαρ κυριου αποστραφησονται και ηξουσιν εις σιων μετ’ ευφροσυνης και αγαλλιαματος αιωνιου επι γαρ της κεφαλης αυτων αγαλλιασις και αινεσις και ευφροσυνη καταλημψεται αυτους απεδρα οδυνη και λυπη και στεναγμος

라틴어Vulgate,11 et nunc qui redempti sunt a Domino revertentur et venient in Sion laudantes et laetitia sempiterna super capita eorum gaudium et laetitiam tenebunt fugiet dolor et gemitus

히브리어구약BHS,11 וּפְדוּיֵי יְהוָה יְשׁוּבוּן וּבָאוּ צִיֹּון בְּרִנָּה וְשִׂמְחַת עֹולָם עַל־רֹאשָׁם שָׂשֹׂון וְשִׂמְחָה יַשִּׂיגוּן נָסוּ יָגֹון וַאֲנָחָה׃ ס

성 경: [사51:1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사야의 간구]

󰃨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 1차적으로는 넓게 펼쳐진 광야를 지나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귀환민들에게 찬양과 감격이 가득할 것을 서술한 것이다. 한편 본절이 9,10절의 애가적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다하여 본절의 화자(話者)를 하나님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으나, 원문상 9-11절과 12-16절은 서술 시점 및 사용된 인칭에 있어 분명한 구별성을 보이고 있다.

아노키 아노키 후 메나헤므켐 미 아트 왙티르이 메에노쉬 야무트 우밉벤 아담 하치르 인나텐

개역개정,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새번역,12 “너희를 위로하는 이는 나, 바로 내가 아니냐? 그런데 죽을 인간을 두려워하며, 한갓 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너는 누구냐?”

우리말성경,12 “나, 내가 너희를 위로하는 이다. 너는 누구기에 죽을 운명의 사람을 두려워하고 풀 같은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가톨릭성경,12 내가, 바로 내가 너희의 위로자이다. 그런데 죽을 인생을 두려워하고 풀 같은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너는 누구냐?

영어NIV,12 “I, even I, am he who comforts you. Who are you that you fear mortal men, the sons of men, who are but grass,

영어NASB,12 “I, even I, am He who comforts you. Who are you that you are afraid of man who dies, And of the son of man who is made like grass;

영어MSG,12 “I, I’m the One comforting you. What are you afraid of–or who? Some man or woman who’ll soon be dead? Some poor wretch destined for dust?

영어NRSV,12 I, I am he who comforts you; why then are you afraid of a mere mortal who must die, a human being who fades like grass?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εγω ειμι εγω ειμι ο παρακαλων σε γνωθι τινα ευλαβηθεισα εφοβηθης απο ανθρωπου θνητου και απο υιου ανθρωπου οι ωσει χορτος εξηρανθησαν

라틴어Vulgate,12 ego ego ipse consolabor vos quis tu ut timeres ab homine mortali et a filio hominis qui quasi faenum ita arescet

히브리어구약BHS,12 אָנֹכִי אָנֹכִי הוּא מְנַחֶםְכֶם מִי־אַתְּ וַתִּירְאִי מֵאֱנֹושׁ יָמוּת וּמִבֶּן־אָדָם חָצִיר יִנָּתֵן׃

성 경: [사51:1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나여늘 나여늘(*, 아노키 아노키) – 보기 드물게, ‘아노키’가 두 번 사용되었는데 참위로자, 구원자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 반복되는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그의 백성에 대한 답답한 심정의 표출이기도 하다.

와티쉬카흐 아도나이 오세카 노테 솨마임 웨요세드 아레츠 왙테파헤드 타미드 콜 하욤 미페네 하마트 함메치크 카아쉘 코넨 레하쉬히트 웨아예 하마트 함메치크

개역개정,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새번역,13 너희는 잊었다. 너희를 지으신 하나님, 하늘을 펴시고 땅을 세우신 주님을 잊었다. 압박자들이 너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 해서, 압박자들의 그 분노가 두려워서, 너희는 날마다 떨고 있다. 그러나 압박자들의 분노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말성경,13 너는 너를 지으신 여호와를 잊어버렸구나. 하늘을 펼치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신 여호와를 잊어버렸구나. 그러고는 파멸이 정해진 그 압제자의 분노 때문에 날마다 공포 속에 살고 있구나. 도대체 그 압제자의 분노가 어디에 있느냐?

가톨릭성경,13 너는 잊었다, 너를 만드신 주님을 하늘을 펼치시고 땅의 기초를 놓으신 분을. 압제자가 너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였다고 너는 날마다 그의 노여움 앞에서 줄곧 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압제자의 노여움이 어디 있느냐?

영어NIV,13 that you forget the LORD your Maker, who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that you live in constant terror every day because of the wrath of the oppressor, who is bent on destruction? For where is the wrath of the oppressor?

영어NASB,13 That you have forgotten the LORD your Maker, Who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That you fear continually all day long because of the fury of the oppressor, As he makes ready to destroy? But where is the fury of the oppressor?

영어MSG,13 You’ve forgotten me, GOD, who made you, who unfurled the skies, who founded the earth. And here you are, quaking like an aspen before the tantrums of a tyrant who thinks he can kick down the world. But what will come of the tantrums?

영어NRSV,13 You have forgotten the LORD, your Maker, who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You fear continually all day long because of the fury of the oppressor, who is bent on destruction. But where is the fury of the oppressor?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ι επελαθου θεον τον ποιησαντα σε τον ποιησαντα τον ουρανον και θεμελιωσαντα την γην και εφοβου αει πασας τας ημερας το προσωπον του θυμου του θλιβοντος σε ον τροπον γαρ εβουλευσατο του αραι σε και νυν που ο θυμος του θλιβοντος σε

라틴어Vulgate,13 et oblitus es Domini factoris tui qui tetendit caelos et fundavit terram et formidasti iugiter tota die a facie furoris eius qui te tribulabat et paraverat ad perdendum ubi nunc est furor tribulantis

히브리어구약BHS,13 וַתִּשְׁכַּח יְהוָה עֹשֶׂךָ נֹוטֶה שָׁמַיִם וְיֹסֵד אָרֶץ וַתְּפַחֵד תָּמִיד* כָּל־הַיֹּום מִפְּנֵי חֲמַת הַמֵּצִיק כַּאֲשֶׁר כֹּוןֵן לְהַשְׁחִית וְאַיֵּה חֲמַת הַמֵּצִיק׃

성 경: [사51:1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 원문 직역은 ‘너를 멸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이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은 표적을 정하고 활시위를 뒤로 잡아당긴 상태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시 7:13;11:2;21:12, Maurer). 사실 이와 같은 상태 속에 있다면 두려워떨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본절은 그와 같은 상태 속에 있더라도, 우주 안에 되어지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람과 하나님 중에 누구를 더 의지할 것인가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가며 날마다 부딪혀야 하는 심각한 질문이다.

미할 초에 레힢파테아흐 웨로 야무트 랏솨하트 웨로 예흐살 라흐모

개역개정,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새번역,14 갇혀 있는 포로들이 이제 곧 풀려 난다. 그들은 오래오래 살 것이며, 먹거리가 모자라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4 움츠린 죄수들이 곧 해방될 것이다. 그들은 죽어서 구덩이에 묻히지도 않고 빵이 부족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4 사슬에 묶인 이들이 곧 풀려나리니 그들은 죽지도, 구렁으로 내려가지도 않고 그들에게는 양식이 모자라지도 않으리라.

영어NIV,14 The cowering prisoners will soon be set free; they will not die in their dungeon, nor will they lack bread.

영어NASB,14 “The exile will soon be set free, and will not die in the dungeon, nor will his bread be lacking.

영어MSG,14 The victims will be released before you know it. They’re not going to die. They’re not even going to go hungry.

영어NRSV,14 The oppressed shall speedily be released; they shall not die and go down to the Pit, nor shall they lack bread.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εν γαρ τω σωζεσθαι σε ου στησεται ουδε χρονιει

라틴어Vulgate,14 cito veniet gradiens ad aperiendum et non interficiet usque ad internicionem nec deficiet panis eius

히브리어구약BHS,14 מִהַר צֹעֶה לְהִפָּתֵחַ וְלֹא־יָמוּת לַשַּׁחַת וְלֹא יֶחְסַר לַחְמֹו׃

성 경: [사51:14]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 여기 ‘결박된 포로'(*, 초에)의 문자적인 뜻은 ‘한 쪽으로 치우친 것’ 혹은 ‘기운 것’으로 담은 액체를 쏟기 위해 기울인 그릇 따위를 연상케 한다(헴 48:12). 그렇다면 이것은 포로로서 그 헐리를 구부린 모습으로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회화적 표현이라 보면 적절하다. 이제 그 포로 상태에서 속히 놓인다면 본절의 시점은 포로 시대 말기 쯤이 될 것이다. 이 표현을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신약 교회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Fausset).

웨아노키 아도나이 엘로헤카 로가 하얌 와예헤무 갈라우 아도나이 체바오트 쉐모

개역개정,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새번역,15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고, 거친 파도를 일으키는 하나님이니, 나의 이름은 만군의 주다.

우리말성경,15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다. 바다를 휘저어 사나운 파도를 일으키는,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다.

가톨릭성경,15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바다를 뒤흔들어 파도를 울부짖게 하는 이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다.

영어NIV,15 For I am the LORD your God, who churns up the sea so that its waves roar–the LORD Almighty is his name.

영어NASB,15 “For I am the LORD your God, who stirs up the sea and its waves roar (the LORD of hosts is His name).

영어MSG,15 For I am GOD, your very own God, who stirs up the sea and whips up the waves, named GOD-of-the-Angel-Armies.

영어NRSV,15 For I am the LORD your God, who stirs up the sea so that its waves roar–the LORD of hosts is his name.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οτι εγω ο θεος σου ο ταρασσων την θαλασσαν και ηχων τα κυματα αυτης κυριος σαβαωθ ονομα μοι

라틴어Vulgate,15 ego autem sum Dominus Deus tuus qui conturbo mare et intumescunt fluctus eius Dominus exercituum nomen meum

히브리어구약BHS,15 וְאָנֹכִי יְהוָה אֱלֹהֶיךָ רֹגַע הַיָּם וַיֶּהֱמוּ גַּלָּיו יְהוָה צְבָאֹות שְׁמֹו׃

성 경: [사51:15]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고 흉용케 하는 자 – 원문 직역은 ‘그 물결이 뛰는 바다를 나눈 자’이다. ‘꾸짖어 뛰는 파도를 잠잠케 한 자’로 번역하는 역본도 있다. 이 같은 번역들을 종합할때 본 구절은 파도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흉용한 바다를 명령하셔서 잔잔케 하시고 둘로 나누어 그 사이에 길을 내심으로 이스라엘로 무사히 건너게 하셨던 홍해 도보 사건을 암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와아심 데바라이 베피카 우베첼 야디 킷시티카 리네토아 솨마임 웨리소드 아레츠 웨레모르 레치욘 암미 앝타

개역개정,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새번역,16 내가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맡기고, 나의 손 그늘에 너를 숨겨 준다. 나는 하늘을 폈으며, 땅의 기초를 놓았고, 시온에게 ‘너는 나의 백성’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말성경,16 나는 네 입에 내 말을 담았고 내 손 그림자로 너를 덮었다. 하늘을 펼치고 땅의 기초를 놓은 내가 시온에게 말한다. ‘너는 내 백성이다.’”

가톨릭성경,16 나는 네 입에 내 말을 담아 주고 내 손 그늘에 너를 숨겨 준다. 나는 하늘을 심고 땅의 기초를 놓으며 시온에게 말한다. ” 너는 나의 백성이다.”

영어NIV,16 I have put my words in your mouth and covered you with the shadow of my hand–I who set the heavens in place, who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and who say to Zion, ‘You are my people.’”

영어NASB,16 “And I have put My words in your mouth, and have covered you with the shadow of My hand, to establish the heavens, to found the earth, and to say to Zion, ‘You are My people.’”

영어MSG,16 I teach you how to talk, word by word, and personally watch over you, Even while I’m unfurling the skies, setting earth on solid foundations, and greeting Zion: ‘Welcome, my people!’”

영어NRSV,16 I have put my words in your mouth, and hidden you in the shadow of my hand, stretching out the heavens and laying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and saying to Zion, “You are my people.”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θησω τους λογους μου εις το στομα σου και υπο την σκιαν της χειρος μου σκεπασω σε εν η εστησα τον ουρανον και εθεμελιωσα την γην και ερει σιων λαος μου ει συ

라틴어Vulgate,16 posui verba mea in ore tuo et in umbra manus meae protexi te ut plantes caelos et fundes terram et dicas ad Sion populus meus es tu

히브리어구약BHS,16 וָאָשִׂים דְּבָרַי בְּפִיךָ וּבְצֵל יָדִי כִּסִּיתִיךָ לִנְטֹעַ שָׁמַיִם וְלִיסֹד אָרֶץ וְלֵאמֹר לְצִיֹּון עַמִּי־אָתָּה׃ ס

성 경: [사51:16]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거듭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

󰃨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 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본문이 세 번째 종의 노래를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할 때(49:2), 이는 본서에서 줄곧 암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종’을 통한 신기원적인 구원 사역을 가리킨다고 추측할 수 있다(49:2;50:4,5;59:21;신 18:18;요 3:34, G.W. Grogan).

히테오르리 히테오르리 쿠미 예루솰람 아쉘 솨티트 미야드 아도나이 엩 코스 하마토 엩 쿱바아트 코스 핱타르엘라 솨티트 마치트

개역개정,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새번역,17 깨어라, 깨어라, 일어나거라, 예루살렘아! 너, 주님의 손에서 그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예루살렘아! 비틀거리게 하는 잔을, 네가 바닥까지 다 들이마셨다.

우리말성경,17 깨어나거라. 깨어나거라! 너, 여호와의 손에서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예루살렘아, 일어나거라! 너는 사람을 비틀거리게 하는 술잔을 모두 비워 버렸구나.

가톨릭성경,17 깨어라, 깨어라 일어나라, 예루살렘아. 주님의 손에서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너, 비틀거리게 하는 술잔을 바닥까지 마신 너.

영어NIV,17 Awake, awake! Rise up, O Jerusalem, you who have drunk from the hand of the LORD the cup of his wrath, you who have drained to its dregs the goblet that makes men stagger.

영어NASB,17 Rouse yourself! Rouse yourself! Arise, O Jerusalem, You who have drunk from the Lord’s hand the cup of His anger; The chalice of reeling you have drained to the dregs.

영어MSG,17 So wake up! Rub the sleep from your eyes! Up on your feet, Jerusalem! You’ve drunk the cup GOD handed you, the strong drink of his anger. You drank it down to the last drop, staggered and collapsed, dead-drunk.

영어NRSV,17 Rouse yourself, rouse yourself! Stand up, O Jerusalem, you who have drunk at the hand of the LORD the cup of his wrath, who have drunk to the dregs the bowl of staggering.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εξεγειρου εξεγειρου αναστηθι ιερουσαλημ η πιουσα το ποτηριον του θυμου εκ χειρος κυριου το ποτηριον γαρ της πτωσεως το κονδυ του θυμου εξεπιες και εξεκενωσας

라틴어Vulgate,17 elevare elevare consurge Hierusalem quae bibisti de manu Domini calicem irae eius usque ad fundum calicis soporis bibisti et epotasti usque ad feces

히브리어구약BHS,17 הִתְעֹורְרִי הִתְעֹורְרִי קוּמִי יְרוּשָׁלִַם אֲשֶׁר שָׁתִית מִיַּד יְהוָה אֶת־כֹּוס חֲמָתֹו אֶת־קֻבַּעַת כֹּוס הַתַּרְעֵלָה שָׁתִית מָצִית׃

성 경: [사51:17]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 – 당시 바벨론의 포로로 생활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분노의 잔을 마신 자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담긴 잔을 마신 자는 전적으로 파멸당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비유는 그리스도에 대속적 죽음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바 있다(막 10:38). 한편 9절에서 사용된 ‘히트오레리'(*) 곧 ‘깰지어다’가 여기서도 두 번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1차적으로 진정 깨어나야 할 존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함인 것 같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될 것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엔 메나헬 라흐 미콜 바님 얄레다 웨엔 마하지크 베야다흐 미콜 바님 긷델라

개역개정,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네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새번역,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가운데 너를 인도하여 줄 아들이 없을 것이며, 네가 기른 모든 아들 가운데 너의 손을 이끌어 줄 아들이 없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8 자기가 낳은 모든 아들 가운데 저 여자를 인도할 아들이 없구나. 자기가 키운 모든 아들 가운데 저 여자의 손을 잡아 줄 아들이 없구나.

가톨릭성경,18 제가 낳은 모든 자식들 가운데 저를 인도해 줄 자 하나도 없고 제가 키운 모든 자식들 가운데 손을 붙잡아 주는 자 하나도 없는 신세.

영어NIV,18 Of all the sons she bore there was none to guide her; of all the sons she reared there was none to take her by the hand.

영어NASB,18 There is none to guide her among all the sons she has borne; Nor is there one to take her by the hand among all the sons she has reared.

영어MSG,18 And nobody to help you home, no one among your friends or children to take you by the hand and put you in bed.

영어NRSV,18 There is no one to guide her among all the children she has borne; there is no one to take her by the hand among all the children she has brought up.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ουκ ην ο παρακαλων σε απο παντων των τεκνων σου ων ετεκες και ουκ ην ο αντιλαμβανομενος της χειρος σου ουδε απο παντων των υιων σου ων υψωσας

라틴어Vulgate,18 non est qui sustentet eam ex omnibus filiis quos genuit et non est qui adprehendat manum eius ex omnibus filiis quos enutrivit

히브리어구약BHS,18 אֵין־מְנַהֵל לָהּ מִכָּל־בָּנִים יָלָדָה וְאֵין מַחֲזִיק בְּיָדָהּ מִכָּל־בָּנִים גִּדֵּלָה׃

성 경: [사51:18]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포로 상태의 이스라엘을 회복할 존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은 바사 왕 고레스의 개입에 의해 실현되었다. 아울러 본문은 영적 이스라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신적 존재 곧 메시야를 통해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쉬타임 헨나 코르오타이크 미 야누드 라크 핫쇼드 웨핫쉐베르 웨하라압 웨하헤렙 미 아나하메크

개역개정,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닥쳤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누가 너를 위로하랴

새번역,19 전쟁으로 땅은 황폐해지고 백성은 굶주려 죽었다. 이 두 가지 재난이 너에게 닥쳤으나, 누가 너를 두고 슬퍼하겠느냐? 폐허와 파괴, 기근과 칼뿐이니, ㉡누가 너를 위로하겠느냐? / ㉡사해 사본과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과 불가타를 따름. 마소라 본문에는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겠느냐?’

우리말성경,19 이 두 가지 재앙이 네게 닥쳤지만 누가 너를 위해 함께 슬퍼해 주겠느냐? 폐허와 파멸과 굶주림과 칼뿐이니 누가 너를 위로하겠느냐?

가톨릭성경,19 이 두 가지가 너에게 닥쳐왔건만 누가 너를 동정하리오? 파멸과 파괴, 굶주림과 칼이 닥쳐왔건만 누가 너를 위로하리오?

영어NIV,19 These double calamities have come upon you–who can comfort you?–ruin and destruction, famine and sword–who can console you?

영어NASB,19 These two things have befallen you; Who will mourn for you? The devastation and destruction, famine and sword; How shall I comfort you?

영어MSG,19 You’ve been hit with a double dose of trouble –does anyone care? Assault and battery, hunger and death –will anyone comfort?

영어NRSV,19 These two things have befallen you–who will grieve with you?–devastation and destruction, famine and sword–who will comfort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δυο ταυτα αντικειμενα σοι τις σοι συλλυπηθησεται πτωμα και συντριμμα λιμος και μαχαιρα τις σε παρακαλεσει

라틴어Vulgate,19 duo sunt quae occurrerunt tibi quis contristabitur super te vastitas et contritio et fames et gladius quis consolabitur te

히브리어구약BHS,19 שְׁתַּיִם הֵנָּה קֹרְאֹתַיִךְ מִי יָנוּד לָךְ הַשֹּׁד וְהַשֶּׁבֶר וְהָרָעָב וְהַחֶרֶב מִי אֲנַחֲמֵךְ׃

성 경: [사51:19]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이 두가지 일 – 정확히는 ‘이 두 가지 일들’이다. 말하자면 두 쌍, 곧 네 가지 일들을 가리키는데, 먼저 한 쌍은 땅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황폐와 멸망이며 또 다른 한 쌍은 사람의 관점에서 본 것으로 기근과 칼, 곧 전쟁이다. 한편, 이를 내적 사건과 외적 사건으로 구분하는 견해(Aben Ezra, Kimchi), 혹은 기근으로 인한 황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멸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Clark).

바나이크 울레푸 솨케부 베로쉬 콜 후초트 케토 미케마르 하멜레임 하마트 아도나이 가아라트 엘로하이크

개역개정,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도다

새번역,20 너의 자녀들은, 주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책망을 하도 많이 받아서, 그물에 걸려 있는 영양처럼, 거리 모퉁이 모퉁이마다 쓰러져 있다.

우리말성경,20 네 아들들은 여호와의 진노와 하나님의 질책을 너무나도 많이 받아서 그물에 걸린 영양처럼 거리의 모퉁이마다 정신을 잃고 뻗어 있구나.

가톨릭성경,20 네 아들들은 주님의 노여움을, 네 하느님의 질책을 가득 입어 그물에 걸린 영양처럼 실신하여 길모퉁이마다 쓰러져 있구나.

영어NIV,20 Your sons have fainted; they lie at the head of every street, like antelope caught in a net. They are filled with the wrath of the LORD and the rebuke of your God.

영어NASB,20 Your sons have fainted, They lie helpless at the head of every street, Like an antelope in a net, Full of the wrath of the LORD, The rebuke of your God.

영어MSG,20 Your sons and daughters have passed out, strewn in the streets like stunned rabbits, Sleeping off the strong drink of GOD’s anger, the rage of your God.

영어NRSV,20 Your children have fainted, they lie at the head of every street like an antelope in a net; they are full of the wrath of the LORD, the rebuke of your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οι υιοι σου οι απορουμενοι οι καθευδοντες επ’ ακρου πασης εξοδου ως σευτλιον ημιεφθον οι πληρεις θυμου κυριου εκλελυμενοι δια κυριου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0 filii tui proiecti sunt dormierunt in capite omnium viarum sicut bestia inlaqueata pleni indignatione Domini increpatione Dei tui

히브리어구약BHS,20 בָּנַיִךְ עֻלְּפוּ שָׁכְבוּ בְּרֹאשׁ כָּל־חוּצֹות כְּתֹוא מִכְמָר הַמְלֵאִים חֲמַת־יְהוָה גַּעֲרַת אֱלֹהָיִךְ׃

성 경: [사51:20]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 여기 ‘모퉁이'(*, 로쉬)란 그 문자적인 뜻이 ‘머리’, ‘꼭대기’인데 거리의 ‘머리'(꼭대기)란 당시 한 도시의 모든 거리와 도로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였던 성문을 가리킨다. 당시 성문은 밤이 되면 폐쇄되었는데 문 안으로 들어오고자 했던 자로서 밤이 되어 그 문이 폐쇄되면 그 문 앞에 모여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모습 곧 여럿이 성문 앞에 모여있는 모습을 저자는 그물에 걸린 영양떼에 비유하고 있다. 어쩔 도리없이 그 발이 묶인 나그네와 같이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다.

라켄 쉬메이 나 조트 아니야 우쉬쿠라트 웨로 미야인

개역개정,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새번역,21 고통받는 자야, 마치 포도주라도 마신 듯이 비틀거리는 자야, 이 말을 들어라.

우리말성경,21 그러니 이제 이 말을 들어 보아라. 포도주도 아닌 것에 취해 버린 가엾은 사람아!

가톨릭성경,21 그러니 이 말을 들어라, 너 가련한 여인아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한 여인아.

영어NIV,21 Therefore hear this, you afflicted one, made drunk, but not with wine.

영어NASB,21 Therefore, please hear this, you afflicted, Who are drunk, but not with wine:

영어MSG,21 Therefore listen, please, you with your splitting headaches, You who are nursing the hangovers that didn’t come from drinking wine.

영어NRSV,21 Therefore hear this, you who are wounded, who are drunk, but not with wine: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δια τουτο ακουε τεταπεινωμενη και μεθυουσα ουκ απο οινου

라틴어Vulgate,21 idcirco audi hoc paupercula et ebria non a vino

히브리어구약BHS,21 לָכֵן שִׁמְעִי־נָא זֹאת עֲנִיָּה וּשְׁכֻרַת וְלֹא מִיָּיִן׃ ס

성 경: [사51:21]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 – ‘포도주 없이 취한 자’이다. 포도주 때문이 아니라 외적의 침입으로 비틀거리고 쓰러진 이스라엘의 형편을 지적으로 표현이다(29:9;애 3:15).

코 아마르 아도나이크 아도나이 웨로하이크 야립 암모 힌네 라카흐티 미야데크 엩 코스 핱타르엘라 엩 쿱바이트 코스 하마티 로 토시피 리쉬토타흐 오드

개역개정,22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새번역,22 너의 주, 그의 백성을 지키려고 싸우는 너의 하나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손에서, 비틀거리게 하는 그 잔 곧 나의 진노의 잔을 거두었으니, 다시는 네가 그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2 네 주 여호와, 그분의 백성을 위해 싸워 주시는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가 네 손에서 비틀거리게 하는 술잔, 내 진노의 잔을 빼앗았으니 네가 다시는 그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성경,22 너의 주인이신 주님이시며 당신 백성을 변호해 주시는 너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보라, 내가 네 손에서 비틀거리게 하는 그 술잔을 거두리니 너는 내 진노의 술잔을 다시는 마시지 않으리라.

영어NIV,22 This is what your Sovereign LORD says, your God, who defends his people: “See, I have taken out of your hand the cup that made you stagger; from that cup, the goblet of my wrath, you will never drink again.

영어NASB,22 Thus says your Lord, the LORD, even your God Who contends for His people, “Behold, I have taken out of your hand the cup of reeling; The chalice of My anger, You will never drink it again.

영어MSG,22 Your Master, your GOD, has something to say, your God has taken up his people’s case: “Look, I’ve taken back the drink that sent you reeling. No more drinking from that jug of my anger!

영어NRSV,22 Thus says your Sovereign, the LORD, your God who pleads the cause of his people: See, I have taken from your hand the cup of staggering; you shall drink no more from the bowl of my wrath.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ουτως λεγει κυριος ο θεος ο κρινων τον λαον αυτου ιδου ειληφα εκ της χειρος σου το ποτηριον της πτωσεως το κονδυ του θυμου και ου προσθηση ετι πιειν αυτο

라틴어Vulgate,22 haec dicit Dominator tuus Dominus et Deus tuus qui pugnavit pro populo suo ecce tuli de manu tua calicem soporis fundum calicis indignationis meae non adicies ut bibas illud ultra

히브리어구약BHS,22 כֹּה־אָמַר אֲדֹנַיִךְ יְהוָה וֵאלֹהַיִךְ יָרִיב עַמֹּו הִנֵּה לָקַחְתִּי מִיָּדֵךְ אֶת־כֹּוס הַתַּרְעֵלָה אֶת־קֻבַּעַת כֹּוס חֲמָתִי לֹא־תֹוסִיפִי לִשְׁתֹּותָהּ עֹוד׃

성 경: [사51:22]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 문자 그대로는, 다시는 바벨론 포로와 같은 시련과 재난을 허락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귀환 후에도 로마의 침공으로 동일한 시련과 재난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제 경건한 참이스라엘 백성, 곧 남은자들은 세상에서는 시련과 재난을 겪으나 결국 하나님 나라에 가서는 결코 동일한 고통을 겪지 않고 살게 될 것이다.

웨사므티하 베야드 모가이크 아쉘 아메루 레나프쉐크 쉐히 웨나아보라 왙타시미 카아레츠 게웨크 웨카후츠 라오브림

개역개정,23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네가 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새번역,23 이제 내가 그 잔을 너를 괴롭힌 자들의 손에 쥐어 주겠다. 그들은, 바로 너에게 ‘엎드려라, 우리가 딛고 건너가겠다’ 하고 말한 자들이다. 그래서 너는 그들더러 밟고 지나가라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길을 만들고, 허리를 펴고 엎드려서 그들이 너의 등을 밟고 다니게 하였다.”

우리말성경,23 이제 내가 그 잔을 너를 괴롭히던 사람들의 손에 쥐어 주겠다. 그들은 전에 네게 이렇게 말하던 사람들이다. ‘엎드려라. 우리가 딛고 지나가겠다.’그러면 너는 등을 마치 땅바닥인양, 행인들이 다니는 길바닥인양 만들지 않았었느냐?”

가톨릭성경,23 내가 너를 괴롭히는 자들의 손에 그 술잔을 놓으리라. 그들은 너에게 ‘ 엎드려라. 우리가 딛고 지나가겠다.’ 하였고 너는 네 등을 땅바닥처럼 만들어 그들이 바닥을 밟듯 그 위를 지나가게 하였다.”

영어NIV,23 I will put it into the hands of your tormentors, who said to you, ‘Fall prostrate that we may walk over you.’ And you made your back like the ground, like a street to be walked over.”

영어NASB,23 “And I will put it into the hand of your tormentors, Who have said to you, ‘Lie down that we may walk over you.’ You have even made your back like the ground, And like the street for those who walk over it.”

영어MSG,23 I’ve passed it over to your abusers to drink, those who ordered you, ‘Down on the ground so we can walk all over you!’ And you had to do it. Flat on the ground, you were the dirt under their feet.”

영어NRSV,23 And I will put it into the hand of your tormentors, who have said to you, “Bow down, that we may walk on you”; and you have made your back like the ground and like the street for them to walk on.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και εμβαλω αυτο εις τας χειρας των αδικησαντων σε και των ταπεινωσαντων σε οι ειπαν τη ψυχη σου κυψον ινα παρελθωμεν και εθηκας ισα τη γη τα μεταφρενα σου εξω τοις παραπορευομενοις

라틴어Vulgate,23 et ponam illud in manu eorum qui te humiliaverunt et dixerunt animae tuae incurvare ut transeamus et posuisti ut terram corpus tuum et quasi viam transeuntibus

히브리어구약BHS,23 וְשַׂמְתִּיהָ בְּיַד־מֹוגַיִךְ אֲשֶׁר־אָמְרוּ לְנַפְשֵׁךְ שְׁחִי וְנַעֲבֹרָה וַתָּשִׂימִי כָאָרֶץ גֵּוֵךְ וְכַחוּץ לַעֹבְרִים׃ ס

성 경: [사51:23]

주제1: [의로운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주제2: [이스라엘의 각성 촉구]

󰃨 그들의 앞에 … 하였느니라 –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잔혹하게 대하였던 사실에 대한 생생한 묘사이다. 정복자들이 문자 그대로 그 피정복 국가 왕의 목을 밟았던 관습은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수 10:24;6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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