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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 장 | 전도서 1장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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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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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공 : CGN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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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

전도서. 제 1 장. 모든 것이 헛되다.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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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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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전도서 1. 1. 1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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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6/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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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목) “전도서 1:1-18” / 작성: 정한조

본문 전도서 1:1-18 찬송가 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 해 아래 인생-헛되고 헛되니(1-1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왕이 젊은 시절에 아가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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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6/12/2022

View: 6471

전도서 1장 & 성경주석

문자적으로 “그 지혜.” 아마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솔로몬의 직접적인 연구와 관찰로써 그가 평생 쌓은 지혜와 관련된 말일 것이다. 히브리어 단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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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10/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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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1장1-11절 – 성경묵상 – 설향목 – Daum 카페

전도서1장1-11절 ·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3. 해 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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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4/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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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참 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허무함 – 언약성경장로교회

사람을 영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영적 침체에 빠진 사람을 일깨웁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서 일하게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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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ovenantbpkorea.org

Date Published: 9/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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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2절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Vanity of vanities, says the Prea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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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chch.kr

Date Published: 1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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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1-11절,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서 1장 1-11절, 무엇이 유익한가 … 솔로몬의 깨달음1:인생은 헛되다 … 전도서에서만 헛되다는 말, 헤벨이 38회 등장한다(히브리어 성경: 헤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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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karl21.tistory.com

Date Published: 7/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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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전도서 1장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전도서 1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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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qogNnspMegw

전도서 1

모든 것이 헛되다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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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2018/12/20(목) “전도서 1:1-18” / 작성: 정한조

본문 전도서 1:1-18

찬송가 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

해 아래 인생-헛되고 헛되니(1-1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왕이 젊은 시절에 아가서를 기록하였고, 장년기에 잠언서를, 그리고 젊은 시절 많은 여인들과 결혼하며 우상숭배를 하였던 죄를 회개하고서 노년기에 전도서를 기록하였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처음부터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합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우리 인생사용설명서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허무함을 읊조리는 내용을 담고 있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설의 진리를 담고 있는 전도서에는 인생의 깊은 회의 끝에 하나님을 꼭 붙든 전도자에 대해서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마치 전도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태어난 아주 총명한 자녀가 하나님 없이도 인생의 업적을 이룰 수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아도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쓰는 참회록과 같습니다.

전도서는 모두 12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1-6장은 ‘해 아래에서의 삶’에 대해 증거하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을 떠난 삶이고, 그 결과는 허무함인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7-12장은 ‘해 위를 구하는 삶’에 대해서 증거하는데,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본문 1-11절은 전도서 전체의 서론입니다.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는 자신을 ‘솔로몬’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던 다윗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정통성 있는 신정왕국의 통치자인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기록한 책이 잠언, 전도서, 아가서인데, 그 중에 잠언과 아가서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솔로몬임을 밝히는 반면에 전도서에서는 밝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았음에도, 많은 이방여인들과 결혼하고, 우상숭배를 한 지난 삶에 대한 참회의 기록이기 때문에,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도자는 해 아래의 삶을 아주 적절하게 이렇게 표현합니다.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직역하면 이러합니다. “전도자가 말하되, 헛된 것들 중에 헛되구나, 헛된 것들 중에 헛되구나, 모든 것이 헛되구나”입니다. ‘헛된 것들 중에 헛되다’는 ‘헛되다’의 최상급 표현입니다. ‘바보들 중에 바보’가 가장 바보인 것과 비슷합니다.

이 한 절에 ‘헛되다’는 말이 5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헛되다’는 ‘숨’을 뜻하는 말입니다. 만약 손등에다 ‘후-’하고 바람을 불면 뭔가 느낌이 잠깐 있었는데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헛됨’은 ‘짧음’과 ‘의미없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의 ‘숨’은 언제나 ‘한숨’입니다. 이 구절의 의미를 살리면 네 번의 한숨을 쉬고, 마지막은 숨을 모아서 다시 크게 한숨을 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숨’은 곧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자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숨과 인간의 숨의 차이입니다.

또 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의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해 아래에서-하나님 없이 하는 수고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시편 150편 중에 솔로몬의 시가 딱 2편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127편입니다. 1-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파수꾼이 성을 최선을 다해서 지킵니다. 자신의 지킴에 그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우리 모두는 참 열심히 삽니다. 아침 이른 시각부터 늦은 시각까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인생을 열심히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는 인생은 헛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을 진지하게 살면 살수록, 또 인생을 오래 살면 살수록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저절로 고백하게 됩니다.

(5-8)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자연 현상, 그 중에서도 태양과 바람과 강물의 헛됨을 말합니다. 태양이 새벽에 수평선이나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굉장히 웅장한 것 같아도, 이내 저녁이 되면 반대편으로 사라지고, 다음날 아침 또 웅장한 것 같아도 저녁이 되면 또 사라지고 하여, 매일 똑 같은 일이 반복이니 그것이 헛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또 바람이 불면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고, 특히 세찬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을 다 날릴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하고, 어제 불었던 바람이 오늘도 불고, 오늘 불었던 바람이 내일도 불 것이기에 헛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강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에 있는 많은 강들이 끊임없이 바다로 흘러가보지만, 정작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그 엄청나게 넓은 바다 앞에서 강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 강물에 입장에서 보면 헛된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사람 역시 무엇을 보아도, 무엇을 들어도 처음에는 특별한 것이 있는가 생각이 되지만, 나중에 남는 것은 피곤함 밖에 없어 헛되다는 것입니다.

(9-10)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도 반복됩니다. 인간의 출생과 성장, 성숙, 노화, 죽음은 모든 사람들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도 2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도, 그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동일한 길을 갔습니다. 앞으로 100년 후의 사람도, 1000년 후의 사람도, 10000년 후의 사람도,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동일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해 아래 인생-허무한 인간의 지혜(12-18절)

12-18절은 허무한 인간의 지혜에 대한 전도자의 설교입니다.

(13-14)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꿈에 나타나서 소원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의 수효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들의 재판을 정성을 다해서 감당해야 했기에, 백성들을 바르게 재판할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것을 열왕기상 3:12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솔로몬 이전에도 그런 사람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자 그 지혜가 그를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 들의 백합화 보다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들의 백합화는 미천하기 짝이 없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니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솔로몬이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그 지혜가 자신을 지켜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6-18)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그것으로 여러 사람들과 지혜대결을 벌여 진 적이 없었습니다. 또 그 지혜로 똑똑한 것과 어리석은 것, 지혜로운 것과 얼빠진 것을 구별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잡을 수 없는 바람을 잡는 것 같았고, 그 지혜는 기쁨과 감사보다, 번뇌와 걱정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지혜를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그 인생은 헛되게 여겨집니다.

오늘부터 살피는 전도서가 우리의 가슴을 강하게 치는 것은 이 전도서의 기자가 솔로몬왕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을 때가 솔로몬 때였습니다. 주변국가에서 조공을 바치고, 경제 사정이 얼마나 좋았으면 사람들이 은을 돌처럼 여길 정도였습니다. 지금의 사람들이 그렇게 목말라하는 시대입니다. 직장이 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또 직장인들이 모두 가족들이 충분히 사용할 만큼의 봉급을 받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만든 물건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절을 백성들에게 제공했던 사람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며 한 숨을 쉬고 있습니다.

만약 솔로몬이 왕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나 세계최고의 부자가 “돈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진 돈의 무게만큼이나 그 돈으로부터 짓눌림을 당합니다”라고 말을 했다면, 그 말은 그 다음날 바로 신문기사화 되고,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부자인줄로만 알았더니 겸손하기까지 하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만약 제가 “돈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진 돈의 무게만큼이나 그 돈으로부터 짓눌림을 당합니다”라고 동일하게 말을 하고, 제 옆에 신문기자가 있었다해도 신문에 나는 일을 없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네가 많은 돈을 가져보기는 했어? 돈이 없으면 말을 하지도 말어”라고 면박을 줄지 모르겠습니다.

동일한 말을 할지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말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전도서를 통해서 호소하는 사람이 최고의 지혜자이자, 최고의 왕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를 통해서 들려지는 말에 더욱 귀를 기울입니다.

또한 전도서가 우리 가슴을 치는 것은 우리 역시 솔로몬처럼 하나님을 힙입지 않고, 세속적 가치관을 힘입어서 떠나서 뭔가를 이루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태어나서 한 번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산 적이 없는 것은 물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산 사람이 있다면, 또 세상의 것에는 전혀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가 가진 성경에서 전도서를 빼도 될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전도서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어주시고,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것으로 가득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힙입지 않고, 세속적 가치관을 힘입으려고 하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헛되고, 한숨이 깊이 쉬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힘입는 것만큼 더 나은 삶이 없다는 것을 중심으로 수용하게 되면, 우리 인생의 전도서는 “의미있고 의미있으며, 의미있고, 의미있으니 모든 것이 의미있도다”로 시작될 것이며, 우리의 매일 매일은 대림절을 넘어 성탄의 빛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아무리 총명하고,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아무리 큰 역량을 갖고 있을 지라도 하나님을 힘입지 않으면, 우리의 입에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는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솔로몬의 한 맺힌 호소를 그냥 흘려 듣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남은 올해도, 내년에도, 우리의 남은 생애동안도 세속적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힙입고 살아감으로 “의미 있고, 의미 있으며, 의미 있고, 의미 있으니 모든 것이 의미 있도다”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생명의 숨이신 하나님의 숨결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 전도서가 새로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전도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한 숨을 쉬었습니다. 당신이 전도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때는 언제이었습니까?

2. 솔로몬왕처럼 하나님을 힘입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더 많이 의뢰했다가 교정 받은 일이 있습니까? 어떻게 삶이 바르게 회복 되었습니까?

3. 지혜가 많아서 오히려 번뇌를 경험했거나, 많은 지식이 있어서 오히려 근심한 적이 있습니까?

4.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더욱 더 하나님을 힘입고 살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전도서 1장 & 성경주석

<전도서 1장 흐름정리>

기자는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밝힌 후 만물이 헛되다고 하는 본서의 주제를 제시한다(1~3절). 이어서 허무의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한다. 그가 헛되다고 하는 것이 인간사 일부만이 아니라 인간사 전부와 만물의 존재 자체라고 한 점에서, 그리고 그는 온갖 부귀와 공명을 다 누려본 이스라엘의 왕이요, 전무후무한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이 주제의 심각성이 있다. 얼핏 보면, 마치 염세주의적 허무 의식을 토로한 듯하다. 그러나 전도자의 본뜻은 바로 하나님을 배제한 천하 만물의 헛됨을 노래하는 데 있었다.

<전도서 1장 줄거리>

1. 전도자는 인간의 모든 행로가 다 헛되다고 함.

4. 피조물들이 그 행로에 있어서 쉼이 없기 때문에,

9. 그것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옛것은 다 잊혀진다.

12. 또한 그가 지혜를 궁구하는 가운데 그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도서 1장 개역한글>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서 1장 성경주석>

1: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받았지만(왕상 3:9~13) 유산을 무모한 행복 추구에 낭비해 버린 그 사람보다 여기에 기록된 심오한 진리를 설명하기에 누가 더 적절하겠는가?

1:1 예루살렘 왕.

이 구절은 다윗 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전도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말을 하고 있을 당시에 “전도자”는 “왕”으로 다스리고 있었다. 이 책에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이 표현은 솔로몬 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다. 솔로몬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들은 그의 지혜에 대하여 언급한 것과 여러 잠언의 저자로서 언급한 것이다(참조 전 1:12, 13, 16; 2:15; 12:9; 왕상 3:12; 4:32).

영광스럽게 위치를 정한,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 성은 왕의 유일한 거주지는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려고 택한 하나님의 자리였다. 여기에서 종교와 하나님의 지혜는 가장 순결하고 가장 탁월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한 도성에서 보좌 위에 앉은 통치자는 하나님의 지도를 쾌히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이상적인 수행자가 되어 하나님의 지혜의 빛을 받아들이고자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그것을 비추어 주어야만 할 것이었다.

1:1 전도자.

히브리어 코헬레트(Qohelet), 동사 카할(qahal), “모으다”, “소집하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카할의 용례에 관해서는 대하 20:26; 에 9:2, 16, 18 등을 참조하라. “집회”, “회중”, “회합”으로 번역된 동계 명사(同系名詞)는 구약에 122회 나타난다.

유대인 저술가들은 코헬레트를 “회중을 모으고 교훈을 탐구하는 자”로 설명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설교자”라고 하는데, 솔로몬이 회중 앞에서 이 설교를 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대한 수집가”, “심오한 연구자”와 같이 여러 가지로 번역된 아랍어 어근과 비슷하다(전도서 서론).

1:1 말씀이라.

이 책의 제목이 되는 첫 절은 이렇게 시작한다(「제임스왕역」에는 “The words of”라는 말로 문장이 시작됨-역자 주). 다른 세 성경책, 즉 느헤미야, 예레미야, 아모스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한다. “말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또한 “소식”, “보고”, “기별”, “이야기”, “명령”을 의미한다.

1:2 가로되.

문자적으로 “말했다.” 영어의 어법이 현재나 현재완료형을 요구하는 곳에 히브리어는 계속적으로 과거 시제를 사용한다. “전도자가 가로되”라는 표현은 솔로몬이 말하는 사람이며 또한 책의 저자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1:2 헛되고 헛되며.

히브리어 하벨 하발림(habel habalim). 이 말은 책 전체의 제목을 진술하며 서문의 주제를 이룬다. 헤벨(hebel), “헛되다”는 전도서에 37회나 나오지만 구약의 다른 곳에는 33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의 일차적인 의미는 “숨” 혹은 “증기”이다. 그것은 헛되고 무익한 우상들과 또한 그것들을 경배하는 것에 대하여 사용된다(왕하 17:15; 렘 2:5; 10:8). 어떤 사람들은 전도서에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말이 단 한마디도 없다고 말하지만 이 책의 핵심어가 바로 우상과 우상숭배에 관하여 자주 사용된 이 단어이다. 전도자는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 대신에 구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지 다 헛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벨 하발림은 “하늘들의 하늘”(왕상 8:27)과 “노래들 중의 노래”(아 1:1)와 같이 강세적(强勢的) 표현과 비교되는 최상급이다. 문자적으로 “호흡들 중의 호흡”과 같은 강세적 형태로 솔로몬은, 만약 인간의 모든 노력과 삶이 하나님께로 향한 것이 아니면 허망하고 아무런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고 강조한다.

1:2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것은 모든 인생을 포함한 세상이 전체적인 면에서 이른바 하나의 호흡에 불과하고 아무런 희망을 약속해 주지 못한다는 의미로 “총체적으로 헛되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1:3 사람.

히브리어 단어는 “사람”을 나타내는 통칭 용어 혹은 우리가 “인류”라고 말할 때의 그 단어이다. 인간 생명의 순환은 새로운 세대와 함께 거듭거듭 되풀이된다.

1:3 해 아래서.

“하늘 아래서”(1:13; 2:3; 3:1)라는 구절과 같은 의미이다. 이것은 전도서에서 약 30회 나온다.

1:3 수고.

“노고”, “고생” 혹은 “해악”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여기서는 이 말이 사람이 일생 동안 하는 노력 전체에 적용된다.

1:3 모든 수고.

이 표현은 해 아래서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활동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1:3 유익한고.

히브리어 이트론(yitron). 이 말은 이 책의 다른 곳에 9회 나오며(2:11, 13; 3:9; 5:9, 16; 7:12; 10:10, 11), “뛰어나다”, “탁월”, “유익한”, “유용한”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된다. 이트론은 “잔존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거기서 파생된 명사는 “나머지”, 나아가 “여분”, “풍부”를 뜻하고, 또한 히브리어로 “우월”, “이점”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부단히 애를 쓰고 있지만 그의 모든 수고에 대한 영속적인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솔로몬이 여기서 사용한 은유는, 끊임없는 활동을 요하면서도 그 목적은 물질적인 목표에 해당하는 것을 얻는 데 불과한 세상 사업 중 하나일 것이다(참조 2:11 주석). 그러나 흔히 사람의 일생은 그의 후계자가 허물어 버리는 그 무엇인가를 세우는 데 허비된다. 무익과 불확실이 모든 인간의 노력을 특징짓는다.

무엇”이라는 의문대명사는 강한 부정적 대답을 요구한다. 그것은 주께서 문자적으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묻는 마 16:26의 말씀들과 비교할 수 있다. 전도자가 기대하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1:4 세대.

히브리어 도르(dor), “기간”, “시대”, “세대.” “쌓아올리다”, “축적하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은 본래 “집단으로 돌아다니다”라는 의미였지만 그 후에 “장막에 거하다”가 되었는데, 아마도 유목민 생활의 불안정과 관련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므로 이 단어 속에는 불안정이라는 고유한 사상이 들어 있다. 그것은 “사곡한 종류”(신 32:5)라는 구절 속에 있는 것과 동일한 종류와 특성과 상태에 관련이 있고, 아무라도 거리낌 없이 저주하는(잠 30:11) 자들과 흔히 무자비한 사람들과도 관계가 있다(잠 30:14).

1:4 가고.

히브리어에서 이 말과 “온다”라는 말은 모두 계속적이고 끝없는 변화를 강조하는 단순 분사로 되어 있다(참조 욥 10:20~22; 시 39:13).

1:4 영원히.

이렇게 번역된 히브리어는 우리가 그 의미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어떤 동사의 어 근에서 온 것 같다. 여기서 전치사 “for”와 함께 사용된 명사는 남성명사이며 그것의 헬라어 상당어구처럼 여러 가지로 사용된다. 그것은 “옛날”, “고대”, “장기간”, “계속적인 존재” 등을 언급할 수도 있고, “무한한”, “끝없는 미래”, “영원” 등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이 단어의 헬라어 상당어와 같이 그것과 함께 사용된 주제의 성격에 맞추어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참조 출 12:14; 21:6 주석).

1:4 있도다.

히브리어 아마드(‘amad), “서 있다.” 이 말은 계속성과 지속성이라는 사상을 담고 있다. 이 절에서 솔로몬이 나열하고 있는 대조는 부분적으로 산들의 표면적인 영구성과 강들의 중단 없는 흐름과 밤낮의 부단한 연속성에서 이끌어 낸 것이다.

1:5 떴던.

히브리어 자라흐(zarah.). 연속적 혹은 반복적 활동을 강조하는 분사형이다.

1:5 빨리 돌아가고.

히브리어 샤아프(s∨a’ap), “헐떡거리며 뛰다”, “열심히 붙잡으려고 하다”, “열망하다.” 이 비유는 경기 중인 말이 속력을 내기 위해서 힘을 다하여 숨을 들이쉬고 있는 생기 넘치는 말에서 가져 온 것이다. 이런 비유의 예로는 렘 2:24을, 이것을 영적 생활에 적용한 것은 시 119:131을 참조하라.

1:6 바람.

히브리어 루아흐(ruah.), “바람.” 항상 움직임을 시사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구속의 경륜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여러 활동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된다.

1:6 돌이키며.

끝없는 활동과 반복을 묘사하는 말이다. “북”과 “남”은 5절의 해가 뜨고 지는 위치인 “동”과 “서”와 대조를 이루어 언급되고 있다.

1:6 이리 돌며 저리 돌아.

이 절의 히브리어에서는 네 번이나 “돌다”, “선회하다”라는 단어 의 어근에서 파생된 어형들이 끊임없는 활동과 반복을 강조할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또한 여호수아의 군대가 여리고 성을 두루 돌며 행군하는 것(수 6:3, 15)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행”한(신 2:1, 3) 것을 말할 때에 사용되었다.

솔로몬은 자연의 끊임없는 순환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인간 생활의 순환과의 유사성을 보았다(전 1:4).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더 이상 숭고한 목적도 없는 단순한 반복일 뿐인가? 인류의 삶에는 그 어떤 절정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지면서 끝없이 반복되는 것같이 보이는 이 같은 인간의 활동을 마침내 대체시킬 어떤 영원한 목적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

지구 표면을 떠도는 기단(氣團)들의 움직임에 관하여 여기에 주어진 표현의 과학적 정확 성은 고대 문헌이 이에 견줄 수 없으며 천연계의 법칙에 관한 통찰력이 대부분의 고대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우월함을 드러낸다.

1:7 모든 강물.

자연의 끝없는 순환에 관한 세 번째 예증으로 솔로몬은 물의 순환을 들고 있다. 자연의 힘은 끝없는 반복을 묘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활동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이므로 그분의 뜻에 일치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들은 대부분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가 아니므로 그분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의도했던 목적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 인류는 만족과 기쁨에 이르는 새로운 길들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지만 창조주와 화목하는 단 하나의 길에서만 그의 참목적에 이를 수 있다(참조 마 11:28~30).

1:8 만물.

히브리어 드바림(debarim). 1절에서는 “말씀”으로 번역되었으나 여기서는 “만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분명하다. 신약에서 “말씀” 혹은 “만물”을 뜻하는 헬라어 레마(rhe-ma)도 이곳에 쓰인 히브리어처럼 이중적 의미가 있다.

1:8 피곤함.

이렇게 번역된 히브리어는 “고생하다”, “수고하다”라는 동사에서 온 형용사이며, “고생하다”, “고통을 겪다”라는 의미의 아랍어 어근과 연결된다. 인간 활동의 명백한 헛됨과 이에 수반되는 실망 등이 여기서 강조된 요점들이다.

1:8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사람”으로 번역된 단어는 3절에 나오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고 여자와 확연히 구별되는 “남자”를 언급한 말이다. “말하다”(utter)로 번역된 동사는 1절에서는 “말씀”으로, 8절에서는 “만물”로 번역된 단어의 어근이다. 히브리어에서 “말하다”라는 동사는 “만물”(all things)대하여 말하고 있다.

1:8 족함이 없고.

외적인 경험은 심령의 내적 갈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 만물 즉 물질적 축복은 생각이 깊은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외적인 감각을 통해서가 아니고, 내적인 경험을 통해서 마련된다. 하나님은 영이므로(요 4:24)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영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육신의 귀에 들리는 것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의 영적 본성에 속한 내적인 귀로 중계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유익이 이루어 질 수 없다.

1:9 이미 있던 것.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지금껏 있어 온 것이 앞으로 있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에 따라 되풀이되는 자연의 변함없는 순환에 관한 언급이다. 「70인역」과 「불가타역」은 이 구절과 다음 구절을 의문문으로 잘못 번역했다.

1:9 새것이 없나니.

말하자면 자연의 끊임없는 순환 속에는 변이(變異)가 없다. 사람이 한 번의 순환을 보았다면 순환을 모두 본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순환은 별로 다를 바 없는 다른 순환과 알아차릴 수 없게 뒤섞인다. 그 순환들은 영속적인 자기 보전 외에는 어떤 더 큰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1:10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저자는 자신이 9절에서 한 말에 대하여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고 도전해 올 수도 있는 묵시적 반대를 논박한다.

1:10 오래 전 세대.

문자적으로 “각 시대.” “오래 전 세대”로 번역된 단어 올람(‘olam)은 4절에서 “영원히”로 번역된 것과 같은 단어이다(참조 출 12:14; 21:6 주석). “세대”로 번역된 단어는 복수이지만 그 단어에 단수 동사가 쓰인 것은 그 명사를 집합명사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1:10 이미 있었느니라.

새것처럼 보이는 것도 과거에 그 근본을 두고 있다. 문맥상 9절과 10절에 있는 솔로몬의 말이 인간 생활의 순환을 포함한 자연의 여러 현상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 준다.

1:11 이전 세대(former things).

“things”(「개역한글판」에는 “세대”로 번역 되어 있음-역자 주)는 첨가된 단어이다. 히브리어 형용사 “이전”이 남성 복수이므로 “이전”이라는 말은 아마도 사람들에 대해서 하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들은 물론이요 (10절) 사람들까지 모두 다 잊혀진다.

1:11 기억함이 없으니.

새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사람들이 옛 것을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 세대의 어떤 사물들도 다음 세대가 잊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명성에도 당연히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없어서는 안 될 것같이 보이는 오늘의 걸출한 인물도 내일에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고 잊혀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3절).

1:11 장래 세대.

거듭하는 말이지만 “things”(「개역한글판」에는 “세대”로 번역 되어 있음-역자 주)는 첨가된 단어이며, “장래”로 번역된 히브리어 형용사는 남성복수이다. 사람들의 세대는 아마도 여기서 나온 사상인 것 같다. 현 세대의 명성은 다음 세대에 의하여 잊혀진다. 솔로몬은 그의 책 서두를 명성의 덧없는 성격에 대한 단정적인 말로 맺는다. 이 점은 문자적으로 “지금 이후”, 곧 “그 후 (세대)”라는 말로 거듭 강조되었다.

1:12 왕이 되어.

(「제임스왕역」에는 “was king”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왕으로 있다”(참조 1절 주석). 히브리어는 화자(話者)가 이제는 더 이상 왕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히브리어 동사의 단순과거는 영어의 현재형이나 현재완료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전도자”는 솔로몬이었다. 왜냐하면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아래에서만 예루살렘은 한 왕이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한 나라의 수도였고, 화자가 “다윗의 아들”(1절)이기 때문이다.

1:13 마음을 다하며.

이 구절과 그 상당어구는 이 책(1:17; 7:25; 8:9, 16)과 성경의 다른 곳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히브리인들은 마음을 단순히 감정의 근원만이 아니고 지성의 근원으로도 간주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라”라는 말은 “정신을 진정하여”(참조 대상 22:19) 혹은 “마음을 두고”(참조 욥 7:17)와 같은 의미가 되곤 했다. 솔로몬은 부지런히 마음을 갈고 닦았다. 그는 자연사와 철학과 시문학과 기타 유용한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1:13 지혜를 써서.

문자적으로 “그 지혜.” 아마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솔로몬의 직접적인 연구와 관찰로써 그가 평생 쌓은 지혜와 관련된 말일 것이다. 히브리어 단어는 여러 분야에 걸친 기술과 명철에 적용된다.

1:13 모든 일.

“일”은 첨가된 말이다. 히브리어는 “하늘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것”으로 해석되며,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활동들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1:13 궁구하며.

히브리어 다라쉬(daras∨), “탐색하다”, “뜻을 자세히 풀이하다”, “토론하다”, “반복하여 실습하다”, “연구와 응용으로 탐구하다” 등의 의미를 다 포괄하는 폭넓은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참조 창 25:22; 출 18:15; 신 19:18; 대하 14:7; 시 119:10; 암 5:14).

1:13 살핀즉.

“탐험하다”라는 의미에서, “정탐한즉.” 이 말은 가나안 땅을 탐지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민 13:16, 17, 25, 32). 이것은 지식을 위한 개척자적인 연구를 의미한다. “궁구하다”와 “살피다”라는 두 단어를 함께 쓴 것은 어떤 문제의 근저(根底)에 이르러 그것을 모든 면에서 샅샅이 살펴본다는 것을 시사한다.

1:13 이는 괴로운 것이니.

문자적으로 “이 악의 고통이니” 혹은 “사악한 이 고통이니.”

1:13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연구하고 살펴보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불어 넣으셨다. 그것은 사람의 육체적 및 정신적 힘을 크게 요하는 힘든 일이다.

1:14 일.

이것들은 인간의 계획과 활동들로서 대부분 무가치한 것 아니면 쓸모없는 것들로 판명된다.

1:14 본즉.

히브리어 단어는 흔히 외양이나 모양을 보는 것 이상의 것, 즉 예리한 통찰 혹은 지각을 의미한다. 파생된 명사는 “이상” 즉 계시를 의미한다. 여기서 이것은 복잡한 사실들에 관한 연구에서 보인 솔로몬의 예리한 관찰력을 가리킨다.

1:15 구부러진 것.

“구부리다” 혹은 “비틀다”라는 의미를 지닌 어근의 형태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본래부터 구부러진 것이나 조화되지 않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원인으로 그렇게 된 것에 대해서 말한다. 구부러진 것은 다 “사람의 일”이다(14절).

1:15 곧게.

“가지런히 하다”, “곧게 하다”, “정리하다”라는 히브리어 어근에서 온 말이다. 강조점은 인간에게는 계속적으로 자신이 직면하는 상황에 대처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1:15 셀 수 없도다.

결손이 너무 커서 인간은 결손이 생기기 시작한 것에 관하여 할 말이 전혀 없을 만큼 그것에 관하여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없다. “세다”로 번역된 단어는 “할당하다”, “지정하다”로도 번역할 수 있다.

1:16 내가…말하여 이르기를.

다른 사람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개인적인 명상을 시사하는 히브리어의 강세적 언급이다.

1:16 내가….

문자적으로 일하고 연구하는 일에서 자기 재능의 연마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지식과 경험의 성장에 있어 “내가…되게 했다”라는 말이다.

1:16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곧 “지혜를 붙잡았으므로.”

1:16 예루살렘에 있던.

더 정확히 말하면 “예루살렘을 지배하던”, 즉 통치자로 그 도성을 “지배하던”이다. 이것은 솔로몬 이전 시대의 현인들과 통치자들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1:16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만나 보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14절에 나오는 “본즉”과 같은 동사이다. 문자적으로 “많이 보았다”[예리한 통찰력을 받았다]인데 물론 이것은 “지혜와 지식에 관해서”이다. 「70인역」은 “지혜”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말로, “지식”은 지적인 노력의 사색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말로 번역한다.

1:17 미련한 것.

이렇게 번역된 말은 아마도 엇갈리게 놓는다”를 뜻하는 단어의 어근에서 온 것 같다. 지혜가 반드시 솔로몬이 연구한 일반적인 원칙으로 그를 인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암시할 수도 있다.

1:17 바람을 잡으려는 것.

참조 14절 주석.

1:18 번뇌.

이렇게 번역된 말은 “짜증나게 하다”, “화나게 하다”를 뜻하는 어근에서 유래되었다. 지나친 연구는 불면증을 가져오고, 신경을 소모시키고, 때로는 건강을 잃게 한다. 그러나 솔로몬이 무지가 최상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옹호하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1:18 근심.

문자적으로 정신적이요 육체적인 양면의 “고통.” 만약 어떤 사람이 지혜를 원한다면 그는 깊이 탐구해야 하고(참조 잠 2:4), 끊임없는 탐구와 연구는 건강과 힘을 손상시킨다. 위대한 지식도 품성의 지표는 아니라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천국 문을 열어주지, 지식만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1:14 바람을 잡으려는 것(vexation of spirit).

“잡으려는 것”(vexation)으로 번역한 이 단어는 “먹이다” 혹은 “목양하다”라는 말의 어근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람”(spirit)이라는 말은 “바람”(wind)이라는 일반적인 단어에서 왔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바람을 따라 잡으려고 애쓰는 것”(「개정표준역」) 혹은 “바람을 먹고 사는 것”으로 번역할 수 있다. 호 12:1의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라는 표현과 비교해 보라. 어떻게 번역하든 이 말은 만족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노력과 연구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 44:20의 “그는 재를 먹고”라는 표현과도 비교해 보라.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6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전도서1장1-11절

2020년 8월 28일 금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할렐루야 !!!

– 태풍 바비가 지나갔는데, 평안하고 안전하게 잘 지내셨는지요? 큰 피해 없이 지나갔음에 감사합니다.

– 그러나 8월 들어 코로나 재 확산으로 사회적 어두움이 있는 중에 의료계 파업에 대한 우려가 계속 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 이런 위기에 어려운 현실을 슬기롭게 잘 극복하도록 기도하고 우리 한국 교회도 물질 만능주의 , 교권주의, 영적 타락과 세속화와 분열과 다툼, 영적 나태함 등등의 모든 죄를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 일부교회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에 영향을 끼치게 된 점에 대하여 국민과 질병관리 본부의 관계자와 많은 염려와 우려를 보내고 있는 사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하고 앞으로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 냅시다.

–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뜻을 따라 ‘코로나19’가 확산이 멈추고 조속히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어 완전히 전염병 종식 되기를 기도하며 교회의 선한 영향력 상실에 대한 대각성 참회운동으로 다시 일어나는 기도에 동참하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전도서1장1-11절 }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 제 목 ◑◑◑◑

◗◗ 하나님 없이 살면 허무한 인생 된다.(전도서1장 1-11절)

◑◑◑ 본문 이해와 요약 ◑◑◑

◗ 1장에서는 솔로몬은 3권의 책을 기록하고 남긴 것인데, 전도서는 그가 노년에 하나님 없이 살아본 삶의 결론을 내린 말씀입니다.

– 성경의 시가 문학 중의 하나이며 동시에 지혜 문학에 속하여 인간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는 심오한 책으로서 초막절의 제3일에 낭독 되었다고 합니다.

– 인간을 신격화하는 독선적이고 자유방임적인 태도나 물질화하는 유물론적 견해를 비판하고 오직 하나님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인생이 최고의 행복과 가치를 소유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 그래서 본문의 구성면에서1-3절에서 서론적인 면으로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됨을 말합니다.

– 그런즉 피조물은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참다운 만족과 의미와 가치를 발견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대주제로서 만물의 허무함을 반복해서 언급한 내용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만물의 허무함의 한 예증으로 대자연의 허무는 허무함을 일차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2-11절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거듭 강조하는 내용이며, 12-18절에서 인간의 지혜와 행위가 모두 다 헛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 이제 각 절의 의미와 이해를 돕는다면, 먼저1절에서 우리가 내세워야 할 가장 큰 가치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각자의 사명과 책임에 따른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성경의 교훈은 우리가 믿고 순종할 만한 충분한 권위와 실효성이 있는 것이며, 성도는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오조차 순수 복음을 위해 민낯을 다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 그리고 2절에서 솔로몬은 인생 허무는 모든 인간이 직면하게 될 필연적 운명이라고 논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만이 인생의 허무에 대한 참되고 유일한 해답이 됨을 말하며, 인생이 안고 있는 허무의 극복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 한편 3절에서 하나님을 배제한 사람의 모든 노력은 궁극적으로 허사일 뿐이라고 합니다.

– 그리고 5,6절에서 대자연은 위대한 것이나 결코 우상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 또한 7, 8절에서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을 참 만족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 그리고 9,10절에서 해 아래서는 어떤 것도 새 것이 없으며 모두 헛되며 허무한 것들일 뿐입니다.

– 한편 11절에서 잊어질 것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히 기억 될 것을 위해 일하는 성도가 됩시다.

◗ 결론적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온 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고 이로 인하여 인생은 허무하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한 평생을 살면서 모든 것을 최고로 다 누려 보았던 솔로몬은 인생의 무의미함을 노래하는 전도서가 가장 난해한 책 중에 하나이지만, 이 책은 단순한 비관주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전도서는 성도에게 큰 공감대와 반문교사로서 은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며, 목적이 가변적일 때 인간은 불행 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따라서 참 의미와 참 행복은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 참된 인생이다.(전도서1장1,2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인생 허무는 모든 인간이 직면하게 돼 필연적 운명체로서,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의 허무에 대한 참되고 유일한 해답이 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 1,2절을 살펴보면 “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성군 다윗의 아들들 중에 솔로몬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가 자기의 뜻을 다 이루고 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최고 최상의 복을 누리며 즐기는 인생을 살아 보았으나 다 허무하여 헛되고 헛된 인생의 무상함을 결론부터 내리고 있는 말씀입니다.

– 특히 본문에서 ‘헛되다’라는 말은 원문 상에 ‘공기’, ‘호흡’, ‘공허함’, ‘불만족함’ 등의 뜻을 가진 말로서 잡거나 취하려 해도 잡히지 않고 아무런 소득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 그래서 솔로몬은 ‘헛되다’라는 단어를 무려 5회나 사용하여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마치 한탄하듯 말합니다.

– 여기서 ‘헛되고 헛되며’라는 말은 최상급의 표현으로서 헛됨을 강하게 강조하는 히브리어 관용구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솔로몬이 이처럼 인생의 헛됨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인생 자체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는 염세주의적 사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은 인생의 허무와 헛됨을 주장하는 이 말씀의 참된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여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 그리하여 사람이 아무런 의욕도, 의지도 없이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려고 마음먹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여기서 솔로몬이 이처럼 인생의 허무를 역설한 것은 그 해답과 허무의 극복 가능성을 말하기 위한 의미의 말입니다.

– 결론부터 말하면 인생은 헛되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가치와 참된 만족은 인생 자체에서 찾을 수 없고 덧없는 세상 가운데서도 찾을 수 없으며 참되고 영원하신 분,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솔로몬은 이 ‘헛되다’라는 말을 ‘헛된 것들 중에 헛된 것’이라는 최상급의 표현을 통해 강조하였고 이를 거듭 반복함으로 하나님 없는 모든 세상사가 헛되고 무상함을 단정하면서 말씀합니다.

– 솔로몬이 왕의 권세와 명예와 부귀를 많이 누렸던 그의 인생 삶에서 수많은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된 이 허무함이 얼마나 컸으면 최상급의 표현을 거듭 반복하여 말하였을까요?

– 그만큼 그는 다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인생의 허무를 절감하였던 것입니다.

– 이와 같은 고백은 아무리 인생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최고의 지혜를 얻으며, 최고의 영광을 누려도 인생의 허무는 그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 운명임을 말해줍니다.

– 그런즉 우리 성도들이 알 것은 흔히 남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고 남들이 갖춘 것을 다 갖추면 인생은 정말 살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착각으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인생의 부귀영화를 얻고자 노력하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 이러한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목표한 바를 성취하여 대단히 큰 부를 획득하기도 합니다.

– 그러나 이런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세상사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결국에 극한 허무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마치 누구도 죽음의 운명을 빗겨갈 수 없듯이 그 누구라 할지라도 이 본질적 허무의 문제를 피해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솔로몬의 고백에 주목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인생은 누구라도 공허와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으며, 세상 무엇도 사람에게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 시편39편 5절에서 “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 뿐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내면에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는 허탄한 것으로 자기중심을 채우려 합니다만, 바로 이것이 인생의 불행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생의 공허와 허무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어떤 이는 무수한 물질이나 재력으로, 또 어떤 이는 성공이나 성취로 공허와 허무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키 작은 삭개오가 집착했던 그 많은 물질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신이 모았던 재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자기 자신의 것을 비우는 순간 참된 가치관으로 그의 일생을 새롭게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심지어 어떤 이는 술과 마약과 같은 것으로 인생의 허무를 채우려 들기까지 합니다.

– 재벌 2, 3세가 인생의 참 의미와 가치를 모르니까?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인생을 탕진하는 모습입니다.

– 그러나 이러한 허망한 생각은 매우 어리석으며 제한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탐욕이 생기고, 집착이 생기며, 마음속에서 헛되 욕망이 자리 잡게 되므로 실패한 패인이 되는 것입니다.

–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게 되면, 우리를 더욱 큰 불행과 비극으로 이끌어 갈 뿐입니다.

– 고린도전서3장 20절에서 “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모든 것을 누렸던 솔로몬은 바로 이것을 알리고자 인생이 허무함을 반복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인생사관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났는지? 왜 믿음 안에 하나님께서 나를 초대하셨다고 믿는지? 무엇을 해야 참된 의미와 가치 있는 인생으로 사는 것인지? 나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지?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 안에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허무한 인생굴레 안에 세월을 물 타기하는 것은 아닌지? 솔로몬을 보면서 내가 바로 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하나님 앞에 사명 붙들고 사는 것이 참된 인생입니다.

–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것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냅시다.

–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참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시며 사명에 불 타게 되면 기쁨도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 육체의 죽음 이후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믿어지면 잠시 머무는 이 땅에 삶은 피와 땀을 흘리며 기뻐하고 즐거운 사명의 삶이됨을 믿기에 죽음이란 허무한 인생의 굴레를 벗기시고 영생의 확고한 부활의 산 소망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 요한요일서2장17절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이것은 단지 죽음 이후의 일어날 일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예수님과 함께 하는 성도는 영원히 샘솟는 기쁨과 만족,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거하는 그 어디에서든 인생에 허무란 그림자조차 드리워지지 않도록 하나님 나라의 광명한 영광의 빛으로 찬란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 솔로몬은 자기 자신도 이러한 허무와 맞닥뜨리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자기의 목적을 이루었던 한 순간에 스스로 자만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며, 오히려 더 큰 허무와 인생의 비애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 지금 나의 인생인 왜 태어났으며, 존재 목적은 무엇인지? 무엇을 하다가 누구 앞에서 어떻게 사고 갈 것인지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허무하지 않고 비애를 느끼지 않은 자신의 진정한 존재감으로 인식하고 살아냅시다.

–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이 인생의 삶의 문제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는 모두 허무로 귀결 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것이고, 허탄한 것임을 알게 되면, 이것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고 정직하게 확인하는 자리, 나의 사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이 땅위에 삶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의미와 가치의 인생을 힘차게 걸어가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 오늘의 핵심 (P.S)

☞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 참된 인생이다.(전도서 1장 1,2절)

▶ 인생 허무는 모든 인간이 직면하게 돼 필연적 운명체로서,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의 허무에 대한 참되고 유일한 해답이 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 1,2절을 살펴보면 “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성군 다윗의 아들들 중에 솔로몬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가 자기의 뜻을 다 이루고 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최고 최상의 복을 누리며 즐기는 인생을 살아 보았으나 다 허무하여 헛되고 헛된 인생의 무상함을 결론부터 내리고 있는 말씀입니다.

– 특히 본문에서 ‘헛되다’라는 말은 원문 상에 ‘공기’, ‘호흡’, ‘공허함’, ‘불만족함’ 등의 뜻을 가진 말로서 잡거나 취하려 해도 잡히지 않고 아무런 소득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솔로몬이 이처럼 인생의 헛됨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인생 자체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는 염세주의적 사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 그래서 여기서 솔로몬이 이처럼 인생의 허무를 역설한 것은 그 해답과 허무의 극복 가능성을 말하기 위한 의미의 말입니다.

– 결론부터 말하면 인생은 헛되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가치와 참된 만족은 인생 자체에서 찾을 수 없고 덧없는 세상 가운데서도 찾을 수 없으며 참되고 영원하신 분,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솔로몬은 이 ‘헛되다’라는 말을 ‘헛된 것들 중에 헛된 것’이라는 최상급의 표현을 통해 강조하였고 이를 거듭 반복함으로 하나님 없는 모든 세상사가 헛되고 무상함을 단정하면서 말씀합니다.

– 솔로몬이 왕의 권세와 명예와 부귀를 많이 누렸던 그의 인생 삶에서 수많은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된 이 허무함이 얼마나 컸으면 최상급의 표현을 거듭 반복하여 말하였을까?

– 그만큼 그는 다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인생의 허무를 절감하였던 것입니다.

– 이와 같은 고백은 아무리 인생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최고의 지혜를 얻으며, 최고의 영광을 누려도 인생의 허무는 그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 운명임을 말해줍니다.

– 그런즉 우리 성도들이 알 것은 흔히 남들이 누리는 것을 누리고 남들이 갖춘 것을 다 갖추면 인생은 정말 살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착각으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인생의 부귀영화를 얻고자 노력하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 그래서 이런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세상사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결국에 극한 허무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인생은 누구라도 공허와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으며, 세상 무엇도 사람에게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내면에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없는 허탄한 것으로 자기중심을 채우려 합니다만, 바로 이것이 인생의 불행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키 작은 삭개오가 집착했던 그 많은 물질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신이 모았던 재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자기 자신의 것을 비우는 순간 참된 가치관으로 그의 일생을 새롭게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모든 것을 누렸던 솔로몬은 바로 이것을 알리고자 인생이 허무함을 반복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인생사관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났는지? 왜 믿음 안에 하나님께서 나를 초대하셨다고 믿는지? 무엇을 해야 참된 의미와 가치 있는 인생으로 사는 것인지? 나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지?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 안에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허무한 인생굴레 안에 세월을 물 타기하는 것은 아닌지? 솔로몬을 보면서 내가 바로 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하나님 앞에 사명 붙들고 사는 것이 참된 인생입니다.

–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것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냅시다.

–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참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시며 사명에 불 타게 되면, 기쁨도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 육체의 죽음 이후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믿어지면 잠시 머무는 이 땅에 삶은 피와 땀을 흘리며 기뻐하고 즐거운 사명의 삶이됨을 믿기에 죽음이란 허무한 인생의 굴레를 벗기시고 영생의 확고한 부활의 산 소망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 이것은 단지 죽음 이후의 일어날 일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예수님과 함께 하는 성도는 영원히 샘솟는 기쁨과 만족,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솔로몬은 자기 자신도 이러한 허무와 맞닥뜨리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자기의 목적을 이루었던 한 순간에 스스로 자만하여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며, 오히려 더 큰 허무와 인생의 비애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 지금 나의 인생인 왜 태어났으며, 존재 목적은 무엇인지? 무엇을 하다가 누구 앞에서 어떻게 사고 갈 것인지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살아야 허무하지 않고 비애를 느끼지 않은 자신의 진정한 존재감으로 인식하고 살아냅시다.

–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은 이 인생의 삶의 문제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인생은 그 자체만으로는 모두 허무로 귀결 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것이고, 허탄한 것임을 알게 되면, 이것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고 정직하게 확인하는 자리, 나의 사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이 땅위에 삶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의미와 가치의 인생을 힘차게 걸어가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샬~~롬!!!!

[전도서 1장] 참 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허무함

전도서 1:1~11

우리말 성경은 이 책의 이름을 ‘전도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원래 히브리어의 명칭은 “코헬렛”입니다. 코헬렛은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확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학자들은 이 말이 아마도 회중을 소집하여 지혜를 전하는 ‘스승’이나, ‘설교자’, 또는 ‘집회 인도자’를 가리키는 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설교를 모아 놓은 설교집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전도서 1:1~11절은 전도서 전체의 서론 부분에 해당됩니다. 여기에서 전도서의 저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서의 주제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자가 왜 인생의 허무를 그토록 말하는 지의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서를 공부할 때 인생의 허무함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허무함은 좋지 않습니다. 사람을 비관적으로, 염세적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는 신앙의 유익이 있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은 신앙을 새롭게 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허무함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허무함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인생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낀 한 사람의 고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허무함이 하나님 편에서 참 된 신앙의 길로 인도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참 된 신앙으로 인도하는 허무함

PART I 인생의 허무함을 경험한 사람(v1)

전도서는 아가서나 잠언서와 같이 솔로몬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습니다. 대신에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선포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솔로몬은 자신의 다른 책과는 달리 전도서에서는 자신의 이름 대신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선포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말년에 실수를 한 후에, 평생 하나님만 사랑했던 부친 다윗을 존경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중년 시절에도 다윗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친에 대한 그의 존경심은 실패를 경험한 말년에 가서 더 커졌을 것입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다윗의 아들인 점을 더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는 실수를 통해서 아버지의 실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서 그는 더 부친을 존경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2) 예루살렘 왕

그는 자신을 “예루살렘 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나이가 중년일 때, 잠언 1:1절에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가서 자신을 “예루살렘 왕”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면서 그의 나라는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그 나라가 둘로 나누어질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솔로몬 때에 나라를 둘로 나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말년에 여로보암이 반기를 들고 공개적으로 그를 대적하고 나섰습니다. 그때에 이미 열 부족들의 마음은 솔로몬으로부터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실제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유다 지파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시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전도자는 자신을 “예루살렘 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죄를 짓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예루살렘 왕”으로 세움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3) 선포자

왜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자기 이름을 생략하고 그 대신에 “코헬렛(전도자)”라는 칭호를 사용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후대의 편집자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 단어를 삽입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솔로몬이 말년의 실수를 참회하는 마음에서 자기 이름을 숨겼다고 주장합니다. “솔로몬”이란 이름은 원래 “평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청년과 중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으로 나라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이때에 솔로몬은 자기 이름을 “솔로몬”(평화)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이방에서 데려온 아내들을 좇아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의 길을 좇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그의 가정과 나라는 평화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말년에 “솔로몬”(평화)라는 이름을 사용하기에 가책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전도서 1:1절은 인생의 허무를 깊이 경험한 한 사람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인생의 깊은 실패를 경험한 다윗의 아들로서, 늙어 의지할 것은 유대 부족과 예루살렘 밖에 없었던 왕,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평화를 누리지 못했던 왕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PART II 인생의 허무를 고백함(v2)

이제 설교자는 인생의 허무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선포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에 나타나는 “헤벨”(헛됨)은 전도서에 38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말은 전도서의 앞과 뒤(1:2, 12:8)에 나오면서 전도서의 처음을 열고 마지막을 닫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헤벨”(헛됨)이 전도서의 주제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헛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벨”은 숨을 쉬다, 증발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전도서에서 ‘경멸’의 의미나 ‘부정적인 가치 판단’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다‘는 말은 “가장 헛되다”는 것을 표현하는 히브리어의 최상급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룩한 곳 중의 거룩한 곳-지성소(출 26:33), ‘노래 중에 노래-아가'(아 1:1), ‘만왕의 왕'(계 19:16), ‘만주의 주'(계 19:16) 등이 이에 속합니다. 전도자는 2절에서 이러한 강조적인 표현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또 다시 “모든 것이 헛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세상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동원해서 인간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헛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PART III 인생이 허무한 이유들(v3~11)

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자기의 모든 수고에서 무슨 유익을 얻으리요?” 이제 전도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해 아래는’는 인간적인 관점을 말합니다. 세상적인 관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관점으로 세상을 볼 때,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없는 관점에서 인생을 볼 때, 설교자는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까요?

(1) 빨리 지나가는 생애

전도자는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4).”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영원히 존속하는 땅에 비해 인생은 잠시 왔다가 곧 사라져 버리는 덧없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자연을 정복한 탁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영원히 존재하는 땅보다 잠시 살다가 사라지는 인생이 훨씬 더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잠시 살다가 다음 세대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고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계속된다. 이러한 인생의 모습은 땅에 비해 한없이 덧없고 허무합니다.

“해는 뜨고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5). 그는 태양이 아침에 동녘에 떠올랐다가 저녁이 되어 원래 있던 것으로 신속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태양을 신으로 섬기고, 또 많은 시인들도 태양의 눈부심과 찬란함을 노래했습니다. 모든 만물 중에서 태양은 가장 눈부시고 찬란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시 19:4-6)에서 시인은 태양을 하늘에 있는 피조물의 면류관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태양을 밤에 장막에서 지내고 새벽이 되어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태양을 자기 길을 달리기 좋아하는 장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태양은 하늘에 떠올라서 온 세상을 비추면서 세상에 신선함과 생명력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태양을 너무나 빨리 져서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립니다. 인생은 젊은 때에는 활기차고 왕성하지만, 금방 나이가 들고 늙어서 흙으로 돌아가 버립니다(전 1:5).

(2) 예측할 수 없는 생애

또한 전도자는 정처 없이 불다 사라져버리는 바람을 통해서도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6). 바람은 정처 없이 이리 불고 저리 불다가 힘이 약해지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사라져 버립니다. 바람은 그 방향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바람은 남쪽으로 불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북쪽으로 향합니다. 또한 바람은 이리 저리 불다가 힘이 약해지면 사라져 버립니다. 이와 같이 인생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인생은 잠시 형통하다가 갑자기 재앙이 찾아오고, 재앙이 찾아왔다가 갑자기 일이 잘 풀릴 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은 환경에 따라 흔들거리며 살아가다가 힘이 약해지면 흙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우리는 이러한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채워지지 않는 생애

전도자는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물을 통해서 끝없이 노력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욕망에 수고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산과 들에 물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물은 냇가로 흘러가고, 그 냇물은 다시 강으로 흘러가며, 그 강물은 다시 바다를 향해 흘러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도 결코 바다가 가득 차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물은 일을 성취하기 위한 끝없는 인간의 수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강물이 흘러가도 채워지지 않는 바다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욕망을 의미합니다. 인생은 끝없이 바다를 향해서 흘러가는 물과 같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욕망을 채우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끝없이 수고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을 해도 인간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또 다시 욕망을 위해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4) 새 것이 없는 생애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를 골동품이나 물러가야 할 구시대로 생각하고 반대합니다.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부모 세대가 하지 못했던 새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의욕을 가지고 새 일과 새 사업을 위해서 밤낮으로 수고하면서 매진합니다. 때로 소수 사람들은 이전 세대가 이루지 못한 큰 업적을 남깁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이가 들게 되면, 자신이 한 일을 이미 과거 세대가 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인생은 창조가 아니라 모방에 불과합니다. 솔로몬 역시 젊었을 때에 의욕적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에 남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실수를 하게 되었고, 자신이 과거 사람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솔로몬 역시 창조자가 아니라 모방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전도자는 세상에 “이것이 새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도 전 세계를 호령하던 권력자들이 있었고, 수많은 지식을 가진 박사들이 있었으며, 또한 수많은 재물을 가진 부호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5) 기억되지 않는 생애

전도자는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 우리 말 성경에 ‘기억 한다’고 번역된 말(지크론)은 남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 일을 기리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사람인지, 아니면 행동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여기에서 ‘기억한다’고 번역된 말은 이 두 가지(사람과 사건)를 모두 포함하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위대한 사람을 기억하면 자연스럽게 그가 행한 일에도 관심을 갖게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자기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면서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와 인기를 얻기 위해서 남을 해치기도 하고 때로는 해서는 안되는 불의한 일들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예와 인기를 얻는 일에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때로 소수의 사람들은 인기와 명예를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온갖 고생을 해서 인기와 명예를 얻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인기는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한 때 잘 나가던 화려한 스타들도 잠시 후에는 새 경쟁자들에게 자기 자리를 내어주고 쓸쓸하게 사라져 버립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왜 설교자가 그토록 인생의 허무를 고백했는지의 다섯 가지의 이유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런 짧은 인생 중에도 너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아무리 많은 것을 해보고 소유해 보지도 곧 싫증을 느낍니다. 만족함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설교자를 허무하게 만들었습니다. 넷째로, 아무리 새로운 것들을 해 보았지만, 사실은 그 이전 세대가 했던 것을 답습하는 것 밖에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 보지만, 이 마저도 곧 잊어지고 사라져 버리는 증기와 같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 즉 권세와 지혜와 재물,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들을 마음껏 소유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진정으로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그는 말년에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 숭배에 빠지면서 아담과 하와가 걸었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헛되고’는 그는 이 일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긴 후에 그의 가정과 나라는 하나님의 보호막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가정과 나라는 평화가 사라지고 불화와 분쟁으로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일들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 인생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들, 즉 재물, 이성, 지식, 명예 등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해 아래에 수고하는 모든 것이 허무함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래에 이 허무함은 허무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을 영적으로 변화시킵니다. 영적 침체에 빠진 사람을 일깨웁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서 일하게 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허무함으로 염세주의에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 된 신앙으로 인도를 받게 됩니다. 전도서를 통해 인생의 허무를 배우고, 하나님 안에서 참 된 신앙을 찾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전도서 1장 2절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Vanity of vanities, says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Eccl 1:2)

잠언은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하므로 얻은 지혜, 곧 인간 생활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지혜를 강조한다. 전도서는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지혜로 깨달은 것이다. 어떤 것이 아무리 선하고 탁월하고 놀랍고 훌륭할 지라도 옛 창조물에 속한 것이라면 그것은 해 아래 있는 헛되고 헛된 것의 일부이다. ‘해 아래’ 있지 않고 하늘들에 있는 새 창조물만이 헛되지 않고 실재이다. -영어 회복역, 전 1장2²각주

전도서 1장 1-11절, 무엇이 유익한가

카알KaRL21

솔로몬이 쓴 3권의 책이 있다.

가장 젊고 혈기왕성할 때, 아가서를 썼다. 남녀 로맨스를 다뤘지만 거기엔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 신랑과 신부될 우리들의 관계 를 다룬 계시적 성격이 강한 책이다.

두번째는 잠언서이다. 장년이 된 솔로몬이 세상을 호령할때 쓴 책이다. 인생의 실질적인 전성기에 적은 책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을 담은 책이다. 직실적, 단도 직입적이다.

“이렇게 하면 죽는다, 이렇게 하면 패가망신당한다!”

둘러서 우회적 표현하는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쓴 책이 전도서이다. 저자에 대한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솔로몬을 저자로 본다. 나이가 더 든 솔로몬은 노년을 맞이했다. 황혼과도 같은 인생의 말년에 세월을 돌아보며 후회와 회한이 남아 있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어느 시기보다 더 절실한 마음 으로 쓴 책이 전도서이다. 전도서 하면 ‘헛되다’라는 주제가 떠오른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한 허무주의자의 탄식인가 생각되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책은 젊은이들을 향해 적은 책이다. 청년 시절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는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책이다. 청년시절에 시행착 오를 겪으며 실수하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전도서의 세가지 주제:

1인생은 헛되다

2인생은 불확실하다

3인생은 무의미하다

솔로몬의 깨달음1:인생은 헛되다

전도서 1:2 인생을 살아보니 너무 허무하다. 그래서 헛되다는 말이 무려 5번이나 등장.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2절/ 히브리어 원문: 하벨 하발림 아마르 코헤렛 하벨 하발림 하콜 하벨

전도서에서만 헛되다는 말, 헤벨이 38회 등장한다(히브리어 성경: 헤벨 73회 등장)-수 고에 대한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나는 일, 아무것도 없는 상태!

영어로 헛되다는 vanity 이다. 이 단어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 뿌리를 찾아 보면 두가지 의미이다. 1)잡았는데 바람 같더라는 뜻이다. 인생의 무언가를 잡았는데 손 을 펴보니 남는게 아무것도 없더라 2)거울에 비친 나라는 뜻이다. 거울은 분명한 실체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 거울이 깨집니다. 거울 속에 비친 실체가 와장창 깨진다. 결국 ” 거울에 비친 나”는 허상이었던 것이다. 전도자는 실체로만 알았던 인생이 결국 허상이었 음을 깊이 깨닫게 된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누가 말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돈/권력/인기/권세/명예- 솔로몬은 모든 것을 다 누려본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말하면 수긍하는 게 맞다.

이라엘의 황금왕조의 군주가 아니었던가! 그 인생의 끝자락에서 내뱉는 그의 경험은 진실 된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의 결론은 바로 “헛되다”이다.

솔로몬의 깨달음2: 인생은 불확실하다.

예측대로 되는 게 없다, 미래학자, 경제학자들의 예견과 예측은 한 두개 정도 맞긴 하 다. 앨빈 토플러란 미래학자의 말은 진짜 신뢰할만한다. 사도행전: 움직이는 것은 사람 이지만, 모든 것은 성령에 의해 역동적으로 이뤄진다. 성령에 의한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뜻대로 이뤄지는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솔로몬의 깨달음3: 인생은 무의미하다

전도서 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피곤하다’이다. 싫어하는 사람, 같이 있지 않고 싶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굉장히 피곤하다. 반면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시간이 너무 잘 간다. 야곱이 그랬다. 라헬을 사랑하기에 7년을 하루같이 보냈다. 그런데 솔로몬은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고 말한다. 단테의 신곡에 지옥문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문으로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이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연상되는가? 지옥은 ‘고통’이다. 하지만 육체 적인 고통은 고통의 일부분이다. 정말 지옥이 고통스러운 것은 거기에 의미가 없기 때문 이다. 의미가 없다는 것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은 없다. 그리스 신화의 시지푸스 왕 이 가파른 언덕으로 돌을 굴려 올리라는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애써 올린 돌을 다시 아래로 다시 떨어뜨린다. 그리고 또 다시 돌을 힘겹게 올리고 다시 밑으로 떨어뜨린다. 이런 작업을 하루 종일, 그리고 영원히 반복시킨다. 거기서 바로 시지푸스 신화가 나왔 다. 노동의 양이 많아서 힘든 것이 아니다. 그보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 이 사람을 미치도록 힘겹게 하는 것이다. 한 때 러시아에서는 낮이면 죄수들을 벌판으로

불러내어 곡괭이로 언 땅을 힘겹게 파게 한다. 러시아가 얼마나 추운가 꽁꽁 얼어붙은 땅을 힘들게 파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실컷 파고나면 다시 흙으로 덮으라고 하고, 다 덮으면 다시 또 다른 곳을 파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묻으라고 한다. 이 작업 을 계속 반복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죄수들이 죽어간다. 미쳐서, 정신분열증 비슷

하게 의미없는 일에 매여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절규하며 죽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의미를 찾지 못할 때 힘들어한다. 한 마디로 미친다. 여기 8절에서 ‘피곤하 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솔로몬이 인생을 살아보니, 이런저런 것들을 경험해 보니,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다. 솔로몬은 평생에 걸쳐 이 세 가지를 깨달은 것이 다.

해 아래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솔로몬은 오늘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넌지시 던진다.

전 1: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유익하다는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등장한다. 무엇이 유익한가라는 질문 은 다시 말해 ‘무엇이 남는가’라는 뜻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모순투성이다. 무의미할 뿐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과연 무엇이 바람 같지 않고 무의미 하지 않고 영원히 남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솔로몬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자 도전이다. 해 아래 과연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감사하게도 성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영원한 것1: 예수 그리스도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성경은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영원하다고 증언한다. 놀랍게도 전도서 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전도서야말로 가장 복음서로 향하게 하는 구약의 책이 다. 구석구석에서 메시야를 향한 기다림이 얼마나 절실하게 묘사되는지 모른다. 무엇이 영원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사실을 인정하며 믿고 나아가길 바란다.

영원한 것2: 하나님의 말씀

해 아래 영원한 것, 두 번째는? 마태복음 24장을 보라.

마태복음 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는 말이 아 니다. 이 말에 담긴 진짜 의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내용은 반드시 성취되어 영원할 것 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히 성취될 것이다. 또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하나 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말은 바로 이 의미이다.

영원한 것3: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해 아래 영원한 것, 세 번째는 무엇인가? 요한일서 2장이다.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도 정욕도 모두 지나간다. 70대의 성기능이 불능이 된 할아버지도 예쁜 여자를 보 면 정욕이 발동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아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욕도 지나간다. 그런 데 놀랍게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하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과연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보자.

요한복음 6장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만큼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는 자가 또 있을까? 성경 은 예수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고 말한다. 당연히 아버지의 마음과 계획은 그 의 본체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제일 잘 알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정답을 주신다. 즉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 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아들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 아들 곧 예수님을 믿고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다. 그 뜻에 순종하고 행하는 자는 영원할 것이다. 한편, 영생을 얻어야 구원을 받는다는데, 과연 영생은 무엇

인가? 성경에서 답을 준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이 무엇인가?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영 생이다.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말은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이라는 말은 그분과 교제하 는 친밀한 관계를 말한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요 14:20)있는 것이 바 로 아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으면서 서로 영원한 교 제를 나누는 것이 바로 영생이다. 바로 그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얻기 원하신다. 모든 사람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요, 뜻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기억하라.

인생에서 영원한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다. 단순한 언어로서의 말씀이 아니라 그 분의 언약과 약속이 완 전히 성취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이땅에 남겨진 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답을 솔로몬은 기기 막힌 곳에서 슬쩍 감추어 두고 있다. 영국 속담에 ‘열쇠는 대 문 가까이 두는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거의 모든 집에서 열쇠로 문을 잠그고 다니던 시절, 식구들만 아는 은밀한 곳에 열쇠 하나를 두고 사용했다. 중요한 열쇠는 대문 가 까이에 두고 감춰두는 법이다. 우리가 오늘 찾아야 할 키워드는 바로 대문 가까이에 있 다.

전도자는 무엇이 영원히 남는가, 무엇이 유익한가를 묻는다. 그리고 대문 가까이에 키 를 놓아 두었다. 바로 1:1의 말씀이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솔로몬은 자신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다윗의 아들이다.

둘째, 예루살렘 왕이다.

셋째, 전도자이다.

여기서 전도자, 곧 ‘코헬렛’ 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합친 개념이다. ‘회중을 불 러 모으다’라는 뜻과 ‘회중에게 선포하고 말하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 한 번역이 조금 아쉽다. 원전인 히브리어를 보면 순서가 정확하게 바뀌어 있다. 제일 처 음에 ‘전도자’가 등장한다. 히브리 사람들은 중요한 순서대로 이름 앞에 수식을 썼 다. 따라서 원전에서 단어의 순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솔로몬은 제일 먼저 자신을 ‘전도자’라고 소개한다. 인생을 살고 보니, 다윗의 아 들이라는 사실도 중요하고 예루살렘 왕으로 산 것도 의미가 있었으나, 전도자로 사는 것이 가장 의미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도 비전트립이나 노방전도를 나가서 전도나 선교에 집중한다. 솔로몬은 어느 한 시점에만 전도자로 산 것이 아니다. 전 생애를 통해 자신을 전도자로 소개한다. 왕이나 다윗의 아들이기 전에 그는 먼저 전도자로서 자신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 전도자였다.”

그렇게 자신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전도자로서의 삶이 내 인생에 가장 남는 것” 이라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직장을 다 그만 두고 다 신학교로 가든지 오지로 떠나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터, 직장, 대학과 가정에서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 라는 것이다.

존 파이퍼의 이야기

하나님 없이 안락하게 살다 죽는 것은 비극이다. 어릴 때 우리 집 액자엔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

‘한 번뿐인 인생 곧 지나간다.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영원 할 것이다.’

나의 아이들은그들이 세상의 성공을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게 나의 가장 큰 갈망이다.

당신의 인생을 위대하고 영원한 것에 걸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은 무한히 위대 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고 만족스러운 것이다. 내가 알기 원하고 경험하기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나와 우리 교회의 사명 선언이다.

헛되고 헛된 것들이 난무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리고 나는, 만인의 기쁨을 위해, 만 가지 일에서 지고의 하나님께 대한 열정을 확산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전에 우리교회에서 믿음 생활하시던 L 집사님이란 분이 계셨다. 그분이 의령 에서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고 교회에 오셔서 예배를 섬겼다고 한다! 귀신이 난무 한, 신기가 있는 자신의 영적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하고 12년 동안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전도자의 삶이요, 무엇이 유익한지를 바로 아는 자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존 파이퍼가 말한 ‘그리 스도를 위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대학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하나님의 전도자 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하며 사고할 수 있는 수련회가 되길 바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번뿐인 인생 곧 지나간다. 그리스도를 위해 한 일만 영원할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그분과 연관된 우리의 삶은 헤벨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관계로 나 아가는 것을 기억하자!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 수련회를 통해 헤벨의 세상에서 영원 한 하나님의 말씀에 접속하라! 하나님의 계획에 접속되어 그분의 능력을 다운로드하 라! 그분의 은혜를 우리의 영혼의 하드에 다운로드하는 수련회가 되길 바란다. 첫날 이라 버퍼링이 좀 심하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가운데 넘칠 줄 믿는다! 복음을 여러분의 심장에 다시 장착하는 행복한 수련회가 되길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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