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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영란은행 | 영국이 유로화를 안쓰게 된 계기(?)를 준 조지 소로스 최근 답변 27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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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앙은행을 돈으로 이긴
한 남자의 이야기.
어렵고 딱딱한 경제,시사,금융 이야기를
쉽고 유쾌하게 풀어내는 슈카아재의
경제/시사/이슈/잡썰 토크방송입니다.
#검은수요일 #조지소로스 #영란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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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 나무위키:대문

영란은행에서 소로스의 펀드는 엄청난 수익률을 올렸지만 이후 드러켄밀러의 투자 실패로 인한 막대한 손실 (특히 1998년 롱텀캐피탈의 파산이 직격탄이였다)이 계속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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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2/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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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아시아 투기세력⑤] 영란은행 파괴자 – 아틀라스뉴스

조지 소로스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은 영국을 보복할 절호의 기회를 발견했다. 그는 영국 파운드화의 평가절하가 임박했다고 판단, 퀀텀펀드 자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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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tlasnews.co.kr

Date Published: 9/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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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스, 1992년 ‘영국’ 어떻게 침몰시켰나 – 뷰스앤뉴스

제 1화: 조지 소로스의 1992년 ‘영란은행’ 공격기 1981년 영국의 투자 권위지 <국제투자가>는 소로스를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펀드매니저’로 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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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viewsnnews.com

Date Published: 5/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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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 영국 중앙은행을 털어 ‘1조 원’ 번 비결은?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환투기로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것입니다. 이날을 경제학자들은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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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connectmoney.com

Date Published: 5/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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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서치톡2] ‘영란은행 굴복’ 30년…소로스와 밀러가 ‘쿠팡주식 …

쿠팡 주식을 대거 매수한 조지 소로스와 스탠리 드러켄 밀러는 1992년 파운드화 공매도로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장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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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ametoc.hankyung.com

Date Published: 5/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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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오늘… 파운드화 폭락, 영국의 ‘검은 수요일’ – 머니투데이

ERM 가입을 주도했던 존 메이저 총리는 영란은행(BOE)의 외환보유고가 넉넉해 환율 방어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조지 소로스의 공격 하루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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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ews.mt.co.kr

Date Published: 3/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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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유로화를 안쓰게 된 계기(?)를 준 조지 소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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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조지 소로스 영란은행

  • Author: 슈카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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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4. 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qNRzHXQkagc

[1997 아시아 투기세력⑤] 영란은행 파괴자

조지 소로스, 1992년 9월 영국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 걸어 성공

태양이 지지 않는다던 대영 제국은 1992년 9월 16일 일개 투기꾼에 무릅을 꿇은 치욕을 기록했다. 역사가들은 이날을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이라고 불렀다.

조지 소로스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은 영국을 보복할 절호의 기회를 발견했다. 그는 영국 파운드화의 평가절하가 임박했다고 판단, 퀀텀펀드 자금을 풀어 파운드화 공격에 나섰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국제 외환시장에서 보유 파운드화를 일제히 팔고, 상대적으로 강한 마르크화를 사두는 이른바 ‘단기투매방식’(short-sale)이었다. 통화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비쌀 때 사서 쌀 때 파는 게 이문을 남긴다. 통화 가치가 폭락할 조짐이 보일 때 빨리 팔고, 가격이 바닥에 떨어진 후 사면 이문을 챙길 수 있다. 이때 강세 통화에 헤지해두면 환차익이 커진다. 문제는 누가 가치하락을 먼저 눈치 채고 모험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소로스는 파운드화가 고평가됐으며, 조만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날 정오, 영국의 노먼 라몬트 재무장관은 단기 금리를 2% 포인트 인상하면서 소로스와 그를 따르는 투기꾼 무리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그때 영국 재무장관은 큰 실수를 했다. 라몬트 장관은 150억 달러를 차입해서 파운드화를 방어하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소로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머지 않아 영국이 두손을 들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영란은행이 금리를 2% 포인트밖에 올리지 않은 것은 투기자에게 항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나중에 “라몬트 장관의 발언은 우리(투기자들)가 얼마나 투자하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신의 퀀텀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자본 전액을 마르크화 매입에 퍼부었다. 다른 헤지펀드도 소로스와 함께 움직였다. 파운드화 공격에 나선 헤지펀드 금액은 200억 달러를 넘었고, 영국 재무부는 마침내 항복을 하고 말았다.

영란은행 /위키피디아

당시 영국의 상황을 살펴보자. 1992년 9월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유럽통화제도(EMS: European Monetary System)의 중심 기구인 유럽환율체제(ERM: Exchange Rate Mechanism)에서 탈퇴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유럽은 물론 세계가 깜짝 놀라는 조치였지만, 소로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하면서, 그는 영국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1999년 1월 유럽단일통화(유로) 창설을 앞두고, 과도적으로 준고정환율 체제인 ERM을 운영하고 있었다. ERM은 유럽국가들이 독일 마르크화를 기축통화로 해서 자국 통화의 환율변동폭(밴드)을 6% 범위 내에서 변동을 허용하고 있었다.

영국의 ERM 탈퇴를 부추긴 원인은 독일 통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독일 정부는 쓰레기와 같은 동독 지폐를 폐기하고, 서독의 마르크로 대체했다. 그리고 동독지역을 복구하고 복지제도를 확립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자니 돈이 필요했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는 마르크화를 마구 찍어냈다. 당연히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분데스방크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했다. 분데스방크는 2년동안 금리를 10차례나 인상, 고금리정책을 유지했다. 2차 대전 전에 하이퍼 인플레이션를 경험한 독일로서는 인플레이션도 잡고, 동독을 복구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었다.

자본은 속성상 많은 이윤을 보장해주는 곳으로 움직인다. 세계의 핫머니들이 높은 이자율을 보장해주는 독일로 몰려들었고, 마르크화는 강세를 유지했다. 문제는 독일 이외의 다른 유럽국가들에서 발생했다. 자국 내에 있던 핫머니들이 대거 독일로 흘러 들어가는 바람에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유동성(돈)이 부족하게 됐다. 독일 이웃국가들은 자국 내에 핫머니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경기 후퇴를 감수하더라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금리 인상과 통화가치 하락은 정권을 흔드는 치명적인 것이다. 1992년 9월은 유럽 각국에 재앙의 달이었다. 먼저 핀란드가 자국 통화를 마르크화에 연동시켜온 고정환율제를 폐기했고, 뒤이어 스웨덴도 단기금리를 5배나 올렸다. 이탈리아 리라, 스페인의 페세타가 폭락했고, 다음 순서는 영국의 파운드화였다.

영란은행은 단기금리를 10%에서 15%로 올렸으나, 밀물처럼 밀려오는 투기자들을 막을 수 없었다. 영국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가뜩이나 높은 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는 방안과 차제에 ERM을 탈퇴, 환율 밴드의 구속에서 해방되는 방안등 두 가지였다. 메이저 총리는 여론에 밀려 후자를 선택해 마침내 ERM을 탈퇴하고 말았다. ERM 탈퇴는 6%의 밴드를 풀어 투기꾼들의 공격에 탄력적으로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힘에 부칠 경우 환율 폭등(파운드화 폭락)의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소로스는 파운드화 공격에 앞서 이탈리아 리라화를 공격, 이문을 남겼다. 그는 여기서 용기를 얻어 파운드화를 공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로스가 결정적으로 파운드화에 베팅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헬무트 슐레진저 분데스방크 총재와의 대화였다. 슐레진저는 그에게 유럽단일통화가 창설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단일통화가 마르크화이어야 한다는 강한 의미가 함축되었다.

소로스는 이를 재빨리 간파하고 명석한 두뇌를 회전시켰다. 독일 중앙은행은 유럽 단일통화가 창설되기 전에 자국의 이익을 충분히 챙길 것이며, 당분간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독일이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영국은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영국은 더 이상 금리를 인상할 경우, 모기지 론으로 주택을 구입한 서민들의 저항을 이겨내야 한다. 따라서 영국은 금리를 인상할 여력이 없고, 남아있는 보유 외환으로 파운드화를 방어하려 할 것이다. 영국의 방어능력은 1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당시 소로스의 퀀텀 펀드의 총 자산이 100억 달러였다.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전 재산을 파운드화 폭락에 베팅했다. 그리고 다른 투기자들의 호응을 구했다. 소로스 특유의 전술이다. 소로스는 특정 국가의 통화를 공격할 때 자신이 단기투매에 나섰다는 것을 살짝 흘려 다른 투기자들의 도움을 청한다. 그는 많은 우군을 만들어 특정 통화를 공격하는데, 파운드화에서도 같은 방법을 취했다.

소로스는 마침내 영국의 무릎을 꿇렸다. 영란은행은 파운드 절하를 용인하고 말았다. 그는 순식간에 10억 달러, 정확히는 9억5,000만 달러의 이문을 남겼지만, ‘영란은행의 파괴자’라는 불명예를 얻게 됐다.

그러면 여기서 소로스의 투기 철학을 살펴보자. 그는 “시장은 항상 왜곡돼 있다”고 믿었다. 시장 참여자들이 부정확하게 인식하고 있고, 정부의 개입도 시장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로스는 정치적 위기와 시장질서의 붕괴를 얼마나 미리 감지하느냐에 모험을 걸었다. 그는 며칠 이내에 결단을 요구하는 베팅을 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한두달 걸리는 모험을 하기도 한다. 실패할 경우도 있다. 그는 1997년 하반기 아시아 통화 폭락에 참여, 비난은 비난대로 받았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의 정치제도를 철저히 파악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그는 영국을 잘 알았다. 영국은 노동자, 서민의 파워가 강한 나라다. 금리를 인상하면 서민들의 주택 자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정부는 정치적으로 치명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영란은행도 그런 부담을 질 수 없게 된다. 영란은행은 투기꾼들을 방어하기 위해 200억 달러를 썼지만, 영국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소로스와 같은 투기꾼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은 나중에 ‘검은 수요일’이 자신들에게 이익을 주는 ‘백색 수요일’(White Wednesday)이었음을 알게 됐다. 영국 정부가 파운드화 절하후 인위적인 고금리 정책을 포기함으로써 서민에 대한 금리부담을 줄였기 때문이다. 소로스는 파운드화 가치를 떨어뜨려 영국 재무당국자의 잘못된 철학과 정책을 단호히 처벌했지만, 국민들을 고금리의 족쇄에서 풀어주는 해방자였다. 파운드화는 하락했지만, 금리는 인하됐고, 영국은 다시 경제 회복의 길을 걷게 됐다. 이런 것들을 소로스가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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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스, 1992년 ‘영국’ 어떻게 침몰시켰나

외환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1997년이 연상된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역외 환투기세력의 공세도 읽히고 있다. 월가 위기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등은 여전히 시장에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상대방이 조금만 허점을 보여도 무섭게 치고들어온다. 1997년 우리는 한번 세게 당했다. 처음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으나, 두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바보다.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모두가 신처럼 여기는 존재가 있다. 조지 소로스(78)다. 유대계 자본의 대스타이기도 하다. 그는 1969년 퀀텀 펀드라는 헤지펀드 회사를 설립한 이래 40년간 금융 일선에서 뛰고 있다. 그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때 아시아 국가들을 초토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나, 이에 앞서 1990년대초 영국을 비롯해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을 초토화시킨 화려한 전력의 소유자다.

몇 회에 걸쳐 소로스가 어떻게 선진국 중앙은행들을 침몰시켰나를 알아보도록 한다. 첫번째, 소로스의 1992년 영란은행 공격부터 알아본다.

제 1화: 조지 소로스의 1992년 ‘영란은행’ 공격기

1981년 영국의 투자 권위지 <국제투자가>는 소로스를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펀드매니저’로 선정했다. 일반인들은 그를 “황금의 손”이라 예찬했다. 그러나 10여년 뒤인 1992년, 영국인들은 소로스에 치를 떨었다.

1992년 9월, ‘검은 9월’로 불리는 최악의 유럽 통화위기가 발발했다. 자국 파운드화를 지키려 고군분투하던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유럽통화제도(EMS) 중심기구인 ‘환율조절메커니즘(ERM)’에서 전격 탈퇴한다고 선언,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더이상 ERM에 잔류했다가는 소로스가 주도하는 국제 환투기세력의 공세에 영란은행 금고가 텅텅 비어 국가파산할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유럽에 환란을 몰고올 독일 통일

영란은행과 소로스가 격돌한 1992년 환투기 전쟁의 발단은 EMS였다. 1999년까지 단일 통화권을 구축하려 한 유럽연합의 EMS 참가국들은 이를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 회원국간 기본환율을 설정한, 일종의 준(準)고정환율제인 ‘환율조절 메커니즘’ 즉 ERM을 운영하고 있었다. 예컨대 독일 마르크화와 영국 파운드화는 상하 6%라는 변동폭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만약 이 변동폭을 벗어날 정도로 환율이 요동치면 회원국 중앙은행들은 시장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변동폭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1992년 9월초, 인위적 환율관리 시스템인 ERM의 결정적 한계가 드러났다. 진앙지는 독일이었다. 1990년 통일을 달성한 독일은 낙후한 동독 경제를 단기간에 일구기 위해 휴지조각이던 동독 화폐와 서독 화폐를 1대 1로 맞교환하고, 동독에 대대적 투자를 단행했다. 돈이 동독으로 천문학적으로 풀리자,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인플레를 막기 위해 통독후 2년동안 10차례나 연거푸 금리를 인상하는 초고금리 정책을 취했다. 분데스방크의 초고금리정책은 독일내에서는 효과를 거둬, 이 기간중 독일의 소비자물가는 연간 2.5%밖에 안올랐다.

그러나 유럽 다른 나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높은 금리를 주는 나라로 쏠리는 게 돈의 속성이다. 돈이 독일로 쏠리면서 마르크화가 고평가되자, 다른 유럽국가들도 ERM 규정을 지키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했다. 그러나 가뜩이나 경기가 맥을 못추던 판에 금리를 올리자 독일보다 체력이 약한 다른 나라들은 경기가 급랭하며 실업률이 두 자리로 급등하는 등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하게 됐다. 하지만 헬무트 슐레징거 분데스방크 총재는 “독일 국내사정이 최우선이다. 못 견디겠다면 ERM에서 탈퇴하라”며 마이웨이를 계속했다.

1992년 9월 마침내 유럽 다른 나라들의 체력이 쇠잔했다. 9월8일 핀란드가 가장 먼저 마르크화와 자국화폐간 연동제를 폐기했다. 스웨덴은 자국화폐 가치 보전을 위해 단기금리를 자금마치 500%나 인상했다. 이탈리아 화폐와 스페인 화폐 역시 대폭락했고, 영국의 파운드화도 대폭락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통화 위기 발발이었다.

영국 수뇌부 “영란은행 금고는 넉넉” vs 소로스 “파운드화는 말라리아 걸려”

하지만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의 헤게모니를 다투고 있던 영국은 파운드화 폭락 방어를 선언하고 나섰다.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파운드화 평가절하는 영국의 장래에 대한 배신행위”라고까지 호언했다. 영국 수뇌부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영란은행 금고는 넉넉하니 국민들이여 안심하라”였다.

하지만 첫 비즈니스를 런던시장에서 했기에 누구보다 영국정세에 밝은 소로스는 그의 표현을 빌면 “말라리아에 걸린 파운드화”의 허장성세를 간파했다.

그는 이때부터 이례적으로 각종 언론지상을 통해 ‘파운드화 대폭락’을 예언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기피하는 ‘미스테리맨’으로 유명했다. 그는 생리적으로 기자들을 싫어해, 자신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을 때는 영국 <더 타임스>, 프랑스 <르 피가로> 등의 신문잡지에 직접 기고하는 형식을 취해왔다. 하지만 파운드화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이례적으로 신문, 잡지, TV 등 모든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른바 시장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가는 ‘아나운서 효과’를 겨냥한 고도의 바람잡이 공세였다.

소로스 필두로 세계 헤지펀드, 영란은행 융단폭격

소로스는 언론을 이용해 바람몰이를 하는 동시에, 가용가능한 자금을 총동원해 연일 파운드화 팔자 주문을 내며 무자비하게 파운드화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영란은행을 공격하면서 그가 직접한 동원한 현찰만 100억달러에 달했다. 당시로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다른 헤지펀드들도 소로스의 뒤를 좇아 1천100억달러를 동원해 파운드화를 공격했다. 이들은 적은 돈으로 큰 거래를 하는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지렛대 효과)’를 극대화, 영란은행이 받은 공세 압박은 1조달러대가 넘은 것으로 뒷날 추산됐다.

영란은행은 필사적으로 파운드화를 사수하려 했다. 외환보유고를 총동원해 파운드화를 사들이고, 단기금리를 10%에서 15%로 대폭 인상해 파운드화 가치를 지키려 애썼다. 하지만 소로스 일파의 노도같은 공세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연히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파운드화가 폭락하며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져들자 영국 국민들과 야당들은 메이저 총리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요구의 핵심은 “ERM에서 즉각 탈퇴하라”였다. 야당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영국에 ERM에 가입시켰던 범유럽주의자 메이저 총리는 결국 압력에 굴복, 굴욕적인 ERM 탈퇴 선언을 해야 했다.

비슷한 곤경에 처했던 이탈리아 리라화도 ERM에서 같이 탈퇴했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프불리카>는 이 소식을 “유럽, 산산조각 나다”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소로스 펀드 수익률 68.6%

소로스는 이 한달간의 총공세를 펼쳐 당시로선 천문학적 금액인 10억달러를 가볍게 벌어들인 것으로 후일 밝혀졌다. 그는 자신에게 돈을 맡긴 투자가들에게는 이보다 몇배 많은 거액을 돌려줬다. 소로스 펀드의 그해 운용수익률은 무려 68.6%였다. 소로스와 그에게 투자한 이들이 나눠가진 수익은 다름아닌 영란은행 금고에 쌓여있던 영국의 국부였다.

이 사건으로 소로스의 이름은 국제적으로 높아졌고, 중앙은행들이 자칫 외환정책을 잘못 운영할 경우 헤지펀드의 먹이가 될 수 있음을 국제사회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계속>

조지 소로스, 영국 중앙은행을 털어 ‘1조 원’ 번 비결은?

1992년 9월 16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한 사람에 의해 털립니다.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환투기로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것입니다. 이날을 경제학자들은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조지 소로스는 향후 ‘영란은행을 이긴 남자’라는 별칭을 갖게 됩니다. 조지 소로스는 1969년 1만 달러로 시작한 투자회사 ‘퀸텀펀드’를 20여 년 후 2100만 달러의 기금을 가진 회사로 만든 ‘헤지펀드계의 전설’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달성한 연평균 수익률 35%는 금융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국, ERM 가입 이유는?

1990년, 영국은 유럽 환율 조정장치(European Exchange Rate Mechanism, ERM)에 가입합니다. ERM이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유럽 내 단일 통화권을 구축하려 한 유럽연합 내 국가들의 과도기적 조치입니다. 또한 유럽 환율시장에 대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실시한 유럽 통화제도(EMS)의 핵심입니다. 당시 협약에 따르면, 유럽연합 회원국 간 중심 환율을 정하고 합의된 중심 환율에서 상하 2.25%까지의 변동만을 허용하는 준고정환율제를 채택합니다. 하지만 영국과 이탈리아 등 몇몇 나라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해 6%의 변동폭을 허용합니다. 즉, 변동폭을 벗어날 정도로 환율이 요동치면 회원국 중앙은행들이 시장에 개입해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절했습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 그리고 금리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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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서치톡2] ‘영란은행 굴복’ 30년…소로스와 밀러가 ‘쿠팡주식’ 샀다. 왜?

쿠팡 주식을 대거 매수한 조지 소로스와 스탠리 드러켄 밀러는 1992년 파운드화 공매도로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장본인들이다. 이들은 1998년 LTCM(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파산과 2000년 IT버블로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세기 최고와 최악의 투자 결과를 기록한 두 거물에 쿠팡은 어떤 기록을 남길지 주목된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헤지펀드 업계 거물인 조지 소로스(소로스펀드)와 스탠리 드러켄 밀러(듀케인패밀리 오피스)가 쿠팡 주식을 대규모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로스펀드는 50만주(약 170억원), 듀케인 패밀리 오피스는 1550만 6097주(약 5110억원)를 각각 사들였다.

시장에서는 두 사람이 쿠팡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판단에 매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커머스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그들의 투자 결정에 의문을 품고 있다. 실제로 쿠팡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 적자 폭이 확대됐다.

매출액은 늘었지만 판매관리비 등 각종 비용이 늘어난 탓이다. 그렇다면 소로스와 드러켄 밀러가 쿠팡 주식을 산 이유가 더욱 궁금해진다.

■ 1992년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헤지펀드계의 두 거물

소로스하면 가장 유명한 일화가 파운드화를 공매도해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사건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파운드화는 달러에 통화 패권을 내줬다.

이후 영국은 1990년 유럽 내 단일통화권 구축을 추진하게 된다. 당시 파운드화는 독일 마르크화 대비 상하 6% 수준에서 움직이도록 하는 ‘페그제’가 적용됐다. 밴드 이상 혹은 이하로 파운드화가 움직이면 영란은행이 개입하는 구조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독일 연방은행은 금리를 급격히 올렸다. 이에 마르크화는 강세를 보였고 파운드화 가치는 하락하기 시작했다. 파운드화 가치를 방어해야 하는 영란은행도 금리를 올렸지만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았다.

소로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파운드화를 대거 공매도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된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검은 수요일’(1992년 9월 15일)이다.

이 작전을 짠 인물이 당시 ‘퀀텀펀드’ 총괄담당인 드러켄 밀러이며 이 계획에 동의하고 허가해준 사람이 소로스다. 즉 영란은행이 손을 들게 만든 헤지펀드계 거물이 다시 쿠팡에서 만난 것이다. 파운드화 공매도와 다른 점은 ‘하방’이 아닌 ‘상방’이다.

■ 소로스와 드러켄 밀러의 ‘적’은 누구일까

소로스와 드러켄 밀러는 투자에 앞서 향후 펼쳐질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특히 소로스는 어렸을 적부터 각국 이념이 충돌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몸소 체험하기도 했다. 사실 그의 본명은 조지 슈와르츠다. ‘소로스’는 정치와 이념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산물이다.

그만큼 소로스는 투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실적 등의 단순한 전망만 고려하지 않는다. 투자 대상이 기업이라면 그 대상을 둘러싼 이해관계 등도 점검한다.

소로스와 드러켄 밀러가 영란은행을 최종 공격한 배경에는 수급이 있다. 당시 영국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고금리 무기로 내세운 영란은행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쿠팡에 투자하는 데 있어 두 사람이 경계하는 최대 요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등 주요주주들이 지분을 내놓는 경우일 것이다. 이는 수급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쿠팡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보유한 쿠팡 주식(클래스A 5700 만주, 약 2조원) 일부를 매각했다. 소로스와 드러켄 밀러가 쿠팡 주식을 사들인 시기가 3분기(7~9월)라는 것을 고려하면 아마도 이 소식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쿠팡 주식을 계속 보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상장 6개월 만에 일부(보유주식수의 9%)를 매도해 시장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 이유로는 중국 규제가 꼽힌다. 비전펀드는 쿠팡 외에도 중국 차량 공유 업체 디디추싱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규제 여파로 투자한 기업 가치가 하락하면서 쿠팡 주식 매각을 통해 일부 자금을 회수했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빅테크 기업에 대한 국내 기업 규제다. 빅테크 규제는 전세계적인 흐름이지만 비전펀드 특성을 감안하면 유독 타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손정의 회장은 리스크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리스크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라는 건 소로스와 드러켄 밀러 투자 성향을 고려할 때 타깃이 되기 충분하다.

쿠팡 성장은 제외하더라도 그들에게 매수 명분이 생긴 셈이다. 참고로 소로스는 과거 중국에 우호적이었지만 시진핑 정부 이후에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 소로스 투자원칙 ‘재귀성이론’으로 본 쿠팡

소로스 투자원칙은 ‘재귀성이론’에 기반한다. 재귀성이론의 핵심은 시장참여자들의 오판과 편견이 만들어낸 부분과 시장가치와의 괴리를 포착하는 것이다. 이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단어인 ‘펀더멘탈과의 괴리’를 떠올리면 된다.

양자(퀀텀)의 균형을 중심으로 다양한 요인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나아간다는 이론은 ‘퀀텀펀드’가 탄생된 배경이기도 하다.

비전펀드가 쿠팡 주식을 매도한 이후 주가는 어떻게 됐을까. 상승을 못할 뿐 추세적 하락은 멈춘 상황이다. 보통 대주주 지분 매각이 주가 부정적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선방하는 모습이다. 악화된 3분기 실적도 더 이상 주가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쿠팡 주가가 상승해야 두 거물도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 현재 쿠팡은 이커머스 고객을 기반으로 OTT, 배달 등 다양한 사업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사업영역이 많아질수록 규모의 경제 효과로 마케팅 비용 등이 줄면서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쿠팡의 올해 3분기 누적 기타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35% 증가해 리테일 매출 증가율을 넘어섰다. 현실화된다면 쿠팡은 시장에서 더 많은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이는 자본구조 개선으로 이어져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재귀성 이론의 대표적인 사례가 테슬라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적자’ 테슬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테슬라는 성장성을 보여줬고 동시에 신주발행을 통해 자금을 끌어들였다. 시장은 기꺼이 돈을 내줬다. 결국 테슬라 재정상태는 나아지고 이제는 수익성도 충족하게 됐다.

결국 테슬라는 눌려있던 펀더멘탈이 부각(괴리 축소)되기 시작했고 일론 머스크를 세계 최대 부호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소로스와 드러켄 밀러가 쿠팡 투자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1998년 금융시장 최대 사건이었던 LTCM(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파산과 2000년 IT 버블로 퀀텀펀드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었다.

당시 퀀텀펀드 총괄담당이었던 드러켄 밀러는 퀀텀펀드를 떠나게 됐고 소로스와 직접적 인연도 끝나게 됐다.

소로스와 드러켄 밀러는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이후 30년만에 쿠팡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지난 20세기 극과극의 기록을 남긴 두 거물이 선택한 쿠팡은 그들의 역사에 어떤 기록을 남길지 주목된다.

글쓴이=이성규 딥서치 콘텐츠 PD [email protected]

24년 전 오늘… 파운드화 폭락, 영국의 ‘검은 수요일’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 1992년 9월16일 조지 소로스의 투매로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영국이 유럽환율메커니즘(ERM)에서 탈퇴한 사태, ‘검은 수요일’이 발생했다./사진=머니투데이DB “파운드화는 곧 폭락할 것이다.” 1992년 9월, 헤지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는 신문과 방송에 나와 공언했다. 평소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발언은 금세 국제금융시장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파운드화 평가절하는 영국의 장래에 대한 배신행위.” 당시 영국총리 존 메이저는 소로스에 반박했다.

24년 전 오늘(1992년 9월16일), 영국 정부가 조지 소로스에게 패했다. 이날 영국은 유럽환율메커니즘(ERM)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소로스를 비롯한 헤지펀드 투자자들이 파운드화 투매를 시작한지 하루만에 백기를 든 것이다.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이라 불리는 이날은 영국 정치·경제 사상 최악의 굴욕을 당한 날이 됐다.

ERM은 유럽의 화폐통합에 대비하는 제도로 각 국가의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환율 변동폭을 정해진 범위 안에서 제한하는 시스템이었다. 영국은 1990년 10월8일 ERM에 가입했다. ERM 하에서 영국 파운드화는 독일 마르크화의 ±6% 수준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 변동폭을 넘어서게 되면 중앙은행이 개입해 돈을 풀거나 거둬들여 환율을 조정해야 했다.

사건의 발단은 독일이었다. 1990년 10월 통일한 독일은 서독에 비해 낙후된 동독 경제를 끌어올려야 했다. 독일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던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를 1대1로 맞교환했다. 동시에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2년간 10차례나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았다.

독일 경제는 살아났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은 경제위기를 맞았다. 고금리를 유지하는 독일로 자금이 몰리자 다른 유럽 국가들은 빠져나가는 자금을 잡기 위해 덩달아 금리를 올려야 했다. 금리를 올려 환율을 떨어뜨려야 ERM 규정을 준수할 수 있기도 했다.

금리 인상의 여파로 유럽 국가들은 실업률이 증가하고 경기가 얼어붙었다. 1992년 9월8일 핀란드는 마르크화 연동제를 포기했다. 스웨덴은 화폐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단기금리를 500% 인상했다. 이탈리아 리라와 스페인 페세타는 대폭락했다.

유럽 내 주도권을 두고 독일과 경쟁하던 영국은 ERM 체제 안에서 외환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선언했다. ERM 가입을 주도했던 메이저 총리는 영란은행(BOE)의 외환보유고가 넉넉해 환율 방어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ERM 가입을 주도했던 존 메이저 총리는 영란은행(BOE)의 외환보유고가 넉넉해 환율 방어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조지 소로스의 공격 하루만에 ERM 탈퇴를 선언했다. /사진=위키피디아 1992년 9월15일,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100억달러를 동원해 영국 파운드화 투매를 시작했다. 다른 헤지펀드들도 나서 총 110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화를 팔아치우자 환율은 하한선까지 떨어졌다. 영란은행은 환율 방어를 위해 280억파운드를 외환시장에 풀었다. 단기금리도 10%에서 12%로, 다시 15%로 대폭 인상했으나 파운드화 방어에 실패했다.

다음날인 9월16일 존 메이저 총리는 ERM 탈퇴를 선언했다. 마거릿 대처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할 때부터 ERM 가입을 주장해온 그였기에 더욱 굴욕적인 선언이었다. 보수당 정부는 당내 정쟁에 휩싸여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ERM에 가입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검은 수요일’로 조지 소로스가 번 돈은 10억달러에 달했다. 그해 퀀텀펀드의 수익률은 68.6%였다. 낭비된 영국 국민들의 세금은 33억 파운드로 추산됐다. 이는 모두 영국의 국부였다.

‘검은 수요일’의 여파는 오래갔다. 보수당은 1997년 선거에서 노동당에 패하면서 장기집권을 끝냈다. 노동당 정부는 영란은행에 금리결정권을 주고 재무부로부터 독립시키는 등 개혁에 나섰다. 이후 영국이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검은 수요일의 충격 때문이었다. “파운드화는 곧 폭락할 것이다.” 1992년 9월, 헤지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는 신문과 방송에 나와 공언했다. 평소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발언은 금세 국제금융시장을 들썩이게 만들었다.”파운드화 평가절하는 영국의 장래에 대한 배신행위.” 당시 영국총리 존 메이저는 소로스에 반박했다.24년 전 오늘(1992년 9월16일), 영국 정부가 조지 소로스에게 패했다. 이날 영국은 유럽환율메커니즘(ERM)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소로스를 비롯한 헤지펀드 투자자들이 파운드화 투매를 시작한지 하루만에 백기를 든 것이다.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이라 불리는 이날은 영국 정치·경제 사상 최악의 굴욕을 당한 날이 됐다.ERM은 유럽의 화폐통합에 대비하는 제도로 각 국가의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환율 변동폭을 정해진 범위 안에서 제한하는 시스템이었다. 영국은 1990년 10월8일 ERM에 가입했다. ERM 하에서 영국 파운드화는 독일 마르크화의 ±6% 수준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 변동폭을 넘어서게 되면 중앙은행이 개입해 돈을 풀거나 거둬들여 환율을 조정해야 했다.사건의 발단은 독일이었다. 1990년 10월 통일한 독일은 서독에 비해 낙후된 동독 경제를 끌어올려야 했다. 독일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던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를 1대1로 맞교환했다. 동시에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2년간 10차례나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았다.독일 경제는 살아났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은 경제위기를 맞았다. 고금리를 유지하는 독일로 자금이 몰리자 다른 유럽 국가들은 빠져나가는 자금을 잡기 위해 덩달아 금리를 올려야 했다. 금리를 올려 환율을 떨어뜨려야 ERM 규정을 준수할 수 있기도 했다.금리 인상의 여파로 유럽 국가들은 실업률이 증가하고 경기가 얼어붙었다. 1992년 9월8일 핀란드는 마르크화 연동제를 포기했다. 스웨덴은 화폐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단기금리를 500% 인상했다. 이탈리아 리라와 스페인 페세타는 대폭락했다.유럽 내 주도권을 두고 독일과 경쟁하던 영국은 ERM 체제 안에서 외환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선언했다. ERM 가입을 주도했던 메이저 총리는 영란은행(BOE)의 외환보유고가 넉넉해 환율 방어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1992년 9월15일,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가 100억달러를 동원해 영국 파운드화 투매를 시작했다. 다른 헤지펀드들도 나서 총 110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화를 팔아치우자 환율은 하한선까지 떨어졌다. 영란은행은 환율 방어를 위해 280억파운드를 외환시장에 풀었다. 단기금리도 10%에서 12%로, 다시 15%로 대폭 인상했으나 파운드화 방어에 실패했다.다음날인 9월16일 존 메이저 총리는 ERM 탈퇴를 선언했다. 마거릿 대처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할 때부터 ERM 가입을 주장해온 그였기에 더욱 굴욕적인 선언이었다. 보수당 정부는 당내 정쟁에 휩싸여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ERM에 가입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검은 수요일’로 조지 소로스가 번 돈은 10억달러에 달했다. 그해 퀀텀펀드의 수익률은 68.6%였다. 낭비된 영국 국민들의 세금은 33억 파운드로 추산됐다. 이는 모두 영국의 국부였다.’검은 수요일’의 여파는 오래갔다. 보수당은 1997년 선거에서 노동당에 패하면서 장기집권을 끝냈다. 노동당 정부는 영란은행에 금리결정권을 주고 재무부로부터 독립시키는 등 개혁에 나섰다. 이후 영국이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검은 수요일의 충격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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