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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자 되신 예수님 | Mediator (중보자) [Official Lyric Video] | 로드웨이브 (Lord Wave) 270 개의 새로운 답변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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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웨이브 #MEDIATOR #중보자 #DigitalSingle
[곡 소개]로드웨이브의 디지털 싱글 [MEDIATOR (중보자)]는 하늘과 땅의 중보자 (MEDIATOR)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담고 있는 찬양입니다.
이 곡은 기도의 집에서 예배하는 가운데 즉흥적 찬양 (Spontaneous Worship) 중에 만들어진 찬양입니다. 말씀을 보며 한음절 한음절 붙이고 연주파트도 하나씩 하나씩 들어오며 예배 도중 곡이 완성 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에서는 예수님을 옛 언약 (율법) 보다 더 뛰어나신 새 언약의 중보자 라고 이야기 합니다. 또한 후반절에 보면 그분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우리로 얻게 하시는 분 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들의 상황 가운데, 특별히 히브리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성도들에게 들려진 히브리서 9장 15절의 이 메시지를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위에서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주님을 예배 하길 소망합니다.

“주는 흔들리지 않네, 절대 흔들리지 않네”

[Credit]Executive Producer | Jeremy HAN (한재윤)
Music Producer by 로드웨이브(Lord Wave)
Album Artworks Designed by 이민의, 박예은
All Tracks Mixed \u0026 Mastered by 정수종 @ Subsonic Sound Studio

Release @ (주) 인피니스
Production Company @ Alive Music
# Track 01. Mediator
Composed by Jeremy HAN (한재윤)
Lyrics by Jeremy HAN (한재윤)
Arranged by 로드웨이브 (Lord Wave)

Main Vocal | Jeremy HAN (한재윤)
Vocal | Esther Kim (숙), Elijah Koo (경모), Rebecca Yu (현서), Rachel Kim(예빈)
Drums | 설재현
Bass | 오동엽
Elec. Guitar | 반세현
Ac. Guitar | 반세현, Jeremy HAN (한재윤)
Piano | 엄주현 (Breakthrough Worship)
Sound Programming | 엄주현 (Breakthrough Worship), 로드웨이브 (Lord Wave)

[스트리밍 \u0026 다운로드]Apple Music (iTunes) https://cutt.ly/mdHPhwj
YouTube Music https://bit.ly/2DGXts2
멜론 https://cutt.ly/ydAmbqz
지니 https://cutt.ly/RdAQwcp
벅스 https://cutt.ly/DdAQuK6
네이버뮤직 https://cutt.ly/NdAQaYO
소리바다 https://cutt.ly/AdAQf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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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FLO] http://flomuz.io/s/a.ByY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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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자 되신 예수님 | K블로그 – 케이타운 일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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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중보자 되신 예수님

  • Author: LORD WAVE
  • Views: 조회수 2,7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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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최초 공개: 2020. 8.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zD0MCC2TzUE

중보자 되신 예수님

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중보자 예수님 곧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위해 간구 하고 계십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자로써 기도가 필요한 자에게 안타까운 마음과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자 합니다.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의 위대한 이름과 그의 성실하심으로 기도하여 주님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중보기도의 능력

딤전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 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 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1. 중보기도란

딤전 2:1-2 에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면서

기도의 4가지 종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즉, 간구 와 기도 와 도고 와 감사 는 기도의 네 가지 종류입니다.

딤전 2:1-2에서 세 번째 사용하는 도고라는 말의 기도의 의미 는

‘중보기도’(intercession prayer)를 의미합니다.

중보기도는 기도의 한 종류로서 성경에서 계속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오늘날에 와서 생긴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처음부터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 입니다.

중보기도는 글자 그대로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 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의 대상 은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 입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나라와 민족이거나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도하라고 주신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을 남겨 주세요. 당신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중보자 되신 예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도와 주실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늘도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신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큰 갭을 뛰어넘어 서로 연결해 주는 중간 역할이 필요하다. 인간이 죄를 범한 이후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위치에 선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중개인으로서의 중보자

중보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시테스’는 중개인, 화해자란 뜻으로 두 당사자 사이에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개인의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있는데 그는 모세이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시내 산 계약 중개인의 역할을 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했던 존재는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천사도 종종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사람 사이에서 중개인의 역할을 했다. 그리스도의 3중 직에 해당하는 제사장, 선지자, 왕들 또한 중개인의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구약의 언약보다 더 좋은 약속인 새 언약의 중개인은 오직 한 분만이 자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새 언약의 유일한 중개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갈 수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전서 2:5).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히브리서 8:6).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 9: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 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새 언약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더 좋은 약속인 새 언약의 계약 당사자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란 뜻인데 구약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되었던 메시아(그리스도), 세상을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 그가 이 세상에 오셔서 죄로 인해 저주 아래 갇힌 사람을 구원할 이, 그가 이미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기쁜 소식이다. 그 구세주가 바로 다윗의 자손인 나사렛 예수시다.

지금까지 죄 가운데 살던 삶을 돌이켜 하나님의 길을 따르기로 하고(회개), 나사렛 예수, 그가 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믿고 그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새 언약의 계약 당사자가 되는 방법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린도전서 15:1-4).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중개인 이상의 의미인 중보자

중개인은 계약이 성사되도록 두 당사자 사이에서 중개 역할만 하면 끝이지만,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때 ‘중보자’란 의미는 이 개념을 뛰어넘는다.

성경에 ‘보혜사’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옆에 불리어지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상황을 대언하는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고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을 가리킨다. ‘또 다른’이란 말에서 이미 보혜사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일서 2장 1절에서는 헬라어‘파라클레토스’를‘대언자’로 번역하고 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한복음 14:16, 17).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일서 2:1).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개자일 뿐 아니라, 변호인이 되어 믿는 자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신다. 그는 또한 화해자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원수 되어 막혔던 담을 허셔서 화평의 길로 이끄셨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영’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불리는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믿는 자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위로자’이시기도 하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에베소서 2:14, 1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6부-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6부-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 중에서,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안위와 위로가 된다. 중보자란 뜻은 “대립 관계에 있는 사이에서 화해와 일치를 얻게 하는 자”라는 뜻이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와 같은 환경에 처하셨으며, 우리와 같이 유혹과 시험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실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신 분이시며,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실지를 아시는 분이시다.

성경 요한일서 2장 1절에는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는 말씀이 나온다. 대언자라는 뜻은 대신하여 간구하고 말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성경절은 당신의 피를 가지시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탄원하고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성경절이다.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중보자로서 우리들을 위하여 탄원하고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계신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히 9:24) 셔서 대언하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분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고 말하고 있다. 항상 살아서 간구하신다는 뜻이 무엇인가? 그것은 매일 매 순간마다 우리를 돌보시며, 연약하여 쓰러진 범죄한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도우시기 위해 대기하고 계시다는 뜻이다. 얼마나 고마우신 주님이신가!

예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는 동안, 사단은 그들을 범죄자로 하나님 앞에 고소한다. 사단은 인간들을 의혹에 빠뜨리고, 하나님을 믿는 확신을 잃어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 그분의 율법을 범하게 하고자 노력해 왔다. 사단은 그들의 생애의 기록을 지적하고, 그들의 품성의 결함과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지 아니한 점, 곧 그들이 구세주의 영광을 더럽힌 것과, 바로 그 자신이 그들로 범죄케 한 점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 백성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에 대하여 변명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와 믿음을 보여 주시고 그들이 용서받은 것을 주장하신다. 그분께서는 중보자로서 당신의 상한 손을 하나님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 드시고 “내가 저희 이름을 압니다. 내 손바닥에 저희 이름을 새겼습니다.” “나의 피, 나의 피, 아버지여, 나의 피를 기억하시옵소서!” 라고 탄원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라고 말씀 하신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을 고소하는 자를 향하여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 3:2)고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이 당신의 피를 의지해, 회개하고 자복한 것을 보이시며 그들이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께 충성된 백성들을“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내기 위하여 당신의 의의 옷을 입히실 것이다(엡 5:27).

조력자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수께서 우리를 돕는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2:18).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인성을 쓰시고 생활하셨으므로, 인간의 연약성과 인간의 어려움과 슬픔과 시험과 유혹을 너무나 잘 이해하신다. 그분은 인간이 당하셨던 모든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우리 인간들을 어떻게 도와주실지를 잘 알고 계신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고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늘 아버지의 임재 속에 사셨던 능력의 구세주께서는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능력을 주셔서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주신다. 죄를 지으려는 유혹을 받을 때, 사단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처할 때, 우리는 즉시 하늘에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조력자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확실한 상담자(相談者)이시다. 우리의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이 아무리 극심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늘에 계신 중보자이신 동정깊은 친구가 있다.

우리가 무지함으로 실족할 때, 구주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는 홀로 있다고 결코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도성으로 가는 길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정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없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은 없다. 하나님께서 치료의 길을 마련해 주시지 않는 슬픔이 없고, 비애가 없고, 인간적 약점이 없다.

아무도 스스로 자포자기하여 낙심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사단은 우리에게 가까이 와서 “너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 너는 회복될 가망이 전혀 없어”라고 가혹하게 암시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에게는 희망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으로 승리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심령과 육체를 아무리 억압하고 있을지라도,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승리하게 하시고 자유케 하신다.

인성을 취하신, 중보자되신 그분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동정하실지 아신다. 그리스도는 각 영혼들과 그 영혼들의 특수한 필요와 시험을 아실 뿐만 아니라, 심령을 괴롭히고 어렵게 만드는 모든 환경을 아신다. 그분께서는 동정어린 친절로써 고통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당신의 손을 뻗고 계신다. 가장 크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동정과 긍휼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마음 속에 동정을 느끼시며, 우리의 어려움과 난처한 문제들을 가져 와서 당신의 발 앞에 놓기를 바라신다.

기도의 필요성

중보자 되신 예수께서는 쉬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의 용서와 때를 따라 얻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매 순간 예수께 나가지 않으면 도움을 얻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기도를 등한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사람들 사이에 거하실 때에 자주 기도하셨다. 우리 구주께서는 그의 의무와 시련을 위하여 굳세게 나아갈 수 있도록 그의 아버지께 새로운 능력의 공급을 구한 탄원자와 간구자가 되신 사실은, 그도 역시 우리와 같이 궁핍하고 연약하였던 것을 증거한다. 그는 범사에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는 우리와 같이 연약한 한 형제로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히 4:15)는 자” 셨으나, 그의 인성(人性)은 그에게 기도가 필요하게 하고 기도가 특권이 되게 하였다.

그는 당신의 아버지와 교통하는 가운데서 위안과 기쁨을 얻었다. 인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도 기도의 필요를 느끼셨다면, 연약하고 죄가 많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얼마나 더 열심히 기도할 필요를 느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신성을 겸하여 가지셨던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새벽 미명”에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셨다면, 연약한 우리는 얼마나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는가?

기도가 요긴하지 않다는 생각은 영혼을 멸망시키는 사단의 가장 성공적인 계책이다. 기도는 지혜의 샘이요, 힘과 평화와 행복의 원천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의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부으시려고 기다리신다. 무한한 사랑의 샘에서 마음껏 마시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끊임없는 기도와 늘 깨어있음이 없이는, 우리는 부주의하게 되고 정도에서 탈선할 위험성이 있게 된다. 대적 마귀는, 우리가 열성 있는 간구와 기도로 시험을 이길만한 은혜와 능력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우리는 끊임없는 기도로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도록 해야하며, 그리하여 예수께서 우리의 기도에 향을 섞으셔서 하나님께 중보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기도하며, 주님과 매우 가까이 살므로써 뜻하지 않은 시험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생각이 마치 화초가 태양을 향하는 것처럼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은혜의 보좌로부터 능력을 받아 모든 시험을 이기도록 해야 한다.

오늘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감사와 기도로 우리의 소원을 은혜의 보좌 앞으로 올리자!

3부 대제사장과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7가지 모습]

3부 대제사장과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많은 칭호 중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36)과 “대제사장”(히 3:1)보다 더 사람에게 소중한 칭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직분을 통해 그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시고 높이 세우심으로, 저주받은 이 세상 가운데서라도 우리 인간들을 영광스러운 은혜의 왕국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고 말씀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깊이 생각하라고 하실까요? 히브리서에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제사장 직분에 대해서 여러 번 나옵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직분을 좀 더 잘 소개하기 위해 바울이 쓴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연구는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제사장과 대제사장에 관하여

1. 제사장의 직분은 무엇이었는가?

① 성전의 일 : 예물과 제사 드리는 일(민 18:18), 향을 사르고(출 30:7; 신 33:10), 등불을 켜고(출 30:8), 율법을 가르치며(신 33:10; 말 2:6,7), 예배를 인도하며(말 2:5-7), 백성을 판결하는 일을 도왔습니다(레 13:13, 민 5:14,15).

② 바깥 일 : 일반 제사장들의 일은 성막 뜰과 성소의 봉사입니다. 담당이 아닐 때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위한 일인 서기관, 재판장, 선생, 재무 역할로 이것은 “바깥 일”이라 칭했습니다(대상 26:20-32).

지상 성막에서는 대제사장만이 아니라, 일반 제사장들도 직무를 수행했는데, 한 사람이 그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제사장들이 수행하던 사역은 우리의 대제사장의 일을 예표합니다.

2. 어떤 사람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는가?

①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론과 그의 후손들만(레위자손들) 여호와 앞에서 봉사하도록 허락되었습니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민 3:10)

②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 :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히 5:4)

3. 대제사장과 그의 하는 일은 무엇이었는가?

① 지성소 봉사 사역 : 대제사장은 한 해 동안 전반적인 매일의 봉사 사역과 함께, 일년에 한 번 있는 대속죄일에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지성소에서 거행된 이 봉사로 성소에서 연중 행해지던 일체의 봉사가 완결되었습니다. 대속죄일에 지성소에서는 일년 동안 쌓였던 모든 죄의 기록들이 다 지워져 도말되며 없어지는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을 심판의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판결(그 죄인이 정말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그 죄를 버렸는지를 살피는 최종 심판)의 사역에 죄인들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대신 서는 자입니다. 동시에 죄인들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는 중보자였습니다. 이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회중을 위한 한 제물을 취하여,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율법이 기록된 돌비 위에 있는 속죄소에 뿌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죄인의 생명을 요구하는 율법의 요구가 충족되었습니다.

② 재판장 :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재판장으로서, 이 직무를 수행할 때는 “판결흉패”를 붙였습니다(출 28:29). 하나님은 이 판결흉패에 있는 우림과 둠밈을 통해 심판과 결정을 내리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 대제사장의 기능은 아버지께서 모든 심판을 맡기신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를 표상합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히 5:1)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히 9:7)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1. 예수님이 가지신 봉사를 위한 자격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을 때, 그분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지성소 봉사의 실체인 하늘 성소의 첫 장막의 봉사를 하셨습니다. 지상 성소의 첫째 칸에서 이루어진 그 표상적 사역의 실체를 완전히 성취한 후에는, 대제사장으로서 지성소의 영광스러운 장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 8:1).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 5:4-5).

2. 예수님이 갖추신 대제사장의 자격

① 희생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지셨다 : 죄 지은 사람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누군가가 대속의 죽음을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죄 없는 대속물의 피흘림에 의해서만 속죄를 받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는 어린양”, 희생당하는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피로 우리의 죄를 덮으시며, 속죄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대제사장 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7).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②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 줄을 아신다 : 인간을 구원하고, 돕기 위해서는 인간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사는 우리를 동정을 할 수는 있으나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시험과 유혹을 받을 때, 진정으로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연약한 인성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신 이유입니다. 그리스도는 타락한 인류의 연약함을 자기 몸에 취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야만 가장 깊이 타락해 있는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시험받는 자들을 어떻게 구원하실지 알기 위하여 자신의 죄 없는 본성에 우리의 죄 있는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야말로 대제사장의 자격을 갖추신 분이십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2:14-18)

③ 죄는 없으셨다 : 지상 성소에서 봉사하던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기 전, 먼저 제물을 드려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므로 자신을 정결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예민한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항상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전적인 인간”이었다고 믿으므로, 사람 되신 그리스도에게 타락된 흔적이나,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거나, 어떠한 방법으로도 죄악에 굴복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그리스도는 생각으로도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어떤 불순한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옳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분이 인간의 형체를 취하셨지만, 죄의 흔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인성 속에서 그분의 신성의 순결함을 간직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법대로 사셨으며, 범죄자들의 세상 속에서 그분의 법을 드높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불순한 환경 속에서 그분의 순결을 유지하셨습니다. 사탄은 그분의 순결을 더럽히거나 타락시킬 수 없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죄악이라도 발견되었거나, 한 번이라도 사탄에게 굴복했다면, 사탄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생활하시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사셨으며, 사탄의 유혹과 죄를 승리하셔서 우리의 모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대제사장의 자격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 7:2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④ 영원한 제사장직을 가지셨다 : 옛날 유대 나라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 제사장은 사망과 동시에 제사장직이 끝나므로 항상 교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사시는 그리스도는 갈리지 않는 제사장직을 가지고 계십니다.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히 7:17).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히 7:24).

⑤ 살아계신 중보자이시다 :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십니다. 대제사장은 죄인들을 회개하게 하며 하나님 앞에 용서를 간구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용서받은 자들에게 전달해주는 중보자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중보란 죄 용서를 위해 기도하는 일 뿐 아니라, 죄인이 다시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도록 필요한 때를 따라 돕는 은혜, 곧 성령의 능력을 제공해주는 일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4)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

우리의 변호사 예수 그리스도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가 됩니다. 중보자란 뜻은 “대립 관계에 있는 사이에서 화해와 일치를 얻게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같은 환경에 처하셨으며, 우리와 같이 유혹과 시험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실 자격이 있는 분이시며, 우리를 어떻게 도울지를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탄원하고 계십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탄원자로 계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히 9:24) 대언하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매일 매 순간마다 우리를 돌보시며, 연약하여 쓰러진 범죄한 인간들을 용서하고 돕기 위해 대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동안, 사탄은 그들을 범죄자로 하나님 앞에 고소합니다. 사탄은 인간들을 의혹에 빠뜨리고, 하나님을 믿는 확신을 잃어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떠나 그분의 율법을 범하게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을 지적하고, 그들의 성품의 결함과 그리스도와 같지 않은 점, 곧 그들이 구세주의 영광을 더럽힌 것과, 사탄 자신이 그들로 범죄케 한 점들을 지적합니다. 사탄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 백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변명해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와 믿음을 보여주시고 그들이 용서받은 것을 주장하십니다.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자신의 상한 손을 하나님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 들고 탄원하십니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압니다. 내 손바닥에 그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나의 피, 나의 피, 아버지여, 나의 피를 기억하옵소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그리고 자신의 백성을 고소하는 자를 향하여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 3:2) 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이 자신의 피를 의지해, 회개하고 자복한 것을 보이시며, 그들이 용서받은 죄인임을 증명하십니다. 그분은 아버지께 충성된 백성들을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나타내기 위해 주님의 의의 옷을 입히실 것입니다(엡 5:27).

조력자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돕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인성을 가지고 생활하셨으므로, 인간의 연약성과 어려움과 슬픔과 시험과 유혹을 너무나 잘 이해하십니다. 주님은 인간이 당했던 모든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우리를 어떻게 도울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구세주께서는 우리가 시험을 받을 때 능력 주셔서 쓰러지지 않게 도와주십니다. 죄의 유혹을 받을 때, 사탄의 공격으로 곤경에 처할 때, 우리는 즉시 하늘에서 능력을 주려고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예수님은 우리를 돕는 조력자이며, 확실한 상담자이십니다.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이 아무리 극심할지라도 하늘에 계신 중보자이신 동정 깊은 우리의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지함으로 실족할 때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결코 홀로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으로 가는 길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정복할 수 없는 어려움은 없습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치료의 길을 마련해 주시지 못할 슬픔이나 비애나 인간적 약점이 없습니다. 아무도 자포자기하여 낙심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가까이 와서 “너는 절망적인 상태야, 너는 회복될 가망이 전혀 없어”라고 가혹하게 암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으로 승리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마음과 육체를 아무리 억압할지라도 우리에게 능력 주셔서 승리하게 하고 자유케 하십니다.

인성을 입고, 중보자되신 주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동정하실지 아십니다. 그리스도는 각 영혼들의 특수한 필요와 시험을 아시며, 마음을 괴롭히고 어렵게 만드는 모든 환경을 아십니다. 주님은 동정어린 친절로 고통하는 모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가장 크게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동정과 긍휼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동정을 느끼시며, 우리의 어려움과 난처한 문제들을 가져 와 주님의 발 앞에 놓기를 바라십니다.

중보자와 우리의 기도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용서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매 순간 예수님께 나가지 않으면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 중에 기도를 등한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사람들 사이에 거하실 때에 자주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그분의 의무와 시련을 위하여 굳세게 나아갈 수 있도록 아버지께 새로운 능력의 공급을 구한 탄원자와 간구자가 되셨습니다. 이 사실은 그분도 역시 우리와 같이 궁핍하고 연약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의 모본이십니다. 우리와 같이 연약한 한 형제로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히 4:15)으셨지만, 그분은 기도가 필요했으며 기도가 특권이 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면서 위안과 기쁨을 얻으셨습니다. 인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기도의 필요를 느끼셨다면, 연약하고 죄 많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얼마나 더 열심 있는 기도가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신성을 겸하여 가지셨던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새벽 미명”에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셨다면, 연약한 우리는 얼마나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마귀는 시험을 이길만한 은혜와 능력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가 열렬한 간구와 기도로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애씁니다. 기도는 지혜의 샘이요, 힘과 평화와 행복의 원천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부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무한한 사랑의 샘에서 마음껏 마시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게 하면, 중보자 예수님께서 우리 기도에 향을 섞어 하나님께 중보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기도하며, 주님과 매우 가까이 살아서 뜻하지 않은 시험을 당할지라도 마치 화초가 태양을 향하듯이 우리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그러면 은혜의 보좌로부터 능력을 받아 넉넉히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지 [열한시 255호 예수님의 7가지 모습]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01/15,주일-오후) “신앙고백서(17)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 디모데전서 2:5 / 고한율목사

(01/15,주일-오후) “신앙고백서(17)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 디모데전서 2:5 / 고한율목사

찬송가 : 151 장, 93 장

오늘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8장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해서 이전에 자신이 자랑하고 유익하게 여겼던 것들이 지금은 배설물처럼 여겨진다고 고백하였습니다. 7~8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실 사도 바울에게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배출한 지파였습니다. 즉 바울은 왕족의 혈통에서 태어났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 유대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던 아주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이 모든 것이 바울의 자랑이었고,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믿은 후에 모든 것이 다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에 비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자랑했던 것은 그야말로 배설물과 같이 무가치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반짝이는 물체만 보면 그것이 신기하니까 귀한 것 인줄 압니다. 몇 백원도 안하는 큐빅을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진짜 보석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지요? 큐빅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마치 이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졌던 것들이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나 귀하고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처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불치병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산다고 가정해 보세요. 죽음의 절망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데, 이 때 저 먼 나라에서 치료제가 발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식을 아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까요?

여러분 돈이 많이 버는 지식, 명예를 얻는 지식, 권력을 얻는 지식, 이 모든 것이 다 귀한 지식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 지식에 비하면 이런 지식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큰 명예를 얻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해도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신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영생을 얻는 지식보다 더 귀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지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을 알고 더욱 더 예수님 알기를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신앙고백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고상한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8장 1항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21쪽). “하나님께서는 그 영원하신 목적에서 기쁘신 뜻대로 그 독생자 주 예수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과 교회의 머리와 구주가 되시고, 만물의 후사와 세상의 심판자가 되셨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그에게 씨가 되는 백성을 주셨다. 때가 이르매 그 백성은 그로 말미암아 속량되고,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함이 되고, 성화 되고, 영화롭게 함이 되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중보자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중보자입니다. 그런데 중보자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양쪽 사이에서 서로를 연결해 주는 사람을 중보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서로를 연결시켜주는 중보자가 되십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가 읽은 디모데전서 2:5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한 분 있는데, 그 분이 곧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중보자로 세우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는 중보자가 필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직접 아담과 하와를 만나셨습니다. 그 사이를 연결해 줄 중보자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아와 범죄한 이후 모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죄가 들어오자 사람은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어둠에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곧바로 물러가게 되듯이 빛 되신 하나님 앞에 죄의 어둠에 갇힌 인간이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숨은 것입니다. 죄를 짓기 전까지 하나님의 음성은 사랑의 음성이었고,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는 이 세상 그 어떤 연인도 누릴 수 없는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교제였습니다. 하지만 범죄한 이후 하나님의 음성은 심판의 음성으로 들리게 되었고, 인간은 감히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보며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한 번만 보여주면 믿겠다. 그런데 그분의 소원대로 정말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요?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환상 중에 하나님을 뵙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환상 중에 하나님을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보자마자 이사야 선지자가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6:5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을 본 이사야 선지자의 첫 마디는 망했다 였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봤다면 그 결과는 죽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인은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절대 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추방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꼴도 보기 싫어서 쫓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것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이 하나님을 뵈면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지만 그들을 사랑하셨고, 그래서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죄인이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연결해 줄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보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자신과 죄인 사이를 이어줄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이처럼 중보자라고 하니까 생소하게 생각하는 성도님이 혹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중보자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많은 은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기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에 마지막에 꼭 뭐라고 말하면서 마칩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합니다. 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님도 성령님도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기도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고 할 때, 우리의 기도가 곧바로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요한복음 14:6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여 나오는 죄인들을 영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4:13절에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중보자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셔서 응답하여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신다는 것은 어떤 막연한 교리가 아닙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라고 할 때 예수님께서 중보자로서 하시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이것은 예수님의 명칭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흔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냐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Christian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속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니까 예수가 성이고, 그리스도가 이름인 것처럼 그렇게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줄임말입니다.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의 줄임말입니다. 이 말을 처음으로 고백한 사람은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길 가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신앙고백이 줄여져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아예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가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직분입니다. 즉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직분을 가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메시아와 같은 뜻입니다. 메시아는 히브리 말이고, 그리스도는 그리스 말입니다. 그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할 때,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기름을 부어 세웠던 세 가지 직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지자, 제사장, 왕입니다. 이들을 메시아로 불렀고,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라고 할 때는 예수님이 이 세 가지 직분을 모두 가지신 분이라는 뜻이 됩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이신데, 무슨 일을 하셨는가? 이 세 가지 직분, 선지자, 제사장, 왕의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선지자의 직분을 감당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과 차원이 다른 선지자였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그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받은 그대로 전했을 뿐입니다. 마치 아나운서가 뉴스를 써 준 그대로 읽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1: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에게 하나님께로 가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5절입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서 이야기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경에 나오는 제사장과는 차원이 다른 제사장이었습니다. 보통의 제사장들은 죄인이 가져온 짐승을 제물로 드려서 그 사람이 죄 용서를 받도록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제사장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먼저 제물부터 달랐습니다. 보통의 제사장들은 짐승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린 이유는 분명합니다. 짐승의 피가 인간의 죄를 완전히 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4절입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처럼 짐승의 피가 죄를 완전히 씻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 없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9:12절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침으로 우리 죄인의 모든 죄를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전처럼 제사를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의 효력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모인 우리들은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제사장이 되어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왕의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할 때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12명의 제자를 삼으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12명이 아니라, 수 백, 수 천 명의 사람들도 제자로 삼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12명만을 제자로 삼으셨을까요? 12이라는 숫자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12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지파 수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것이 12입니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를 삼으신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새 백성을 모으기 위함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새 백성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고백서에 보면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와 구주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새 백성들을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모인 새 백성들을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것이 곧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로서 선지자와 제사장, 왕의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예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사도 바울처럼 이 예수님을 아는 고상한 지식을 사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수록 우리는 더 깊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깊어지고 풍성하여져서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중보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셔서, 셋째 하늘에 계시며, 지금은 우리들을 위해 중보 사역을 담당하고 계신다.

이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제사장으로서의 직무수행이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중보 사역을 감당하신다.

히브리서 7장 25절은 그러므로 그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심이라. 고 말씀하고 있고,

히브리서 9장 24절에는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물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들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고 말씀하고 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께서도 중보 사역을 하고 계심을 로마서 8장 26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 (로마서 8장 26절)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셔서 하늘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중보하고 계신다.

그분은 제사장으로서 죄인들 대신해서 의로우신 하나님께 중보하고 계신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마리아는 중보자가 아니다!)

레위기 4장 16절에 따르면 제사장은 주님께 피의 희생제물을 갖다 바칠 수 있다.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수송아지의 피를 회중의 성막으로 가져다가 (레위기 4장 16절)

욥의 소망은 중보자를 얻는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 중재인도 없으니 우리 둘에 손을 얹을 자도 없도다. (욥기 9장 33절)

욥이 원했던 것은 법정에서 자신을 대신하여 말해 줄 법정 대리인과 같은 사람을 얻는 것이었다.

욥은 법정에서 자신을 대신해서 재판장에게 변호해 줄 어떤 사람을 원했다.

그는 재판장이 법정에서 자기를 대리할 누군가를 임명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반대측과 욥 둘 위에 손을 얹어 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선택하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을 공부할 때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당신에게 동시에 손을 얹을 수 있다.

석가모니나 성모 마리아나 요셉이나 침례인 요한이나 성 프란시스나 간디나 다른 누군가가 여러분 위에 손을 얹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손을 얹을 수 없다.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 (요한복음 4장 24절) 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사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이 사다리는 타락한 인성이라고 하는 진흙이 있는 땅에 닿아 있어야 하고 한편으로는 아무도 빛 가운데 계신 그 분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셋째 하늘에까지 닿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격을 갖추신 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다리의 꼭대기 부분이 되실 수 있다.

또 여자에게 태어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는 인간으로서 사다리의 가장 낮은 부분이시기도 하다.

주님은 인간을 대신해서 모든 것을 감당하실 수 있는 분이 되셨으며 하늘과 땅의 교량 역할을 하셨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14장 6절)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하시다.

이외의 모든 다른 길은 지옥으로 직행하는 길밖에 없다.

이렇게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기독 교리가 현대의 지성을 자부하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지만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없애 버린 채 왕국을 세우겠다고 설쳐 댈 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성경의 기록된 진리의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주장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

우리는 때때로 베들레헴에서 성육신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 갈보리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그분께 감사한다.

하지만 더욱 감사드려야 할 한가지가 바로 현재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그분의 중보 사역이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그분은 날마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신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자. 이는 우리가 자비를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발견하기 위함이라. (히브리서 4장 6절)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이 땅에서 완성되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다 이루었다. 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9장 30절)

다시 말해서 우리의 구원은 이미 완료되었다.

당신은 거기에 아무것도 더할 필요가 없다.

죄는 십자가 위에서 의롭게 처리되었으며, 예수님은 다시 죄를 위해서 죽지 않으신다.

히브리서 9장 24~28절에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밝히고 계신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물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들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들의 피를 가지고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것처럼 여러 번 자신을 드리실 필요가 없으니,​

그리하면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그가 여러 번 고난을 당하셨어야 될 것이지만 이제 그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려 죄를 없애시려고 세상 끝에 한 번 나타나셨느니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한 번 드려지셨고, 두 번째는 자기를 바라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죄 없이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장 24~28절)

히브리서 10장 8절 ~12절은 위에 말씀하시기를 희생제물과 예물과 번제들과 속죄제는 바라지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려진 것이라.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을 새롭게 한다거나, 반복한다거나, 계속해서 드려져야 한다는 자는 큰 잘못임을 알 수있다.

히브리서 10장 8~12절을 자세히 읽어보라.

단 한번의 희생제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으며 다신 반복되거나 지속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단번(once for all)에 드려진 것이며, 영원히 드려진 것이며, 결코 반복되거나 되풀이되지 않는다.

카톨릭(천주교,성당)에서처럼 매주 일요일 11시에 미사를 드리며 갈보리의 희생제를 반복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며, 성경을 모독하는 것이다.

영국 국교회가 제정한 39개항의 규례 31조에는 매우 위험한 흥미있는 내용이 있다.

“로마카톨릭 교회(천주교,성당)의 미사에 대한 교리는 매우 위험한 기만과 신성 모독적인 사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을 위험한 기만과 신성 모독적인 사기극의 장본인인 로마카톨릭으로 이끌고 있는 은사주의 운동 또한 단호히 배격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대제사장이 있지만 이 땅 위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영광 가운데 올라가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 되실 조건을 충족시키셨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들 가운데서 들려 올라가신 것이다.

히브리서 5장 1절은 이 점을 분명히 말하고 계신다.

사람들 중에서 택함을 받은 대제사장마다 사람들을 위하여 임명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일들을 하게 되나니, 이는 그로 예물과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을 드리게 하려는 것이라. (히브리서 5장 1절)

이 말씀대로 그분은 택함을 받아 그 일을 수행하도록 임명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임명하신 하나님께 신실하셨다.

그는 자기를 세우신 분께 신실하기를, 마치 모세가 그분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히브리서 3장 2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아 그 직무를 수행하신다.

이런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하느니라. (히브리서 5장 4절)

그분은 하나님과 관련된 일들을 하셨다.

그러므로 그가 모든 일에 마땅히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했으니, 이는 하나님과 관련된 일들에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들을 위해 화해를 이루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장 17절)

이는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들을 위해 화해를 이루기 위함이다.

주님은 죄들로 인해 예물과 희생제물을 드리셨다.

히브리서 5장 1절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과 예물로 내어 놓으셨다.

사람들 중에서 택함을 받은 대제사장마다 사람들을 위하여 임명을 받아 하나님께 속한 일들을 하게 되나니, 이는 그로 예물과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을 드리게 하려는 것이라. (히브리서 5장 1절)

그 제물은 한 번 영원히 드려졌으며 최종적이며 영원한 속죄였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희생제물과 예물과 번제들과 속죄제는 바라지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려진 것이라.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히브리서 10장 8~12절)

이 세상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미사라는 명목으로 희생제사를 되풀이하는 일보다 더 이교도적이고, 반성경적이며, 가증스럽고, 이단적인 가르침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다 이루어진 것이다.

자신이 구원 받은 것을 아는 사람과 구원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도 모르는 무리들과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카인처럼 포도주를 피인 것처럼 하나님의 제단 앞에 두고 제사를 드리는 자들은 자신의 제물이 하나님 앞에 받으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녀가 또 카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으나 카인은 땅을 경작하는 자였더라.

시간이 흐른 후에 카인은 땅에서 나는 열매를 가져와서 주께 제물로 드렸고,

아벨도 자기 양떼 가운데서 첫배 새끼들과 그 살진 것을 가져왔더니, 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더라. 그러므로 카인이 몹시 격노하고 안색이 변하더라.

주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격노하느냐? 어찌하여 네 안색이 변하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시니라.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과 이야기하더라.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달려들어 그를 죽이니라. (창세기 4장 2~8절)

그의 형제 아벨은 실제 양을 잡아다 주님의 제단 앞에 드렸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받아들여졌다는 증거를 금방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인이 땅에서 난 포도주로 피를 대신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카인은 땅에서 나는 열매를 희생제물로 바치면서 그가 드린 포도가 실제의 피인 것처럼(화체설) 행동했다.

결국 그는 적그리스도의 예표로서 표를 받았고 지옥으로 갔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론과 멜키세덱 계열을 따라 제사장이 되셨다.

우라는 성경을 읽을 때 주님께서 이 지상에서 제사장처럼 행동한 것을 보지 못한다.

주님은 이 지상에서 선지자(Prophet)이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첫번 째 사역은 선지자로서의 사역이었다.

주님의 현재 사역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이다.

물론 앞으로의 주님의 사역은 왕으로서 이 세상을 다스릴 직분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못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성격과 본질을 차분하게 공부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주님은 성경을 성취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선지자가 되셔야 했고 제사장이 되셔야 했으며 왕이 되셔야 한다.

성경을 대충 읽어 보아도 그분이 선지자이셨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히브리서 8장을 읽어 보면 주님은 현재 제사장이란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다음은 주님이 무엇이 되시겠는가?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히 왕(King)이 아니시겠는가?

성령께서 그분이 다시 올 때 성령께선 그분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란 사실을 알려 주시는데 태만하지 않으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론처럼 사람들 앞에서 희생제물을 드렸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개적으로 자신을 갈보리 위에서 제물을 드렸던 것이다.

그분은 아론과 같이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면전에 서 계셨다.

그분은 아론과 같이 백성을 축복하시려고 왔다.

아론은 사람이었기에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에 영원히 살아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이 점에서 예수님은 구약에 나와 있는 또 다른 유명한 제사장 직분의 모형을 따르신 바 그것은 곧 멜키세덱의 계열을 따르신 것이다.

이 멜키세덱은 영원한 제사장이다.

또 그가 다른 곳에서도 말씀하시기를 “너는 멜키세덱의 계열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5장 6절)

신성 모독적인 로마카톨릭은 북아프리카에서 그들의 교회를 시작할 때 다른 사람을 제사장으로서 의존해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신약성경 전체를 어기고 말았다.

신약 성도는 누구나 제사장이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멕시코 시티, 뉴욕, 산안 토니오, 시카고, 세인트 루이스, 로마, 볼티모아 같은 도시에 계시지 않는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영광 가운데 계시며 그의 사역을 완수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히브리서 10장 12절)

바보처럼 카톨릭 사제를 제사장인 줄 알지 말라.

주님께서 이 문제를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여러분들은 주의 만찬을 기억하면 될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하셨지, 피의 제사를 되풀이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념하라고 하셨지 갈보리 희생제사를 매주 반복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고린도전서 10장과 11장을 주의깊게 읽어 보라.(특히 10장)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모르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우리 조상들이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모두 바다를 통과하였으며,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모세에게 침례를 받았고,

또 모두 같은 영적 음식을 먹었으며,

모두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다는 것이라. 이는 그들이 그들을 따랐던 그 영적 반석에서 나온 것을 마셨음이요.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음이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대부분을 그리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죽어 넘어졌느니라.

이제 이런 일들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그들이 열망하였던 것같이 우리도 악한 일들을 열망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처럼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와 같으니 곧 “그 백성이 앉아서는 먹고 마시며 또 일어서서는 뛰논다.”한 것이라.

우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음행하지 말자. 그들은 그러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느니라.

우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시험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말자. 그들은 그러다가 뱀들에게 물려 죽었느니라.

너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불평한 것처럼 불평하지 말라. 그들은 그러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당하였느니라.

이제 그들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이 본보기가 되고 또 세상의 끝날들을 당한 우리에게 권면으로 기록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서 있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사람에게 흔히 닥치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마련하셔서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를 피하라.

내가 지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듯 하노니 내가 말하는 것을 너희는 판단하라.

우리가 축복하는 이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제가 아니며 우리가 떼는 이 빵은 그리스도의 몸의 교제가 아니냐?

이는 우리 많은 사람이 한 빵이요, 한 몸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모두 그 한 빵에 참여하기 때문이라.

육신을 따르는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사람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은 무엇이며 또 우상들에게 바친 제물은 무엇이냐?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마귀들에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노라.

너희는 주의 잔과 마귀들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없으며 너희는 주의 식탁과 마귀들의 식탁에 함께 참여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주를 질투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하냐?

모든 것이 내게 합법적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합법적이라고 해서 다 세워 주는 것이 아니니라.

누구나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각자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

고기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나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이라.

만일 믿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너희를 잔치에 청해서 너희가 가고 싶거든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으라.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우상들에게 바친 제물이다.”라고 하거든 알려 준 그 사람과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이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임이니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네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겠느냐?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왜 비난을 받겠느냐?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나 아무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나도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한 것같이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노니 이는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0장)

내가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달해 주었나니 이는 주 예수께서 넘겨지시던 그 밤에 빵을 가지고

감사를 드린 후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며

식후에도 이와 같이 잔을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나의 피로 된 새 언약이라. 이것을 행하여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이라.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치 않게 이 빵을 먹고 주의 이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

사람이 자신을 살펴보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하리니

이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의 저주를 먹고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라.

이 때문에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약하고 병들었으며 상당수가 잠들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1장 23~30절)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만찬 때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하면서 마신 것은 (발효된)포도주가 아니라 ‘포도 열매에서 나온 즙’ 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죽음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기념으로 마셨으며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마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앉아서 주의 만찬을 할 때, 우리는 모두 제사장으로서 대제사장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중보자(intercessor and mediator)는 한 분이다.

300여 명의 사제들이 아니다.

이 중보자는 하늘에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보좌에 대제사장으로서 앉아 계신다.

카톨릭 사제들처럼 이 땅에서 포도주나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에서 자신을 한 번 영원히 모든 사람을 위해서 희생제물로 드리셨으며, 이것은 최종적으로 영원히 드려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죄인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주님은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치욕스런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분의 죽으심은 자발적이며, 대속의 죽음이었고, 흠 없고 점 없는 완전무결한 최종적인 죽으심이었다.

어떤 카톨릭 사제가 그 장면을 재현하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1900년 전에 완전히 이루어 놓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뒤엎으려는 수작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계속해서 히브리서 10장 6~12절을 주의깊게 읽어 보기를 권한다.

주께서 번제들과 속죄제들은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관하여 기록한 것과 같이)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였노라.” 하셨도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희생제물과 예물과 번제들과 속죄제는 바라지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려진 것이라.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히브리서 10장 6~12절)

본문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완결된, 최종적인 희생제물이 단번에 모든 사람을 위해 드려졌다고 말하고 있다.

본문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 의해서도 이 희생제는 반복되거나, 재현되거나, 계속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7장 27절을 읽어 보라.

그는 대제사장들처럼 먼저 자신의 죄들을 위하고 그 다음에는 백성들의 죄들을 위하여 제사드리는 일을 매일 할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가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단번에 이루셨음이라. (히브리서 7장 27절)

히브리서 10장 8~12절을 읽어 보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희생제물과 예물과 번제들과 속죄제는 바라지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려진 것이라.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히브리서 10장 8~12절)

본문은 분명히 한 번에 완전히 끝났으며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자발적이며, 그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른 것이다.

그는 죽으려고 자신을 드린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1~10절을 보라.

율법에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그림자는 있으나, 그것들의 형상 자체는 없으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희생제물들로는 그곳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랬더라면 그들이 제물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이는 경배드리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되면 죄들에 대한 의식이 더 이상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이 희생제물들로 인하여 해마다 죄들을 다시 기억나게 하였나니​

이는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오실 때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희생제물과 예물을 바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주께서 번제들과 속죄제들은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관하여 기록한 것과 같이)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였노라.” 하셨도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희생제물과 예물과 번제들과 속죄제는 바라지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려진 것이라.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히브리서 10장 1~10절)

그 죽음은 대속의(substitutionary) 죽음임을 말하고 있다.

주님은 당신을 대신해서 죽으셨다.

이분은 영원히 계시기 때문에 불변의 제사장 직분을 가지셨도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심이라.

그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적합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으며, 더러움이 없고 죄인들에게서 성별되시며, 하늘들보다 더 높이 되심이라.

그는 대제사장들처럼 먼저 자신의 죄들을 위하고 그 다음에는 백성들의 죄들을 위하여 제사드리는 일을 매일 할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가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단번에 이루셨음이라.

율법은 연약한 사람들을 대제사장들로 세웠으나 율법 이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아들을 세웠으니, 이분은 영원히 드려지셨느니라. (히브리서 7장 24~28절)

주님은 아무 죄도 없으시고 흠 없는 어린양이셨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장 14절)

주님의 죽음은 피 없는 희생제물이 아니라 피가 있는 것이다.

이 피는 하나님 자신의 피(사도행전 20장 28절)였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조심하고 모든 양떼에게도 그리하라. 이들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너희를 감독자들로 세우셨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장 28절)

이 죽음은 온전히 받아들여지기에 합당한 희생제사였으며, 아버지의 공의를 충족시켰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벨의 희생제를 받아들이신 것과 똑같이 이 제물을 받아들이셨다.

히브리서 11장 4절과 히브리서 13장 20~21절을 읽어보라.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을 인정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 (히브리서 11장 4절)

이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의 피를 통하여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그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이 보시기에 참으로 기쁨이 되는 것을 너희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히브리서 13장 20~21절)

그리고 마지막으로(이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죽음은 최종적인 마지막 희생제임을 주목하라.

그는 대제사장들처럼 먼저 자신의 죄들을 위하고 그 다음에는 백성들의 죄들을 위하여 제사드리는 일을 매일 할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가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단번에 이루셨음이라. (히브리서 7장 27절)

히브리서 10장 6~12절에 따라 누구에 의해서도 갈보리 희생제는 재연될 필요가 없다.

주께서 번제들과 속죄제들은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관하여 기록한 것과 같이)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였노라.” 하셨도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희생제물과 예물과 번제들과 속죄제는 바라지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려진 것이라.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히브리서 10장 6~12절)

히브리서3장 1절에 따르면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고백하는 바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시몬 베드로를 “사도들의 통치자”라고 부르는 것은 바보 같은 소리이며, 주님을 모독하는 일이다.

사도들의 통치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신데 시몬 베드로를 사도들의 통치자라고 부르는 당신은 누구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번에 모든 사람들을 위해 드려진 영원한 희생제라고 하는데, 계속해서 드려져야 하고, 반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히브리서 3장 1절, 히브리서 10장 6~12절을 주의깊게 읽어 보라.

주께서 번제들과 속죄제들은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니

그때 내가 말씀드리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관하여 기록한 것과 같이)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였노라.” 하셨도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희생제물과 예물과 번제들과 속죄제는 바라지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려진 것이라.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히브리서 10장 6~12절)

히브리서 3장 1절은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하는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고백하는 바 사도이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 당신들이 말하는 사도들의 통치자가 계신다.

여기에 시몬 베드로를 끼워 넣을 생각인가?

시몬 베드로는 사도들의 통치자라고 불린 게 아니라 “사탄”이라고 불렸다.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이 되는도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들을 생각함이라.”고 하시더라. (마태복음 16장 23절)

마태복음 16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시몬 베드로”에게 반석에 관해 말씀하시고, 23절에서 바로 베드로에게 돌아보시며,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 되는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시몬 베드로를 ‘사도들의 통치자’ 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들의 통치자라고 부르는 것을 웃음거리로 만들 뿐이다.

이런 일은 오늘날의 에큐메니칼 주의자들의 특징이다.

모든 교회일치 운동은 진리를 팔아먹으면서 시작한다.

모든 교회일치 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대신 사람의 권위를 세운다.​

여러분이 ‘사도들의 통치자’란 어리석은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도들의 통치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하는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고백하는 바 사도이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3장 1절)

우리의 대제사장이 어디에 계신가?

그분은 지금 하늘에 계신다.

히브리서 9장 11,12절은 이 대제사장의 책무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러한 건물이 아닌 더 크고 더 온전한 성막을 통하여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히브리서 9장 11,12절)

히브리서 9장 24절에서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물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들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자체에 들어가셨다.

오늘날 기독교 방송이나 기독교 T.V.들에서는 “하늘 나라로 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당신은 혹시 그런데다가 헌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파괴시키려 하며 하늘은 실제의 장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9장 24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물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들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히브리서 9장 24절)

이 구절은 하나님의 임재는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이 사실을 알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현재 그리스도와 함께 앉혀져 있는 곳을 알겠는가?

그곳은 하늘의 처소이다.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그들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우리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서 행하였으며 육신과 마음의 욕망들을 이루어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진노의 자녀였느니라.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의 큰 사랑으로 인하여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 (에베소서 2장 1~6절)

이 세상이나 다가올 세상에서 권세와 정사와 능력이 닿을 수 없는 곳, 하나님의 보좌 우편, 바로 구세주가 계신 그곳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사람은 죽을 때 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된다.

라헬이 죽을 때 성경은 혼이 떠나려 할 때 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혼이 떠나려 할 때, (이는 그녀가 죽었음이라.) 그녀가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35장 18절)

바울이 죽음에 가까웠을 때 떠날 때가 이르렀도다. 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이미 제물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고, 떠날 때가 이르렀도다. (디모데후서 4장 6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떠나서 하늘에 가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물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들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히브리서 9장 24절)

엄격히 말하면 그리스도인이 영원히 살 곳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가 어디서 살게 될 것인지 알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거할 곳은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게 될 도성 안에 예비된 저택(mansion)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의 거주지는 하늘에 계신 주님과 함께 하늘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천상에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그분과 함께 그곳에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물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들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히브리서 9장 24절)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 (에베소서 2장 6절)

“하늘에 갈 수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리스도인이 하늘로 올라간다구요?”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들이다.

고린도후서 12장 1~5절을 읽어 보라.

바울은 셋째 하늘에 끌려 올라갔다.

정녕 자랑하는 것이 나에게 유익하지 못하나 내가 주의 환상들과 계시들을 말하리라.

내가 십사 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나는 말할 수 없고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시느니라.) 그 사람이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갔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끌려 올라가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은 것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에 관해서는 자랑하겠으나 나에 관해서는 약하다는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고린도후서 12장 1~5절)

성경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왜 신문이나 방송에서 ‘죽으면 하늘 나라에 간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광신자로 취급할 때 가만히 있는가?

바울이 루스트라에서 돌에 맞아 사람들이 죽은 줄 알고 길거리에 버렸을 때 그는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예비해 두신 것을 직접 보았던 것이다.

사도 요한은 하늘로 이끌림을 받아서 새 예루살렘을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가 오셨던 곳으로 되돌아가셨을 때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셨던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물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들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히브리서 9장 24절)

하늘 나라의 실재성에 대해서 회의를 품는 자들에게 놀림당하지 말라.

그분이 가신 곳은 실제로 존재하는 하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면전에 거하신다.

“우리를 위해”란 말은 주님 자신의 사람들을 말한다.

히브리서 9장 24절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늬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는 기도하지 아니하고 다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요한복음 17장 9절)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참으로 놀라운 구절이 아닌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의심하는 카톨릭 교인이나,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모르면서 받고 싶다든지, 받아야 할 텐데라고 말하는 친구들은 언제나 마태복음과 사도행전, 히브리서 근처를 서성대면서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해 걱정한다.

만약 당신이 구원 받았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어째서 이 사실을 모르는가?

예수님은 늘 기도하시는 그 대상 중에 지옥에 가 버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게 예를 들어 주기 바란다.

당신은, “유다가 있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유다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고 하시니라.

주께서는 시몬의 아들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이는 그가 열둘 가운데 하나로 주를 배반할 자였음이라. (요한복음 6장 70,7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7장 9~12절에서 내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는 기도하지 아니하고 다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이는 그들이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니이다.

나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오며 또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들 안에서 영화롭게 되었나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아니하나 이들은 세상에 있나이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나이다.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주셔서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세상에 있었을 때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켰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들을 내가 지키었고 멸망의 아들(마귀인 유다 이스카리옷) 외에는 그들 중 아무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로써 성경이 이루어지게 한 것이옵니다. 라고 기도하셨다.

참으로 놀랍지 아니한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유다의 입장과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유대인이었지만 당신은 아니다.

그는 주님이 부활하시기 이전에 죽었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다.

그는 부활하신 후에 성령이 오신다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당신은 알고 있다.

이것으로 당신의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면 한 가지 더 말하겠다.

유다는 인간이 아니었지만 당신은 인간이다.

요한복음 6장 70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

여러분들 중 누구도 캠벨추종자들이 와서 유다의 예를 들어 당신의 구원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놀리지 못하게 하라.

유다는 믿었고, 침례를 받았으며, 회개했고 믿음을 고백했지만 그는 지옥에 있다.

어떤 이들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증거”라고 염려한다.

정신나간 소리하지 말라.

그는 마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고 하시니라. (요한복음 6장 70절)

내가 말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와 다투지 말고 주님과 다투어 보라.

사람들은 참으로 웃긴다.

주님이 쉽고 평이하게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자신들이 배운 것과 다르다고, 또 전통과 다르다며, 또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그들은 강둑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 자들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임재 앞에 계신다.

우리를 위한 그분의 중보 사역의 근거는 그분이 완성하신 속죄 사역이다.

우리는 히브리서 9장 12절에서 주님은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씀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17장 1~26절에서 예수님은 사역의 완성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계신다.

예수께서 이러한 말씀들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시여, 그 시간이 왔나이다. 아버지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육체 위에 권세를 주신 것은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사람들이 유일하시고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옵니다.

내가 땅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그 일을 완성하였나이다.

오 아버지시여,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갖고 있던 그 영광으로 이제 나를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아버지께서 이 세상으로부터 나에게 주신 그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 보였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

이제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았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말씀들을 그들에게 전하였으니, 그들은 그 말씀들을 영접하여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을 분명히 알았으며,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었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는 기도하지 아니하고 다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나이다. 이는 그들이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니이다.

나의 모든 것은 아버지의 것이오며 또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내가 그들 안에서 영화롭게 되었나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아니하나 이들은 세상에 있나이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나이다.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주셔서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세상에 있었을 때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켰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들을 내가 지키었고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들 중 아무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로써 성경이 이루어지게 한 것이옵니다.

이제 내가 아버지께로 가나이다. 내가 세상에서 이런 것들을 말함은 나의 기쁨을 그들 안에서 충만케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더니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나이다.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옵니다.

내가 기도하옵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는 것이 아니옵고 그들을 악에서 보호해 주시라는 것이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사옵니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사옵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나는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를 통해 거룩하게 되기 위함이니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옵고 그들의 말을 통하여 나를 믿을 사람들도 위한 것이옵니다.

이는 그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함이오니,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내가 그들 안에,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은 그들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시여, 내가 바라오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셔서 그들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이는 아버지께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옵니다.​

오 의로우신 아버지시여, 세상은 아버지를 몰랐지만 나는 아버지를 알았으며, 또 이들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또한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 알게 하였으며, 또 밝히 알게 하리니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또 내가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고 하시더라. (요한복음 17장 1절~ 26절)

당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의심이 간다면 내가 당신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 주겠다.

첫째, 구원을 위해서 어떤 행위도 신뢰하지 말고, 미사나 경험도 신뢰하지 말고, 그 어떤 교회도 신뢰하지 말라.

둘째, 당신의 혼을 하나님의 말씀과 당신의 죄를 위해 피흘리신 주님의 완성된 사역 위에 두라.

그 다음 무릎을 꿇고 요한복음 17장을 읽어라.​

그래도 구원받은 줄 모르겠다면 다른 방책이 없음을 알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며, 하나님의 임재 앞에 계시며,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있다.

우리를 위한 그분의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은혜를 주시며,​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게 됨이니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매우 기쁘게 나의 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거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장 9절)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내가 기도하옵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는 것이 아니옵고 그들을 악에서 보호해 주시라는 것이옵니다. (요한복음 17장 15절)

우리를 죄와 시험에서 지키시도록 구하시는 기도가 들어있다.

내가 기도하옵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는 것이 아니옵고 그들을 악에서 보호해 주시라는 것이옵니다.(요한복음 17장 15절)

우리가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분께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용서하시며,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한일서 1장 9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이 되도록 힘을 주시고,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고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8절)

우리의 최종 단계가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는 그분의 형상에 일치되도록 기도하신다.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장 29절)

이런 간구의 목적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고,

이는 그리스도께서 실물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들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기 때문이라. (히브리서 9장 24절)

우리를 깨끗게 하며,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있는 한 변호인이 있으니, 곧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장 1절)

우리를 돕는 은혜를 주시며,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자. 이는 우리가 자비를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발견하기 위함이라. (히브리서 4장 15,16절)

승리를 보장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가 모든 일에 마땅히 자기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했으니, 이는 하나님과 관련된 일들에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의 죄들을 위해 화해를 이루려 하심이라.

그가 이 일에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와주실 수 있느니라. (히브리서 2장 17, 18절)

이 모든 구절들이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께서 현재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고 계신 일들에 관한 것이다.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 구절들을 붙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으로 성경을 거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늘 기도해 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위대하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안전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안에 계시듯이 우리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들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며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서 중보하시며 기도하시는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중보자이시다.

우리는 욥기 1장과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사탄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성도들을 고소하는 고소자임을 배웠다.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한 큰 음성이 하늘에서 말하기를 “이제 구원과 능력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임하는도다. 이는 우리 형제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고소하던 그 고소자가 쫓겨났기 때문이니라. (요한계시록 12장 9,10절)

검사인 사탄의 끊임없는 고소를 막아 주시는 의로운 변호사가 바로 주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한 변호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변호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요한일서 2장 1,2절을 보라.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있는 한 변호인이 있으니, 곧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의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것이니라. (요한일서 2장 1,2절)

희생제물이 되신 분이 변호사가 되신 것이다.

도살당한 어린 양이 하나님의 우편에서 고소를 막아내는 방어자 역할을 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주님은 갈보리에서 완성하신 자신의 속죄 사역에 근거해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그러나 그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간에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한일서 1장 7절)

이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약속이란 말인가!

위에서 방금 인용한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는가?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위대하신 대제사장이시며, 사도들의 통치자이시다]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한일서 1장 9절)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한일서 1장 7절)

당신은 “글쎄요, 목사님. 당신은 내가 한 일에 대해 모르잖아요.”라고 할지 모르겠다.

나는 당신이 무슨 일을 했든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주님도 마찬가지시다.

주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은 당신이 치유책을 받아들이는가이다.

여기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나는 몸쓸 병이 걸렸어요. 나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에요, 나는 책임이 전혀 없어요.” 주님은 그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병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이 그 치유책을 받아들이는가 아닌가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당신이 어떻게 해서 지금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되었는지 아무리 설명하고 변명해도 아무런 희망도 도움도 소용도 없다.

우리는 아담에 속하여 모두 타락한 성품을 물려받았다.

인간은 모두 타락하고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잃어버린 존재들이다.

우리가 거듭나지 않는 이상, 우리의 본래 성품은 너무나 쓸모없고 절망적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약속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이다.​

당신이 할 일은 약속을 믿고 붙드는 것이다.

당신은 행여 이런 소리를 할 지 모르겠다.

“럭크만 형제, 당신이 만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다면..” 아니, 나는 당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내가 단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죄”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모든”이란 말 그대로 “모든”인 것이다.

그분은 “간음을 제외한 모든 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수간을 제외한 모든 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유괴를 제외한 모든 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살인을 제외한, 성도착을 제외한 모든 죄”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모든 죄”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자비로우시고 동정심이 많으신 분이다.

주님은 모든 죄로부터 우리를 사해 주신다.

용서하시고 깨끗게 하신다.

용서는 다소 소극적이다.

깨끗게 하심은 적극적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 바로 당신의 중보자이시다.

나는 그분을 나의 중보자로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숨쉬고 앉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으며,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대제사장, 중보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나는 비서나 부관이나 웨이터나 운전사를 통해서 가지 않는다.

나는 직접 내가 걸어서 그의 방문을 열고 그분의 책상 맞은편으로 나아간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시다!

나는 마가나 요셉이나 성모 마리아에게 “나좀 들여보내 주시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란 말을 듣지도 않으며, 대기실에서 대기하란 말도 듣지 않는다.

그분은 나의 아버지시며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면 언제나 맏형이 중보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이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주가 말하노니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처럼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사야 1편 18절)

그래서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 모두 한 분으로부터 나왔으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브리서 2장 11절)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 사람이 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태복음 12장 50절)고 하셨다.

사무실에 맏형이 앉아 있다.

내가 문제에 봉착하면 맏형이 나서서 해결해 주신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가면, 나는 아버지 하나님께 직접 이야기한다.

내 머릿속에서 사도들 중에 제일 위에 있는 계급은 사도들의 통치자이신 주님이시다.

나의 대제사장은 주님이시며, 나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테이블 위에 나의 요구사항을 제시할 수 있다.

당신은 그런 중보자가 있는가?

중대한 재판에서 원고를 상대로 싸워 줄 진실한 친구가 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구세주께서 우리의 대적자 맞은편에서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주님은 자원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자선 변호사가 되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편이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이 기도할 때 당신의 사건을 그분의 손에 넘겨드리면, 모든 사건을 일일이 맡으셔서 하나도 패배하지 않고 다 승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 당신은 페리 메이슨이나 셜록 홈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주님에 비하면 모두 3류 아마츄어급에도 들지 못한다.

지난 2,000년간 맡겨진 사건을 단 한 건도 패하지 않고 모두 이긴 한 변호사가 여기에 있다.

그분은 참 사람으로서 당신이 받은 모든 시험을 다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

그분은 죄를 이기셨고, 그 동일한 힘을 당신에게 주신다.

우리는 사탄이 하나님께 우리를 대적하는 고소가 어떤 것인지 안다.

어떤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것은 거짓이요, 잘못된 것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내가 내 인생을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사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이며, 여러분을 대적하여 고소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귀는 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을 끄집어내서 고소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던가?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서 우리 형제를 고소하는 자는 환란 때까지는 쫓겨나지 않는다.

또 내가 들으니, 한 큰 음성이 하늘에서 말하기를 “이제 구원과 능력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임하는도다. 이는 우리 형제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고소하던 그 고소자가 쫓겨났기 때문이니라. (요한계시록 12장 10절)

우리보다 앞서 떠난 성도들은 우리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죄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나 성도들도 우리의 변호인일 수는 없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태어난 후에도 자신의 죄 문제로 인해 정결례를 드렸으며, 그녀의 구주 하나님 안에서 그의 혼이 즐거워했다.

마리아는 자신이 구세주가 필요한 사실을 알았으며, 정결례로써 필요한 희생제물을 드렸다.

그후 아기의 할례를 위한 팔 일이 되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더라. 이 이름은 그가 잉태되기 이전에 천사에 의하여 그렇게 일컬어진 것이라.

그후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녀(마리아)의 정결례를 위한 날들이 차니, 그들은 아기를 주께 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더라. (누가복음 2장 21,22절)

당신은 그녀에게로 가서 당신을 위한 변호를 해 달라고 말할 텐가?

우리의 결론은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아신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이 다가오기 전에도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할 수 있다.

누가복음 22장 31절과 32절을 보면 주님은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키질하려고 찾았느니라. 그러나 네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네가 회심하게 되면 네 형제들을 굳게 하라.” 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중보 기도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시는 중보 사역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구절은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심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계셨던 것이다.

결국 주님은 마귀가 무슨 일을 할지 알고 계신다.

마귀에게 어떤 일을 허락하신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마귀에게 허락을 하신 주님은 또한 베드로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신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서 참 좋은 본보기인 동시에 책망을 주고 있지 않는가?

왜 당신은 법정에서 변호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교회 의식이나, 죽은 성인이나, 성모마리아나, 황금률을 준수하라든가, 성체 성사에 모두 참석했다는 등의 바보 같은 소리를 하며 자신을 스스로 변명하려고 하는가?

왜 당신은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분의 손에 사건을 맡기지 않는 것인가?

당신을 변호해 줄 변호인이 계신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법정에 관한 옛 속담이 하나 있다.

“법정에서 자신을 스스로 변호하려고 애쓰는 것은 변호사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자신을 변명하려고 했는 것은 이제껏 모든 사건을 승소했으며 풍성한 경험을 소유한 노련한 변호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며 주님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분께 당신의 문제를 맡기고 날마다 살아갈 은혜와 힘을 구하라.

그분께 당신이 점점 그분의 복스러운 형상을 닮아 가도록 간구하라.

가장 겸손하게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건마다 시시때때로 신실하게 자신을 보살피고 계신 보이지 않는 친구가 자신을 지켜 보고 있음을 알고 평안 가운데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

그리하면 당신은 그분을 중보자로 또 심판석에서 당신 편에 서서 변호해 주시는 변호인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재판에서 한 사건도 패소하지 않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사건도 결코 패소하지 않으실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이제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았고 그 안에 선 것이라.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후에 열두 사도에게 보이신 것이라.

그후에는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도 살아 있으나 더러는 잠들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1~6절)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 (로마서 10장 9~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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