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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의 하나님 | [새찬송가] 17장 사랑의 하나님 119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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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하나님 (Dios Incomparables) (악보/영상/가사)

사랑의하나님 (Dios Incomparables) (악보/영상/가사) – 뉴제너레이션워십/천관웅목사님 (B코드). Worship Leader 2017. 12. 10. 14:20. 사랑의 하나님 (Di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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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orshipleader.tistory.com

Date Published: 6/3/2022

View: 4934

[이경섭 칼럼] 사랑이 전부이신 하나님 : 기독교 – 기독일보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다’ 같은 형용사적(adjective), 서술적(descriptive) 정의(definition)를 하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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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r.christianitydaily.com

Date Published: 7/12/2022

View: 9529

사랑의 하나님 [요 3:16]

오늘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사로 알려진 ‘무디’에 관한 일화중 무디가 그의 동역자 무어하우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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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mr.co.kr

Date Published: 11/27/2022

View: 6357

사랑의 하나님 – 말씀침례교회

하나님의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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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v1611.net

Date Published: 11/3/2021

View: 2292

찬송가 17장 – 사랑의 하나님 (악보/가사)

찬송가 17장 – 사랑의 하나님 (악보) †. † 찬송가 17장 – 사랑의 하나님 (가사) †. 1. 사랑의 하나님 이 곳에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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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cmakbo.tistory.com

Date Published: 8/3/2022

View: 3550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선지자

가사. 1.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선지자 축복하사. 위안과 건강과 강한 힘 주시어. 의로운 선택을 하게 하소서. 2. 선지자 말대로. 주님의 왕국이 널리 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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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8/11/2022

View: 3162

[이경섭 칼럼] 사랑이 전부이신 하나님 – 크리스천투데이

그러나 우리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기원은 영원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개인의 믿음은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까지도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에 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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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7/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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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찬송가] 17장 사랑의 하나님
[새찬송가] 17장 사랑의 하나님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사랑 의 하나님

  • Author: Beecompany 비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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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3. 2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j3Q6VgEAjFY

사랑의하나님 (Dios Incomparables) (악보/영상/가사)

사랑의 하나님 (Dios Incomparables)

사랑의 하나님 날 구원하신 십자가

주는 영광의 왕 내 삶 주께 드리네

주님을 경외해 영원한 노래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님만 바라봅니다

영원하신 주님 선하신 나의 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영원하신 그 사랑 끊을 수 없네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경섭 칼럼] 사랑이 전부이신 하나님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다’ 같은 형용사적(adjective), 서술적(descriptive) 정의(definition)를 하지 않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며 ‘하나님’과 ‘사랑’을 치환(置換, substitution) 혹은 동일시(identification) 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고 사랑이 하나님의 속성과 존재 방식이시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나님의 사랑 개념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택하신 것도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고(엡 1:4),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도(창 1:27) 그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지만물을 창조해 주신 것도 독생자(골 1:16)와 택자들을 위해서였습니다(고전 3:21).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저주 아래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보내사,그들을 구속하셨으며, 이 구속이 하나님 사랑의 핵심입니다(요일 4:10, 롬 5:8).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구속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불과(?) 2천 년 전이었고, 각 사람이 구속의 사랑을 입기 위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은, 개인의 생애에서 찰나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기원은 영원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개인의 믿음은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까지도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에 뿌리내려져 있고, 영원 속에 함께 연루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 2:13)”,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엡 1:4)”.

이 영원에서 발원된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은 역사 속의 유한된 사건이나, 피조물들에 의해 훼방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유한된 것들이 ‘영원의 영역(territory of eternity)’을 침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영원에서 발원된 하나님 사랑의 기원자는 당연히 하나님이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 의해 작정되고 경륜됩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오직 부르시는 이(하나님)로 말미암아 되는(롬 9:11)” 구원 경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기원적 사랑은 선악간의 인간 행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선제적 어떤 것을 용납하지 않는 ‘무조건성’을 특정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딛 3:5)”.

이렇게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 영원하신 하나님에 기원하고 있음을 아는 지식은, 유한된 피조물에 의해 구원이 훼방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므로,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북돋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하나님 사랑’ 타령은, 대부분 위에 열거한 정의들과 합치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사람들이 가진 ‘하나님 사랑’ 개념은 대개 이런 내용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족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 반대로 “비록 지금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언젠가 내가 잘못하면 지금 받고 있는 이 사랑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기원을, 영원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아닌 하나님 사랑을 받을만한 선행이 자기에게 있게 된 시점에 둡니다. 이렇게 하나님 사랑을 자신의 행위에 세울 때, 사랑의 영원성은 소멸되고, 제 하기 나름인 조건적인 것으로 전락됩니다.

나를 사랑해 다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를 사랑하라(마 22:37)”고 요구하신 것은, ‘내가 너를 그렇게 사랑했으니 너도 받은 만큼 내게 사랑을 되돌려 달라’는 반대급부적 요구가 아닙니다. 혹은 ‘피조물인 너는 창조주인 나를 마땅히 사랑해야 한다’는 절대자의 전횡적 요구도 아닙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갈망’의 표출입니다.

사랑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구절 중 하나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잠 8:17)”는 말씀인데, 이는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도 나를 사랑한다”는 조건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에서 그 시작이 하나님이라고 못 박기 때문입니다(요일 4:10). 사실 이 말씀은 서로 주고받는 사랑의 순환 원리를 말한 것입니다. 풀이하자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나를 사랑해 주려므나. 내게도 너의 사랑이 필요하단다”는 뜻입니다. 비유컨대 엄마가 어린 자식에게 “엄마에게 과자 하나 주면, 나중에 엄마가 장난감 하나 사주지!”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엄마가 아이로부터 과자 하나를 받아야만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엄마는 아이가 그에게 과자를 주든 안 주든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 줄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은, 과자가 아니라 과자를 건네주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손길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도 이런 의미입니다.

혹자는 당신 자신이 사랑이시고 스스로 자족하시는 하나님께서 무슨 피조물 인간들을 향해 사랑 타령이실까 싶지만, 사랑이신 하나님이기에 더욱 사랑에 목마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향해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 5:42)”고 하신 말씀에서도, 하나님이 인간의 사랑을 갈구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희귀하여 주님은 사랑을 구걸(?)하십니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아 5:2)” 고 읍소하시는 예수님은, 세상에 마음을 뺏긴 채 예수님을 문밖에 세워놓은 교회(성도)들을 향한 예수님의 세레나데입니다.

독점적인 전부의 사랑을 다오

“마음, 성품,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30:6-8)”는 성경 말씀은 일견 현실성 없는 무리한 요구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나님이 사랑을 명분으로 우리를 그에게 종속시키려는, 사랑을 가장한 매정한 율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오직 나만 사랑해 달라’는 독점적 사랑(exclusive love)의 요청이고, 남겨지거나 유예된 것 없는 전부의 사랑(whole love)을 받고 싶다는 요청입니다.

또한 이는 사랑의 속성을 말한 것이기도 합니다. 참사랑이란 결코 부분적이거나 나눠질 수 없는 독점적 속성을 갖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한다면 “사랑은 나누는 것이니 다른 여성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성을 사랑하면 마땅히 질투를 느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상을 용납지 않으시고(요일 5:21) 우리에 대해 질투하시는 것도(신 4:24, 아 8:6, 약 4:5), 우리에 대한 사랑의 독점욕 때문이었습니다.

독점적 사랑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이전에, 먼저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그렇게 독점적이고 완전한 전부의 사랑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실 만큼 우리에게 ‘전부의 사랑(whole love)’을 하셨고, 열방 가운데서 오직 우리만 알 정도로(암 3:2) ‘독점적 사랑(exclusive love)’을 하셨습니다.

한 순간도 우리를 망각하지 않고(사 49:15), 우리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기 위해 우리를 당신의 손바닥에 새겼습니다(사 49:16). 마지막에는 아예 우리와 떨어지지 않으시려고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십니다(고전 3:16).

이렇게 우리를 향해 독점적이고 완전한 사랑을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을 요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자신이 우리에게 전부의 사랑, 독점적인 사랑을 주셨기에,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옛날 우상에게 마음을 뺏겨 하나님께 무관심한 이스라엘을 향해 종일 손을 내밀며 사랑을 구걸하셨던 그 하나님은(롬 10:21), 오늘도 간음하는 여자처럼 세상을 사랑하는 성도들을(약 4:4) 향해 나만을 사랑해 달라고 구걸(?)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email protected])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쉽게 풀어쓴 이신칭의(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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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나님

흔히 기독교 하면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흔히 기독교 하면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사랑이야 말로 성경의 핵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 권의 성경을 사랑의 연서(戀書)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솔로몬의 아가서 같은 성경은 사랑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절절히 그려져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일생동안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사랑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T.V 연속극, 영화, 그림, 음악, 문학, 연극 등 어디에서나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며, 소재가 사랑입니다. 누구와 누구의 사랑,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다룰 때 공감을 얻고, 매료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사랑했습니다. 이는 자식 사랑입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이 역시 자식 사랑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사랑했습니다. 이 역시 자식 사랑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이는 부인 사랑입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은 야곱의 딸 디나를 사랑했습니다(창34:3). 얼마나 사랑했던지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를 받으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모두 할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습니다(삼18:28).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사랑이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정의하는 사랑과 성경이 정의하는 사랑은 너무나 달라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조차 개념이 불분명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흔히 그리스어의 어휘를 따라서 아가페(상대방이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에로스(남녀간의 성적 사랑), 스트로게(가족이나 친족간의 사랑), 필리아(우정) 등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성경적인 분류 방법이 아니며, 성경이 정의하는 사랑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란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유일한 구분은 Charity와 love가 전부입니다. Charity는 성령의 은사(선물)이며,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애입니다. love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의 구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부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성경에는 사랑의 정의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가장 유사한 정의라고 한다면 요한이서 6절에 [ 또 사랑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명령대로 걷는 것이요, 명령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안에서 걸으라 하는 것이라. ](요이6)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걷는 것이며, 처음부터 들은 대로 주님 안에서 걷는 것입니다. 이외에는 어떤 것도 성경이 인정하는 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성품입니다.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7).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걷지 않을 때는 결코 사랑을 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나지 않는 자는 진정한 사랑을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 주신 선물입니다. [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음이니 ](롬5:5).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통해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결코 우리 안에 사랑의 자원이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은 디나를 향한 세겜이나 다말을 사랑한 암논, 악한 현 세상을 사랑한 데마(딤4:10)와 마찬가지 그런 종류의 사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썩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올 수 없듯이, 악한 것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로운 영, 깨끗한 마음을 창조해 주시지 않으면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넓게 부음 받은 성도는 거룩한 영적 사랑,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만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으며, 마음과 혼과 성품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 (갈5:22).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씨앗이 심기지 않고 나무가 자랄 수 없듯이 성령이 없이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이 내 안에 거할 때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은 은사(선물)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영적 은사들에 대해 무지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 형제들아, 이제 나는 영적 은사(恩賜)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12:1). 그러면서 최상의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 오직 /너희는/ 가장 좋은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한 너희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리라. ] (고전12:31).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제시한 최상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주님이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최상의 은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최상의 은사,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서 이 사랑을 발견할 수 있고 어디서 이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찾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저 하늘의 시온 산이나 저 바다 깊은 곳이나 땅 끝 어딘가에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곧바로 갈보리 십자가로 가면 됩니다.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나타났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고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신 것이라 .](요일4:9-10). 사랑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의 죄들로 인해 화해 헌물로 삼으신 갈보리 십자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롬5:8) 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당당히 제시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시하신 사랑, 주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갈보리 십자가의 죽으심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베푸신 사랑이 어떠한 사랑입니까? [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요일3: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자기의 독생자를 죄인들의 대속물로 내어 주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일컬어 성경은 완전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를 죽음에 내어준 희생적인 사랑이요, 진리 안에서의 사랑이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드러낸 사랑입니다. 믿음과 마찬가지로 사랑은 Action입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닙니다. 사랑은 실천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갈보리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대속한 하나님의 희생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거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여러분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것이며, 소유한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고 또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우리의 사랑이 완전하게 됨은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이는 그분께서 어떠하신 것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사랑에는 결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이는 두려움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느니라. ](요일4:16-18).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었다는 말은 십자가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에서 당당히 제시된 그 사랑을 알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주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온전히 충족시켜 주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신 사랑이며, 율법을 완성시켜 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허다한 모든 죄를 덮어 준 사랑입니다. 갈보리의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진리를 선포하시면서 곧 바로 십자가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이 구절은 성육신을 가리키는 구절이 아닙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란 말씀은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신 죽음을 가리키는 구절이지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탄생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 이것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며, 선포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언급된 모든 곳은 반드시 그 전후 구절을 보면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관련되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혀와 말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행함과 진실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동일한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 나의 어린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3:18).

성경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방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 모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걸으라.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란 말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같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은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영에서 난 것이 영이요, 육에서 난 것은 육이듯이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며, 십자가를 통하지 않는 사랑은 성경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에 흘린 피를 먹고 자라며, 거기서 열매를 맺습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 놓는 것이 마땅하니라. ] (요일3:16). 이 역시 죽으심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 역시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음으로써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을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불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의 사랑을 쏟아 부어주시기 위함이요, 제자들이 자신이 행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요15:13~14). 주님의 친구가 되는 조건은 주님이 명령하신 것 즉‘ 서로 사랑하는 것’인데 친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으라는 요구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런 사랑을 나타내며 죽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기독교의 순교사화는 바로 이런 사랑의 표출이었습니다. [ 참으로 너희 믿음의 희생과 섬김 위에 /나를 헌물로/ 드린다 할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모두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2:17). 이것이 바로 성경이 제시해 주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데서나 죄를 지으며, 육신의 정욕을 채우면서 사랑 타령하는 것은 성경과는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라고 말하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우깁니다. 하나님은 정욕이라고 말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탐심이라고 말하는 것을 사람들은 애정이라고 말합니다. [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과 함께 그 애착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갈5:24).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려야 할 것들을 마치 보물단지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볼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으며, 믿을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금지된 사랑은 무엇입니까?

금지된 사랑 첫째,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잘못된 사랑입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 행해지는 사랑이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 이는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기 때문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잘못하고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 ](딤전6:10). 사랑은 최상의 덕목이 아닙니다. 올바른 것을 사랑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사랑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풍요를 사랑하는 자도 소출로 만족하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5:10).

금지된 사랑 둘째,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세의 표적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 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3:20).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지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성경적인 유일한 방법은 이렇습니다. [ 이와 같이 남자들도 마땅히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엡5:28). 부부는 둘이 한 몸입니다. 성경적으로 부부는 두 개의 육체가 아니라 한 육체입니다. [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마19:5). 고로 아내를 사랑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이는 결국 교회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신비가 크도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1-32).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길은 나와 연합된 대상을 사랑하면 됩니다. [ 그러나 {주}와 결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6:17). 이것이 성경적 자애(自愛)입니다.

금지된 사랑 셋째, 쾌락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말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딤후3:4). 쾌락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쾌락을 즐기거나 거기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 쾌락을 사랑하는 자는 가난한 자가 되고 포도주와 기름을 사랑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잠21:17).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쾌락은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심겨진 말씀의 숨을 막아 버린다고 경고하셨습니다. [ 가시나무 사이에 떨어진 자들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듣고 나아가다가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숨이 막혀 완전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이라. ](눅8:14). 쾌락을 사랑할 영적 성장이나 열매는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세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그는 쾌락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선택의 순간에 올받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히11:25).

금지된 사랑 넷째,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이 다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났음이라. ](요일2:15-16).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십자가에 아들을 내어 주신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게 됩니다. 십자가는 이런 것들을 모두 못박아 없애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면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십자가를 사랑하면 세상의 원수가 됩니다. 이 둘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하기를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요일4:8)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인 줄로 오해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이지 하나님을 정의해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사랑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란 진리는 점점 변질되어서 하나님은 사라지고 ‘사랑’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란 진리는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만 따로 떼어 놓아서는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성경과 완전히 동떨어진 사랑 놀음, 사랑 타령이 온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모두 그릇된 진리에서 나온 곁가지와 같은 것들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과 동일시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 사랑을 경배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님의 많은 성품 중의 한 가지를 서술한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며, 하나님과 동일시되지 않습니다. 거룩함, 공의로움, 신실함, 긍휼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주님의 한 가지 속성에 해당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란 의미는 맹목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눈먼 사랑이나 왜곡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란 말에서 사랑의 본질적인 의미는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성경적인 사랑의 속성이 잘 나옵니다.

성경적인 사랑의 속성은 이렇습니다.

첫째, [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우쭐대지 아니하며 ](고전13:4).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 주신 사랑, 성령의 열매로 맺어진 사랑, 진리 안에서 행해지는 사랑은 오래 참는 사랑이요, 친절합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는데 얼마나 사랑했던지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습니다. [18.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므로 이르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칠 년 동안 섬기리이다, 하니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을 섬겼으나 그녀를 향한 사랑으로 인하여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창29:18, 20). 이것이 사랑입니다. 주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디신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벧후3:15a). 주님의 사랑은 오래 참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불친절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시기는 사랑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이요, 죄입니다.

둘째, [ 무례히 행동하지 아니하며 자기 것을 추구하지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악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한다는 것은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입니다.

사랑은 자기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기심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 아무도 자기 것을 구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구하라. ](고전10:24). 쉽게 성내는 것 역시 사랑이 아닙니다. 이는 성질의 문제나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까닭 없이 화를 내는 것은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마5:22). 쉽게 성을 내는 것은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 이는 사람의 진노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 ](약1:20). 화를 내서 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감독의 요건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 {주}의 종은 결코 다투지 아니하며 오직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우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인내하며 ](딤후2:24).

악을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몸에 해를 입히거나 물질에 손실을 입히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혼에 해를 입히고, 상처를 주는 일이 더 큰 죄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악을 생각한다는 것은 몸의 죄가 아니라 혼이 행하는 죄입니다. 주님은 죄의 범위를 몸의 행동이 아니라 마음 속 생각 즉 혼의 영역으로 확대하셨습니다. [ 옛 사람들이 말한바, 너는 간음하지 말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淫慾)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 속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느니라. ] (마5:27~28). 여기서 죄를 범한 간음의 주체는 나의 영, 혼, 몸 가운데 혼입니다. 악한 생각과 상상은 혼의 죄 문제입니다. 사랑은 몸 이전에 혼의 죄 문제를 해결합니다.

셋째, [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며 ](6). 불법을 기뻐한다면 그 사랑은 거짓 사랑입니다. [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벧전1:22). 진리에 순종함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죄입니다. 인본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원하며, 성경을 제쳐 둔 연합을 추구합니다. 진리와 거룩함을 제외하고 오직 사랑만 추구하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리의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 불의의 모든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그 까닭은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살후2:10). 진리의 사랑!! [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여 모든 일에서 그분 안으로 자라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엡4:15). 성경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주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다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희 속에 없음을 내가 아노라. ](요5:42). 이는 진리를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설교를 듣기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음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넷째,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7).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하는 모든 말을 믿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일점 일획도 의심없이 모두 믿습니다. 모든 것을 소망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는 주님의 영광스런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사랑이며,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한 가지 성품은 결코 다른 성품을 훼손하거나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란 진리는 결코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시다는 진리를 깎아 내리는 일이 없으며, 부딪치거나 모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철저히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유기적인 관계성 가운데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히 거룩한 사랑이며, 의로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에 사랑 역시 영원한 사랑이며,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육신의 힘으로는 아무도 성경적이고 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받은 사람만이 사랑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란 성경적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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