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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8편 주석 | [하루 한 장] 시편68편_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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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13 [하루 한 장]“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시68편)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
http://sungminch.com
시편 68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모세가 드렸던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기도를
자신의 기도로 바꾸어 드립니다
말씀에 기록된 대로 기도하는
이 기도는 무엇보다 힘이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면
원수들은 흩어지고 도망합니다
나는 상대하기 힘들고 버거워도
하나님이 물리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타고 다니는
위대하신 엘로힘이시면서
동시에 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재판장이 되시는
우리의 여호와이십니다
이렇듯 능력과 사랑을 갖춘
우리의 하나님은 오늘도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구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의 무거운 죄의 짐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기쁨과 감격으로 하루를 살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길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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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8편 & 성경주석

시 68편은 출애굽에서부터 시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끈 여호와의 지도력을 찬양하는 시이다. 이 시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가나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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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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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시편 68편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라메낯체아흐 레다위드 미즈모르 쉬르 야쿰 엘로힘 야푸추 오예바우 웨야누스 메솨네아우 미파나우 개역개정,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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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8편.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사는 것. 시편 68편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05-16. 설교본문; 음성설교; 음성다운 · 설교 내용 PDF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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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시편68편_하나님이 일어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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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시편 68편 주석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4,37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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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4. 1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SCTxuiY3hQM

시편 68편 & 성경주석

<시편 68편 서론>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시 68편은 출애굽에서부터 시인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끈 여호와의 지도력을 찬양하는 시이다. 이 시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가나안 정복, 적대적인 왕들의 도주, 나라의 신앙 중심으로서 예루살렘의 최종적인 확립 등을 매우 상세히 묘사한다. 시 68편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메시야에 관한 시라는 것이 엡 4:8에서 바울의 인용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예수는 종종 시 68편을 부분적으로 노래하셨다.

시 68편은 각 연에 독특한 단어와 구절들이 많이 사용된 것 때문에 수많은 해석상의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에두아르트 로이스(Eduard Reuss)는 1851년에 그때까지 이 시에 관해 쓰인 400개의 주석들에서 얻은 자료들을 모두 모아서 한 권의 소책자를 출간하였다. 그 이후로 적어도 400개 이상의 또 다른 주석들이 등장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가릿 문헌이 발견된 이후에야 실제로 이 시에 대한 좀 더 나은 해석이 제대로 진척되기 시작하였다. 이 문헌은 또한 시인이 아주 오래된 옛 용어들을 사용했다는 것도 입증하였다. W. F. 올브라이트(W. F. Albright)와 T. H. 로빈슨(T. H. Robinson)은 이 시를 여러 유명한 찬미들의 첫 절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 여긴다.

<시편 68편 개역한글>

1.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2. 연기가 몰려감 같이 저희를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 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3.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찌어다

4.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 앞에서 뛰놀찌어다

5.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6.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 수금된 자를 이끌어 내사 형통케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셀라)

8.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9. 하나님이여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산업이 곤핍할 때에 견고케 하셨고

10. 주의 회중으로 그 가운데 거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11.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가 큰 무리라

12.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13. 너희가 양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

14. 전능하신 자가 열왕을 그 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15.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16.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뇨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영히 거하시리로다

17.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피함이 주 여호와께로 말미암거니와

21. 그 원수의 머리 곧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치시리로다

2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저희를 바산에서 돌아오게 하며 바다 깊은데서 도로 나오게 하고

23. 너로 저희를 심히 치고 그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 네 개의 혀로 네 원수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 하리라 하시도다

24. 하나님이여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에 행차하시는 것이라

25. 소고 치는 동녀 중에 가객은 앞서고 악사는 뒤따르나이다

26.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서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찌어다

27. 거기는 저희 주관자 작은 베냐민과 유다의 방백과 그 무리와 스불론의 방백과 납달리의 방백이 있도다

28. 네 하나님이 네 힘을 명하셨도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견고히 하소서

29.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을 위하여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

30. 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은 조각을 발 아래 밟으소서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

31.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32.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찌어다(셀라)

33.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34.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찌어다 그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 능력이 하늘에 있도다

35.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힘과 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찌어다

<시편 68편 성경주석>

68:1 하나님은 일어나사.

참조 시 3:7 주석. 시 68편은 광야에서 “궤가 떠날 때에”(민 10:35) 사용되었던 관용 표현들과 흡사한 일련의 기술들과 더불어서 시작된다. 솔로몬도 궤를 성전에 안치할 때 이와 유사한 어구를 사용하였다(대하 6:41).

68:2 연기가 몰려감같이.

이 절에 사용된 비유는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원수들이 전적으로 연약함을 나타낸다(참조 시 37:20; 97:5; 호 13:3; 미 1:4). 2절 마지막 부분과 3절 첫 부분은 드보라의 노래(참조 삿 5:31)의 마지막 절과 다소 비슷한 면이 있다.

68:3 기뻐하여.

시인은 기뻐하라는 요청을 세 번 반복함으로써 이를 강조한다. 3절과 더불어 이 승리의 기쁜 노래의 서론을 끝맺는다.

68:4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제임스왕역」에는 이 구절이 “that rideth upon the heaven”[하늘을 타신 자를 찬양하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로케브 바아라보트(rokeb ba‘arabot)는 해석상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다른 모든 경우에는 아라바(‘arabah)의 의미가 명백히 “광야”인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제임스왕역」이 아라보트(‘arabot)를 “하늘”로 번역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라바가 b (ㅂ)자가 p (ㅍ)자로 바뀌어 철자된 우가릿어에서는 이 단어가 “구름”을 뜻한다. “구름을 탄 자”라는 의미의 모음 없는 우가릿어 용어 rkb ‘rpt는 바알에 대한 호칭으로 자주 쓰인다. 따라서 “하늘”이라는 「제임스왕역」의 번역은 오늘날 이 용어의 참된 의미로 여기는 것에 매우 가까운 번역이다.

68:4 대로를 수축하라.

(「제임스왕역」에는 “extol”[칭찬하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높이다”, “찬양하다” 등의 근본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살랄(salal).

68:5 아버지.

하나님은 은혜의 행위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그분의 성품을 드러내신다. 사람은 그분과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그분의 은혜로운 돌보심을 더욱 상세히 알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간의 진영 가운데 당신의 성막을 세우셨다. 그가 사람의 장막 곁에 장막을 치신 것은 우리 가운데 거하여 우리로 당신의 거룩한 품성과 생애에 친숙하도록 만드시기 위해서였다”(시대의 소망, 23).

우가릿어 본문에서 한 의로운 왕을 묘사하는 중에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라는 구절이 두 번 나온다.

68:6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

이는 신부에게 지불한 돈이 없어서 결혼을 할 수 없는 가난한 독신 남자에 대한 묘사인 듯하다(참조 창 29:18의 야곱). 하나님이 그를 보살피셔서 가정을 형성하도록 도우신다. 우가릿 문헌에서 이 비유와 유사한 표현인 “미혼자의 집이 문을 닫다”라는 말을 찾아볼 수 있다.

68:6 형통.

(「제임스왕역」에는 “chains”[쇠사슬]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코샤로트(kos∨arot)로 구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이다. “쇠사슬”이라는 「제임스왕역」의 번역은 상당히 의문시되는 번역이다. 최근의 주석자들은 이 단어에 “행복” 또는 “번영”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우가릿어에서는 이 단어가 “여자 가수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죄수들을 노래하는 자들에게로 이끌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68:7 앞서 나가사.

이 절은 이 시의 영광스런 주제를 소개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지속적인 인도를 받아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까지 나아간 이스라엘의 승리의 행진에 대한 수많은 인유(引喩)가 시작된다. 과거 역사에 대한 이 같은 회고가 18절까지 이어진다.

68:8 떨어지며.

일반적으로 “떨어지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나타프(nat.ap)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움직이다”라는 의미의 타파프(t.apap), “날개를 퍼덕거리다”라는 의미의 아랍어 탑파(t.affa), “깜박이다”라는 의미의 아람어 t.pt.p에서 파생된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첫 행과 완전한 평행을 이루게 된다. “땅이 흔들렸고, 하늘이 움직였다.”

68:8 시내산도.

광야에서의 긴 여정 내내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긴 하였지만, 특별히 시내산에서 그분의 영광의 위엄이 나타났다(참조 출 19:16~18; 부조와 선지자, 339~340).

H. 그림(H. Grimme)은 일반적으로 “이 시내산”(this Sinai)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제 시나이(zeh Sinay)가 여호와의 옛 칭호이며, 따라서 “시내산의 그분”으로 번역될 수 있음을 알아내었다.

68:9 흡족한 비.

아마도 하나님이 “비같이 내”(시 78:24)려 주셨다고 되어 있는 만나에 대한 암시인 듯하다.

68:10 회중.

히브리어 하이야(h.ayyah), “(양)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자애로운 목자이시다(참조 시 23:1 주석).

68:10 가난한.

온전히 하나님만 의존하며 광야를 유랑하던 때의 하나님의 양떼에 대한 묘사.

68:11 말씀을 주시니.

11~14절은 가나안 정복에 대한 언급이다.

68:11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

히브리어 므밧세로트(mebasserot), “발표자.” “발표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바사르(basar)에서 파생됨. 형태가 여성 복수형이기 때문에 이는 여성 발표자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 시의 배경에서는 므밧세로트가 승리한 군대의 귀환 등과 같은 큰 행사들을 경축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던 여자들의 그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참조 출 15:20, 21 주석; 삼상 18:6, 7).

68:12 왕들.

가나안의 왕들(참조 수 24:11~13).

68:12 도망하고 도망하니.

(「제임스왕역」에는 “did flee apace”[속히 도망하니]로 되어 있음-역자 주). 매우 강한 반복인 “그들이 도망하고, 그들이 도망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과 맞닥뜨리면 지상의 왕들은 순식간에 흩어져 버린다.

68:13 양우리에 누울 때에.

(「제임스왕역」에는 “lien among the pots”[항아리에 누울 때에]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 까다로운 구절이 우가릿어에 의해 그 의미가 분명해졌다. 「제임스왕역」에서는 “항아리”로 또한 「개정표준역」에서는 “양우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셔팟타임(s∨epattayim)이 실제로는 노의 바닥 돌을 의미한다. 오늘날의 많은 아랍 유목민들의 집처럼 고대에는 집에 두 개의 화로 바닥 돌이 있었다. 더 나아가서, 이 구절은 앞 절과 연관해서 다음과 같이 의문문으로 번역해야만 한다. “너희가 화로 바닥 돌 곁에 앉아만 있을 것이냐?” 이 질문은 큰 문제에 직면한 국가적 비상사태에 그저 집에만 들어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수치감을 느끼게 하는 질문이다.

68:13 은으로 입히고.

비둘기가 날아갈 때 그 깃털 위로 햇빛이 반짝거리는 모습에 대한 표현. 여기에 사용된 여러 단어와 구절들과 매우 유사한 것들이 우가릿 문헌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이 시의 문맥상 날아가는 비둘기에 대한 이 같은 묘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68:14 열왕을 그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침공했을 때 그 땅의 왕들이 패하여 달아난 것에 대한 언급임이 분명하다(수 10:10, 11).

68:14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살몬산(Mt. Zalmon)에서 눈이 사라지는 것처럼 하나님이 왕들을 흩어 버리셨다. 세겜 가까이에 위치한 살몬(Zalmon)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산이 삿 9:48에 언급되어 있다. 이 산은 높이가 900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거기에서 눈을 구경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에 언급된 “살몬”은 갈릴리 바다 동쪽에 있는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의 아살마노스(Asalmanos)인 제벨 하우란(Jebel Hauran)이 분명한 듯하다. 1,800미터 높이의 그 봉우리들은 거의 매년 겨울마다 눈으로 덮인다.

68:15 바산의 산.

바산은 긴네렛 바다 동쪽의 고원지대였다(제3권, 435쪽 지도를 참조하라).

68:15 하나님의 산.

히브리어 하르-엘로힘(har-’Elohim),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산.” 관용적으로는 “위대한 산”(참조 「개정표준역」).

68:16 [너희가] 어찌하여…시기하여 보느뇨.

(「제임스왕역」에는 “why leap ye?”[너희가 어찌하여 뛰어오르느냐?]로 되어 있음-역자 주). 높은 산들이 예루살렘 언덕을 시기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이 시온을 성전을 둘 곳으로 택하심으로 그 성읍을 명예롭게 하셨다(참조 시 132:13~16).

68:17 천천이요 만만이라.

이 표현은 또한 “무수한”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이는 셀 수 없이 많은 천사가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68:17 [천사들].

(「제임스왕역」에는 “angels”로 되어 있으나 「개역한글판」에는 이 단어가 나오지 않음-역자 주). 히브리어 쉬느안(s∨in’an). 여기서는 추측으로 “천사들”로 번역되었다. 대부분의 주석자들은 쉬느안이 “반복하다”라는 의미의 샤나(s∨anah)라는 어근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쉬느안은 “반복”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이 단어가 우가릿 문헌에 “용사”라는 의미의 tnn으로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그렇게 번역해야만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되면 이 용어는 「제임스왕역」의 번역처럼 하나님의 용사들, 곧 천사의 무리를 일컫는 것이 된다.

68:17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하나님 자신이 하늘 군대의 호위를 받으시며 시내산에 나타났던 그 모든 위엄과 영광을 가지고 이제 시온산에 그의 자리를 잡으신다. 역사 회고에 대한 이 얼마나 영광스런 결론인가!

68: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시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하늘 왕을 묘사하기 위하여 수많은 포로들을 데리고 개선하는 정복 군주의 모습을 비유로 들고 있다. 여기서는 언약궤를 지고 올라가는 것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될 수도 있다(삼하 6:17). 바울은 시인의 이 비유를 그리스도의 승천에 적용했다(엡 4:8).

68:18 선물을 인간에게서…받으시니.

하나님 편에서는 받는 것이 곧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받기 위하여 주신다.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생명이 만물에게로 흘러 나간다. 또한 아들을 통하여 그것이 찬양과 기쁨의 봉사로 사랑의 조수처럼 만물의 대근원이신 분께로 다시 돌아온다”(시대의 소망, 21).

68:18 여호와 하나님.

히브리어 야 엘로힘(Yah ’Elohim). 참조 4절 주석.

승리의 행진에 관한 묘사가 여기에서 찬양의 송영에 의해 중단된다. 이 묘사는 24절에 가서야 다시 시작된다.

68:19 우리 짐을 지시는.

이렇게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목자처럼 운반하다” 또는 “짐을 짊어지다”라는 의미가 있다(참조 슥 12:3).

68:20 피함.

문자적으로 “나감”, “피함.” “구원”으로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구원들”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구원이 아닌 구원의 여러 가지 구체적인 실례들을 강조한다.

68:21 정수리.

머리의 꼭대기로 몸의 핵심 부분들 중 하나이다. 사망은 고의적으로 탐닉한 죄에 대한 회피할 수 없는 형벌이다.

68:22 돌아오게 하며.

하나님은 악한 자들이 어디에 숨어 있든지 다 찾아내셔서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참조 암 9:1~3).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21절에서 언급된 죄인들을 일컫는 것임이 분명하다.

68:22 바산.

참조 15절 주석.

68:23 그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

원수의 멸망을 묘사하는 비유(참조 시 58:10 주석).

68:23 개.

참조 왕상 21:23 주석.

68:24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승리의 행진에 관한 묘사가 다시 시작된다.

68:25 소고.

북의 일종인 듯하다.

68:26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

이 절은 25절에 언급된 여자들이 부른 노래인 듯하다.

68:27 작은.

히브리어 차이르(s.a‘ir), “젊은” 또는 “낮은”이란 의미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이 형용사는 베냐민의 통치자, 곧 사울을 일컫고 있는 듯하다. 이 구절은 “베냐민이 있는데, 가장 작은 자가 그들을 다스린다”로 번역해야 한다.

68:27 베냐민.

이 절에 네 지파가 언급되어 있다. 시온산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시온산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지파들을 대표한 듯하다(참조 삿 5:18).

68:27 그 무리.

(「제임스왕역」에는 “their council”[그들의 회의]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리그마(rigmah). 이 단어는 그 의미가 불명확하다. 주석자들은 이 단어를 “군중”, “부르짖음”, “무기들의 소음” 등의 뜻으로 해석한다.

68:28 네 힘을 명하셨도다.

시인은 하나님께 그분의 권능을 완전히 드러내 보여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장차 일어날 수도 있는 예기치 않았던 사건들 속에서도 그 권능이 인상 깊게 나타날 수 있게 되기를 간구한다.

68:29 주의 전.

히브리어 헤칼(hekal). 참조 시 65:4 주석.

68:30 갈밭의 들짐승.

(「제임스왕역」에는 “company of spearmen”[창병의 무리]로 되어 있음-역자 주).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애굽에 대한 상징으로 쓰인 듯하다.

68:30 꾸짖으시고.

참조 시 9:5.

68:31 방백들.

히브리어 하셔만님(h.as∨e-mannim), 애굽어 h.smn에서 차용된 용어로 “소다석”, “구리”, “청동”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다석은 애굽의 이름난 수출품이었고, 구리는 애굽이 수입하던 품목이었다. 아직 비누에 대해서 알지 못하던 고대에 일반적으로 비누를 대신해서 세제로 사용되던 소다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68:31 애굽…구스.

이 나라들은 결국은 하나님을 찾게 될 권세 있고 부유한 나라들의 예증으로 여기에 그 이름들이 언급되었다. 이 절을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여호와의 자비로우신 계획들”에 적용한 것에 관해서는 부조와 선지자, 370 371,을 참조하라.

68:32 하나님께 노래하고.

이 시는 열방들에게 애굽에서 시온산까지 이스라엘의 승리 행진을 이끄시면서 당신의 권능과 선하심을 그토록 영광스럽게 나타내신 지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초청하는 것으로써 끝맺는다. 그리스도가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을 때, 천사들은 32~34절로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분을 하늘 궁정으로 맞이해 들였다(참조 사도행적, 32, 33,). 시 24:7~10의 유사한 용례와도 비교하라. 참조 시 24:7~10 주석.

68:33 하늘들의 하늘.

참조 4절; 신 10:14 주석; 신 33:26.

68:33 소리.

참조 시 29:3 주석.

68:34 하늘에.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은 특히 천둥, 번개, 폭풍 등과 같은 하늘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현상들을 통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68:35 성소.

하나님은 당신의 거처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경외심과 때로는 두려움까지도 갖게 하는 강력한 일들을 행하신다.

68:35 힘.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분의 힘이 주어진다(참조 시 29:11; 사 40:29). 하나님이 자기의 힘을 그의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그들로 앞으로 닥칠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신다(참조 마 28:18~20). 이 얼마나 복된 사상인가!

68:35 능.

문자적으로 “능력들.” 복수형의 의미에 관해서는 20절 주석을 참조하라.

68:35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분의 자녀들은 이 시에 묘사된 하나님의 성품을 명상할 때 그 마음으로부터 이 같은 찬양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참조 시 66:20).

68:4 여호와(Jah).

히브리어 야(Yah). 야훼(Yahweh)의 단축형(참조 출 6:3; 제1권, 151~154; 출 15:2 주석). 「제임스왕역」에서 영어 단축형인 “Jah”가 쓰인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히브리어 시편 68편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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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메낯체아흐 레다위드 미즈모르 쉬르

야쿰 엘로힘 야푸추 오예바우 웨야누스 메솨네아우 미파나우

개역개정,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새번역,1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하나님의 원수들이 흩어지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도망칠 것이다.

우리말성경,1 하나님께서 일어나 적들을 흩으시게 하라. 그분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도망치게 하라.

가톨릭성경,1 하느님께서 일어나시니 그분의 적들이 흩어지고 원수들이 그 앞에서 도망친다.

영어NIV,1 For the director of music. Of David. A psalm. A song. May God arise, may his enemies be scattered; may his foes flee before him.

영어NASB,1 {For the choir director. A Psalm of David. A Song.} Let God arise, let His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ose who hate Him flee before Him.

영어MSG,1 A David psalm. Up with God! Down with his enemies! Adversaries, run for the hills!

영어NRSV,1 To the leader. Of David. A Psalm. A Song. Let God rise up, let his enemies be scattered; let those who hate him flee before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1 εις το τελος υπερ των αλλοιωθησομενων τω δαυιδ

라틴어Vulgate,1 in finem pro his qui commutabuntur David

히브리어구약BHS,1 לַמְנַצֵּחַ לְדָוִד מִזְמֹור שִׁיר׃

히브리어구약BHS,1 יָקוּם אֱלֹהִים יָפוּצוּ אֹויְבָיו וְיָנוּסוּ מְשַׂנְאָיו מִפָּנָיו׃

성 경: [시68:1]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승리]

본시는 다윗이 전쟁에서의 승리, 혹은 위기 상황으로부터의 구원을 체험한 후 이러한 역사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이다. 저작 배경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본 시편의 강해를 참조하라.

󰃨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앞세워 진군하기 시작하던 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와 동일하다(민 10:35). 따라서 본 기도도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와 함께 암몬 족속과 싸우기 위하여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 드려졌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다윗은 그때 이러한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대신하여 원수들과 싸워 주시기를 소원하였다. 특히 다윗은 군사적인 행동 혹은 중대한 행동을 취하기에 앞선 마음의 결단(삼하 18:32;렘 49:14)을 촉구하는 표현인 ‘일어나사’를 사용하여, 원수들을 진멸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이 속히 있어야함을 기원한다. 그러나 이 단어를, 소원을 아뢰는 단순한 기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시편의 대개의 기도 속에는 그 기도들이 이루어질수밖에 없다는 저자들의 강한 확신이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편, ‘원수'(*, 오예바이우)는 문자적으로 ‘그분의 원수들’이다. 사실 이 원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던 암몬족속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곧 하나님의 원수들이라는 사실은 우리 성도들에게 대단한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이 핍박을 받을 때 마치 당신이 핍박받으시는 것으로 간주하시어(행 9:4) 그들에게 중한 보응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케히네도프 아솬 티느도프 케힘메스 도나그 미페네 에쉬 요베두 레솨임 미페네 엘로힘

개역개정,2 연기가 불려 가듯이 그들을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 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새번역,2 연기가 날려 가듯이 하나님이 그들을 날리시고, 불 앞에서 초가 녹듯이 하나님 앞에서 악인들이 녹는다.

우리말성경,2 연기가 바람에 날려가듯 그들을 날려 보내라. 불 앞에 초가 녹아내리듯 하나님 앞에서 악인들이 사라지게 하라.

가톨릭성경,2 연기가 흩날리듯 그들은 흩날려 가고 초가 불 앞에서 녹아내리듯 악인들이 하느님 앞에서 멸망해 간다.

영어NIV,2 As smoke is blown away by the wind, may you blow them away; as wax melts before the fire, may the wicked perish before God.

영어NASB,2 As smoke is driven away, so drive them away; As wax melts before the fire, So let the wicked perish before God.

영어MSG,2 Gone like a puff of smoke, like a blob of wax in the fire– one look at God and the wicked vanish.

영어NRSV,2 As smoke is driven away, so drive them away; as wax melts before the fire, let the wicked perish before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2 σωσον με ο θεος οτι εισηλθοσαν υδατα εως ψυχης μου

라틴어Vulgate,2 salvum me fac Deus quoniam intraverunt aquae usque ad animam meam

히브리어구약BHS,2 כְּהִנְדֹּף עָשָׁן תִּנְדֹּף כְּהִמֵּס דֹּונַג מִפְּנֵי־אֵשׁ יֹאבְדוּ רְשָׁעִים מִפְּנֵי אֱלֹהִים׃

성 경: [시68:2]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승리]

󰃨 연기가 몰려감같이 저희를 몰아내소서 – ‘연기’는 바람에 의해서 신속히, 그리고 용이하게 이리저리 흩어지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37:20; 102:3;호 13:3 참조). 따라서 본문은 악한 원수들에 대한 징벌을 재촉하는 기도이다.

󰃨 불 앞에서 밀이 녹음같이 – 상반절과 동일한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 ‘밀'(*, 도나그)은 그 어원이 불확실한 단어로서 양초의 원료인 파라핀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것은 섭씨 50도가 용해점(溶解點)인 만큼 불에 조금만 가까이 대기만 해도 즉시 녹아내리며 심지어는 웬만큼 뜨거운 물에 집어 넣어도 완전히 녹아 없어진다(97:5;미 1:4 참조). 이처럼 그 원수들은 인간적 안목으로 보면 막강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지극히 연약하고 하찮은 존재인 것이다.

웨찯디킴 이스메후 야알추 리페네 엘로힘 웨야시수 베시므하

개역개정,3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새번역,3 그러나 의인들은 기뻐하고,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기쁨에 겨워서, 크게 즐거워할 것이다.

우리말성경,3 그러나 오직 의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라. 그들이 뛸 듯이 기뻐하게 하라.

가톨릭성경,3 그러나 의인들은 기뻐하며 뛰리라. 하느님 앞에서 기쁨 속에 즐거워하리라.

영어NIV,3 But may the righteous be glad and rejoice before God; may they be happy and joyful.

영어NASB,3 But let the righteous be glad; let them exult before God; Yes, let them rejoice with gladness.

영어MSG,3 When the righteous see God in action they’ll laugh, they’ll sing, they’ll laugh and sing for joy.

영어NRSV,3 But let the righteous be joyful; let them exult before God; let them be jubilant with joy.

헬라어구약Septuagint,3 ενεπαγην εις ιλυν βυθου και ουκ εστιν υποστασις ηλθον εις τα βαθη της θαλασσης και καταιγις κατεποντισεν με

라틴어Vulgate,3 infixus sum in limum profundi et non est substantia veni in altitudines maris et tempestas demersit me

히브리어구약BHS,3 וְצַדִּיקִים יִשְׂמְחוּ יַעַלְצוּ לִפְנֵי אֱלֹהִים וְיָשִׂישׂוּ בְשִׂמְחָה׃

성 경: [시68:3]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승리]

의인들의 이 같은 반응은 악인들이 멸망당했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 아니다. 다만 의인들은, (1) 자신들이 악인의 위험에서 구원받았으며, (2)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벌하시고 선한 자들을 구원하심으로써 공의를 밝히 드러내셨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사실, 크나큰 환난이나 위경에 직면해 있는 동안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준동(蠢動)을 모른체하신다고 생각하여 낙심에 이를 뻔했을 것이다(73:2, 3). 그러나 드디어 악인들이 징벌당하자 의인들은 그분의 살아계심과 공의로우심을 확인하면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52:6;58:10;64:7-10).

󰃨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 ‘뛰놀며'(*, 알라츠)는 원래 ‘기뻐 날뛰다’의 뜻으로서 대개 승리로 인한 기쁨 혹은 그 기쁨의 외부적 표출 행위를 가리킨다(25:2). 그리고 ‘앞에서'(*, 리프네)는 ‘얼굴을 향하여’, ‘얼굴 쪽으로’의 뜻으로서, ‘얼굴로부터’라는 의미인 2절의 ‘앞에서'(*, 미프네)와는 반대의 뜻이다.

쉐루 레로힘 잠메루 쉐모 솔루 라로케브 바아라보트 베야흐 쉐모 웨일레주 레파나우

개역개정,4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

새번역,4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의 이름을 노래하여라. ㉠광야에서 구름 수레를 타고 오시는 분에게, 소리 높여 노래하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 앞에서 크게 기뻐하여라. / ㉠또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에게’

우리말성경,4 하나님께 노래하라. 그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다니시는 그분의 이름 여호와를 극찬하라. 그 앞에서 즐거워하라.

가톨릭성경,4 너희는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에 찬미 노래 불러라. 구름 타고 달리시는 분께 길을 닦아 드려라. 그 이름 주님이시다. 그분 앞에서 기뻐 춤추어라.

영어NIV,4 Sing to God, sing praise to his name, extol him who rides on the clouds–his name is the LORD–and rejoice before him.

영어NASB,4 Sing to God, sing praises to His name; Lift up a song for Him who rides through the deserts, Whose name is the LORD, and exult before Him.

영어MSG,4 Sing hymns to God; all heaven, sing out; clear the way for the coming of Cloud-Rider. Enjoy GOD, cheer when you see him!

영어NRSV,4 Sing to God, sing praises to his name; lift up a song to him who rides upon the clouds–his name is the LORD–be exultant before him.

헬라어구약Septuagint,4 εκοπιασα κραζων εβραγχιασεν ο λαρυγξ μου εξελιπον οι οφθαλμοι μου απο του ελπιζειν επι τον θεον μου

라틴어Vulgate,4 laboravi clamans raucae factae sunt fauces meae defecerunt oculi mei dum spero in Deum meum

히브리어구약BHS,4 שִׁירוּ לֵאלֹהִים זַמְּרוּ שְׁמֹו סֹלּוּ לָרֹכֵב בָּעֲרָבֹות בְּיָהּ שְׁמֹו וְעִלְזוּ לְפָנָיו׃

성 경: [시68:4]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승리]

󰃨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 – 여기서 ‘광야'(*, 아라보트)는 암몬 족속의 용병(傭兵)이었던 아람 사람들이 진을 쳤던 모압의 초원 지대를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다(삼하 10:8, Keil).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께서 마치 마차나 병거를 타고서 당신의 백성들 대신 그 원수들과 싸우기 위하여 백성들보다 앞서 나아가시는 것을 연상시킨다(Keil). 그러나 ‘아라보트’를 ‘하늘’혹은 ‘구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KJV, NIV, RSV). 특히 33절과의 병행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Kidner). 하나님께서는 하늘 병거를 타시고 당신의 백성에게는 보호와 축복을, 그리고 그 대적들에게는 징벌과 저주를 내리기 위해 두루 다니시는 분으로 묘사된 적이 종종 있다(18:10;104:3).

󰃨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 ‘여호와’의 히브리어 ‘야'(*)에 대해서는 (1) ‘여호와'(*)의 축약형, (2) ‘여호와’의 파생형, (3) ‘여호와’의 고어형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1)의 견해가 그중 제일 무난한 것 같다. 그렇다면 본절의 ‘여호와’도 ‘스스로 계신 자’,혹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을 나타낸다(출 3:14). 그러므로 이는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에 의해서 조작된 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우월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분만이 인간의 궁극적 신뢰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여기에 사용된 축약형 ‘야'(*)는 이곳 외에 18절과, 하나님의 크신 구원적 권능에 대해서 언급하는 곳(출 15:2) 및 하나님께서만 신뢰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함을 언급하는 곳(사 26:4)에 나온다. 한편, 원문상에는 ‘여호와’ 앞에 전치사 ‘베'(*)가 붙어 있는데, 이는 강조를 위한 불변화사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문은 ‘그의 이름은 여호와 외에 그 어떤 것도 아니다’는 의미로도 번역될 수 있겠다(Anderson).

아비 예토밈 웨다얀 알마노트 엘로힘 비메온 카데쇼

개역개정,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새번역,5 그 거룩한 곳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을 돕는 재판관이시다.

우리말성경,5 그 거룩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은 고아들에게는 아버지며 과부들에게는 변호인이 되신다.

가톨릭성경,5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거처에 계시다.

영어NIV,5 A father to the fatherless, a defender of widows, is God in his holy dwelling.

영어NASB,5 A father of the fatherless and a judge for the widows, Is God in His holy habitation.

영어MSG,5 Father of orphans, champion of widows, is God in his holy house.

영어NRSV,5 Father of orphans and protector of widows is God in his holy habitation.

헬라어구약Septuagint,5 επληθυνθησαν υπερ τας τριχας της κεφαλης μου οι μισουντες με δωρεαν εκραταιωθησαν οι εχθροι μου οι εκδιωκοντες με αδικως α ουχ ηρπασα τοτε απετιννυον

라틴어Vulgate,5 multiplicati sunt super capillos capitis mei qui oderunt me gratis confortati sunt qui persecuti sunt me inimici mei iniuste quae non rapui tunc exsolvebam

히브리어구약BHS,5 אֲבִי יְתֹומִים וְדַיַּן אַלְמָנֹות אֱלֹהִים בִּמְעֹון קָדְשֹׁו׃

성 경: [시68:5]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승리]

󰃨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 하나님은 악행자들을 바람이 연기를 흩뜨리듯이 진멸시키시지만(2절) 억울하게 압제 당하는 사죄적 약자들은 보호하신다. 우가릿 문서(예컨대, ‘케레트의 전설’이나 ‘아카트의 이야기’ 등)에도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는 것은 이상적인 왕에게 부여된 특별한 임무로 나와 있다(Anderson). 성경 역시 고아와 과부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의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다(10:14;신 10:18;사 1:17;약 1:27등). 이는 사람의 외모를 따라 부한 자와 높은 자를 더 중시하고 비천한 자들은 멸시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경향과 너무나도 대조된다.

엘로힘 모쉬브 예히딤 바예타 모치 아시림 밬코솨로트 아크 소라림 솨케누 체히하

개역개정,6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새번역,6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머무를 집을 마련해 주시고, 갇힌 사람들을 풀어 내셔서, 형통하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메마른 땅에서 산다.

우리말성경,6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가정을 이루시고 사슬에 묶인 사람들을 풀어 주신다. 그러나 반역자들은 마른 땅에서 살리라.

가톨릭성경,6 하느님은 외로운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사로잡힌 이들을 행복으로 이끌어 내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반항자들은 불모지에 머무른다.

영어NIV,6 God sets the lonely in families, he leads forth the prisoners with singing; but the rebellious live in a sun-scorched land.

영어NASB,6 God makes a home for the lonely; He leads out the prisoners into prosperity, Only the rebellious dwell in a parched land.

영어MSG,6 God makes homes for the homeless, leads prisoners to freedom, but leaves rebels to rot in hell.

영어NRSV,6 God gives the desolate a home to live in; he leads out the prisoners to prosperity, but the rebellious live in a parched land.

헬라어구약Septuagint,6 ο θεος συ εγνως την αφροσυνην μου και αι πλημμελειαι μου απο σου ουκ εκρυβησαν

라틴어Vulgate,6 Deus tu scis insipientiam meam et delicta mea a te non sunt abscondita

히브리어구약BHS,6 אֱלֹהִים מֹושִׁיב יְחִידִים בַּיְתָה מֹוצִיא אֲסִירִים בַּכֹּושָׁרֹות אַךְ סֹורֲרִים שָׁכְנוּ צְחִיחָה׃

성 경: [시68:6]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하나님의 승리]

󰃨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 – ‘고독한 자'(*, 예히딤)에 대해서는 신부를 맞을 지참금이 없어 결혼하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Albright). 그러나 그보다는 어떤 이유로 인해 자신을 의탁할 가족이나 친족도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무난하다(Anderson, Mowinckel). 아마 이들 역시 고아나 과부처럼 공동체내에서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 수금된 자를 이끌어 내사 형통케 하시느니라 – ‘수금된 자’는 감옥 생활(창 39:20) 및 포로 생활을 하는자(69:33;사 14:17;애 3:34;슥 9:11)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어쨌든 본문은 이들이 부자유스러운 상황속에서 고역과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예전의 자유와 번영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형통케 하시느니라'(*, 바코솨로트)는 ‘정당하고 적절하다’ 혹은 ‘번영하다’를 뜻하는 동사 ‘카쉐르'(*)에서 파생된 명사 ‘코솨라'(*)와 ‘함께’로 번역될 수 있는 전치사 ‘베'(*)가 합쳐진 단어이다.

󰃨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 ‘거역하는 자'(*, 소라림)는 ‘완고하다’ 혹은 ‘반항적이다’를 뜻하는 동사 ‘사라르'(*)에서 파생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제 고집대로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사 65:2;렘 5:23;슥 7:11). 그리고 ‘메마른땅'(*, 체히하)은 ‘눈부시다’를 뜻하는 동사 ‘차하흐'(*)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지극히 건조한 지역을 가리킨다. 이는 결국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완고한 사람은 사막과 같은 불모지(不毛地)에서 죽음을 당한다는 의미이다(민 14:29-35).

엘로힘 베체테카 리페네 암메카 베차데카 비쉬몬 셀라

개역개정,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 (셀라)

새번역,7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앞에서 앞장 서서 나아가시며 광야에서 행진하실 때에, (셀라)

우리말성경,7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백성들 앞에서 나가실 때 주께서 광야를 가로질러 행진하실 때 (셀라)

가톨릭성경,7 하느님, 당신께서 당신 백성에 앞서 나아가실 제 당신께서 사막을 행진하실 제

영어NIV,7 When you went out before your people, O God, when you marched through the wasteland, Selah

영어NASB,7 O God, when You went forth before Your people, When You marched through the wilderness, Selah.

영어MSG,7 God, when you took the lead with your people, when you marched out into the wild,

영어NRSV,7 O God, when you went out before your people, when you marched through the wilderness, Selah

헬라어구약Septuagint,7 μη αισχυνθειησαν επ’ εμοι οι υπομενοντες σε κυριε κυριε των δυναμεων μη εντραπειησαν επ’ εμοι οι ζητουντες σε ο θεος του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7 non erubescant in me qui expectant te Domine Domine virtutum non confundantur super me qui quaerunt te Deus Israhel

히브리어구약BHS,7 אֱלֹהִים בְּצֵאתְךָ לִפְנֵי עַמֶּךָ בְּצַעְדְּךָ בִישִׁימֹון סֶלָה׃

성 경: [시68:7]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시인은 여기서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신 일을 회고하고 있다.

󰃨 앞서 나가사 –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던 언약궤(레 16:2)가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선두에 위치했던 사실(민 10:33)을 상기시킨다. 물론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서 나아가시면서 그들을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고(출 13:21, 22) 또한 원수들을 물리치신 사실도 아울러 연관된다. 요컨대 하나님은 십자가 군병들인 당신의 백성들의 앞에 서서 우리를 대신하여 용감하게 싸우며 나아가시는 일선 사령관이시므로(수 5:13-15),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믿음의 행진을 담대히 계속할수 있다(딤후 4:7).

󰃨 광야(*, 예쉬몬). – 지극히 부적절한 자연적 조건으로 인하여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곳을 가리킨다(신 32:10). 기자는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보고 있던 ‘광야’의 황량함과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후의 축복된 상태를 날카롭게 대조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준다(Keil).

에레츠 라아솨 아프 솨마임 나테푸 미페네 엘로힘 제 시나이 미페네 엘로힘 엘로헤 이스라엘

개역개정,8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새번역,8 하나님 앞에서, 시내 산의 그분 앞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땅이 흔들렸고 하늘도 폭우를 쏟아 내렸습니다.

우리말성경,8 땅이 흔들렸고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비를 쏟았으며 시내 산마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흔들렸습니다.

가톨릭성경,8 땅이 뒤흔들리고 하늘마저 물이 되어 쏟아졌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시나이의 그분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 앞에서.

영어NIV,8 the earth shook, the heavens poured down rain, before God, the One of Sinai, before God, the God of Israel.

영어NASB,8 The earth quaked; The heavens also dropped rain at the presence of God; Sinai itself quaked at the presence of God, the God of Israel.

영어MSG,8 Earth shook, sky broke out in a sweat; God was on the march. Even Sinai trembled at the sight of God on the move, at the sight of Israel’s God.

영어NRSV,8 the earth quaked, the heavens poured down rain at the presence of God, the God of Sinai, at the presence of God, the God of Israel.

헬라어구약Septuagint,8 οτι ενεκα σου υπηνεγκα ονειδισμον εκαλυψεν εντροπη το προσωπον μου

라틴어Vulgate,8 quoniam propter te sustinui obprobrium operuit confusio faciem meam

히브리어구약BHS,8 אֶרֶץ רָעָשָׁה אַף־שָׁמַיִם נָטְפוּ מִפְּנֵי אֱלֹהִים זֶה סִינַי מִפְּנֵי אֱלֹהִים אֱלֹהֵי יִשְׂרָאֵל׃

성 경: [시68:8]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떨어지며 –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해 시내 산에 임재하셨을 때에 나타났던 현상을 묘사하고 있다(출 19:16-25). 그런데 ‘하늘이…떨어지며’는 어두운 천둥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시내산을 덮은 것을 가리킨다(신 5:22).

󰃨 저 시내 산도…진동 하였나이다 – ‘저 시내산’은 원어상 (1)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저 시내산’ (2) ‘시내산 자체'(even Sinai itself, KJV), (3) ‘시내산의 그분'(the One of Sinai, NIV)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중 (3)의 번역은 ‘저 시내 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이해한 것이며 ‘시내 산의 주님’이라는 의미로 파악한 것이다(Albright).

󰃨 이스라엘의 하나님 – ‘시내 산의 하나님’이 계시 수여와 주로 연관된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관계를 맺으셨던 사실을 상기시키는 이름이다(VanGemeren).

게쉠 네다보트 타니프 엘로힘 나하로테카 웨닐레아 앝타 코나네타흐

개역개정,9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새번역,9 하나님, 주님께서 흡족한 비를 내리셔서 주님께서 주신 메마른 땅을 옥토로 만드셨고

우리말성경,9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소나기를 충분히 내리셔서 시들해진 주의 기업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9 하느님, 당신께서는 넉넉한 비를 뿌리시어 메마른 당신 상속의 땅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영어NIV,9 You gave abundant showers, O God; you refreshed your weary inheritance.

영어NASB,9 You shed abroad a plentiful rain, O God; You confirmed Your inheritance, when it was parched.

영어MSG,9 You pour out rain in buckets, O God; thorn and cactus become an oasis

영어NRSV,9 Rain in abundance, O God, you showered abroad; you restored your heritage when it languished;

헬라어구약Septuagint,9 απηλλοτριωμενος εγενηθην τοις αδελφοις μου και ξενος τοις υιοις της μητρος μου

라틴어Vulgate,9 extraneus factus sum fratribus meis et peregrinus filiis matris meae

히브리어구약BHS,9 גֶּשֶׁם נְדָבֹות תָּנִיף אֱלֹהִים נַחֲלָתְךָ וְנִלְאָה אַתָּה כֹונַנְתָּהּ׃

성 경: [시68:9]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하나님이여 흡족한 비를 보내사 – 이에 대해서는 (1)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 들어가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사를 위한 비를 풍족히 내리셨던 사실을 가리킨다는 해석(Calvin, Keil, 박윤선), (2)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던 일을 가리킨다는 해석(Rawlinson, C.B. Moll) 등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첫째, 11절 내용이 주로 출애굽 직후 광야에서 있었던 일이므로 본절도 광야에서 받은 축복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자연스러우며, 둘째, 출애굽기 등은 만나를 ‘비’로 말하고 있다(78:23, 24;출 16:4)는 점을 미루어 볼 때, (2)의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향편, ‘흡족한'(*, 네다보트)의 어근인 ‘나다브'(*)는 ‘자원하다’ 혹은 ‘즐거이 드리다'(출 35:21 대상 29:9)의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이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근거한 아낌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아낌없이 내려주신 만나를 먹고 배부르기에 충분하였다(출 16:12).

󰃨 주의 산업이 곤핍(困乏)할 때에 견고케 하셨고 – ‘주의 산업'(*, 나할라트카)은 ‘나누다’나 ‘차지하다’ 혹은 ‘상속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나할'(*)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여기서는 ‘주님에 의해서 차지된 백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된 백성 곧 이스라엘을 가리킨다(신 7:6).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산업’혹은 ‘기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쉽게 발견된다(출 34:9;신 4:20;9:26, 29;왕하 21;14). 한편, ‘곤핍할 때에'(*, 닐아)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회로한 상태를 가리키는 동사 ‘라아'(*)의 수동형으로서, 주변 여건 혹은 환경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하게 지쳐있는 상태를 가리킨다(잠 26:15;사 16:12).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먼길을 걸었고 또한 먹지 못하여 극도로 지친 상태에 있었다. 또한 ‘견고케 하셨고'(*, 아타 코난타)는 문자적으로 ‘당신께서 견고케 하셨고’이다. 이처럼 본 문구에는, 동사에 이미 2인칭 단수 주어 어미(語尾)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별도로 2인칭 단수 인칭대명사 ‘아타’가 있다. 이것은 ‘견고케 하신’ 행동의 행위 주체자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로 이해하면 된다. 한편, ‘견고케 하셨고’의 기본형인 ‘쿤'(*)은 ‘준비하다’ 혹은 ‘세우다’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튼튼히하고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신 일을 가리킨다(Keil, NIV).

하야테카 야쉐부 바흐 타킨 베토바테카 레아니 엘로힘

개역개정,10 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새번역,10 주님의 식구들을 거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셔서, 좋은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말성경,10 주의 백성들의 모임이 그 땅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선하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채워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0 당신의 무리가 그 위에 살고 있으니 하느님, 당신께서 가련한 이를 위하여 호의로 마련하신 것입니다.

영어NIV,10 Your people settled in it, and from your bounty, O God, you provided for the poor.

영어NASB,10 Your creatures settled in it; You provided in Your goodness for the poor, O God.

영어MSG,10 For your people to camp in and enjoy. You set them up in business; they went from rags to riches.

영어NRSV,10 your flock found a dwelling in it; in your goodness, O God, you provided for the needy.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οτι ο ζηλος του οικου σου κατεφαγεν με και οι ονειδισμοι των ονειδιζοντων σε επεπεσαν επ’ εμε

라틴어Vulgate,10 quoniam zelus domus tuae comedit me et obprobria exprobrantium tibi ceciderunt super me

히브리어구약BHS,10 חַיָּתְךָ יָשְׁבוּ־בָהּ תָּכִין בְּטֹובָתְךָ לֶעָנִי אֱלֹהִים׃

경: [시68:10]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주의 회중(會衆)으로 그 가운데 거하게 하셨나이다 – ‘주의 회중'(*, 하야트카)의 ‘회중'(*, 하야)은 ‘살다’ 혹은 ‘강하게 되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하야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살아있는 것’, ‘사람들’ 혹은 ‘군대’를 뜻한다(Davidson). 여기서는 삼하 23:11에서 처럼 ‘군대’보다는, 차라리 보다 일반적인 의미인 ‘무리’, ‘집단’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Keil). 한편, ‘그 가운데'(*, 바)는 문자적으로 ‘그녀의 가운데’의 뜻이며, ‘그녀’가 지칭하는 바에 대해서는 가나안 땅과 광야 중 하나를 뜻한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만일 ‘주의 산업'(9절)이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면, 여기의 ‘그녀’는 틀림없이 ‘가나안 땅’일 것이다. 하지만 9절 주석에서 이미 ‘주의 산업’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가나안 땅’이 아님을 확인했었다. 따라서 본문의 ‘그 가운데’는 ‘광야 가운데’를 뜻하는 것 같다(7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곤핍하였던 곳(9절)이다. 그리고 ‘거하게 하셨나이다'(*, 야쉬부)는 ‘쉬다’ 혹은 ‘거주하다’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본 문구는 걷기만 하고 먹지 못하여 곤핍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양식을 공급받은 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쉬다’의 뜻을 갖는다고 볼 필요가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록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만 하면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마 11:28-30).

󰃨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 ‘가난한 자'(*, 아니)는 ‘괴롭히다’, ‘자기를 낮추다’ 혹은 ‘억지로…을 시키다’의 뜻이 있는 동사 ‘아나'(*)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1) ‘압제당하는 자'(욥 36:6;사 49:13), (2) 개역 성경의 번역처럼 ‘가난한 자'(신 24:14, 15), (3) ‘겸손한 자'(잠 16:19), (4) ‘피곤한 자'(습 3:12)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곤핍’했었음을 말하는 9절에 근거해 볼 때, (4)의 뜻이 가장 합당한 듯하다. 한편 ‘준비하셨나이다'(*, 타킨)는 9절 후미의 ‘견고케 하셨고’와 어근이 동일하다. 본시의 기자가 이같이 동일한 동사를 사용한 까닭은 동일한 내용을 언어 유희(wordplay)적 표현으로써 강조하기 위함이다.

아도나이 이텐 오멜 하므밧세로트 차바 랍

개역개정,11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들은 큰 무리라

새번역,11 주님이 명을 내리시니, 수많은 여인들이 승리의 소식을 전하였다.

우리말성경,11 주께서 이 말씀을 선포하시니 큰 무리가 그것을 알립니다.

가톨릭성경,11 주님께서 말씀을 내리시니 기쁜 소식 전하는 이들이 대군을 이루네.

영어NIV,11 The Lord announced the word, and great was the company of those who proclaimed it:

영어NASB,11 The Lord gives the command; The women who proclaim the good tidings are a great host:

영어MSG,11 The Lord gave the word; thousands called out the good news:

영어NRSV,11 The Lord gives the command; great is the company of those who bore the tidings: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και συνεκαμψα εν νηστεια την ψυχην μου και εγενηθη εις ονειδισμον εμοι

라틴어Vulgate,11 et operui in ieiunio animam meam et factum est in obprobrium mihi

히브리어구약BHS,11 אֲדֹנָי יִתֶּן־אֹמֶר הַמְבַשְּׂרֹות צָבָא רָב׃

성 경: [시68:11]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 여기서 ‘말씀'(*, 오메르)은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필승의 약속(C.B. Moll), (2) 이스라엘로 하여금 승리의 노래를 부르도록 한 하나님의 명령(Calvin), (3) 전황(戰況)을 급변케 한 하나님의 창조적 말씀(Keil, Rawlinson) 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첫째, 7절에서부터 10절까지가 하나님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극적으로 은헤를 베푸신 것에 대한 언급이며, 둘째, 다음 문구와 같은 행동(출 15:20)을 실제적으로 촉발시켰던 것(출 15:19)은 곧 하나님의 창조적 말씀이었다(출 14:26)는 점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위의 세 견해 중 (3)의 것이 보다 합당하다.

󰃨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가 큰 무리라 – 직접적으로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비롯한 많은 여자들이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 사실과 관계 있다(출 15:20).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에 여인들이 노래하며 춤추고 뛰놀았던 사실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삼상 18:6, 7). 뿐만 아니라, 바락과 드보라가 가나안왕을 이겼을 때, 드보라가 하나님을 찬양한 것도 결코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삿 5:1).

말케 체바오트 읻도둔 읻도둔 우네와트 바이트 테할레크 솰랄

개역개정,12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있던 여자들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새번역,12 “왕들이 달아났다. 군대가 서둘러 도망갔다.” 집 안의 여인들도 전리품을 나누어 가졌다.

우리말성경,12 “왕들과 군대들은 허둥지둥 도망쳤고 진영 안의 사람들은 전리품을 나누었다.

가톨릭성경,12 군대를 이끈 임금들이 도망가는구나, 도망가는구나. 규중 여인도 전리품을 나누네.

영어NIV,12 “Kings and armies flee in haste; in the camps men divide the plunder.

영어NASB,12 “Kings of armies flee, they flee, And she who remains at home will divide the spoil!”

영어MSG,12 “Kings of the armies are on the run, on the run!”

영어NRSV,12 “The kings of the armies, they flee, they flee!” The women at home divide the spoil,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και εθεμην το ενδυμα μου σακκον και εγενομην αυτοις εις παραβολην

라틴어Vulgate,12 et posui vestimentum meum cilicium et factus sum illis in parabolam

히브리어구약BHS,12 מַלְכֵי צְבָאֹות יִדֹּדוּן יִדֹּדוּן וּנְוַת בַּיִת תְּחַלֵּק שָׁלָל׃

성 경: [시68:12]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 가나안의 여러 왕들이 이스라엘에 의해서 패배한 사실들을 가리킨다(수 8:19-22;10:19, 20;11:8, 9;삿 3:10, 29). 그런데 ‘여러 군대의 왕들’은 이들을 완전 패퇴시키신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표현이다. 즉, 다윗은 하나님에 의해 패배당한 왕들의 강성함을 이같이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강력히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가나안 왕들은 철병거(수 11:4) 등의 우수한 병기와 훌륭한 요새(수 11:2)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의 자력(自力)만으로는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강력한 왕들을 이기셨고, 이에 따라 당신의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셨던 것이다.

󰃨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 이것은 (1) 여자들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능히 적병을 쫓아내고 전리품을 획득했다는 견해(박윤선), (2) 여자들도 남자들이 전쟁 중에 획득하여 집으로 가져온 전리품을 나누어 가졌다는 견해(Valvin, Keil, Kidner, Weiser)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경우는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1)의 경우는 타당치 못하다. 또한, 가나안 왕인 시스라가 노략물을 취하여 집에 있는 자신의 어미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었다는 사실도(삿 5:30) (2)의 견해를 지지하기에 충분하다. 결국 본문은 집에 있는 여인들에게까지 분배 기회가 주어질 정도로 전리품이 많았음을 말해준다.

임 티쉬케분 벤 쉐팥타임 카네페 요나 네흐파 밬케세프 웨에브로테하 비라케라크 하루츠

개역개정,13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

새번역,13 비록 그 여인들이 그 때에 양 우리에 머물러 있었지만, 은을 입힌 비둘기의 날개를 나누었고, 황금빛 번쩍이는 깃을 나누었다.

우리말성경,13 너희는 양 우리에서 잠을 잘지라도 그 날개는 은으로 덮이고 그 깃털은 빛나는 금으로 뒤덮인 비둘기처럼 되리라.”

가톨릭성경,13 너희는 가축 우리 사이에서 쉬고 싶으냐? 비둘기의 날개는 은으로, 그 깃들은 푸른 빛이 도는 금으로 뒤덮였네.

영어NIV,13 Even while you sleep among the campfires, the wings of my dove are sheathed with silver, its feathers with shining gold.”

영어NASB,13 When you lie down among the sheepfolds, You are like the wings of a dove covered with silver, And its pinions with glistening gold.

영어MSG,13 While housewives, safe and sound back home, divide up the plunder, the plunder of Canaanite silver and gold.

영어NRSV,13 though they stay among the sheepfolds–the wings of a dove covered with silver, its pinions with green gold.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κατ’ εμου ηδολεσχουν οι καθημενοι εν πυλη και εις εμε εψαλλον οι πινοντες τον οινον

라틴어Vulgate,13 adversum me exercebantur qui sedebant in porta et in me psallebant qui bibebant vinum

히브리어구약BHS,13 אִם־תִּשְׁכְּבוּן בֵּין שְׁפַתָּיִם כַּנְפֵי יֹונָה נֶחְפָּה בַכֶּסֶף וְאֶבְרֹותֶיהָ בִּירַקְרַק חָרוּץ׃

성 경: [시68:13]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에는 – 이는 목자들이 유유 자적(悠悠自適)하게 평안히 쉬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삿 5:16).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세력들의 위협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서 평안히 정착하는 때를 가리킨다. 그러나 칼빈은 ‘양 우리'(*, 쉐파타임)를 ‘항아리’로 해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지저분한 항아리에 누운 듯한 비참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때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러나 ‘쉐파타임’은 ‘놓다’ 혹은 ‘두다’의 뜻을 갖는 동사 ‘솨파트'(*)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항아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항상 가축을 가두기 위한 울타리를 의미한다(창 49:14;삿 5:16).

󰃨 그 날개를 은으로…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 – 이것은, 날으는 비둘기가 햇빛을 받아 어떤 때는 은빛을, 또 어떤 때는 금빛을 띠는 모습을 연상시키며(Keil),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크신 축복에 따라 대단한 번영을 이루게 될 것을 시사한다. 사실, 이스라엘은 특히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는 중근동에서 가장 번성한 나라가 됐었다.

베파레스 솨다이 멜라킴 바흐 타쉴레그 베찰레몬

개역개정,14 전능하신 이가 왕들을 그 중에서 흩으실 때에는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새번역,14 ㉡전능하신 분이 그 땅에서 왕들을 흩으실 때, 그 산을 눈으로 덮으셨다. / ㉡히, ‘샤다이’

우리말성경,14 전능하신 분이 이 땅의 왕들을 흩어 버리셨으니 그 모습이 살몬에 날리는 눈처럼 하얗게 됐다.

가톨릭성경,14 전능하신 분께서 거기에서 임금들을 흩으실 제 찰몬에는 눈이 왔다네.

영어NIV,14 When the Almighty scattered the kings in the land, it was like snow fallen on Zalmon.

영어NASB,14 When the Almighty scattered the kings there, It was snowing in Zalmon.

영어MSG,14 On that day that Shaddai scattered the kings, snow fell on Black Mountain.

영어NRSV,14 When the Almighty scattered kings there, snow fell on Zalmon.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εγω δε τη προσευχη μου προς σε κυριε καιρος ευδοκιας ο θεος εν τω πληθει του ελεους σου επακουσον μου εν αληθεια της σωτηριας σου

라틴어Vulgate,14 ego vero orationem meam ad te Domine tempus beneplaciti Deus in multitudine misericordiae tuae exaudi me in veritate salutis tuae

히브리어구약BHS,14 בְּפָרֵשׂ שַׁדַּי מְלָכִים בָּהּ תַּשְׁלֵג בְּצַלְמֹון׃

성 경: [시68:14]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전능하신 자(*, 솨다이) – 이것은 ‘공격하다’ 혹은 ‘파괴시키다’를 뜻하는 동사 ‘솨다드'(*)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하나님이 자연 법칙을 초월하여 자신의 약속을 성취시키실만큼의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강조하는 명칭이다(창 17:1;28:3). 반면에 악인들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악한 행위대로 보응하시는 측면을 강조하기도 한다(욥 34:12;사 13:6;욜 1:15).

󰃨 열왕을 그 중에서 흩으실때에는 – 여기서 ‘열왕'(*, 멜라킴)은 문자적으로 ‘왕들’의 뜻이며,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착을 적극 방해하던 가나안 족속의 여러 왕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흩으실때에는'(*, 베파레스)의 기본형 ‘파라스'(*)는 ‘퍼지다’ 혹은 ‘펼치다’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열왕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것을 가리킨다(겔 17:21). 사실 가나안 왕들은 연합 전선을 펴서 이스라옐 백성을 대적했었다(수 10:1-5).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징벌하심으로, 그들은 모두 패하여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수 10:10, 11).

󰃨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 문자적으로는 ‘살몬에 눈이 날렸도다’이다. 여기에 대한 해석으로는 (1)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에게 대패하여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에 대한 묘사라는 견해(Keil, Cheyne), (2) 죄악된 가나안 족속들에 의해서 더렵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원수들의 멸망으로 정결하게 된 영적모습에 대한 묘사라는 견해(Calvin) 등이 있다. 이중에서 (1)의 견해가 보다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런데 (1)의 견해도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그 중 하나는 본 문구가, 가나안 족속의 도망치는 모습이 마치 바람에 눈이 날려서 흩어지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는 해석이다(Cheyne). 또 하나는 가나안 족속이 도망치면서 남겨 놓은 전리품들과 그들의 썩은 해골이 눈같이 산을 덮었음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Keil). 그러나 이 두 해석 중에서, 첫 번째 해석이 바로 앞 문구의 ‘흩으실’이라는 동사의 뜻과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더 타당성이 있다. 한편, ‘살몬’은 ‘짙은 어두움’의 뜻을 지니며, 실제로 그 이름의 의미처럼 검은색을 띤 산이다.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했고(삿 9:48), 눈으로 덮여있는 때가 많다고 한다.

할 엘로힘 할 바솬 할 가브눈님 할 바솬

개역개정,15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새번역,15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이다. 바산의 산은 높이 솟은 봉우리 산이다.

우리말성경,15 하나님의 산이 바산의 산 같고 높은 봉우리가 바산의 봉우리 같다.

가톨릭성경,15 바산의 산은 드높은 산이요 바산의 산은 여러 봉우리 거느린 산이라네.

영어NIV,15 The mountains of Bashan are majestic mountains; rugged are the mountains of Bashan.

영어NASB,15 A mountain of God is the mountain of Bashan; A mountain of many peaks is the mountain of Bashan.

영어MSG,15 You huge mountains, Bashan mountains, mighty mountains, dragon mountains.

영어NRSV,15 O mighty mountain, mountain of Bashan; O many-peaked mountain, mountain of Bashan!

헬라어구약Septuagint,15 σωσον με απο πηλου ινα μη εμπαγω ρυσθειην εκ των μισουντων με και εκ του βαθους των υδατων

라틴어Vulgate,15 eripe me de luto ut non infigar liberer ab his qui oderunt me et de profundis aquarum

히브리어구약BHS,15 הַר־אֱלֹהִים הַר־בָּשָׁן הַר גַּבְנֻנִּים הַר־בָּשָׁן׃

성 경: [시68:15]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 본 문구는 동의적(同意的) 대구인 다음 문구와 같은 뜻을 갖는다. 따라서 여기의 ‘하나님의 산임이여’는 ‘바산의 산’이 하나님의 임재 장소임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산의 산’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창조될 수밖에 없다고 할 만큼 특별히 그 위용(威容)을 자랑하는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36:6). 한편, ‘바산의 산’은 요단 동편에 있으며 현무암이나 용암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 지역 주위에는 가파르고 탑과 같이 생긴 여러 봉우리들이 중간 중간에 우뚝 우뚝 서 있다(Keil). 이와 반대로 요단 서편의 산들은 대개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낮은 산들이다.

람마 테랓체둔 하림 가브눈님 하할 하마드 엘로힘 레쉬브토 아프 아도나이 이쉬콘 라네차흐

개역개정,16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

새번역,16 봉우리들이 높이 솟은 바산의 산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이 머무르시려고 택하신 시온 산을 시기하여 바라보느냐? 그 산은 주님께서 영원토록 머무르실 곳이다.

우리말성경,16 오 높은 봉우리들아, 너희가 왜 날뛰느냐? 이곳은 하나님이 계시기로 하신 산이다. 여호와께서 분명 거기에 영원히 계시리라.

가톨릭성경,16 여러 봉우리 거느린 산들아 하느님께서 기꺼이 거처하시기로 하신 그 산을 어찌하여 흘겨보느냐? 정녕 주님께서 거기에 영원히 머무시리라.

영어NIV,16 Why gaze in envy, O rugged mountains, at the mountain where God chooses to reign, where the LORD himself will dwell forever?

영어NASB,16 Why do you look with envy, O mountains with many peaks, At the mountain which God has desired for His abode? Surely, the LORD will dwell there forever.

영어MSG,16 All you mountains not chosen, sulk now, and feel sorry for yourselves, For this is the mountain God has chosen to live on; he’ll rule from this mountain forever.

영어NRSV,16 Why do you look with envy, O many-peaked mountain, at the mount that God desired for his abode, where the LORD will reside forever?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μη με καταποντισατω καταιγις υδατος μηδε καταπιετω με βυθος μηδε συσχετω επ’ εμε φρεαρ το στομ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16 non me demergat tempestas aquae neque absorbeat me profundum neque urgeat super me puteus os suum

히브리어구약BHS,16 לָמָּה תְּרַצְּדוּן הָרִים גַּבְנֻנִּים הָהָר חָמַד אֱלֹהִים לְשִׁבְתֹּו אַף־יְהוָה יִשְׁכֹּן לָנֶצַח׃

레켑 엘로힘 립보타임 알레페 쉬느안 아도나이 밤 시나이 바코데쉬

개역개정,17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새번역,17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다. 주님께서 그 수많은 병거를 거느리시고, 시내 산을 떠나 그 거룩한 곳으로 오셨다.

우리말성경,17 하나님의 전차들은 수천, 수만이다.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계시니 시내 산 성소에 계신 것 같도다.

가톨릭성경,17 하느님의 수레는 수만 수천. 주님께서 오신다, 시나이에서 성소로.

영어NIV,17 The chariots of God are tens of thousands and thousands of thousands; the Lord has come from Sinai into his sanctuary.

영어NASB,17 The chariots of God are myriads, Yousands upon Yousands; The Lord is among them as at Sinai, in holiness.

영어MSG,17 The chariots of God, twice ten thousand, and thousands more besides, The Lord in the lead, riding down Sinai– straight to the Holy Place!

영어NRSV,17 With mighty chariotry, twice ten thousand, thousands upon thousands, the Lord came from Sinai into the holy place.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εισακουσον μου κυριε οτι χρηστον το ελεος σου κατα το πληθος των οικτιρμων σου επιβλεψον επ’ εμε

라틴어Vulgate,17 exaudi me Domine quoniam benigna est misericordia tua secundum multitudinem miserationum tuarum respice me

히브리어구약BHS,17 רֶכֶב אֱלֹהִים רִבֹּתַיִם אַלְפֵי שִׁנְאָן אֲדֹנָי בָם סִינַי בַּקֹּדֶשׁ׃

성 경: [시68:17]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16절처럼 본절도 시온 산이 바산의 산에 의해서 업신여김을 받을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 ‘하나님의 병거’는 하나님을 옹위하는 천군 천사들을 가리키며(왕하 6:17) 이들이 시온 산에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옹위를 받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하심을 뜻한다. 그리고 ‘천천이요 만만이라’는 말은 수없이 많음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삼상 18:7).

알리타 람마롬 솨비타 쉐비 라카흐타 맡타노트 바아담 웨아프 소레림 리쉬콘 야흐 엘로힘

개역개정,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새번역,18 주님께서는 사로잡은 포로를 거느리시고 높은 곳으로 오르셔서, 백성에게 예물을 받으셨으며, 주님을 거역한 자들도 주 하나님이 계신 곳에 예물을 가져 왔습니다.

우리말성경,18 주께서 높이 올라가셨고 포로들을 사로잡아 끌고 오셨으며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으실 때 반역자들에게도 받으셨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8 주 하느님으로 좌정하시려고 당신께서는 포로들을 거느리시고 높은 데로 오르셨으며? 사람들에게서, 심지어 반항자들에게서도 예물을 받으셨습니다.

영어NIV,18 When you ascended on high, you led captives in your train; you received gifts from men, even from the rebellious–that you, O LORD God, might dwell there.

영어NASB,18 You have ascended on high, You have led captive Your captives; You have received gifts among men, Even among the rebellious also, that the LORD God may dwell there.

영어MSG,18 You climbed to the High Place, captives in tow, your arms full of booty from rebels, And now you sit there in state, GOD, sovereign GOD!

영어NRSV,18 You ascended the high mount, leading captives in your train and receiving gifts from people, even from those who rebel against the LORD God’s abiding there.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μη αποστρεψης το προσωπον σου απο του παιδος σου οτι θλιβομαι ταχυ επακουσον μου

라틴어Vulgate,18 et ne avertas faciem tuam a puero tuo quoniam tribulor velociter exaudi me

히브리어구약BHS,18 עָלִיתָ לַמָּרֹום שָׁבִיתָ שֶּׁבִי לָקַחְתָּ מַתָּנֹות בָּאָדָם וְאַף סֹורְרִים לִשְׁכֹּן יָהּ אֱלֹהִים׃

성 경: [시68:18]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 이것은 (1)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서 펼치게끔 하기 위하여 선택된 신정(神政) 왕 다윗이 시온 곧 예루살렘에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된 것(Calvin), (2) 언약궤가 시온산이라는 높은 곳으로 옮겨짐에 따라(대상 15:25-29) 하나님께서도 그곳의 성소에 임재하게 되신 것(C.B. Moll, Rawlinson)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문맥들에서도 높은 곳으로서의 시온 산을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장소로서 말한다(렘 31:12;겔 17:23;20:40)는 점에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2)의 것이 보다 타당하다. 한편, 우리는 본 문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지금도 성도들과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연결시켜 이해해 볼 수 있다(엡 4:8).

󰃨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膳物)을…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 일차적으로는, 출애굽, 광야 여정 및 가나안 정복과정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대적들을 정복시켜 포로로 잡고(삿 5:12 참조) 피정복민들로부터 조공을 받으신 사실을(삼하 8:2) 가리킨다(VanGemeren). 그리고 보다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세력을 정복하고 성도들에게 구원의 선물을 베푸신 것을 예표한다(엡 4:8). 한편, 본절 하반절과의 문맥 연결을 고려하여, 이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들에게서도 경외와 예배의 대상이 되시게끔 하신다는 의미로도 해석해 볼 수 있겠다.

󰃨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 ‘여호와’는 인간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히 지키시는 분임을 암시하는 문맥에서 주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호칭이다(창 17:1, 2). 그리고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는, 이방 민족, 곧 ‘패역자’들 중에도 하나님의 크신 위엄을 목격하고 당신의 백성이 될 자들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이방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되는 것은 큰 축복임이 분명하다. 원래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과는 상관이 없었으며 세상에서 소방도 없던 자들이었다(엡 2:1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당신과 원수되었을 때 그들을 부르셔서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롬 5:6-8).

바루크 아도나이 욤 욤 야아마스 라누 하엘 예슈아테누 셀라

개역개정,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새번역,19 날마다 우리의 주님을 찬송하여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셀라)

우리말성경,19 날마다 우리 짐을 져 주시는 여호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라. (셀라)

가톨릭성경,19 주님께서는 나날이 찬미받으소서. 우리 위하여 짐을 지시는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영어NIV,19 Praise be to the Lord, to God our Savior, who daily bears our burdens. Selah

영어NASB,19 Blessed be the Lord, who daily bears our burden, The God who is our salvation. Selah.

영어MSG,19 Blessed be the Lord– day after day he carries us along.

영어NRSV,19 Blessed be the Lord, who daily bears us up; God is our salvation. Selah

헬라어구약Septuagint,19 προσχες τη ψυχη μου και λυτρωσαι αυτην ενεκα των εχθρων μου ρυσαι με

라틴어Vulgate,19 intende animae meae et libera eam propter inimicos meos eripe me

히브리어구약BHS,19 בָּרוּךְ אֲדֹנָי יֹום יֹום יַעֲמָס־לָנוּ הָאֵל יְשׁוּעָתֵנוּ סֶלָה׃

성 경: [시68:19]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 하나님이 세상에서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당신의 백성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세심하게 돌보아 주심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다(Anderson).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전혀 환난과 고통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은 백성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들이 그 어려움들을 능히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는 의미이다(빌 4:13). 따라서 신자들은, 순경(順境) 중에서 뿐만 아니라 역경 중에서도 결코 슬퍼하거나 낙심치 말아야 하는 것이다.

󰃨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 – ‘주'(*, 아도나이)에 대해서는 51:15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죽음에 이르는 환난(20절)에서도 건지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여기의 ‘하나님'(*, 엘)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특별히 강조하는 호칭이다(50:1;욥 32:13;40:9).

하엘 라누 엘 레모솨오트 웨레도나이 아도나이 람마웨트 토차오트

개역개정,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새번역,20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주 우리의 주님이시다.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여 내시는 주님이시다.

우리말성경,20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죽음을 피할 길은 여호와께 있다.

가톨릭성경,20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주 하느님께는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네.

영어NIV,20 Our God is a God who saves; from the Sovereign LORD comes escape from death.

영어NASB,20 God is to us a God of deliverances; And to GOD the Lord belong escapes from death.

영어MSG,20 He’s our Savior, our God, oh yes! He’s God-for-us, he’s God-who-saves-us. Lord GOD knows all death’s ins and outs.

영어NRSV,20 Our God is a God of salvation, and to GOD, the Lord, belongs escape from death.

헬라어구약Septuagint,20 συ γαρ γινωσκεις τον ονειδισμον μου και την αισχυνην μου και την εντροπην μου εναντιον σου παντες οι θλιβοντες με

라틴어Vulgate,20 tu scis inproperium meum et confusionem et reverentiam meam

히브리어구약BHS,20 הָאֵל לָנוּ אֵל לְמֹושָׁעֹות וְלֵיהוִה אֲדֹנָי לַמָּוֶת תֹּוצָאֹות׃

성 경: [시68:20]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 여기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가 결코 피상적이지 않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구원자되심은 ‘우리’ 곧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능히 체험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하나님’도 19절의 ‘하나님’과 동일하게 ‘엘’이다.

󰃨 사망에서 피함이 주 여호와께로 말미암거니와 – ‘사망에서 피함’은 여기서는 죽음에 이르게 될 만한 극심한 환난(23:4)에서 구출되는 것을 가리키나 궁극적으로는 육체적으로 죽었으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살림을 받을 것(요 11:43, 44) 혹은 육체적인 죽음후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부활되는 것(고전 12:22, 23) 등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대시켜서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아크 엘로힘 이므하츠 로쉬 오예바우 코드코드 세아르 미트할레크 바아솨마우

개역개정,21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

새번역,21 진실로 하나님이 그의 원수들의 머리를 치시니, 죄를 짓고 다니는 자들의 덥수룩한 정수리를 치신다.

우리말성경,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적들의 머리를, 곧 계속해서 죄짓는 사람들의 정수리를 깨뜨리시리라.

가톨릭성경,21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부수시리라, 당신 원수들의 머리를, 죄 속에 걸어가는 자의 더부룩한 정수리를.

영어NIV,21 Surely God will crush the heads of his enemies, the hairy crowns of those who go on in their sins.

영어NASB,21 Surely God will shatter the head of His enemies, The hairy crown of him who goes on in his guilty deeds.

영어MSG,21 What’s more, he made heads roll, split the skulls of the enemy As he marched out of heaven,

영어NRSV,21 But God will shatter the heads of his enemies, the hairy crown of those who walk in their guilty ways.

헬라어구약Septuagint,21 ονειδισμον προσεδοκησεν η ψυχη μου και ταλαιπωριαν και υπεμεινα συλλυπουμενον και ουχ υπηρξεν και παρακαλουντας και ουχ ευρον

라틴어Vulgate,21 in conspectu tuo sunt omnes qui tribulant me inproperium expectavit cor meum et miseriam et sustinui qui simul contristaretur et non fuit et qui consolaretur et non inveni

히브리어구약BHS,21 אַךְ־אֱלֹהִים יִמְחַץ רֹאשׁ אֹיְבָיו קָדְקֹד שֵׂעָר מִתְהַלֵּךְ בַּאֲשָׁמָיו׃

성 경: [시68:21]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진실로’ 혹은 ‘그러므로’로 번역될 수 있는 접속사 ‘아크'(*)가 있다.

󰃨 그 원수의 머리…정수리 – ‘원수’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 백성을 해하려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머리’와 ‘정수리’는 여기서 동격(同格)이다. 그런데 ‘정수리'(*, 카드코드 세아르)는 문자적으로 ‘머리털이 있는 정수리’의 뜻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고대 아라비아 무사(武士)들의 경우처럼, 자신들이 무사임을 드러내 보이기 위하여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을 머리의 다른 부분보다 더 길게 남겨놓았던 것을 연상시킨다. 아무튼 이같은 모양으로 한 정수리는, 거만한 힘이나 회개할 줄 모르는 자만(自慢)을 상징한다(신 32:42).

󰃨 죄과에 항상 행하는 자 – 이것은 ‘원수’에 대한 보조 설명이며, 회개를 거부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죄악을 범하는 자를 뜻한다.

󰃨 하나님이 쳐서 깨치시리로다 – ‘쳐서 깨치시리로다'(*, 이므하츠)의 기본형인 ‘마하츠'(*)는 야엘이 시스라에게 가했던 것처럼, 강타하여 재기 불능의 치명상을 입히는 것을 가리킨다(삿 5:26). 특히 다른 문맥에서도 이 단어는, 회개치 않고 계속 죄를 범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신 32:39;33:11).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1)이 세상의 악인들을 반드시 멸망시키시며(73:27), (2)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신(神)인 사단과 그 세력들을 영원한 불못에 넣으실 것이다(계 20:10).

아마르 아도나이 밉바솬 아쉬브 아쉬브 밈추로트 얌

개역개정,2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을 바산에서 돌아오게 하며 바다 깊은 곳에서 도로 나오게 하고

새번역,22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네 원수들을 바산에서 데려오고, 바다 깊은 곳에서 그들을 끌어올 터이니,

우리말성경,22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산에서, 바다 깊은 곳에서 그들을 데려올 것이니

가톨릭성경,22 주님께서 말씀하셨네. ” 바산에서 데려오리라. 바다 깊은 곳에서 데려오리라.

영어NIV,22 The Lord says, “I will bring them from Bashan; I will bring them from the depths of the sea,

영어NASB,22 The Lord said, “I will bring them back from Bashan. I will bring them back from the depths of the sea;

영어MSG,22 saying, “I tied up the Dragon in knots, put a muzzle on the Deep Blue Sea.”

영어NRSV,22 The Lord said, “I will bring them back from Bashan, I will bring them back from the depths of the sea,

헬라어구약Septuagint,22 και εδωκαν εις το βρωμα μου χολην και εις την διψαν μου εποτισαν με οξος

라틴어Vulgate,22 et dederunt in escam meam fel et in siti mea potaverunt me aceto

히브리어구약BHS,22 אָמַר אֲדֹנָי מִבָּשָׁן אָשִׁיב אָשִׁיב מִמְּצֻלֹות יָם׃

성 경: [시68:22]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본절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21절과 연결시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마치 유대 주석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본절을 하나님의 구원 약속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예루살렘 멸망 뒤 배에 실려서 로마로 끌려가던 여자 포로들은, 본 구절을 자신들에 대한 약속의 말씀으로 보고 모두 지중해로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다(Keil). 즉, 그 여자 포로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 지중해에서 건져내시리라고 오판했던 것이다.

󰃨 저희를 바산에서…바다 깊은 데서 도로 나오게 하고 – 하나님의 원수들이 아무리 깊이 숨는다고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산’은 산세가 험하고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어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기에 적절했던 ‘바산의 산지’를 가리킨다. 그리고 ‘바다’는, 본 시편 저자 다윗의 활동 지역과 인접해 있었던 사해 바다를 뜻할것이다. 특히 기자는 ‘바다 깊은 데’라고 표현함으로써. 원수들의 도주 자체가 불가능함을 강조한다.

레마안 티메하츠 라그레카 베담 레숀 켈라베카 메오예빔 민네후

개역개정,23 네가 그들을 심히 치고 그들의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 네 집의 개의 혀로 네 원수들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 하리라 하시도다

새번역,23 너는 원수들의 피로 발을 씻고, 네 집 개는 그 피를 마음껏 핥을 것이다.”

우리말성경,23 네가 네 적들의 피에 발을 담그고 네 개들의 혀도 그 피를 핥으리라.”

가톨릭성경,23 네가 피에다 발을 씻고 네 개들의 혀도 원수들에게서 제 몫을 차지하게 하려는 것이다.”

영어NIV,23 that you may plunge your feet in the blood of your foes, while the tongues of your dogs have their share.”

영어NASB,23 That your foot may shatter them in blood, The tongue of your dogs may have its portion from your enemies. ”

영어MSG,23 You can wade through your enemies’ blood, and your dogs taste of your enemies from your boots.

영어NRSV,23 so that you may bathe your feet in blood, so that the tongues of your dogs may have their share from the foe.”

헬라어구약Septuagint,23 γενηθητω η τραπεζα αυτων ενωπιον αυτων εις παγιδα και εις ανταποδοσιν και εις σκανδαλον

라틴어Vulgate,23 fiat mensa eorum coram ipsis in laqueum et in retributiones et in scandalum

히브리어구약BHS,23 לְמַעַן תִּמְחַץ רַגְלְךָ בְּדָם לְשֹׁון כְּלָבֶיךָ מֵאֹיְבִים מִנֵּהוּ׃

성 경: [시68:23]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과거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

본절 초두에는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단어 곧 ‘그리하여’로 번역될 수 있는 ‘르마안'(*)이 있어서(NIV) 본절이 22절과 같은 심판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묘사임을 말해준다.

󰃨 너로 저희를 심히 치고 그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 – 문자적으로는 ‘너희들이 너희들의 발을 피 안에 세게 찔러넣게 할 것이다’의 뜻이다(you may piunge your feet in the blood of your foce, NIV). 이와 같은 표현은 (1)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며(사 63:1-3), 또한 (2) 하나님의 공의를 목격한 자가 그 공의가 실현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모습의 상징적 묘사이다(58:10).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악인을 멸절시키기 위한 대리적 심판자로 지정하사 원수들을 찌르게 하심을 나타낸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죄악이 관영된 가나안 족속 등을 징벌키 위한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바 있었다(창 15:16;수 10:40-43). 한편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이 지나치리만큼 잔인하신 분으로 보이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여기의 원수들은 하나님이 더 이상 긍휼을 베푸셔서 인내하실 수 없을 만큼 죄악으로 관영되어 있는 자들이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서라도 대적들은 철저히 응징하셔야만했다. 따라서 하나님이 잔인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대적들이 자신의 죄과에 대한 응분의 벌을 받는 것일 뿐이다.

󰃨 네 개의 혀로 네 원수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 하리라 – 원수들의 육신이 개의 먹이가 되게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죽어서조차 무덤에 안장되지 못하고 개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악인에 대한 처절한 심판을 강조하는 말이다(왕하 9:35;렘 15:3).

라우 할리코테카 엘로힘 할리코트 엘리 말르키 밬코데쉬

개역개정,24 하나님이여 그들이 주께서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로 행차하시는 것이라

새번역,24 하나님, 주님의 행진하심을 모든 사람이 보았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께서 성소로 행진하시는 모습을 그들이 보았습니다.

우리말성경,24 오 하나님이여, 그들이 주의 행렬을 보았습니다. 내 하나님이신 왕께서 성소에 들어가시는 행렬입니다.

가톨릭성경,24 하느님, 사람들이 당신의 행렬을 보았습니다, 저의 하느님이시며 저의 임금이신 당신께서 성소로 드시는 행렬을.

영어NIV,24 Your procession has come into view, O God, the procession of my God and King into the sanctuary.

영어NASB,24 They have seen Your procession, O God, The procession of my God, my King, into the sanctuary.

영어MSG,24 See God on parade to the sanctuary, my God, my King on the march!

영어NRSV,24 Your solemn processions are seen, O God, the processions of my God, my King, into the sanctuary–

헬라어구약Septuagint,24 σκοτισθητωσαν οι οφθαλμοι αυτων του μη βλεπειν και τον νωτον αυτων δια παντος συγκαμψον

라틴어Vulgate,24 obscurentur oculi eorum ne videant et dorsum eorum semper incurva

히브리어구약BHS,24 רָאוּ הֲלִיכֹותֶיךָ אֱלֹהִים הֲלִיכֹות אֵלִי מַלְכִּי בַקֹּדֶשׁ׃

성 경: [시68:24]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들을 무찌르신 후 개선의 행진을 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하나님의 운행하시는 모습이 보일 까닭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악인들에 대한 징치(徵治)를 마친후 크게 기뻐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모든 이가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저희’는 의인과 악인 모두를 포함한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행차’를 인하여 크게 기뻐하였을 것이며, 악인들은 심히 두려워 떨었을 것이다(출 15:14-16).

󰃨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에 행차하시는 것이라 – 여기서 ‘성소에'(*, 바코데쉬)는 ‘거룩하심 가운데서’로 번역함이 더 나을 것 같다(Albright). 그 까닭은 (1) 하나님의 개선 행차가 이교도들에게까지 목격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그 행차가 예루살렘의 ‘성소’에서 있었다고 국한시키기는 어려우며, (2) 여기의 ‘바코데쉬’라는 단어가 하나님이 이방 원수들을 심판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는 문맥에서 ‘거룩함에’로 번역되고 있기(77:13;출 15:11)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룩하심 가운데서’라는 말은 ‘악인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신 공의로운 성품의 소유자이심을 밝히 드러내시면서’라는 정도의 뜻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왕’은, 하나님 앞에서의 다윗의 겸손을 보여준다. 즉, 다윗은 비록 자신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백성 중 하나일 뿐임을 암시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키데무 솨림 아하르 노게님 베토크 알라모트 토페포트

개역개정,25 소고 치는 처녀들 중에서 노래 부르는 자들은 앞서고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은 뒤따르나이다

새번역,25 앞에서는 합창대가, 뒤에서는 현악대가, 한가운데서는 소녀들이, 소구 치며 찬양하기를

우리말성경,25 맨 앞에는 노래하는 사람들이, 그 뒤에는 연주자들이 따라갔고 탬버린을 치는 소녀들이 함께 갔습니다.

가톨릭성경,25 가인들이 앞서 가고 악사들이 뒤따르며 그 가운데에서는 처녀들이 손북을 치는구나.

영어NIV,25 In front are the singers, after them the musicians; with them are the maidens playing tambourines.

영어NASB,25 The singers went on, the musicians after them, In the midst of the maidens beating tambourines.

영어MSG,25 Singers out front, the band behind, maidens in the middle with castanets.

영어NRSV,25 the singers in front, the musicians last, between them girls playing tambourines:

헬라어구약Septuagint,25 εκχεον επ’ αυτους την οργην σου και ο θυμος της οργης σου καταλαβοι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25 effunde super eos iram tuam et furor irae tuae conprehendat eos

히브리어구약BHS,25 קִדְּמוּ שָׁרִים אַחַר נֹגְנִים בְּתֹוךְ עֲלָמֹות תֹּופֵפֹות׃

성 경: [시68:25]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본절은 승리와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의식(儀式)을 묘사하고 있다.

󰃨 소고 치는 동녀(童女) – ‘소고치는’ 일은 승리의 기쁨이 있을 때 여자들에 의해서 관례적으로 행해졌었다. ‘동녀'(*, 알마)는 미혼, 기혼을 막론한 젊은 여성 모두를 가리킨다(창 24:43;잠 30:19).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에서의 승리 후 미리암과 같은 기혼 여성들도 소고치는 일에 가담했었다(출 15:20). 문자 그대로의 ‘동녀’를 가리키는 히브리 단어는 ‘베툴라'(*)이다.

󰃨 가객(*, 솨림) – 노래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 악사 – 수금과 비파, 제금 그리고 나팔 등을 연주하는 사람을 뜻한다(대상 13:8).

베마크헬로트 바레쿠 엘로힘 아도나이 밈메코르 이스라엘

개역개정,26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

새번역,26 “회중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합니다.

우리말성경,26 큰 모임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스라엘의 집회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톨릭성경,26 축제의 모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원천에서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어NIV,26 Praise God in the great congregation; praise the LORD in the assembly of Israel.

영어NASB,26 Bless God in the congregations, Even the LORD, you who are of the fountain of Israel.

영어MSG,26 The whole choir blesses God. Like a fountain of praise, Israel blesses GOD.

영어NRSV,26 “Bless God in the great congregation, the LORD, O you who are of Israel’s fountain!”

헬라어구약Septuagint,26 γενηθητω η επαυλις αυτων ηρημωμενη και εν τοις σκηνωμασιν αυτων μη εστω ο κατοικων

라틴어Vulgate,26 fiat habitatio eorum deserta et in tabernaculis eorum non sit qui inhabitet

히브리어구약BHS,26 בְּמַקְהֵלֹות בָּרְכוּ אֱלֹהִים יְהוָה מִמְּקֹור יִשְׂרָאֵל׃

성 경: [시68:26]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 – ‘근원'(*, 마코르)은 ‘자손’, ‘근원’, ‘샘’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 등과 같은 신앙의 조상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조상 아브라함처럼 언약에의 참여자임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 대회 중에서…주를 송축할지어다 – 여기서 ‘대회'(*, 카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종교적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주'(*, 예호와)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점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명칭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민족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 구원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세상에서도 각양(各樣)의 은혜를 받으며 살았다. 그런 점에서 신.구약 시대를 막론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송축하지’ 않을 수 없다(엡 1:3, 6).

솸 빈야민 차이르 로뎀 사레 예후다 리그마탐 사레 제불룬 사레 나프탈리

개역개정,27 거기에는 그들을 주관하는 작은 베냐민과 유다의 고관과 그들의 무리와 스불론의 고관과 납달리의 고관이 있도다

새번역,27 맨 앞에서는 막둥이 베냐민이 대열을 이끌고, 그 뒤에는 유다 대표들이 무리를 이루었고, 그 뒤에는 스불론 대표들이 그 뒤에는 납달리 대표들이 따릅니다.

우리말성경,27 작은 지파 베냐민이 있어 그들을 이끄는구나. 유다의 왕자가 그 무리 가운데 있고 스불론과 납달리의 왕자들도 있구나.

가톨릭성경,27 거기에는 작지만 그들의 지배자인 벤야민이, 유다의 으뜸들이 무리 지어 있고 즈불룬의 으뜸들과 납탈리의 으뜸들이 있네.

영어NIV,27 There is the little tribe of Benjamin, leading them, there the great throng of Judah’s princes, and there the princes of Zebulun and of Naphtali.

영어NASB,27 There is Benjamin, the youngest, ruling them, The princes of Judah in their throng, The princes of Zebulun, the princes of Naphtali.

영어MSG,27 Look–little Benjamin’s out front and leading Princes of Judah in their royal robes, princes of Zebulon, princes of Naphtali.

영어NRSV,27 There is Benjamin, the least of them, in the lead, the princes of Judah in a body, the princes of Zebulun, the princes of Naphtali.

헬라어구약Septuagint,27 οτι ον συ επαταξας αυτοι κατεδιωξαν και επι το αλγος των τραυματιων σου προσεθηκαν

라틴어Vulgate,27 quoniam quem tu percussisti persecuti sunt et super dolorem vulnerum meorum addiderunt

히브리어구약BHS,27 שָׁם בִּנְיָמִן צָעִיר רֹדֵם שָׂרֵי יְהוּדָה רִגְמָתָם שָׂרֵי זְבֻלוּן שָׂרֵי נַפְתָּלִי׃

성 경: [시68:27]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 저희 주관자(主管者) 작은 베냐민 – ‘저희 주관자'(*, 로뎀)의 기본형인 ‘라다'(*)는 ‘통치하다’ 혹은 ‘지배하다’의 뜻이다. 베냐민 지파가 이렇게 지칭된 것은 모든 지파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었지만(삼상 9:21) (1)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배출하였으며(삼상 9:1-17), (2) 열 두 지파의 기업 분배 당시에 하나님의 성소가 있던 예루살렘도 그 땅에 있었다(수 18:28)는 점 등 때문일 것이다(Keil). 그러나 저자 다윗이 자신의 지파도 아니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이 속했던 지파를 첫머리에 놓은 것은, 다윗의 겸허하고도 관대한 성품을 잘 보여준다. 사실, 그 당시 이미 왕에 올라 있었던 다윗은 대단히 큰 세력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또한 자신이 속한 지파를 본절의 초두에 놓을 수도 있었다.

󰃨 유다의 방백과 그 무리 – ‘그 무리'(*, 리그마탐)의 어근인 ‘라감'(*)은 ‘죽이기 위해 돌을 던지다’ 혹은 ‘돌 무더기를 쌓다’의 뜻을 지니며 본 단어와 동족어인 ‘마르게마'(*)는 ‘돌 무더기’를 뜻한다(잠 26:8). 따라서 본 단어는 ‘돌 무더기의 돌처럼 많은 수’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본 문구는, ‘많은 수의 유다 방백’으로 번역될 수 있다.

󰃨 스불론…납달리 – 유다와 베냐민 이외에 이처럼 유독 두 지파만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두 지파가 애국적인 용감성으로 인하여 드보라에 의해서 크게 찬송을 받았던 때문일 것이다(Keil, 삿 4:6, 10;5:18). 물론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남쪽 끝에 위치한 지파인 반면,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는 북쪽끝에 위치한 지파였기 때문에 유독 다른 지파들을 제치고 여기서 언급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VanGemeren).

칩바 엘로헤카 우제카 웆자 엘로힘 주 파알타 라누

개역개정,28 네 하나님이 너의 힘을 명령하셨도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견고하게 하소서

새번역,28 ㉢하나님,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하나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발휘하셨던 그 능력을 다시 나타내 보이십시오. / ㉢많은 히브리어 사본과 칠십인역과 시리아어역을 따름. 대다수의 히브리어 사본에는 ‘너희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다’

우리말성경,28 주의 능력을 발휘하소서. 오 하나님이여, 전에 하셨던 것처럼 주의 힘을 보여 주소서.

가톨릭성경,28 하느님, 당신의 권능을 베푸소서. 하느님,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 보이소서, 우리 위하여 이루신 당신의 권능을.

영어NIV,28 Summon your power, O God; show us your strength, O God, as you have done before.

영어NASB,28 Your God has commanded your strength; Show Yourself strong, O God, who have acted on our behalf.

영어MSG,28 Parade your power, O God, the power, O God, that made us what we are.

영어NRSV,28 Summon your might, O God; show your strength, O God, as you have done for us before.

헬라어구약Septuagint,28 προσθες ανομιαν επι την ανομιαν αυτων και μη εισελθετωσαν εν δικαιοσυνη σου

라틴어Vulgate,28 adpone iniquitatem super iniquitatem eorum et non intrent in iustitia tua

히브리어구약BHS,28 צִוָּה אֱלֹהֶיךָ עֻזֶּךָ עוּזָּה אֱלֹהִים זוּ פָּעַלְתָּ לָּנוּ׃

성 경: [시68:28]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 네 하나님이 네 힘을 명하셨도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상을 지배할 능력과 그들에 대한 승리의 보장을 주셨음을 말한다(Keil).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방 민족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체험했었다.

󰃨 하나님이여…행하신 것을 견고히 하소서 –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승리케 하는 과정을 통해 당신의 크신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신 바 있다. 이러한 과거 역사에 근거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약속과(22, 23절) 구속자로서의 성품에 따라(5, 6;19, 20절), 시인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계속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메헤칼레카 알 예루솰람 레카 요빌루 멜라킴 솨이

개역개정,29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을 위하여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

새번역,29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성전을 보고, 뭇 왕이 주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우리말성경,29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성전을 위해 왕들이 주께 선물을 가져올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9 예루살렘에 있는 당신의 궁궐을 위하여 임금들이 당신께 조공을 가져오게 하소서.

영어NIV,29 Because of your temple at Jerusalem kings will bring you gifts.

영어NASB,29 Because of Your temple at Jerusalem Kings will bring gifts to You.

영어MSG,29 Your temple, High God, is Jerusalem; kings bring gifts to you.

영어NRSV,29 Because of your temple at Jerusalem kings bear gifts to you.

헬라어구약Septuagint,29 εξαλειφθητωσαν εκ βιβλου ζωντων και μετα δικαιων μη γραφητωσαν

라틴어Vulgate,29 deleantur de libro viventium et cum iustis non scribantur

히브리어구약BHS,29 מֵהֵיכָלֶךָ עַל־יְרוּשָׁלִָם לְךָ יֹובִילוּ מְלָכִים שָׁי׃

성 경: [시68:29]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이방의 왕들이 하나님께 경외심을 표하게 된다는 예언이다(76:11;사 18:7;60:3-7 ;66:20;학 2:7;슥 2:11-13;6:15;8:21, 22). 이러한 예언은 솔로몬 왕 시절에 스바 여왕에 의하여서도 성취된 바 있다(대하 9:1-12).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올것에 대한 예언이다.

󰃨 주의 전을 위하여(*, 메헤칼레카) – 카일(Keil)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주의 전으로부터’라고 보고 하나님께 대한 경배가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시작되어 결국 온 세계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위하여’로 번역된 히브리어 전치사 ‘몌'(*)를 ‘…때문에'(on behalf of, because of, KJV, RSV, NIV)로 보고, 이방 왕들이 예루살렘의 성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으로 믿고 경배를 드리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무난하겠다.

게아르 하야트 카네 아다트 압비림 베에겔레 암밈 미트랖페스 베랓체 카세프 빚자르 암밈 케라보트 예흐파추

개역개정,30 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은 조각을 발 아래에 밟으소서 그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

새번역,30 갈대 숲에 사는 사나운 짐승들과 뭇 나라의 황소 떼 속에 있는 송아지 떼를 꾸짖어 주십시오. 조공받기를 탐하는 무리를 짓밟으시고, 전쟁을 좋아하는 백성을 흩어 주십시오.

우리말성경,30 [창든 무리와 황소 떼와 사람들의 송아지들을 꾸짖으소서. 모두가 은 조각을 들고 굴복할 때까지 말입니다. 전쟁을 기뻐하는 사람들을 흩어 버리소서.

가톨릭성경,30 꾸짖으소서, 갈대밭의 맹수를 수소들의 무리를 백성들의 송아지들도 함께. 은덩이를 짓밟으시는 분께서 전쟁을 좋아하는 백성들을 흩어 버리시네.

영어NIV,30 Rebuke the beast among the reeds, the herd of bulls among the calves of the nations. Humbled, may it bring bars of silver. Scatter the nations who delight in war.

영어NASB,30 Rebuke the beasts in the reeds, The herd of bulls with the calves of the peoples, Trampling under foot the pieces of silver; He has scattered the peoples who delight in war.

영어MSG,30 Rebuke that old crocodile, Egypt, with her herd of wild bulls and calves, Rapacious in her lust for silver, crushing peoples, spoiling for a fight.

영어NRSV,30 Rebuke the wild animals that live among the reeds, the herd of bulls with the calves of the peoples. Trample under foot those who lust after tribute; scatter the peoples who delight in war.

헬라어구약Septuagint,30 πτωχος και αλγων ειμι εγω και η σωτηρια του προσωπου σου ο θεος αντελαβετο μου

라틴어Vulgate,30 ego sum pauper et dolens salus tua Deus suscepit me

히브리어구약BHS,30 גְּעַר חַיַּת קָנֶה עֲדַת אַבִּירִים בְּעֶגְלֵי עַמִּים מִתְרַפֵּס בְּרַצֵּי־כָסֶף בִּזַּר עַמִּים קְרָבֹות יֶחְפָּצוּ׃

성 경: [시68:30]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 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 ‘갈밭의 들짐승’은 원래 나일 강변의 갈대 숲에서 서식하는 하마나 악어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애굽 왕을 상징한다(74:13;사 36:6, 9;겔 29:3, Briggs, Dahood, Kraus). 그리고 ‘수소의 무리’는 당시 최강국이었던 애굽보다는 못한 나라들의 여러 왕들을 가리킨다. 또한 ‘송아지’는 애굽 왕을 포함한 열강의 지배 아래 있던 이방 민족들을 뜻한다.

󰃨 은 조각을 발 아래 밟으소서 – 여기에 대해서는 (1) 이방 왕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굴복하면서 그 표시로서 ‘은 조각’을 공물로 바치는 것을 뜻한다는 견해(KJV, NIV, Alexander, Keil, Rawlinson), (2) ‘은 조각’ 곧 전리품이나 공물을 탐하는 열방들을 멸하도록 간구하는 내용이라고 보는 견해(RSV), (3) 본 분사 구문이 ‘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수식한다고 보며, 그들이 왕궁의 마룻 바닥에 깔린 ‘은 조각’을 발로 밟음으로써 자신들의 교만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는 견해(NIV, Calvin, C.B. Moll) 등이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를 확정적으로 취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지만, 곧바로 뒤따르는 문구와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1)의 견해가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다.

󰃨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 – 여기서 ‘흩으셨도다'(*, 비자르)는 ‘바자르'(*)의 완료 시제이다. 그러나 다음 절이 미래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의 문장이라는 점에서 개역 성경과는 달리 ‘흩으소서’로 번역함이 더 낫다(NIV, Weiser). 이와 같은 기원(祈願)은 1절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전쟁을 즐기는’이라는 말은, 다윗의 원수들이 명분도 없이 무고하게 다윗에 대항하여 싸움과 소동을 일으켰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Calvin). 악인들은 까닭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치려 하지만, 결국 그들은 그러한 호전성(好戰性)으로 인하여 멸망을 받게 되는것이다.

예에타유 하쉬만님 민니 미츠라임 쿠쉬 타리츠 야다우 레로힘

개역개정,31 고관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새번역,31 이집트에서는 사절단이 온갖 예물을 가지고 오고,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서둘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 ㉣또는 ‘누비아’. 히, ‘구스’, 나일 강 상류지역

우리말성경,31 통치자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것이요, 에티오피아가 그 손을 하나님께 뻗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1 이집트에서 우두머리들이 오고 에티오피아는 서둘러 하느님께 선물을 가져오네.

영어NIV,31 Envoys will come from Egypt; Cush will submit herself to God.

영어NASB,31 Envoys will come out of Egypt; Ethiopia will quickly stretch out her hands to God.

영어MSG,31 Let Egyptian traders bring blue cloth and Cush come running to God, her hands outstretched.

영어NRSV,31 Let bronze be brought from Egypt; let Ethiopia hasten to stretch out its hands to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31 αινεσω το ονομα του θεου μετ’ ωδης μεγαλυνω αυτον εν αινεσει

라틴어Vulgate,31 laudabo nomen Dei cum cantico magnificabo eum in laude

히브리어구약BHS,31 יֶאֱתָיוּ חַשְׁמַנִּים מִנִּי מִצְרָיִם כּוּשׁ תָּרִיץ יָדָיו לֵאלֹהִים׃

성 경: [시68:31]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 ‘방백들'(*, 하쉬마님)은 ‘살지다’ 혹은 ‘부유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하슘'(*)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두드러진 위치에 있는 지도급 인사들을 가리킨다(Keil), ‘애굽에서 나오고’는 애굽 왕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하기 위해 방백들을 사신(使臣)으로 보내는 것을 뜻한다(사 43:3;45:14).

마므레코트 하아레츠 쉬루 레로힘 잠메루 아도나이 셀라

개역개정,32 땅의 왕국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셀라)

새번역,32 세상의 왕국들아,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주님께 노래하여라. (셀라)

우리말성경,32 오 땅에 사는 사람들아, 하나님께 노래하라. 오, 여호와를 찬송하라. (셀라)

가톨릭성경,32 세상의 나라들아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

영어NIV,32 Sing to God, O kingdoms of the earth, sing praise to the Lord, Selah

영어NASB,32 Sing to God, O kingdoms of the earth; Sing praises to the Lord, Selah.

영어MSG,32 Sing, O kings of the earth! Sing praises to the Lord!

영어NRSV,32 Sing to God, O kingdoms of the earth; sing praises to the Lord, Selah

헬라어구약Septuagint,32 και αρεσει τω θεω υπερ μοσχον νεον κερατα εκφεροντα και οπλας

라틴어Vulgate,32 et placebit Deo super vitulum novellum cornua producentem et ungulas

히브리어구약BHS,32 מַמְלְכֹות הָאָרֶץ שִׁירוּ לֵאלֹהִים זַמְּרוּ אֲדֹנָי סֶלָה׃

성 경: [시68:32]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31절의 결과이다. 다윗 자신의 예언적 소원대로 열방이 하나님께 굴복하면, 그들은 그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찬송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또한 이방 민족들도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로 인하여 기뻐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일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 만방으로 확장되어 감에 따라 본격적으로 성취되어 가고 있으며(고전 15:24, 25) 하나님께서 친정(親政)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계 21:3).

라로케브 비쉬메 쉐메 케뎀 헨 이텐 베콜로 콜 오즈

개역개정,33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새번역,33 하늘, 태고의 하늘을 병거 타고 다니시는 분을 찬송하여라. 그가 소리를 지르시니 힘찬 소리다.

우리말성경,33 옛적부터 하늘 위의 하늘을 타고 다니시는 분께 찬양하라. 보라. 주께서 그의 음성을 내보내시니 장엄한 음성이구나.

가톨릭성경,33 하늘을, 태초의 하늘을 타고 달리시는 분께. 보라, 그분께서 소리를 높이시니 우렁찬 소리라네.

영어NIV,33 to him who rides the ancient skies above, who thunders with mighty voice.

영어NASB,33 To Him who rides upon the highest heavens, which are from ancient times; Behold, He speaks forth with His voice, a mighty voice.

영어MSG,33 There he is: Sky-Rider, striding the ancient skies. Listen–he’s calling in thunder, rumbling, rolling thunder.

영어NRSV,33 O rider in the heavens, the ancient heavens; listen, he sends out his voice, his mighty voice.

헬라어구약Septuagint,33 ιδετωσαν πτωχοι και ευφρανθητωσαν εκζητησατε τον θεον και ζησεται η ψυχη υμων

라틴어Vulgate,33 videant pauperes et laetentur quaerite Deum et vivet anima vestra

히브리어구약BHS,33 לָרֹכֵב בִּשְׁמֵי שְׁמֵי־קֶדֶם הֵן יִתֵּן בְּקֹולֹו קֹול עֹז׃

성 경: [시68:33]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 – ‘옛 적'(*, 케뎀)은 하나님의 초시간적(招時間的) 위대성을 암시하며, ‘하늘들의 하늘’은 창조된 태초의 시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하늘들의 하늘'(*, 쉐메 쉐메)은 다만 ‘하늘의 하늘’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비록 여기의 ‘쉐메’가 복수형이기는 하지만 이 복수형은 그 수(數)의 많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 하늘의 광대(廣大)함을 표현하는 장엄 복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문구는, 하늘의 광대 무변함과 장중함, 그리고 지고(至高)함을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수사학적 표현이다(신 10:14;왕상 8:27). 이와 비슷한 것으로서, ‘종들의 종’, ‘왕 중의 왕’, ‘거룩함중의 거룩함’, ‘노래 중의 노래’ 등이 있다.

󰃨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 히브리 원문에는 ‘보라!’로 번역될 수 있는 ‘헨'(*)이라는 단어가 있다. 본문의 ‘소리’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증거하는 피조 세계의 웅장한 소리, 예컨대 뇌성 등을 가리키는 것 같다(29:3, 4, Anderson).

테누 오즈 레로힘 알 이스라엘 가아와토 웨우조 밧쉐하킴

개역개정,34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그의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의 능력이 구름 속에 있도다

새번역,34 너희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여라. 그의 위엄은 이스라엘을 덮고, 그의 권세는 구름 위에 있다.

우리말성경,34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라. 그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 능력은 구름 속에 있다.

가톨릭성경,34 하느님께 권능을 드려라. 이스라엘 위에는 그분의 존엄이 있고 그분의 권능은 구름 위에 있네.

영어NIV,34 Proclaim the power of God, whose majesty is over Israel, whose power is in the skies.

영어NASB,34 Ascribe strength to God; His majesty is over Israel, And His strength is in the skies.

영어MSG,34 Call out “Bravo!” to God, the High God of Israel. His splendor and strength rise huge as thunderheads.

영어NRSV,34 Ascribe power to God, whose majesty is over Israel; and whose power is in the skies.

헬라어구약Septuagint,34 οτι εισηκουσεν των πενητων ο κυριος και τους πεπεδημενους αυτου ουκ εξουδενωσεν

라틴어Vulgate,34 quoniam exaudivit pauperes Dominus et vinctos suos non despexit

히브리어구약BHS,34 תְּנוּ עֹז לֵאלֹהִים עַל־יִשְׂרָאֵל גַּאֲוָתֹו וְעֻזֹּו בַּשְּׁחָקִים׃

성 경: [시68:34]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 이것은, 33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권능’이 마땅히 그분의 것임을 인정하라는 뜻이다(29:1).

󰃨 그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 능력이 하늘에 있도다 – ‘그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뜻이다(Keil). 그리고 ‘그 능력이 하늘에 있도다’는, 하나님의 통치가 우주적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본 문구는 하나님의 내재적(內在的) 속성뿐만 아니라 초월적 속성을 잘 드러내 준다.

노라 엘로힘 미미케다쉐카 엘 이스라엘 후 노텐 오즈 웨타아추모트 라암 바루크 엘로힘

개역개정,35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새번역,35 성소에 계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시다. 그는 당신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우리말성경,35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성소에서 나오시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능력과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가톨릭성경,35 하느님께서는 당신 성소에서 경외로우시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영어NIV,35 You are awesome, O God, in your sanctuary; the God of Israel gives power and strength to his people. Praise be to God!

영어NASB,35 O God, You are awesome from Your sanctuary. The God of Israel Himself gives strength and power to the people. Blessed be God!

영어MSG,35 A terrible beauty, O God, streams from your sanctuary. It’s Israel’s strong God! He gives power and might to his people! O you, his people–bless God!

영어NRSV,35 Awesome is God in his sanctuary, the God of Israel; he gives power and strength to his people. Blessed be God!

헬라어구약Septuagint,35 αινεσατωσαν αυτον οι ουρανοι και η γη θαλασσα και παντα τα ερποντα εν αυτοις

라틴어Vulgate,35 laudent illum caeli et terra mare et omnia reptilia in eis

히브리어구약BHS,35 נֹורָא אֱלֹהִים מִמִּקְדָּשֶׁיךָ אֵל יִשְׂרָאֵל הוּא נֹתֵן עֹז וְתַעֲצֻמֹות לָעָם בָּרוּךְ אֱלֹהִים׃

성 경: [시68:35]

주제1: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주제2: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예언적 선포]

󰃨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 문자적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성소들에서 두렵습니다’의 뜻이다. 본절은 하나님이 이렇듯 엄위하신 분이시면서(47:2 ;65:5;출 15:11;신 10:17:계 15:3, 4). 또한 당신의 백성 가운데 함께하시는 분이심을 시사한다(VanGemeren). 여기서 ‘성소’를 복수로 말하고 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1) 여기의 ‘성소’가 하나님의 임재 장소인 하늘과 땅(34절)을 모두 가리키기 때문, (2) ‘성소’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Calvin), 혹은 (3) ‘성소’가 거룩의 요소나 특징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Keil)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장엄 복수로 이해하여 다만 성소의 거룩성을 보다 강조하며, 그리하여 그곳이 하나님의 위엄이 충만한 곳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복수형으로 표현되었다고 봄이 무난하겠다(Anderson).

󰃨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 여기서는 찬송을 받으실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이 ‘엘로힘’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19절이 찬송받으실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을 ‘주'(*, 아도나이)로 말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아도나이’라는 호칭은,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만 관련된 한정적인 것이지만, ‘엘로힘’은 전우주적 혹은 보편적인 이름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기서 본 시편 저자는 ‘엘로힘’이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결국 만인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기를 염원할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로 만민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을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헬라어구약Septuagint,36 οτι ο θεος σωσει την σιων και οικοδομηθησονται αι πολεις της ιουδαιας και κατοικησουσιν εκει και κληρονομησουσιν αυτην

라틴어Vulgate,36 quoniam Deus salvam faciet Sion et aedificabuntur civitates Iudaeae et inhabitabunt ibi et hereditate adquirent eam

헬라어구약Septuagint,37 και το σπερμα των δουλων αυτου καθεξουσιν αυτην και οι αγαπωντες το ονομα αυτου κατασκηνωσουσιν εν αυτη

라틴어Vulgate,37 et semen servorum eius possidebunt eam et qui diligunt nomen eius habitabunt in 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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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수) “시편 68:1-18” / 작성: 정한조

본문 시편 68:1-18

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상선벌악(賞善罰惡)을 기원함(1-6절)

오늘 본문의 표제어에는 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고백한 시가 노래로 만들어지고, 그것을 인도자(성가대 지휘자)를 따라서 불렀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공통의 고백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이 기록된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음과 승리를 확신하며 드리는 찬양으로 보아서, 사무엘하 10장에 나오는 암몬과 아람 연합군과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윗왕은 암몬왕 나하스(Nahash)가 죽었을 때에 조문단을 보냈습니다. 나하스왕이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었기에(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음), 다윗은 그의 죽음에 조문단을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하스의 아들 하눈왕과 암몬의 관리들은 그 조문을 의심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조문이 아니라 정탐하러 온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눈왕은 조문을 온 다윗의 신하들이 심한 수치심을 느끼도록, 그들의 수염 절반을 강제로 깎고, 엉덩이가 보이도록 옷을 자르고서 돌려보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다윗왕은 심하게 수치스러워하는 조문단을 배려하여, 수염이 다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렀다가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암몬 자손들은 그것이 다윗에게 미움이 된 줄을 알고, 아람 사람 20,000명, 마아가 왕의 군대 1,000명, 돕 사람 12,000명 등 모두 33,000명의 용병을 고용했습니다. 조문 사절단에게 망신을 준 대가는 너무도 컸습니다. 그 정도의 군인들을 지금 용병으로 고용하려고 하면, 최소한 몇 조원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암몬은 용병을 고용하여 위용을 갖추는 듯했지만, 그 연합군들은 다윗왕과 다윗왕의 신하인 요압장군에 의해서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시편이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에 관한 내용과 사사기에 나오는 드보라에 관한 내용 등을 인용하여서, 전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여 주심에 대한 것은 또렷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일어나시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일어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형제가 있는데, 초등학생 동생이 동네에 사는 또래의 아이들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동생이 많이 밀리는 분위기입니다. 그 때에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고등학생 형을 큰 소리로 부릅니다. “형 일어나!”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앉고 일어서심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일어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원수들이 흩어지고, 주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다윗은 ‘원수들’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즉 다윗이 지금 싸우는 싸움은 욕망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싸움, 영적인 싸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는 어느 정도의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2) 연기가 불려 가듯이 그들을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 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원수들은 ‘연기’와 같고 ‘밀(양초)’와 같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 불을 피울 때를 기억해 보면, 초반에는 연기가 많이 납니다. 그러다가 연기가 눈으로 들어가면 눈물이 찔끔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매운 연기가 자욱하다고 해도 바람이 불고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을 때에 그 속에 양초를 던져 넣으면, 양초가 아무리 큰 것이라고 할지라도, 처음에는 양초가 보여도 이내 녹아 사라지고 맙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이 그러하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 “훅!”하고 바람만 한 번 부시면,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다려주시는 분이십니다.

(3-4)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

의인(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입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연기처럼, 밀(양초)처럼 사라지지만, 의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뛰어 놉니다.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렇게 말합니다.

(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당시에 고아와 과부는 이방인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아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부모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아의 아버지라고 하십니다. 또한 당시는 가부장제 사회라 남편이 아내의 보호자였습니다. 하지만 과부는 자신을 보호해 줄 남편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크고 작은 일에 판결자(변호인)가 되어주셔서 억울함을 해결해 주신다고 합니다.

(6)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고독(孤獨)’의 문자적인 뜻은 ‘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입니다. 대가족으로 살던 시대에 부모가 없고, 자식이 없는 것은 정말 큰 외로움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독한 사람, 외로운 사람에게 주신 최고의 처방전은 ‘가족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고, 가정과 가족의 회복은 정말 간절한 소원입니다. 또 현대는 1인 가구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교회의 구역과 같은 공동체가 가족과 같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무엇에 갇힌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꺼내 주셨듯이, 해방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좋지 못한 것에 매여 있다면 거기서 나오는 방법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거부하고, 완악함을 고집한다면,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 풍성한 삶은 불가능합니다. 이내 인생의 황량함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과거의 은혜를 돌아봄(7-18절)

1-6절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향해 사는 의인은 기뻐하고, 하나님을 외면하는 악인은 황량함과 망할 수밖에 없음을 노래했다면, 7-18절은 과거에, 특히 광야를 지났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베풀어주셨던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7-10)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서 행진하셨을 때에(셀라)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주의 회중을 그 가운데에 살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시면서, 그들만 내보내시거나 그들을 앞서 가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서 가셨다고 하십니다. 민수기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먼저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셨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인도하셨다고 하십니다(민 1:33).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때를 맞추어서 내려주심으로 농사도 짓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흡족한’의 뜻은 ‘풍성한, 아낌없는, 자발적으로’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길에 먼저 가셔서 준비해 주신 하나님이셨고, 늦은 비와 이른 비의 은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말라 비틀어졌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승리하게 하심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11-12)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들은 큰 무리라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있던 여자들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기능올림픽에서 우승하거나, 운동선수가 큰 경기에서 이기거나 우승했을 때, 카퍼레이드를 벌였습니다. 성경에서도 큰 일이 이루어졌거나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는 여인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출애굽에서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여인들과 기쁨으로 찬양했고, 다윗이 블레셋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여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대에 전쟁에서 열심히 싸웠던 것은 전리품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굉장히 큰 승리를 하게 하셔서, 군인들뿐만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여인들도 전리품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15-17)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바산의 산은 높은 산이로다 너희 높은 산들아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냐 진실로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원히 계시리로다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바산’을 가리켜 ‘하나님의 산’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거룩한 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높은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산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산맥을 가리키는데, 북쪽에 헐몬산(헤르몬산)이 있습니다. 그 높이가 2814m입니다. 2744m의 백두산보다 70m정도 높습니다. 헐몬산이 그 지역에서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바산이 ‘하나님이 계시는 산’인 ‘시온산’에게 시기심(적개심)을 품고서 본다고 합니다. 시온산은 높이가 765m로 바산에 비하면 언덕과 같습니다. 하지만 바산이 아니라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이 있는 히말라야 산맥도 넘볼 수 없는 것은 그 언덕과 같은 낮은 산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인해서 시온산은 영원히 높은 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낮아보여도,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이 아무리 높아보여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결코 낮지 않은 인생, 가치 있는 인생이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리 높아보여도 그 인생은 결코 높지 않습니다. 근본이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근본 없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가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면, 우리의 인생이 낮아보여도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의미 있고 존귀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시는 연기와 같고, 불에 녹아사라지는 밀(양초)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가정에, 일터와 학교에, 삶의 자리에 심으심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살아가는 자녀로,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고 사는 백성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의인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이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높은 바산과 같이 않고, 언덕과 같은 시온산과 같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화면으로 살아가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우리의 삶을 지켜보시며, 일어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평생 동안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기쁨의 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께서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과부의 재판장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독하고 아무리 외로워도 하나님으로 인해서 만족할 수 있고, 또 아무리 억울한 일을 겪게 된다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해서 소망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라옵나니, 우리의 가정과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가정, 우리 사회의 가정들이 더 건강하게 하여 주시고, 가정이 가정답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요즘은 1인 가구가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 하나님이 계심이 소망이 되게 하시고, 교회 공동체가 가족의 역할을 잘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때때로 우리의 삶이 바산과 같이 높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게 하시고, 시온산과 같이 언덕처럼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힘과 가치와 소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자녀로, 하나님의 통로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화면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바람 앞의 연기와 같고, 불 앞의 밀(초)와 같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의 삶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2.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어머니)가 되시며, 과부의 재판장이 되신다고 하십니다. 당신의 삶이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위로와 힘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3. 사람들은 바산과 같이 높은 산이 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고 시온산에 계신다고 하십니다. 당신의 삶은 바산과 시온산 중 무엇을 더 추구하고 계십니까?

4.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 주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하나님께서 계시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시편 68편

시편 제 68편 =====68:1 본시는 다윗이 전쟁에서의 승리, 혹은 위기 상황으로부터의 구원을 체험한 후 이러 한 역사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이다. 저작 배경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본 시편의 강해를 참조하라.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앞세워 진군하기 시작하던 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와 동일하다(민 10:35). 따라서 본 기도도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와 함께 암몬 족속과 싸우기 위하여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 드 려졌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다윗은 그때 이러한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이 그 들을 대신하여 원수들과 싸워 주시기를 소원하였다. 특히 다윗은 군사적인 행동 혹은 중대한 행동을 취하기에 앞선 마음의 결단(삼하 18:32;렘 49:14)을 촉구하는 표현인 ‘일어나사’를 사용하여, 원수들을 진멸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적 개입이 속히 있어야 함을 기원한다. 그러나 이 단어를, 소원을 아뢰는 단순한 기도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시편의 대개의 기도 속에는 그 기도들이 이루어질수밖에 없다는 저자들의 강한 확신이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편, ‘원수'(* , 오예바이우)는 문자 적으로 ‘그분의 원수들’이다. 사실 이 원수는 이스라엘 벡성들을 대적하던 암몬족속으 로 추정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곧 하나님의 원수들이라는 사실은 우리 성도들에게 대단한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이 핍박을 받 을 때 마치 당신이 핍박받으시는 것으로 간주하시어(행 9:4) 그들에게 중한 보웅을 내 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68:2 연기가 몰려감같이 저희를 몰아내소서 – ‘연기’는 바람에 의해서 신속히, 그리고 용이하게 이리저리 흩어지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37:20;102:3;호 13:3 참 조). 따라서 본문은 악한 원수들에 대한 징벌을 재촉하는 기도이다. 불 앞에서 밀이 녹음같이 – 상반절과 동일한 뜻을 나타낸다. 여기서 ‘밀'(* , 도나그)은 그 어원이 불확실한 단어로서 양초의 원료인 파라핀을 가리키는 듯하 다. 이것은 섭씨 50도가 용해점(溶解點)인 만큼 불에 조금만 가까이 대기만 해도 즉시 녹아내리며 심지어는 웬만큼 뜨거운 물에 집어 넣어도 완전히 녹아 없어진다(97:5;미 1:4 참조). 이처럼 그 원수들은 인간적 안목으로 보면 막강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권 능 앞에서는 지극히 연약하고 하찮은 존재인 것이다.

=====68:3 의인들의 이 같은 반응은 악인들이 멸망당했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 아니다. 다만 의인들은, (1) 자신들이 악인의 위험에서 구원받았으며, (2)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벌하시고 선한 자들을 구원하심으로써 공의를 밝히 드러내셨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 는 것이다. 사실, 크나큰 환난이나 위경에 직면해 있는 동안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악 인들의 준동(蠢動)을 모른체하신다고 생각하여 낙심에 이를 뻔했을 것이다(73:2, 3). 그러나 드디어 악인들이 징벌당하자 의인들은 그분의 살아계심과 공의로우심을 확인하 면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52:6;58:10;64:7-10).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 ‘뛰놀며'(* , 알라츠)는 원래 ‘기뻐 날뛰다’의 뜻으 로서 대개 승리로 인한 기쁨 혹은 그 기쁨의 외부적 표출 행위를 가리킨다(25:2). 그 리고 ‘앞에서'(* , 리프네)는 ‘얼굴을 향하여’, ‘얼굴 쪽으로’의 뜻으로서, ‘얼굴로부터’라는 의미인 2절의 ‘앞에서'(* , 미프네)와는 반대의 뜻이다.

=====68:4 의인들의 이 같은 반응은 악인들이 멸망당했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 아니다. 다만 의인들은, (1) 자신들이 악인의 위험에서 구원받았으며, (2)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벌하시고 선한 자들을 구원하심으로써 공의를 밝히 드러내셨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 는 것이다. 사실, 크나큰 환난이나 위경에 직면해 있는 동안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악 인들의 준동(蠢動)을 모른체하신다고 생각하여 낙심에 이를 뻔했을 것이다(73:2, 3). 그러나 드디어 악인들이 징벌당하자 의인들은 그분의 살아계심과 공의로우심을 확인하 면서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52:6;58:10;64:7-10).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 ‘뛰놀며'(* , 알라츠)는 원래 ‘기뻐 날뛰다’의 뜻으 로서 대개 승리로 인한 기쁨 혹은 그 기쁨의 외부적 표출 행위를 가리킨다(25:2). 그 리고 ‘앞에서'(* , 리프네)는 ‘얼굴을 향하여’, ‘얼굴 쪽으로’의 뜻으로서, ‘얼굴로부터’라는 의미인 2절의 ‘앞에서'(* , 미프네)와는 반대의 뜻이다.

=====68:4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 – 여기서 ‘광야'(* , 아라보트)는 암몬 족속의 용병(傭兵)이었던 아람 사람들이 진을 쳤던 모압의 초원 지대를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 다(삼하 10:8, Keil).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께서 마치 마차나 병거를 타고서 당신의 백성들 대신 그 원수들과 싸우기 위하여 백성들보다 앞서 나아가시는 것을 연상시킨다 (Keil). 그러나 ‘아라보트’를 ‘하늘’혹은 ‘구름’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KJV, NIV, RSV). 특히 33절과의 병행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Kidner). 하나 님께서는 하늘 병거를 타시고 당신의 백성에게는 보호와 축복을, 그리고 그 대적들에 게는 징벌과 저주를 내리기 위해 두루 다니시는 분으로 묘사된 적이 종종 있다 (18:10;104:3).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 ‘여호와’의 히브리어 ‘야'(* )에 대해서는 (1) ‘여호와’ (* )의 축약형, (2) ‘여호와’의 파생형, (3) ‘여호와’의 고어형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1)의 견해가 그중 제일 무난한 것 같다. 그렇다면 본절의 ‘여호와’도 ‘스스로 계신 자’,혹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을 나타낸다(출 3:14). 그러므로 이 는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에 의해서 조작된 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우월 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분만이 인간의 궁극적 신뢰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 다. 특히 여기에 사용된 축약형 ‘야'(* )는 이곳 외에 18절과, 하나님의 크신 구원 적 권능에 대해서 언급하는 곳(출 15:2) 및 하나님께서만 신뢰와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함을 언급하는 곳(사 26:4)에 나온다. 한편, 원문상에는 ‘여호와’ 앞에 전치사 ‘베'(* )가 붙어 있는데, 이는 강조를 위한 불변화사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문은 ‘그의 이름은 여호와 외에 그 어떤것도 아니다’는 의미로도 번역될 수 있겠다 (Anderson).

=====68:5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 하나님은 악행자들을 바람이 연기를 흩 뜨리듯이 진멸시키시지만(2절) 억울하게 압제 당하는 사죄적 약자들은 보호하신다. 우 가릿 문서(예컨대, ‘케레트의 전설’이나 ‘아카트의 이야기’ 등)에도 과부와 고아를 보 호하는 것은 이상적인 왕에게 부여된 특별한 임무로 나와 있다(Anderson). 성경 역시 고아와 과부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의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다(10:14;신 10:18;사 1:17;약 1:27등). 이는 사람의 외모를 따라 부한 자와 높은 자를 더 중시하고 비천한 자들은 멸시하는 사람들의 일반적 경향과 너무나도 대조된다.

=====68:6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 – ‘고독한 자'(* , 예히딤)에 대 해서는 신부를 맞을 지참금이 없어 결혼하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Albright). 그러나 그보다는 어떤 이유로 인해 자신을 의탁할 가족이나 친족도 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무난하다(Anderson, Mowinckel). 아마 이들 역시 고아나 과부처럼 공동체내에서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수금된 자를 이끌어 내사 형통케 하시느니라 – ‘수금된자’는 감옥 생활(창 39:20) 및 포로 생활을 하는자(69:33;사 14:17;애 3:34;슥 9:11)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 이다. 어쨌든 본문은 이들이 부자유스러운 상황속에서 고역과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으 나 하나님의 보호로 말미암아 예전의 자유와 번영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음을 의미한 다. 특히 ‘형통케 하시느니라'(* , 바코솨로트)는 ‘정당하고 적절하다’ 혹은 ‘번영하다’를 뜻하는 동사 ‘카쉐르'(* )에서 파생된 명사 ‘코솨라'(* )와 ‘함께’로 번역될 수 있는 전치사 ‘베'(* )가 합쳐진 단어이다.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 ‘거역하는 자'(* , 소라림)는 ‘완고하다’ 혹은 ‘반항적이다’를 뜻하는 동사 ‘사라르'(* )에서 파생되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제 고집대로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사 65:2;렘 5:23;슥 7:11). 그리고 ‘메마른땅'(* , 체히하)은 ‘눈부시다’를 뜻하는동사 ‘차하흐’ (* )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지극히 건조한 지역을 가리 킨다. 이는 결국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는 하나님께 불순종하 는 완고한 사람은 사막과 같은 불모지(不毛地)에서 죽음을 당한다는 의미이다(민 14:29-35).

=====68:7 시인은 여기서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신 일을 회고하고 있다. 앞서 나가사 –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던 언약궤(레 16:2)가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 스라엘 백성의 선두에 위치했던 사실(민 10:33)을 상기시킨다. 물론 하나님께서 실제 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서 나아가시면서 그들을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고(출 13:21, 22) 또한 원수들을 물리치신 사실도 아울러 연관된다. 요컨대 하나님은 십자가 군병들인 당신의 백성들의 앞에 서서 우리를 대신하여 용감하게 싸우며 나아가시는 일 선 사령관이시므로(수 5:13-15),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믿음의 행진을 담대히 계속할수 있다(딤후 4:7). 광야(* , 예쉬몬). 지극히 부적절한 자연적 조건으로 인하여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곳을 가리킨다(신 32:10). 기자는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보고 있던 ‘광야’의 황량함과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후의 축복된 상태를 날카롭게 대조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준다(Keil).

=====68:8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떨어지며 –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해 시 내 산에 임재하셨을 때에 나타났던 현상을 묘사하고 있다(출 19:16-25). 그런데 ‘하늘 이…떨어지며’는 어두운 천둥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시내산을 덮은 것을 가리킨다 (신 5:22). 저 시내 산도…진동 하였나이다 – ‘저 시내산’은 원어상 (1) 개역 성경의 번역처 럼 ‘저 시내산’ (2) ‘시내산 자체'(even Sinai itself, KJV), (3) ‘시내산의 그분’ (the One of Sinai, NIV)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중 (3)의 번역은 ‘저 시내 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이해한 것이며 ‘시내 산의 주님’이라는 의 미로 파악한 것이다(Albright). 이스라엘의 하나님 – ‘시내 산의 하나님’이 계시 수여와 주로 연관된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관계를 맺으셨던 사실을 상기시키는 이 름이다(VanGemeren).

=====68:9 하나님이여 흡족한 비를 보내사 – 이에 대해서는 (1)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 들어 가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사를 위한 비를 풍족히 내리셨던 사실을 가리킨다는 해석(Calvin, Keil, 박윤선), (2)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던 일을 가리킨다는 해석(Rawlinson, C.B. Moll) 등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러나 첫째, 11 절 내용이 주로 출애굽 직후 광야에서 있었던 일이므로 본절도 광야에서 받은 축복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자연스러우며, 둘째, 출애굽기 등은 만나를 ‘비’로 말하고 있다 (78:23, 24;출 16:4)는 점을 미루어 볼 때, (2)의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향편, ‘흡족한'(* , 네다보트)의 어근인 ‘나다브'(* )는 ‘자원하다’ 혹은 ‘즐 거이 드리다'(출 35:21 대상 29:9)의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이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근거한 아낌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스라 엘 백성은 하나님이 아낌없이 내려주신 만나를 먹고 배부르기에 충분하였다(출 16:12). 주의 산업이 곤핍(困乏)할 때에 견고케 하셨고 – ‘주의 산업'(* , 나할라 트카)은 ‘나누다’나 ‘차지하다’ 혹은 ‘상속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나할'(* )에 서 파생된 명사로서 여기서는 ‘주님에 의해서 차지된 백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된 백성 곧 이살라엘을 가리킨다(신 7:6).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 을 하나님의 ‘산업’혹은 ‘기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쉽게 발견 된다(출 34:9;신 4:20;9:26, 29;왕하 21;14). 한편, ‘곤핍할때에'(* , 닐아)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회로한 상태를 가리키는 동사 ‘라아'(* )의 수동형으로 서, 주변 여건 혹은 환경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하게 지쳐있는 상태를 가리킨다(잠 26:15;사 16:12).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먼길을 걸었고 또한 먹지 못하여 극도로 지친 상태에 있었다. 또한 ‘견고케 하셨고'(* , 아타 코난타)는 문자적으로 ‘당신께서 견고케 하셨고’이다. 이처럼 본 문구에는, 동사에 이미 2인칭 단수 주어 어미(語尾)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별도로 2인칭 단수 인 칭대명사 ‘아타’가 있다. 이것은 ‘견고케 하신’ 행동의 행위 주체자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로 이해하면 된다. 한편, ‘견고케 하셨고’의 기본형인 ‘쿤'(* )은 ‘준비하다’ 혹은 ‘세우다’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튼튼히하고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신 일을 가리킨다(Keil, NIV).

=====68:10 주의 회중(會衆)으로 그 가운데 거하게 하셨나이다 – ‘주의 회중'(* , 하야 트카)의 ‘회중'(* , 하야)은 ‘살다’ 혹은 ‘강하게 되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 ‘하야이'(*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살아있는 것’, ‘사람들’ 혹은 ‘군대’를 뜻한 다(Davidson). 여기서는 삼하 23:11에서 처럼 ‘군대’보다는, 차라리 보다 일반적인 의 미인 ‘무리’, ‘집단’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Keil). 한편, ‘그 가운데'(* , 바) 는 문자적으로 ‘그녀의 가운데’의 뜻이며, ‘그녀’가 지칭하는 바에 대해서는 가나안 땅과 광야 중 하나를 뜻한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만일 ‘주의 산업'(9 절)이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면, 여기의 ‘그녀’는 틀림없이 ‘가나안 땅’일 것이다. 하 지만 9절 주석에서 이미 ‘주의 산업’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고 ‘가나안 땅’이 아님 을 확인했었다. 따라서 본문의 ‘그 가운데’는 ‘광야 가운데’를 뜻하는 것 같다(7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곤핍하였던 곳(9절)이다. 그리고 ‘거하게 하셨나이다'(* , 야쉬부)는 ‘쉬다’ 혹은 ‘거주하다’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본 문구는 걷기만 하고 먹지 못하여 곤핍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양식을 공급받은 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쉬다’의 뜻을 갖는다고 볼 필요가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록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만 하면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마 11:28-30).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 ‘가난한 자'(* , 아니)는 ‘괴롭히다’, ‘자기를 낮추다’ 혹은 ‘억지로…을 시키다’의 뜻이 있는 동사 ‘아나'(*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1) ‘압제당하는 자'(욥 36:6;사 49:13), (2) 개역 성경 의 번역처럼 ‘가난한 자'(신 24:14, 15), (3) ‘겸손한 자'(잠 16:19), (4) ‘피곤한 자'(습 3:12)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곤핍’했었음을 말 하는 9절에 근거해 볼 때, (4)의 뜻이 가장 합당한 듯하다. 한편 ‘준비하셨나이다'(* , 타킨)는 9절 후미의 ‘견고케 하셨고’와 어근이 동일하다. 본시의 기자가 이 같이 동일한 동사를 사용한 까닭은 동일한 내용을 언어 유희(wordplay)적 표현으로써 강조하기 위함이다.

=====68:11 주제서 말씀을 주시니 – 여기서 ‘말씀'(* , 오메르)은 (1) 하나님께서 이스라 엘에게 주신 필승의 약속(C.B. Moll), (2) 이스라엘로 하여금 승리의 노래를 부르도록 한 하나님의 명령(Calvin), (3) 전황(戰況)을 급변케 한 하나님의 창조적 말씀(Keil, Rawlinson) 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첫째, 7절에서부터 10절까지가 하나님이 광 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극적으로 은헤를 베푸신 것에 대한 언급이며, 둘째, 다음 문구와 같은 행동(출 15:20)을 실제적으로 촉발시켰던 것(출 15:19)은 곧 하나님의 창 조적 말씀이었다(출 14:26)는 점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위의 세 견해 중 (3)의 것 이 보다 합당하다.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가 큰 무리라 – 직접적으로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비롯한 많은 여자들이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 사실과 관계 있다(출 15:20).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에 여인들이 노래하 며 춤추고 뛰놀았던 사실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삼상 18:6, 7). 뿐만 아니라, 바락 과 드보라가 가나안왕을 이겼을 때, 드보라가 하나님을 찬양한 것도 결코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삿 5:1).

=====68:12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 가나안의 여러 왕들이 이스라엘에 의해서 패배한 사실들을 가리킨다(수 8:19-22;10:19, 20;11:8, 9;삿 3:10, 29). 그런데 ‘여러 군대의 왕들’은 이들을 완전 패퇴시키신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 내기 위한 표현이다. 즉, 다윗은 하나님에 의해 패배당한 왕들의 강성함을 이같이 표 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강력히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가나안 왕 들은 철병거(수 11:4) 등의 우수한 병기와 훌륭한 요새(수 11:2)를 갖고 있었기 때문 에, 이스라엘 백성의 자력(自力)만으로는 그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는 그 강력한 왕들을 이기셨고, 이에 따라 당신의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셨던 것이 다.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 이것은 (1) 여자들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 미암아 능히 적병을 쫓아내고 전리품을 획득했다는 견해(박윤선), (2) 여자들도 남자 들이 전쟁 중에 획득하여 집으로 가져온 전리품을 나누어 가졌다는 견해(Valvin, Keil, Kidner, Weiser)등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어떠한 경 우에도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경우는 없었다는 점에서 볼 때, (1)의 경우는 타당치 못하다. 또한, 가나안 왕인 시스라가 노략물을 취하여 집에 있는 자신 의 어미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었다는 사실도(삿 5:30) (2)의 견해를 지지하기에 충분 하다. 결국 본문은 집에 있는 여인들에게까지 분배 기회가 주어질 정도로 전리품이 많 았음을 말해준다.

=====68:13 너희가 양 우리에 누울 때에는 – 이는 목자들이 유유 자적(悠悠自適)하게 평안히 쉬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삿 5:16).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 벡성들이 주변 세력 들의 위협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서 평안히 정착하는 때를 가리킨다. 그러나 칼빈은 ‘양 우리'(* , 쉐파타임)를 ‘항아리’로 해석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치 지저분한 항아리에 누운 듯한 비참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때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 러나 ‘쉐파타임’은 ‘놓다’ 혹은 ‘두다’의 뜻을 갖는 동사 ‘솨파트'(* )에서 파생 된 단어로서, ‘항아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항상 가축을 가두기 위한 울 타리를 의미한다(창 49:14;삿 5:16). 그 날개를 은으로…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 – 이것은, 날으는 비둘기가 햇빛 을 받아 어떤 때는 은빛을, 또 어떤 때는 금빛을 띠는 모습을 연상시키며(Keil), 이스 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크신 축복에 따라 대단한 번영을 이루게 될 것을 시사한다. 사 실, 이스라엘은 특히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는 중근동에서 가장 번성한 나라가 됐었다.

=====68:14 전능하신 자(* , 솨다이) – 이것은 ‘공격하다’ 혹은 ‘파괴시키다’를 뜻하는 동사 ‘솨다드'(*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하나님이 자연 법칙을 초월하여 자신의 약속을 성취시키실만큼의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강조하는 명칭이다(창 17:1;28:3). 반면에 악인들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악한 행위대로 보응하시 는 측면을 강조하기도 한다(욥 34:12;사 13:6;욜 1:15). 열왕을 그 중에서 흩으실때에는 – 여기서 ‘열왕'(* , 멜라킴)은 문자적으 로 ‘왕들’의 뜻이며,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착을 적극 방해하던 가 나안 족속의 여러 왕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흩으실때에는'(* , 베파레스)의 기본형 ‘파라스'(* )는 ‘퍼지다’ 혹은 ‘펼치다’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열왕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것을 가리킨다(겔 17:21). 사실 가나안 왕들은 연합 전선을 펴서 이스라옐 백성을 대적했었다(수 10:1-5). 그러 나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징벌하심으로, 그들은 모두 패하여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수 10:10, 11). 살몬에 눈이 날림 같도다 – 문자적으로는 ‘살몬에 눈이 날렸도다’이다. 여기에 대 한 해석으로는 (1)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에게 대패하여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에 대한 묘사라는 견해(Keil, Cheyne), (2) 죄악된 가나안 족속들에 의해서 더렵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원수들의 멸망으로 정결하게 된 영적모습에 대한 묘사라는 견해 (Calvin) 등이 있다. 이중에서 (1)의 견해가 보다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런데 (1)의 견해도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그중 하나는 본 문구가, 가나안 족속의 도망치는 모습 이 마치 바람에 눈이 날려서 흩어지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는 해석이다(Cheyne). 또 하 나는 가나안 족속이 도망치면서 남겨 놓은 전리품들과 그들의 썩은 해골이 눈같이 산 을 덮었음을 가리킨다는 해석이다(Keil). 그러나 이 두 해석 중에서, 첫 번째 해석이 바로 앞 문구의 ‘흩으실’이라는 동사의 뜻과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더 타당성이 있다. 한편, ‘살몬’은 ‘짙은 어두움’의 뜻을 지니며, 실제로 그 이름의 의미처럼 검은색을 띤 산이다.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했고(삿 9:48), 눈으로 덮여있는 때가 많다고 한다.

=====68:15 바산의 산은 하나님의 산임이여 – 본 문구는 동의적(同意的) 대구인 다음 문구와 같은 뜻을 갖는다. 따라서 여기의 ‘하나님의 산임이여’는 ‘바산의 산’이 하나님의 임 재 장소임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산의 산’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창조될 수밖에 없다고 할 만큼 특별히 그 위용(威容)을 자랑하는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36:6). 한편, ‘바산의 산’은 요단 동편에 있으며 현무암이나 용암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지역 주 위에는 가파르고 탑과 같이 생긴 여러 봉우리들이 중간 중간에 우뚝 우뚝 서 있다 (Keil). 이와 반대로 요단 서편의 산들은 대개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낮은 산들이다.

=====68:16 너희 높은 산들 – 앞절에 나오는 ‘바산의 산’이다. 하나님이 거하시려 하는 산을 시기하여 보느뇨 – ‘시기하여 보느뇨'(* , 테라츠둔)의 기본형인 ‘라차드'(* )는 ‘질투하다’, ‘곁눈으로 보다’의 뜻이 며 원래 야수가 엎드려서 먹이를 기다리는 것 혹은 사냥꾼이나 적이 숨어서 사냥감을 기다리는 것 등을 가리키는 아랍어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본 단어는, ‘바산의 산’이 낮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처소인 ‘시온산’을 집어 삼킬듯이 내려다보는 형상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을 가리킨다. 물론 ‘하나님이 거하시려하는 산’은 예루살렘 남동쪽에 위치 한 ‘시온 산’을 가리키며 특히 여기서는 성도(聖都) 예루살렘(느 11:1)을 뜻한다. 여호와께서 이 산에 영영히 거하시리로다 – ‘바산의 산’이 비록 높아서 외형적으로 는 지극히 훌륭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시온 산을 우습게 내려다봐서는 안 되는 까닭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은총은 자연보다 나으며 교회는 세상보다 더 강함(Keil)이 분명하다. 한편,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건축될 성전에 친히 임재하시는것(왕상 8:27)이지 만, 하나님께서 신약 교회에 함께하시는 것(마 18:20;계 1:12, 13)과 또한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에서 구속받은 백성들과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것(계 21:2, 3)을 아울러 암 시한다.

=====68:17 16절처럼 본절도 시온 산이 바산의 산에 의해서 업신여김을 받을 이유가 없음을 보 여준다.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 ‘하나님의 병거’는 하나님을 옹위하는 천군 천사들을 가리키며(왕하 6:17) 이들이 시온 산에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옹위를 받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하심을 뜻한다. 그리고 ‘천천이요 만만이라’는 말은 수없이 많 음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삼상 18:7).

=====68: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 이것은 (1)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서 펼치게끔 하기 위하여 선택된 신정(神政) 왕 다윗이 시온 곧 예루살렘에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된 것 (Calvin), (2) 언약궤가 시온산이라는 높은 곳으로 옮겨짐에 따라(대상 15:25-29) 하 나님께서도 그곳의 성소에 임재하게 되신 것(C.B. Moll, Rawlinson)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문맥들에서도 높은 곳으로서의 시온 산을 하나님께 대한 경 배의 장소로서 말한다(렘 31:12;겔 17:23;20:40)는 점에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2)의 것이 보다 타당하다. 한편, 우리는 본 문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지금도 성도들과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연결시켜 이해해 볼 수 있다(엡 4:8).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膳物)을…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 일차적으로는, 출애 굽, 광야 여정 및 가나안 정복과정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대적들을 정복시켜 포로로 잡고(삿 5:12 참조) 피정복민들로부터 조공을 받으신 사실을(삼하 8:2) 가리킨 다(VanGemeren). 그리고 보다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세력을 정복하고 성 도들에게 구원의 선물을 베푸신 것을 예표한다(엡 4:8). 한편, 본절 하반절과의 문맥 연결을 고려하여, 이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들에게서도 경 외와 예배의 대상이 되시게끔 하신다는 의미로도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 – ‘여호와’는 인간들과 언약을 맺 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히 지키시는 분임을 암시하는 문맥에서 주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호칭이다(창 17:1, 2). 그리고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는, 이방 민족, 곧 ‘패역자’ 들 중에도 하나님의 크신 위엄을 목격하고 당신의 백성이 될 자들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이방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되는 것은 큰 축복임이 분명하다. 원래 이방인들 은 하나님의 언약과는 상관이 없었으며 세상에서 소방도 없던 자들이었다(엡 2:1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당신과 원수되었을 때 그들을 부르셔서 당신의 백성 으로 삼으신 것이다(롬 5:6-8).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 하나님이 세상에서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당신의 백성 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세심하게 돌보아 주심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다(Anderson).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전혀 환난과 고통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은 백성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들이 그 어려움들을 능히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는 의미이다(빌 4:13). 따라서 신자들은, 순경(順境) 중 에서 뿐만 아니라 역경 중에서도 결코 슬퍼하거나 낙심치 말아야 하는 것이다.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 – ‘주'(* , 아도나이)에 대해서는 51:15 주 석을 참조하라. 한편,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죽음 에 이르는 환난(20절)에서도 건지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여기의 ‘하나님'(* , 엘) 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특별히 강조하는 호칭이다(50:1;욥 32:13;40:9).

=====68: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 여기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구원 역 사(役事)가 결코 피상적이지 않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구원자되심은 ‘우리’ 곧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서 능히 체험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하나님’도 19절의 ‘하 나님’과 동일하게 ‘엘’이다. 사망에서 피함이 주 여호와께로 말미암거니와 – ‘사망에서 피함’은 여기서는 죽음 에 이르게 될 만한 극심한 환난(23:4)에서 구출되는 것을 가리키나 궁극적으로는 육체 적으로 죽었으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살림을 받을 것(요 11:43, 44) 혹은 육체적인 죽음후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부활되는 것(도전 12:22, 23) 등을 가리 키는 의미로 확대시켜서 이해해 볼 수도 있겠다.

=====68:21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 초두에 ‘진실로’ 혹은 ‘그러므로’로 번역될 수 있는 접속사 ‘아크'(* )가 있다. 그 원수의 머리…정수리 – ‘원수’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 백성을 해하려는 자들 을 가리킨다. 그리고 ‘머리’와 ‘정수리’는 여기서 동격(同格)이다. 그런데 ‘정수리'(* , 카드코드 세아르)는 문자적으로 ‘머리털이 있는 정수리’의 뜻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고대 아라비아 무사(武士)들의 경우처럼, 자신들이 무사임을 드러 내 보이기 위하여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을 머리의 다른 부분보다 더 길게 남겨놓았던 것을 연상시킨다. 아무튼 이같은 모양으로 한 정수리는, 거만한 힘이나 회개할 줄 모 르는 자만(自慢)을 상징한다(신 32:42). 죄과에 항상 행하는 자 – 이것은 ‘원수’에 대한 보조 설명이며, 회개를 거부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채 계속 죄악을 범하는 자를 뜻한다. 하나님이 쳐서 깨치시리로다 – ‘쳐서 깨치시리로다'(* , 이므하츠)의 기본 형인 ‘마하츠'(* )는 야엘이 시스라에게 가했던 것처럼, 강타하여 재기 불능의 치명상을 입히는 것을 가리킨다(삿 5:26). 특히 다른 문맥에서도 이 단어는, 회개치 않고 계속 죄를 범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신 32:39;33:11).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1)이 세상의 악인들을 반드시 멸망시키시며 (73:27), (2)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신(神)인 사단과 그 세력들을 영원한 불못에 넣으 실 것이다(계 20:10).

=====68:22 본절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21절과 연결시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마치 유대 주석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본절을 하나님의 구원 약속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예루살렘 멸망 뒤 배에 실려서 로마로 끌려가던 여자 포로들은, 본 구절을 자신들에 대한 약속의 말씀으로 보고 모두 지중해로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다(Keil). 즉, 그 여자 포로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 을 그 지중해에서 건져내시리라고 오판했던 것이다. 저희를 바산에서…바다 깊은 데서 도로 나오게 하고 – 하나님의 원수들이 아무리 깊이 숨는다고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산’은 산세가 험하고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어 사람들의 은신처가 퇴기에 적절했던 ‘바산의 산지’를 가리킨다. 그리고 ‘바다’는, 본 시편 저자 다윗의 활동 지역과 인접 해 있었던 사해 바다를 뜻할것이다. 특히 기자는 ‘바다 깊은 데’라고 표현함으로써. 원수들의 도주 자체가 불가능함을 강조한다.

=====68:23 본절 초두에는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단어 곧 ‘그리하여’로 번역될 수 있는 ‘르마안'(* )이 있어서(NIV) 본절이 22절과 같은 심판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묘사임을 말해준다. 너로 저희를 심히 치고 그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 – 문자적으로는 ‘너희들이 너 희들의 발을 피 안에 세게 찔러넣게 할 것이다’의 뜻이다(you may piunge your feet in the blood of your foce, NIV). 이와 같은 표현은 (1)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나타 낼 때 사용되며(사 63:1-3), 또한 (2) 하나님의 공의를 목격한 자가 그 공의가 실현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모습의 상징적 묘사이다(58:10).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이 스라엘 백성을 악인을 멸절시키기 위한 대리적 심판자로 지정하사 원수들을 찌르게 하 심을 나타낸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죄악이 관영된 가나안 족속 등 을 징벌키 위한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바 있었다(창 15:16;수 10:40-43). 한편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이 지나치리만큼 잔인하신 분으로 보 이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여기의 원수들은 하나님이 더 이상 긍휼을 베푸셔서 인내하실 수 없을 만큼 죄악으로 관영되어 있는 자들이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을 보호하시기 위해서라도 대적들은 철저히 응징하셔야만했다. 따라서 하나님이 잔인 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대적들이 자신의 죄과에 대한 응분의 벌을 받는 것일 뿐이다. 네 개의 혀로 네 원수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 하리라 – 원수들의 육신이 개의 먹이 가 되게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죽어서조차 무덤에 안장되지 못하고 개의 먹이가 된 다는 것은 악인에 대한 처절한 심판을 강조하는 말이다(왕하 9:35;렘 15:3).

=====68:24 저희가 주의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들을 무찌르신 후 개선의 행진을 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 하나님의 운 행하시는 모습이 보일 까닭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악인들에 대한 징치(徵治)를 마친후 크게 기뻐하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모든 이가 깨 닫게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저희’는 의인과 악인 모두를 포함한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행차’를 인하여 크게 기뻐하였을 것이며, 악인들은 심 히 두려워 떨었을 것이다(출 15:14-16).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에 행차하시는 것이라 – 여기서 ‘성소에'(* , 바코데쉬)는 ‘거룩하심 가운데서’로 번역함이 더 나을 것 같다(Albright). 그 까닭은 (1) 하나님의 개선 행차가 이교도들에게까지 목격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그 행차가 예루살렘의 ‘성소’에서 있었다고 국한시키기는 어려우며, (2) 여기의 ‘바코 데쉬’라는 단어가 하나님이 이방 원수들을 심판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는 문맥에서 ‘거 룩함에’로 번역되고 있기(77:13;출 15:11)때문이다. 그렇다면 ‘거룩하심 가운데서’라 는 말은 ‘악인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신 공의로운 성품의 소유자이심을 밝히 드러내 시면서’라는 정도의 뜻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왕’은, 하나님 앞에서의 다윗 의 겸손을 보여준다. 즉, 다윗은 비록 자신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 님의 통치 아래 있는 백성 중 하나일 뿐임을 암시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68:25 본절은 승리와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의식(儀式)을 묘사하고 있다. 소고 치는 동녀(童女) – ‘소고치는’일은 승리의 기쁨이 있을 때 여자들에 의해서 관례적으로 행해졌었다. ‘동녀'(* , 알마)는 미혼, 기혼을 막론한 젊은 여성 모두를 가리킨다(창 24:43;잠 30:19).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에서의 승리 후 미 리암과 같은 기혼 여성들도 소고치는 일에 가담했었다(출 15:20). 문자 그대로의 ‘동 녀’를 가리키는 히브리 단어는 ‘베툴라'(* )이다. 가객(* , 솨림) – 노래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악사 – 수금과 비파, 제금 그리고 나팔 등을 연주하는 사람을 뜻한다(대상 13:8).

=====68:26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 – ‘근원'(* , 마코르)은 ‘자손’, ‘근원’, ‘샘’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 등과 같은 신앙의 조상들 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조상 아브라함처럼 언약 에의 참여자임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대회 중에서…주를 송축할지어다 – 여기서 ‘대회'(* , 카할)는 하나님의 이 름으로 모인 종교적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주'(* , 예호와)는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 아주신 점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명칭이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민족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 구원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세상에서도 각양(各樣)의 은혜를 받으며 살았다. 그런 점에서 신.구약 시대를 막 론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송축하지’ 않을 수 없다(엡 1:3, 6).

=====68:27 저희 주관자(主管者) 작은 베냐민 – ‘저희 주관자'(* , 로뎀)의 기본형인 ‘라 다'(* )는 ‘통치하다’ 혹은 ‘지배하다’의 뜻이다. 베냐민 지파가 이렇게 지칭된 것은 모든 지파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었지만(삼상 9:21) (1)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을 배출하였으며(삼상 9:1-17), (2) 열 두 지파의 기업 분배 당시에 하나님의 성소가 있던 예루살렘도 그 땅에 있었다(수 18:28)는 점 등 때문일 것이다(Keil). 그러나 저 자 다윗이 자신의 지파도 아니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이 속했던 지파를 첫머리에 놓은것은, 다윗의 겸허하고도 관대한 성품을 잘 보여준다. 사실, 그 당시 이미 왕에 올라 있었던 다윗은 대단히 큰 세력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또한 자신이 속한 지파를 본 절의 초두에 놓을 수도 있었다. 유다의 방백과 그 무리 – ‘그 무리'(* , 리그마탐)의 어근인 ‘라감'(* )은 ‘죽이기 위해 돌을 던지다’ 혹은 ‘돌 무더기를 쌓다’의 뜻을 지니며 본 단어 와 동족어인 ‘마르게마'(* )는 ‘돌 무더기’를 뜻한다(잠 26:8). 따라서 본 단어는 ‘돌 무더기의 돌처럼 많은 수’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본 문 구는, ‘많은 수의 유다 방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스불론…납달리 – 유다와 베냐민 이외에 이처럼 유독 두 지파만 언급되고 있는 까 닭은, 두 지파가 애국적인 용감성으로 인하여 드보라에 의해서 크게 찬송을 받았던 때 문일 것이다(Keil, 삿 4:6, 10;5:18). 물론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남쪽 끝에 위 치한 지파인 반면,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는 북쪽끝에 위치한 지파였기 때문에 유 독 다른 지파들을 제치고 여기서 언급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VanGemeren).

=====68:28 네 하나님이 네 힘을 명하셨도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상을 지배할 능력과 그들에 대한 승리의 보장을 주셨음을 말한다(Keil).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 방 민족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체험했었다. 하나님이여…행하신 것을 견고히 하소서 –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승리케 하는 과정을 통해 당신의 크신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신 바 있다. 이러한 과거 역사에 근거 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약속과(22, 23절) 구속자로서의 성품에 따라(5, 6;19, 20절), 시인은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계속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 이다.

=====68:29 이방의 왕들이 하나님께 경외심을 표하게 된다는 예언이다(76:11;사 18:7;60:3-7 ;66:20;학 2:7;슥 2:11-13;6:15;8:21, 22). 이러한 예언은 솔로몬 왕 시절에 스바 여 왕에 의하여서도 성취된 바 있다(대하 9:1-12).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모든 민족들 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그들이 하나남께로 나아올것에 대한 예언이다. 주의 전을 위하여(* , 메헤칼레카) – 카일(Keil)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주의 전으로부터’라고 보고 하나님께 대한 경배가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시작되어 결국 온 세계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위하여’로 번역된 히브리어 전치사 ‘몌'(* )를 ‘…때문에'(on behalf of, because of, KJV, RSV, NIV)로 보고, 이방 왕들이 예루살렘의 성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으로 믿고 경배를 드리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무난하겠다.

=====68:30 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 ‘갈밭의 들짐승’은 원래 나일 강변의 갈대 숲에서 서식하는 하마나 악어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애굽 왕 을 상징한다(74:13;사 36:6, 9;겔 29:3, Briggs, Dahood, Kraus). 그리고 ‘수소의 무 리’는 당시 최강국이었던 애굽보다는 못한 나라들의 여러왕들을 가리킨다. 또한 ‘송아 지’는 애굽 왕을 포함한 열강의 지배 아래 있던 이방 민족들을 뜻한다. 은 조각을 발 아래 밟으소서 – 여기에 대해서는 (1) 이방 왕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굴복하면서 그 표시로서 ‘은 조각’을 공물로 바치는 것을 뜻한다는 견해(KJV, NIV, Alexander, Keil, Rawlinson), (2) ‘은 조각’ 곧 전리품이나 공물을 탐하는 열방 들을 멸하도록 간구하는 내용이라고 보는 견해(RSV), (3) 본 분사 구문이 ‘갈밭의 들 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수식한다고 보며, 그들이 왕궁의 마룻 바닥에 깔린 ‘은 조각’을 발로 밟음으로써 자신들의 교만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는 견해 (NIV, Calvin, C.B. Moll) 등이 있다. 이중 어느 하나를 확정적으로 취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지만, 곧바로 뒤따르는 문구와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1)의 견해가 가장 자연스러울 것 같다.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 – 여기서 ‘흩으셨도다'(* , 비자르)는 ‘바자르'(* )의 완료 시제이다. 그러나 다음 절이 미래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의 문장이라는 점에서 개역 성경과는 달리 ‘흩으소서’로 번역함이 더 낫다(NIV, Weiser). 이와 같은 기원(祈願)은 1절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전쟁을 즐기는’ 이라는 말은, 다윗의 원수들이 명분도 없이 무고하게 다윗에 대항하여 싸움과 소동을 일으켰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Calvin). 악인들은 까닭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치려 하지만, 결국 그들은 그러한 호전성(好戰性)으로 인하여 멸망을 받게 되는것이다.

=====68:31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 ‘방백들'(* , 하쉬마님)은 ‘살지다’ 혹은 ‘부유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하슘'(*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두드러진 위치에 있는 지도급 인사들을 가리킨다(Keil), ‘애굽에서 나오고’는 애굽 왕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하기 위해 방백들을 사신(使臣)으로 보내는 것을 뜻한다(사 43:3;45:14).

=====68:32 31절의 결과이다. 다윗 자신의 예언적 소원대로 열방이 하나님께 굴복하면, 그들은 그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찬송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또한 이방 민족들도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로 인하여 기뻐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일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 만방으로 확장되어 감에 따라 본격적으로 성취되어 가고 있으며(고전 15:24, 25) 하나님께서 친정(親政)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완전하 게 이루어질 것이다(계 21:3).

=====68:33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 – ‘옛 적'(* , 케뎀)은 하나님의 초시간적(招 時間的) 위대성을 암시하며, ‘하늘들의 하늘’은 창조된 태초의 시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하늘들의 하늘'(* , 쉐메 쉐메)은 다만 ‘하늘의 하늘’로 번역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비록 여기의 ‘쉐메’가 복수형이기는 하지만 이 복수형은 그 수 (數)의 많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 하늘의 광대(廣大)함을 표현하는 장엄 복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문구는, 하늘의 광대 무변함과 장중함, 그리고 지고(至 高)함을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수사학적 표현이다(신 10:14;왕상 8:27). 이 와 비슷한 것으로서, ‘종들의 종’, ‘왕 중의 왕’, ‘거룩함중의 거룩함’, ‘노래 중의 노래’ 등이 있다. 주계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 히브리 원문에는 ‘보라!’로 번역될 수 있는 ‘헨'(* )이라는 단어가 있다. 본문의 ‘소리’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심 을 증거하는 피조 세계의 웅장한 소리, 예컨대 뇌성 등을 가리키는것 같다(29:3, 4, Anderson).

=====68:34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 이것은, 33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권능’이 마땅히 그분의 것임을 인정하라는 뜻이다(29:1). 그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 능력이 하늘에 있도다 – ‘그 위엄이 이스라엘 위 에 있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뜻 이다(Keil). 그리고 ‘그 능력이 하늘에 있도다’는, 하나님의 통치가 우주적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본 문구는 하나님의 내재적(內在的) 속성뿐만 아니라 초월적 속성을 잘 드러내 준다.

=====68:35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 문자적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성소 들에서 두렵습니다’의 뜻이다. 본절은 하나님이 이렇듯 엄위하신 분이시면서(47:2 ;65:5;출 15:11;신 10:17:계 15:3, 4). 또한 당신의 백성 가운데 함께하시는 분이심을 시사한다(VanGemeren). 여기서 ‘성소’를 복수로 말하고 있는 까닭에 대해서는, (1) 여 기의 ‘성소’가 하나님의 임재 장소인 하늘과 땅(34절)을 모두 가리키기 때문, (2) ‘성 소’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Calvin), 혹은 (3) ‘성소’가 거룩의 요소나 특징 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Keil)등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장엄 복 수로 이해하여 다만 성소의 거룩성을 보다 강조하며, 그리하여 그곳이 하나님의 위엄 이 충만한 곳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복수형으로 표현되었다고 봄이 무난하겠다 (Anderson).

20210824 함께하시는 하나님 (시편 68편 1~18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이 세상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하고 선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시는 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한 번 살펴봅시다. “(시 68:1)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다윗은 왕이면서도 동시에 싸움에 능한 전사였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께서도 그와 같으신 분이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전사이십니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의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악인과의 전투에 참여해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원수들이 싸움에서 패배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하시고, 주님을 배척하고 미워하는 자들을 도망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싸움에서 진 원수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2절에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시 68:2) 연기가 몰려감 같이 저희를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 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바람 강하게 부는 날 하늘 위로 연기가 빨려 올라가듯이 순식간에 원수들을 몰아내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또한 불 앞에 있는 초가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녹아버리듯이 악인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도록 망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원수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주 앞에서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가 가득할 것입니다. 이에 다윗은 의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초대합니다. 3-4절을 봅시다. “(시 68:3)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시 68:4)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라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자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 앞에서 뛰놀지어다” 악인들과 다르게 의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쁨의 춤을 추고 있습니다. 어찌나 기쁜지 점프를 뛰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쁨은 그들의 원수들을 멸하시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입니다. 4절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구름을 타고 광야를 지나가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지켜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름기둥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기쁨’, ‘즐거움’, ‘찬양’, ‘뛰놀다’와 같은 표현으로 가득합니다. 원수들로부터 구원받은 이스라엘에게 임할 구원이 기쁨이 가득할 것이고, 그 기쁨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힘 없는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는 분이심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5절을 봅시다. “(시 68:5)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고대 사회에서는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두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들과 남편과 사별한 과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이며,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아와 과부들을 무시했고, 아무도 이들을 돌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을 때도 차별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고아들의 아버지 되시며, 과부의 재판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돌봐 주는 이 없는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그들을 직접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차별대우 당하는 과부들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공정한 재판관이 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아와 과부들을 무시하고 냉대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처럼 고아와 과부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6절을 봅시다. “(시 68:6) 하나님은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시며 수금된 자를 이끌어내사 형통케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여기서 ‘고독한 자로 가속 중에 처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머무를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또한 ‘수금된 자’ 곧 갇힌 사람들을 감옥에서 풀어내고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신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많으신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계속해서 돌보고 계심을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다윗은 경고도 잊지 않습니다. 6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오직 거역하는 자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들, 고독한 자들, 수감된 자들도 챙기시고 돌보실 정도로 부드럽고 자상하신 분이시지만, 만일 인간이 그를 거역하고 죄악을 행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재앙과 고통스런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7-10절까지 다윗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낼 때 행하신 주님의 능력을 기억하고 찬양합니다. “(시 68:7)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셀라) (시 68:8)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진할 때 그들보다 먼저 앞서 행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시고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때 당은 무섭게 흔들렸고, 하늘은 억수 같이 폭우를 쏟아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리신 풍성한 비로 말미암아 지친 땅 위에 생기가 불어나고, 주의 백성들은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사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12절을 봅시다. “(시 68:12) 여러 군대의 왕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니 집에 거한 여자도 탈취물을 나누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니 그들을 치러 온 원수 여러 나라의 군대들과 왕들이 허둥지둥 도망칩니다. 그 결과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여인들도 원수에게서 얻은 전리품과 탈취물들을 함께 나눌 정도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13절을 봅시다. “(시 68:13) 너희가 양우리에 누울 때에는 그 날개를 은으로 입히고 그 깃을 황금으로 입힌 비둘기 같도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양우리에서 잠을 잘지라도, 실상 그들은 은과 금으로 장식한 비둘기 같은 물품들을 나누어 가지는 부유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러 온 왕들과 그들의 군대들을 흩으십니다. 14절에서 다윗은 원수들이 흩어지며 도망가는 모습을 살몬 산 위에서 흩날리는 눈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그와 같이 가능한 이유는 17절에 있습니다. “(시 68:17)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 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 ‘하나님의 병거가 천천과 만만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군사들은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강한 원수들이라도 어찌 하나님을 능히 이길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말한 원수에 대한 승리와 이스라엘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은 우리 구원받은 백성이 동일하게 누릴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악한 세상 권세를 이기는 승리를 우리에게 주셨고, 영혼의 구원과 넘치는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하실 승리의 주님을 기억하며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편 제68편 고아와 과부의 보호자이신 하나님, 본문주석 및 새벽설교 준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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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흩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에 대하여 승리하시고 개가를 부르며 입성하시는 왕이십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주의 백성들은 돌아보시고 살피시는 자비로운 분이시기도 합니다.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통독하며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삶의 보호자요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을 말씀묵상하고 본문 주석을 정리하였습니다.

시편 제68편, 고아와 과부의 보호자이신 하나님

[ 현대인의 성경 ]

1 (다윗의 시.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부른 노래) 하나님이시여, 일어나 주의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2 바람에 날아가는 연기처럼 그들을 몰아내소서. 초가 불에 녹는 것처럼 악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3 그러나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4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구름을 타고 다니시는 이를 위해 길을 예비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 그 앞에서 기뻐하여라.

5 거룩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요 과부의 보호자이시다.

6 하나님은 고독한 자에게 가족을 주시고 갇힌 자를 이끌어내어 기쁨으로 노래하게 하신다. 그러나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다.

7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광야를 거쳐 주의 백성을 인도하셨을 때

8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며 시내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위축되었습니다.

9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내려 주셔서 황폐한 주의 땅을 회복하셨으므로

10 주의 백성이 그 곳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이것은 주의 은혜로 가난한 자를 위해 예비한 것이었습니다.

11 여호와께서 말씀을 주시자 많은 여자들이 그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12 `우리를 치러 온 왕들과 그의 군대가 도망하자. 집에 남아 있던 여자들도 전리품을 나누었네.

13 너희가 비록 양우리에 누웠으나 금과 은빛 날개를 단 비둘기 같구나.’

14 전능하신 하나님이 왕들을 그 땅에 흩으셨을 때 살몬산에 눈이 내린 것 같았다.

15 바산의 산들은 높고 장엄하구나!

16 너희 높은 산들아 어째서 너희는 하나님이 계시려고 택한 산을 시기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느냐? 여호와께서 그 곳에 영원히 계실 것이다!

17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전차에 둘러싸인 채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나와 그의 성소에 들어가시는구나.

18 그가 높은 곳으로 오르실 때 사로잡은 자들을 이끌고 가시며 사람들, 곧 거역하는 자들에게서까지 선물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 곳에 계시려 하심이라.

19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

20 우리의 하나님은 구원하는 신이시며 우리를 사망에서 구하시는 여호와이시다.

21 하나님이 그 원수들의 머리를 깨뜨릴 것이니 계속 죄를 짖는 자들의 머리를 부숴 버릴 것이다.

22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원수들을 바산에서 돌아오게 하고 그들을 바다 깊은 곳에서 이끌어내어

23 너희가 그들의 피에 발을 담그며 너희 개가 그 피를 핥아 먹게 하리라.’

24 나의 왕 되신 하나님이 성소로 행차하시는 것을 모두 보았다.

25 앞에는 노래하는 자들이요 뒤에는 악사들이며 그 사이에는 작은 북을 치는 소녀들이다.

26 야곱의 후손들아, 너희는 큰 집회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라.

27 제일 작은 지파 베냐민이 앞서고 그 다음은 유다 지파의 지도자들이며 다음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도자들이다.

28 하나님이시여, 주의 힘을 모으소서. 전에 우리를 위해 사용하셨던 그 놀라운 힘을 우리에게 나타내소서.

29 예루살렘에 주의 성전이 있으니 왕들이 주께 예물을 가져올 것입니다.

30 갈밭의 들짐승과 같은 이집트를 꾸짖으시고 송아지를 거느린 수소 떼와 같은 온 세계 민족을 꾸짖어 그들이 은을 바치며 복종할 때까지 낮추소서. 전쟁을 즐기는 모든 민족을 흩으소서.

31 사절단이 이집트에서 나올 것이며 이디오피아 사람이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32 세상 나라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여호와께 찬양하라.

33 옛날 옛적부터 있는 하늘을 타고 다니시는 이에게 찬양하라. 그가 하늘에서 웅장한 소리를 발하신다.

34 너희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라. 그의 위엄은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의 능력은 하늘에 있다.

35 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은 위엄이 있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신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1. 이 시편의 수신인

– 찬양대 지휘자에게 바쳐진 시편입니다.

2. 이 시편의 특징

– 앞선 시편들과 마찬가지로 새천년 시편으로, 그리스도께서 새천년에 통치하심에 대한 시편이자 노래입니다.

3. 이 시편의 저자

– 다윗의 시인 것으로 표제어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4. 이 시편에 관한 논란

– 시편 68편의 저자나 작성 시기, 그리고 특징 등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큰 이견이 있습니다.

5. 이 시편의 주제

– 주님의 궁극적인 승리와 영광

6. 이 시편의 개요

– 예정된 주님의 승리(68:1-6)

A. 주님의 승리를 소망하다(68:1, 2)

모세의 기도(민 10:35)를 변경하여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고 주의 적들이 흩어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어 나서셔 원수들을 쫓아 내시고 그들을 파괴하시기를 저자는 바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B. 주님의 승리에 대한 적절한 반응(68:3-6)

주께서 재림하셔서 원수를 멸하실 때, 의인들은 (1) 하나님 앞에서 크게 기뻐하며 (2)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할 것입니다. 의인들은 주께서 원수들을 이기시고 이 땅에 주의 나라를 세우실 때 기뻐해야만 합니다. 주께서 왕으로 좌정하실 때 의인을 축복하시고 원수들은 심판하실 것입니다(68:5, 6).

5절과 6절에서 통치하시는 주님께서 이 땅에 있는 불쌍한 백성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가 없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과부에게는 정의로운 재판관으로, 고독한 자에게는 가족이, 억울하게 갇힌 자에게는 해방자가 될 것입니다.

– 이전에도 승리하신 주님(68:7-18)

지금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셔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적인 승리와 시온에서 왕으로 좌정하셔서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과정까지의 승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A. 광야를 통과하는 과정 속의 승리 행진(68:7-10)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애굽에서 광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68:7).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인도자가 되셔서 앞장 서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그분의 권능과 영광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셨습니다(68:8). 이 때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약속을 이스라엘과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광야 속에 있을 때 축복을 주셨고 만나를 풍성하게 내려 주셨습니다(68:9). 육신의 먹을 것과 영혼의 만족함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나아갈 때,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위대한 일들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B. 가나안 정복 가운데 있었던 승리(68:11-14)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반드시 정복하고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8:11). 승리를 약속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많은 여성들이 나와 승리를 축하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68:11b, 출 15:20, 삿 5:1, 삼상 18:6).

주님께서 모든 군왕들을 도망치게 하셨습니다(68:12a). 여호수아 12장에 이 같은 내용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여인들에게 시녀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68:12b). 이 말씀은, 그녀들의 남편들이 집에 가져온 전리품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와 빛을 주셨습니다(68:13-14). 이 구절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비둘기’가 평화를, ‘눈’이 빛과 밝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에는 학자들 중에 동의하는 바가 있습니다.

C. 시온의 주님의 성소로 승리하신 주님께서 입장하신다(68:15-18)

주께서는 바산의 산보다도 시온 산을 선택하셨습니다(68:15, 16). 하나님께서는 바산 산맥의 웅장하고 높은 봉우리들을 선택하시기보다는 시온의 변변찮은 언덕을 영원한 거처로 선택하셨습니다. 바산의 산들은 시온 산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위대한 승리를 취하시고 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68:17, 18). 주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졌을 때, 여호와께서는 천사들을 거느리시고 영광스럽게 입성하시며 그 뒤에는 끌려갔던 수많은 포로들을 해방시켜 데리고 오셨습니다. 다윗이 준비한 성소에서 주께서는 왕좌에 앉으셨습니다. 수많은 전리품들은 주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8절에서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관한 말씀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 싸우시고자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엡 4:9). 그 후,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을 거느리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 땅을 복음으로 정복하라고 명령하시며 모든 권한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 미래에 있을 주님의 승리(68:19-35)

A. 주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매일 짊어져야만 하는 짐을 대신 져 주실 것입니다(68:19).

B.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가 되실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가 되십니다(68:20).

C. 주님께서는 원수들을 모으실 것이며, 주의 백성들이 그들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68:21-23).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숨거나 멀리 도망을 갔다 할지라도 주의 백성들에 의해 모두 멸망될 것입니다(암 9:1-3, 슥 12:6, 8).

D. 승리하신 주님께서는 새천년의 성전에 영광스럽게 들어가실 것입니다(68:24-27).

사람들은 주님께서 성소에 들어가시는 장면을 목격할 것이며 노래하는 자들이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시 24). 옛 북왕국의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와 옛 남왕국의 베냐민과 유다 두 지파가 이 행렬에 오르게 됩니다. 이 네 지파들은 모든 지파들을 대표하며 위대한 행렬에 서게 될 것입니다. 또 26절에서는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요청 받고 있습니다.

E.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68:28)

F.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성전에서 주께서는 열방의 왕들에게 예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68:29, 31)

G. 주께서는 이 땅의 강한 자들을 정복하실 것입니다(68:30a).

주께서는 군대나 국가 지도자들(황소)를 그들의 백성들(송아지)와 더불어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주님 앞에 엎드리며 예물을 바치게 될 것입니다.

H. 주님께서 전쟁을 즐기는 백성들을 흩으실 것입니다(68:30b).

I. 온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능력을 찬양할 것입니다(68:32-35). 바로 이 능력의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7. 이 시편의 교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주의 법궤가 있는 시온산 다윗의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늘의 성소로 승천하실 때,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 모리아 산에 있는 새 천년왕국의 성소에 주께서 들어가실 때, 온 땅을 통치하시는 왕이 되실 것입니다.

– 우리가 온전히 주님께 순종할 때, 주님은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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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 계신 주께서 하시는 일 Part 2(시 68:19-35)

제목 : 우리 가운데 계신 주께서 하시는 일 part 2

본문 : 시편 68:19-35

설교자 : 최종혁

시편 68편은 아마도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왔던 일이 배경일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라는 이 시편의 주제는 그런 배경에 잘 어울린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우리 믿는 자들 가운데만 계신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도 계신다. 그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는 1-6절에서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은혜의 구원을 베푸신다.

7-18절의 말씀에서 다윗은 그런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들의 조상 가운데 계시면서 하셨던 일에 주목한다. 하나님께서 정말 그들 가운데 계셨는지, 그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말하면서, 다윗은 광야 생활과 가나안 땅에서의 정착을 회상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인도하셨고 필요를 공급하셨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그런 하나님은 높은 산이 아니라 작은 언덕 같은 시온 산에서 자신을 나타내셨고, 이런 특권을 얻은 시온 산을 다른 산들은 시기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다른 민족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모세의 말처럼 이스라엘은 큰 민족도 아니고 어떤 특별함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복을 주셨던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과거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19절에서 다윗은 자신들의 현재로 넘어온다.

현재 :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19-31절)

19절은 전체 시의 전환점이 되는 구절이고 특히 “날마다”라는 표현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즉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항상 하신 일이었고 지금도 계속 하고 계신 일,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과 관계된 일을 다윗은 언급한다.

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다윗은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고 말하면서 그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신다고 묘사한다. 앞선 말씀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고독한 자, 갇힌 자들을 위해 일하시지만(5-6절), 그들만을 위해서 일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가운데 계시면서 백성들의 필요를 돌보신다. 그들의 매일의 고통을 보시고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신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그들을 건져내신다. 상황을 바꿔주실 때도 있다. 혹은 그 상황을 견대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실 때도 있다.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구원이라고 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가장 큰 위험이고 따라서 그 구원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구원은 아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도 그것은 구원이었다. 실제로 영적인 구원과 같은 단어가 병이 낫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구약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약의 성도들에게 있어 구원은 단지 영적인 일이거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니었다.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하신 모든 일이 바로 구원하시는 일이었다. 다윗은 그 구원의 일을 “날마다 우리 짐을 지셨다”고 표현한다. 그들이 감당해야할 삶의 무게를 그들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대신 지어 주셨다는 말이다(이스라엘, 다윗,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엘리야와 엘리사 때의 과부들 등). 물론 가장 큰 일은 인류의 죄의 짐을 대신 지신 일이다. 이사야 46장에서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 46:1-5 1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2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들도 잡혀 갔느니라 3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5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하나님은 여기서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를 분명히 말씀하신다. 우상들은 사람들이 짐승의 등에 실어서 가지고 다녀야 하는 무거운 짐일 뿐이다. 다른 짐하고 다를 것이 전혀 없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삶에 실제적인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우상을 실어 날라야 하고 보살펴야 한다. 더러워지면 닦아줘야 한다. 넘어지면 세워줘야 하고 어딜 가려면 사람이 옮겨 주어야 한다. 애초에 사람이 우상을 만들었고, 우상은 클수록 무거울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드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돌보신다.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태어남에서 죽을 때까지 돌보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품고 업고 구하신다. 광야에서 그렇게 하셨고, 가나안 땅에서도 그렇게 하셨다. 어느 순간에만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하시는 분이심을 다윗은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으로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이 구원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공의로우신 하나님(1-6절), 인도하시는 하나님(7-10절),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11-18절) 다윗은 지금도 기대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특히 계속해서 전쟁을 치르는 왕으로서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기대한다.

시 68:20-21 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21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망에서 벗어나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그들의 짐을 지시는 여호와 덕분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원수를 하나님은 완전히 패하게 하신다. 이들은 죄를 짓고 다니는 하나님의 대적들이고 이들의 머리를 하나님은 깨뜨리실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한다. 이것이 왕으로서 다윗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모습이었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 68:22-23 2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을 바산에서 돌아오게 하며 바다 깊은 곳에서 도로 나오게 하고 23 네가 그들을 심히 치고 그들의 피에 네 발을 잠그게 하며 네 집의 개의 혀로 네 원수들에게서 제 분깃을 얻게 하리라 하시도다

바산은 15절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높은 산이다. 즉, 높은 곳이든 깊은 곳이든 어디든 도망하려고 해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원수들을 찾아내서 그들을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때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즉 22절에서 하나님은 완전한 승리를 말씀하셨다.

23절에서 묘사하는 이미지는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좀 섬뜩할 수도 있지만, 시편 58편 10절과 비슷하다. 승리자의 모습을 당시의 상황에 기초하여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2절이 하나님의 대적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표현했다면, 23절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승리를 직접 경험한다는 것이다(“네” 4x). 그냥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하셨대라고 전해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 백성이 직접 경험하고 그 결과를 맛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전에 필리핀에 몇몇 학생들과 선교지 방문을 다녀오면서 학생들이 했던 말에 대해서 교회에서 간증을 했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은 선교사들의 경험했던 일들을 듣고 그 결과들을 그곳에서 보면서 여기 오니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하나같이 얘기했었다. 그것이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도 있었다. 사실 필리핀이든 어디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은 동일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그 학생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좀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님을 기대하고 있는가이다. 하나님을 나의 구원이라고 정말 믿고 살아가고 그분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내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죄에서, 죄의 영향력에서 건져내고 계심을 믿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 삶의 문제는 그냥 내가 알아서 해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일도 없다.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도 사라진다. 하나님이 구원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24-27절에서 그들 가운데 행차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게 한다.

시 68:24-27 24 하나님이여 그들이 주께서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로 행차하시는 것이라 25 소고 치는 처녀들 중에서 노래 부르는 자들은 앞서고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은 뒤따르나이다 26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 27 거기에는 그들을 주관하는 작은 베냐민과 유다의 고관과 그들의 무리와 스불론의 고관과 납달리의 고관이 있도다

하나님은 영이셔서 보이지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언약궤, 성소, 예루살렘 등에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특별한 임재를 나타내셨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들을 보면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여오면서 축제를 벌인 것이다. 그 자신도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췄고(삼하 6:14), 25절 말씀처럼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며 함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그들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시는 하나님을 환영했다. 찬양했다.

다윗은 그들을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라고 불렀다. 12지파의 시초가 되었던 이스라엘, 즉 야곱을 언급하여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말하는 것이다. 27절은 남쪽의 두 지파인 베냐민과 유다, 그리고 북쪽의 두 지파인 스불론과 납달리를 언급하여 모든 지파의 사람들이 이 축제에 함께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즉, 이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행하시는 것을 눈으로 보며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시 68:28 네 하나님이 너의 힘을 명령하셨도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견고하게 하소서

지금까지 과거를 기억하면서 찬양을 했다면, 여기서는 앞으로를 기대하면서 기도한다. 여기서 기대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에 때문에 확신이 되어 있다. 과거에 자기 백성을 이끌며 앞장 서서 싸우는 장수와 같았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들에게 힘을 명하시고 함께 싸우신다.

골딩게이는 여기서 다윗이 전제로 하는 것은 하나님은 그냥 힘만 주시고, 싸우는 것은 너희가 알아서 해라라는 식으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하나님은 전쟁에 함께 나가서 그들 가운데서 싸우셔서 그들로 하여금 기대한 것 이상을 성취할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심이 전제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진 분으로서 그렇게 관계 속에서 일하신다. 어떤 대단한 능력만 주시고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사명을 모세에게 맡기시면서 하나님은 모세가 여러 이적도 행하게 하셨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 아론도 주셨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는 약속이었다. 그저 하나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여호수아에게도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을 사명으로 주시면서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수 1:5)라고 같은 약속을 주셨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 이 능력을 너희에게 줄 테니, 내가 떠나면 그 능력으로 잘 해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마 28:20).

하나님의 백성이 강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은 그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하나님의 백성은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바라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의 결과로 다윗이 기대하는 것도 그러하다.

시 68:29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을 위하여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

여기 왕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왕들이다. 다른 나라의 왕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심판하실 때 그렇게 된다.

시 68:30 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은 조각을 발 아래에 밟으소서 그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

여기 등장하는 들짐승, 수소, 송아지는 분명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우리가 알기는 어렵다. 앞뒤의 문맥을 고려하면 애굽을 비롯한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강국들을 의미할 것이다. 그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다윗이 기대하는 것이다. 31절은 부한 나라들도 하나님께 나아올 것을 말한다.

시 68:31 고관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즉, 힘 있는 자든, 부한 자든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무릎을 꿇고 복종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부분적으로 이런 모습들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때 성취될 기대이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 2:10) 다윗은 이런 이상적인 나라가 그의 때에도 이루어지기를 바랐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하시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나님이 모든 민족에게 예배 받으시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이 기록한 이 시편의 결론은 이렇다.

결론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32-35절)

시 68:32-35 32 땅의 왕국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셀라) 33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34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그의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의 능력이 구름 속에 있도다 35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정착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 지금은 성소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동일하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든지 그의 백성들 가운데 계시며 그들에게 힘과 능력을 더하신다. 날마다 그들의 짐을 지신다.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이시다. 따라서 하나님께 합당한 것은 감사와 찬송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하고 기대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찬송해야한다.

도전

시편 68편에서 다윗은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어떤 일을 하시는지를 그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펴보며 이야기했다. 그 핵심은 19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고 그래서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일을 하신다. 이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반응 세 가지가 있다.

먼저는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혹 그것이 의심스럽다면,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돌아보라. 다윗에게는 언약궤와 성소, 희생 제사, 때에 따라 돌아오는 절기들이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들에게 하셨던 일들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골리앗과 싸워서 이겼던 일, 사울과의 긴 싸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그의 삶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게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잘 기록되어 있는 성경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매 주일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만찬 예식을 행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을 듣는 것, 찬양을 하는 것, 성도와 교제하는 것,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들에 기초하고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이시며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조용히 묵상해 보라. 하나님은 내 삶에서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하나님이 정말 내 삶에 계시지 않았던 적이 있는지. 나의 과거는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분이라고 말하는지, 어떤 일을 하셨다고 증언하는지 묵상해 보라.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시고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신다.

둘째로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면서 앞으로 그의 나라에서 펼쳐질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언약궤에 신비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바, 즉 하나님의 임재 때문이었다. 오늘 시편에서도 그런 기대를 우리가 살펴봤었다.

우리도 과거에 나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에만 우리의 생각이 머물러서는 안된다. ‘옛날에 참 좋았지. 내 신앙의 전성기는 20년 전이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 기억들은 추억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기대하게 만드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더 알아가게 된다. 그렇게 이전보다 하나님을 더 알고 있다면 내 신앙의 전성기는 지금인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영생이고 우리의 신앙 생활이기 때문이다.

아마 선교지에서 하나님을 더 경험하는 것은 더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댈 곳이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대고 기대하게 되고 그렇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기댈 곳이 많아졌다. 우리 짐을 둘 곳이 많아진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내 짐이 그리 무겁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냥 저냥 감당할만한 것 같다. 그렇게 우리 삶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제거하면, 우리 신앙의 전성기는 20년 전이 될 수 밖에 없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가졌는가? 하나님께서 내 삶에서 어떻게 역사하여 주시기를 구했는가? 그냥 일어나서 평소와 다름 없이 하루를 살고, 조금 힘들긴 해도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평범함이 하나님의 구원으로 생각되지 않는다면, 내가 잘 못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혹시 하나님이 내 짐을 지시는 것이 무거우실까봐 염려하지는 말라. 싫어하실까봐 걱정하지도 말라. 하나님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고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다. 하나님을 기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것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니었어요’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나의 어떤 성취든 나에게 힘주시는 하나님께서 다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은혜 아닌 것이 없다’는 고백도 이렇게 구원이신 하나님을 알고 기대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고백이다. 결국 ‘주가 하셨다’라고 우리가 고백을 하면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최종적으로 우리가 할 일이다.

이런 우리의 삶으로 온 열방이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되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의 자녀가, 우리의 가족이, 우리의 친구가, 우리의 직장 동료가 우리 가운데 계신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역사를 우리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우리 가운데 계신 주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에 대한 더 큰 확신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더 알고, 기대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이다.

시편 68편.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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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68편.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사는 것 (찬 95)

1. 68편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 지은 시일지 모른다. 시 전체가 언약궤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노래하는데 특히 1~18절은 모세의 시내산에서 다윗의 시온산으로 언약궤가 행진하는 것을 시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19~35절은 온 세상에서 영광을 받으시기까지 승리의 행진을 하실 하나님에 대한 간구를 담고 있다.

2. 1~2절은 언약궤의 행진의 시작을 보여준다. 광야시절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궤가 들어올려지고 행진을 시작하는 것을 ‘하나님이 일어나시는 것’으로 이해했다(1). 그 앞에 설 자가 누구인가? 회중은 기뻐하며 즐거워서 찬송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3~6). 하나님은 고아처럼 버려진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가 되셨고, 과부처럼 호소할 데 없는 연약한 이스라엘을 위한 재판장이 되셨기 때문이다(5). 다윗은 언약궤가 선봉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여 내신 영광스러운 과거를 회상한다(7~10).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고 풍성하심을 따라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이뿐인가? 이스라엘은 모든 전쟁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인하여 승승장구하였다(11~14). 그들은 연약한 여자들이 탈취물을 나눌 만큼 엄청난 승리를 경험하였다(12). 언약궤의 행진은 드디어 시온 산에 가까워졌다. 다윗과 무리는 더욱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한다(15~19). 바산의 산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산의 산을 큰 산이라고 불렀다(15). 그러나 하나님은 시온산을 영영히 거하시며 통치하실 산으로 지목하셨다. 그러니 높은 산들도 시온산을 시기해서는 안 된다(16). 언약궤가 시온산 정상에 오르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여 통치의 보좌에 오르시는 모습에 비유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령의 영감으로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후 교회에 각양 은사를 주시는 모습으로 18절을 인용하였다(엡 4:8). 구원의 하나님, 영광을 얻으신 주님은 날마다 우리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이다(19). 산 정상에서 권능의 하나님이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니 주께 피하는 자들은 구원을 얻고 원수들은 심판을 면치 못한다(20~23). 언약궤의 행진은 주님 자신의 행차하심이다(24). 모든 지파, 모든 지도자가 다 그 뒤를 따른다(27). 주의 임재 앞에는 분열이나 다툼이 없다. 언약궤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은 더 넓은 땅을 정복하여 얻게 될 것이다(28~31). 많은 왕이 하나님께 복종하여 예물을 드리게 될 것이다(29,31). 다윗은 끝으로 하나님을 찬송한다(32~35). 자기나 이스라엘 백성만의 찬송만이 아니라, 땅의 열방을 이 찬송으로 초청한다(32). 모든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위에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돌린다(34~35).

3.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기를 얼마나 갈망했는가? 그 생애의 소원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다. 그의 마음은 늘 하나님을 향해 있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기뻐하셨다.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 다윗을 평생 지배한 마음이었다. 당신은 이런 마음이 있는가? 이런 마음이 당신을 지배하는가? 이것은 은혜를 받은 모든 성도가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 곳, 진정한 갈망은 무엇인가?

4.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영광의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영광의 보좌에 오르신 예수님, 지금도 저희 안에서 마음을 주장하고 다스리시는 성령님, 이 땅에 사는 동안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의 임재만을 사모하고 갈망하고 구하며, 결국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대로 이루실 하나님만을 바라며 모든 영광을 삼위 하나님께만 돌리며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쉬자, 시편 68편 19절 말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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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쉬자

본문: 시 68 : 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현대인들은 무척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피곤해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때문에 피곤한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멀리 어디 가서 편히 쉬고 싶어 합니다. 직장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도 벗어나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모든 것이 다 피곤합니다. 무엇인가 무거운 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파트 숲에 쌓여 살다 보면 이기적이고 정서적으로 메마른 사람으로 자신을 만들어 버립니다. 주님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아픔을 같이 하라고 하셨지만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우리를 불러 주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돈 없는 자도 목마른 자 다 내게로 와서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부르십니다.

「고요한 불꽃」이라는 간증 저자인 노무라 이도코 여사는 50세를 조금 넘긴 나이로 환난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녀는 장(腸)으로 만든 인조 방광을 갖고 있었습니다. 방광 결핵에 걸려 극심한 통증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괴롭히던 때에도, 그녀는 시각 장애자들을 위해 점자 역(譯)을 계속했습니다. 그녀는 인조 방광 덕택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수술할 때 수혈을 잘못해 간경변이 발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만면에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나 간경변 이래요. 얼마 있지 않아서 죽을 거예요. 그렇지만 감사해요.” 그만큼 그녀는 평안으로 가득 차 있었고, 빛이 나는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훌륭한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의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 무거운 짐은 나의 걸음을 도와줍니다. / 예비해 주시는 길을 온전히 / 걸어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소서.

헨리. 모어하우스는 자기가 짊어져야 할 어려운 일로 말미암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는 아내에게 줄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층계 아래에 있던 딸 미니에게 “어머니는 어디 있니?”하고 묻자, 소아마비로 기동을 못하는 딸이 휠체어 안에서 대답했습니다.

“2층에요. 그 봉투를 어머니께 가져 갈거죠. 나로 가져가게 해 주세요”

“너는 갖고 갈 수 없지 않니?” 아버지가 그만 이렇게 말하자 딸은 말했습니다.

“내가 봉투를 들고 아버지가 나를 이층 엄마 있는 데로 데려가면 되잖아요.”

“아아, 그렇군.”

그는 그때 구름이 걷힌 듯이 깨달았습니다.

“이 모어하우스가 아니다. 하나님이 해주신다. 이 짐을 안은 채로 나를 예수님께서 짊어져 주시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누구나 이 무거운 짐을 해결하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걱정 근심 무거운 짐 때문에 사람들은 좌절하고 쓰러집니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짐 때문에 자살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우리의 짐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아무도 나의 짐을 덜어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에게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세상의 괴로움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부르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당신의 심령의 휴식이 있는 것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세계 2차 대전 때 영국과 미국의 포로 20.000명이 수용되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무려 8.000명의 포로가 죽었는데 그 사인이 영양실조나, 질병이나, 과로가 아니라 오히려 <절망> 때문이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무거운 죄의 짐 때문에 절망가운데 있었습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시38:4)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만민의 무거운 죄의 짐을 그의 어깨에 지우셨습니다. 그는 만민의 죄 값으로 십자가에 만민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또한 죄의 형벌을 받아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해도 그 죄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하나님 앞에 갚았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어떻게 해결 하셨을까요? 우리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더라고 그 죄는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습니다. 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24)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 18)

그러므로 죄인이 구원을 얻는 길은 자기를 대속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고 죄를 회개하면 됩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네가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의 죄가 용서받아 무죄 선고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새 주인으로 모십시오. 그분께 당신의 인생을 맡기십시오. 그분에게는 절망이나, 불가능이 없습니다.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당신 자신이 당신 인생의 주인이 됨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그 분의 말씀 한마디로도 모든 상황은 극복 될 수 있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37:5)

존 번연의 저서 “천로역정”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무거운 짐을 진 남자가 가파른 언덕 아래 이르렀습니다. 언덕 한쪽 옆에는 어두운 무덤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부정하게 몸을 구부리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르면 오를수록 경사가 급해져 거의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언덕 꼭대기에 올라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밝은 태양이 거무스름한 나무 십자가에 빛을 비추었습니다. 그 순간, 짐을 동여맸던 가죽 끈이 느슨해졌습니다. 끈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무거운 짐이 무게중심을 잃고 땅에 떨어졌습니다. 언덕 아래로 구르며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짐은 점점 빠르게 굴러 열린 무덤의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내려놓으려고 해도 풀리지 않던 짐이 십자가 언덕에 오르자 그의 눈에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그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시81:6)

여러분들은 지금 무슨 문제로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고 하셨는데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온갖 힘을 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23절 이하의 말씀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셨기에 잠시 잠을 주무시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풍랑이 일어서 배가 곳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은 온갖 기술과 힘을 다해서 노를 저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서 주님께 맡길 때 주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해 주셨습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언제든지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세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모든 무거운 짐을 주님께 언제든지 주님께 나아가요 모든 것 주님께 맡기세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다 함께 찬송 부르겠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찬송가 337장, 구 363장)

1.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2.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3.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4.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 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 찬송: 죄짐맡은 우리구주 (찬송가369장, 구 487장)

1.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 걱정 모든 괴름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 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이종혜님의 “무거운 짐들을 지고 계시나요?”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가족들이 아프고.. 힘겨운 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땐 그리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건강이 회복되어 가정에 평안함이 느껴질 때.. 지나간 그 시간들을 다시 끌어안고서 뒤늦게 울었던 기억이 나요.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칠 때, 오히려 냉정해졌던 건 예수님을 부지런히 찾아 갈 길을 찾기 위함이었나 봐요. 예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실 땐 반드시 감당할 힘과 피할 길도 주신다는 그 약속을 믿기 때문이지요. 가끔, 당한 일들을 견디지 못하고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럴 수밖에 없었을까 하지만, 본인이 지는 삶의 무게는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만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에게 예수가 있었다면.. 달랐을 텐데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내가 캄캄한 길을 걸을 때, “종혜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끊임없이 속삭여 주셨고, 그 어둠이 지난 후에는 늘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셨기에,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울 땐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을 바라보며 시선을 고정시키려고 해요. 사랑하는 이여, 끊임없이 다가오는 삶의 무게들을 어떻게 감당하시나요? 그것들을 잊거나 내려놓기 위해 헤매다가 더 무거운 짐들을 안고 힘겨워 하지는 않으시나요? 구원의 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그 이름 예수님을 부르세요. 그대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거예요“

우리는 내가 진 무거운 짐뿐만 아니라 아들과 딸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이웃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 되시고, 우리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십니다. 어려운 이웃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 중보기도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 시대가 그리워하고 있는 성경이 약속하는 안식의 행복, 샤바트의 축복이야 말로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그날의 괴롬은 그날에 족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하늘 아버지의 품에 안긴 그의 자녀들이 사모할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샬롬!

* 기도: 날마다 우리의 무거운 짐, 죄의 짐을 벗겨주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샤바트의 축복(안식)을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의 무거운 짐들을 주님께 모두 맡깁니다. 주님만 더욱 굳게 의지하게 하옵소서. 주만 위해 살게 하옵소서. 주님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을 찬송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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