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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 시편강해 | 시편 126:1-4 | 눈물로 씨를 뿌리자 | 유기성 목사 최근 답변 28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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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6: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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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6 KLB –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기쁨으로 거두리라. 6 울면서 씨를 가지고 나가 뿌리는 자는 단을 가지고 기쁨으로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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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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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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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2/14/2022

View: 6995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시편 126:1-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적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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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12/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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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시편126편 1-6절) – 네이버 블로그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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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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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 성경배경 | 감리교교육마당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눈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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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mcedu.net

Date Published: 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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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Those who sow in tears)

우리나라도 과거 일본에 의해 나라를 잃고 36년간 압제 하에 살았지만, 유대인들은 우리의 2배에 해당하는 70여년을 나라 없는 설움과 절망속에서 고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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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kbchurch.org

Date Published: 7/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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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물에게 말하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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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esiringgod.org

Date Published: 6/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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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6편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 Daum 블로그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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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6/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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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 Author: 선한목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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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2. 2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U-HgB1GHeb8

시편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KRV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KRV: 개역한글 번역본 취소 성경 언어 한국어 언어 바꾸기 {{#items}} {{local_title}} {{/items}} ← 언어 취소 {{#items}} {{local_name}} {{/i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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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적용하기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여전히 살아가면서 아픔과 눈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나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나 여러가지 눈물나는 일들이 많이 있고 속을 들여다보면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 상처도 받고, 더 실망감이 큽니다. 이중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실망도 하지만 “사람이란 원래 죄인이고 원래 허물이 많은거지…”라면서 의연하게 생각해 보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의인은 없다고 하신 것과 같이 이 세상엔 정말 번듯해보이고 믿을만한 사람도 속을 꺼내보면 결국엔 흠 잡을만한 것들이 더 많음을 깨닫습니다. 그러할 때 사람의 허물을 보는 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원합니다. 저들보다 더 죄가 많던 저를 위해 십자가 지셨던 주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긍휼한 마음으로 우리 안에 용서와 사랑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은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주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면 이 어려움 속에서 기쁨의 열매를 거두게 될 날이 올 것을 믿고 기대합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는 주님 앞에 오늘도 나아갑니다.

기도하기

1. 여전히 세상에는 아픔과 고난, 그리고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방법이 아닌 가장 지혜로우신 주님 앞에 저의 문제들을 아룁니다. 주님의 뜻데로 이루소서.

2. 주님 맡기신 자리에서 눈물나고 힘겹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지만 이 시간 사람을 찾아가 하소연 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맞대응 하면서 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원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부질 없음을 깨닫게 하소서. 모든 것 주님께 맡깁니다.

3. 허물뿐인 우리의 죄 때문에 오신 주님, 저 역시나 허물이 많은 존재임을 기억할 때 상대방의 허물을 감싸줄 수 있는 참 된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자가 되게 하소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시편126편 1-6절)

바벨론을 정복한 메대-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일단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주전 538년경이니, 다니엘과 같이 주전 605년에 1차포로가 되어 유배된 이들에게는 약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포로가 되어 유배된 이들에게는 50년 만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70년의 유배기간 동안 바벨론에서 이들이 안정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그 이후에 예루살렘으로 회복시킬 것이라 약속하셨다. 약속대로 유다는 바벨론에서 안정을 찾고 번성했다. 하나님은 약속에 성실하셨다. 해방은 어느 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꿈처럼 찾아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한 세대가 가고, 다음 세대들은 뿌리를 내리고 안정된 삶의 공간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속에서 먼저 돌아온 사람들은 기쁨도 잠시뿐이었다. 어떻게 하여야 올바른 역사의식을 이어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것인가? 새로운 각오와 비전을 가지고 신앙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분주한 상황 속에서 불려진 노래가 시편 126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아볼 때 일제강점기 역사 속에서 8.15 해방을 맞이했던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다. 해방이 되어 해외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돌아와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분주한 상황 속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 성경배경

성경에 보면 씨 뿌리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씨를 뿌린다고 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라서 많은 수확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씨를 뿌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편 126편을 보면 이상하게도 씨를 뿌리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는 자’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씨를 뿌리는데 땀이 아니라 왜 눈물을 흘린다고 했을까요?

분명히 시편 기자는 울면서 씨를 뿌린다고 했습니다. 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고 했을까요?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삿20:1; 삼상3:20; 삼하3:10)라는 표현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가나안을 가리킬 때 그런 표현을 하는데, ‘단에서 브엘세바’라는 말은 가나안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단’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최북단이고, 최남단은 브엘세바라는 것입니다. ‘단’ 위쪽으로는 헬몬산(2,815m)이 있는 산악지대이고, 브엘세바 남쪽으로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네게브 광야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비가 1년에 200mm는 내려야 하는데, 브엘세바는 농사를 겨우 지을 정도밖에 안 되는 양의 비가 옵니다.

아무리 씨를 뿌려도 비가 조금이라도 덜 오게 되면 씨 뿌린 것이 다 말라버려 허사가 되고 맙니다. 씨를 뿌려도 거둔다는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씨를 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데,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먹을 것이라고는 씨 뿌리려고 남겨둔 씨앗 밖에 없는데, 그것을 먹어야 할지 아니면 뿌려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씨를 안 뿌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굶더라도 씨는 뿌려야 합니다. 안 뿌리면 내년에는 거둘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 굶어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씨를 뿌리면서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씨를 뿌리긴 하지만 그것이 허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생각해보면, 씨를 뿌리면서 ‘이것이 열매를 맺을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식물이 자라는데 적당히 비가오고 기온도 식물이 자라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상황이 다릅니다. 비가 조금이라도 덜 오면 그 해 농사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슴을 졸이면서, 기도하면서 씨를 뿌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가슴을 졸이면서 눈물을 삼키면서 씨를 뿌렸는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때를 따라 적당한 비를 내려 주시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씨를 뿌렸는데 하나도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씨를 뿌려야 합니다. 아무리 거두어들이지 못했더라도 올해 씨를 뿌리지 않으면 내년에는 아예 추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금 시편 기자의 상황을 보면, 씨를 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뿌릴 수도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씨앗마저 먹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은 배가 부를지는 모르지만 봄에 뿌릴 씨앗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해에 온 식구가 굶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굶어 죽어가면서도 그 씨앗을 먹지 않고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굶주리며 배고프다고 울면서 보채는데, 그것을 지금 땅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비가 적당히 올지에 대한 보장도 없기 때문에 어찌 보면 헛수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런 심정을 가지고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씨앗을 뿌릴 수 있겠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배고픔에 굶주린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장이라도 남겨둔 씨앗이라도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지만, 그러다가는 정말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땅에 씨를 뿌리는데,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는 시편 기자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성경의 압축파일을 풀어라-이진희 저(쿰란출판사)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Those who sow in tears)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Those who sow in tears)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Those who sow in tears)

5-3-20

본문말씀: 시편 126:3~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When the Lord brough back the captives to Zion, we were like men who dreamed.)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Restore our fortunes, O Lord, like streams in the Negev.)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Those who sow in tears will reap with songs of joy.)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He who goes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carrying sheaves with him.)

[설교 요약]

성도 여러분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시기를 지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회복케 되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민족은 그와 같은 꿈꾸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저는 이번 주와 다음 주, 2번에 걸쳐서 ‘회복과 성숙’이라는 주제로 계속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 눈물로 씨를 뿌린다’는 의미는 무엇을 뜻할까요?

오늘 본문말씀, <시편 126편>은 바벨론에 끌려 갔다가 수십년만에 되돌아온 유대민족이 성전을 올라가며 기쁨이 넘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들은 전쟁포로라는 참혹한 상태에서 70여년만에 갑자기 되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을 무너트린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에 의해서 입니다.

왜 고레스왕이 유대민족에게 자유와 국권을 회복시키는 놀라운 일을 행한지에 대해선 많은 추측이 있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의 깊으신 지혜와 권능의 손길이 있음을 우리 성도들은 놓쳐서는 않됩니다.

남 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대부분의 유대민족이 바벨론 제국에 볼모로 끌려가서 70여년동안 전쟁포로라는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 그 당시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페르시아의 <고레스왕> 에 의해서 이들은 극적으로 고국에 돌아오게 되는 믿기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메시지의 ‘키워드’는 ‘눈물’ (tears)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뿌려야 할 씨앗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매튜헨리>는 이렇게 잘 주석합니다.

“첫째), ‘자신과 이웃의 죄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의 씨앗이다.

둘째), ‘교회의 고난을 생각하여’ 마음이 아파 흘리는 눈물의 씨앗이다.

셋째), ‘말씀과 기도로 감동을 받아’ 흘리는 눈물의 씨앗인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와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눈물의 씨앗을 뿌리게 될 때,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된 삶 사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성도 여러분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시기를 지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회복케 되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폭풍우와 비바람 뒤에 순식간에 하늘에 먹구름이 개이고 구름사이로 한줄기 찬란히 빛나는 햇살을 맞이하듯 평화와 만족의 시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민족은 그와 같은 꿈꾸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바벨론제국에 나라가 멸망당하고 70여년이 넘도록 전쟁포로의 비참한 생활 가운데 신음하던 이스라엘민족은 갑자기 꿈에도 그러던 조국땅, 가나안으로 귀국이 허락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v.1) 라고 시편기자는 그가 동족과 함께 누린 감격을 꿈꾸듯 회상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허락된 고난과 아픔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폭풍우의 밤과 눈물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분의 강하신 팔과 선하신 뜻을 따라 건져 내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꿈꾸는 것과 같은 기쁨을 날마다 누리고 감사로 고백하는 복된 자녀의 삶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지난 2주에 걸쳐서 ‘고통과 징계’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와 다음 주, 2번에 걸쳐서 ‘회복과 성숙’이라는 주제로 계속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프랑스의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장자크 루소>는 이런 유명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Patience is bitter, but its fruit is sweet) 라고. 그렇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서 희망을 품고 그 어두운 고통의 터널을 지나 올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굳이 우리 크리스챤들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진리는 동서고금을 통해 인정하는 진리일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이라는 말씀도 ‘인내하는 자가 누리는 값진 열매’라는 의미에서는 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중심적인 메세지는 단순히 ‘고생 뒤에 낙이 온다’ 든가 ‘인내하는 자에겐 열매가 있다’는 일반적 교훈을 뛰어넘는 것이 있음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 눈물로 씨를 뿌린다’는 의미는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 (background)에 관련한 사항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본문말씀의 의도와 뜻과는 관계없이 나의 주관적이고 내 판단에 근거한 성경묵상은 자칫 엉뚱한 말씀이해와 잘못된 적용이라는 오류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시편 126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을 읽어 나가다 보면, 오늘 말씀 뿐 아니라 10여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소제목이 붙은 시편을 보게 됩니다.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찬양을 인도하는 인도자에 의해서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사실 오늘 <시편 126편>의 저자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 저자는 지금 동족 이스라엘민족과 함께 하나님의 성전을 올라가면서 그들이 누렸던 감격이 얼마나 컸던가 하는 것을 구절 구절 토로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이 시편 126편은 바벨론에 끌려 갔다가 70여년만에 되돌아온 유대민족이 부르는 노래인 것입니다. 남 유다 왕국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고 대부분의 유대민족이 바벨론 제국에 볼모로 끌려가서 70여년동안 전쟁포로라는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 그 당시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페르시아의 <고레스왕> 에 의해서 이들은 극적으로 고국에 돌아오게 되는 믿기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당시 70여년의 포로생활에서 다시 고국으로 되돌아 간 유대인들 중에는 아주 어릴 때 부모의 손을 잡고 함께 왔다가 아직까지 생존한 백발의 노인도 있을 것이고, 그들 부모에게서 태어난 2세 혹은 3세의 자녀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조상들이 섬기던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에서 얘기듣고서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일본에 의해 나라를 잃고 36년간 압제 하에 살았지만, 유대인들은 우리의 2배에 해당하는 70여년을 나라 없는 설움과 절망속에서 고통을 겪었던 것입니다. 전혀 앞을 볼수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바벨론과 싸워 이긴 새로운 강대국의 왕, 고레스가 유대민족에게 놀라운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고레스왕은 유대민족과는 전혀 혈연관계가 없는 이방인이었지만, 그는 취임하자 말자 포로된 유대민족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을 뿐 아니라, 바벨론 느부갓네살왕 때 빼앗아 온 성전의 금과 은그릇과 모든 보물들을 백성들과 함께 돌려보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재건할 수 있도록 칙령을 내려 필요한 모든 도움을 주도록 명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이스라엘민족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야 말로 참되신 신이다’ (에스라 1:2~4)라는 고백을 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방민족의 왕인 고레스왕이 이런 놀라운 행동과 고백을 하는 것인지는 대해서 역사학자들은 여러가지 추측들을 합니다. 고레스왕이 왜 이런 유대인들을 향한 선행을 베푸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처럼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신 도구로 세우신 종임을 알수 있습니다. 고레스왕은 우리 인간의 눈으로 알수 없는 하나님의 그 깊이를 알수 없는 경륜을 따라 훈련되고 준비됨으로서, 때가 되었을때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갑자기 자유케 하고, 고향땅으로 돌려보내고, 꿈에도 그리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올라가면서 꿈을 꾸듯이 기쁨의 찬송을 다시 부르는 순간이 올수 있도록 하나님의 손에서 쓰임 받았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깊고도 풍성하신 지혜와 경륜을 노래한 로마서 말씀이 생각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11:33~34) 라고 말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있던 70여년의 기간동안 유대민족은 핍박과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들을 사로잡아 온자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를 불러 보라고 그들을 놀리고 조롱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겪은 한 시편기자는 이렇게 눈물로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시. 137:4~5)라고. 그들은 떠나온 예루살렘 성을, 시온 땅을 그리움에 사무쳐 불렀던 것입니다. 이제 이들은 조국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느. 1:3)는 느헤미야의 설명을 볼때, 예루살렘은 여전히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곳 예루살렘에서도 악한 무리들로 인해서 남은 유대인들에게 큰 환난과 능욕이 있었고, 예루살렘성은 무너트림을 당하고, 성문은 불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상당수의 유대인형제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v.4) 라고 이들은 간절히 구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오늘 메시지의 ‘키워드’가 되는 ‘눈물’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왜 우리 크리스챤에게 눈물은 중요하며, ‘눈물을 흘려야 할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이 중요할까요? 이것에 대해서 <매튜헨리>는 그의 <시편 126편>주석에서 이렇게 ‘눈물은 마치 농부가 이른 봄에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이 뿌리는 씨’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들이 눈물로 뿌려야 할 씨가 몇가지 있다. 그것은 (첫째), 자신과 이웃의 죄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의 씨앗이다. (둘째), 교회의 고난을 생각하여 마음이 아파 흘리는 눈물의 씨앗이다. 그리고 (셋째), 말씀과 기도로 감동을 받아 흘리는 눈물의 씨앗인 것이다. 이 모든 씨앗은 우리가 마땅히 뿌려야 할 씨앗인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이와 같이 경건한 슬픔으로 눈물의 씨앗을 뿌리게 될 때,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로 죄사함을 얻고 영원한 평강을 누리는 기쁨의 단을 추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지난 시간에 성도 여러분이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린 때가 언제였는지를 질문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과 가족과 친구의 죄와 허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 것이 언제였습니까? 또한 여러분은 신앙 때문에 탄압받고 복음 때문에 수많은 고난을 당하는 여러분이 아는 크리스챤들과 선교사님들을 위해 눈물의 씨앗을 뿌리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말씀과 기도가운데 허락하시는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고 있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v.5~6)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신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함으로 뿌리는 눈물의 씨앗은 반드시 싹이 나고 풍성한 기쁨의 단을 거둘 것이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현재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인내하면서 통과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꿈꾸는 것과 같은 기쁨의 열매를 추수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뢰함으로 성령을 통해 풍성하게 거두는 성도 모두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당신의 눈물에게 말하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5-6)

씨를 뿌리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닙니다. 수확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도 아닙니다. 그 날은 기쁜 날일 수 있습니다. 수확에 대한 큰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은 “눈물로 씨를 뿌린다”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뿌릴 씨를 가지고 울면서 간다” 라고 말합니다. 왜 울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씨 뿌리는 것이 슬퍼서도 아니고 그 일이 힘들어서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씨 뿌리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씨 뿌리는 것과 무관하게 우리를 울게 만드는 어떤 슬픈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 뿌리는 일같이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농작물은 우리의 슬픔이 끝나거나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겨울에 먹을 것이 있으려면 슬픈 일이 있든 없든 밭에 나가 씨를 뿌려야 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면, 시편은 “기쁨으로 거두리라” 약속합니다. 당신은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이 기쁨으로 거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씨를 뿌리는 것이 거두게 합니다, 눈물 때문에 당신이 씨 뿌리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조차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기 교훈이 있습니다: 해야 할 단순하고 간단한 일이 있는데, 당신은 슬픔에 가득 차서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그럴 때, 일을 포기하고 싶은 때, 참고 가서 울면서 그 일을 하십시오. 현실적이 되십시오. 당신의 눈물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눈물아, 나는 너를 느낄 수 있어. 너는 내가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싶게 만들어. 하지만 나에게는 씨를 뿌려야 할 밭(설겆이, 작성해야 할 설교)이 있어.”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렇게 말하십시오. “눈물아, 네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아. 내가 내 일(눈물 및 모든 일)을 하면 결과적으로 축복의 수확을 가져오게 될 거야. 그러니 그래야 된다면 계속 흘러 내리렴. 그러나 나는 믿어(아직 보거나 완전히 느낄 수는 없지만) — 씨 뿌리는 단순한 일이 수확의 단을 가져오리라 믿어. 그러면 너의 눈물이 기쁨으로 바뀔 거야.”

시편 126편 기쁨으로 그 곡식 단 (추석)

성원순복음교회 홍철기목사

2018년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미라클 프럼 헤븐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수의사의 가정의 자녀들은 딸들만 3명입니다. 그중 2째 중간아이인 에나가 배가 불러오는 불치병에 걸리게 됩니다.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이 에나 어머니에게 이렇게 다가와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집안에 죄가 있어서 그래요 회개하셔야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권고가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고 그리고 같이 중보기도하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에나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텍사스에서 보스톤까지 자신의 딸을 고치기 위하여 찾아갑니다. 보스톤에 멕시코 출신의 세계 최고의 의사가 있는데 예약이 몇 달째 꽉차서 진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딸에 대한 치료의 갈망이 무작정 올라가서 그곳에서 접수를 합니다.

그러나 병원의 담당직원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수 없는일이라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려 한번 이야기 해보겠다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병을 고치는 과정속에 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받는 중에 자신의 집 앞 정원에 큰 고목(古木)이있는데 속이 썩은지 모르고 올라가다 그만 그곳에 빠지게 되고 온 가족과 주의 이웃이 함께 기도함으로 병도 치료받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에나는 병중에 있으면서도 전도하게 되고 교회에서 간증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성도들의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나를 더 연단하게 하면 더 강하게 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식물은 자라면서 씨앗을 뿌리고 또 종족을 번식합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것을 소유하고 기쁨을 누리지만 크게 2가지의 것을 얻으려고합니다 1) 소유의 기쁨, 자신이 돈을 많이 소유하고 지식을 많이 소유하는 기쁨입니다. 2) 되고자하는 욕망입니다. 대통령이 되고자하는 욕망, 국회의원이 되고자하는 욕망, 사장과 임원이 되고자하는 욕망입니다. 이 모든 것을 소유하더라도 인생 마지막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뒤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데 네가 무엇을 소유하여 그것을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을 남기는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누리고 먹고 마시고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아무런 보상이 없지만 내가 하나님께 드리고 바치고 섬기는 것이 우리에 하나님의 나라에 보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김혜자 집사님이 가끔씩 주보의 오탈자를 지적해줍니다. 그러면 고친다고 하면서 그것을 노치고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처야할 주보를 강대상에 올려놓았습니다. 제가 정확하게고치게되었습니다. 우리 김혜자 집사님이 주인날 주보 내용중에서 오탈자가 된 부분을 적어서 성전에 올리셨습니다. 오탈자에 대한 제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1. 그때그때 타이핑을 해서 자막을 만들던 시절. “예수는 주, 예수는 중.”

2. “나 누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3. ‘급함보다는 바름과 옳음’을 생각하며 말입니다. 우리 인생의 해프닝은 늘 서두름으로 올 때가 많습니다. 옛 어른들이 했던 말 “바쁠수록 쉬어가고 돌아가라!”이 시간에 우리는 지혜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때 찾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한 박자만 쉬어보세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될 것이며, 당신의 분노도 잠재우게 될 것입니다.

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6편의 시작에 앞서 성경의 제목은 이렇게 달고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여러분들은 주일날 먼저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예배드리는 일부터 시작하니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입니다. 복의 시작은 풍성한 단의 축복은 예배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랫고, 야곱이 그리했으면 다윗이 그리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복을 받은 것이 청교도 시절이나 그리고 지금도 마찮가지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좋은 옷을 입고 마치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교회오는 것을 먼저하는 것입니다.

추석을 맞이하면 가정에 자녀들이 온다고 교회를 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두 번째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때에 이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멀리함으로 하나님께 바벨론을 통하여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70년만에 메데와 바사의 왕 고래스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문제인정부가 교회의 생각과 사상이 다르지만 저는 한주간 동안 문제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의 모습을 보니 감동이 되었습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수 하지 말아야할 것은 늘 전쟁의 위협과 핵의 위협에서 준비는 해야합니다.

우리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였을 때에 우리 외할아버지가 일본에서 무역을 하고 있었는데 배를 사가지고 한국인들과 함께 여수로 들어왔다는 말을 우리 어머니에게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광복의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여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고 예수님을 믿는 저희 아버지를 만나 저희 가족 5남매를 낳게 되었습니다.

추석을 맞이하면 항상 고향인 대전과 광주를 가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고향에 가면 잠자리도 부족하고 여럽지만 그래서도 함께 있는 것 자체로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포로에서 자유를 주시는 주님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역사는 노예생활과 광야생활이 대부분인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출애굽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의 전반부고, 그리고 후반부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노예 생활에서 유수되어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광야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이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인 것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해방이된 것도 아니고 노예에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나라가 독립운동을 열심히는 하였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통하여 우리나라가 독립된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구원의 은혜도 마찮가지입니다.

에베소서 2장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광야라는 말의 어원은 ‘다바르’ 즉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말씀하십니다. 광야는 조요한 곳입니다. 광야는 외롭고 힘든 곳입니다. 우리의 생활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은 언제입니다. 고요한 환경입니다. 외로운 시간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가난해지고 그리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지성소로 들어가게 됩니다. 영어의 광야는 Desert,입니다. 버려진 땅입니다. 히브리어는 광야를 ‘미드바르’라고 합니다. 광야 ‘미드바르’로 표현한 유대인들의 사고에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유대인들의 애착과 설렘이 묻어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바르’라고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를 ‘드비르’라고합니다. 이 단어는 ‘미드바르’에 어근이 모두 같습니다. 서양인들에게 버려진 땅인 광야가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 지성소와 개념이 같습니다.

◉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남방의 시내들 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필리핀처럼 우기와 건기가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남방의 시내가 물이 없는 그냥 와디입니다. 메마른 하천입니다. 그런데 우기철이 되면 시내가 되고 강이 되는 그런 시내들입니다. 은혜의 단비가 흘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입니다. 하나님이 남방시내들 같이 돌려보내 주신 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전혀 복음의 불모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한말 지금부터 130여년전 복음을 들고 오신 선교사님들에 의하여 이땅에 은혜의 단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사의 축복의 단비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그리고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도 은혜의 단비가 내리고 추석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가 쓴 ‘나는 매일 죽노라’ 하는 책을 최근에 읽어보았습니다. 그 안에 참 감동적인 이야기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젊은 목사 시절, 조그마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참한 자매가 있었는데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새벽에 나와서 기도도 많이 하고, 교회 안의 봉사도 남보다 먼저 뛰어 가서 하려고 애를 쓰는 자매였습니다. 그러니 목사가 볼 때 자연히 정이 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눈여겨보는데 그 자매 남편이 문제였습니다. 우편 집배원인데 예수를 안 믿습니다. 게다가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이틀이 멀다 하고 술을 먹고 들어옵니다. 그러면 무조건 아내를 두들겨 패는 겁니다. 한번은 그 남자를 찾아가서 왜 아내를 그렇게 때리느냐고 했더니 ‘당신이 뭔데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느냐? 내가 내 여편네 패는데 웬 간섭이냐? 무슨 말참견이냐?’ 하고 달려들더랍니다. 그러니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지요. 어느 날 그 집 아들이 목사님에게 달려와서 엄마가 죽었다고 울고 야단입니다. 놀래서 달려가 보았더니 술을 먹고 들어와 목침으로 자기 부인을 때린 것입니다. 그래서 기절을 하고 마당에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부인을 등에 업고 보건소로 뛰어 갔습니다.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목사님은 자기가 두들겨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 사람을 예수 믿도록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어느 수요일 저녁 시간쯤 그 남편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선생, 오늘 저녁에 나하고 교회 갑시다.’ 그랬더니 술을 안 먹고 있을 때는 멀쩡하기 때문에 ‘네, 그러지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밥을 먹고 나더니 화장실 갔다 온다며 슬그머니 나가는 것입니다. 도망가는구나 싶어서 급히 따라 갔습니다. 목사님이 자기를 따라오자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는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안 나오는 것입니다. 30분이 되도록 안 나옵니다. 교회에서는 벌써 초종을 치고 있습니다. 초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옛날에는 종을 두 번 쳤습니다. 예비 종을 한번 치고 30분 후에 두 번째 종을 쳤습니다. 그래도 이 목사님은 작심을 하고 떠나지 않고 ‘음, 음’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 남자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정말 지독하네’라고 내뱉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사람의 바지춤을 잡고 교회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태권도 유단자인 두 젊은이들을 양쪽에 앉혀서 예배를 보게 했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준비한 설교는 하지 않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설교를 했습니다. 정말 눈물겨운 감정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인생이 한번 밖에 없는데 어떻게 술을 먹고 아내를 때려 가면서 사는가? 그런 짓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는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다해 갈 때쯤 해서 유심히 그 남자를 쳐다보았는데 울고 있더랍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 사람이 ‘목사님, 오늘부터 내가 예수 믿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내일 새벽부터 새벽종 치는 것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맡겨 줬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부터는 새벽마다 종을 치는 것입니다. 술도 끊고 아내를 때리던 그 나쁜 습관도 고쳤습니다. 집배원이기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전도할 기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편지 왔어요.’ 하고는 그 다음에 반드시 ‘천국에서 또 편지 하나 온 것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람이 됐는지요. 어느 날 목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집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천사 같습니까?’ 목사님이 속으로 ‘이제 알았냐?’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는 신학 공부를 하고 지금은 서울 삼양동 어디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정말로 팔자 고친 사람 아닙니까?하나님을 믿으면 가정에 평화가 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원수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피스 메이커가 될 수 있습니다. 아멘!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이사야 52:7). /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로마 10:14~15).

3. 눈물을 흘리면서 무엇을 뿌려야합니까? 기쁨의 단이 있습니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나님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흙을 통하여 사람을 만들고 보이지 않는 생기를 통하여 우리의 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2:7) 우리는 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고있습니다. 매순간 매일 그것이 발생합니다. 보이는 세계는 우리가 일하고, 사업을 하고 노동을 하면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 주일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그의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계만 보고 살면 영적인 감각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하루 한 시간 정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하여 투자해야합니다. 그것이 새벽예배이고 그것이 나 홀로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인생이란 매일매일 산을 오르내리는 것입니다. 하나의 산을 간신히 넘으면 그보다 더 높은 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매일 크고 작은 산을 오르내리게 하시는 이유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높고 결정적인 ‘마지막 산’을 성공적으로 오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 운명적 마지막 산을 오르기 위한 연습으로서 일상의 삶 속에서 작은 산들을 계속 넘고 있습니다.” 작은 산들은 작은 유혹들이겠지요! 그러나 구원이라는 산을 마지막 순간까지 잘 지키며 살아간다면 매일 넘는 산들은 건강을 위한 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산을 올를 때에 성공의 산의 오를 때에 우리는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치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민주화를 위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도 수많은 역경의 땀과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배고품의 서러움 그리고 부도의 아픔을 우리가 격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기쁨의 단을 얻기 위하여 수많은 날들을 책과 씨름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저는 대원아파트의 대추나무를 늘 생각해봅니다. 매년마다 새벽마다 비와 바람으로 떨어진 대추를 가끔 주서먹습니다. 내년에 내가 꼭 우리 성전 주변에다가 대추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속담에 하나님 앞에서 울고 사람 앞에서 웃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는 것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그리고 기쁨을 단을 거두워들이는 것은 사람 앞에서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말씀입니까? 내가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순간까지 수많은 눈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496장) “비가 오는 것과 바람 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봅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비와 바람을 이겨내야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드려야 합니다.

한국의 추수감사주일이 추석입니다. 하나님이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먼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도 우리나라의 추석과 같이 크게 지내는 명절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자랑하는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102층입니다.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나오는 사람들이 102명입니다. 그래서 102층입니다. 1620년 그해의 긴 겨울을 지나가고 봄에 씨앗을 뿌려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살았던 저희를 용서해 주소서.”

결론입니다.

오늘 거룩한 주일예배는 2018년동안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고 그리고 더 좋으신 하나님이 남은 생애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영광을 더 나타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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