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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 10 장 묵상 | [조정민 목사 설교]양들의 문(요한복음10장1-10절)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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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조정민 목사
날 짜: 2015년 1월 18일
제 목: 양들의 문
본 문: 요한복음 10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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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3월 20일. 요한복음 10장. – 하늘품은교회

요한복음 10장. 양과 목자는 서로를 안다. 1. 주님께서는 양과 목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양의 우리에 들어가되, 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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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8/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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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1절-21절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 구약장이

오늘 매일성경을 큐티하면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양의 관계를 생각하였으며, 그 내용을 정리하여 새벽예배 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매일성경큐티_새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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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9/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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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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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ooyoungro.org

Date Published: 1/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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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목) “요한복음 10:1-21” / 작성: 김광욱

본문 요한복음 10:1-21 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공생애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요한복음에는 일곱 개 표적만 기록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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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12/29/2022

View: 6431

성경 책별 묵상 – 양산중앙교회

(요한복음 10장) 양과 목자. 2021-01-21 06:50:00. 정지훈. 조회수 498. 1. 말씀묵상. 동물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새끼를 낳은 어미의 모성애가 지극하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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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angsanjungang.or.kr

Date Published: 10/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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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1절-10절 큐티: 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 – 블로그

기도하기 🙂 요한복음 10장 1절-10절 주석. 10:1-18 선한 목자 강화. 1-3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당시 근동(아나톨리아와 레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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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6/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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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1-6절 – 성경묵상 – 설향목 – Daum 카페

요한복음 10장1-6절 … 오늘의 말씀 묵상♥ … 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은 양으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선한 목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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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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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요한복음 10장 – 묵상과 기도 – 나눔과섬김의교회

찬송 : 너 시험을 당해(찬송가 342장) 말씀 : 요한복음 10장 1~42절 요한복음은 계속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빛의 자녀가 된 사람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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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sumchurch.sg

Date Published: 2/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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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 목사 설교]양들의 문(요한복음10장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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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요한 복음 10 장 묵상

  • Author: svcforh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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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12. 2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5YsPC34fiw

매일말씀묵상. 3월 20일. 요한복음 10장. > 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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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양과 목자는 서로를 안다.

1. 주님께서는 양과 목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 양의 우리에 들어가되 , 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모든 자는 모두 절도요 강도일 뿐입니다 (1). 절도와 강도가 하는 일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입니다 (10). 오직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목자입니다 (2).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7,9).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양의 우리(교회)에 들어가지 않는 자는 도둑이고 강도입니다.

2. 신구약 성경의 역사와 2000년의 교회 역사에 이런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분별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참 양은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고 목자를 따라갑니다 (3~5,8). 진짜 양들은 도둑과 강도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8). 분별력이 중요합니다 . 누구를 따르는가는 그가 참된 양인지를 드러내 주는 표지입니다 . 교회라고 모두 참된 교회가 아니고 , 목사라고 모두 참된 목사가 아닙니다 . 분별하십시오 .

3. 주님은 당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11,14). 선한 목자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 그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며 (10), 그 일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립니다 (11,15). 그러나 삯군은 돈을 위해 일하고, 위험이 닥치면 양을 버리고 도망갑니다(12). 양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3).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압니다(14). 이 앎은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앎이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서로를 아시는 것과 같은 앎입니다(15).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아직 양의 우리에 들어오지 않은 자기 양들을 알고 계시며, 그들도 인도하실 것입니다(16). 이것은 선교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기 양을 구원하시는 일은 당신 스스로 생명을 내려놓으시는 일이며, 철저하게 주님의 주권적 권세에 속한 문제입니다(17~18). 모든 목사와 장로는 선하신 목자 ,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 선한 목자인가 , 아니면 삯군인가 , 절도며 강도인가를 분별하는 것은 양의 몫입니다 . 참된 주님의 양은 그것을 분별합니다 .

4. 수전절 논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42). 수전절 ( 하누카 ) 은 주전 165 년 , 유다 마카비우스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에 의해서 더럽혀진 성전을 탈환하여 , 재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22). 일종의 독립기념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6) 이 말씀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밝히 알려달라”고 주님께 재촉하듯 물었습니다(24). 주님은 이미 말씀과 행함으로 그것을 증거하셨지만,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이라고 그들의 불신을 지적하셨습니다(25). 불신의 이유는 하나, 그들이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26~27).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당신의 양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에게서 양 한 마리도 빼앗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28). 양들을 주님께 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29).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이십니다(30).

5. 이 말씀을 하심으로써 주님은 당신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 이 말은 유대인의 마음을 자극하여 예수님을 돌로 치려는 긴장이 조성됩니다 (31). 신성모독이라고 판단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인간 지도자도 하나님께서는 신이라고 하셨거늘(시 82:6 참조: 재판장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인간 지도자가 아닌 주님으로써 스스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책잡느냐고 도리어 책망하셨습니다(34~36). 그들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정직하고 깨끗한 눈으로 볼 수만 있었다면 그들은 주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주님이 계심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38).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정직하게 볼 수만 있다면(이 깨닫는 마음이 성령님의 은혜다), 그들은 주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6. 주님께서는 그들이 돌로 치려했지만 영적인 권위로 그들을 피하여 떠나가셨습니다 (39). 그리고 전에 요한이 세례 주던 곳으로 가셨는데, 거기서 많은 사람들은 주님에 대한 요한의 증거가 참되다고 판단하고 주님을 믿었습니다.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않았지만 주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믿음으로써 자신들이 주님의 양임을 스스로 증거한 것입니다(42).

7. 신앙은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 내가 주님을 알고 주님이 나를 아시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14). 이 믿음으로써 내가 주님의 양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양이 아니면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여 목자를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 성경을 배우고 , 교회 행사에 참여하고 , 종교적 행위들을 하지만 , 정작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가 없습니다 . 교회만 다닐 뿐이고 , 교회라는 단체나 목사에게 충성하기만 할 뿐이라면 , 그 신앙은 거짓된 신앙일 수도 있습니다 .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 성경을 배우면 배울수록 , 종교적인 행위들을 하면 할수록 ,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발견되고 , 그 은혜 앞에 납작 엎드려지는 겸손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 입에서 나오는 말로 판단하지 말고 , 여러분의 내면 깊숙한 곳을 살피고 점검하십시오 . 진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람과 단체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주님께 충성하며, 목자의 음성을 아는 주님의 양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옵소서. 또한 목자 되신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양의 마음과 겸손함을 주옵소서. 더 나아가 주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말씀으로 분별하고,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주님을 따라가는 저희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0장 1절-21절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 매일성경큐티 새벽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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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오늘 매일성경의 묵상 본문에서 “양의 문”이며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양의 생명은 목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매일성경을 큐티하면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양의 관계를 생각하였으며, 그 내용을 정리하여 새벽예배 설교로 정리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21절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매일성경큐티 새벽예배설교

요한복음 10장 1절-21절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설교 전 찬송

새 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 새 찬송가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내 말만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내 말만 들으면 돼’라는 말을 함부로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다보면 실패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자기 말을 따르라고 하는 사람 역시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한 때 유행했던 것 중에 ‘비트코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상의 화폐인데 이 코인에 투자하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코인에 투자하기만 하면 부자가 된다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투자한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 말을 듣고 투자를 하지만, 실제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말만을 들으면 성공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사람은 성공이나 인생에 대해서 일부분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와 양

“양”이라는 동물도 제대로된 목자가 없으면 살아남는 일을 실패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을 “양”으로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성경은 양은 반드시 목자의 음성만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만 생명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양의 생명과 풍성한 음식인 꼴은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양을 모르지만 목자는 압니다

왜 양의 생명과 꼴은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까? 방향 감각이 없는 양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양은 어디에 그늘이 있고 물이 있으며 푸른 초장이 있는지 양은 전혀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목자는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곳을 알고 있으며 쉴만한 물가가 어디 있는지 푸른 초장이 어디에 펼쳐져 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양은 모르고 목자는 알고 있기 때문에, 양의 생명은 목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양의 문이 되신 예수님

예수님은 9절의 말씀과 같이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삯꾼 목자가 아니라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함께 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버리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23편에서는 하나님이 선한 목자라고 다윗이 노래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선한 목자이시라고 선언하십니다. 특히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 주시는 분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도 연결됩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지시고 죽기 위하여 이 땅에 대속물로 오신 예수님은, 양들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 달려 있습니다.

2.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목자가 없는 양은 고생하고 기진하게 됩니다. ‘고생한다'(σκύλλω, 스퀼로)는 것은 고통 가운데 있다는 뜻이며 ‘기진하다'(ῥίπτω, 립토)는 말은 버려진 상태라는 뜻입니다. 목자가 없는 양은 고통 가운데 있고 버려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양들에게는 목자가 꼭 필요합니다.

우리의 목자는 오직 예수님

그러니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목자는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예수님 외에 스스로 목자라고 말하는 자는 모두 삯꾼이요 절도요 강도입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버려가며 양들에게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오늘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함께 할 기도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나라를 안정시켜 주옵소서. 우리 자녀들에게 지혜와 믿음을 주소서. 복음 전해야 할 그 사람이 생각나게 하소서.

참고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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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목) “요한복음 10:1-21” / 작성: 김광욱

본문 요한복음 10:1-21

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공생애 많은 표적을 행하셨지만 요한복음에는 일곱 개 표적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표적을 읽고 듣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원자이심’을 믿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표적만을 보고 믿으라는 취지로 요한복음이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도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록함으로 표적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표적만을 바라는 신앙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7대 표적’을 기록함으로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리고 있다면 ‘예수님의 7대 선언’을 기록함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7대 선언’ 중 셋째와 넷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7대 선언’의 특징은 ‘나는 무엇이다’는 형식의 선언문입니다.

요한복음 9장 전반부에는 예수님의 7대 표적 중 여섯째,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치유하신 표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표적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어떤 사람들은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이었고 어떤 사람들은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렇게 표적을 행하겠느냐’고 말하며 예수님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안식일에 치유한 일로 인해 화가 치민 상태였으며 그 맹인과 그 사람의 부모를 소환해서 심문을 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아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완악함을 보시며 그들을 ‘영적 맹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맹인 치유 사건 이후에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신가를 ‘나는 무엇이다’의 형식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동시에 영적 맹인인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종교지도자들에 대해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그들이 누구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1-6절)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성경 원문는 ‘아멘 아멘 레고’입니다. ‘아멘’은 ‘의지하다’ ‘믿다’의 뜻을 가진 히브리어 ‘아만’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진실로’, ‘참으로’, ‘온전하게’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에서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기도나 찬송시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멘’을 두 번씩이나 말씀하시면서 강조하신 것은 양과 도둑의 차이입니다. 양우리(sheepfold) 안으로 들어갈 때 문을 통해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이고 문을 통해 들어가는 자는 ‘양의 목자’입니다. 여기서 도둑과 강도는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문지기가 우리(fold)의 문을 열 때는 양들이 주로 먹이활동을 할 때입니다. 밤 동안 우리(fold) 안에서 잠을 잤던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우리(fold) 밖으로 나갑니다. 목자들은 양의 이름을 불러 밖으로 이끕니다. 요즘 목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가축에 꼬리표를 붙이지만, 고대사회에서 목자는 양과 함께 수십년 내지 평생을 지내면서 모든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붙여주고 모든 양들을 구별해 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우듯이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목자입니다. 목자만 그렇지 않습니다. 양도 자신을 기르는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목장에 가서 소나 양 근처에 접근하려고 하면 가축들은 낯선 사람을 피하며 경계합니다. 가축들도 주인과 낯선 사람을 구별합니다. 오늘날과 달리 예수님 당시 목자들은 양과 오랜 시간을 함께 생활하였기에 양이 목자를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만 들어도 자신을 부르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양우리’의 비유를 듣던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영적 맹인이었던 사람들의 영적 무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답답한 심정으로 그들에게 ‘나는 양의 문이라’고 선언하시며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7-10절)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께서 한번더 ‘아멘 아멘 레고’라고 하시며 7대 선언 중 셋째, ‘나는 양의 문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양우리’는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은 자신임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구원자는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천국의 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도둑이며 강도이므로 양들이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양들에게 온 목적은 양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며 도둑질하고 죽이려는 것뿐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의 정신을 배제한 형식적인 율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쳤기에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문으로 오셨습니다. 양 도둑과 반대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러 오셨습니다. 양이 양우리로 들어가면 안전합니다. 또한 목자를 따라 ‘우리(fold)’ 밖으로 나가 꼴을 먹을 때 풍족함을 누립니다. 우리 역시 천국의 문이신 예수님을 따라 가면 풍족한 삶을 살아가며 구원을 받습니다. 다음은 7대 선언 중 넷째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11-18절)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선한 목자는 양의 문과 다른 표현이지만 의미는 다르지 않습니다. 천국 문이신 예수님, 유일한 중보자이시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단순히 착하고 성품이 좋은 목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입니다. 아무리 양을 잘 기르는 목자라고 할지라도 양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직 예수님께서 양이신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버리거니와’의 원문은 능동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자발적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선한 목자가 아닌 사람은 어떻습니까?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삯꾼은 돈을 받고 일하는 고용인을 뜻합니다. 삯꾼이 양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이유는 목자의 마음을 품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리가 양을 잡아 먹으러 오면 쫓아내지 않고 도망갑니다. 흥미로운 점은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합니다. 이리가 양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신변만 생각하고 양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삯꾼이 도망가는 이유는 양을 돌볼 마음이 원래부터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삯꾼은 바리새인을 포함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교회를 위하여 헌신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면 삯꾼입니다. 자기희생 없이 오직 일반 봉급자들처럼 일한다면 삯꾼입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재차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의 특징은 양을 안다는 것인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양도 선한 목자를 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양인지 염소인지 또는 이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아는 사람은 양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면 양이 아닌 염소나 늑대입니다. 예수님을 지식으로 알 수 없습니다. 율법에 조예가 있는 바리새인들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임을 알고 믿는 사람이 양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실 때 그 부르시는 곳으로 가는 사람이 양입니다. 선한 목자의 음성이 머리에 기억된 사람이 양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들릴 때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움직이는 양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서로 앎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듯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양인 성도가 서로 안다는 것은 연합을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서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데 어찌 서로를 모를 수 있겠습니까?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듣는 양들 중에 우리(fold)에 있지 않는 다른 양들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양들이란 이방인들 중 구원받을 자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다른 양들은 기존 우리(fold)에 있던 양들과 한 무리가 될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안에서는 지역과 인종과 시대와 상관없이 한 공동체가 됩니다.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는데 그 이유가 다시 얻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 일을 성부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하십니다. 다시 얻는 것은 목숨을 다시 얻는 것이며 예수님의 죽음 이후 부활을 뜻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지만 다시 살아나심으로 죄의 권세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발적으로 목숨을 버릴 권세도, 그리고 그 목숨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죽은 양을 다시 살리실 수 있으십니다. 이 땅에 양으로서 죽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때가 되면 다시 살려주십니다.

분쟁이 일어나니(19-21절)

19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듣던 사람들 사이에 다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분쟁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예수님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도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미쳤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양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양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양의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집에 거합니다. 양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때를 따라 꼴을 먹으며 풍족한 삶을 누립니다. 물질적 풍족함이 아니더라도 주님 안에서 누리는 평안의 풍족함을 누립니다. 오늘 하루 ‘양의 문’이시고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꼴을 먹으며 평안의 풍족함을 누리며 고난 중에 위로를 얻으며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양을 도둑질하고 죽이려는 이리가 있는 시대, 이리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삯꾼이 있는 시대에 예수님께서 ‘양의 문’과 ‘선한 목자’가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양의 문’과 ‘선한 목자’라는 말씀을 기억함으로 위로를 받게 하시옵소서.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인도함을 받아 꼴을 먹으며 보호와 풍족함을 누리는 양처럼 저희 역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인도함을 받아 말씀의 꼴을 먹으며 주님의 보호와 풍족함을 누리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목자와 달리 도둑과 강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들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2. 양의 문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 선한 목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4. 양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목자의 음성을 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 수 있습니까?

5.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유대인 중에 분쟁이 일어났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작성: 김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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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1절-10절 큐티: 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

요한복음 10장 1절-10절 본문

양의 우리 비유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 10: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선한 목자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오늘 예수님은 자신을 양을 지키고 인도하는 ‘양의 목자’, 양의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 그리고 ‘양의 우리에 있는 문’에 비유하시면서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신다.

1. 예수님은 양의 목자 (1절, 2절)

– 문을 통해 우리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Jump해서 넘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나 강도지만,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양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양의 목자라고 하신다.

– 여기서 양의 목자는 예수님, 양은 우리 성도들을 의미한다.

2. 예수님은 양의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 (3절)

– 당시 양의 목자는 양의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 역할도 했다. (포스팅 맨 아래 9절에 해당하는 주석 참조)

– 3절에서 예수님을 비유하고 있는 문지기, 우리를 비유하는 그 라는 단어 대신 예수님과 ‘내 이름’를 넣어서 써보니 훨씬 더 의미가 잘 다가온다.

“예수님은 지은이를 위하여 문을 열고 지은이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나니 예수가 자기 양 지은이의 이름을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 약하고 다치기 쉽고 멍청한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시고,

– 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 예수님은 나의 이름을 불러서 인도해 주신다고 한다.

이 말씀을 명심해서 세상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 마음으로,

예수님이 친히 인도하셔서 내 앞에 열어주시는 환경에 감사함으로 들어가고,

나는 늘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 인도해 내 주신다고 하시는 약속을 믿는 그런 확신을 가지기!

4절에도 목자되신 예수님과 양 된 우리 성도들에 대한 비유가 이어진다.

양들은 자기 목자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지만, 타인의 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도망을 간다. (4절~5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이 끝났을 때, 도대체 왜 이 말씀을 자기들에게 하시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6절)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들을 목자로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하는 행동들이 참된 목자로서의 행동이 아니라, 강도 같은 행동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3. 예수님은 양 우리의 문 (7절)

7절과 9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양들이 들어가야 할 유일한 안전한 문이 자기 자신임을 알려주셨다.

양들은 양의 문으로 들어가야만 이리에게 물리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살 수 있다.

우리 또한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야만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고, 이 땅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평안 가운데 살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 같다.

9절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하신 것에서,

구원의 문제 뿐만 아니라 생활하며(들어가며 나오며), 필요한 것을 얻는다(꼴을 얻으리라)는 것도 말씀하신 걸까?

실제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니 마땅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신다는 점 또한 기억하게 된다.

염려하지 않고, 내가 처한 상황에 맞게 내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실 하나님을 신뢰하기 😀

8절과 10절에서 예수님은 자신과 도둑, 강도들을 대조해서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 된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하신 것인 반면,

도둑과 강도들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임을 말씀해주신다.

– 지금 내 상황에서 도둑과 강도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내게 주신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내 안의 게으름,

집중력을 흩뜨리고 두려워하고 염려하게 만드는 사탄의 속삭임들. 이런 것들이 내 안에 평안을 빼앗는 도둑과 강도들이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평안을 빼앗기지 않도록 늘 조심하며, 내 목자이신 예수님께 꼬옥 붙어 살아야겠다 ^^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만 붙들기! 기도하기 🙂

요한복음 10장 1절-10절 주석

10:1-18 선한 목자 강화

1-3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당시 근동(아나톨리아와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등 유럽과 가까운 서아시아 지역을 부르는 말)의 양 우리는 돌이나 가시덤불, 나무 등을 이용해서 대충 돌아가며 막아 논 담이 전부였다. 나무 하나로 문을 열고 닫는 간단한 양 우리가 많았다. 그런데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양(자)이 있었다. 양의 문을 통하지 않고 넘어가는 양은 주인의 허락 없이 드나드는 이리가 아니라면 주인이 만들어 놓은 문으로 들어갔다. 이 양의 문을 통하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십자가를 통하지 않는 불법적인 상태를 가리킨다.(탈자가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이 문장은 일부 편집했어요 ^^)

문지기 주인은 예수가 되며 성도는 양이 되는 것이다. 양들은 각자의 모양과 특징에 따라 주인으로부터 이름이 붙여졌고 양은 모두 주인의 음성을 알고 주인은 양의 이름으로 모두 기억하고 한 마리 한 마리 불러낸다.

4절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양이나 소몰이는 보통 뒤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지형은 절벽이 많고, 맹수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어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목자는 뒤에서 양을 몰지 않고 앞에서 위험을 막아주며 좋은 꼴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마4:19)고 하셨다.

7절 나는 양의 문이라

‘문’은 여러 번 비유적으로 사용되었지만(눅13:24, 행14:27, 고전16:9) 직접적으로 예수께서 적용하신 것은 이곳뿐이다.

8절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선지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선지자들은 장차 올 메시야를 예언했다(사7:14, 미5:2, 슥9:9).) 메시야의 이름으로 먼저 온 거짓 선지자들을 말한다(행5:36, 37). 이들은 신구약 중간시대(B.C. 400-4)에 많이 나타났던 거짓 선지자들이다.

9절 내가 문이니

양들을 날씨가 좋은 때는 방목했는데 그럴 때는 목자도 양과 같이 방목하는 곳에서 잠을 자야했다. 잠을 자는 곳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짝이 따로 없는 양의 출입구에 자리를 잡고 지키고 있으면서 문지기의 역할을 함께 한 것이다.

예수께서 ‘문’을 사용하신 것은 또 다른 구원의 ‘문’이 없으며 유일한 구원의 문임을 알리는 것이다.

들어가면 eijsevlqh/ 과거 능동태로 이미 들어간 상태를 말하고 나중에 나오는 들어가며 eijseleuvsetai는 미완료 중간태 직설법으로 현재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nomh;n(노멘) “꼴을 먹다”로 사용되었다. 예수 안에 있으면 현재에도 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지속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10절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klevpth”(클렙테스) “도적질”은 사람을 점유함으로 말하고 quvsh/(뒤세) “죽이고”는 도덕적인 살인과 사람들에게 불법으로 취한 착취를 말하며 이 단어의 어근 quvw(뒤오)는 “희생하다, 제사 드리다”로 제사를 위해 희생하는 제물을 뜻한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zwh;n e[cwsin kai; perisso;n e[cwsin)를 원어적으로 다시 번역한다면 [생명이 계속되며 더 좋게 계속된다]라고 할 수 있다. e[cwsin의 어근 e[cw(에코)는 “붙잡다, 연속”의 뜻으로 이 세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명이 오히려 더 나은 생명으로, 곧 부활의 생명으로 이어질 것을 위해서 오신 것이다.

요한복음 10장1-6절

2017년 11월 21일 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Hallelujah!

– 오늘은 11월 셋째 주간 화요일을 맞이하는 새 아침입니다.

– 지진으로 인한 국가적 재난의 어려운 때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특히 포항지역과 수험생들의 평안을 위해 어느 때보다 기도하는 계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신실하신 주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사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믿고 찬양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시길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요한복음 10장1-6절 }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 제 목 ♥♥♥

☞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양

♥♥♥본문 이해와 요약 ♥♥♥

☞ 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은 양으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은 대속 죽음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과 선한 목자로 비유하시며 자신의 구속 사역을 설명하셨습니다.

이는 양을 지키고 인도하며 심지어는 양을 위해 자기 생명까지라도 주는 목자로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자신의 구속 사역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완악한 유대인들은 예수의 주장에 반박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양이 아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 결론적으로 선한 목자의 목양하는 자세는 언제나 부득이함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자원함과 기쁨과 따뜻한 사랑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어떤 보수나 이익 권리를 생각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어 앞서가야 하며,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 예수께서는 자신이 진리이심을 증거 하셨으나 유대인들은 오히려 예수를 정죄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예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자만이 자기 양이 됨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믿고 구원받는 자가 결정됨을 의미합니다.

– 성도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양으로서 그리스도를 좇아 행해야 합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➀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다. (요한10장3절)

➁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은 실족하지 않는다.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세우신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 3절에 살펴보면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 각각 인도하여 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양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가 참 목자에게만 우리의 문을 열어주기 때문에 참 목자만이 양의 우리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 여기서 ‘문지기’란 밤에 순번에 따라 양 우리를 지키던 동료 목자를 가리킵니다.

– 그는 밤새 양을 지키다가 다른 동료 목자가 오면 그를 위하여 양의 문을 열어줍니다.

– 우리는 본문에서 이 문지기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 이 문지기는 다만 예수님께서 비유를 이끌어 가시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신학자들 중에는 이 문지기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 ‘성령님’, ‘모세’, ‘세례 요한’ 등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느 것을 선택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 그래도 굳이 문지기를 상징적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그를 참 목자로서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위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 문지기는 낯설고 의심되는 자들에게는 결코 양 우리의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며, 자기와 약속한 동료 목자에게만 문을 열어 줍니다.

–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비유는 주님만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우신 중보자라는 사실을 강조해 줍니다.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천국에서 이 땅으로 보내셨고, 또 그를 다시 천국 문으로 들어오게 하셔서 하나님 보좌 옆에 앉히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대속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보다 먼저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변호해 주시고 간구해 주시는 중보자 사역을 하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유일한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아버지께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결코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중보와 구원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 또한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구원의 은혜를 받는 성도에게만 천국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영생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은 주 예수님의 이름 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은 주신 일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지금 나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천국 문으로 들어가도록 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로 믿고 구원의 확신으로 나의 친척과 친구와 이웃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하루가 되도록 결단해 봅시다.

–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는 성도,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만 천국 문을 열어 주신다는 진리를 우리는 명심합시다.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 각 사람의 사정을 알고 계시는 유능한 목자이십니다.

– 3절을 다시 보면 주님은 참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해 낸다고 증언하셨습니다.

– 유대에서는 양을 목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보통 양을 전문적으로 목축하는 사람들은 약 300마리 이상을 목축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었습니다.

– 그런데 목자는 신기하게도 그 몇 백 마리의 양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이고 그 양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 가령 어떤 양은 ‘얼룩이’라는 이름으로, 또 어떤 양은 ‘검은 귀’라는 이름을 붙여 부릅니다.

– 목자가 수백 마리의 양의 이름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부른다는 것은 그 양의 생김새나 그 양의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우리 예수님은 수억 명의 성도를 양떼처럼 거느리신 큰 목자이십니다.

– 그래도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그 형편과 처지를 아주 세밀하게 살피시고 보살피시는 유능하고 세심한 사랑의 목자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 내가 때로는 예수님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지 않는 듯 느낄 때도 있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이 나의 처지와 어려운 형편을 몰라주신다고 불평할 때도 있습니다.

– 그러나 주님은 나의 대해서 나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고 또 적절한 방법으로 보호해 주시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 오늘은 이러한 사실을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동료에게 전해 보는 하루가 되어 봅시다.

– 다윗은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1-4).

– 그렇다면 지금 나도 예수님의 세심하고 신실한 사랑을 굳게 믿고 어떤 처지에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하게 선교적 사명으로 섬기고 돌봄이 있는 하루가 되도록 결단하는 저와 주님이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

[12월 13일]요한복음 10장

찬송 : 너 시험을 당해(찬송가 342장)

말씀 : 요한복음 10장 1~42절

요한복음은 계속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빛의 자녀가 된 사람들과 의지적으로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거부하고 부인하는 바리새인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어제 묵상했던 9장의 말씀은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거부하던 바리새인들에게 결정적인 치명타를 준 사건입니다. 당시 세계관에서는 날때부터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신의 저주를 받고 태어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에 의해 치료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은 신의 저주를 풀수 있는 분이라는 선언이며, 이 선언은 예수님이 하나님되심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날때부터 맹인이었던 그가 9장 32절과 33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죄가운데서 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이 개념이 오늘 10장의 말씀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은 이미 확실하게 선포되어졌지만, 여전히 바리새인들의 사고에서는 받아들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19절의 말씀을 보시면 유대인중에 분쟁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신다는 분명한 증거가 나타났는데, 이성적으로 그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없기에 내분이 생겨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24절에서는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면 확실히 알려달라고까지 직접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이 2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으로도 증명하였습니다. 32절과 33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선한일로 증명하셨다고 말하고 유대인들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말은 분명 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되심을 알았고, 증거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의지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생각과 예수님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메시야의 모습과 예수님의 외적인 요인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촌구석 출신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삶이 아닌 기득권으로서의 지금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적인 열망때문입니다.

조금 길지만 11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양을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양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싫은 겁니다. 예수님이 약자를 위해서 관심밖의 사람을 위해서 이러한 섬김을 하는 것이 싫은 겁니다. 왜요? 그들이 원한것은 지금의 안락함을 더 유지하는 것, 그리고 로마의 괴롭힘에서 자유로움을 얻어 더 편안함을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사역을 통해서 더 낮아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시기 이전에 선생님으로서 존경을 받으심으로 높아져야하는데, 그렇지 않으십니다. 더 낮아지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17절에서는 목숨도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편안함을 버리고 일부러 불편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싫었던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 그리고 현장 증거를 통해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을 보았지만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누군가를 모함하여 희생양을 삼으려고 하는 첩보영화의 한장면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런데 우리역시 이 유대인과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내 생각과 내 경험에 반하는 주님의 말씀에 이 유대인처럼 반응하는 것입니다. 굳이 이 일을 해야합니까? 꼭 저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까? 반드시 나누고 섬겨야 합니까?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이런 질문들을 마주대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유대인들처럼 고민하고 번뇌합니다. 말씀이 맞는 것은 알지만, 적용하려니 내 손해가 보여지고, 나만 힘들어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의 마음에 말씀이 주어졌지만 여전히 갈등가운데 계신 성도들이 계시다면 오늘의 말씀과 더불어 야고보서의 가르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야고보서 1장 22절에서 25절까지의 말씀을 쉬운성경 버전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행하십시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앉아서 듣기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고도, 일어나면 금방 자신의 얼굴이 어떠했는지 잊어 버립니다. 그러나 사람을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법을 살피는 사람은 들은 것을 잊어 버리지 않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때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머리와 가슴으로 느끼고 행함으로 승리의 하루를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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