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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장 주석 | 요한계시록강해 | 요한계시록 1:1-20 | 주여, 말씀하여 주옵소서! | 유기성 목사 상위 129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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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1장 주석(요약자; 예수사랑) – 네이버 블로그

요한계시록 제 1장 주석(요약자; 예수사랑). ​.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류시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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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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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요한계시록 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아포칼륖시스 예수 크리스투 헨 에도켄 아우토 호 데오스 데잌사이 토이스 둘로이스 아우투 하 데이 게네스다이 엔 타케이 카이 에세마넨 아포스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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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10/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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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 옛신앙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 차례. 요한계시록 서론 · 1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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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ldfaith.net

Date Published: 9/24/2021

View: 1406

01 요한계시록 1장 – 밧모 섬에서 생긴 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아들을 이 죄악 세상에 보내시고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계 1:5)하셨다. 요한계시록은 그런 예수그리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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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3agospel.com

Date Published: 11/17/2022

View: 8956

호크마 주석, 요한계시록 01장 – HANGL NOCR – 한글 신기관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류시스'(* )는 ‘본래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말로 성경에서는 ‘진리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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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1/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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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요한계시록 01장 – HANGL CFC

1:1 중요 내용과 계시의 순서 (요한 계시록 1:1,2) Ⅰ. 이 책의 유래를 말해 주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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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fc.kr

Date Published: 7/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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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7 – 요한계시록 서론

저도 요한계시록에 관심을 갖고 주석을 많이 읽어보았으나, … <1장>의 내용에는 사도 요한이 현재 본 것, 보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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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ovatochurch.com

Date Published: 8/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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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장 설교말씀] “촛대 사이의 인자”(계1:9-20) – 기혼샘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1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촛대 사이의 인자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촛대 사이의 인자”(계 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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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ihonsam153.tistory.com

Date Published: 6/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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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장 (주석집) – 두란노몰

이 책은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설교자를 위해 저술된 주석이다. 또한 신학도들과 요한계시록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를 원하는 평신도들도 염두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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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ll.duranno.com

Date Published: 9/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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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장 설교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1:1-8)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1장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 1:1-8) ♧명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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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dk153.tistory.com

Date Published: 8/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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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요한계시록 1장 주석

  • Author: 선한목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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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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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1장 주석(요약자; 예수사랑)

​ 요한계시록 제 1장 주석(요약자; 예수사랑) ​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류시스'(* )는 ‘본래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말로 성경에서는 ‘진리에 대 한 통찰력'(엡1:17)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의 나타냄'(살후 1:7; 벧전1:7)을 의미한다(Johnson, Lohmeyer). 본문에서 ‘아포칼류시스’가 복수가 아 닌 단수로 언급된 것은 본서가 여러 개의 예언과 환상으로 말하고 있으나 ‘말씀’이라 는 하나의 일치점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 예수 그리스투)에 나타난 속격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목적격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라고 주장한다(Hughes). (2)혹자는 주 격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라고 주장한다(Kraft, Charles, Ladd).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Tenney, Morris). 그 계시 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요한에게 주어진 것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관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 ‘그에게’는 앞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를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계시의 근원 임을 시사한다(Mounce, Morris, Lenski, Johnson). 즉 성부 하나님은 모든 섭리의 계 획자이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의 성취자이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이 성 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속설(從屬說)을 뜻하지 않는다(요3:34,35; 5:20-24; 7:16; 8:28,29; 12:49; 14:10,24; 16:15; 17:8, Alford, Morris). 반드시 속히 될 일을. – ‘반드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이'(* )는 예언적 필연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대로 일이 확실히 성취될 것을 나타낸다(Loh- meyer). 한편 ‘속히 될 일’은 하나님의 계시가 미래에 성취될 사건임을 암시한다(4:1; 22:6; 단2:28,29,45, Johnson). 여기서 ‘속히'(* ,엔 타케이)는 본서에 7회나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으며(2:16; 3:11; 11:14; 22:7,12,20) 이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 나뉜다. (1)혹자는 시간적 성취의 관점으로 해석한다(Vincent, Hengstenbe- rg). (2)혹자는 종말론적 임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계시의 성취의 진행과 확실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Alford, Johnson, Morris, Mounce). ‘엔 타케이’는 예기치 못한 때에 갑자기 성취되는 것을 나타낸다. 즉 ‘엔 타케이’는 인간의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측면에서의 시간적 개념으로(벧후3:8) 하나님의 갑작스런 개입을 통해서 이루 어지는 계시의 성취와 그 확실성을 나타낸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 본 문은 계시의 전달 경로를 나타낸다. (1)하나님. (2)예수 그리스도. (3)근원이신 하나 님께서 계시의 전달자이며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를 통해 자신의 종인 요한에게 전하셨으며, 그 종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자신이 받 은 계시를 전하였다. 여기서 세 번이나 언급되는 ‘그'(* ,아우투)는 ‘그리스 도’를 지칭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본문의 주 동사인 ‘에세마넨'(* , ‘지시하신 것이라’)의 주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모든 계시의 근원이 하나님 이시지만 하나님께 계시를 전달받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종들, 천사, 그리고 종 요한 에게 전달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한편, ‘그 천사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 앙겔 루 아우투'(* )는 ‘그 천사를 통해’라는 의미로 천사의 매개적 역할을 나타내며(22:6,16), ‘그 종 요한에게’의 헬라어 ‘토 둘로 아우 투 요안네'(* )는 수단이나 기구를 나타내는 여 격이 사용되어 요한이 계시 전달의 인간적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본 서의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기원하여 참됨 중보자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천사와 인 간적 도구로 말미암아 수신자들에게 전달된다(Sweet, Moffatt, Ironside). ​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 라. –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동일한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즉 계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증거되어 나타났음을 나타낸다. 즉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직접하신 증거이 며,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낸다. 또한 본문에서 요한 자신이 본 환상과 예수 그리스 도의 증거가 동일시됨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신약 시대 사도들과의 연속성을 엿볼 수 있다(Johnson, Plummer). ​ =====1:3 본서에는 일곱 부류의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진술이 나타난다. (1)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 (2)주 안에서 죽는 자(14:13). (3)깨어 옷을 지키는 자(16:15 ). (4)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된 자(19:9). (5)첫 부활에 참여한 자(20:6). (6)하 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22:7). (7)두루마리를 빠는 자(22:14). 본절에 나타난 사람 은 일곱 부류의 복 있는 사람중 첫번째에 해당된다. 이 예언의 말씀을…복이 있나니. – ‘이 예언의 말씀’은 본서가 예언서임을 나타내 는 것으로(10:11; 22:6,7,10,18,19) 본서의 말씀이 예언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영 적, 윤리적 권면과 권고를 포함한 현재적 경고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Johnson).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과 관련하여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이 있음을 기 술한다. 읽는 자.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호 아나기노스콘'(* )은 관사 있는 단수 분사로 초대교회에서 회중을 대표하여 성경을 읽던 자를 나타낸다. 듣는 자들(* , 호이아쿠온테스)과 지키는 자들(* , 테룬테스). 이 두 부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모두 복수로 예언의 말씀 을 듣고 지키며 행하는 회중들을 나타낸다(눅4:16; 행13:15,21; 골4:16, Johnson, Zahn, Robertson). 요한은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유대인들의 관습을 통해서 는(느8:2,3; 눅4:16; 행13:15; 살전5:27)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 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때가 가까움이라. – 본문은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 이다.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로스'(* )는 보편적인 시간을 나타내 는 ‘크로노스'(* )와는 달리 결정적인 섭리를 나타내는 종말론적 시각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승천한 이후부터 다시 오실 재림의 때까지는 인간 편에서 볼 때 항상 임박한 긴장(緊張)의 시간이며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정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마24:3-51; 요21:22, Jo- hnson, Mounce). ​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 본문에서 아무런 수식어 없이 ‘요한’이라고 언급한 것은 서신을 받는 일곱 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서로의 사정 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요한이 아시아 교회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Mounce). 한편 ‘아시아에’는 본래 로마의 영토를 지칭하는 것으로 아타톨리아 고원에 이르는 소아시아의 서편 지역을 가리킨다(Morris, Kiddle). 당시 아시아 주에는 ‘드로아'(행20:5), ‘골로새'(골1:2), ‘히에라볼리'(골4:13) 등 많은 교 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일곱 교회에만 편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일곱 교회가 역사상의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Seiss, Kuyper). (2)혹자는 ‘일곱’이란 숫자가 완전 수이므로 계시록에 언급되는 다른 일곱이 라는 문학적 양식을 따른 것이라 주장한다(Morris, Johnson, Moffatt, Greijdanus). (3)혹자는 일곱 교회가 처한 황제 숭배화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Mounce)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 견해는 타당하다(레4:6,17; 8:11,33; 민19:12; 롬12:6-8; 약3:17, Ford, Vincent, Canon).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 아포 호 온 카이호 엔 카이 호 에르코메노스). ‘말미암아’의 뜻을 가진 전치사 ‘아포’ (* )는 보통 소유격 명사와 함께 쓰임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성품 을 나타내는 주격 명사와 함께 사용되었다. 이런한 표현 방법은 본서에서 자주 나타나 는 것으로(8절; 4:8; 11:17; 16:5) 요한이 헬라어 문법상 어긋나는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영원불변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신적 성품을 손상시키지 않고 경외하려는 동시에 서 비롯되었다. 즉 이러한 표현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잘 묘사하려는 요 한의 의도를 암시한다(Greijdanus, Morris, Johnson, Ladd).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전 능하신 분이다(8절; 4:8).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 ‘일곱 영’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일곱 천사라고 주장한다(Beasley-Murray, Mounce). (2)혹자는 성령이라고 주장한다(Ladd, Johnson, Morris).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전자의 경우 본절과 다음절에 나타나는 삼위일체론적 인사말에 어긋나며 본서에 나타나는 ‘영’은 천사가 아니라 하 나님의 영이나 마귀의 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령을 ‘일곱 영’으로 표현한 것은 성령의 속성과 권능이 완전(完全)하고 성결함을 시사한다(3:1; 4:5,6; 5:5; 슥 3:9, Johnson, Morris, Robertson, Barclay, Lenski, Ladd). ​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 본문은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수식하는 첫번째 수식구로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충성된 증인으로(시89:37; 사55:4) 새 언약을 성취시킨 것이었 음을 나타낸다(Morris, Johnson). 즉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까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시킨 하나님의 충성된 증인이었다(Ladd). 이러한 사실은 당시 박해와 고난에 처해 있던 일곱 교회의 수신자들에게 위로와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이유가 되 었다(2:13; 11:3; 17:6, Mounce, Johnson).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 ‘먼저 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프로토토 코스'(* )는 바울의 경우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나 통치자의 의미로 사용한 반면(골1:15),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가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하여 그리스도께서 모든 죽은 자들에 대하여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 하고 있다(시89:27, Ladd, Mounce, Johnson).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땅의 임금들의 머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르콘 톤 바실레온 테스 게스'(* ) 는 문자적으로 ‘땅의 왕들의 통치자’를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을 표현 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뛰어나시며 모든 권세자들을 지배하시는 주권적 통 치자이심을 시사한다(6:15; 17:14; 19:16; 시89:27; 빌2:9,10, Johnson, Mounce, mor- ris, Ironside).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 )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선물 을 의미하며(롬1:7; 고전1:3), ‘평강’의 헬라어 ‘에이레네'(* )는 히브리인 들의 인사말로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풍요로운 영적 상태와 화목을 가리킨다. 이 인사는 평범한 인사와는 달리 하나님의 축복이 종적, 횡적으로 임할 것을 기원하는 것이다(롬1:7; 고전1:3; 엡1:2; 벧후1:2, mounce, Craft, Martin, and Kiddle).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사랑하사’의 헬라 어 ‘아가폰티'(* )는 현재 분사로 계속되는 사랑을 나타낸다. 이 ‘사 랑’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Mounce). 한편 ‘해 방하시고’에 해당되는 헬라어 ‘뤼산티'(* )는 부정 과거 분사형으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죄에서 해방하신 공효(功 效)를 시사한다(5:9; 마20:28; 요8:34-36; 갈3:13; 딤전2:6; 히9:12; 벧전1:18,19, Moffatt, Mounce, Lenski). 이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바와 같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 참하게 된다(12:11). ​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 ‘그 아버 지 하나님을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나 타내며(22:3; 엡1:6) 구원 사역이 삼위 하나님의 협동적 사역으로 수행되나 근원적으 로는 성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요6장). 한편 ‘나라와 제사장’에 해당 하는 헬라어 ‘바실레이안, 히에레이스'(* , )는 문자적으로 ‘나라, 곧 제사장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제사장들 의 집합체를 가리킨다. 이는 출19:6과, 벧전2:9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 의 왕됨과 제사장됨을 시사한다(Beckwith, Morris, Lenski).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영광’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돝사'(* )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으로(출33:9; 겔 1:28)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삼위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본문의 경 우에는 관사와 함께 사용되어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관한 찬양과 공경의 의미를 함축 하고 있다(Mounce). 그리고 ‘능력’의 헬라어 ‘토 크라토스'(* )는 인간이 갖는 권리나 내적 능력보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능력을 나타낸다(벧전 4:11). 한편 ‘세세토록’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은 문자적으로 ‘세대들의 세대들에’라는 의미로 ‘영원성’을 나타낸다(18절; 4:9,10; 5:13; 7:12; 10:6; 11:15; 15:7; 19:3; 20:10; 22:5, Lenski). 요한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이 수신자들에게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기 원하고 있다. ​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본문은 단7:13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 림을 나타낸다. 이것은 예수께서 친히 확증하신 바며(마24:30; 26:64) 사도 바울에 의 해 입증된 재림의 모습이다(살전4:17). 여기서 재림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구름은 그리 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위엄을 나타내는 초자연적 현상인 듯하다(Morris, Lenski, Johnson).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 본문은 슥12:10의 예언을 반영한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공개성을 나타낸다. 현재는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실로 인식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만 그리스도의 재림 때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눈으로 확연히 보게 될 것이다(Ladd). 한편 ‘그를 찌른 자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Moffatt, Plummer, Johnson, Ladd). 그리스도는 이런한 자들에게도 자신의 재림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박해자를 비 롯한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재림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주적 주권을 소유한 분으로서 온 세상을 공의롭게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 본문은 심판의 보편성을 나타낸 다.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회개치 못한 다들의 비참한 상태를 나타낸다. 본문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회개치 않은 불신자들이 당할 두 려움을 극명하게 시사한다(Morris, Mounce, Ironside). 그러하리라 아멘. – ‘그러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나이'(* )는 동의를 나 타내는 표현으로 히브리어 ‘아멘'(* )과 같다. 요한은 동의어인 ‘그러하리라’와 ‘아멘’을 이중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종말적인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한다 (Greijdanus, Morris, Mounce). ​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 ‘알파’는 헬라어 문자의 첫 글자 며,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시작인 동시에 마지막이 되셔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시대와 세대의 주가 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창조 주와 심판주로서 모든 주권을 소유하고 계신다(21:6; 22:13, Beasley-Murray,Charles, Robertson). 이런한 하나님이 보증하신 그리스도의 재림은 확실한 것이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 본문은 4절의 반복으로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 즉 ‘영원히 자존’하신 하나님의 성품을(출3:14) 묘사한다. 이는 구체적 으로 하나님께서 자체 안에 존재의 기반을 가지고 계셔서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 하시며 영원 불변하신 심판자이심을 나타낸다(Johnson). 그 하나님은 장차 오셔서 자 신이 섭리하신 심판을 이루실 것이다(Ladd).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전능한 자’의 헬라어 ‘판토크라토르'(* ) 는 본서에 9회나 언급되는 중심 단어로 문자적으로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나타낸다. 이것은 곧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자가 분명히 가져야 될 속성이다(Johnson). ​ =====1:9 나 요한은. – 요한은 다시금 자신을 밝혀 하나님과 자신과 수신자들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요한이 자신을 ‘사도 요한’이라 밝히지 않는 것은 아시 아의 그리스도인들과 친분이 있음을 암시한다(22:8, Johnson).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 요한은 본문에서 자신 과 수신자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너희 형제요…동참하는 자라’에 해당하는 헬라 어는 ‘호 아델포스 휘몬카이 슁코이노노스'(* )로 하나의 관사 ‘호’에 의해 두 가지 칭호 즉 ‘형제’와 ‘동참하는 자’가 연결되어 있다. 이는 ‘형제’인 까닭에 ‘동참하게 된다’는 인과 관계를 드러낸다. 한편 ‘예수의’에 해 당하는 헬라어 ‘엔 예수'(* )는 문자적으로 ‘예수 안에서’란 의미 로 ‘주 안에서’란 바울의 사상과 상통하며, 문법적으로는 ‘환난’과 ‘나라’와 ‘참음’의 세 말에 공통적으로 연결되어 ‘환난’과 ‘나라’ 그리고 ‘참음’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 음을 시사한다(Moffatt, Mounce). 여기서 ‘환난’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해 온전히 충 성할 때 나타나는 고난을 가리키며(요16:33; 행14:22; 딤후3:12) ‘나라’는 메시야적 통치의 축복을 말하며, ‘참음’의 헬라어 ‘휘포모네'(* )는 ‘휘포'(* , ‘아래에’)와 ‘메노'(* ,’머물다’)의 합성어로 충성된 자들에게 요구되 는 적극적인 인내를 가리킨다. 이것은 요한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축복을 기다 리는 가운데 환난 속에서 인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Johnson, Ironside).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인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와 관련되어 요한의 밧모섬 행(行)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갔다고 주장한다 (Spitta). (2)혹자는 하나님의 말씀, 곧 계시를 받기 위해 갔다고 주장한다(Weiss, Bleek, Lucke). (3)혹자는 복음 전파에 대한 박해로 말미암아 유배되었다고 주장한다 (Moffatt, Charles, Vincent, Plummer, Johnson). 세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 때 에베소 지방에서 전도하던 중 밧모 섬에 귀양갔다가 후에 귀환(歸還)하였다고 역사가와 교부들이 전하기 때문이다 (Irenaeus, Clement, Eusebius). ​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 ‘주의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테 퀴리아케 헤메라'(* )는 문자적으로 주께 속한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식후 첫날'(막 16:2; 눅24:1; 요20:19; 행20:7) 혹은 ‘매주일 첫날'(고전 16:2)과 같은 뜻이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유대교의 안식일이었던 토 요일이 사도 시대부터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로 대치된 것을 가리킨다(요20:19; 행 20:7; 고전16:2, Morris, Lenski, Ladd). 한편 ‘성령에 감동하여’의 헬라어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 )는 문자적으로 ‘내가 성령 안에 있었다’는 뜻으로 이는 단순히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황 홀한 상태에 있게 되었음을 암시한다(4:2; 17:3; 21:10; 행10:10; 11:5, Lohmeyer, Ladd, Johnson,Mounce).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나팔소리’는 구약 시대에 백 성을 불러 소집하거나 군사적으로 경고할 때(겔33:6), 전쟁 때(겔7:14), 그리고 특별 한 의미로 절기 때(레23:24) 사용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한 징표로 나타난다(마24:31; 살전4:16). 본서에서 70회나 사용되며 종말론적인 특성 을 나타내는 본문의 ‘나팔소리’는 심령들을 일깨우는 천사의 음성으로 이해된다 (Morris, Mounce, Ladd). ​ =====1: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 ‘써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랖손'(* )은 부정과거 명령형으로 즉각적인 이행을 촉구하는 표현이다. 이는 특별히 히브 리 예언 방식으로, 본서에서 12회나 반복되어 사용됨으로 본서의 기록이 하나님의 권 위로 되었음을 시사한다(Morris, Robertson).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 내라 하시기로. – 본문에 제시된 교회의 명칭은 1:4에서 언급된 ‘일곱 교회’를 가리키 는 것으로 각각의 교회에 보내진 특별한 메시지는 2,3장에서 동일한 순서로 나타난다 (‘일곱 교회’에 대해서는 2,3장의 주석 참조). 특별히 기록된 말씀을 일곱 교회에만 보내라고 한 것은 그 도시들이 소아시아 중서부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며(Zean) 동시에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가 보편적으로 모든 교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Mounce, Lenski). ​ =====1:12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 요한이 처음으로 본 것은 슥4:2의 환상과 비슷한 일곱 금 촛대로 여기서 ‘촛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뤼크니아스'(* )는 세워놓 거나 달아메는 ‘등잔불’을 가리킨다(출 25:31; 왕상7:49; 슥4:2). ‘일곱 금 촛대’는 스가랴서에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반면에(슥4:2) 본문에서는 수신자들인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나아가 전세계의 보편적인 모든 교회들을 나타낸다(20절, Mounce, Johnson, Kiddle). ​ =====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 ‘인자 같은 이’란 단7:13,14을 반영한 것으로 계시 자이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고양시켜 표현한 것이다(행7:56).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 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은 물론 영광으로 고양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Beas ley-Murray). 그리스도가 성전의 촛대 사이로 움직이시는 것은 그의 대제사장적 임재 와 교회의 머리되심을 시사한다(Moffatt, Mounce).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 ‘발에 끌리는 옷’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 착용한 예 복으로(출28:4; 레16:4; 사6:1)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의 권위와 위엄을 시사한 다(Johnson, Mounce). 가슴에 금띠를 띠고. – 이 또한 대제사장 혹은 왕의 예복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출28:8; 29:5) 권세를 가지신 메시야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렇듯 요한은 구약성경에 묘사된 대제사장과 왕의 모습을 빌어 그리스도의 위엄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다(Bruce, Johnson, Mounce, Morris, Ironside). ​ =====1: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 본문은 단7:9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성경에서 흰 색깔은 항상 ‘권위’와 ‘영광’과 ‘순결’을 상징하기에 본문은 그 리스도의 성결과 영원성 혹은 그의 영원한 신성을 상징한다(사1:18, Mounce, Kiddle). 그의 눈은 불꽃 같고. – 이는 단10:6을 반영한 것으로 그분의 전지성으로 모든 악 을 꿰뚫어 아시는 날카로운 공의의 눈을 상징하며(Vincent) 아울러 승리로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심판을 시사한다. ​ =====1: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 ‘빛난 주석’의 헬라어 ‘칼콜리바노'(* )의 어원(語源)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금 같은 청동’ 혹은 ‘양질의 합금이나 놋쇠’로 이해된다(계2:18). 그리스도께서 빛난 주석의 발을 가지셨다는 사실은 초림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힌 발’과는 달리 재림 때에는 영광 과 권능으로 오셔서 모든 더러운 무리들과 반대자들을 밟아 심판할 것을 상징한다(단 10:6, Lenski, Mounce).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 본문은 10절의 ‘나팔소리 같은’에 뒤이어 나 타나는 음성에 대한 묘사로 겔43:2에 똑같은 표현이 나온다. 이는 불가항력적인 권위 와 위엄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음성이 모든 죄인들에게 두려움을 줄 무서운 음성임을 시사한다(시29:3,4). ​ =====1:16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 ‘오른 손’은 권세있는 능력 혹은 보호와 안전을 상징한다(출15:6; 사41:10; 행2:33). 그리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뜻하 며(20절) 더 나아가 전세계에 흩어진 모든 교회의 사자들을 상징한다. 따라서 본문은 일곱 교회 즉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과 보호하심 가운데 있음을 시사한다 (Lenski, Johnson, Mounce).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 이는 신,구약 성경에서 흔히 사용된 비유이 다(사11:4; 49:2; 눅2:35; 엡6:17; 히4:12). 혹자는 ‘날선 검’을 ‘율법과 복음’의 양 면으로 해석하기도 하나(Tertullian, Victor) 본문은 단순히 날선 검의 심판적 기능을 묘사한 것으로 만국을 심판하시는 메시야의 심판권을 시사한다(19:15; 살후1:8, Charles, Mounce, Walvoord).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 ‘얼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프시스’ (* )는 ‘외관’으로 이해되므로(Lenski, Mounce) 본문은 환상 전체에 대한 결 론적 묘사로 보인다. 이것은 마치 과거에 변화산에서 순간적으로 체험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모습과 유사한 것으로(마17:2; 막9:3, Plummer) 그리스도의 신성한 영광과 우 월함을 시사한다(Johnson). ​ =====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 본문은 인간이 사도 요한 이 그리스도에 대한 초자연적인 환상을 보고 두려움과 떨림에 압도되었음을 시사해준 다. 이는 계시를 받을 때 흔히 일어나는 모습으로(수5:14; 겔1:28; 단8:17; 10:15; 마 176; 행26:14) 인간의 연약성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느끼는 두려운을 시사하며 일반적 인 공포와 전율의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Greijdanus, Lenski, Moffatt).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흔히 제자들을 안심시킨 것과 같이(마14:27; 17:7; 막 6:50) 인자한 모습과 음성으로 요한을 위로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나는 처음이요 나 중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 에이미 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 )는 구문상 강조 용법으로 ‘처음과 나중인 바로 나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8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나타난 ‘알파와 오메가’와 동일한 것으로 8절에서는 하나님에게 적용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칭호로 나타낸 다. 그리스도는 이렇듯 자신의 칭호를 통해 위로하심으로 요한에게 절대적인 확신을 주고 있다(Mounce, Zahn, Ironside). ​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 ‘곧 산 자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호 존'(* )은 앞절의 ‘처음과 나중’이라는 칭호를 보충하는 언급으로 늘 살아있는 ‘영원성’을 나타낸다(출3:14; 시42:2). 한편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는 십자 가에서 죽으신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생명을 제 한시킨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수여할 수 있는 구속사적 순종의 사건이다(요 5:26, Lohmeyer).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 ‘음부’에 해 당하는 헬라어 ‘하두'(* )는 히브리어 ‘스올'(* )을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육신의 죽음 상태와 무덤 혹은 죽은 영혼들이 가는 곳을 가리켰 으며(왕상2:2,9; 욥3:13; 30:23; 시89:48; 사14:9; 겔32:28, Johnson, Greijdanus) 신 약성경에서는 죽은자들이 있는 곳(행2:27,31), 혹은 죽어서 악인들이 거하는 곳을 의 미하였다(20:13,14; 눅16:23).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부활을 통해 사망의 영 역을 정복하시고(고전15:54,55, Vincent) 영원히 살아계셔서 죽음의 영역을 주관하는 열쇠 곧 권능과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 ​ =====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본문은 ‘네 본 것’ 과 ‘이제 있는 일’ 그리고 ‘장차 될 일’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본서 의 내용을 3구분하여 ‘네 본 것’은 1장의 ‘인자에 대한 환상’을, ‘이제 있는 일’은 2,3장에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현재 상태를, ‘장차 될 일’은 4-22장까지의 내용 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Charles, Sweete, Lenski). (2)혹자는 본절의 주동사가 ‘기록 하라’임에 주목하여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현재와 미래에 될 일’로 구분하여 해석한다(Mounce, Moffatt, Johnson).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요한이 보고 기록해야 하는 것은 본서의 전체이다. ​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 ‘비밀’에 해당하는 ‘뮈스테리온'(* )은 원래 ‘가둔다’ 혹은 ‘닫는다’는 의미의 ‘뮈 오'(* )에서 파생된 말로(10:7; 17:5,7) 단순히 ‘신비롭다’는 개념이 아니라 ‘상징적인 환상에 대한 내적인 의미’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셔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을 가리킨다(단2:7; 골1:26; 살후2:7, Charles, Robertson).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사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앙겔로이'(* )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1)혹자는 교회 에서 가장 우세하고 지배적인 정신(the prevailing spirit of the church)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Mounce). (2)혹자는 ‘교회 자체’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Bleek, Sweete). (3)혹자는 일곱 교회의 감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Zahn, Weiss) (4)혹자는 이 사자가 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점을 들어 교회에서 책임을 맡은 천사들이 라 주장한다(Johnson, Moffatt, Charles, Rist). 이러한 견해들 중 마지막 견해가 타 당하다(단10:13,20.21). 한편 촛대로 상징된 일곱 교회는 일차적으로 소아시아의 선택 된 교회를 말하나 본질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세계의 모든 교 회를 가리킨다(엡3:10).

헬라어 요한계시록 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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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륖시스 예수 크리스투 헨 에도켄 아우토 호 데오스 데잌사이 토이스 둘로이스 아우투 하 데이 게네스다이 엔 타케이 카이 에세마넨 아포스테일라스 디아 투 앙겔루 아우투 토 둘로 아우투 요안네

개역개정,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새번역,1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 계시는 곧 일어나야 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종 요한에게 이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 ㉠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일들의 기록입니다’

우리말성경,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곧 일어날 일들을 자기의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천사를 통해 자기의 종 요한에게 이것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영어NIV,1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영어NASB,1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to His bond-servants, the things which must soon take place; and He sent and communicated it by His angel to His bond-servant John,

영어MSG,1 A revealing of Jesus, the Messiah. God gave it to make plain to his servants what is about to happen. He published and delivered it by Angel to his servant John.

영어NRSV,1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헬라어신약Stephanos,1 αποκαλυψις ιησου χριστου ην εδωκεν αυτω ο θεος δειξαι τοις δουλοις αυτου α δει γενεσθαι εν ταχει και εσημανεν αποστειλας δια του αγγελου αυτου τω δουλω αυτου ιωαννη

라틴어Vulgate,1 apocalypsis Iesu Christi quam dedit illi Deus palam facere servis suis quae oportet fieri cito et significavit mittens per angelum suum servo suo Iohanni

히브리어Modern,1 חזון ישוע המשיח אשר נתן לו האלהים להראות את עבדיו את אשר היה יהיה במהרה והוא הודיע בשלחו ביד מלאכו לעבדו יוחנן׃

성 경: [계1:1]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머리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류시스'(*)는 ‘본래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말로 성경에서는 ‘진리에 대한 통찰력'(엡1:17)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의 나타냄'(살후1:7; 벧전1:7)을 의미한다(Johnson, Lohmeyer). 본문에서 ‘아포칼류시스’가 복수가 아닌 단수로 언급된 것은 본서가 여러 개의 예언과 환상으로 말하고 있으나 ‘말씀’이라는 하나의 일치점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예수 그리스투)에 나타난 속격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목적격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라고 주장한다(Hughes). (2)혹자는 주격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라고 주장한다(Kraft, Charles, Ladd).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Tenney, Morris). 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요한에게 주어진 것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관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 ‘그에게’는 앞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를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계시의 근원임을 시사한다(Mounce, Morris, Lenski, Johnson). 즉 성부 하나님은 모든 섭리의 계획자이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의 성취자이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속설(從屬說)을 뜻하지 않는다(요3:34,35; 5:20-24; 7:16; 8:28,29; 12:49; 14:10,24; 16:15; 17:8, Alford, Morris).

반드시 속히 될 일을. – ‘반드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이'(*)는 예언적 필연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대로 일이 확실히 성취될 것을 나타낸다(Loh-meyer). 한편 ‘속히 될 일’은 하나님의 계시가 미래에 성취될 사건임을 암시한다(4:1; 22:6; 단2:28,29,45, Johnson). 여기서 ‘속히'(*,엔 타케이)는 본서에 7회나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으며(2:16; 3:11; 11:14; 22:7,12,20) 이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 나뉜다. (1)혹자는 시간적 성취의 관점으로 해석한다(Vincent, Hengstenbe-rg). (2)혹자는 종말론적 임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계시의 성취의 진행과 확실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Alford, Johnson, Morris, Mounce). ‘엔 타케이’는 예기치 못한 때에 갑자기 성취되는 것을 나타낸다. 즉 ‘엔 타케이’는 인간의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측면에서의 시간적 개념으로(벧후3:8) 하나님의 갑작스런 개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계시의 성취와 그 확실성을 나타낸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 본문은 계시의 전달 경로를 나타낸다. (1)하나님. (2)예수 그리스도. (3)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계시의 전달자이며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를 통해 자신의 종인 요한에게 전하셨으며, 그 종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전하였다. 여기서 세 번이나 언급되는 ‘그'(*, 아우투)는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본문의 주 동사인 ‘에세마넨'(*, ‘지시하신 것이라’)의 주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모든 계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 계시를 전달받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종들, 천사, 그리고 종 요한에게 전달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한편, ‘그 천사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 앙겔루 아우투'(*)는 ‘그 천사를 통해’라는 의미로 천사의 매개적 역할을 나타내며(22:6,16), ‘그 종 요한에게’의 헬라어 ‘토 둘로 아우투 요안네'(*)는 수단이나 기구를 나타내는 여격이 사용되어 요한이 계시 전달의 인간적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본서의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기원하여 참됨 중보자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천사와 인간적 도구로 말미암아 수신자들에게 전달된다(Sweet, Moffatt, Ironside).

호스 에마르튀레센 톤 로곤 투 데우 카이 텐 마르튀리안 예수 크리스투 호사 에이덴

개역개정,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새번역,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습니다.

우리말성경,2 요한은 그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입니다.

가톨릭성경,2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영어NIV,2 who testifies to everything he saw–that is, the word of God and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영어NASB,2 who testified to the word of God and to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even to all that he saw.

영어MSG,2 And John told everything he saw: God’s Word–the witness of Jesus Christ!

영어NRSV,2 who testified to the word of God and to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even to all that he saw.

헬라어신약Stephanos,2 ος εμαρτυρησεν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και την μαρτυριαν ιησου χριστου οσα τε ειδεν

라틴어Vulgate,2 qui testimonium perhibuit verbo Dei et testimonium Iesu Christi quaecumque vidit

히브리어Modern,2 אשר העיד דבר האלהים ועדות ישוע המשיח ואת כל אשר ראה׃

성 경: [계1:2]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머리말]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동일한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즉 계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증거되어 나타났음을 나타낸다. 즉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직접하신 증거이며,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낸다. 또한 본문에서 요한 자신이 본 환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동일시됨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신약 시대 사도들과의 연속성을 엿볼 수 있다(Johnson, Plummer).

마카리오스 호 아나기노스콘 카이 호이 아쿠온테스 투스 로구스 테스 프로페테이아스 카이 테룬테스 타 엔 아우테 게그람메나 호 가르 카이로스 엥귀스

개역개정,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새번역,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3 이 예언의 말씀들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이는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3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영어NIV,3 Blessed is the one who reads the words of this prophecy, and blessed are those who hear it and take to heart what is written in it, because the time is near.

영어NASB,3 Blessed is he who reads and those who hear the words of the prophecy, and heed the things which are written in it; for the time is near.

영어MSG,3 How blessed the reader! How blessed the hearers and keepers of these oracle words, all the words written in this book! Time is just about up.

영어NRSV,3 Blessed is the one who reads aloud the words of the prophecy, and blessed are those who hear and who keep what is written in it; for the time is near.

헬라어신약Stephanos,3 μακαριος ο αναγινωσκων και οι ακουοντες τους λογους της προφητειας και τηρουντες τα εν αυτη γεγραμμενα ο γαρ καιρος εγγυς

라틴어Vulgate,3 beatus qui legit et qui audiunt verba prophetiae et servant ea quae in ea scripta sunt tempus enim prope est

히브리어Modern,3 אשרי הקורא ואשרי השמעים את דברי הנבואה ושמרים את אשר כתוב בה כי קרובה העת׃

성 경: [계1:3]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머리말]

본서에는 일곱 부류의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진술이 나타난다. (1)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 (2)주 안에서 죽는 자(14:13). (3)깨어 옷을 지키는 자(16:15 ). (4)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된 자(19:9). (5)첫 부활에 참여한 자(20:6). (6)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22:7). (7)두루마리를 빠는 자(22:14). 본절에 나타난 사람은 일곱 부류의 복 있는 사람중 첫번째에 해당된다.

이 예언의 말씀을…복이 있나니. – ‘이 예언의 말씀’은 본서가 예언서임을 나타내는 것으로(10:11; 22:6,7,10,18,19) 본서의 말씀이 예언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영적, 윤리적 권면과 권고를 포함한 현재적 경고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Johnson).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과 관련하여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이 있음을 기술한다.

읽는 자.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호 아나기노스콘'(*)은 관사 있는 단수 분사로 초대교회에서 회중을 대표하여 성경을 읽던 자를 나타낸다.

듣는 자들(*, 호이아쿠온테스)과 지키는 자들(*, 테룬테스). 이 두 부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모두 복수로 예언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행하는 회중들을 나타낸다(눅4:16; 행13:15,21; 골4:16, Johnson, Zahn, Robertson). 요한은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유대인들의 관습을 통해서는(느8:2,3; 눅4:16; 행13:15; 살전5:27)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때가 가까움이라. – 본문은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이다.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로스'(*)는 보편적인 시간을 나타내는 ‘크로노스'(*)와는 달리 결정적인 섭리를 나타내는 종말론적 시각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승천한 이후부터 다시 오실 재림의 때까지는 인간 편에서 볼 때 항상 임박한 긴장(緊張)의 시간이며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정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마24:3-51; 요21:22, Jo- hnson, Mounce).

요안네스 타이스 헾타 엨클레시아이스 타이스 엔 테 아시아 카리스 휘민 카이 에이레네 아포 호 온 카이 호 엔 카이 호 에르코메노스 카이 아포 톤 헾타 프뉴마톤 하 에노피온 투 드로누 아우투

개역개정,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새번역,4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우리말성경,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가톨릭성경,4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영어NIV,4 John, To the seven churches in the province of Asia: Grace and peace to you from him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and from the seven spirits before his throne,

영어NASB,4 John to the seven churches that are in Asia: Grace to you and peace, from Him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and from the seven Spirits who are before His throne,

영어MSG,4 I, John, am writing this to the seven churches in Asia province: All the best to you from THE GOD WHO IS, THE GOD WHO WAS, AND THE GOD ABOUT TO ARRIVE, and from the Seven Spirits assembled before his throne,

영어NRSV,4 John to the seven churches that are in Asia: Grace to you and peace from him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and from the seven spirits who are before his throne,

헬라어신약Stephanos,4 ιωαννης ταις επτα εκκλησιαις ταις εν τη ασια χαρις υμιν και ειρηνη απο του ο ων και ο ην και ο ερχομενος και απο των επτα πνευματων α εστιν ενωπιον του θρονου αυτου

라틴어Vulgate,4 Iohannes septem ecclesiis quae sunt in Asia gratia vobis et pax ab eo qui est et qui erat et qui venturus est et a septem spiritibus qui in conspectu throni eius sunt

히브리어Modern,4 יוחנן אל שבע הקהלות אשר באסיא חסד לכם ושלום מאת ההוה והיה ויבוא ומן שבעת הרוחות אשר לפני כסאו׃

성 경: [계1:4]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문안과 송영]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 본문에서 아무런 수식어 없이 ‘요한’이라고 언급한 것은 서신을 받는 일곱 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요한이 아시아 교회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Mounce). 한편 ‘아시아에’는 본래 로마의 영토를 지칭하는 것으로 아타톨리아 고원에 이르는 소아시아의 서편 지역을 가리킨다(Morris, Kiddle). 당시 아시아 주에는 ‘드로아'(행20:5), ‘골로새'(골1:2), ‘히에라볼리'(골4:13) 등 많은 교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일곱 교회에만 편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일곱 교회가 역사상의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Seiss, Kuyper). (2)혹자는 ‘일곱’이란 숫자가 완전 수이므로 계시록에 언급되는 다른 일곱이라는 문학적 양식을 따른 것이라 주장한다(Morris, Johnson, Moffatt, Greijdanus). (3)혹자는 일곱 교회가 처한 황제 숭배화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Mounce)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 견해는 타당하다(레4:6,17; 8:11,33; 민19:12; 롬12:6-8; 약3:17, Ford, Vincent, Canon).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아포 호 온 카이호 엔 카이 호 에르코메노스). – ‘말미암아’의 뜻을 가진 전치사 ‘아포'(*)는 보통 소유격 명사와 함께 쓰임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주격 명사와 함께 사용되었다. 이런한 표현 방법은 본서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8절; 4:8; 11:17; 16:5) 요한이 헬라어 문법상 어긋나는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영원불변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신적 성품을 손상시키지 않고 경외하려는 동시에서 비롯되었다. 즉 이러한 표현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잘 묘사하려는 요한의 의도를 암시한다(Greijdanus, Morris, Johnson, Ladd).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전능하신 분이다(8절; 4:8).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 ‘일곱 영’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일곱 천사라고 주장한다(Beasley-Murray, Mounce). (2)혹자는 성령이라고 주장한다(Ladd, Johnson, Morris).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전자의 경우 본절과 다음절에 나타나는 삼위일체론적 인사말에 어긋나며 본서에 나타나는 ‘영’은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나 마귀의 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령을 ‘일곱 영’으로 표현한 것은 성령의 속성과 권능이 완전(完全)하고 성결함을 시사한다(3:1; 4:5,6; 5:5; 슥3:9, Johnson, Morris, Robertson, Barclay, Lenski, Ladd).

카이 아포 예수 크리스투 호 마르튀스 호 피스토스 호 프로토토코스 톤 네크론 카이 호 아르콘 톤 바실레온 테스 게스 토 아가폰티 헤마스 타이 뤼산티 헤마스 에크 톤 하마르티온 헤몬 엔 토 하이마티 아우투

개역개정,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새번역,5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주셨고, / ㉡또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요’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씻어’

우리말성경,5 충성된 증인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처음 나시고 땅의 왕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분,

가톨릭성경,5 또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영어NIV,5 and from Jesus Christ, who is the faithful witness, the firstborn from the dead, and the ruler of the kings of the earth. To him who loves us and has freed us from our sins by his blood,

영어NASB,5 and from Jesus Christ, the faithful witness, the firstborn of the dead, and the ruler of the kings of the earth. To Him who loves us and released us from our sins by His blood–

영어MSG,5 and from Jesus Christ–Loyal Witness, Firstborn from the dead, Ruler of all earthly kings. Glory and strength to Christ, who loves us, who blood-washed our sins from our lives,

영어NRSV,5 and from Jesus Christ, the faithful witness, the firstborn of the dead, and the ruler of the kings of the earth. To him who loves us and freed us from our sins by his blood,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απο ιησου χριστου ο μαρτυς ο πιστος ο πρωτοτοκος εκ των νεκρων και ο αρχων των βασιλεων της γης τω αγαπησαντι ημας και λουσαντι ημας απο των αμαρτιων ημων εν τω αιματ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5 et ab Iesu Christo qui est testis fidelis primogenitus mortuorum et princeps regum terrae qui dilexit nos et lavit nos a peccatis nostris in sanguine suo

히브리어Modern,5 ומאת ישוע המשיח העד הנאמן ובכור מן המתים ועליון למלכי ארץ לו אשר אהב אתנו ובדמו גאלנו מחטאתינו׃

성 경: [계1:5]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문안과 송영]

또 충성된 증인으로. – 본문은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수식하는 첫번째 수식구로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충성된 증인으로(시89:37; 사55:4) 새 언약을 성취시킨 것이었음을 나타낸다(Morris, Johnson). 즉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까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시킨 하나님의 충성된 증인이었다(Ladd). 이러한 사실은 당시 박해와 고난에 처해 있던 일곱 교회의 수신자들에게 위로와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2:13; 11:3; 17:6, Mounce, Johnson).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 ‘먼저 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프로토토코스'(*)는 바울의 경우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나 통치자의 의미로 사용한 반면(골1:15),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가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하여 그리스도께서 모든 죽은 자들에 대하여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하고 있다(시89:27, Ladd, Mounce, Johnson).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땅의 임금들의 머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르콘 톤 바실레온 테스 게스'(*)는 문자적으로 ‘땅의 왕들의 통치자’를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을 표현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뛰어나시며 모든 권세자들을 지배하시는 주권적 통치자이심을 시사한다(6:15; 17:14; 19:16; 시89:27; 빌2:9,10, Johnson, Mounce, mor- ris, Ironside).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선물을 의미하며(롬1:7; 고전1:3), ‘평강’의 헬라어 ‘에이레네'(*)는 히브리인들의 인사말로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풍요로운 영적 상태와 화목을 가리킨다. 이 인사는 평범한 인사와는 달리 하나님의 축복이 종적, 횡적으로 임할 것을 기원하는 것이다(롬1:7; 고전1:3; 엡1:2; 벧후1:2, mounce, Craft, Martin, and Kiddle).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사랑하사’의 헬라어 ‘아가폰티'(*)는 현재 분사로 계속되는 사랑을 나타낸다. 이 ‘사랑’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Mounce). 한편 ‘해방하시고’에 해당되는 헬라어 ‘뤼산티'(*)는 부정 과거 분사형으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죄에서 해방하신 공효(功效)를 시사한다(5:9; 마20:28; 요8:34-36; 갈3:13; 딤전2:6; 히9:12; 벧전1:18,19, Moffatt, Mounce, Lenski). 이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바와 같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된다(12:11).

카이 에포이에센 헤마스 바실레이안 히에레이스 토 데오 카이 파트리 아우투 아우토 헤 돜사 카이 토 크라토스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아멘

개역개정,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새번역,6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우리말성경,6 우리를 그분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나라와 제사장들로 삼아 주신 분께 영광과 능력이 세세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가톨릭성경,6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영어NIV,6 and has made us to be a kingdom and priests to serve his God and Father–to him be glory and power for ever and ever! Amen.

영어NASB,6 and He has made us to be a kingdom, priests to His God and Father– to Him be the glory and the dominion forever and ever. Amen.

영어MSG,6 Who made us a Kingdom, Priests for his Father, forever–and yes, he’s on his way!

영어NRSV,6 and made us to be a kingdom, priests serving his God and Father, to him be glory and dominion forever and ever. Amen.

헬라어신약Stephanos,6 και εποιησεν ημας βασιλεις και ιερεις τω θεω και πατρι αυτου αυτω η δοξα και το κρατος εις τους αιωνας των αιωνων αμην

라틴어Vulgate,6 et fecit nostrum regnum sacerdotes Deo et Patri suo ipsi gloria et imperium in saecula saeculorum amen

히브리어Modern,6 ויעש אתנו למלכים וכהנים לאלהים אביו הכבוד והעז לעולמי עולמים אמן׃

성 경: [계1:6]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문안과 송영]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나타내며(22:3; 엡1:6) 구원 사역이 삼위 하나님의 협동적 사역으로 수행되나 근원적으로는 성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요6장). 한편 ‘나라와 제사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실레이안, 히에레이스'(*, )는 문자적으로 ‘나라, 곧 제사장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제사장들의 집합체를 가리킨다. 이는 출19:6과, 벧전2:9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왕됨과 제사장됨을 시사한다(Beckwith, Morris, Lenski).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영광’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돝사'(*)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으로(출33:9; 겔1:28)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삼위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본문의 경우에는 관사와 함께 사용되어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관한 찬양과 공경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Mounce). 그리고 ‘능력’의 헬라어 ‘토 크라토스'(*)는 인간이 갖는 권리나 내적 능력보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능력을 나타낸다(벧전4:11). 한편 ‘세세토록’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은 문자적으로 ‘세대들의 세대들에’라는 의미로 ‘영원성’을 나타낸다(18절; 4:9,10; 5:13; 7:12; 10:6; 11:15; 15:7; 19:3; 20:10; 22:5, Lenski). 요한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이 수신자들에게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두 에르케타이 메타 톤 네펠론 카이 옾세타이 아우톤 파스 옾달모스 카이 호이티네스 아우톤 엨세켄테산 카이 콮손타이 엪 아우톤 파사이 하이 퓔라이 테스 게스 나이 아멘

개역개정,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새번역,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 ㉣단 7:13 ㉤슥 12:10

우리말성경,7 보십시오. 그분이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각 사람의 눈이 그분을 볼 것이며 그분을 찔렀던 사람들도 볼 것이며 땅의 모든 민족이 그분으로 인해 통곡할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가톨릭성경,7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영어NIV,7 Look, he is coming with the clouds, and every eye will see him, even those who pierced him; and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will mourn because of him. So shall it be! Amen.

영어NASB,7 BEHOLD, HE IS COMING WITH THE CLOUDS, and every eye will see Him, even those who pierced Him; and all the tribes of the earth will mourn over Him. So it is to be. Amen.

영어MSG,7 Riding the clouds, he’ll be seen by every eye, those who mocked and killed him will see him, People from all nations and all times will tear their clothes in lament. Oh, Yes.

영어NRSV,7 Look! He is coming with the clouds; every eye will see him, even those who pierced him; and on his account all the tribes of the earth will wail. So it is to be. Amen.

헬라어신약Stephanos,7 ιδου ερχεται μετα των νεφελων και οψεται αυτον πας οφθαλμος και οιτινες αυτον εξεκεντησαν και κοψονται επ αυτον πασαι αι φυλαι της γης ναι αμην

라틴어Vulgate,7 ecce venit cum nubibus et videbit eum omnis oculus et qui eum pupugerunt et plangent se super eum omnes tribus terrae etiam amen

히브리어Modern,7 הנה הוא בא עם העננים וראתה אתו כל עין גם אלה אשר דקרהו וספדו עליו כל משפחות הארץ כן יהיה אמן׃

성 경: [계1:7]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문안과 송영]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본문은 단7:13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 이것은 예수께서 친히 확증하신 바며(마24:30; 26:64) 사도 바울에 의해 입증된 재림의 모습이다(살전4:17). 여기서 재림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구름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위엄을 나타내는 초자연적 현상인 듯하다(Morris, Lenski, Johnson).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 본문은 슥12:10의 예언을 반영한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공개성을 나타낸다. 현재는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실로 인식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도의 재림 때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눈으로 확연히 보게 될 것이다(Ladd). 한편 ‘그를 찌른 자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Moffatt, Plummer, Johnson, Ladd). 그리스도는 이런한 자들에게도 자신의 재림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박해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재림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주적 주권을 소유한 분으로서 온 세상을 공의롭게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 본문은 심판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회개치 못한 다들의 비참한 상태를 나타낸다. 본문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회개치 않은 불신자들이 당할 두려움을 극명하게 시사한다(Morris, Mounce, Ironside).

그러하리라 아멘. – ‘그러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나이'(*)는 동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히브리어 ‘아멘'(*)과 같다. 요한은 동의어인 ‘그러하리라’와 ‘아멘’을 이중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종말적인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한다(Greijdanus, Morris, Mounce).

에고 에이미 토 알파 카이 토 오메가 레게이 퀴리오스 호 데오스 호 온 카이 호 엔 카이 호 에르코메노스 호 판토크라토르

개역개정,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새번역,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말성경,8 주 하나님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이신 전능자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가톨릭성경,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영어NIV,8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영어NASB,8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영어MSG,8 The Master declares, “I’m A to Z. I’m THE GOD WHO IS, THE GOD WHO WAS, AND THE GOD ABOUT TO ARRIVE. I’m the Sovereign-Strong.”

영어NRSV,8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헬라어신약Stephanos,8 εγω ειμι το α και το ω αρχη και τελος λεγει ο κυριος ο ων και ο ην και ο ερχομενος ο παντοκρατωρ

라틴어Vulgate,8 ego sum Alpha et Omega principium et finis dicit Dominus Deus qui est et qui erat et qui venturus est Omnipotens

히브리어Modern,8 אני האלף ואני התו ראש וסוף נאם יהוה אלהים ההוה והיה ויבוא אלהי צבאות׃

성 경: [계1:8]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문안과 송영]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 ‘알파’는 헬라어 문자의 첫 글자며,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시작인 동시에 마지막이 되셔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시대와 세대의 주가 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창조주와 심판주로서 모든 주권을 소유하고 계신다(21:6; 22:13, Beasley-Murray,Charles, Robertson). 이러한 하나님이 보증하신 그리스도의 재림은 확실한 것이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 본문은 4절의 반복으로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즉 ‘영원히 자존’하신 하나님의 성품을(출3:14) 묘사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체 안에 존재의 기반을 가지고 계셔서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시며 영원 불변하신 심판자이심을 나타낸다(Johnson). 그 하나님은 장차 오셔서 자신이 섭리하신 심판을 이루실 것이다(Ladd).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전능한 자’의 헬라어 ‘판토크라토르'(*)는 본서에 9회나 언급되는 중심 단어로 문자적으로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나타낸다. 이것은 곧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자가 분명히 가져야 될 속성이다(Johnson).

에고 요안네스 호 아델포스 휘몬 카이 슁코이노노스 엔 테 들맆세이 카이 바실레이아 카이 휘포모네 엔 예수 에게노멘 엔 테 네소 테 칼루메네 팥모 디아 톤 로곤 투 데우 카이 텐 마르튀리안 예수

개역개정,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새번역,9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요 예수 안에서 환난과 그 나라와 인내에 여러분과 더불어 참여한 사람인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증언 때문에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 ㉥그,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우리말성경,9 여러분의 형제이며 예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인내를 함께 나누는 사람인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언 때문에 밧모 섬에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9 여러분의 형제로서,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환난을 겪고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며 함께 인내하는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스라는 섬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영어NIV,9 I, John, your brother and companion in the suffering and kingdom and patient endurance that are ours in Jesus, was on the island of Patmos because of the word of God and the testimony of Jesus.

영어NASB,9 I, John, your brother and fellow partaker in the tribulation and kingdom and perseverance which are in Jesus, was on the island called Patmos because of the word of God and the testimony of Jesus.

영어MSG,9 I, John, with you all the way in the trial and the Kingdom and the passion of patience in Jesus, was on the island called Patmos because of God’s Word, the witness of Jesus.

영어NRSV,9 I, John, your brother who share with you in Jesus the persecution and the kingdom and the patient endurance, was on the island called Patmos because of the word of God and the testimony of Jesus.

헬라어신약Stephanos,9 εγω ιωαννης ο και αδελφος υμων και συγκοινωνος εν τη θλιψει και εν τη βασιλεια και υπομονη ιησου χριστου εγενομην εν τη νησω τη καλουμενη πατμω δια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και δια την μαρτυριαν ιησου χριστου

라틴어Vulgate,9 ego Iohannes frater vester et particeps in tribulatione et regno et patientia in Iesu fui in insula quae appellatur Patmos propter verbum Dei et testimonium Iesu

히브리어Modern,9 אני יוחנן אחיכם וגם חבר לכם בלחץ ובמלכות ובסבלנות למען ישוע המשיח הייתי באי אשר שמו פטמוס בעבור דבר האלהים ובעבור עדות ישוע המשיח׃

성 경: [계1:9]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나 요한은. – 요한은 다시금 자신을 밝혀 하나님과 자신과 수신자들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요한이 자신을 ‘사도 요한’이라 밝히지 않는 것은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친분이 있음을 암시한다(22:8, Johnson).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 요한은 본문에서 자신과 수신자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너희 형제요…동참하는 자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호 아델포스 휘몬카이 슁코이노노스'(*)로 하나의 관사 ‘호’에 의해 두 가지 칭호 즉 ‘형제’와 ‘동참하는 자’가 연결되어 있다. 이는 ‘형제’인 까닭에 ‘동참하게 된다’는 인과 관계를 드러낸다. 한편 ‘예수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예수'(*)는 문자적으로 ‘예수 안에서’란 의미로 ‘주 안에서’란 바울의 사상과 상통하며, 문법적으로는 ‘환난’과 ‘나라’와 ‘참음’의 세 말에 공통적으로 연결되어 ‘환난’과 ‘나라’ 그리고 ‘참음’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Moffatt, Mounce). 여기서 ‘환난’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해 온전히 충성할 때 나타나는 고난을 가리키며(요16:33; 행14:22; 딤후3:12) ‘나라’는 메시야적 통치의 축복을 말하며, ‘참음’의 헬라어 ‘휘포모네'(*)는 ‘휘포'(*, ‘아래에’)와 ‘메노'(*,’머물다’)의 합성어로 충성된 자들에게 요구되는 적극적인 인내를 가리킨다. 이것은 요한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축복을 기다리는 가운데 환난 속에서 인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Johnson, Ironside).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인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와 관련되어 요한의 밧모섬 행(行)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갔다고 주장한다(Spitta). (2)혹자는 하나님의 말씀, 곧 계시를 받기 위해 갔다고 주장한다(Weiss, Bleek, Lucke). (3)혹자는 복음 전파에 대한 박해로 말미암아 유배되었다고 주장한다(Moffatt, Charles, Vincent, Plummer, Johnson). 세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 때 에베소 지방에서 전도하던 중 밧모섬에 귀양갔다가 후에 귀환(歸還)하였다고 역사가와 교부들이 전하기 때문이다(Irenaeus, Clement, Eusebius).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 엔 테 퀴리아케 헤메라 카이 에쿠사 오피소 무 포넨 메갈렌 호스 살핑고스

개역개정,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새번역,10 주님의 날에 내가 ㉦성령에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 ㉦그, ‘영’

우리말성경,10 나는 주의 날에 성령께 사로잡혀 있었는데 내 뒤에서 울리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가톨릭성경,10 어느 주일에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영어NIV,10 On the Lord’s Day I was in the Spirit, and I heard behind me a loud voice like a trumpet,

영어NASB,10 I was in the Spirit on the Lord’s day, and I heard behind me a loud voice like the sound of a trumpet,

영어MSG,10 It was Sunday and I was in the Spirit, praying. I heard a loud voice behind me, trumpet-clear and piercing:

영어NRSV,10 I was in the spirit on the Lord’s day, and I heard behind me a loud voice like a trumpet

헬라어신약Stephanos,10 εγενομην εν πνευματι εν τη κυριακη ημερα και ηκουσα οπισω μου φωνην μεγαλην ως σαλπιγγος

라틴어Vulgate,10 fui in spiritu in dominica die et audivi post me vocem magnam tamquam tubae

히브리어Modern,10 ואהי ברוח ביום האדון ואשמע אחרי קול גדול כקול שופר׃

성 경: [계1:10]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 ‘주의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테 퀴리아케 헤메라'(*)는 문자적으로 주께 속한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식후 첫날'(막 16:2; 눅24:1; 요20:19; 행20:7) 혹은 ‘매주일 첫날'(고전16:2)과 같은 뜻이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유대교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이 사도 시대부터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로 대치된 것을 가리킨다(요20:19; 행20:7; 고전16:2, Morris, Lenski, Ladd). 한편 ‘성령에 감동하여’의 헬라어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는 문자적으로 ‘내가 성령 안에 있었다’는 뜻으로 이는 단순히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황홀한 상태에 있게 되었음을 암시한다(4:2; 17:3; 21:10; 행10:10; 11:5, Lohmeyer, Ladd, Johnson,Mounce).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나팔소리’는 구약 시대에 백성을 불러 소집하거나 군사적으로 경고할 때(겔33:6), 전쟁 때(겔7:14), 그리고 특별한 의미로 절기 때(레23:24) 사용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한 징표로 나타난다(마24:31; 살전4:16). 본서에서 70회나 사용되며 종말론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본문의 ‘나팔소리’는 심령들을 일깨우는 천사의 음성으로 이해된다(Morris, Mounce, Ladd).

레구세스 호 블레페이스 그랖손 에이스 비블리온 카이 펨프손 타이스 헾타 엨클레시아이스 에이스 에페손 카이 에이스 스뮈르난 카이 에이스 페르가몬 카이 에이스 뒤아테이라 카이 에이스 사르데이스 카이 에이스 필라델페이안 카이 에이스 라오디케이안

개역개정,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새번역,11 그 음성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의 교회로 보내라.”

우리말성경,11 말씀하시기를 “네가 본 것을 책에 기록해 그것을 일곱 교회,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로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11 그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에 보내라.”

영어NIV,11 which said: “Write on a scroll what you see and send it to the seven churches: to Ephesus, Smyrna, Pergamum, Thyatira, Sardis, Philadelphia and Laodicea.”

영어NASB,11 saying, “Write in a book what you see, and send it to the seven churches: to Ephesus and to Smyrna and to Pergamum and to Thyatira and to Sardis and to Philadelphia and to Laodicea.”

영어MSG,11 “Write what you see into a book. Send it to the seven churches: to Ephesus, Smyrna, Pergamum, Thyatira, Sardis, Philadelphia, Laodicea.”

영어NRSV,11 saying, “Write in a book what you see and send it to the seven churches, to Ephesus, to Smyrna, to Pergamum, to Thyatira, to Sardis, to Philadelphia, and to Laodicea.”

헬라어신약Stephanos,11 λεγουσης εγω ειμι το α και το ω ο πρωτος και ο εσχατος και ο βλεπεις γραψον εις βιβλιον και πεμψον ταις εκκλησιαις ταις εν ασια εις εφεσον και εις σμυρναν και εις περγαμον και εις θυατειρα και εις σαρδεις και εις φιλαδελφειαν και εις λαοδικειαν

라틴어Vulgate,11 dicentis quod vides scribe in libro et mitte septem ecclesiis Ephesum et Zmyrnam et Pergamum et Thyatiram et Sardis et Philadelphiam et Laodiciam

히브리어Modern,11 ויאמר אני האלף ואני התו הראשון והאחרון ואת אשר אתה ראה כתב אל ספר ושלחהו אל הקהלות אשר באסיא לאפסוס ולזמירנא ולפרגמוס ולתיאטירא ולסרדיס ולפילדפיא וללודקיא׃

성 경: [계1:11]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 ‘써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랖손'(*)은 부정과거 명령형으로 즉각적인 이행을 촉구하는 표현이다. 이는 특별히 히브리 예언 방식으로, 본서에서 12회나 반복되어 사용됨으로 본서의 기록이 하나님의 권위로 되었음을 시사한다(Morris, Robertson).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 본문에 제시된 교회의 명칭은 1:4에서 언급된 ‘일곱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각각의 교회에 보내진 특별한 메시지는 2,3장에서 동일한 순서로 나타난다(‘일곱 교회’에 대해서는 2,3장의 주석 참조). 특별히 기록된 말씀을 일곱 교회에만 보내라고 한 것은 그 도시들이 소아시아 중서부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며(Zean) 동시에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가 보편적으로 모든 교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Mounce, Lenski).

카이 에페스트렢사 블레페인 텐 포넨 헤티스 엘랄레이 멭 에무 카이 에피스트렢사스 에이돈 헾타 뤼크니아스 크뤼사스

개역개정,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새번역,12 그래서 나는 내게 들려 오는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일곱 금 촛대가 있는데,

우리말성경,12 나는 내게 말씀하신 음성을 알아보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내가 몸을 돌렸을 때 일곱 금촛대가 보였고

가톨릭성경,12 나는 나에게 말하는 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황금 등잔대가 일곱 개 있고,

영어NIV,12 I turned around to see the voice that was speaking to me. And when I turned I saw seven golden lampstands,

영어NASB,12 Then I turned to see the voice that was speaking with me. And having turned I saw seven golden lampstands;

영어MSG,12 I turned and saw the voice. I saw a gold menorah with seven branches,

영어NRSV,12 Then I turned to see whose voice it was that spoke to me, and on turning I saw seven golden lampstands,

헬라어신약Stephanos,12 και επεστρεψα βλεπειν την φωνην ητις ελαλησεν μετ εμου και επιστρεψας ειδον επτα λυχνιας χρυσας

라틴어Vulgate,12 et conversus sum ut viderem vocem quae loquebatur mecum et conversus vidi septem candelabra aurea

히브리어Modern,12 ואפן לראות את הקול המדבר אלי ויהי בפנותי וארא שבע מנרות זהב׃

성 경: [계1:12]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 요한이 처음으로 본 것은 슥4:2의 환상과 비슷한 일곱 금 촛대로 여기서 ‘촛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뤼크니아스'(*)는 세워 놓거나 달아매는 ‘등잔불’을 가리킨다(출 25:31; 왕상7:49; 슥4:2). ‘일곱 금 촛대’는 스가랴서에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반면에(슥4:2) 본문에서는 수신자들인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나아가 전세계의 보편적인 모든 교회들을 나타낸다(20절, Mounce, Johnson, Kiddle).

카이 엔 메소 톤 뤼크니온 호모이온 휘온 안드로푸 엔데뒤메논 포데레 카이 페리에조스메논 프로스 토이스 마스토이스 조넨 크뤼산

개역개정,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새번역,13 그 촛대 한가운데 ㉧’인자와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는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 ㉧단 7:13

우리말성경,13 그 촛대들 사이에 인자 같은 분이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가톨릭성경,13 그 등잔대 한가운데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 띠를 두르고 계셨습니다.

영어NIV,13 and among the lampstands was someone “like a son of man,” dressed in a robe reaching down to his feet and with a golden sash around his chest.

영어NASB,13 and in the middle of the lampstands I saw one like a son of man, clothed in a robe reaching to the feet, and girded across His chest with a golden sash.

영어MSG,13 And in the center, the Son of Man, in a robe and gold breastplate,

영어NRSV,13 and in the midst of the lampstands I saw one like the Son of Man, clothed with a long robe and with a golden sash across his chest.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εν μεσω των επτα λυχνιων ομοιον υιω ανθρωπου ενδεδυμενον ποδηρη και περιεζωσμενον προς τοις μαστοις ζωνην χρυσην

라틴어Vulgate,13 et in medio septem candelabrorum similem Filio hominis vestitum podere et praecinctum ad mamillas zonam auream

히브리어Modern,13 ובתוך שבע המנרות דמות בן אדם לבוש מעיל וחגור אזור זהב על לבו׃

성 경: [계1:13]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 ‘인자 같은 이’란 단7:13,14을 반영한 것으로 계시자이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고양시켜 표현한 것이다(행7:56).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은 물론 영광으로 고양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Beas ley-Murray). 그리스도가 성전의 촛대 사이로 움직이시는 것은 그의 대제사장적 임재와 교회의 머리되심을 시사한다(Moffatt, Mounce).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 ‘발에 끌리는 옷’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 착용한 예복으로(출28:4; 레16:4; 사6:1)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의 권위와 위엄을 시사한다(Johnson, Mounce).

가슴에 금띠를 띠고. – 이 또한 대제사장 혹은 왕의 예복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출28:8; 29:5) 권세를 가지신 메시야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렇듯 요한은 구약성경에 묘사된 대제사장과 왕의 모습을 빌어 그리스도의 위엄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다(Bruce, Johnson, Mounce, Morris, Ironside).

헤 데 케팔레 아우투 카이 하이 트리케스 류카이 호스 에리온 류콘 호스 키온 카이 호이 옾달모이 아우투 호스 플롴스 퓌로스

개역개정,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새번역,14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과 같이, 또 눈과 같이 희고, 눈은 불꽃과 같고,

우리말성경,14 그리고 그분의 머리와 머리칼은 흰 양털과 눈처럼 희고 그분의 눈은 타오르는 불과 같고

가톨릭성경,14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처럼 또 눈처럼 희고 그분의 눈은 불꽃 같았으며,

영어NIV,14 His head and hair were white like wool, as white as snow, and his eyes were like blazing fire.

영어NASB,14 His head and His hair were white like white wool, like snow; and His eyes were like a flame of fire.

영어MSG,14 hair a blizzard of white, Eyes pouring fire-blaze,

영어NRSV,14 His head and his hair were white as white wool, white as snow; his eyes were like a flame of fire,

헬라어신약Stephanos,14 η δε κεφαλη αυτου και αι τριχες λευκαι ωσει εριον λευκον ως χιων και οι οφθαλμοι αυτου ως φλοξ πυρος

라틴어Vulgate,14 caput autem eius et capilli erant candidi tamquam lana alba tamquam nix et oculi eius velut flamma ignis

히브리어Modern,14 וראשו ושערו לבנים כצמר צחר כשלג ועיניו כלבת אש׃

성 경: [계1:14]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 본문은 단7:9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성경에서 흰 색깔은 항상 ‘권위’와 ‘영광’과 ‘순결’을 상징하기에 본문은 그리스도의 성결과 영원성 혹은 그의 영원한 신성을 상징한다(사1:18, Mounce, Kiddle).

그의 눈은 불꽃 같고. – 이는 단10:6을 반영한 것으로 그분의 전지성으로 모든 악을 꿰뚫어 아시는 날카로운 공의의 눈을 상징하며(Vincent) 아울러 승리로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심판을 시사한다.

카이 호이 포데스 아우투 호모이오이 칼콜리바노 호스 엔 카미노 페퓌로메네스 카이 헤 포네 아우투 호스 포네 휘다톤 폴론

개역개정,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새번역,15 발은 풀무불에 달구어 낸 놋쇠와 같고, 음성은 큰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우리말성경,15 그분의 발들은 용광로에서 제련된 청동 같고 그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가톨릭성경,15 발은 용광로에서 정련된 놋쇠 같고 목소리는 큰 물소리 같았습니다.

영어NIV,15 His feet were like bronze glowing in a furnace, and his voice was like the sound of rushing waters.

영어NASB,15 His feet were like burnished bronze, when it has been made to glow in a furnace, and His voice was like the sound of many waters.

영어MSG,15 both feet furnace-fired bronze, His voice a cataract,

영어NRSV,15 his feet were like burnished bronze, refined as in a furnace, and his voice was like the sound of many waters.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οι ποδες αυτου ομοιοι χαλκολιβανω ως εν καμινω πεπυρωμενοι και η φωνη αυτου ως φωνη υδατων πολλων

라틴어Vulgate,15 et pedes eius similes orichalco sicut in camino ardenti et vox illius tamquam vox aquarum multarum

히브리어Modern,15 ומרגלתיו כעין נחשת קלל כצרופות בכור וקולו כקול מים רבים׃

성 경: [계1:15]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 ‘빛난 주석’의 헬라어 ‘칼콜리바노'(*)의 어원(語源)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금 같은 청동’ 혹은 ‘양질의 합금이나 놋쇠’로 이해된다(계2:18). 그리스도께서 빛난 주석의 발을 가지셨다는 사실은 초림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힌 발’과는 달리 재림 때에는 영광과 권능으로 오셔서 모든 더러운 무리들과 반대자들을 밟아 심판할 것을 상징한다(단10:6, Lenski, Mounce).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 본문은 10절의 ‘나팔소리 같은’에 뒤이어 나타나는 음성에 대한 묘사로 겔43:2에 똑같은 표현이 나온다. 이는 불가항력적인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음성이 모든 죄인들에게 두려움을 줄 무서운 음성임을 시사한다(시29:3,4).

카이 에콘 엔 테 뎈시아 케이리 아우투 아스테라스 헾타 카이 에크 투 스토마토스 아우투 롴파이아 디스토모스 옼세이아 엨포류오메네 카이 헤 옾시스 아우투 호스 호 헬리오스 파이네이 엔 테 뒤나메이 아우투

개역개정,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새번역,16 또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칼이 나오고, 얼굴은 해가 강렬하게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말성경,16 그는 그분의 오른손에 일곱 별을 들고 계셨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왔고 그분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가톨릭성경,16 그리고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계셨으며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습니다. 또 그분의 얼굴은 한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영어NIV,16 In his right hand he held seven stars, and out of his mouth came a sharp double-edged sword. His face was like the sun shining in all its brilliance.

영어NASB,16 In His right hand He held seven stars, and out of His mouth came a sharp two-edged sword; and His face was like the sun shining in its strength.

영어MSG,16 right hand holding the Seven Stars, His mouth a sharp-biting sword, his face a perigee sun.

영어NRSV,16 In his right hand he held seven stars, and from his mouth came a sharp, two-edged sword, and his face was like the sun shining with full force.

헬라어신약Stephanos,16 και εχων εν τη δεξια αυτου χειρι αστερας επτα και εκ του στοματος αυτου ρομφαια διστομος οξεια εκπορευομενη και η οψις αυτου ως ο ηλιος φαινει εν τη δυναμε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16 et habebat in dextera sua stellas septem et de ore eius gladius utraque parte acutus exiebat et facies eius sicut sol lucet in virtute sua

히브리어Modern,16 ויהי לו ביד ימינו שבעה כוכבים ומפיו יוצאת חרב פיפיות חדה ופניו כשמש המאיר בגבורתו׃

성 경: [계1:16]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 ‘오른 손’은 권세있는 능력 혹은 보호와 안전을 상징한다(출15:6; 사41:10; 행2:33). 그리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뜻하며(20절) 더 나아가 전세계에 흩어진 모든 교회의 사자들을 상징한다. 따라서 본문은 일곱 교회 즉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과 보호하심 가운데 있음을 시사한다(Lenski, Johnson, Mounce).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 이는 신,구약 성경에서 흔히 사용된 비유이다(사11:4; 49:2; 눅2:35; 엡6:17; 히4:12). 혹자는 ‘날선 검’을 ‘율법과 복음’의 양면으로 해석하기도 하나(Tertullian, Victor) 본문은 단순히 날선 검의 심판적 기능을 묘사한 것으로 만국을 심판하시는 메시야의 심판권을 시사한다(19:15; 살후1:8, Charles, Mounce, Walvoord).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 ‘얼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프시스'(*)는 ‘외관’으로 이해되므로(Lenski, Mounce) 본문은 환상 전체에 대한 결론적 묘사로 보인다. 이것은 마치 과거에 변화산에서 순간적으로 체험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모습과 유사한 것으로(마17:2; 막9:3, Plummer) 그리스도의 신성한 영광과 우월함을 시사한다(Johnson).

카이 호테 에이돈 아우톤 에페사 프로스 투스 포다스 아우투 호스 네크로스 카이 에데켄 텐 뎈시안 아우투 엪 에메 레곤 메 포부 에고 에이미 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

개역개정,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새번역,17 그를 뵐 때에, 내가 그의 발 앞에 엎어져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니, 그가 내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우리말성경,17 내가 그분을 볼 때 나는 죽은 사람처럼 그분의 발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자기의 오른손을 내게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가톨릭성경,17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영어NIV,17 When I saw him, I fell at his feet as though dead. Then he placed his right hand on me and said: “Do not be afraid. I am the First and the Last.

영어NASB,17 When I saw Him, I fell at His feet like a dead man. And He placed His right hand on me, saying, ” Do not be afraid; I am the first and the last,

영어MSG,17 I saw this and fainted dead at his feet. His right hand pulled me upright, his voice reassured me: “Don’t fear: I am First, I am Last,

영어NRSV,17 When I saw him, I fell at his feet as though dead. But he placed his right hand on me, saying, “Do not be afraid; I am the first and the last,

헬라어신약Stephanos,17 και οτε ειδον αυτον επεσα προς τους ποδας αυτου ως νεκρος και επεθηκεν την δεξιαν αυτου χειρα επ εμε λεγων μοι μη φοβου εγω ειμι ο πρωτος και ο εσχατος

라틴어Vulgate,17 et cum vidissem eum cecidi ad pedes eius tamquam mortuus et posuit dexteram suam super me dicens noli timere ego sum primus et novissimus

히브리어Modern,17 וכראתי אותו ואפל לרגליו כמת וישת עלי יד ימינו ויאמר אל תירא אני הראשון והאחרון והחי׃

성 경: [계1:17]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 본문은 인간이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한 초자연적인 환상을 보고 두려움과 떨림에 압도되었음을 시사해준다. 이는 계시를 받을 때 흔히 일어나는 모습으로(수5:14; 겔1:28; 단8:17; 10:15; 마176; 행26:14) 인간의 연약성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느끼는 두려운을 시사하며 일반적인 공포와 전율의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Greijdanus, Lenski, Moffatt).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흔히 제자들을 안심시킨 것과 같이(마14:27; 17:7; 막6:50) 인자한 모습과 음성으로 요한을 위로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 에이미 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는 구문상 강조 용법으로 ‘처음과 나중인 바로 나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8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나타난 ‘알파와 오메가’와 동일한 것으로 8절에서는 하나님에게 적용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칭호로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이렇듯 자신의 칭호를 통해 위로하심으로 요한에게 절대적인 확신을 주고 있다(Mounce, Zahn, Ironside).

카이 호 존 카이 에게노멘 네크로스 카이 이두 존 에이미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카이 에코 타스 클레이스 투 다나투 카이 투 하두

개역개정,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새번역,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한 번은 죽었으나, 보아라,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 ㉨그, ‘하데스’

우리말성경,18 나는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으나 보라, 나는 영원토록 살아 있는 자니 나는 죽음과 음부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성경,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

영어NIV,18 I am the Living One; I was dead, and behold I am alive for ever and ever! And I hold the keys of death and Hades.

영어NASB,18 and the living One; and I was dead, and behold, I am alive forevermore, and I have the keys of death and of Hades.

영어MSG,18 I’m Alive. I died, but I came to life, and my life is now forever. See these keys in my hand? They open and lock Death’s doors, they open and lock Hell’s gates.

영어NRSV,18 and the living one. I was dead, and see, I am alive forever and ever; and I have the keys of Death and of Hades.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ο ζων και εγενομην νεκρος και ιδου ζων ειμι εις τους αιωνας των αιωνων αμην και εχω τας κλεις του αδου και του θανατου

라틴어Vulgate,18 et vivus et fui mortuus et ecce sum vivens in saecula saeculorum et habeo claves mortis et inferni

히브리어Modern,18 ואהי מת והנני חי לעולמי עולמים אמן ובידי מפתחות שאול ומות׃

성 경: [계1:18]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 ‘곧 산 자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호 존'(*)은 앞절의 ‘처음과 나중’이라는 칭호를 보충하는 언급으로 늘 살아있는 ‘영원성’을 나타낸다(출3:14; 시42:2). 한편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생명을 제한시킨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수여할 수 있는 구속사적 순종의 사건이다(요5:26, Lohmeyer).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 ‘음부’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두'(*)는 히브리어 ‘스올'(*)을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육신의 죽음 상태와 무덤 혹은 죽은 영혼들이 가는 곳을 가리켰으며(왕상2:2,9; 욥3:13; 30:23; 시89:48; 사14:9; 겔32:28, Johnson, Greijdanus) 신약성경에서는 죽은 자들이 있는 곳(행2:27,31), 혹은 죽어서 악인들이 거하는 곳을 의미하였다(20:13,14; 눅16:23).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부활을 통해 사망의 영역을 정복하시고(고전15:54,55, Vincent) 영원히 살아계셔서 죽음의 영역을 주관하는 열쇠 곧 권능과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

그랖손 운 하 에이데스 카이 하 에이신 카이 하 멜레이 게네스다이 메타 타우타

개역개정,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새번역,19 그러므로 너는, 네가 본 것과 지금의 일들과 이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우리말성경,19 그러므로 너는 네가 본 것들과 지금 있는 일들과 이 일 후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가톨릭성경,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일어나는 일들과 그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여라.

영어NIV,19 “Write, therefore, what you have seen, what is now and what will take place later.

영어NASB,19 “Therefore write the things which you have seen, and the things which are, and the things which will take place after these things.

영어MSG,19 Now write down everything you see: things that are, things about to be.

영어NRSV,19 Now write what you have seen, what is, and what is to take place after this.

헬라어신약Stephanos,19 γραψον α ειδες και α εισιν και α μελλει γινεσθαι μετα ταυτα

라틴어Vulgate,19 scribe ergo quae vidisti et quae sunt et quae oportet fieri post haec

히브리어Modern,19 ועתה כתב את אשר ראית ואשר נעשה עתה ואשר עתיד להיות אחרי כן׃

성 경: [계1:19]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본문은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 그리고 ‘장차 될 일’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본서의 내용을 3구분하여 ‘네 본 것’은 1장의 ‘인자에 대한 환상’을, ‘이제 있는 일’은 2,3장에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현재 상태를, ‘장차 될 일’은 4-22장까지의 내용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Charles, Sweete, Lenski). (2)혹자는 본절의 주동사가 ‘기록하라’임에 주목하여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현재와 미래에 될 일’로 구분하여 해석한다(Mounce, Moffatt, Johnson).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요한이 보고 기록해야 하는 것은 본서의 전체이다.

토 뮈스테리온 톤 헾타 아스테론 후스 에이데스 에피 테스 뎈시아스 무 카이 타스 헾타 뤼크니아스 타스 크뤼사스 호이 헾타 아스테레스 앙겔로이 톤 헾타 엨클레시온 에이신 카이 하이 뤼크니아이 하이 헾타 헾타 엨클레시아이 에이신

개역개정,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새번역,20 네가 본 내 오른손의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은 이러하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심부름꾼이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 / ㉩또는 ‘천사’

우리말성경,20 네가 본 내 오른손의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비밀은 이것이니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

가톨릭성경,20 네가 본 내 오른손의 일곱 별과 일곱 황금 등잔대의 신비는 이러하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고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이다.”

영어NIV,20 The mystery of the seven stars that you saw in my right hand and of the seven golden lampstands is this: The seven stars are the angels of the seven churches, and the seven lampstands are the seven churches.

영어NASB,20 “As for the mystery of the seven stars which you saw in My right hand, and the seven golden lampstands: the seven stars are the angels of the seven churches, and the seven lampstands are the seven churches.

영어MSG,20 The Seven Stars you saw in my right hand and the seven-branched gold menorah–do you want to know what’s behind them? The Seven Stars are the Angels of the seven churches; the menorah’s seven branches are the seven churches.”

영어NRSV,20 As for the mystery of the seven stars that you saw in my right hand, and the seven golden lampstands: the seven stars are the angels of the seven churches, and the seven lampstands are the seven churches.

헬라어신약Stephanos,20 το μυστηριον των επτα αστερων ων ειδες επι της δεξιας μου και τας επτα λυχνιας τας χρυσας οι επτα αστερες αγγελοι των επτα εκκλησιων εισιν και αι επτα λυχνιαι ας ειδες επτα εκκλησιαι εισιν

라틴어Vulgate,20 sacramentum septem stellarum quas vidisti in dextera mea et septem candelabra aurea septem stellae angeli sunt septem ecclesiarum et candelabra septem septem ecclesiae sunt

히브리어Modern,20 את סוד שבעת הכוכבים אשר ראית בימיני ואת שבע מנרות הזהב שבעת הכוכבים הם מלאכי שבע הקהלות ושבע המנרות אשר ראית שבע קהלות הנה׃

성 경: [계1:20]

주제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주제2: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계시]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 ‘비밀’에 해당하는 ‘뮈스테리온'(*)은 원래 ‘가둔다’ 혹은 ‘닫는다’는 의미의 ‘뮈오'(*)에서 파생된 말로(10:7; 17:5,7) 단순히 ‘신비롭다’는 개념이 아니라 ‘상징적인 환상에 대한 내적인 의미’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셔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을 가리킨다(단2:7; 골1:26; 살후2:7, Charles, Robertson).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사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앙겔로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1)혹자는 교회에서 가장 우세하고 지배적인 정신(the prevailing spirit of the church)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Mounce). (2)혹자는 ‘교회 자체’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Bleek, Sweete). (3)혹자는 일곱 교회의 감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Zahn, Weiss) (4)혹자는 이 사자가 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점을 들어 교회에서 책임을 맡은 천사들이라 주장한다(Johnson, Moffatt, Charles, Rist). 이러한 견해들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단10:13,20.21). 한편 촛대로 상징된 일곱 교회는 일차적으로 소아시아의 선택된 교회를 말하나 본질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세계의 모든 교회를 가리킨다(엡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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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요한계시록 1장

제1과, 밧모 섬에서 생긴 일

> 시작하는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 때였다. 미국 어느 마을에서는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집마다 창문이나 현관문에 별을 붙여놓았다. 어느 날 밤 아버지와 함께 동네 길을 걸어가던 아들이 감탄하면서 외쳤다. “아빠 이 집도 아들을 전쟁터에 보냈나 봐요! 이 별 좀 보세요. 저 집에도 붙어 있네요!” 그러다가 아들은 갑자기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빠 하나님도 아들을 보내셨나 봐요. 저렇게 많은 별이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보니!”

그렇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아들을 이 죄악 세상에 보내시고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계 1:5)하셨다. 요한계시록은 그런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1~8장까지는 서론이다. 이 부분은 전형적인 고대 서신의 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저자와 기록목적, 서신의 성격과 핵심 주제들을 소개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장은 그리스도를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해방자로 묘사하고 있으며 알파와 오메가 측 처음과 나중이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자이며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 저자와 목적:

요한계시록의 처음 8절은 서론이다. 이 부분에는 이 책의 기록목적과 저자 그리고 주제가 나타나며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요약하고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또한 그 당시의 전형적인 편지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1.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누구이며 계시의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

이 책이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명백히 밝혔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요한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사도 요한은 그가 본 것과 들은 것을 기록한 자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인간의 글이 아니다. 하늘에서 온 계시의 말씀이다. 계시란 헬라어 ‘아포칼립시스(apocalypsis)’에서 온 말로 ‘베일을 벗기다’,’뚜껑을 열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모든 것을 숨김없이 폭로한 책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단지 무서운 상징들만 나타나는 책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책이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그리스도시다. 요한은 그의 책 첫머리부터 우리들을 예수그리스도 면전에 세우고 있으며 시종일관 각 시대의 역사적, 예언적, 교회사적 사건의 중심인물로서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란 이름은 실로 심원한 의미를 갖고 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에는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심이라”(마 1:21)고 기록하여 예수라는 이름의 깊은 뜻을 알리고 있다. 또 헬라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와 같은 말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계시를 주신 목적이 요한계시록 1장 1절에 분명히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보여주시려고 그 계시를 요한에게 보여주셨다. 즉 미래를 보여주신 것이다. 미래를 보여주신 목적이 무엇일까? 그것은 1장3절에 잘 나와있다. 즉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 예언을 꼭 연구하여 그 안에 있는 복을 받아야 한다. 알 수 없는 책이라고 덮어두는 것은 계시를 주신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2. 요한은 계시 중에 무엇을 보았는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계 1:2).

요한은 계시 중에 ① 하나님의 말씀과 ②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표현은 요한계시록에 3번 나타나는데(1:2, 9; 20:4), 하나님의 말씀은 단어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을 말한다. 구약 성경에서도“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말한다 (렘 1:2; 호 1:1; 욜 1:1).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로 보여주실 때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된다. 요한계시록 19장 10절에는 예수의 증거는“예언의 영”(개정개역 판)이라고 정의하였으며 22장 9절과 비교해보면“예수의 증거”는“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과 동의어임을 알 수 있다.

3. 어떤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인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여기서 언급하신 복은 요한계시록 에 나오는 일곱 축복(1:3; 14:13; 16:15; 19:9; 20:6; 22:7, 14) 중 첫 번째 복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을 일반적으로 “봉한 책”으로 알고 있다. 신비한 상징들과 계시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느냐는 생각이다. 숨겨 진 뜻을 억지로 풀다가 잘못될 수도 있다 는 두려움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자 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암 3:7)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깨달을 수 없는 것을 읽고 연구하라고 명령하실 리가 없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 책을“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 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계 1:1) 보여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우리가 읽고 들은 다음에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다. 알지 못하면 지킬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요한계시록을 부지런히 읽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고 말세에 “반드시 속히 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의 마지막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4. 요한은 이 계시를 누구에게 써 보내었는가?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계 1:4),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계 1:11).

요한계시록은 편지다. 일차적으로는 당시 로마의 영토였던 소아시아 에 실재하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는 오늘날의 터키 공화국에 속해 있는 지역이다. 일곱은 요한계시록에서 거룩한 수이며 완전 혹은 충만의 뜻을 나타내 는 상징적 숫자이다.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재앙, 일곱 우레 등과 같이 일곱이란 숫자를 거듭 사용했다(54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는 요한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실제 지명이며 요한의 편지도 실제로 그 교회들에게 보 내져 회람되었다고 본다. 당시의 일곱 교회를 지도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성경에 나타나는 숫자의 상징적 의미

1: 1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상징한다`(사 37:16; 요 17:3). “주도 하나이고 믿음도 하나 이요 침례도 하나” (엡 4:5)이다.

3: 7이나 12와 함께 완전 혹은 영원을 의미하는 수이다. 두 개의 선은 면을 만들지 못하지만 세 개의 선이 비로소 넓이를 만들어낸다. 두 개보다는 세 개의 다리가 물체를 세우는데 가장 안정감이 있다. 삼위 일체의 하나님도 삼이며 예수님에게는 세 명의 수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삼분의 일이라고 하면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일부를 의미한다. 사단이 하늘 천사의 삼분의 일을 유혹했기 때문에 때로는 사단의 영향권이 미치는 사단적인 수가 되기도 한다.

4: 땅의 사방처럼 방위를 나타낼 때 혹은 상징 적으로 온 세상을 나타낼 때 쓰인다.

6: 7이 완전수인데 일이 모자라므로 불완전한 수이다. 고대의 바벨론이 육진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바벨론의 수이며 666(계 13:18`)은 사단의 수이기도 하다.

7: 완전과 충만함을 나타내는 수이다. 하나님은 일곱째 날 세상을 창조하신 후 안식하셨다. 요한계시록도 일곱 촛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우레 등을 사용한다.

12: 조직의 완전수이다. 이스라엘은 12지파로 되어 있으며,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였고, 새 예루살렘 도성은 12기초석과 12진주문 등을 가지고 있다.

40: 훈련과 교육의 수이며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는 수이다. 노아홍수 때 비가 사십 주야 동안 쏟아졌으며,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지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40년을 훈련 받았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40일을 머물렀으며 예수님은 40일 동안 금식하고 시험을 받으셨다.

144: 3은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수이며 4는 동서남북 4방위에 근거한 땅과 우주의 수인데 이 두 수를 곱한 12는 성경에서 완전수이다. 따라서 12의 제곱인 144는 최상의 완전수를 의미한다. 거기에 충만을 나타내는 10의 세제곱을 곱하여 144,000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은 충만하고 완전한 수를 상징한다.

> 저자소개

5. 요한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였는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4~5).

요한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서두에 삼위 일체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축복을 구하고 있다. 참된 은혜와 평강은 삼위 일체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로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선재하신 분이고 현재 지금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며 곧 다시 오시어 이 세상 역사를 끝내실 분이다. 성령은“보좌 앞에 일곱 영”으로 소개되고 있다. 성령을 의미하는 일곱 영의 일곱은 요한계시록에서 완전하고 흠이 없음을 나타내는 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분으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이시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였고 복음의 충성된 증인이 되었다. 둘째로, 그분은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 중에 으뜸이 되는 분이시다. 제일 먼저 부활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제일 뛰어나신 분이라는 뜻이다(골 1:18).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다. 그분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단 2:21)시는 분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소개

6.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5~8).

인사를 끝낸 요한은 이제 이 모든 계시를 주신 그리스도에 대해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요한 당시의 교회들은 그 당시 널리 퍼져있던 원시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이단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 영지주의는 영과 육은 접촉할 수 없다는 그들의 이원론 교리 때문에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과 성육신을 전면적으로 부인하였다. 요한은 그들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1장에서 요한은 크게 세 가지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첫째는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구원은 값 싸게 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죄는 우리의 생명을 요구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그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여셨다. 그의 피로 이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죄의 사슬사슬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므로“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행 4:12)는 것이다. 성경은 단 하나의 구원의 길만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 갈 수가 없다. 기독교는 얼른 생각하면 패쇄적인 것 같지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기 때문에 가장 개방적이고 열린 종교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누구든지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요 복음이다. 두 번째, 예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살며 하나님 나라 자체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불순종하므로 그 특권을 빼앗겼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택하신 백성” (벧전 2:9)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있기를 간구하며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이다.

세 번째,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데려가시기 위하여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신약 성경에만 해도 300번 이상 약속되어 있다. 선악 간의 대쟁투를 계시로 보기 전에 요한은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의 광경을 본다. 구름을 타고 오시는 승리의 왕을 각인의 눈이 볼 것이고“그를 찌른 자들도 볼”(계 1:7) 것이다.

재림은 온 우주적인 사건이다. 재림은 몇 사람만 볼 수 있게 은밀히 일어나는 것이거나 영적으로만 식별되는 비밀스런 사건이 아니다. 재림은 휴거처럼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는 황당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목도하는 공개적인 우주의 대사건이다. 그것은“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마 24:27)이는 것같이 숨길 수 없는 것이다. 그 때 주께서는“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것이요“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 (살전 4:16, 17)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악인들은 부활하지 않지만 십자가에서 그를 조롱하고 못 박은 자들과, 각 시대를 통하여 그분과 그의 성도들을 핍박하고 찌르듯이 고통을 준 사람들은 특별히 부활하여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영광스러운 장면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때 의인들은“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라”(사 25:9) 하고 반가운 환영을 할 것이나 복음을 거절한 악인들은“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떨어져 보좌 위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계 6:15~16)워 달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그 엄숙한 날에 우리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는 오늘 우리의 결심에 달려 있다.

7.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자와 마지막 자다. 즉 처음과 나중이 된다는 말이니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시며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며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영원 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존재하셨고 장차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분이시다.

> 요한의 자기 소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목적

8.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 요한은 어떤 형편에 처해 있었는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계 1:9~11).

요한은 우리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다.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믿는 환난과 인내와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는 같은 십자가의 보혈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한 핏줄이다. 요한은 자신이 밧모라는 섬에 있다고 말한다. 밧모 섬은 에게해에 있는 작은 섬이다. 요한이 살던 에베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에베소 유적지 근방에 있는 터키의 쿠사다스 항구에서 배로 두 시간쯤 가면 바위로 된 섬이 나타난다. 스칼라(Scala)항구에 배를 대면 하얀 집들이 파란 바다와 어울려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밧모 섬은 길이가 16km, 가장 넓은 폭이 10km, 전체 면적은 31km2쯤 되는 작은 섬이다. 밧모 섬은 한때는 터키에 속했다가, 그 다음에는 이탈리아 영이었고 지금은 그리스에 속해 있다. 산 중턱에 요한이 거하면서 계시를 보았다는 계시 동굴이 있다. 동굴 위에는 교회가 서 있다. 꼭대기에는 성요한 기념 교회가 있으며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사들이 거하고 있다.

밧모 섬은 상당 부분이 바위로 덮여 있으며 땅의 대부분이 거칠고 피폐한 황무지이다. 비가 오지 않아서 물이 귀한 곳이다. 로마 시대에는 이곳에 큰 채석장이 있어서 죄수들이 돌을 캐는 일을 위하여 동원되었다고 한다.

요한이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이곳에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에베소에서 전도하던 시절에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밧모 섬에 유배된 것으로 보인다.

9. 요한은 밧모 섬에서 무슨 명령을 받았는가?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계 1:10~11).

요한은“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계시를 보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날에 자신을 나타내시고 계시를 주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요한이“주의 날”에 주의 음성을 들은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어느 날이 “주의 날”인가? 사람들은 이 날이 일요일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요한 당시는 아직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일이 없었으며 주일이라는 말도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은“주의 날”이란 말에 어떤 설명도 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글을 읽을 모든 사람들이“주의 날”이라고 말하면 당장에 그 날이 어느 날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기 교인들이“주의 날”이라고 부르는 날은 어느 날이었는가?

“주의 날”에 대한 성경의 유일한 단서는 마가복음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라는 말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식일이“주의 날”이라는 명백한 말씀이다. “주의 날”이 일요일이라는 어떤 성서적 근거도 없기 때문에 요한이 그렇게도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언급한“주의 날”은 일요일이 아니고‘안식일’즉 오늘날의‘토요일’임에 틀림없다. 일요일이란 요일 이름이 일반적으로 쓰여진 것은 A.D. 700년경이고 그 전에는 일요일을 “첫째 날”혹은“제 8일”이라고 불렀다. 일곱째 날인 안식일 바로 다음 날이기 때문이었다. 신약 성경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20여년이 지난 다음부터 기록되기 시작했지만 어떤 저자도 일요일을 주일로 부른 일이 없다.

안식일과 일요일

* 신약 시대 교회가 그렇게도 신실하게 지키던 안식일이 어떻게 해서 일요일로 바뀌게 되었는가? 무슨 이유로 A.D. 2세기 후반에 가서 안식일 대신 일요일에 모이는 일이 일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생겨났는가?

A.D. 132~135년경 다시 한번 로마에 저항하는 전국적인 유대인들의 반란이 바 코크바(Bar kochba, 별의 아들이라는 뜻)의 지도 하에 일어난 후 유대인들의 상황은 극도로 나빠졌다.

로마 황제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개명(改名)하고 유대인들을 아예 예루살렘에서 추방해버렸으며 대대적인 핍박이 유대인들에게 가해졌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는 분명히 달랐으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 때문에 유대인의 분파로 오해 받을 염려가 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그 핍박에 포함되지 않기 위하여 유대인들과 자기들의 신앙을 명백히 구분 지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예배일을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옮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일로 지키겠다는 명분이었다. 초기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무리들과 일요일을 지키는 무리들이 같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밀라노 칙령(A.D. 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는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을 공포하여 안식일을 이교의 태양숭배 제일인 일요일로 대체해 버렸다.

교회는 목숨을 걸고라도 그것에 반대해야 했었다. 그러나 이미 세상 권세에 융화되고 약해진 교회는 그럴 힘이 없었다. 오히려 타협하여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그 조치를 승인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A.D. 135년 이전에는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했고 그 날이 분명히 성서적인 주의 날이었다.

그러므로 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 …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은 날은 일요일이 아니라 오늘날의 ‘토요일’인 ‘안식일’이었다 (눅 6:5, 막2:28). 안식일의 주인께서 그의 날 즉 안식일에 요한에게 나타나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요한에게 말하기를“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 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하였다. 이 명칭들은 모두 그 당시 소아시아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던 도시들의 이름이기 때문에 일곱 교회는 이 도시들에 세워진 교회들일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10. 요한에게 말씀하신 그 분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그 분은 누구였는가?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계 1:12~16).

요한은 하늘의 일곱 금 촛대 사이에서 인자 같은 이를 보았다. 신약 성경에서 인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계시 중에 예수의 모습을 본 것이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말한다(계 1:20). 교회가 금 촛대로 상징된 것은 예수께서 교회를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분이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것은 예수께서 교회들을 돌보고 계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극한 관심으로 살피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비체이다. 이것은 단순한 형용사가 아니라 밀접하여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표시한 것이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를 말 할 때 에클레시아(ekklesia)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이는‘불러낸다’란 의미의 헬라어로 고대 헬라 사회에서 군중을 불러 모을 때에 사용하던 것이다. 또 이것은 히브리어 카할(kahal)이란 말과 동의어로써 여기에서 영어의‘콜’(call), 즉‘부른다’란 말이 생기게 되었다. 대저 교회란 불러낸 자의 단체이다. 교회는 촛대요, 그 주요 목적은 주위 사람들을 위하여 진리의 빛을 널리 비추며 또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데 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는 것은 예수께서 제사장 의 옷을 입고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으로서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계시록 전체를 통하여 흰색은 영광과 승리와 순결의 상징이고 (계2:17, 3:4, 4:4, 6:11, 7:9, 19:14, 20:11) 그리스도의 현현의 상징이었다(계 1:14, 14:14, 19:11). 흰색은 또한 하늘 백성들의 옷 색깔이고 하나님의 보좌도 흰색이다(계 20:11).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머리와 털은 희기가 흰 양털 같으며(계 1:14) 진실한 신앙인들은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받으며(계 2:17), 또 그들은 흰 옷을 입는다(계 3:4, 5, 18). 이십사 장로들도 흰 옷을 입으며(계 4:4), 순교자들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들도 모두 흰옷을 입는다(계 6:11, 계 7:9, 13). 인자가 흰 구름 위에 앉아 계시며(계 14:14), 다시 오실 때도 그는 흰 말을 타고 있으며 그를 수행하는 하늘의 군대도 흰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있다(계 19:11, 14).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꿰뚫어 보시는 통찰력과 그의 견고하심과 장엄하신 위엄을 말하고 있다.

그가 오른손에 가지고 있는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다(계 1:20). 하 나님의 교회의 복음 전도자들과 지도자들을 예수께서는 오른손으로 친히 도우시고 지키신다(사 41:10). 그분의 입에서는 날 선 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며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는 엄숙함과 밝음을 가지고 있다.

11. 요한은 그 앞에서 어떻게 되었으며 그 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였는가?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1: 17~18).

요한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분의 사랑하는 제자였다. 요한 은 예수께서 어떻게 반대를 당하셨으며 고통을 견디셨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시며 땀이 핏방울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본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것을 친히 본 제자였다.

그런데 계시 중에 그가 본 예수님은 더 이상 고난의 종이 아니었다. 그를 두르고 있는 영광이 너무나 장엄하기 때문에 요한은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의식을 잃었다.

그때였다. 옛날과 똑같이 부드러운 오른손이 그에게 얹혀지면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두려워 말라.” 요한은 그 목소리를 잘 알았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바다를 걸어오신 그분이 하신 말씀이었다. 제자들이 낙망 중에 빠져 주저앉았을 때 들려주시던 그 음성이었다. 예수께서 는 자신을“처음이요 나중” 이라고 소개하셨다. 이미 언급된“알파와 오메가”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변함없으신 그분의 존재와 품성을 잘 드러낸 말이다.

예수께서는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분이시다. 다시 말하면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고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인 것이다.

12. 요한은 어떤 지시를 받았는가?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 19~20).

요한은 다시 한번 계시 중에 그가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라는 명을 받는다. 그것은 각 시대의 성도들이 보고 그 뜻을 알아 유익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비밀의 책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거듭거듭 하늘 성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성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하늘 성소의 식양에 따라 광야에서 맨 처음 만들었다. 후에 화려한 솔로몬 성전이 지어졌지만 기본 구조는 같은 것이다. 아래의 구조도를 통해서 성소의 구조를 알아두는 것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성소의 구조

요한이 계시 중에 본 것은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였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리고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이다. 교회는 각 시대의 하나님의 촛대이다. 해변에는 등대가 있어 그 빛이 해상의 많은 선박들을 인도하고 그들의 안전한 항해를 위하여 서 있다. 교회를 통해서 비취는 하나님의 빛도 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영속적으로 비취는 빛인 것이다.

♣ 요한계시록의 칠 복

1) “읽고 깨닫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계 1:3)

2)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나니”(계 14:13)

3) “자기의 옷을 살피며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계 16:15)

4)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청된 자는 복이 있나니”(계 19:9)

5)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계 20:6)

6)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계 22:7)

7) “그 옷을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계 22:14)

호크마 주석, 요한계시록 01장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류시스'(* )는 ‘본래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말로 성경에서는 ‘진리에 대한 통찰력'(엡1:17)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의 나타냄'(살후1:7; 벧전1:7)을 의미한다(Johnson, Lohmeyer). 본문에서 ‘아포칼류시스’가 복수가 아닌 단수로 언급된 것은 본서가 여러 개의 예언과 환상으로 말하고 있으나 ‘말씀’이라는 하나의 일치점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 예수 그리스투)에 나타난 속격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목적격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라고 주장한다(Hughes). (2)혹자는 주격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라고 주장한다(Kraft, Charles, Ladd).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Tenney, Morris). 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요한에게 주어진 것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관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 ‘그에게’는 앞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를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계시의 근원임을 시사한다(Mounce, Morris, Lenski, Johnson). 즉 성부 하나님은 모든 섭리의 계획자이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일의 성취자이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속설(從屬說)을 뜻하지 않는다(요3:34,35; 5:20-24; 7:16; 8:28,29; 12:49; 14:10,24; 16:15; 17:8, Alford, Morris).

반드시 속히 될 일을 – ‘반드시’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이'(* )는 예언적 필연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대로 일이 확실히 성취될 것을 나타낸다(Loh-meyer). 한편 ‘속히 될 일’은 하나님의 계시가 미래에 성취될 사건임을 암시한다(4:1; 22:6; 단2:28,29,45, Johnson). 여기서 ‘속히'(* ,엔 타케이)는 본서에 7회나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으며(2:16; 3:11; 11:14; 22:7,12,20) 이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 나뉜다. (1)혹자는 시간적 성취의 관점으로 해석한다(Vincent, Hengstenbe-rg). (2)혹자는 종말론적 임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계시의 성취의 진행과 확실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Alford, Johnson, Morris, Mounce). ‘엔 타케이’는 예기치 못한 때에 갑자기 성취되는 것을 나타낸다. 즉 ‘엔 타케이’는 인간의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측면에서의 시간적 개념으로(벧후3:8) 하나님의 갑작스런 개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계시의 성취와 그 확실성을 나타낸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 본문은 계시의 전달 경로를 나타낸다. (1)하나님. (2)예수 그리스도. (3)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계시의 전달자이며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를 통해 자신의 종인 요한에게 전하셨으며, 그 종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전하였다. 여기서 세 번이나 언급되는 ‘그'(* ,아우투)는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본문의 주 동사인 ‘에세마넨'(* , ‘지시하신 것이라’)의 주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모든 계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 계시를 전달받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종들, 천사, 그리고 종 요한에게 전달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한편, ‘그 천사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 앙겔루 아우투'(* )는 ‘그 천사를 통해’라는 의미로 천사의 매개적 역할을 나타내며(22:6,16), ‘그 종 요한에게’의 헬라어 ‘토 둘로 아우투 요안네'(* )는 수단이나 기구를 나타내는 여격이 사용되어 요한이 계시 전달의 인간적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본서의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기원하여 참됨 중보자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천사와 인간적 도구로 말미암아 수신자들에게 전달된다(Sweet, Moffatt, Ironside).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동일한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즉 계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증거되어 나타났음을 나타낸다. 즉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이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직접하신 증거이며,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낸다. 또한 본문에서 요한 자신이 본 환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동일시됨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신약 시대 사도들과의 연속성을 엿볼 수 있다(Johnson, Plummer).

=====1:3

본서에는 일곱 부류의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진술이 나타난다. (1)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 (2)주 안에서 죽는 자(14:13). (3)깨어 옷을 지키는 자(16:15 ). (4)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된 자(19:9). (5)첫 부활에 참여한 자(20:6). (6)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22:7). (7)두루마리를 빠는 자(22:14). 본절에 나타난 사람은 일곱 부류의 복 있는 사람중 첫번째에 해당된다. 이 예언의 말씀을…복이 있나니 – ‘이 예언의 말씀’은 본서가 예언서임을 나타내는 것으로(10:11; 22:6,7,10,18,19) 본서의 말씀이 예언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영적, 윤리적 권면과 권고를 포함한 현재적 경고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Johnson).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과 관련하여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이 있음을 기술한다.

읽는 자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호 아나기노스콘'(* )은 관사 있는 단수 분사로 초대교회에서 회중을 대표하여 성경을 읽던 자를 나타낸다. 듣는 자들(* , 호이아쿠온테스)과 지키는 자들(* , 테룬테스). 이 두 부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모두 복수로 예언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행하는 회중들을 나타낸다(눅4:16; 행13:15,21; 골4:16, Johnson, Zahn, Robertson). 요한은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유대인들의 관습을 통해서는(느8:2,3; 눅4:16; 행13:15; 살전5:27) 본서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때가 가까움이라 – 본문은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이다.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로스'(* )는 보편적인 시간을 나타내는 ‘크로노스'(* )와는 달리 결정적인 섭리를 나타내는 종말론적 시각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승천한 이후부터 다시 오실 재림의 때까지는 인간 편에서 볼 때 항상 임박한 긴장(緊張)의 시간이며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정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마24:3-51; 요21:22, Johnson, Mounce).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 본문에서 아무런 수식어 없이 ‘요한’이라고 언급한 것은 서신을 받는 일곱 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요한이 아시아 교회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Mounce). 한편 ‘아시아에’는 본래 로마의 영토를 지칭하는 것으로 아타톨리아 고원에 이르는 소아시아의 서편 지역을 가리킨다(Morris, Kiddle). 당시 아시아 주에는 ‘드로아'(행20:5), ‘골로새'(골1:2), ‘히에라볼리'(골4:13) 등 많은 교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일곱 교회에만 편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일곱 교회가 역사상의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Seiss, Kuyper). (2)혹자는 ‘일곱’이란 숫자가 완전 수이므로 계시록에 언급되는 다른 일곱이라는 문학적 양식을 따른 것이라 주장한다(Morris, Johnson, Moffatt, Greijdanus). (3)혹자는 일곱 교회가 처한 황제 숭배화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Mounce)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 견해는 타당하다(레4:6,17; 8:11,33; 민19:12; 롬12:6-8; 약3:17, Ford, Vincent, Canon).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 아포 호 온 카이호 엔 카이 호 에르코메노스). ‘말미암아’의 뜻을 가진 전치사 ‘아포'(* )는 보통 소유격 명사와 함께 쓰임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주

격 명사와 함께 사용되었다. 이런한 표현 방법은 본서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8절; 4:8; 11:17; 16:5) 요한이 헬라어 문법상 어긋나는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영원불변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신적 성품을 손상시키지 않고 경외하려는 동시에서 비롯되었다. 즉 이러한 표현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잘 묘사하려는 요한의 의도를 암시한다(Greijdanus, Morris, Johnson, Ladd).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전능하신 분이다(8절; 4:8).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 ‘일곱 영’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일곱 천사라고 주장한다(Beasley-Murray, Mounce). (2)혹자는 성령이라고 주장한다(Ladd, Johnson, Morris).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전자의 경우 본절과 다음절에 나타나는 삼위일체론적 인사말에 어긋나며 본서에 나타나는 ‘영’은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나 마귀의 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령을 ‘일곱 영’으로 표현한 것은 성령의 속성과 권능이 완전(完全)하고 성결함을 시사한다(3:1; 4:5,6; 5:5; 슥3:9, Johnson, Morris, Robertson, Barclay, Lenski, Ladd).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 본문은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수식하는 첫번째 수식구로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충성된 증인으로(시89:37; 사55:4) 새 언약을 성취시킨 것이었음을 나타낸다(Morris, Johnson). 즉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기까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시킨 하나님의 충성된 증인이었다(Ladd). 이러한 사실은 당시 박해와 고난에 처해 있던 일곱 교회의 수신자들에게 위로와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2:13; 11:3; 17:6, Mounce, Johnson).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 ‘먼저 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프로토토코스'(* )는 바울의 경우 모든 피조물의 근원이나 통치자의 의미로 사용한 반면(골1:15),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가 되었다는 의미로 사용하여 그리스도께서 모든 죽은 자들에 대하여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하고 있다(시89:27, Ladd, Mounce, Johnson).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땅의 임금들의 머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르콘 톤 바실레온 테스 게스'(* )는 문자적으로 ‘땅의 왕들의 통치자’를 의미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왕적 직분을 표현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뛰어나시며 모든 권세자들을 지배하시는 주권적 통치자이심을 시사한다(6:15; 17:14; 19:16; 시89:27; 빌2:9,10, Johnson, Mounce, mor- ris, Ironside).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 )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선물을 의미하며(롬1:7; 고전1:3), ‘평강’의 헬라어 ‘에이레네'(* )는 히브리인들의 인사말로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풍요로운 영적 상태와 화목을 가리킨다. 이 인사는 평범한 인사와는 달리 하나님의 축복이 종적, 횡적으로 임할 것을 기원하는 것이다(롬1:7; 고전1:3; 엡1:2; 벧후1:2, Mounce, Craft, Martin, and Kiddle).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사랑하사’의 헬라어 ‘아가폰티'(* )는 현재 분사로 계속되는 사랑을 나타낸다. 이 ‘사랑’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Mounce). 한편 ‘해방하시고’에 해당되는 헬라어 ‘뤼산티'(* )는 부정 과거 분사형으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죄에서 해방하신 공효(功效)를 시사한다(5:9; 마20:28; 요8:34-36; 갈3:13; 딤전2:6; 히9:12; 벧전1:18,19, Moffatt, Mounce, Lenski). 이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죄에서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바와 같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며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된다(12:11).

=====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나타내며(22:3; 엡1:6) 구원 사역이 삼위 하나님의 협동적 사역으로 수행되나 근원적으로는 성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요6장). 한편 ‘나라와 제사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바실레이안, 히에레이스'(* , )는 문자적으로 ‘나라, 곧 제사장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제사장들의 집합체를 가리킨다. 이는 출19:6과, 벧전2:9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왕됨과 제사장됨을 시사한다(Beckwith, Morris, Lenski).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영광’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돝사'(* )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반영하는 것으로(출33:9; 겔1:28)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삼위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본문의 경우에는 관사와 함께 사용되어 하나님의 신적 속성에 관한 찬양과 공경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Mounce). 그리고 ‘능력’의 헬라어 ‘토 크라토스'(* )는 인간이 갖는 권리나 내적 능력보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능력을 나타낸다(벧전4:11). 한편 ‘세세토록’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은 문자적으로 ‘세대들의 세대들에’라는 의미로 ‘영원성’을 나타낸다(18절; 4:9,10; 5:13; 7:12; 10:6; 11:15; 15:7; 19:3; 20:10; 22:5, Lenski). 요한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이 수신자들에게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본문은 단7:13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 이것은 예수께서 친히 확증하신 바며(마24:30; 26:64) 사도 바울에 의해 입증된 재림의 모습이다(살전4:17). 여기서 재림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구름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위엄을 나타내는 초자연적 현상인 듯하다(Morris, Lenski, Johnson).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 본문은 슥12:10의 예언을 반영한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공개성을 나타낸다. 현재는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실로 인식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도의 재림 때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눈으로 확연히 보게 될 것이다(Ladd). 한편 ‘그를 찌른 자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Moffatt, Plummer, Johnson, Ladd). 그리스도는 이런한 자들에게도 자신의 재림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박해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재림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주적 주권을 소유한 분으로서 온 세상을 공의롭게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 본문은 심판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회개치 못한 다들의 비참한 상태를 나타낸다. 본문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회개치 않은 불신자들이 당할 두려움을 극명하게 시사한다(Morris, Mounce, Ironside).

그러하리라 아멘 – ‘그러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나이'(* )는 동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히브리어 ‘아멘'(* )과 같다. 요한은 동의어인 ‘그러하리라’와 ‘아멘’을 이중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종말적인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한다(Greijdanus, Morris, Mounce).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 ‘알파’는 헬라어 문자의 첫 글자며,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시작인 동시에 마지막이 되셔서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시대와 세대의 주가 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창조주와 심판주로서 모든 주권을 소유하고 계신다(21:6; 22:13, Beasley-Murray,Charles, Robertson). 이런한 하나님이 보증하신 그리스도의 재림은 확실한 것이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 본문은 4절의 반복으로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즉 ‘영원히 자존’하신 하나님의 성품을(출3:14) 묘사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체 안에 존재의 기반을 가지고 계셔서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시며 영원 불변하신 심판자이심을 나타낸다(Johnson). 그 하나님은 장차 오셔서 자신이 섭리하신 심판을 이루실 것이다(Ladd).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전능한 자’의 헬라어 ‘판토크라토르'(* )는 본서에 9회나 언급되는 중심 단어로 문자적으로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나타낸다. 이것은 곧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자가 분명히 가져야 될 속성이다(Johnson).

=====1:9

나 요한은 – 요한은 다시금 자신을 밝혀 하나님과 자신과 수신자들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요한이 자신을 ‘사도 요한’이라 밝히지 않는 것은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과 친분이 있음을 암시한다(22:8, Johnson).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 요한은 본문에서 자신과 수신자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너희 형제요…동참하는 자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호 아델포스 휘몬카이 슁코이노노스'(* )로 하나의 관사 ‘호’에 의해 두 가지 칭호 즉 ‘형제’와 ‘동참하는 자’가 연결되어 있다. 이는 ‘형제’인 까닭에 ‘동참하게 된다’는 인과 관계를 드러낸다. 한편 ‘예수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예수'(* )는 문자적으로 ‘예수 안에서’란 의미로 ‘주 안에서’란 바울의 사상과 상통하며, 문법적으로는 ‘환난’과 ‘나라’와 ‘참음’의 세 말에 공통적으로 연결되어 ‘환난’과 ‘나라’ 그리고 ‘참음’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Moffatt, Mounce). 여기서 ‘환난’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해 온전히 충성할 때 나타나는 고난을 가리키며(요16:33; 행14:22; 딤후3:12) ‘나라’는 메시야적 통치의 축복을 말하며, ‘참음’의 헬라어 ‘휘포모네'(* )는 ‘휘포'(* , ‘아래에’)와 ‘메노'(* ,’머물다’)의 합성어로 충성된 자들에게 요구되는 적극적인 인내를 가리킨다. 이것은 요한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축복을 기다리는 가운데 환난 속에서 인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Johnson, Ironside).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인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와 관련되어 요한의 밧모섬 행(行)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갔다고 주장한다(Spitta). (2)혹자는 하나님의 말씀, 곧 계시를 받기 위해 갔다고 주장한다(Weiss, Bleek, Lucke). (3)혹자는 복음 전파에 대한 박해로 말미암아 유배되었다고 주장한다(Moffatt, Charles, Vincent, Plummer, Johnson). 세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 때 에베소 지방에서 전도하던 중 밧모섬에 귀양갔다가 후에 귀환(歸還)하였다고 역사가와 교부들이 전하기 때문이다(Irenaeus, Clement, Eusebius).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 ‘주의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테 퀴리아케 헤메라'(* )는 문자적으로 주께 속한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식후 첫날'(막 16:2; 눅24:1; 요20:19; 행20:7) 혹은 ‘매주일 첫날'(고전16:2)과 같은 뜻이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유대교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이 사도 시대부터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로 대치된 것을 가리킨다(요20:19; 행20:7; 고전16:2, Morris, Lenski, Ladd). 한편 ‘성령에 감동하여’의 헬라어 ‘에게노멘 엔 프뉴마티'(* )는 문자적으로 ‘내가 성령 안에 있었다’는 뜻으로 이는 단순히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황홀한 상태에 있게 되었음을 암시한다(4:2; 17:3; 21:10; 행10:10; 11:5, Lohmeyer, Ladd, Johnson,Mounce).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나팔소리’는 구약 시대에 백성을 불러 소집하거나 군사적으로 경고할 때(겔33:6), 전쟁 때(겔7:14), 그리고 특별한 의미로 절기 때(레23:24) 사용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한 징표로 나타난다(마24:31; 살전4:16). 본서에서 70회나 사용되며 종말론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본문의 ‘나팔소리’는 심령들을 일깨우는 천사의 음성으로 이해된다(Morris, Mounce, Ladd).

=====1: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 ‘써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랖손'(* )은 부정과거 명령형으로 즉각적인 이행을 촉구하는 표현이다. 이는 특별히 히브리 예언 방식으로, 본서에서 12회나 반복되어 사용됨으로 본서의 기록이 하나님의 권위로 되었음을 시사한다(Morris, Robertson).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 본문에 제시된 교회의 명칭은 1:4에서 언급된 ‘일곱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각각의 교회에 보내진 특별한 메시지는 2,3장에서 동일한 순서로 나타난다(‘일곱 교회’에 대해서는 2,3장의 주석 참조). 특별히 기록된 말씀을 일곱 교회에만 보내라고 한 것은 그 도시들이 소아시아 중서부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며(Zean) 동시에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가 보편적으로 모든 교회에 해당되기 때문이다(Mounce, Lenski).

=====1:12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 요한이 처음으로 본 것은 슥4:2의 환상과 비슷한 일곱 금 촛대로 여기서 ‘촛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뤼크니아스'(* )는 세워놓거나 달아메는 ‘등잔불’을 가리킨다(출 25:31; 왕상7:49; 슥4:2). ‘일곱 금 촛대’는 스가랴서에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반면에(슥4:2) 본문에서는 수신자들인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나아가 전세계의 보편적인 모든 교회들을 나타낸다(20절, Mounce, Johnson, Kiddle).

=====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 ‘인자 같은 이’란 단7:13,14을 반영한 것으로 계시자이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고양시켜 표현한 것이다(행7:56).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은 물론 영광으로 고양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Beas ley-Murray). 그리스도가 성전의 촛대 사이로 움직이시는 것은 그의 대제사장적 임재와 교회의 머리되심을 시사한다(Moffatt, Mounce).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 ‘발에 끌리는 옷’은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 착용한 예복으로(출28:4; 레16:4; 사6:1)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의 권위와 위엄을 시사한다(Johnson, Mounce).

가슴에 금띠를 띠고 – 이 또한 대제사장 혹은 왕의 예복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출28:8; 29:5) 권세를 가지신 메시야의 모습을 나타낸다. 이렇듯 요한은 구약성경에 묘사된 대제사장과 왕의 모습을 빌어 그리스도의 위엄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나타내고 있다(Bruce, Johnson, Mounce, Morris, Ironside).

=====1: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 본문은 단7:9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성경에서 흰 색깔은 항상 ‘권위’와 ‘영광’과 ‘순결’을 상징하기에 본문은 그리스도의 성결과 영원성 혹은 그의 영원한 신성을 상징한다(사1:18, Mounce, Kiddle).

그의 눈은 불꽃 같고 – 이는 단10:6을 반영한 것으로 그분의 전지성으로 모든 악을 꿰뚫어 아시는 날카로운 공의의 눈을 상징하며(Vincent) 아울러 승리로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심판을 시사한다.

=====1: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 ‘빛난 주석’의 헬라어 ‘칼콜리바노'(* )의 어원(語源)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일반적으로 ‘금 같은 청동’ 혹은 ‘양질의 합금이나 놋쇠’로 이해된다(계2:18). 그리스도께서 빛난 주석의 발을 가지셨다는 사실은 초림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힌 발’과는 달리 재림 때에는 영광과 권능으로 오셔서 모든 더러운 무리들과 반대자들을 밟아 심판할 것을 상징한다(단10:6, Lenski, Mounce).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 본문은 10절의 ‘나팔소리 같은’에 뒤이어 나타나는 음성에 대한 묘사로 겔43:2에 똑같은 표현이 나온다. 이는 불가항력적인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음성이 모든 죄인들에게 두려움을 줄 무서운 음성임을 시사한다(시29:3,4).

=====1:16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 ‘오른 손’은 권세있는 능력 혹은 보호와 안전을 상징한다(출15:6; 사41:10; 행2:33). 그리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를 뜻하며(20절) 더 나아가 전세계에 흩어진 모든 교회의 사자들을 상징한다. 따라서 본문은 일곱 교회 즉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과 보호하심 가운데 있음을 시사한다(Lenski, Johnson, Mounce).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 이는 신,구약 성경에서 흔히 사용된 비유이다(사11:4; 49:2; 눅2:35; 엡6:17; 히4:12). 혹자는 ‘날선 검’을 ‘율법과 복음’의 양면으로 해석하기도 하나(Tertullian, Victor) 본문은 단순히 날선 검의 심판적 기능을 묘사한 것으로 만국을 심판하시는 메시야의 심판권을 시사한다(19:15; 살후1:8, Charles, Mounce, Walvoord).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 ‘얼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프시스'(* )는 ‘외관’으로 이해되므로(Lenski, Mounce) 본문은 환상 전체에 대한 결론적 묘사로 보인다. 이것은 마치 과거에 변화산에서 순간적으로 체험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모습과 유사한 것으로(마17:2; 막9:3, Plummer) 그리스도의 신성한 영광과 우월함을 시사한다(Johnson).

=====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 본문은 인간이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한 초자연적인 환상을 보고 두려움과 떨림에 압도되었음을 시사해준다. 이는 계시를 받을 때 흔히 일어나는 모습으로(수5:14; 겔1:28; 단8:17; 10:15; 마176; 행26:14) 인간의 연약성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느끼는 두려운을 시사하며 일반적인 공포와 전율의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Greijdanus, Lenski, Moffatt).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흔히 제자들을 안심시킨 것과 같이(마14:27; 17:7; 막6:50) 인자한 모습과 음성으로 요한을 위로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고 에이미 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 )는 구문상 강조 용법으로 ‘처음과 나중인 바로 나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8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나타난 ‘알파와 오메가’와 동일한 것으로 8절에서는 하나님에게 적용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칭호로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이렇듯 자신의 칭호를 통해 위로하심으로 요한에게 절대적인 확신을 주고 있다(Mounce, Zahn, Ironside).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 ‘곧 산 자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호 존'(* )은 앞절의 ‘처음과 나중’이라는 칭호를 보충하는 언급으로 늘 살아있는 ‘영원성’을 나타낸다(출3:14; 시42:2). 한편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역사적 사실을 가리킨다.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생명을 제한시킨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수여할 수 있는 구속사적 순종의 사건이다(요5:26, Lohmeyer).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 ‘음부’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두'(* )는 히브리어 ‘스올'(* )을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육신의 죽음 상태와 무덤 혹은 죽은 영혼들이 가는 곳을 가리켰으며(왕상2:2,9; 욥3:13; 30:23; 시89:48; 사14:9; 겔32:28, Johnson, Greijdanus) 신약성경에서는 죽은자들이 있는 곳(행2:27,31), 혹은 죽어서 악인들이 거하는 곳을 의미하였다(20:13,14; 눅16:23).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부활을 통해 사망의 영역을 정복하시고(고전15:54,55, Vincent) 영원히 살아계셔서 죽음의 영역을 주관하는 열쇠 곧 권능과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

=====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 본문은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 그리고 ‘장차 될 일’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본서의 내용을 3구분하여 ‘네 본 것’은 1장의 ‘인자에 대한 환상’을, ‘이제 있는 일’은 2,3장에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현재 상태를, ‘장차 될 일’은 4-22장까지의 내용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Charles, Sweete, Lenski). (2)혹자는 본절의 주동사가 ‘기록하라’임에 주목하여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현재와 미래에 될 일’로 구분하여 해석한다(Mounce, Moffatt, Johnson).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요한이 보고 기록해야 하는 것은 본서의 전체이다.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 ‘비밀’에 해당하는 ‘뮈스테리온'(* )은 원래 ‘가둔다’ 혹은 ‘닫는다’는 의미의 ‘뮈오'(* )에서 파생된 말로(10:7; 17:5,7) 단순히 ‘신비롭다’는 개념이 아니라 ‘상징적인 환상에 대한 내적인 의미’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셔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을 가리킨다(단2:7; 골1:26; 살후2:7, Charles, Robertson).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사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앙겔로이'(* )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1)혹자는 교회에서 가장 우세하고 지배적인 정신(the prevailing spirit of the church)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Mounce). (2)혹자는 ‘교회 자체’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Bleek, Sweete). (3)혹자는 일곱 교회의 감독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Zahn, Weiss) (4)혹자는 이 사자가 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점을 들어 교회에서 책임을 맡은 천사들이라 주장한다(Johnson, Moffatt, Charles, Rist). 이러한 견해들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단10:13,20.21). 한편 촛대로 상징된 일곱 교회는 일차적으로 소아시아의 선택된 교회를 말하나 본질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세계의 모든 교회를 가리킨다(엡3:10).

제목과 문안 인사

요한계시록 1:1-8

요한계시록은 구조적으로 서론 부분(1:l-8)과 결론 부분(22:6-21)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l.문안 인사로 시작하고(l:4,5),축복기도로 끝을 맺는다(22:21)

(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계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2.중심 주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계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22:7,12,20

7-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20-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3.때가 가까움을 말씀하신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4.사자를 보내어서 종들로 알게 하셨다.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계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5.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예수 그리스도)

(계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6.지키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이 서론의 부분은 표제에서 시작하여 문안 인사로 나아가고 있다.

l.제목一예수그리스도의 계시

1-3절은 이 책의 서론으로 l절은 계시의 유례를, 2절에서는 계시의 성격을, 3절에서는 이 계시의 목적을 선언하고 있다.

l.제목-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묵시)

이것이 이 책의 이름이다. 요한 계시록이란 이름은 후대에 붙인 이름이지 성경 자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한다.

계시(묵시)-계시라는 말은 벗긴다는 뜻의 단어(아포칼룹시스)로 문학적 분류가 아니라 이 책의 성격과 목적(반드시 일어날 일에 대한 전문적인 용어)을 지적하는 말이다.

주전200-주후 100년 사이에 유대에서 묵시문학이라는 유대-기독교적 문학 장르가 있었다. 요한계시록은 여러 면에서 그 문학 장르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차이점도 있음을 알아서 무조건 묵시문학으로 취급하는 것은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묵시문학적 방법이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묵시문학과의 유사점: 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의 제시를 다룸

환상과 꿈을 사용

가끔 기괴하고 환상적인 상징을 사용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관심

우주의 대 이변적 종말 사건에 관심

묵시문학과의 차이점: 과거 몇몇의 위인들의 이름을 빌리지 앉고 요한이라는 생존 인물의 이름을 둔다.

계시록은 문학작품이 아니라 일종의 편지이며 특정 지역의 교회에 읽혀지도록 의도되었다.

묵시문학은 염세적이어서 위로를 멀리 동떨어진 미래의 것으로 보나 요한은 하나님 나라의 현실적 용어로, 그리고 재림을 확신케 하는 용어로 나타난다. 그래서 예언이라고 한다(l:3).

요한은 천상의 실체들을 보긴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피안적이거나 거짓이 아니라 사건들과 교회의 현실 상황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다. 그러면서 구속적 완성을 내다본다.

예수 그리스도

계시록에서는 1:1-5에서만 이중적인 칭호가 3번 나오고 나머지에서는 예수라는 말로 나온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목적격 소유격으로 계시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인가, 아니면 주격적 소유격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신(혹은 매개하여 주신)계시라는 말인가? 여기서는 후자이다. 계시의 대상은 속히 될 일이라고 다시 나오기 때문이다.

반드시 속히 될 일

계시의 내용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한다. 이 말씀은 구약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단2: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은 이러하니이다

바로 은밀한 것, 후일에 될 일이라는 말을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는 말에서 반영하고 있다.

일이란 단순히 교회의 핍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종말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다. 이 역사는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그리고 창조와 구속 안에서 그의 목적의 제시로부터 일어나는 논리적인 필요 요건이다.

문제는 ‘속히’라는 말이다. 이 말이 과거주의를 옹호해 주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①갑자기 혹은 일단 지정된 시간이 되면 지체없이란 의미이다.

②이것은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그 일의 확실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문제는 선지자들은 연대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미래는 항상 임박해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깝고도 먼 미래를 하나의 캔버스 위에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연대기에는 거의 강조점이 없다. 그러므로 항상 미래를 임박한 것으로 보고 기대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성경의 예언의 특징이다(막13:33).

계시의 유래: 하나님-그(예수 그리스도)-천사-요한-그 종들

하나님은 모든 계시의 원천이시다(단2:28,29,4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열어서 보이시는 계시의 매개자이시다(계5:1-7,6:l,3,5,7,9,12,8:1).

그리고 그 다음의 의미가 또 문제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는 말속에서 지시하신 분이 누구냐는 문제이다.

①그리스도이시면 천사는 22:8에 나오는 그 천사일 것이며, 22:16의 내용도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②하나님이시면 천사는 사자라는 일반적인 의미로(1:20,2:l,8)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계시는 요한에게 전달되었다. 이는 모종의 기호에 의하여 알려졌음을 암시한다(계시라는 말이). 그러므로 이것은 상징적이 되며, 이것은 우리에게 미래사의 문자적 계시가 아니라 앞으로 반드시 될 일에 대한 상징적 묘사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계시는 종들에게 주어진다. 종들은 근본적으로 기독교 선지자들인데(암3:8,계10:7,11:18) 이 책의 다른 곳에서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계7:3,19:5,22:3).

2.계시의 성격::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기의 본 것

요한은 여기에서 자신을 오로지 자기의 본 것을 증거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바로 그것인데 그것은 두 가지의 것이 아니라 동격으로 같은 내용이다. 그리고 요한은 그 성격에 대하여 특히 상징적인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문자적인 것이나 들은 내용의 제시가 아니라 바로 그가 본 것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본다는 점은 상징성과 보는 이의 느낌이 중요시되며,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굉장히 곤란하게 만든다.

3.계시의 목적: 읽고 듣고 행함

요한계시록의 목적이 여기에 등장한다. 그는 예언이라고 하다. 이는 앞일을 예고하는 것 뿐 아니라 의미를 밝히는 것을 의미 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시간적인 요소는 예언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원칙들과 그것들이 다가오는 역사 속에서 예증되는 징후를 밝히며, 어떤 법칙과 그것이 작용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적용의 실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읽는 자는 유대교에서 온 습관으로(눅4:16,행13:15), 옛날에는 잘 읽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으며 후에는 읽는 자가 공직이 되었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공적으로 읽혀지려는 목적을 가진 서신의 성격이 있다.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본질적으로 본 서신이 주어진 목적이다. 단순히 사건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교훈으로 이 편지가 간주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들에게 복이 있다고 한다. 요한계시록에는 7번 복이 선언되는데(14:13,16:15,19:9,20:6,22:7,14),그 중의 첫 번째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때라는 말은 위기의 시간이나 결정적인 순간을 알리는 종말론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마8:29,막13:33,고전4:5).

2.문안 인사(4-5상)

문안 인사에는 당시 일반적인 순서를 따라서 세 가지 내용이 등장한다.

①발신자: 요한이라고 밝힌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으로 생각된다.

②수신자: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라고 밝힌다. 아시아의 로마 영토에 있는 특정한 일곱 교회의 회중들이 바로 이 서신의 독자이다. 이는 예언적으로 인간 역사의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당시의 교회들이다(11절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그 외에도 많은 교회들이 있었으니 우선 7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완전이라는 뉘앙스와, 그 교회들이 가지는 특성들 속에서 전체의 다양성을 대표하기에 다른 교회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아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이 되며, 그런 의미에서 신약의 교회가 생긴 때부터 재림 시까지 모든 교회에게 주는 도덕적 영적인 진전을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③인사: 은혜와 평강-우리 성경에는 이 말이 한글 어순에 따라서 5절에 등장을 하나 원어에는 4절에 등장을 한다. 은혜라는 말은 정상적인 헬라어의 인사이며 평강은 히브리 인사의 솰롬의 종교적 변형을 결합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로 이 단어가 들어오면서 은혜는 인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총을 가리키며, 평강은 그 은혜의 결과로 일어난 영적인 행복을 가리키는 말이다(롬l4:17).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세상에서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주어지는가? 은혜와 평강의 삼중 적인 출처를 4절 하반부에서 시작하여 5절 상반부에서 밝힌다.

i.첫째 출처- (계1:4)….”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로부터 나온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 3:14의 헬라어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문법적으로 ‘아포’ 뒤에는 속격이 나오나 요한은 하나님을 불변적으로 주격으로 써서 문법을 무시하고서라도 하나님의 위엄을 강조하고 있다). 유한한 세상적 존재가 아니라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존재하시는 분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영원하실 뿐 아니라 앞으로 오실 분, 즉 우리와 함께 거하실 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영원한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킨다. 결국 이 말은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그런데 단순히 요한은 다른 서신처럼 아버지로부터가 아니라 이렇게 풀어서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교회가 당하는 핍박 밑에 놓여 있을 때 특히 적절하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는 영존의 능력으로 역사의 전 과정을 통치하시는 분을 요구한다. 바로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신다는 것이다.

ii.둘째 출처-“그 보좌 앞에 일곱 영”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등장한다. 특별히 재림과 연결하여 천사들이 등장하며(누가복음9:26) 때때로 성부와 성자와 연결되어서 천사들이 등장하기에(디모데전서5:21) 천사들로 보기도 한다(어떤 이는 유대 전통의 일곱 천사장-우리엘,라파엘,라구엘,미가엘,사라카엘,가브리엘,레미엘 에녹 전서20:1-8,토빗12:15,에스드라후서4:l-으로 보나 유대의 전통을 기독교에 집어넣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살펴야 한다. 계시록에는 3:l,4:5,5:6에만 이 표현이 등장한다. 3:1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라고 하는데 “과”라는 말이 접속사가 아니라 보족어라면 위의 내용을 지시하는 것이 된다(일곱 별은 l:20에서 사자라고 하기에). 그러나 4:5과 5:6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하여서 구약성경 스가랴 4:2,10을 반영하며, 거기에 보면 스가랴 4:6에서 여호와의 신으로 등장하기에 성령으로 보아야 하며, 일곱이라는 것은 이사야 11:l의 일곱 가지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 성부와 뒤에 성자가 나오기에 성령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지금 우리의 느낌은 성부께서 멀리 계시지만 그 앞의 일곱 영이신 성령께서 그 능력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것이다.

iii.세 번째 출처-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세 번째 출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그리스도에게는 삼중의 칭호를 사용한다.

a.”충성된 증인”,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와 연결되며, 그분은 진리를 증거한 결과 죽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진리의 증인이시다. 이는 불의에 결코 타협할 수 없이 신앙을 유지하고 신실하여야 할 자들에 대한 중요한 모범이다.

b.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골l:18). 시편89:27에 의하면 먼저라는 말은 우선권(고전15:20)의 의미보다는 주권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현재 주권적인 통치를 하고 계신다면 우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충성된 자들도 그의 통치에 참례하는 것이다(계20:4-6).

C.“땅의 임금들의 머리”시편89:27은 여기에도 적용이 되며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그러하시다(빌2:10-11).

그러므로 이러한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은혜와 평강은 환난과 핍박을 능히 초월하는 것이다.

이 문안 인사는 때가 가까운 때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3.그리스도께 대한 찬미(5하, 6)

요한은 문안 인사에서 은혜와 평강의 출처를 밝히면서 그리스도의 신분(칭호)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여기에서 끝날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과거와 현재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일을 생각할 때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과거와 현재 우리를 위하여 하신 그 일에 감사하여서 감격의 찬미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①송영-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6)

여기서 영광은 찬양과 공경이며, 능력이란 권능과 힘을 함축한다. 이 두 단어는 5:13에서처럼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돌리는 송영에 결합이 되어 있다. 그것은 곧 높아지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며, 동시에 그렇게 간주하라는 권면이다.

세세토록이라는 말은 최상급을 나타내는 말로 시간과 영원에 대한 최대의 용어이다.

②송영의 이유

a.”우리를 사랑”(현재분사)-이는 계속되는 끝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과거에 사랑하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변함이 없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이다.

b.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씻었다)”(부정과거분사)-그리스도의 그 사랑이 단 한번의 사실로 과거에 일어난 예를 들라면 바로 갈보리의 십자가 사건이다. 이 해방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것이다(5:9).

C.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6)-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결과가 등장한다.

원래 이 말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다(출19:5,6). 그런데 베드로는 그 제사장 나라라는 말을 교회에도 적용시킨다(벧전2:5,9).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던 말이 신약 교회에게로 옮겨졌다는 것은 요한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 감격이 그리스도를 찬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나라라고 불리우는가? 교회가 왕의 통치를 받는 이유인가, 아니면 교회가 왕적인 역할을 다하기 때문인가? 그 대답은 요한계시록5:10에 있다(계20:6,22:5 참조).

(계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라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통치를 받기 때문만 아니라 그 이상 그들이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자들은 제사장이다. 이것은 교회가 이방인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라는 강조점이 아니다. 이 말은 더 이상 신자들은 중보를 필요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감사, 예배, 찬양 등의 제사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벧전2:5,롬12:l,히13:15,사61:6 참조).

집합적으로 그들은 왕국이며(그리스도가 모든 세상의 임금들의 통치자로 승귀되심과 관련된 그들의 왕권적 지위를 강조한다) 개별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다(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의 결과로 그들이 하나님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강조된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렇게 과거와 현재의 은혜가 찬양을 돌리게 한다.

4.주제의 선포

(계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 말씀은 구약성경의 두 부분을 연결하면서 우리에게 계시록이 보이려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미래에 어떻게 되실 것을 선포하고 있다.

(단7: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슥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슥12: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막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볼지어다”라고 외친다. 이 말은 헬라어의 감탄사이다. 깜짝 놀라서 외치는 내용이다. 바로 이 부분에 요한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①”구름을 타고 오시리라”-이것은 다니엘 7:13에 의하면 오시는 분이 바로 “인자 같은 이”심을 밝히는 부분이며, 주님은 그 사실을 자신이라고 하신다(막14:62). 여기의 구름이라는 말은 하늘 구름이냐, 아니냐는 것은 관심의 초점이 아니다. 구약의 사상은 구름이란 하나님의 임재와 연관이 되기 때문이다(출13:21,16:10,마17:5,행l:9).

②공개적으로 오신다-“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를 찌른 자들도 보게 된다(슥12:10,요19:37).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무관심한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된다.

③심판주로 오신다-“땅에 있는 족속들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요한계시록에서 이 사실은 계속 강조 확대된다. 이 애통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하나님의 심판이 드러나면서 일어나는 양심의 가책이다(16:9,11,21참조). 그러면 신앙인은 어떠한가? 그 대답은 여기에 나타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계시록의 문맥에서 성도는 땅에 속한 자가 아니다.

④약속의 보증과 선포-“그러하리라 아멘”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긍정의 형태를 결합한 강조) – 이 대답은 교회의 회답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선포로 보인다. 틀림없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 선포는 8절의 서론으로 연결이 된다.

(계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정말로 7절의 말씀이 사실인가? 그러하리라고 하였다. 어떻게 그러할지를 아는가? 그 근거를 8절이 밝힌다. 하나님의 속성상 분명히 그렇다는 것이다.

그분은 어떤 분인가?

①”알파와 오메가”-이것은 헬라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로 그 사이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의미이다. 즉 그분은 그 사이의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주권적인 주님이시다.

②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그분이 오셔서 그 모든 일을 이끌어 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을 틀림이 없다.

③그러면 그분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가? -“전능한 자”(만물에 대한 대권을 강조한 말로 보인다)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다가오는 핍박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라는 격려와 권면이다.

제 1막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교회

요한계시록의 첫 번째 내용은 두 번째 단락이 시작하는 4:l이 시작하기 전까지이다. 일반적으로 소아시아 7교회에 대한 편지로 알려진 부분으로 그 내용이 집중적으로 2,3장에서 등장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각 교회의 편지 시작 부분에 나오는 내용들은 l:12이하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환상과 연결이 되고 있으며, 자연히 우리의 눈길을 l장의 환상의 부분으로 돌리게 하며 그 l장의 환상의 교훈 밑에서 2,3장의 내용이 정리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의 앞에 요한의 제시를 받을 때의 형편에서 어떤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이 전체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는 중대한 안내판(이정표) 역할을 보게 되는데, 바로 그 상황 자체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된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동시에 그 내용은 요한계시록의 제 1막을 시작하는 서언임을 11,12절 의 연결에서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구조를 머리에 그리면서 l장의 내용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1: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서머나,버가모,두아디라, 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계1: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계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1: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계1: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계1: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계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제 1막 서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교회

1.서언과 음성

요한은 다시 자신을 설명하는 내용으로부터 본문을 시작한다. 이는 참으로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내용을 등장시키고 있음에 주의하여야 한다.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요한은 먼저 자신을 형제라고 한다. 형제라는 말은 신자간의 공통적 명칭이었으며, 그들이 같은 신앙적인 공동체의 지체들로서 경험한 밀접한 관계를 나타낸다.

그러면 그가 어떤 의미에서 한 형제임을 주장하고 있는가? 그들의 공동적인 세 가지 단어로 표현된 체험 속에서 설명이 되고 있다.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바로 이 내용이 복음 안에서 현재의 우리의 주소를 잘 설명하여 주는 내용이면서, 동시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신앙인에게 주어진 현상태의 중요한 측면에서 시작이 되어야 한다.

①신앙인의 현주소

ㄱ)나라에 동참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십자가와 부활 및 승천에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상태는 현재의 눈에 보이기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벌써 놀라운 변화가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의 나라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얻었다는 것은 단순히 나중에 천국에 간다는 의미 이상이다. 이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동참하는 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나라를 재림하시는 날에 영원하게 상속받게 되는 것이다.

ㄴ)예수의 환난에 동참

여기에서 동시에 따라오는 중요한 문제가 등장한다. 현재의 우리 상태는 여전히 사탄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이 땅에서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은 환난이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 땅위에서 성도들(교회)은 사탄의 미움의 대상이다.

②신앙인의 자세(요한의 권의 측면이 지향하는 방향)

ㄱ)현재의 자세-참음

그러면 신앙인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처세하여야 하는가? 피할 길을 찾으라고 하는가? 아니다. 참음에 동참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요한계시록l:3의 지킴의 측면이 등장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타나는 내용도 역시 잘 견디어 예비된 복을 누리라고 한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측면에서 중요한 권고이다.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1: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ㄴ)요한의 동참의 모법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있었더니”라는 말은 지금 현재의 기록 때는 밧모에 있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말로 보인다.

그러면 그러한 고난이 신앙이 약한 자나 어떤 독특한 자에게만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요한은 자신도 그러한 고난에 동참하고 있음을 말한다.

어떤 고난을 받았는가?-밧모라하는 섬에 있었다고 한다. 밧모라는 섬은 나무도 없고 바위만 있는 화산활동으로 인하여 생긴 섬이다. 그러면 거기에 왜 가는가? 요사이 소아시아에 가는 여행자들은 구경을 하러 가지만 요한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러면 왜 갔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서라고 한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의 환난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그가 밧모에 있다는 사실은 참음으로 그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계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바로 거기에서 요한계시록은 시작하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환난과 나라의 의미와 참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요한은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선지자로 비교한다면 독특한 일을 위하여 소명을 받은 사건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①부르심의 때-“주의 날에”

요한은 주의 날에 부름을 받았다. 주의 날을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날(요한계시록의 주요한 주제임에 틀림이 없다)로 설명하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나 종교적인 예배를 위하여 구별한 기독교인의 날인 주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안식후 첫날(행20:7,고전16:2)을 주의 날(주일)로 부른 최초의 기록일 것이다.

기독교의 안식일이 주의 첫날인 주일에 주일 성수를 하게 된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산물이 아니라 이미 사도 시대에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②계시의 방법-“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이 말은 바울이 말하는”성령 안에”있는 성도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롬8:9). 그것은 모든 성도들의 당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령에 의하여 독특한 사건인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행11:5,22:17.고후12:l,2). 이러한 경험은 구약의 선지자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③주어진 사명-(계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1: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서머나,버가모,두아디라, 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ㄱ)큰 음성의 명령

-그 음성은 요한이 하나님의 영에 실존적으로 열린 상태에서 들린 음성이었다(10).

-그 소리는 요한의 뒤에서 나는 음성이었다.

-그것은 오해할 가능성은 없는 음성이다-나팔 소리같이 분명하고 명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누구의 음성이었겠는가? 어떤 이는 15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소리는 많은 물소리 같기에 천사의 음성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4:l처럼). 그러나 17-19에서 기록하라고 명령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10,11의 음성도 동일하신 분의 음성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ㄴ)방법-“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보내라”

2절(1:18,2:l,8,12,18,3:l,7,14,14:l3,19:9,21:5에도 보는 것이라는 말씀이 나온다)의 해석을 참조하라.

ㄷ)대상-일곱 교회인데 이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단순히 7개의 교회 만이라는 의미보다는 환난과 나라에 동참하여 인내가 필요한 대상들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보인다(실제로 그 당시 7교회는 있었으며-그것은 어쩌면 7 우편 구역에서 유래되었을 수도 있다-그 내용은 2,3장에서 다룰 것이다). 그러나 그 특징은 분명히 7교회 이외의 다른 교회에도 적용이 필요하며 오늘에도 주신 것임에 분명하다.

2.계시자의 나타나심-승리자이신 그리스도

요한은 여기서 단순히 계시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 설명이 되듯이 그 자체가 바로 계시였음을 보게 된다.

(계1: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요한은 자신에게 명령하신 분을 보려고 몸을 돌이켰다. 여기서 돌이키다는 말은 실제로 몸을 돌이킨 것이지 다른 상징적인 의미를 붙이는 것은 곤란하다. 그때에 그는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된다.

①”일곱 금촛대”

일곱 금 촛대는 성막의 하나의 금촛대의 일곱 가지(출애굽기 25:36)모양이라기 보다는 솔로몬의 성전의 촛대의 모양을 생각나게 한다(왕상7:49). 그러나 그 숫자는 7보다 많은 듯하다. 그 의미에 대하여서는 20절(교회라고 한다)에 밝힌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요한의 입장에서 살펴져야 할 것이다.

②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

여기에 인자 같은 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다니엘7:13에서 나타나는 용어로,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는 인자라는 말을 항상 자신에게 사용하셨다. 그러나 이 명칭은 이 땅에서의 예수님을 가리키기보다는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분이신 하늘의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래서 인자 “같은”이라고 한다.

바로 그 분이 촛대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주의하라. 먼 하늘에서 방관자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촛대 사이에 계시는 것이다. 그 의미의 적용은 나중에 설명부에서 다루어 보자.

그러면 그 인자같은 이의 모습은 어떠한가?

(계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1: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계1: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계1: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이것이 어떠한 의미인가? 여기서 우리는 Caird의 말을 듣는 것은 지혜로울 것이다. 그는 각 설명적인 구절의 근원을 조사하여서 목록을 만든다는 것은 “무지개를 풀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요한이 이러한 암시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주의를 환기시키고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며….그의 목표는 기억의 연상의 메아리를 울리게 하여……그의 독자들로부터 그가 예언적 황홀경에서 경험한 압도적이고 혼절케 하는 경이에 대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모습에서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힘이 든다. 결국 어떤 의미를 붙였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100인100색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해석이 되면서 나타나는 부분에서 우리가 이 구체적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나타내려고 하는지는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는 구체적인 의미를 붙이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3.계시자의 명령

이제 돌아본 요한에게 일어난 반응과 바로 그 인자 같은 이가 내리시는 명령이 따라 나온다.

1]계시자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바로 앞에서 본 계시의 모습에서 인자 같은 이의 모습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①(계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맨 먼저 요한의 반응이 나온다. 이 사실은 우리가 위에 본 인자 같은 이의 모습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표현이다. 그것은 그가 본 그분이 바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바로 하나님을 만나고서 나타났던 현상들이다(사6:5,겔l:28,단8:11,10:9,11). 즉 요한이 본 분은 단순히 땅에 계실 때 고난 당하시던 그러한 주님이 아니라 신적인 그리스도를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나타난 계시의 장면에 대한 요한의 행동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분의 모습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이시다.

②(계1: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제 요한에게 들려 오는 소리는 “두려워말라!”하시던 주님의 음성이시다(마14:27,17:7). 바로 말씀하시는 분이 처음이요 나중이시다. 구약에서 이 말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48:12).

그러면 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제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능력의 하나님이시기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요한에게 알리시고 계신다. 그 이유는 18절에서 계속된다.

③(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8절에서는 그분이 우리들의 그 환난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전에 죽으셨던 분이시다. 그리고 이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살아 계신 분이시다. 그분은 본질적으로 생명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신 것이다.

바로 그분이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다(열쇠라는 말은 히브리 개념으로 권세를 가리킨다. 마태복음18:19참조). 그분은 무슨 열쇠를 가지시고 계시는가? 바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라고 하신다. 물론 여기서 음부라는 말은 마태복음 16:18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바로 음부라는 말은 교회를 위협하는 세력을 대표하는 말로 등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음부의 영역을 주관하는 권능과 권위를 가진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음부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서는 6:8,20:13-14에서 등장하는데 꼭 죽음과 연결되어 등장한다. 이는 구약의 스올에 해당하는 단어로 사망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계시자의 명령

(계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여기의 기본적인 명령은 기록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보내는 것을 포함하는 명령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11).

그러면 기록할 내용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네 본 것(1장)과 이제 있는 일(2,3장)과 장차 될 일(4장 이하)이라는 세 가지 내용으로 보려고 한다. 특별히 역사적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세대주의자들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맨 앞에 나오는 “네 본 것”이란 말은 계시의 또 다른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이미 앞부분에서부터 계속적으로 요한계시록을 통칭하여 본 것이란 말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지 않는가(2,11절)? 그러므로 여기에서 본 것을 또 다른 내용으로 뒤에 나오는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과 전혀 다른 내용으로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전체의 통일성을 깨뜨리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본 것이라는 말은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요한이 보고 있는 계시(묵시)의 내용들은 바로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앞으로(어떤 의미에서 이미 쓴 것도) 쓸 내용은 바로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다.

그러면 질문은 이것이다. 어디까지가 이제 있는 일이고, 어디까지가 장차 될 일인가? 그러나 사실상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그렇게 나눌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본문의 의미는 네 본 것 즉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라는 말로, 본 것 즉 묵시의 의미가 어디에 연결이 되어야 하느냐 하면 이제 뿐 아니라 장차 될 일에도 적용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19절의 의미를 가지고 역사적인 방법으로 나누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노력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시도, 우리의 입장에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해석을 힘들게 만든다. 대부분의 내용이 미래에는 물론 과거와 현재에도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3]요한의 본 것(12-16)의 의미

(계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이제 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이 본 계시의 의미를 친히 설명하신다. 그것은 놀랍게도 강조점이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라 그의 손에 있는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왜 일곱 별인가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촛대가 일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이를 비밀이라고 한다. 이는 10:7,17:5,7에도 나타난다. 즉 상징적 환상 자체가 의미가 아니라 내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그 비밀의 내용은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나타내는 비밀(상징)이었고, 일곱 별은 이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한다. 그러면 여기의 교회의 사자(헬라어로는 천사를 가리키는 단어인 앙겔로스이다)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가?

유대교의 회당에서 “회당의 천사”라는 직분이 교회로 전입된 것인가, 아니면 7교회의 감독인가, 7교회에서 요한에게 혹은 요한이 7교회에 보낸 사자(메신저)인가, 교회의 수호 천사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다니엘 10장과 비교하여 보는 것도 재미있다.

요한계시록 1장 다니엘 10장

1:9 나 요한은 10:2 나 다니엘이

1:9,l0 기록 시기와 장소 10:4 기록 장소와 시기

밧모섬, 주의 날 힛데겔강가, 정월 24일

1:13 인자에 대한 묘사 10:5.6 한 사람에 대한 묘사

1:17 요한이 죽은 자같이 됨 10:9 다니엘이 실신 함

1:17 인자가 요한에게 손을 얹다 10:10 한 존재가 손으로 다니엘을 만짐

1:17 두려워하지 말라 10:12 두려워하지 말라

1:19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10:14 말일에 백성들이 당할 일을 말하라

1:20 일곱 교회의 사자들 10:13 군장(천사. 군)

이렇게 비교하면 천사로 보인다. 물론 수호 천사의 개념은 성경에도 나타난다(마18:l0,행12:15). 또한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자들을 별로 나타내는 것은 군장이란 단어와 연결이 되어서 군장은 별로 연결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민24:17 ,마2:2).

그러나 오히려 이는 교회와 동일시된 같은 자격자이거나, 교회의 지배적인 정신을 의인화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어느 누구라기 보다는 바로 교회 자체라고 이해하는 것이 또 다른 상징으로 대표를 통하여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이 환상의 의미가 무엇을 강조하는 것인가?

먼저 인자의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의 의미부터 생각해 보자. 이는 9절의 내용과 연결하면 교회는 그의 나라이지만 동시에 환난을 받는 존재이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인가? 그저 하늘에서 구경이나 하시는 것인가? 아니다. 그의 오른 손 안에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위의 18절에 나타난 대로 사망과 음부도 감히 교회를 넘나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환난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자가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회의 상황 속에서 교회만 내 팽개치시는 분이 아니시라 항상 깊은 관계를 유지하시면서 임재 해 계심을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

이 말은 우리의 위로이면서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조심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즉 인자는 우리를 보호하실 뿐 아니라 교회의 순수성을 보존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수성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기도 한다.

결국 제 1막에서는 교회의 환난 당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내용으로 신앙인들은 참음으로 그 승리를 누려야 함을 말하고 있다.

메튜 헨리 주석, 요한계시록 01장

1:1 중요 내용과 계시의 순서 (요한 계시록 1:1,2) Ⅰ. 이 책의 유래를 말해 주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모든 성서에 기록된 말씀들은 모두 그렇다. 왜냐하면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며, 모든 것이 그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그의 아들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가 어떤 원칙과 방법에 의해 그가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지를 알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교회의 예언자로서 그리스도는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

2. 이 책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계시이다. 비록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생명과 광명을 그의 안에 가지고 계셨지만,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가르치심을 받으셨다. 비록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크나큰 지혜와 판단력, 그리고 통찰력을 받으셨지만, 그도 인간인고로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원하시는 것을 다 깨닫지는 못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귀한 하나님의 뜻은 신성한 예지로서만 알 수 있고, 하나님은 그의 펴시고자 하시는 고귀한 뜻을 계시에 의해서만 우리 피조물에게 나타내신다. 이 때 인간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교량적인 역할을 담당하시는 이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며,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우리는 오로지 우리 주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3. 이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계시의 놀라운 순서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 계시하셨으며, 그리스도는 교회들에게 이 계시를 전하기 위해 천사들을 부르셨다.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며 그들은 구원받을 후사들을 위한 구원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이렇듯 모든 주권과 능력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를 드려야 한다.

4. 천사들은 “사도 요한에게 그것을 지시하였다.”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사자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목회자들은 교회의 사자들이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받은 말씀을 교회에 전해 주어야 한다. 요한은 이러한 일을 위해 선택받은 사도였다. 그는 여러 사도들 중에서 그때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사도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다른 사도들은 그들의 증언을 피로써 보증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복음증거를 위해 순교하였다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마지막 책이 되었다. 그 때문에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사도에 의해 이 말씀이 교회에 전해졌다. 요한은 사랑받는 제자였다. 구약 성서에서의 선지자 다니엘과 같이 요한은 신약 성서에 있어서 “매우 사랑받는 제자였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모든 성서에 기록된 말씀들은 모두 그렇다. 왜냐하면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며, 모든 것이 그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그의 아들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가 어떤 원칙과 방법에 의해 그가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지를 알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교회의 예언자로서 그리스도는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이 책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계시이다. 비록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생명과 광명을 그의 안에 가지고 계셨지만,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가르치심을 받으셨다. 비록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크나큰 지혜와 판단력, 그리고 통찰력을 받으셨지만, 그도 인간인고로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원하시는 것을 다 깨닫지는 못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귀한 하나님의 뜻은 신성한 예지로서만 알 수 있고, 하나님은 그의 펴시고자 하시는 고귀한 뜻을 계시에 의해서만 우리 피조물에게 나타내신다. 이 때 인간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교량적인 역할을 담당하시는 이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며,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우리는 오로지 우리 주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이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계시의 놀라운 순서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 계시하셨으며, 그리스도는 교회들에게 이 계시를 전하기 위해 천사들을 부르셨다.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며 그들은 구원받을 후사들을 위한 구원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이렇듯 모든 주권과 능력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를 드려야 한다.천사들은 “사도 요한에게 그것을 지시하였다.”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사자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목회자들은 교회의 사자들이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받은 말씀을 교회에 전해 주어야 한다. 요한은 이러한 일을 위해 선택받은 사도였다. 그는 여러 사도들 중에서 그때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사도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다른 사도들은 그들의 증언을 피로써 보증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복음증거를 위해 순교하였다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마지막 책이 되었다. 그 때문에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사도에 의해 이 말씀이 교회에 전해졌다. 요한은 사랑받는 제자였다. 구약 성서에서의 선지자 다니엘과 같이 요한은 신약 성서에 있어서 “매우 사랑받는 제자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었으며, 복음서 기자요, 예언자요, 사도였다. 이렇게 그는 세 가지의 소임을 수행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겼다. 야고보는 사도였지만 예언자도 복음서 기자도 아니었다. 마태 역시 복음서 기자요, 사도이기는 했지만, 예언자는 아니었다. 누가는 복음서 기자이기는 했지만, 예언자도 사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요한은 세 가지의 일을 수행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는 요한을 자기의 “종 요한”이라고 부르셨다. 5. 요한은 이 계시를 교회와 모든 종들에게 전할 의무가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종, 다시 말해서 목회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종들과 교회의 회원들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지켜나가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 계시를 교회와 모든 종들에게 전할 의무가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종, 다시 말해서 목회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종들과 교회의 회원들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지켜나가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Ⅱ. 여기서 우리는 속히 이루어져야 할 계시의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복음서 기자들은 우리에게 지나간 일을 말해주지만, 예언자들은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서 설명하여 준다. 그러나 이러한 장래의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비쳐 주는 빛 가운데서가 아니면 밝히 볼 수 있다. 오직 그 빛 가운데서만 우리는 바르게 보며, 하나님의 지혜롭고 거룩하신 뜻에 잘 응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한 그대로 명확하게 예언할 수 있다면, 그러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예언이 약간 희미하게 예언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성서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보다 더 이에 대해 탐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우리는 이 계시에서 교회의 관리 방법 및 거룩한 섭리의 일반적인 생각들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좋은 교훈의 말씀도 배울 수가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반드시 일어날 뿐만 아니라, 속히” 일어날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조만간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Ⅲ. 여기에는 예언의 증거가 있다(2절). 그것은 요한에게 지시된 것이었으며,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즉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다. 구약 성서의 역사적인 책들, 다시 말해서 사사기, 열왕기, 역대기 등은 그 책에 역사가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사야서, 예레미야서와 같이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책들에는 항상 쓴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신약 성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요한이 자기의 첫 편지서에서는 자기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을 대해서는 그와 반대로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예언의 말씀의 진실성을 책임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이름뿐만 아니라, 자기의 소임까지도 밝혀 주었다. 그는 멀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즉 자기가 본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증거 하였다. 그는 목격자였으며, 자기가 본 것을 하나도 숨기지 않았다. 이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은 요한 자신이 발견한 것도, 꾸며서 하는 말도 아니며, 더하거나 뺀 것이 없이, 듣고 본 그대로의 하나님의 기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이다.

1:3 사도 요한의 축복 (요한 계시록 1:3-8) 여기서 우리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존중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도 요한의 축복의 말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축복은 보다 널리 그리고 보다 특별히 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Ⅰ. 예언의 말씀을 읽거나 듣는 모든 사람들을 널리 축복하였다. 이러한 축복은 우리들로 하여금 계시록의 말씀을 연구하도록 격려하여 주며, 그 말씀 안에 있는 많은 분명치 못한 것들 때문에, 그 말씀을 상고하는데 싫증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주고자 하시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사도 요한은 보다 세심한 주의력과 열의를 가지고 읽는 자들의 수고에 대해 보답을 하고 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읽는다는 것은 축복받은 특권이다. 이것은 다른 이방인들은 누릴 수 없었고, 다만 유대인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점들 중의 하나였다.

2. 성서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복된 일이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잘 응한 사람들이다.

3. 성서의 말씀을 우리 자신이 직접 읽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읽는 것을 듣는 것조차도 커다란 특권이다. 그들은 그들이 읽는 말씀의 의미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우리들에게 그 말씀을 이해시킬 수 있는 자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4. 성서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으로만으로는 그리 흡족한 축복이 되지 못한다. 거기 기록된 말씀을 지켜 나가는 생활을 하여야만 한다. 그 말씀들을 늘 염두에 두고, 마음에 깊이 새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 실로 축복을 가져다준다.

5. 성서의 말씀이 뜻하는 바를 알고, 그 말씀에 가일층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커다란 관심을 쏟게 된다. 때가 가까이 임했으므로 우리는 그날이 오는 것을 더 세심하게 주시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읽는다는 것은 축복받은 특권이다. 이것은 다른 이방인들은 누릴 수 없었고, 다만 유대인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점들 중의 하나였다.성서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복된 일이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잘 응한 사람들이다.성서의 말씀을 우리 자신이 직접 읽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읽는 것을 듣는 것조차도 커다란 특권이다. 그들은 그들이 읽는 말씀의 의미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우리들에게 그 말씀을 이해시킬 수 있는 자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성서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으로만으로는 그리 흡족한 축복이 되지 못한다. 거기 기록된 말씀을 지켜 나가는 생활을 하여야만 한다. 그 말씀들을 늘 염두에 두고, 마음에 깊이 새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 실로 축복을 가져다준다.성서의 말씀이 뜻하는 바를 알고, 그 말씀에 가일층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커다란 관심을 쏟게 된다. 때가 가까이 임했으므로 우리는 그날이 오는 것을 더 세심하게 주시하여야 한다. Ⅱ. 사도 요한은 그의 축복을 특별히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전했다(4절). 일곱 교회들의 이름은 11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교회들에 보내는 뚜렷한 메시지는 각각 2장과 3장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 요한의 축복이 특별히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전해진 것은 그 일곱 교회들이 모두 밧모라는 섬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사도 요한은 그 교회들에 대한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사도들이 살아 있을 때,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1. 이들 교회에 있는 모든 충실한 사도들에게 주는 축복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그것은 “은혜와 평강,” 거룩함과 위로의 축복이었다. “은혜”라 함은 우리에게로 향한 하나님의 친절이며, 우리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이다. 그리고 “평강”이라 함은 이러한 은혜에 대한 확신을 말함이다. 진정한 은혜가 없는 곳에 진정한 평강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은혜가 앞서 가는 곳에 평강이 뒤따른다.

2. 이런 축복이 언제 우리에게 오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자. 누구의 이름으로 사도 요한은 교회를 축복하는가? 그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위이며, 하나님만이 존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여야만 한다.

(1)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맨 처음으로 일컬어졌다. 그것은 곧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제일 인격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여호와로 묘사되었다. 그것은 전에 있었던 구약 성서의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신약 성서 시대의 교회에서도 그렇고, 또한 앞으로 올 승리하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없으신 분이심을 나타낸다.

(2) 성령은 “일곱 영”이라고 일컬어졌다. 그것은 숫자나,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 일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계시는 무한하시며, 완전하신 영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계신다. 이는 그의 영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가 만드신 모든 것을 관리하시기 때문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성령 다음에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 까닭은 요한이 그리스도의 품격에 대하여 보다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를 육체로 나시게 하셨다. 그래서 전에는 그가 땅에 살으셨고 일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그를 볼 수가 있다. 이들 교회에 있는 모든 충실한 사도들에게 주는 축복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그것은 “은혜와 평강,” 거룩함과 위로의 축복이었다. “은혜”라 함은 우리에게로 향한 하나님의 친절이며, 우리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이다. 그리고 “평강”이라 함은 이러한 은혜에 대한 확신을 말함이다. 진정한 은혜가 없는 곳에 진정한 평강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은혜가 앞서 가는 곳에 평강이 뒤따른다.이런 축복이 언제 우리에게 오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자. 누구의 이름으로 사도 요한은 교회를 축복하는가? 그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위이며, 하나님만이 존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여야만 한다.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맨 처음으로 일컬어졌다. 그것은 곧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제일 인격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여호와로 묘사되었다. 그것은 전에 있었던 구약 성서의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신약 성서 시대의 교회에서도 그렇고, 또한 앞으로 올 승리하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없으신 분이심을 나타낸다.성령은 “일곱 영”이라고 일컬어졌다. 그것은 숫자나,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 일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계시는 무한하시며, 완전하신 영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계신다. 이는 그의 영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가 만드신 모든 것을 관리하시기 때문이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성령 다음에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 까닭은 요한이 그리스도의 품격에 대하여 보다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를 육체로 나시게 하셨다. 그래서 전에는 그가 땅에 살으셨고 일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그를 볼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그리스도께 대한 요한의 특별한 기록을 살펴보자(5절).

[1]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이시다.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모든 뜻을 나타내 주시는 증인이었다(요 1:18). 그리스도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맞은 때에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증인이시었다. 우리는 그의 증언을 안심하고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충실한 증인이시며, 속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속이지도 않으시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부활하신 분이시며, 부활의 처음 열매가 되신 분이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부활시킨 유일하신 분이시며, 같은 능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무덤에서 이끌어 내어 영원한 영광으로 이끌어 주실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소망을 품을 수 있게 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이시다. 땅의 왕들은 그리스도부터 그들의 권위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그들의 권세가 제한을 받으며, 그들의 분노가 제재를 받는다. 그리스도에 의해 그들의 생각이 다스림을 받으며, 그들은 그리스도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교회에 대해 기쁜 소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만왕의 왕이 되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해 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4] 그리스도는 교회와 백성들의 좋은 친구이시다. 그는 그들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셨으며, 이는 순전히 사랑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 그들을 사랑했으며, 그는 먼저 “그의 피로써 그들을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 죄는 영혼에 대해 죄의 오점과 타락의 오점을 남긴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그 어느 것으로도 이 영혼의 오점을 지울 수가 없다. 그의 피가 아니고서는 이를 씻어낼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그들을 위해, 그들의 용서와 순결을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려주셨다.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이시다.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모든 뜻을 나타내 주시는 증인이었다(요 1:18). 그리스도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맞은 때에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증인이시었다. 우리는 그의 증언을 안심하고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충실한 증인이시며, 속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속이지도 않으시기 때문이다.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부활하신 분이시며, 부활의 처음 열매가 되신 분이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부활시킨 유일하신 분이시며, 같은 능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무덤에서 이끌어 내어 영원한 영광으로 이끌어 주실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소망을 품을 수 있게 하여 주셨기 때문이다.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이시다. 땅의 왕들은 그리스도부터 그들의 권위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그들의 권세가 제한을 받으며, 그들의 분노가 제재를 받는다. 그리스도에 의해 그들의 생각이 다스림을 받으며, 그들은 그리스도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교회에 대해 기쁜 소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만왕의 왕이 되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해 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그리스도는 교회와 백성들의 좋은 친구이시다. 그는 그들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셨으며, 이는 순전히 사랑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 그들을 사랑했으며, 그는 먼저 “그의 피로써 그들을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 죄는 영혼에 대해 죄의 오점과 타락의 오점을 남긴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그 어느 것으로도 이 영혼의 오점을 지울 수가 없다. 그의 피가 아니고서는 이를 씻어낼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그들을 위해, 그들의 용서와 순결을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려주셨다. 다음으로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그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아”주셨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의롭게 여기시고, 정결케 하심으로 그들을 아버지 하나님의 왕들로 삼으셨다. 말하자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허락을 받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왕들로서 그들은 세계를 정복하며, 죄를 극복하고, 자기들의 영을 다스리며, 사탄을 정복하고, 또한 기도 중에 능력을 얻는다. 그리고는 세상을 심판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 이러한 모든 것에 합당하도록 제사장들에게 필요한 자격을 부여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영원 무궁하도록 능력과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5] 그는 세상의 심판자가 되실 것이다. “볼지어다. 그가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리로다”(7절). 요한 계시록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고 하는 예언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자주 묵상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아야 한다. 요한은 마치 재림의 날을 본 것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볼지어다. 그가 오시리라. 그것은 너희의 눈으로 보는 것같이 확실한 것이다. 그는 공공연히 오실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볼 것이다. “그의 백성들의 눈이 보며, 그의 대적들의 눈, 너희의 눈과 나의 눈, 모든 눈들이 볼 것이다. 그는 세상의 심판자가 되실 것이다. “볼지어다. 그가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리로다”(7절). 요한 계시록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고 하는 예언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자주 묵상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아야 한다. 요한은 마치 재림의 날을 본 것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볼지어다. 그가 오시리라. 그것은 너희의 눈으로 보는 것같이 확실한 것이다. 그는 공공연히 오실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볼 것이다. “그의 백성들의 눈이 보며, 그의 대적들의 눈, 너희의 눈과 나의 눈, 모든 눈들이 볼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를 찌르고도 회개하지 않고,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를 배반함으로 다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며, 또 믿음이 없는 이 세상에 놀라움을 주기 위해서 오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않은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복수를 하시기 위해 오신다.

[6] 이러한 그리스도께 대한 설명을 그리스도 자신이 확증하여 주셨다(8절). 우리 주 예수는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같은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묘사되었다(4절). 그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시다. 모든 것은 그에게서 비롯되었으며, 그를 위해 있다. 또한 그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감히 지우려고 하는 사람은 생명록에서 그 자신의 이름이 도말함을 받는다.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자들은 그의 멸시를 받을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께 대한 설명을 그리스도 자신이 확증하여 주셨다(8절). 우리 주 예수는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같은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묘사되었다(4절). 그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시다. 모든 것은 그에게서 비롯되었으며, 그를 위해 있다. 또한 그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감히 지우려고 하는 사람은 생명록에서 그 자신의 이름이 도말함을 받는다.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자들은 그의 멸시를 받을 것이다.

1:9 요한에게 보여 준 그리스도의 환상 (요한 계시록 1:9-20)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 주실 때의 영광스러운 환상을 볼 수 있다. Ⅰ. 이런 환상을 본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여기서 요한은 환상을 본 자기 자신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1. 요한의 현재의 위치와 상태를 보자. 그는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였다. 또한 요한은 그 당시 다른 독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당하고, 추방당하고, 또는 옥에 투옥된 사람이었다. 요한이 사도이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형제”였다. 요한은 교회에 있어서의 자기 자신의 권위보다는, 오히려 교회에 대하여 형제라고 하는 관계를 더 자랑하는 것같이 보인다. 가룟 유다는 사도가 될 수는 있었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는 한 형제가 될 수 없었다. 요한의 현재의 위치와 상태를 보자. 그는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였다. 또한 요한은 그 당시 다른 독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당하고, 추방당하고, 또는 옥에 투옥된 사람이었다. 요한이 사도이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형제”였다. 요한은 교회에 있어서의 자기 자신의 권위보다는, 오히려 교회에 대하여 형제라고 하는 관계를 더 자랑하는 것같이 보인다. 가룟 유다는 사도가 될 수는 있었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는 한 형제가 될 수 없었다. 요한은 그들의 동참자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영적인 교섭과 교제를 선택하여야만 한다. 그는 환난의 동참자였다. 박해를 받는 하나님의 종들은 어느 누구도 혼자서 환난과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환난을 함께 받고 있다. 그는 참음의 동참자였다. 요한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거나 혹은 고난을 당하거나, 서로가 위로하여, 고통과 기쁨을 같이 나누어 가졌다. 성도들과 같이 그런 비상한 인내를 우리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당당히, 떳떳하게 그와 같은 시련에 맞설 수 있다. 그는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였다. 요한은 주로 말미암아 교회와 세상을 지배하는 그리스도의 왕다운 능력을 주장하고, 또 계시의 말씀에 대하여 침해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대하고, 계시록의 말씀을 지지하고, 신봉함으로써, 예수의 환난과 참음에 동참하려고 고난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설명으로 요한은 자기의 현재의 위치를 시인했으며, 그들의 공동 소유인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바에 따라,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그들에게 당부하였다. 2. 요한이 환상을 본 그 장소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는 “밧모섬”에 있었다. 그는 누가 자기를 그런 곳으로 추방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겪는 고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밧모섬은 에게해에 있는 섬으로 알려져 있다. 그 섬은 시클라데스(Cyclades)라고 하는 군도 중의 한 섬이었으며, 둘레가 약 35마일 가량 되는 섬이었다. 요한이 환상을 본 그 장소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는 “밧모섬”에 있었다. 그는 누가 자기를 그런 곳으로 추방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겪는 고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밧모섬은 에게해에 있는 섬으로 알려져 있다. 그 섬은 시클라데스(Cyclades)라고 하는 군도 중의 한 섬이었으며, 둘레가 약 35마일 가량 되는 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금된 상태하에서도, 악을 행한 자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임마누엘이시며, 구세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고난당한다는 사실에서 사도 요한은 크게 위안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받을 만한 고난이었다. 영광의 영광 하나님의 영은 이러한 핍박받는 사도의 머리 위에 머물러 계셨다. 3. 그가 이런 환상을 본 날과 때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것은 “주의 날”이었다. 이날은 그리스도께서 성찬식을 “주님의 만찬”이라고 하듯이, 그 자신을 위해 구분하고 성별해 놓으신 주님의 날이었다. 이날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고 지키는 한 주간의 첫날이다. 그를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하는 우리 무리들은 그의 안식일에 그를 경배해야 한다. 주님께서 그날을 제정하셨다. 그 안에서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4. 이 때에 요한의 영은 어떠한 상태에 있었던가를 볼 수 있다. 그때 요한의 영은 “성령 안에 거하고 있었다. ” 요한은 환상을 보았을 때만이 아니라, 환상을 보기 전에도 놀랬다. 그는 하나님의 영의 성스러우시며 인자하신 영향을 받아서, 성스럽고도 귀중한 영적인 상태 아래 있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영혼이 자기의 고귀한 계시를 알도록 해 주시기 위해 성령의 감화를 내려 주신다. 그러므로 주의 날에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 육적인 것에서부터 멀리 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영적인 것과 교제가 잘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그가 이런 환상을 본 날과 때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것은 “주의 날”이었다. 이날은 그리스도께서 성찬식을 “주님의 만찬”이라고 하듯이, 그 자신을 위해 구분하고 성별해 놓으신 주님의 날이었다. 이날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고 지키는 한 주간의 첫날이다. 그를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하는 우리 무리들은 그의 안식일에 그를 경배해야 한다. 주님께서 그날을 제정하셨다. 그 안에서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이 때에 요한의 영은 어떠한 상태에 있었던가를 볼 수 있다. 그때 요한의 영은 “성령 안에 거하고 있었다. ” 요한은 환상을 보았을 때만이 아니라, 환상을 보기 전에도 놀랬다. 그는 하나님의 영의 성스러우시며 인자하신 영향을 받아서, 성스럽고도 귀중한 영적인 상태 아래 있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영혼이 자기의 고귀한 계시를 알도록 해 주시기 위해 성령의 감화를 내려 주신다. 그러므로 주의 날에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 육적인 것에서부터 멀리 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영적인 것과 교제가 잘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Ⅱ. 사도 요한이 성령 안에서 들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소리가 있었다. 그때에 요한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사도 요한에게 지금부터 계시하는 것을 기록하라고 명하시고, 즉시 이 말씀을 이미 언급한 바가 있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로 보내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처럼 구원의 으뜸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는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영광된 그의 모습을 주시하라고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Ⅲ. 그가 본 것에 대해 설명한 것이 또 있다. 누구의 소리인지, 또 어디서부터 들려 오는 소리인지, “그 소리를 듣기 위해 그가 몸을 돌이켰을 때”에 매우 놀라운 광경이 그의 앞에 전개되었다. 1. 요한은 1장 마지막 절에서 설명된 바와 같은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그것은 곧 교회를 표상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촛대로 비유되었다. 왜냐하면 교회는 복음의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초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빛이며, 그의 복음이 우리의 등불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빛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 준다. 교회는 금촛대이다. 왜냐하면 순금에 필적할 수 있으리만큼 교회가 귀중하며, 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들만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도 그래야 한다. 그 빛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밝은 빛을 비추어야 한다.

2. 요한은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 세상 날 때까지, 교회를 빛과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시면서, 그의 교회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는 교회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는 영이시다.

(1) 여기서 우리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1] 그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다. 그것은 정의와 명예를 나타내는 제사장과 왕의 옷이다.

[2] 그는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다. 그것은 그의 백성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대제사장의 흉배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자로서의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3]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았다.” 그는 고대의 사람이었다. 그의 서리같이 하얀 머리털은 후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면류관을 뜻하는 것이었다.

[4] “그의 눈은 불꽃같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찌르며, 그들의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대적들에게는 공포심을 가지게 하는 눈이다.

[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았다.” 그것은 튼튼하고, 견고하며, 자신의 유익을 유지하며, 자기의 대적들을 굴복시켜 가루처럼 만드는 것을 뜻한다.

[6]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다.” 그것은 찬 곳으로 흘러나오는 많은 냇물을 말한다. 그리하여 가까이 있는 자나 멀리 있는 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신다. 이처럼 그의 복음의 말씀은 무한한 지혜와 지식의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물줄기와 같다.

[7]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일곱 교회의 목사들이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그들의 빛과 권세를 받았으며, 주님의 보호를 받아 지탱해 나가고 있다.

[8] “그 입에서 좌우에 검이 나오고”있다. 그리스도의 검은 좌우편에 날이 서서, 한 편 상처를 입히며, 동시에 치료를 하고 죄는 좌우로 쳐서 멸망시키고 있음을 뜻한다.

[9]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의 얼굴에서 비취는 광채의 밝기가 너무나 세고 찬란한 것이었다.

(2)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도 요한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17절). 그는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요한 자신이 비록 전부터 다소 주님과 친숙했다고는 하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내는 영광과 광채가 너무나 찬란하매, 그가 압도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와 같은 인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데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뵌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베풀어주신 정중한 친절이 있다. “그가 오른손을 그에게 얹으셨다”(17절). 주께서 요한을 일으켜 주셨다. 주님은 크신 능력을 가지고 요한을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요한에게 힘을 북돋아 주셨으며, 그에게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1] 우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 “두려워 말라.” 그는 그의 제자가 노예처럼 두려워하는 것을 쫓아 버려 주셨다.

[2] 요한에게 나타나신 이가 요한에게 첫 번째는 그의 신성에 대해 “처음이요 나중”임을 알려 주셨다. 두 번째로는 “내가 전에 죽었노라”고 하심으로 그가 앞서 당한 고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그의 제자들이 본 것과 같다. 세 번째로는 그의 부활과 생명에 대해 “나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다”고 하심으로, 그가 죽음을 정복하시고 무덤 문을 여셨으며, 영원한 생명의 동참자가 되셨음을 알려 주셨다. 네 번째로는, 그의 직무와 권위에 대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고 하셨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통치권을 의미한다. 그것은 닫으면 열 자가 없고, 열면 닫을 자가 없는 열쇠이다. 그가 원하시는 대로, 그는 사망의 문을 여실 수도 있고, 행복과 자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실 수도 있다. 그는 만민의 심판자이시며, 그의 선교에 대해서는 아무도 항고할 수가 없다. 다섯 번째로, 그가 원하시고 계신 뜻을 알려주기 위해,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하셨다. 여섯 번째로는, 일곱 별의 의미에 대해 “그것들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라고 말씀하셨고, 일곱 촛대에 대해서는 “그것들은 일곱 교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 그들에게 특별한 소식을 전하고자 하신다.

요한은 1장 마지막 절에서 설명된 바와 같은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그것은 곧 교회를 표상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촛대로 비유되었다. 왜냐하면 교회는 복음의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초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빛이며, 그의 복음이 우리의 등불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빛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 준다. 교회는 금촛대이다. 왜냐하면 순금에 필적할 수 있으리만큼 교회가 귀중하며, 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들만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도 그래야 한다. 그 빛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밝은 빛을 비추어야 한다.요한은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 세상 날 때까지, 교회를 빛과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시면서, 그의 교회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는 교회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는 영이시다.여기서 우리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그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다. 그것은 정의와 명예를 나타내는 제사장과 왕의 옷이다.그는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다. 그것은 그의 백성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대제사장의 흉배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자로서의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았다.” 그는 고대의 사람이었다. 그의 서리같이 하얀 머리털은 후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면류관을 뜻하는 것이었다.”그의 눈은 불꽃같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찌르며, 그들의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대적들에게는 공포심을 가지게 하는 눈이다.”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았다.” 그것은 튼튼하고, 견고하며, 자신의 유익을 유지하며, 자기의 대적들을 굴복시켜 가루처럼 만드는 것을 뜻한다.”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다.” 그것은 찬 곳으로 흘러나오는 많은 냇물을 말한다. 그리하여 가까이 있는 자나 멀리 있는 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신다. 이처럼 그의 복음의 말씀은 무한한 지혜와 지식의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물줄기와 같다.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일곱 교회의 목사들이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그들의 빛과 권세를 받았으며, 주님의 보호를 받아 지탱해 나가고 있다.”그 입에서 좌우에 검이 나오고”있다. 그리스도의 검은 좌우편에 날이 서서, 한 편 상처를 입히며, 동시에 치료를 하고 죄는 좌우로 쳐서 멸망시키고 있음을 뜻한다.”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의 얼굴에서 비취는 광채의 밝기가 너무나 세고 찬란한 것이었다.그리스도의 모습은 사도 요한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17절). 그는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요한 자신이 비록 전부터 다소 주님과 친숙했다고는 하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내는 영광과 광채가 너무나 찬란하매, 그가 압도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와 같은 인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데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뵌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베풀어주신 정중한 친절이 있다. “그가 오른손을 그에게 얹으셨다”(17절). 주께서 요한을 일으켜 주셨다. 주님은 크신 능력을 가지고 요한을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요한에게 힘을 북돋아 주셨으며, 그에게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우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 “두려워 말라.” 그는 그의 제자가 노예처럼 두려워하는 것을 쫓아 버려 주셨다.요한에게 나타나신 이가 요한에게 첫 번째는 그의 신성에 대해 “처음이요 나중”임을 알려 주셨다. 두 번째로는 “내가 전에 죽었노라”고 하심으로 그가 앞서 당한 고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그의 제자들이 본 것과 같다. 세 번째로는 그의 부활과 생명에 대해 “나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다”고 하심으로, 그가 죽음을 정복하시고 무덤 문을 여셨으며, 영원한 생명의 동참자가 되셨음을 알려 주셨다. 네 번째로는, 그의 직무와 권위에 대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고 하셨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통치권을 의미한다. 그것은 닫으면 열 자가 없고, 열면 닫을 자가 없는 열쇠이다. 그가 원하시는 대로, 그는 사망의 문을 여실 수도 있고, 행복과 자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실 수도 있다. 그는 만민의 심판자이시며, 그의 선교에 대해서는 아무도 항고할 수가 없다. 다섯 번째로, 그가 원하시고 계신 뜻을 알려주기 위해,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하셨다. 여섯 번째로는, 일곱 별의 의미에 대해 “그것들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라고 말씀하셨고, 일곱 촛대에 대해서는 “그것들은 일곱 교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 그들에게 특별한 소식을 전하고자 하신다.

[요한계시록 1장 설교말씀] “촛대 사이의 인자”(계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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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1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촛대 사이의 인자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촛대 사이의 인자”(계 1:9-20)

♣명제: 촛대 사이의 인자가 이 시대의 교회를 통치하신다.

♣목적: 나는 지금 인자의 통치함을 받고 있는 성도인가 깨달아야 한다.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인자는 구약의 성막을 연상하게 합니다. 성막에서 흰 옷을 입고 촛대 사이에 있는 자는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예수님을 계시하고 있는데 그곳에 다니시는 인자는 바로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모든 교회를 주님께서 다니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앞으로 될 일을 주님으로부터 명령을 받게 됩니다.

(계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사도 요한은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밧모 섬에 유배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고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로 촛대 사이의 인자를 증거 하다가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시대에 고난이 있다고 해서 복음을 버려서는 안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전파해야 합니다.

‘밧모’는 פטיש(팟티쉬 6360) 탕탕치다. 라는 어원에서 유래하여 매질, 방망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 섬에 유배되어 세상의 황제에 의해 탕탕 망치로 방망이로 맞듯이 매질을 당한 것입니다. 고난과 고통의 세월을 밧모 섬에서 보내지만 예수님은 요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소망을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이 유배에서 풀려난 것이 교회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네르바 황제 때 풀려나게 됩니다.

(계 1:10-11)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날은 바로 예수님을 만난 날입니다.

‘감동하여’ γινομαι(기노마이 1096) 생겨나다, 만들어지다, 행해지다, 일어나다, 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자신감이 생겨났습니다. 유배지에서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성령님께서는 감동을 주고 은혜를 주어 다시 새 힘을 받게 한 것이며 앞으로 펼쳐나갈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이 감동을 받은 사실이 있었으며 이 사건은 과거에 이미 있기로 작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앞으로 환난과 핍박받고 있는 교회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들은 소리는 나팔소리였습니다. 이 소리는 바로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나팔’ שופר(쇼파르 7782) 나팔, 뿔 나팔,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פר(샤파르 8231) 빛나게 되다, 아름답게 되다, 기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은 바로 주님의 복음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듣는 자마다 죽었던 자들이 빛 가운데로 나와 빛나게 되며 영혼이 아름답게 변하고 심령이 기쁘게 됩니다. 복음 외에는 나의 영혼을 빛나게 할 것이 없으며 나의 상한 심령을 기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호수아 군대는 여리고성을 무너트릴 때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 복음의 나팔은 견고한 성을 무너지게 합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던 자들도 복음의 나팔소리에 변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의 일곱 교회에 보낼 메시지를 주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환상들을 편지에 적어 보냅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모든 교회의 통치자입니다. 그럼 나를 통치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교회에서 주님은 나에게 메시지를 말씀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계 1:12-13)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요한이 몸을 돌이켜 자신에게 말한 음성을 알려고 할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촛대’ מנורה(메노라 4501) 등잔대, 등잔,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베틀 채, 속박, 멍에, 라는 뜻에서 온 것입니다. 또한 ניר(니르 5214) 경작하다, 기경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촛대는 성막에서 어둠을 밝혀주는 도구입니다. 이 시대의 어둠에 갇힌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죄에 속박되어 죽어 있는 자들의 멍에를 끌러주고 베틀 채와 같은 주님의 고난이 나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나는 세상의 추하고 더러운 곳에서 새롭게 복음으로 인해 경작되어 땅을 갈아 업어 기경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새롭게 바뀌게 하는 것입니다. 이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촛대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고’ ενδυω(엔뒤오 1746) 옷을 입히다, 옷을 입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볼 때 성막에서 사역하는 대제사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흰 옷을 입고 사역하는 대제사장의 모습입니다. 대제사장은 자신의 모든 옷을 벗고 에봇으로 갈아입고 성막에 들어가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위해 십자가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옷을 입었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전한 옷을 입으신 것입니다. 또한 장소가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골고다 언덕입니다.

이렇게 죽으심으로 많은 죄인들이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이 옷을 입은 것은 이미 예정된 사건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 옷을 입으시므로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사역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건은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옷을 입으신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죽은 영혼들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옷을 입으셨고 골고다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인자는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의 복음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진리의 복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오직 진리밖에 없습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나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항상 간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꼭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사명입니다.

(계 1:14-15)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인자의 모습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다고 했습니다. 흰머리털은 대제사장이 쓰는 관을 상징합니다. 그 관에는 יהוה קדש(아도나이 코데쉬)‘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상은 오직 천국복음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룰 생각밖에 없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의 눈이 불꽃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판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제사장의 가슴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판결 흉패입니다. ‘흉패’ חשן(호셴 2833) 내포하다, 번쩍이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순간적인 판단을 하셔도 잘못된 판단이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림’ אורים(우림 224) 밝다, 빛나다, 비추다, 영화롭다, 광채 나다, 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가슴에 흰 돌을 넣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림입니다. 이것을 판결받은 사람은 세상에서 밝게 비추이게 되고 빛나며 영화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죄가 없다고 판결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완전하게 죄 씻음 받은 자들은 우림의 판결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람은 오직 세상에서 주님을 나타내며 주님을 위해 사는 인생입니다.

‘둠밈’ תמים(툼밈 8550) 사망하다, 그치다, 황폐되다, 멸망하다, 진멸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돌은 검은 돌입니다. 대제사장의 판결에서 검은 돌이 나오면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죽게 됩니다. 죄가 있다고 판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멸망당하고 진멸되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판결을 내리실 때에 율법적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결국 검은 돌의 판결을 받아 영원히 사망의 불 못으로 던져지고 영혼이 황폐하여 멸망당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둠밈은 완전하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완전하게 죽음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인자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다고 했습니다. ‘단련한’ צרף(차라프 6884) 단련하다, 연단하다, 청결하다, 순전하다, 라는 뜻입니다. ‘발’ מרגלה(마르겔라 4772) 비방하다, 모함하다, 허물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발은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비방하며 모함하고 허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에 오르실 때에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비방했던 것입니다. 그중에 나는 어떻습니까? 바로 나도 주님을 믿기 전에는 주님에 대해서 욕하고 비방했던 인물입니다. 이런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연단받아 선택된 모든 백성들을 청결하게 하고 순전하게 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빛난 주석과 같은 발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에 오르신 그 발 나를 위해 대못을 발에 박히시고 나를 순결하게 하신 그 발입니다.

(계 1:16-17)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주님께서는 오른손에 일곱 별을 가지고 계시고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께서 교회에 복음을 전파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날 선 검은 바로 천국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모세를 떠오르게 합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에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해와 같은 천국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굴에서 빛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통해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나도 주님의 천국복음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이 빛을 받을 때에 구원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권위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바로 속죄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날 때에 속죄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른손을 주님이 얹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라는 의미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주님의 영광과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 사명을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계 1:18-19)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전에 죽었다가 지금은 살아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분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어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계시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깨닫고 알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계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사도 요한이 본 것은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주님이 풀어주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곱 별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교회의 목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자들은 오직 주님이 전파하셨던 천국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셨던 비밀의 계시의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 사명을 모든 교회의 목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현재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성도로 섬기는 자도 있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인자를 증거 해야 합니다. 그분이 교회를 통치하시며 치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누구와 하나가 되어 있습니까? 세상과 결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시는 주님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나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오직 천국복음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학문을 전하는 교회입니까? 우리가 이 시간 증명해 보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도 주님은 현재 이 교회를 거니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예배를 보시고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예배 중에 거니시고 있는데 나의 심령을 모두 보고 계시는데 어떻게 내가 주님을 떠날 수 있으며 이 시간을 헛되게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까? 이 시간을 오직 나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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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9장 (주석집)

이 책은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설교자를 위해 저술된 주석이다. 또한 신학도들과 요한계시록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를 원하는 평신도들도 염두에 두었다. 이미 해외에서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이 적지 않게 출판되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상황과 목회자를 염두에 두고 저술된 주석은 여전히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늘 설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목회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설교에 적용할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강단에서 더 풍성하게 외쳐지기를 원하신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계 1:3). 요한계시록은 설교자가 가장 기피해 온 책에 속한다. 정통 교회에서 요한계시록이 소홀히 다루어지자 사이비 신흥 종교가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순진한 신도를 미혹하여 왔다. 이러한 차제에 본서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문적 토론이나 학자의 논의는 가능한 한 간략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하였다.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간결하고 명료하게(brevitas et facilitas)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술하였다. 필자는 가능한 한, 이전에 출판된 내용과 중복되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수록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요한계시록으로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성경의 다른 책들도 제대로 주석하기가 쉽지 않지만 요한계시록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두꺼운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수 없이 많았다. 그 누가 요한계시록을 수월하게 주석할 수 있을까? 아직도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많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을 연구하고 주석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요 특권임에 틀림없다.

요한계시록의 구절과 단어 하나 하나를 연구하며 받는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주석을 쓰며 감격에 겨워 울기도 하고 전율하기도 하며 두려움과 안타까움에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요한계시록은 참으로 매력적인 책이며 엄청난 힘이 있는 책이다. 하나님은 창조자요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분이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어린 양이 영광의 왕인 것을 보여 주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영적인 실재와 초월적 세계를 본다는 것은 세상 어디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큰 기쁨이다. 주석을 쓰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쓸 수 없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였으며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이 부족하나마 한국 교회 강단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무엇보다도 두꺼운 분량의 책을 출판하도록 허락하신 킹덤북스(Kingdom Books) 대표 윤상문 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목회자에게 보다 더 유익한 주석이 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방광덕 목사님, 정광욱 목사님께 감사한다. 부족한 저서에 분에 넘치는 추천사를 써주신 박형용 총장님, 김상복 총장님, 권성수 교수님, 류호준 교수님, 정창균 총장님, 변종길 교수님, 문병구 교수님, 송태근 목사님, 진재혁 목사님, 정광욱 목사님, 채영삼 교수님, 허주 교수님에게 어떻게 감사의 뜻을 다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함께 기도해 온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멘토 그룹(HMS) 학우들, 요한계시록을 수강하며 함께 토론에 참여한 합신의 학우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다. 분주한 학업 중에 자료를 찾고 정리한 조교 박성전 전도사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의 저술과 출판을 위해 묵묵히 기도로 후원해 주신 여러 기도의 동역자들, 박치원 장로님, 류효근 목사님, 이기균 교수님, 필그림 동역자님들, 배부일 집사님과 손은희 집사님에게 깊이 감사 드린다.

늘 둘째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에게도 감사한다. 나의 은사요 멘토인 카슨 박사님께 감사 드린다. 이 책이 출판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기뻐하셨고 부족한 제자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아빠를 격려해 주는 사랑하는 하은이와 하진이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나의 주석과 견해를 들어 주고 조직신학자로서 비평해 주는 아내 한상화 박사의 끊임없는 격려와 지원이 없었다면 이 책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Soli Deo Gloria!

추천사 … 6

저자 서문 … 21

약어 일람표 … 24

제1부 요한계시록 서론

1. 저자 … 33

2. 연대 … 38

3. 요한계시록의 장르 … 41

4. 요한계시록 해석학파 … 55

5. 요한계시록의 구약 인용 … 64

6. 요한계시록의 상징 … 70

7. 요한계시록의 역사적 상황 … 79

8. 요한계시록의 구조 … 88

제2부 본문 주석 1장 1:1-8, 프롤로그 … 95

1. 1:1-3, 도입

2. 1:4-6, 인사와 송영

3. 1:7-8, 핵심 주제

2장 1:9-20, 영화로우신 그리스도 환상 … 137

3장 2:1-3:21, 일곱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 … 183

1. 2:1-7, 에베소 교회에 주시는 말씀

보론: “이기는 자(Tw|/ nikw/nti)”에 대하여

2. 2:8-11, 서머나 교회에 주시는 말씀

3. 2:12-17, 버가모 교회에 주시는 말씀

4. 2:18-29, 두아디라 교회에 주시는 말씀

5. 3:1-6, 사데 교회에 주시는 말씀

6. 3:7-13,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

7. 3:14-22,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

4장 4:1-5:14, 천상의 보좌 환상과 경배 … 329

1. 4:1-11,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경배

2. 5:1-14,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 경배

5장 6:1-19:10, 일곱 심판 시리즈(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 406

1. 서론

1) 요한계시록 6-18장의 문학적 구조

2)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상관 관계 2. 6:1-17, 첫째 인-여섯째 인 재앙

1) 일곱 인 심판과 감람산 강화(마 24장; 막 13장; 눅 21장)

2) 일곱 인 심판 요약: 6:1-17과 8:1-5

3) 6:1-11, 첫째 인-다섯째 인

4) 6:12-17, 여섯째 인 3. 7:1-17, 제1막간(십사만 사천과 셀 수 없이 많은 천상의 성도들)

1) 7:1-8,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

2) 7:9-17, 천상의 큰 무리의 경배

3) 8:1-5, 일곱째 인

4) 8:6-9:21, 첫째 나팔-여섯째 나팔

(1) 8:6-8:13, 첫째 나팔-넷째 나팔

(2) 9:1-11, 다섯째 나팔(메뚜기 재앙)

(3) 9:12-19, 여섯째 나팔(둘째 화)

(4) 9:20-21, 결론

참고문헌 … 569

요한계시록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김추성 교수가 세계적인 학자들의 저술들을 섭렵하고 비평하면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가장 탁월한 주석을 한국 교회에 선사해 기쁘게 생각한다. 그동안 요한계시록의 난해한 이슈들에 대한 다양한 학설들이 때때로 우리를 혼란케 하여 요한계시록의 정수를 맛보지 못하도록 혼돈을 주었지만 가뭄에 단비가 내리듯 이 책은 신학자와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균형 있고 종합적인 시각을 갖도록 안내한다. 학문적으로 검증되고 입증된 본서가 요한계시록을 바로 이해하여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체험하며 그 나라의 도래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큰 유익을 줄 것이라 확신하며 필독을 권한다.

김상복 박사(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 횃불트리니티신대원대학교 명예총장)

김추성 교수의 요한계시록 주해서는 신학적, 학문적, 실용적인 면에서 가장 탁월한 주석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한국 교회가 본서를 통해 요한계시록을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구속역사 진행과 완성을 바로 알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소원한다.

박형용 박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김추성 교수님의 『요한계시록 주석』은 신학자 목회자 신학생 평신도들이 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신학적인 논쟁의 미로에 갇히지 않고 미로에서 빠져 나와 환한 출구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책입니다. 특별히 김 교수님은 천재적인 신학자 번 에스 포이쓰레스(Vern S. Poythress) 밑에서 요한계시록을 직접 배운 제자로서 이 책을 썼기 때문에, 제가 기쁜 마음으로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권성수 박사(대구동신교회 담임목사)

ISBN 9791158861322

쪽수 600쪽

판형 152*225 (mm)

[요한계시록 1장 설교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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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1장 설교말씀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 1:1-8)

♣명제: 계시록은 닫혀 있는 책이 아니라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계시의 책이다.

♣목적: 계시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될 일들을 깨닫게 된다.

요한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를 당하고 있을 때에 주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하고 고통스러워 소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소망의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고 앞으로 될 일들에 대해서 보게 되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계시의 말씀을 통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닫혀 있는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밝히 열어 주신 책입니다. 그 이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시’ αποκαλυψις(아포칼륍시스 602 NNFS) 폭로, 덮개를 벗김, 드러남, 계시, 라는 뜻입니다. 계시는 예수님께서 이미 폭로하시고 덮개를 벗겨내듯이 하나님의 모든 의도를 벗겨내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것은 계시록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너희들에게 모두 밝혀 주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계시록은 닫혀 있는 책이고 이것을 자신들만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주님께서 밝혀 놓으신 계시의 말씀을 누가 해석한다는 것입니까? 이단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시려고’ δεικνυμι(데이크뉘미 1166) 보여주다, 설명하다, 증명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앞으로 될 일들을 보여주시고 설명하시며 증명해 주시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계시의 말씀을 아무 때나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타내 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사도 요한을 통해 말씀으로 우리에게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 계시는 이미 과거에 밝혀진 말씀들이고 계시록의 사건들은 이미 계획되어 이루어질 일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계시의 말씀을 주님께서 자발적이며 능동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만 보아도 계시록은 닫혀 있는 책이 아니라 훤히 열려 있는 책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알게 하신 것이라’ σημαινω(세마이노 4591) 지시하다, 알리다, 나타내다, 선언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계시의 말씀을 숨기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천사를 보내 종들에게 훤히 알 수 있도록 지시하고 알리고 나타내어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계시의 말씀을 알게 하는 때가 있었으며 깨달았던 순간이 실제적으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선택된 백성들에게는 알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능동적으로 지시하신 것입니다. 계시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바로 내가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 바로 나를 깨닫게 하십니다. 내가 구원받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계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요한은 자신이 본 모든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본 십자가의 사건을 증거 해야 합니다. 계시의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증언하였느니라’ μαρτυρεω(마르튀레오 3140) 증언하다, 증거 하다, 선언하다, 증인이 되다, 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증언자가 되어 세상에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증거 하며 선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증언이 과거에 이미 실제적으로 있었습니다. 이 증거는 확실한 증거이며 하나님께서 준비한 증거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증거를 능동적으로 전파해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바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데 1:1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럼 무엇을 전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십자가 복음의 계시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올수록 계시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는데 모두 현재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렇게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능동태를 쓰고 있는 것은 자발적으로 이렇게 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온전하게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읽는 자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읽고 바르게 전파하는 자들은 복이 있는 것입니다. 듣는 자와 지키는 자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에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는 바로 단수로 전하는 것이고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은 복수로 받아 많은 사람들이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록한’ γραφω(그라포 1125) 기록하다, 쓰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무 때나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선택된 백성들을 위해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들은 모두 완벽하게 기록된 것들이며 만세전에 이미 기록해 놓으신 것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번복하지 않으시고 한 번으로 끝난 기록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은 사람이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써 놓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라도 어길 수 없고 지울 수가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기록해 놓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구원받은 백성들을 위해서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들에게 지키고 행하여 복을 주시기 위해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남녀노소 누구라도 하나님 백성 안에 있는 자들이 지키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계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계시의 말씀을 모두 보고 듣고 깨닫고 난 후에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주님의 편지를 쓰게 됩니다. 일곱 교회는 바로 지상의 완전한 일곱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숫자 7은 완전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지상의 일곱 교회를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계시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직접 나에게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무엇입니까? 바로 온 세상에 보냄을 받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온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가졌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성령의 임재가 충만해야 합니다. 일곱 영은 완전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완전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교회는 무엇을 전파해야 합니까? 바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교회에서 생명이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영혼은 절대 살아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해방하시고’ λυω(뤼오 3089) 풀다, 해방하다, 석방하다, 취소하다, 폐지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자신이 피를 흘려주심으로 나의 죄를 해방시켜주시고 죄악의 감옥에서 석방시켜 주셨으며 나의 모든 죄악의 고통을 취소시키시고 주님의 피로 완전하게 죄인이라는 사실을 폐지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주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때나 죄악에서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완전하게 받아들일 때에 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 해방의 사건은 이미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작정하신 일이며 선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준비하신 일입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자발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사 나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주님께서 나를 위해 직접 십자가에 자발적으로 달리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크신 사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고 죄악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 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바로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분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죽을 자가 누구입니까?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죽을 자는 바로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주님께 모든 존귀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계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님께서는 계시의 말씀을 주시면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으며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 믿지 못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이라도 구름을 타고 왔다면 믿겠지만 이런 사실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이성으로 생각해도 구름을 타고 사람이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어진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오시리라’ ερχομαι(엘코마이 2064) 오다, 나타나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이 땅에 구름을 타고 나타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주님은 반드시 나타나실 것을 실제적 사건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과거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현재에 이루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임재는 바로 지금 현재에 나타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는 것을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은 능동적으로 오시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이미 죽었던 자들이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여 함께 오시는 것입니다. 천사가 나팔을 불 때에 주님이 많은 자들을 데리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오시는 목적은 바로 이 땅에 살면서 구원받고 선택된 자들을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주님께서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 구원받은 자 한 사람씩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그중에 한 명이 바로 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면 나는 영원한 지옥의 불 못에 던져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확실한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계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계시의 말씀을 서론에서 주시면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처음과 나중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시작도 하나님이 하시고 끝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을 서론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계시로 미리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오메가라’에서 ‘라’ ειμι(에이미 1510) 나는 ~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은 바로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것이 실제적 사건으로 있었으며 현재시제를 쓰고 있는 것은 주님은 지금 당장 현재에 항상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능동적으로 자신 스스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은 바로 단수 1인칭을 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단 한 분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구름을 타고 나를 데리러 오십니다. 얼마나 가슴이 벅찬 일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데리러 오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시록은 닫혀 있는 책이 전혀 아닙니다. 이 책은 주님께서 이미 밝히 드러내 주신 책이며 다 가르쳐 주신 책입니다. 이제 이단의 계략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단은 숨겨진 책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들만 이 책의 비밀을 풀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이단의 교리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은 나에게 계시해 주셨고 이제 계시록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자녀에게 비밀로 숨겨 놓고 풀지 못하는 문제를 내는 부모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또한 선택받은 백성들에게 주님이 오시는 것을 비밀로 숨겨 놓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이런 하나님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계시로 가르쳐 주셨는데 인간의 무지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엉뚱하게 해석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주님의 계시의 말씀을 똑바로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전개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확실히 배우고 깨달아서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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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에 대한 정보 요한계시록 1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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