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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주석 | [하루 한 장] 요한계시록7장_십사만 사천이니(영상) 23468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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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6 (화) [하루 한 장]“십사만 사천이니” (계7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요한계시록 7장에서 하나님은
심판의 때에 두루마리의 인을
한 번에 다 떼게 하지 않으시고
마지막 하나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재앙을 붙잡아두게 하십니다
구원의 인을 다 칠 때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재앙과 심판에 있지 않고
이 과정을 통해서 한명이라도
더 구원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소유를
끔찍이 사랑하듯 하나님도
그분의 소유된 우리들을
그보다 훨씬 더 소중히 여기시고
구원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숫자는 144,000명입니다
12지파와 12사도를 곱하고
거기에 큰 수 1,000을 곱해서
나온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중요한 건 계수의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중 20세 이상 싸움에
나갈만한 자만 계수되는데
과연 우리는 준비가 되었습니까?
====================================
* 부산 성민교회 : 부산시 사하구 승학로 201(괴정동).
http://sungminch.com/
성민교회 홈페이지에 오시면 더 많은 성민가족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홍융희 목사의 설교 mp3모음 USB구입은 교회 사무실로 전화 문의 바랍니다.
분홍목사의 사역 신청 문의도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51-204-0691 (담당 : 성민교회 박지선 간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루 한 장]과 여러 영상들을 통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http://www.youtube.com/c/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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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protected]
010-2741-0734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분홍목사 홍융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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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한 계시록 7장 주석 – 다음블로그

요한계시록 제 7장 =====7:1 이 일 후에. – 이는 환상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으로 본장이 여섯째 인의 재앙과 일 곱번째 인을 떼는(8:1) 그 사이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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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4/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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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요한계시록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 인생여행

메타 투토 에이돈 테싸라스 앙겔루스 헤스토타스 에피 타스 테싸라스 고니아스 테스 게스 크라툰타스 투스 테싸라스 아네무스 테스 게스 히나 메 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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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ripol.tistory.com

Date Published: 8/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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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요한계시록 07장

7:1 이 일 후에 – 이는 환상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으로 본장이 여섯째 인의 재앙과 일 곱번째 인을 떼는(8:1) 그 사이에 일어나는 것임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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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6/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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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7장-문제와 해설]

어쩌면 요한이 계시록을 쓴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 지도 모른다. 이런 재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돌아보신다; 큰 환난을 통과하고 누릴 복이 있음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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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khong.org

Date Published: 2/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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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7장 주석 – 네이버 블로그

요한계시록 제7장 주석이. 한국설교연구원(www.kip.or.kr). 웹사이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제7장은 여섯째 인(印)과 일곱째 인(印) 사이에 끼워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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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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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주석 강해설교]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무리 …

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무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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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edesd153.tistory.com

Date Published: 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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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요한계시록 7장 – 십사만 사천 명의 정체

요한계시록 7장은 마지막 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을 144,000 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보좌 앞과 어린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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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3agospel.com

Date Published: 9/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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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설교문] “구원 받은 큰 무리”(계7:9-17) – 복음 빵집

샬롬! 오늘은 요한계시록 7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구원받은 큰 무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큰 무리”(계7:9-17) ♧명제: 구원의 인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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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강해 인 맞은 종과 흰옷 입은 무리 – 밤중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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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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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헬라어 설교] “종려나무 가지 흔드는 144000명 …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7장 헬라어 설교 중에서 종려나무 가지 흔드는 144000명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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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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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요한계시록 7장 주석

  •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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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4. 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vdN6GA-k3nE

출처 : 요한 계시록 연구회

글쓴이 : 예수사랑 원글보기 : 예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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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제 7장=====7:1이 일 후에. – 이는 환상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으로 본장이 여섯째 인의 재앙과 일곱번째 인을 떼는(8:1) 그 사이에 일어나는 것임을 나타낸다.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 ‘네 천사’는 바람을 맏은 천사로서 이들은 자연계를 다스리는 천사들이다(Mounce), 한편 ‘땅 네 모퉁이’는 세상의 모든 곳에서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을 예언한 사 11:12의 ‘땅 사방에서’와 동일한 의미의표현으로 온 세상을 가리킨다.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 ‘바람’은 파괴나 전쟁의 재앙을 상징한다(렘49:36-38;51:1). 그러기에 ‘땅의 사방의 바람’은 종말에 온 세상에 임할 커다란 재앙을 암시한다(왕상 19:11; 욥 1:19;21:18; 시 1:4;14:18; 단 2:35;7:2). 한편 ‘붙잡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툰타스'(* )는 ‘단단히 붙잡다’는 의미를 가진’크라테오'(* )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 계속해서 재앙을 행사치 못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Charles).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 ‘불지 못하게 하더라’ 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메 프네에 아네모스'(* )는 현재 능동태 가정법으로 ‘바람이 계속해서 불지 못하도록’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인치기까지 재난을 중지시킨 사실을 암시한다(2, 3절).=====7:2또 보매 다른 천사가. – ‘다른 천사’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로 해석하나(Walvoord, Ladd) 앞서 언급된 ‘네 천사’외에 또 다른 천사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Johnson, Mounce, Morris, 8:3 주석 참조). 본절에서 다른 천사의 역할은 하나님의택하신 백성들에게 인을 쳐 보호 받도록 하는 것이다(3절).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묵시 문학에서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이교의 죽음은 우상에 반하여 창조자의 살아 계심을 부각시키는표현이다(4:9, 10;15:7; 마 16:16;26:63; 히 3:12).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비록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친다 할지라도 그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시사한다. 한편’인’의 헬라어 ‘스프라기다'(* )는 자신의 문서나 노예, 혹은 소유물등에 소유권이나(엡 1:3), 보증(고전 1:22)을 나타내는 표시를 뜻한다. 이는 짐승의표와 대조를 이루어(13:16)인을 맞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소유사 되며(14:1)하나님과 어린양의 보호나 안전을 보장받는 자임을 시사한다.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 ‘해 돋는 데로부터’의 헬라어 ‘아포아나톨레스 헬리우’ (* )는 문자적으로 ‘동쪽으로부터’를 의미한다. 인을 가진 다른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온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은 다석 가지이다. (1) 혹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 문에서 올라온다는 예언의 성취로 해석한다(겔 43:4,Swete). (2) 혹자는 메시야가 동방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ibylline 3:652, Erbes, Lohmeyer). (3) 혹자는 ‘동쪽’이 묵시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종의 자세한 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Mounce). (4) 혹자는 예수의 탄생과관련하여 동쪽에서 별을 보며 박사들이 온 사실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마 2:1,Barclay, Morris). (5) 혹자는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는 태양이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암시한다고 가리킨다(De Wette, Hengstenberg). 이러한 다양한견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7:3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는 몇몇 해석이 있다. (1) 혹자는 ‘하나님의 종’들(1:1;2:20;19:2, 5;22:3,6)과 ‘우리 하나님'(10, 12절;12:10;19:1, 5)을 합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ngel). (2) 혹자는 하나님께 봉사함에 있어서 천사들과 비할 수 있는 존재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obertson). 두 가지 견해 중 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장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인침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마에 ‘인침’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공개적으로 임할 마귀의 권세로 부터 하나님의 종들이 보호받는 것으로 해석한다(Charles, Clark). (2) 혹자는 이기는 자가 받게 될 흰 돌(2:17) 혹은 성전의 기둥으로 해석한다(Rist). (3) 혹자는 성령 혹은 초대교회 이후의 세례로 해석한다. 세 가지 견해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인’은소유나 보호를 나타내는 것으로 (9:4;14:1;겔 9:1-7;딤후 2:19) 짐승의 미혹을 당하지않고 하나님의 진노 대상에서 벗어나 승리와 보호를 약속받는 것을 시사한다(13:7;16:2;20:4, Johnson).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 ‘해하지 말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메아디케세테'(* )는 강한 부정 명령의 능동태 가정법으로 ‘해하기시작하지 말아라’는 의미이다. 이는 인침을 받은 자는 짐승의 미혹에 기만당하지 않고종말의 재앙에서 보호 받아 승리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7:4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 ‘인맞은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에스프라기스메논'(* )은 완료 수동태 분사로 더이상 변함이 없는 완료된 수를 요한이 들었음을 나타낸다.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중에서. – ‘이스라엘’에 대한 해석은 본서에서 가장 난해한 해석 중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스라엘을 문자적의미로 취급하여 유대인 성도들로 해석한다(Bengel, Clarke, Walvoord). (2) 혹자는 ‘이스라엘’자르 문자적 의미가 아닌 영적 의미로 해석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De Wette, Ladd, Johnson, Moffatt, Charles, Plummer,Vincent, Kiddle, Ris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에서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로, 새 예루살렘 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예수를 따를는 자를 참이스라엘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4:4;15:1ff. ;21:9-12). 더욱이 5-8절까지 언급된12지파명도 구약성경에 나타난 12지파명과 다르다.인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 ‘십 사만 사천’이 누구를 나타내는가에 대한견해는 세가지이다. (1) 혹자는 순교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Kiddle,Caird). (2) 혹자는 ‘이스라엘’자르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십 사만 사천’도 문자적으로 인치심을 받고 보호함을 받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해석한다(갈 6:16, Walvoord,Richardson). (3) 혹자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십 사만 사천을 유대인과 이방인들로구성된 완성된 교회로 해석한다(롬 2:28, 29;9:6, 7, Alford, Swete, Beckwith,Vincent). 이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한편 144,000에 대한 상징적 숫자 해석은 (3 * 4)** 2 * 10 ** 3 = 144,000이다. 3은 하나님의 수이며 4는 땅의 수로서 곱한 수가 완전수인 12이며, 이 12의 제곱과 충만수 10의 세제곱이 곱해진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충만함을 의미한다(Greijdanus, Lohmeyer, Ladd,Johnson).=====7:5,6,7,8유다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일만 이천이라. – 요한은 인맞은 이스라엘 지파의이름을 열거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이름과 순서와 내용은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Ladd, Lohmeyer, Hendriksen). 왜냐하면 12지파의순서가 창세기나 에스겔서와 다를 뿐만 아니라 기록된 방식이 독특하여 영적 의미를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차이점에서 비롯된 본문의 특징은 다섯 가지이다. (1)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이 먼저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창 35:22-26;신 33:5-25) 본문에서는 유다 지파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이는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나신 것을반영하고 있다(창 49:10;대상 5:2;히 7:13, 14, Johnson, Mounce, Morris). (2) 본문에서는 단 지파가 생략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단'(* )이 부주의로 ‘만'(* , man, ‘사람’)으로 기록되었거나(Spitta, Bleek) 혹은 우상 숭배로 인해서고의 적으로 제외되었거나(창 49:17;삿 18:18, 19, 30;왕상 12:29, 30, Clarke), 아니면 렘 8:16을 확대 해석하여 단 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는 랍비들의 해석과 연관되어 제외되었다고 한다(Weiss, Charles, Alford, Walvoord). (3)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동시에 등장하지 않고 본문에서 에브라임은 생략되고 대신 요셉이 삽입되어 있다. 이는 에브라임도 단 지파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로 인히서 생략되었고(호 4:17)단 지파의 생략으로 12숫자를 맞추기 위해 욥셉이 삽입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Johnson, Mounce). (4) 레위 지파의 삽입이다.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나뉘어 12지파에 들어가고 레위 지파가 12지파에서 빠져 제사장 지파로서 신분이격상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에 본문에서는 레위 지파가 삽입되어 혈통적 제사장 지파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5) 모든 지파에 ‘중에 일만 이천’이 반복된다. 이는 12의 1,000배로 완전하고 큰 숫자임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동일하게 ‘…중에'(* , 에크)를 반복하여 인맞은 자들이 선택된 무리임을 암시해준다(Johnson).=====7:9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앞서 언급된 십사만 사천과 본절 하반절에서 언급되는 ‘셀 수 없는 무리’를 연결하는 표현이다(5:9 주석 참조). 이렇게 요한이 중복적 으로 표현한 것은 144,000이라는 숫자가 영적인 의미의 수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구원의 문이 모든 민족에게 열려져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Morris).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 본문이 누구를 의미하는가에 대하여는 세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큰 무리’가 십 사만 사천이라는 수로 상징된 자들과동일인이라고 해석한다(Beckwith, Morris, Eller). (2) 혹자는 십 사만 사천과 구별하여 십 사만 사천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본문은 큰 환난 가운데서 구원받은 이방인들을가리킨다고 해석한다(Lamp). (3) 혹자는 본문이 큰 환난 때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할순교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Kiddle, Moffatt). 세 가지 견해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 ‘흰 옷’은 정결과 승리를 상징하는 옷으로(3:4 주석 참조)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 구속받았음을 나타낸다. ‘종려 가지’는 일반적으로 승리나 기쁨의 상징으로사용된다(요 12:13, Trench, Vicent, Alford).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흰 옷을 입은 허다한 무리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속 하심에 대해 기쁨으로 찬양할 것이다.=====7:10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 본문은 허다한 무리들의 찬양이가(9절). ‘구원하심’의 헬라어 ‘소테리아'(* )는 허다한 무리 자신들의 업적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어린양의 구속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을 가리킨다(Caird, Weymouth). 허다한 무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속하심에 대해 찬양을 성부와 어린양에게 돌린다(5:13;19:1).=====7: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 ‘주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클로'(* )는 문자적으로 ‘원형으로’라는 뜻으로 모든 천사가 보좌와장로들과 생물들을 옹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5:11 주석 참조).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 ‘엎드려 얼굴을 대고’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산…에피 타 프로소파 아우톤'(*)은 경건한 예배의 행위를 나타낸다(4:10;5:14;11:16;19:4, 10;22:8, Charles).=====7:12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 본문은 모든 천사가 구속된 자들의 찬양에 대해(10절) ‘아멘’으로 화답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으로5:12절의 찬양과 대조를 이룬다. 5:12절의 찬양과 대조해보면 본문의 찬양은 다음과같은 특징을 지닌다. (1) 5:12, 13의 찬미는 어린양에게 바쳐졌으나 본절은 하나님께드려진다. (2) 찬양 내용 중에서 5:12의 ‘부’가 본절에서는 ‘감사’로 대치되어 있다.’감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구속하신 것에 대한 것이다. (3) 본문에 ‘세세토록’이란 말이 삽입되어 이 모든 것이 영원한 것임을 강조한다. (4) 본문에는 두 번의 ‘아멘’이 사용된다. 처음의’아멘’은 큰 무리의 찬송에 대한 응답이며 마지막의 ‘아멘’은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을나타내는 것으로 영광스런 예배의 모습을 암시한다(5:12-14, Morris, Mounce,Lohmeyer).=====7:13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 ‘장로 중에 하나’는 본서 가운데 나타나는 교회를대표하는 장로들이 아니라 어떤 천상적인 존재인 듯하다(4:4 주석 참조, Johnson). 한편 ‘응답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크리데'(* )는 ‘아포크리노마이'(* ,’대답하다’)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의문을 제기하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응답한 사실을 나타낸다. 이는 예언서에서 흔히 등장하는 문답 형식으로(렘 1:11;겔 37:3;슥 4:2, 4, 5) 질문없이 스스로 해석하고 답하는히브리어 중복성(Hebrew redundancy)을 나타낸다(Swete).=====7:14내가 가로되.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카'(* )는 완료 능동태로 생생한 증언을 나타낸다(Swete).내 주여. – 이는 천상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Vincent).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 ‘당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수'(* )는 강조적인 표현으로 ‘바로 당신’이란 의미이다. 이 말에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진지한 고백뿐 아니라존경과 두려움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Plummer, Swete).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 ‘큰 환난’의 내용에 대해서는 몇몇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모든 시대의 성도가 겪는 보편적인 환난으로 해석한다(Morris, Alford, Greijdanus, Niles). (2) 혹자는 종말에 겪을 환난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3:10;단 12:1;막 13:19, Charles, Walvoord, Mounce). 두 가지 견해중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큰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들리프세오스 테스 메갈레스'(*)에는 정관사 ‘테스'(* )가 사용되어 그것이 특정한 사건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어린양의 피에.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하이마티투 아르니우'(*)는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구문으로 그들의 사죄 받음이 인간의 공적에 의한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속죄피로 말미암은 것임을 시사한다(사 1:18;히9:14;요일 1:7, Swete, Milligan). 한편 ‘씻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플뤼난'(*)과 ‘희게 하였느니라’의 헤라어 ‘엘류카난'(* )은 모두 부정과거 시제로 단회적인 행위를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 사역이 단회적이면서도그 효력은 영원함을 나타낸다. 허다한 무리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깨끗함을 입고 구속받은 자들이다.=====7:15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토'(* )는 문자적으로’이것 때문에’라는 의미로, 본문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인한 결과임을 나타낸다.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 본문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자가 누리게 될 특권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함은 오직 어린양의 속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히 10:19).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 본문은 21:22에 ‘성전이 없다’는 말씀과 상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본절에서 17절까지는 21, 22장에 나오는 구속받은 자들과연관된 것이기에(21:3, 4,6)본문의 성전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으로보는 것이 자연스럽다(Johnson). 한편 ‘섬기며’의 헬라어 ‘라트류우신'(*)은 ‘봉사한다’는 의미를 가진 ‘라트류오'(* )에서 파생된 단어로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은 물론 ‘제사장들의 특별한 제사적인 예배’를 의미한다(마 4:10;히 8:5). 이것은 본문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제사장의 중보나 제물의필요없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며 예배하며 섬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벧전 2:9). 그렇나 섬김과 예배는 ‘밤낮’없이 행해진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에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21:25;22:5). ‘밤낮’은 쉼이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나타낸다(20:10, Mounce). 구속받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지속적으로 그를경배하고 섬기게 된다.보좌에 않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 ‘장막을 치시리니’ 에 해당하는헬라어 ‘스케노세이'(* )는 미래시상으로 이래에 함께 거하실 것을 나타낸다. 이는 광야에서 여러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출 13:21;대하 7:1-3). 즉 본문은 하나님께 구속 받은 자들과 함께 거하셔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약속의 성취를 나타낸다(겔 37:27;슥2:10, Morris, Johnson, Mounce).=====7:16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 본문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벧론 포로 상태에서 귀환할 때의 이사야의 진술을 반영한 것으로(사 49:10)구속 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한 축복을 나타낸다. ‘주림과 목마름’은 단순히 육체적 빈곤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갈급의 상태를 나타낸다. 구속 받은 자들은그러한 주림과 목마름이 더이상 없는 완전히 충족된 상태를 누리게 될것이다(마 5;6;요 6:35).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 ‘아무 뜨거운 기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 카우마'(* )는 ‘불에 타다’라는 의미를 가진 ‘카이오'(* )에서 파생된 단어로 고통스러운 열기를 말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고통이나(Morris) 혹은 넷째 대접의 재앙을 가리킨다(16:9, Mounce). 한편 ‘상하지아니할지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데 메 페세'(* )는 ‘떨어지다’의 의미를 지닌’피프토'(* )의 부정관사 시상으로 강한 이중부정이다. 이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지상에서와 같은 고통스러움이 경단코 없을 것을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들이 전형적인 육체의 모든 고통에서 장차 해방될 것임을 시사한다(Mounce, Moffatt, Ford).=====7:17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 ‘보좌 가운데 계신’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보좌와 이심 사 장로들과의 중간 위치를 가리키나 위치적인 의미보다는 그리스도의 ‘중보자 직임’을 상징한다. 한편 ‘저희의 목자가 되사’에 해당하는헬라어 ‘포이마네이 아우투스'(* )는’보살피다’는 의미의 ‘포이마이노'(* )에서 파생된 미래 능동태로 문자적으로 ‘그들을 보살피실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중보적사역을 실제로 행하실 것을 약속해 준다(요 21:16;행 20:28;벧전 5:2, Swete, Ford).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 ‘생명수 샘으로’의 헬라어 ‘에피 조에스 페가스 휘다톤'(* )은 어순상 ‘생명의'(* , 조에스)를 강조한다. 이는 다함이 없는 생명의 근원을 시사한다(21:6;22:1, 7;요 4:12, 14:7:38).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을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것이다.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 본문은 사 25:8을반영한다.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의 해당하는 헬라어 ‘여살레이프 세이'(*)는 문자적으로 ‘…으로 부터 제거해 버리다’라는 의미의 미래 시상으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구속 받은 자들을 고통과 아픔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실것을 시사한다(21:4). 이것은 장차 구속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하며 절대적인 희락과평강의 축복을 나타낸다.

헬라어 요한계시록 7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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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투토 에이돈 테싸라스 앙겔루스 헤스토타스 에피 타스 테싸라스 고니아스 테스 게스 크라툰타스 투스 테싸라스 아네무스 테스 게스 히나 메 프네에 아네모스 에피 테스 게스 메테 에피 테스 달라쎄스 메테 에피 판 덴드론

개역개정,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새번역,1 그 뒤에 나는, 천사 넷이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네 바람을 붙잡아서, 땅이나 바다나 모든 나무에 바람이 불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말성경,1 이 일 후에 나는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네 바람을 붙잡아 땅이나 바다나 나무에 불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1 그다음에 나는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네 바람을 붙잡고서는 땅에도 바다에도 그 어떤 나무에도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어NIV,1 After this I saw four angels standing at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holding back the four winds of the earth to prevent any wind from blowing on the land or on the sea or on any tree.

영어NASB,1 After this I saw four angels standing at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holding back the four winds of the earth, so that no wind should blow on the earth or on the sea or on any tree.

영어MSG,1 Immediately I saw Four Angels standing at the four corners of earth, standing steady with a firm grip on the four winds so no wind would blow on earth or sea, not even rustle a tree.

영어NRSV,1 After this I saw four angels standing at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holding back the four winds of the earth so that no wind could blow on earth or sea or against any tree.

헬라어신약Stephanos,1 και μετα ταυτα ειδον τεσσαρας αγγελους εστωτας επι τας τεσσαρας γωνιας της γης κρατουντας τους τεσσαρας ανεμους της γης ινα μη πνεη ανεμος επι της γης μητε επι της θαλασσης μητε επι παν δενδρον

라틴어Vulgate,1 post haec vidi quattuor angelos stantes super quattuor angulos terrae tenentes quattuor ventos terrae ne flaret ventus super terram neque super mare neque in ullam arborem

히브리어Modern,1 ואחרי כן ראיתי ארבעה מלאכים עמדים בארבע כנפות הארץ ויעצרו את ארבע רוחות הארץ למען לא תשב רוח לא בארץ ולא בים ולא בכל עץ׃

성 경: [계7:1]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선별된 십 사만 사천]

이 일 후에. – 이는 환상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으로 본장이 여섯째 인의 재앙과 일 곱번째 인을 떼는(8:1) 그 사이에 일어나는 것임을 나타낸다.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 ‘네 천사’는 바람을 맏은 천사로서 이들은 자연계를 다스리는 천사들이다(Mounce), 한편 ‘땅 네 모퉁이’는 세상의 모든 곳에서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을 예언한 사 11:12의 ‘땅 사방에서’와 동일한 의미의 표현으로 온 세상을 가리킨다.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 ‘바람’은 파괴나 전쟁의 재앙을 상징한다(렘 49:36-38;51:1). 그러기에 ‘땅의 사방의 바람’은 종말에 온 세상에 임할 커다란 재앙을 암시한다(왕상 19:11; 욥 1:19;21:18; 시 1:4;14:18; 단 2:35;7:2). 한편 ‘붙잡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툰타스'(*)는 ‘단단히 붙잡다’는 의미를 가진 ‘크라테오'(*)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 계속해서 재앙을 행사치 못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Charles).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 ‘불지 못하게 하더라’ 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메 프네에 아네모스'(*)는 현재 능동태 가정법으로 ‘바람이 계속해서 불지 못하도록’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인치기까지 재난을 중지시킨 사실을 암시한다(2, 3절).

카이 에이돈 알론 앙겔론 아나바이논타 아포 아나톨레스 헬리우 에콘타 스프라기다 데우 존토스 카이 에크랔센 포네 메갈레 토이스 테싸르신 앙겔로이스 호이스 에도데 아우토이스 아디케사이 텐 겐 카이 텐 달라싼

개역개정,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새번역,2 그리고 나는, 다른 천사 하나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땅과 바다를 해하는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우리말성경,2 그리고 나는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땅과 바다를 해칠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쳐

가톨릭성경,2 나는 또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영어NIV,2 Then I saw another angel coming up from the east, having the seal of the living God. He called out in a loud voice to the four angels who had been given power to harm the land and the sea:

영어NASB,2 And I saw another angel ascending from the rising of the sun, having the seal of the living God; and he cried out with a loud voice to the four angels to whom it was granted to harm the earth and the sea,

영어MSG,2 Then I saw another Angel rising from where the sun rose, carrying the seal of the Living God. He thundered to the Four Angels assigned the task of hurting earth and sea,

영어NRSV,2 I saw another angel ascending from the rising of the sun, having the seal of the living God, and he called with a loud voice to the four angels who had been given power to damage earth and sea,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ειδον αλλον αγγελον αναβαντα απο ανατολης ηλιου εχοντα σφραγιδα θεου ζωντος και εκραξεν φωνη μεγαλη τοις τεσσαρσιν αγγελοις οις εδοθη αυτοις αδικησαι την γην και την θαλασσαν

라틴어Vulgate,2 et vidi alterum angelum ascendentem ab ortu solis habentem signum Dei vivi et clamavit voce magna quattuor angelis quibus datum est nocere terrae et mari

히브리어Modern,2 וארא מלאך אחר עלה ממרח שמש ובידו חתמת אלהים חיים ויקרא בקול גדול אל ארבעה המלאכים אשר נתן להם לחבל הארץ והים לאמר׃

성 경: [계7:2]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선별된 십 사만 사천]

또 보매 다른 천사가. – ‘다른 천사’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로 해석하나(Walvoord, Ladd) 앞서 언급된 ‘네 천사’외에 또 다른 천사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Johnson, Mounce, Morris, 8:3 주석 참조). 본절에서 다른 천사의 역할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인을 쳐 보호 받도록 하는 것이다(3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묵시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이교의 죽음은 우상에 반하여 창조자의 살아 계심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다(4:9, 10;15:7; 마 16:16;26:63; 히 3:12).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비록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친다 할지라도 그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시사한다. 한편 ‘인’의 헬라어 ‘스프라기다'(*)는 자신의 문서나 노예, 혹은 소유물 등에 소유권이나(엡 1:3), 보증(고전 1:22)을 나타내는 표시를 뜻한다. 이는 짐승의 표와 대조를 이루어(13:16)인을 맞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소유사 되며(14:1)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호나 안전을 보장받는 자임을 시사한다.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 ‘해 돋는 데로부터’의 헬라어 ‘아포아나톨레스 헬리우’ (*)는 문자적으로 ‘동쪽으로부터’를 의미한다. 인을 가진 다른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온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은 다석 가지이다. (1) 혹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 문에서 올라온다는 예언의 성취로 해석한다(겔 43:4, Swete). (2) 혹자는 메시야가 동방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ibylline 3:652, Erbes, Lohmeyer). (3) 혹자는 ‘동쪽’이 묵시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종의 자세한 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Mounce). (4) 혹자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동쪽에서 별을 보며 박사들이 온 사실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마 2:1, Barclay, Morris). (5) 혹자는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는 태양이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암시한다고 가리킨다(De Wette, Hengstenberg). 이러한 다양한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레곤 메 아디케세테 텐 겐 메테 텐 달라싼 메테 타 덴드라 아크리 스프라기소멘 투스 둘루스 투 데우 헤몬 에피 톤 메토폰 아우톤

개역개정,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새번역,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는,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아라.”

우리말성경,3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너희는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치지 말라.”

가톨릭성경,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영어NIV,3 “Do not harm the land or the sea or the trees until we put a seal on the foreheads of the servants of our God.”

영어NASB,3 saying, “Do not harm the earth or the sea or the trees, until we have sealed the bond-servants of our God on their foreheads.”

영어MSG,3 “Don’t hurt the earth! Don’t hurt the sea! Don’t so much as hurt a tree until I’ve sealed the servants of our God on their foreheads!”

영어NRSV,3 saying, “Do not damage the earth or the sea or the trees, until we have marked the servants of our God with a seal on their foreheads.”

헬라어신약Stephanos,3 λεγων μη αδικησητε την γην μητε την θαλασσαν μητε τα δενδρα αχρις ου σφραγιζωμεν τους δουλους του θεου ημων επι των μετωπω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3 dicens nolite nocere terrae neque mari neque arboribus quoadusque signemus servos Dei nostri in frontibus eorum

히브리어Modern,3 אל תחבלו את הארץ ואת הים ואת העץ עד אם חתמנו את עבדי אלהינו על מצחותם׃

성 경: [계7:3]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선별된 십 사만 사천]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는 몇몇 해석이 있다. (1) 혹자는 ‘하나님의 종’들(1:1;2:20;19:2, 5;22:3, 6)과 ‘우리 하나님'(10, 12절;12:10;19:1, 5)을 합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ngel). (2) 혹자는 하나님께 봉사함에 있어서 천사들과 비할 수 있는 존재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obertson). 두 가지 견해 중 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장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인침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마에 ‘인침’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공개적으로 임할 마귀의 권세로 부터 하나님의 종들이 보호받는 것으로 해석한다(Charles, Clark). (2) 혹자는 이기는 자가 받게 될 흰 돌(2:17) 혹은 성전의 기둥으로 해석한다(Rist). (3) 혹자는 성령 혹은 초대교회 이후의 세례로 해석한다. 세 가지 견해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인’은 소유나 보호를 나타내는 것으로 (9:4;14:1;겔 9:1-7;딤후 2:19) 짐승의 미혹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 대상에서 벗어나 승리와 보호를 약속받는 것을 시사한다(13:7;16:2;20:4, Johnson).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 ‘해하지 말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아디케세테'(*)는 강한 부정 명령의 능동태 가정법으로 ‘해하기 시작하지 말아라’는 의미이다. 이는 인침을 받은 자는 짐승의 미혹에 기만당하지 않고 종말의 재앙에서 보호 받아 승리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카이 에쿠사 톤 아드리몬 톤 에스프라기메논 헤카톤 테쎄라콘타 테싸레스 킬리아데스 에스프라기스메노이 에크 파세스 퓔레스 휘온 이스라엘

개역개정,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새번역,4 내가 들은 바로는 도장이 찍힌 사람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마에 도장을 받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말성경,4 그리고 나는 인 침을 받은 사람들의 수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가운데 인 침을 받은 사람들이 14만 4,000명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영어NIV,4 Then I heard the number of those who were sealed: 144,000 from all the tribes of Israel.

영어NASB,4 And I heard the number of those who were sealed, one hundred and forty-four thousand sealed from every tribe of the sons of Israel:

영어MSG,4 I heard the count of those who were sealed: 144,000! They were sealed out of every Tribe of Israel:

영어NRSV,4 And I heard the number of those who were sealed, one hundred forty-four thousand, sealed out of every tribe of the people of Israel:

헬라어신약Stephanos,4 και ηκουσα τον αριθμον των εσφραγισμενων ρμδ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πασης φυλης υιων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4 et audivi numerum signatorum centum quadraginta quattuor milia signati ex omni tribu filiorum Israhel

히브리어Modern,4 ואשמע מספר החתומים מאה אלף וארבעים וארבעה אלף והם חתומים מכל שבטי בני ישראל׃

성 경: [계7:4]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선별된 십 사만 사천]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 ‘인맞은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에스프라기스메논'(*)은 완료 수동태 분사로 더이상 변함이 없는 완료된 수를 요한이 들었음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중에서. – ‘이스라엘’에 대한 해석은 본서에서 가장 난해한 해석 중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스라엘을 문자적 의미로 취급하여 유대인 성도들로 해석한다(Bengel, Clarke, Walvoord). (2) 혹자는 ‘이스라엘’을 문자적 의미가 아닌 영적 의미로 해석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De Wette, Ladd, Johnson, Moffatt, Charles, Plummer, Vincent, Kiddle, Ris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에서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로, 새 예루살렘 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예수를 따를는 자를 참이스라엘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4:4;15:1ff. ;21:9-12). 더욱이 5-8절까지 언급된 12지파명도 구약성경에 나타난 12지파명과 다르다.

인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 ‘십 사만 사천’이 누구를 나타내는가에 대한 견해는 세가지이다. (1) 혹자는 순교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Kiddle, Caird). (2) 혹자는 ‘이스라엘’자르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십 사만 사천’도 문자적으로 인치심을 받고 보호함을 받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해석한다(갈 6:16, Walvoord, Richardson). (3) 혹자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십 사만 사천을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완성된 교회로 해석한다(롬 2:28, 29;9:6, 7, Alford, Swete, Beckwith, Vincent). 이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한편 144,000에 대한 상징적 숫자 해석은 (3 4)2 103 = 144,000이다. 3은 하나님의 수이며 4는 땅의 수로서 곱한 수가 완전수인 12이며, 이 12의 제곱과 충만수 10의 세제곱이 곱해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충만함을 의미한다(Greijdanus, Lohmeyer, Ladd, Johnson).

에크 퓔레스 유다 도데카 킬리아데스 에스프라기스메노이 에크퓔레스 루벤 도데카 킬리아데스 에크 퓔레스 갇 도데카 킬리아데스

개역개정,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새번역,5 도장이 찍힌 사람은, 유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갓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우리말성경,5 유다 지파에서 인 침을 받은 사람들이 1만 2,000명, 르우벤 지파에서 1만 2,000명, 갓 지파에서 1만 2,000명,

가톨릭성경,5 이렇게 인장을 받은 이들은 유다 지파에서 만 이천 명 르우벤 지파에서 만 이천 명 가드 지파에서 만 이천 명

영어NIV,5 From the tribe of Judah 12,000 were sealed, from the tribe of Reuben 12,000, from the tribe of Gad 12,000,

영어NASB,5 from the tribe of Judah, twelve thousand were sealed, from the tribe of Reuben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Gad twelve thousand,

영어MSG,5 12,000 sealed from Judah, 12,000 from Reuben, 12,000 from Gad,

영어NRSV,5 From the tribe of Judah twelve thousand sealed, from the tribe of Reuben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Gad twelve thousand,

헬라어신약Stephanos,5 εκ φυλης ιουδα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φυλης ρουβην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φυλης γαδ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라틴어Vulgate,5 ex tribu Iuda duodecim milia signati ex tribu Ruben duodecim milia ex tribu Gad duodecim milia

히브리어Modern,5 לשבט יהודה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לשבט ראובן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לשבט גד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성 경: [계7:5,6,7,8]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선별된 십 사만 사천]

유다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일만 이천이라. – 요한은 인맞은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열거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이름과 순서와 내용은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Ladd, Lohmeyer, Hendriksen). 왜냐하면 12지파의 순서가 창세기나 에스겔서와 다를 뿐만 아니라 기록된 방식이 독특하여 영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12지파와 본문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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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겔 48 : 1 – 8, |

| 7 : 5 – 8 | 창 49 : 1 – 27 | 23 :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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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다 | 르 우 벤 | 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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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우벤 | 시 므 온 | 아 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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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 레 위 | 납 달 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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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셀 | 유 다 | 므 낫 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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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달리 | 스 불 론 | 에 브 라 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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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므낫세 | 잇 사 갈 | 르 우 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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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므온 | 단 | 유 다 |

+————+—————–+———-

| 레 위 | 갓 | 베 냐 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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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갈 | 아 셀 | 시 므 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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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불론 | 납 달 리 | 잇 사 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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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셉 | 요 셉 | 스 불 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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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냐민 | 베 냐 민 | 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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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차이점에서 비롯된 본문의 특징은 다섯 가지이다. (1)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이 먼저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창 35:22-26;신 33:5-25) 본문에서는 유다 지파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이는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나신 것을 반영하고 있다(창 49:10;대상 5:2;히 7:13, 14, Johnson, Mounce, Morris). (2) 본문에서는 단 지파가 생략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단'(*)이 부주의로 ‘만'(*, man, ‘사람’)으로 기록되었거나(Spitta, Bleek) 혹은 우상 숭배로 인해서 고의적으로 제외되었거나(창 49:17;삿 18:18, 19, 30;왕상 12:29, 30, Clarke), 아니면 렘 8:16을 확대 해석하여 단 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는 랍비들의 해석과 연관되어 제외되었다고 한다(Weiss, Charles, Alford, Walvoord). (3)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동시에 등장하지 않고 본문에서 에브라임은 생략되고 대신 요셉이 삽입되어 있다. 이는 에브라임도 단 지파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로 인히서 생략되었고(호 4:17) 단 지파의 생략으로 12숫자를 맞추기 위해 요셉이 삽입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Johnson, Mounce). (4) 레위 지파의 삽입이다.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나뉘어 12지파에 들어가고 레위 지파가 12지파에서 빠져 제사장 지파로서 신분이 격상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에 본문에서는 레위 지파가 삽입되어 혈통적 제사장 지파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5) 모든 지파에 ‘중에 일만 이천’이 반복된다. 이는 12의 1,000배로 완전하고 큰 숫자임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동일하게 ‘…중에'(*, 에크)를 반복하여 인맞은 자들이 선택된 무리임을 암시해준다(Johnson).

엨 퓔레스 아세르 도데카 킬리아데스 에크 퓔레스 네프달림 도데카 킬리아데스 에크 퓔레스 마나쎄 도데카 킬리아데스

개역개정,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새번역,6 아셀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납달리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므낫세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우리말성경,6 아셀 지파에서 1만 2,000명, 납달리 지파에서 1만 2,000명, 므낫세 지파에서 1만 2,000명,

가톨릭성경,6 아세르 지파에서 만 이천 명 납탈리 지파에서 만 이천 명 므나쎄 지파에서 만 이천 명

영어NIV,6 from the tribe of Asher 12,000, from the tribe of Naphtali 12,000, from the tribe of Manasseh 12,000,

영어NASB,6 from the tribe of Asher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Naphtali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Manasseh twelve thousand,

영어MSG,6 12,000 from Asher, 12,000 from Naphtali, 12,000 from Manasseh,

영어NRSV,6 from the tribe of Asher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Naphtali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Manasseh twelve thousand,

헬라어신약Stephanos,6 εκ φυλης ασηρ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φυλης νεφθαλειμ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φυλης μανασση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라틴어Vulgate,6 ex tribu Aser duodecim milia ex tribu Nepthalim duodecim milia ex tribu Manasse duodecim milia

히브리어Modern,6 לשבט אשר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לשבט נפתלי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לשבט מנשה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에크 퓔레스 쉬메온 도데카 킬리아데스 에크 퓔레스 레위 도데카 킬리아데스 에크 퓔레스 이싸카르 도데카 킬리아데스

개역개정,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새번역,7 시므온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레위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잇사갈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우리말성경,7 시므온 지파에서 1만 2,000명, 레위 지파에서 1만 2,000명, 잇사갈 지파에서 1만 2,000명,

가톨릭성경,7 시메온 지파에서 만 이천 명 레위 지파에서 만 이천 명 이사카르 지파에서 만 이천 명

영어NIV,7 from the tribe of Simeon 12,000, from the tribe of Levi 12,000, from the tribe of Issachar 12,000,

영어NASB,7 from the tribe of Simeon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Levi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Issachar twelve thousand,

영어MSG,7 12,000 from Simeon, 12,000 from Levi, 12,000 from Issachar,

영어NRSV,7 from the tribe of Simeon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Levi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Issachar twelve thousand,

헬라어신약Stephanos,7 εκ φυλης συμεων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φυλης λευι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φυλης ισαχαρ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라틴어Vulgate,7 ex tribu Symeon duodecim milia ex tribu Levi duodecim milia ex tribu Issachar duodecim milia

히브리어Modern,7 לשבט שמעון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לשבט לוי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לשבט יששכר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에크 퓔레스 자불론 도데카 킬리아데스 에크 퓔레스 요세프 도데카 킬리아데스 에크 퓔레스 베니아민 도데카 킬리아데스 에스프라기스메노이

개역개정,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새번역,8 스불론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요셉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우리말성경,8 스불론 지파에서 1만 2,000명, 요셉 지파에서 1만 2,000명, 베냐민 지파에서 인 침을 받은 사람이 1만 2,000명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8 즈불룬 지파에서 만 이천 명 요셉 지파에서 만 이천 명이었고 벤야민 지파에서도 만 이천 명이 인장을 받았습니다.

영어NIV,8 from the tribe of Zebulun 12,000, from the tribe of Joseph 12,000, from the tribe of Benjamin 12,000.

영어NASB,8 from the tribe of Zebulun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Joseph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Benjamin, twelve thousand were sealed.

영어MSG,8 12,000 from Zebulun, 12,000 from Joseph, 12,000 sealed from Benjamin.

영어NRSV,8 from the tribe of Zebulun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Joseph twelve thousand, from the tribe of Benjamin twelve thousand sealed.

헬라어신약Stephanos,8 εκ φυλης ζαβουλων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φυλης ιωσηφ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φυλης βενιαμιν ιβ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라틴어Vulgate,8 ex tribu Zabulon duodecim milia ex tribu Ioseph duodecim milia ex tribu Beniamin duodecim milia signati

히브리어Modern,8 לשבט זבלון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לשבט יוסף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לשבט בנימן חתומים שנים עשר אלף׃

메타 타우타 에이돈 카이 이두 오클로스 폴뤼스 혼 아리드메사이 아우톤 우데이스 에뒤나토 에크 판토스 에드누스 카이 퓔론 카이 라온 카이 글로쏜 헤스토테스 에노피온 투 드로누 카이 에노피온 투 아르니우 페리베블레메누스 스톨라스 류카스 카이 포이니케스 엔 타이스 키르신 아우톤

개역개정,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새번역,9 그 뒤에 내가 보니, 아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흰 두루마기를 입고,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말성경,9 이 일 후에 내가 보았습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들을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가톨릭성경,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영어NIV,9 After this I looked and there before me was a great multitude that no one could count, from every nation, tribe, people and language, standing before the throne and in front of the Lamb. They were wearing white robes and were holding palm branches in their hands.

영어NASB,9 After these things I looked, and behold, a great multitude, which no one could count, from every nation and all tribes and peoples and tongues, standing before the throne and before the Lamb, clothed in white robes, and palm branches were in their hands;

영어MSG,9 I looked again. I saw a huge crowd, too huge to count. Everyone was there–all nations and tribes, all races and languages. And they were standing, dressed in white robes and waving palm branches, standing before the Throne and the Lamb

영어NRSV,9 After this I looked, and there was a great multitude that no one could count, from every nation, from all tribes and peoples and languages, standing before the throne and before the Lamb, robed in white, with palm branches in their hands.

헬라어신약Stephanos,9 μετα ταυτα ειδον και ιδου οχλος πολυς ον αριθμησαι αυτον ουδεις ηδυνατο εκ παντος εθνους και φυλων και λαων και γλωσσων εστωτες ενωπιον του θρονου και ενωπιον του αρνιου περιβεβλημενοι στολας λευκας και φοινικες εν ταις χερσι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9 post haec vidi turbam magnam quam dinumerare nemo poterat ex omnibus gentibus et tribubus et populis et linguis stantes ante thronum et in conspectu agni amicti stolas albas et palmae in manibus eorum

히브리어Modern,9 אחרי כן ראיתי והנה המון רב אשר לא יכל איש למנותו מכל הגוים והמשפחות והעמים והלשנות ויעמדו לפני הכסא ולפני השה מלבשים שמלות לבנות וכפות תמרים בידיהם׃

성 경: [계7:9]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흰 옷 입은 무리]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앞서 언급된 십사만 사천과 본절 하반절에서 언급되는 ‘셀 수 없는 무리’를 연결하는 표현이다(5:9 주석 참조). 이렇게 요한이 중복적 으로 표현한 것은 144,000이라는 숫자가 영적인 의미의 수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구원의 문이 모든 민족에게 열려져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Morris).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 본문이 누구를 의미하는가에 대하여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큰 무리’가 십 사만 사천이라는 수로 상징된 자들과 동일인이라고 해석한다(Beckwith, Morris, Eller). (2) 혹자는 십 사만 사천과 구별하여 십 사만 사천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본문은 큰 환난 가운데서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amp). (3) 혹자는 본문이 큰 환난 때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순교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Kiddle, Moffatt). 세 가지 견해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 ‘흰 옷’은 정결과 승리를 상징하는 옷으로(3:4 주석 참조)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 구속받았음을 나타낸다. ‘종려 가지’는 일반적으로 승리나 기쁨의 상징으로 사용된다(요 12:13, Trench, Vicent, Alford).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흰 옷을 입은 허다한 무리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속 하심에 대해 기쁨으로 찬양할 것이다.

카이 크라주신 포네 메갈레 레곤테스 헤 소테리아 토 데오 헤몬 토 카데메노 에피 토 드로노 카이 토 아르니오

개역개정,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새번역,10 그들은 큰 소리로, “구원은 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것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우리말성경,10 큰 소리로 외쳐 말했습니다. “구원은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속한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영어NIV,10 And they cried out in a loud voice: “Salvation belongs to our God, who sits on the throne, and to the Lamb.”

영어NASB,10 and they cry out with a loud voice, saying, “Salvation to our God who sits on the throne, and to the Lamb.”

영어MSG,10 and heartily singing: Salvation to our God on his Throne! Salvation to the Lamb!

영어NRSV,10 They cried out in a loud voice, saying, “Salvation belongs to our God who is seated on the throne, and to the Lamb!”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κραζοντες φωνη μεγαλη λεγοντες η σωτηρια τω καθημενω επι του θρονου του θεου ημων και τω αρνιω

라틴어Vulgate,10 et clamabant voce magna dicentes salus Deo nostro qui sedet super thronum et agno

히브리어Modern,10 ויקראו בקול גדול לאמר הישועה לאלהינו הישב על הכסא ולשה׃

성 경: [계7:10]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흰 옷 입은 무리]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 본문은 허다한 무리들의 찬양이가(9절). ‘구원하심’의 헬라어 ‘소테리아'(*)는 허다한 무리 자신들의 업적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어린양의 구속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을 가리킨다(Caird, Weymouth). 허다한 무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속하심에 대해 찬양을 성부와 어린양에게 돌린다(5:13;19:1).

카이 판테스 호이 앙겔로이 에이스테케이산 퀴클로 투 드로누 카이 톤 프레스뷔테론 카이 톤 테싸론 조온 카이 에페산 에노피온 투 드로누 에피 타 프로소파 아우톤 카이 프로세퀴네산 토 데오

개역개정,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새번역,11 모든 천사들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을 둘러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우리말성경,11 그때 모든 천사들이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 주위에 둘러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가톨릭성경,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영어NIV,11 All the angels were standing around the throne and around the elders and the four living creatures. They fell down on their faces before the throne and worshiped God,

영어NASB,11 And all the angels were standing around the throne and around the elders and the four living creatures; and they fell on their faces before the throne and worshiped God,

영어MSG,11 All who were standing around the Throne–Angels, Elders, Animals–fell on their faces before the Throne and worshiped God,

영어NRSV,11 And all the angels stood around the throne and around the elders and the four living creatures, and they fell on their faces before the throne and worshiped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1 και παντες οι αγγελοι εστηκεσαν κυκλω του θρονου και των πρεσβυτερων και των τεσσαρων ζωων και επεσον ενωπιον του θρονου επι προσωπον αυτων και προσεκυνησαν τω θεω

라틴어Vulgate,11 et omnes angeli stabant in circuitu throni et seniorum et quattuor animalium et ceciderunt in conspectu throni in facies suas et adoraverunt Deum

히브리어Modern,11 וכל המלאכים עמדו סביב לכסא וסביב לזקנים ולארבע החיות ויפלו על פניהם לפני הכסא וישתחוו לאלהים׃

성 경: [계7:11]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흰 옷 입은 무리]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 ‘주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클로'(*)는 문자적으로 ‘원형으로’라는 뜻으로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생물들을 옹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5:11 주석 참조).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 ‘엎드려 얼굴을 대고’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산…에피 타 프로소파 아우톤'(*)은 경건한 예배의 행위를 나타낸다(4:10;5:14;11:16;19:4, 10;22:8, Charles).

레곤테스 아멘 헤 율로기아 카이 헤 돜사 카이 헤 소피아 카이 헤 유카리스티아 카이 헤 티메 카이 헤 뒤나미스 카이 헤 이스퀴스 토 데오 헤몬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아멘

개역개정,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새번역,12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 하도록 있습니다. 아멘!” 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말성경,12 말했습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가톨릭성경,12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영어NIV,12 saying: “Amen! Praise and glory and wisdom and thanks and honor and power and strength be to our God for ever and ever. Amen!”

영어NASB,12 saying, “Amen, blessing and glory and wisdom and thanksgiving and honor and power and might, be to our God forever and ever. Amen.”

영어MSG,12 singing: Oh, Yes! The blessing and glory and wisdom and thanksgiving, The honor and power and strength, To our God forever and ever and ever! Oh, Yes!

영어NRSV,12 singing, “Amen! Blessing and glory and wisdom and thanksgiving and honor and power and might be to our God forever and ever! Amen.”

헬라어신약Stephanos,12 λεγοντες αμην η ευλογια και η δοξα και η σοφια και η ευχαριστια και η τιμη και η δυναμις και η ισχυς τω θεω ημων εις τους αιωνας των αιωνων αμην

라틴어Vulgate,12 dicentes amen benedictio et claritas et sapientia et gratiarum actio et honor et virtus et fortitudo Deo nostro in saecula saeculorum amen

히브리어Modern,12 ויאמרו אמן הברכה והכבוד והחכמה והתודה וההדר והכח והעז לאלהינו לעולמי עולמים אמן׃

성 경: [계7:12]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흰 옷 입은 무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 본문은 모든 천사가 구속된 자들의 찬양에 대해(10절) ‘아멘’으로 화답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으로 5:12절의 찬양과 대조를 이룬다. 5:12절의 찬양과 대조해보면 본문의 찬양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 5:12, 13의 찬미는 어린양에게 바쳐졌으나 본절은 하나님께 드려진다. (2) 찬양 내용 중에서 5:12의 ‘부’가 본절에서는 ‘감사’로 대치되어 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구속하신 것에 대한 것이다. (3) 본문에 ‘세세토록’이란 말이 삽입되어 이 모든 것이 영원한 것임을 강조한다. (4) 본문에는 두 번의 ‘아멘’이 사용된다. 처음의 ‘아멘’은 큰 무리의 찬송에 대한 응답이며 마지막의 ‘아멘’은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영광스런 예배의 모습을 암시한다(5:12-14, Morris, Mounce, Lohmeyer).

카이 아페크리데 헤이스 에크 톤 프레스뷔테론 레곤 모이 후토이 호이 페리베블레메노이 타스 스톨라스 타스 류카스 티네스 에이신 카이 포덴 엘돈

개역개정,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새번역,13 그 때에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 사람들은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말성경,13 그때 장로들 가운데 하나가 내게 물었습니다. “이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누구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가톨릭성경,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영어NIV,13 Then one of the elders asked me, “These in white robes–who are they, and where did they come from?”

영어NASB,13 And one of the elders answered, saying to me, “These who are clothed in the white robes, who are they, and from where have they come?”

영어MSG,13 Just then one of the Elders addressed me: “Who are these dressed in white robes, and where did they come from?”

영어NRSV,13 Then one of the elders addressed me, saying, “Who are these, robed in white, and where have they come from?”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απεκριθη εις εκ των πρεσβυτερων λεγων μοι ουτοι οι περιβεβλημενοι τας στολας τας λευκας τινες εισιν και ποθεν ηλθον

라틴어Vulgate,13 et respondit unus de senioribus dicens mihi hii qui amicti sunt stolis albis qui sunt et unde venerunt

히브리어Modern,13 ויען אחד מן הזקנים ויאמר אלי אלה המלבשים בגדי לבן מי המה ומאין באו׃

성 경: [계7:13]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흰 옷 입은 무리]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 ‘장로 중에 하나’는 본서 가운데 나타나는 교회를 대표하는 장로들이 아니라 어떤 천상적인 존재인 듯하다(4:4 주석 참조, Johnson). 한편 ‘응답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크리데'(*)는 ‘아포크리노마이'(*,’대답하다’)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응답한 사실을 나타낸다. 이는 예언서에서 흔히 등장하는 문답 형식으로(렘 1:11;겔 37:3;슥 4:2, 4, 5) 질문없이 스스로 해석하고 답하는 히브리어 중복성(Hebrew redundancy)을 나타낸다(Swete).

카이 에이레카 아우토 퀴리에 무 쉬 오이다스 카이 에이펜 모이 후토이 에이신 호이 에르코메노이 에크 테스 들맆세오스 테스 메갈레스 카이 에플뤼난 타스 스톨라스 아우톤 카이 엘류카난 아우타스 엔 토 하이마티 투 아르니우

개역개정,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새번역,14 내가 “장로님, 장로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하였습니다.

우리말성경,14 나는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내 주여, 당신이 아십니다.” 그때 그가 내게 말했습니다. “이들은 큰 환난으로부터 나오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의 옷을 씻어 희게 했습니다.

가톨릭성경,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영어NIV,14 I answered, “Sir, you know.” And he said, “These are they who have come out of the great tribulation; they have washed their robes and made them white in the blood of the Lamb.

영어NASB,14 And I said to him, “My lord, you know.” And he said to me, “These are the ones who come out of the great tribulation, and they have washed their robes and made them white in the blood of the Lamb.

영어MSG,14 Taken aback, I said, “O Sir, I have no idea–but you must know.” Then he told me, “These are those who come from the great tribulation, and they’ve washed their robes, scrubbed them clean in the blood of the Lamb.

영어NRSV,14 I said to him, “Sir, you are the one that knows.” Then he said to me, “These are they who have come out of the great ordeal; they have washed their robes and made them white in the blood of the Lamb.

헬라어신약Stephanos,14 και ειρηκα αυτω κυριε συ οιδας και ειπεν μοι ουτοι εισιν οι ερχομενοι εκ της θλιψεως της μεγαλης και επλυναν τας στολας αυτων και ελευκαναν στολας αυτων εν τω αιματι του αρνιου

라틴어Vulgate,14 et dixi illi domine mi tu scis et dixit mihi hii sunt qui veniunt de tribulatione magna et laverunt stolas suas et dealbaverunt eas in sanguine agni

히브리어Modern,14 ואמר אליו אדני אתה ידעת ויאמר אלי אלה הם הבאים מן הצרה הגדולה ויכבסו את שמלתם וילבינום בדם השה׃

성 경: [계7:14]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흰 옷 입은 무리]

내가 가로되.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카'(*)는 완료 능동태로 생생한 증언을 나타낸다(Swete).

내 주여. – 이는 천상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Vincent).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 ‘당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수'(*)는 강조적인 표현으로 ‘바로 당신’이란 의미이다. 이 말에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진지한 고백뿐 아니라 존경과 두려움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Plummer, Swete).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 ‘큰 환난’의 내용에 대해서는 몇몇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모든 시대의 성도가 겪는 보편적인 환난으로 해석한다(Morris, Alford, Greijdanus, Niles). (2) 혹자는 종말에 겪을 환난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3:10;단 12:1;막 13:19, Charles, Walvoord, Mounce).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큰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들리프세오스 테스 메갈레스'(*)에는 정관사 ‘테스'(*)가 사용되어 그것이 특정한 사건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린양의 피에.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하이마티투 아르니우'(*)는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구문으로 그들의 사죄 받음이 인간의 공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속죄피로 말미암은 것임을 시사한다(사 1:18;히 9:14;요일 1:7, Swete, Milligan). 한편 ‘씻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플뤼난'(*)과 ‘희게 하였느니라’의 헬라어 ‘엘류카난'(*)은 모두 부정 과거 시제로 단회적인 행위를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 사역이 단회적이면서도 그 효력은 영원함을 나타낸다. 허다한 무리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깨끗함을 입고 구속받은 자들이다.

디아 투토 에이신 에노피온 투 드로누 투 데우 카이 라트류우신 아우토 헤메라스 카이 뉰토스 엔 토 나오 아우투 카이 호 카데메노스 에피 투 드로누 스케노세이 엪 아우투스

개역개정,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새번역,15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그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에 앉으신 분이 그들을 덮는 장막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5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거하실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5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

영어NIV,15 Therefore, “they are before the throne of God and serve him day and night in his temple; and he who sits on the throne will spread his tent over them.

영어NASB,15 “For this reason, they are before the throne of God; and they serve Him day and night in His temple; and He who sits on the throne shall spread His tabernacle over them.

영어MSG,15 That’s why they’re standing before God’s Throne. They serve him day and night in his Temple. The One on the Throne will pitch his tent there for them:

영어NRSV,15 For this reason they are before the throne of God, and worship him day and night within his temple, and the one who is seated on the throne will shelter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5 δια τουτο εισιν ενωπιον του θρονου του θεου και λατρευουσιν αυτω ημερας και νυκτος εν τω ναω αυτου και ο καθημενος επι του θρονου σκηνωσει επ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15 ideo sunt ante thronum Dei et serviunt ei die ac nocte in templo eius et qui sedet in throno habitabit super illos

히브리어Modern,15 לכן הנם לפני כסא האלהים ומשרתים אותו בהיכלו יומם ולילה והישב על הכסא יתן משכנו עליהם׃

성 경: [계7:15]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흰 옷 입은 무리]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토'(*)는 문자적으로 ‘이것 때문에’라는 의미로, 본문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인한 결과임을 나타낸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 본문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자가 누리게 될 특권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함은 오직 어린양의 속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히 10:19).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 본문은 21:22에 ‘성전이 없다’는 말씀과 상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본절에서 17절까지는 21, 22장에 나오는 구속받은 자들과 연관된 것이기에(21:3, 4,6)본문의 성전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Johnson). 한편 ‘섬기며’의 헬라어 ‘라트류우신'(*)은 ‘봉사한다’는 의미를 가진 ‘라트류오'(*)에서 파생된 단어로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은 물론 ‘제사장들의 특별한 제사적인 예배’를 의미한다(마 4:10;히 8:5). 이것은 본문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제사장의 중보나 제물의 필요없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며 예배하며 섬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벧전 2:9). 그렇나 섬김과 예배는 ‘밤낮’없이 행해진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에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21:25;22:5). ‘밤낮’은 쉼이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나타낸다(20:10, Mounce).

구속받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지속적으로 그를 경배하고 섬기게 된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 ‘장막을 치시리니’ 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케노세이'(*)는 미래시상으로 이래에 함께 거하실 것을 나타낸다. 이는 광야에서 여러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출 13:21;대하 7:1-3). 즉 본문은 하나님께 구속 받은 자들과 함께 거하셔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약속의 성취를 나타낸다(겔 37:27;슥 2:10, Morris, Johnson, Mounce).

우 페이나수신 에티 우데 딮세수신 에티 우데 메 페세 엪 아우투스 호 헬리오스 우데 판 카우마

개역개정,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새번역,16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해나 그 밖에 어떤 열도 그들 위에 괴롭게 내려 쬐지 않을 것입니다. / ㉠사 49:10

우리말성경,16 그들이 다시는 굶거나 목마르지 않고 해나 그 어떤 열기도 그들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사49:10

가톨릭성경,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영어NIV,16 Never again will they hunger; never again will they thirst. The sun will not beat upon them, nor any scorching heat.

영어NASB,16 “They shall hunger no more, neither thirst anymore; neither shall the sun beat down on them, nor any heat;

영어MSG,16 no more hunger, no more thirst, no more scorching heat.

영어NRSV,16 They will hunger no more, and thirst no more; the sun will not strike them, nor any scorching heat;

헬라어신약Stephanos,16 ου πεινασουσιν ετι ουδε διψησουσιν ετι ουδε μη πεση επ αυτους ο ηλιος ουδε παν καυμα

라틴어Vulgate,16 non esurient neque sitient amplius neque cadet super illos sol neque ullus aestus

히브리어Modern,16 לא ירעבו עוד ולא יצמאו ולא יכם שמש ושרב׃

성 경: [계7:16]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흰 옷 입은 무리]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 본문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 귀환할 때의 이사야의 진술을 반영한 것으로(사 49:10) 구속 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한 축복을 나타낸다. ‘주림과 목마름’은 단순히 육체적 빈곤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갈급의 상태를 나타낸다. 구속 받은 자들은 그러한 주림과 목마름이 더이상 없는 완전히 충족된 상태를 누리게 될것이다(마 5;6;요 6:35).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 ‘아무 뜨거운 기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 카우마'(*)는 ‘불에 타다’라는 의미를 가진 ‘카이오'(*)에서 파생된 단어로 고통스러운 열기를 말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고통이나(Morris) 혹은 넷째 대접의 재앙을 가리킨다(16:9, Mounce). 한편 ‘상하지 아니할지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데 메 페세'(*)는 ‘떨어지다’의 의미를 지닌 ‘피프토'(*)의 부정관사 시상으로 강한 이중 부정이다. 이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지상에서와 같은 고통스러움이 결단코 없을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들이 전형적인 육체의 모든 고통에서 장차 해방될 것임을 시사한다(Mounce, Moffatt, Ford).

호티 토 아르니온 토 아나 메손 투 드로누 포이마네이 아우투스 카이 호데게세이 아우투스 에피 조에스 페가스 휘다톤 카이 엨살레잎세이 호 데오스 판 다크뤼온 에크 톤 옾달몬 아우톤

개역개정,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새번역,17 보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의 샘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 ㉡시 23:2; 사 49:10 ㉢사 25:8

우리말성경,17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돼 그들을 생명의 샘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시23:2;시49:10;사25:8

가톨릭성경,17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

영어NIV,17 For the Lamb at the center of the throne will be their shepherd; he will lead them to springs of living water. And God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영어NASB,17 for the Lamb in the center of the throne shall be their shepherd, and shall guide them to springs of the water of life; and God shall wipe every tear from their eyes. ”

영어MSG,17 The Lamb on the Throne will shepherd them, will lead them to spring waters of Life. And God will wipe every last tear from their eyes.”

영어NRSV,17 for the Lamb at the center of the throne will be their shepherd, and he will guide them to springs of the water of life, and God will wipe away every tear from their eyes.”

헬라어신약Stephanos,17 οτι το αρνιον το αναμεσον του θρονου ποιμανει αυτους και οδηγησει αυτους επι ζωσας πηγας υδατων και εξαλειψει ο θεος παν δακρυον απο των οφθαλμω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17 quoniam agnus qui in medio throni est reget illos et deducet eos ad vitae fontes aquarum et absterget Deus omnem lacrimam ex oculis eorum

히브리어Modern,17 כי השה אשר בתוך הכסא הוא ירעם ועל מבועי מים חיים ינהלם ומחה אליהם כל דמעה מעיניהם׃

성 경: [계7:17]

주제1: [환난에서 구원받은 자]

주제2: [흰 옷 입은 무리]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 ‘보좌 가운데 계신’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보좌와 이심 사 장로들과의 중간 위치를 가리키나 위치적인 의미보다는 그리스도의 ‘중보자 직임’을 상징한다. 한편 ‘저희의 목자가 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마네이 아우투스'(*)는 ‘보살피다’는 의미의 ‘포이마이노'(*)에서 파생된 미래 능동태로 문자적으로 ‘그들을 보살피실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중보적 사역을 실제로 행하실 것을 약속해 준다(요 21:16;행 20:28;벧전 5:2, Swete, Ford).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 ‘생명수 샘으로’의 헬라어 ‘에피 조에스 페가스 휘다톤'(*)은 어순상 ‘생명의'(*, 조에스)를 강조한다. 이는 다함이 없는 생명의 근원을 시사한다(21:6;22:1, 7;요 4:12, 14:7:38).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을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 본문은 사 25:8을 반영한다.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의 해당하는 헬라어 ‘여살레이프 세이'(*)는 문자적으로 ‘…으로부터 제거해 버리다’라는 의미의 미래 시상으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구속 받은 자들을 고통과 아픔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시사한다(21:4). 이것은 장차 구속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하며 절대적인 희락과 평강의 축복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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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 주석, 요한계시록 07장

====7:1

이 일 후에 – 이는 환상의 새로운 국면의 시작으로 본장이 여섯째 인의 재앙과 일 곱번째 인을 떼는(8:1) 그 사이에 일어나는 것임을 나타낸다.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 ‘네 천사’는 바람을 맏은 천사로서 이들은 자연계를 다스리는 천사들이다(Mounce), 한편 ‘땅 네 모퉁이’는 세상의 모든 곳에서 남은 자가 돌아올 것을 예언한 사 11:12의 ‘땅 사방에서’와 동일한 의미의 표현으로 온 세상을 가리킨다.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 ‘바람’은 파괴나 전쟁의 재앙을 상징한다(렘 49:36-38;51:1). 그러기에 ‘땅의 사방의 바람’은 종말에 온 세상에 임할 커다란 재앙을 암시한다(왕상 19:11; 욥 1:19;21:18; 시 1:4;14:18; 단 2:35;7:2). 한편 ‘붙잡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툰타스'(* )는 ‘단단히 붙잡다’는 의미를 가진 ‘크라테오'(* )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 계속해서 재앙을 행사치 못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Charles).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 ‘불지 못하게 하더라’ 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메 프네에 아네모스'(* )는 현재 능동태 가정법으로 ‘바람이 계속해서 불지 못하도록’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인치기까지 재난을 중지시킨 사실을 암시한다(2, 3절).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 ‘다른 천사’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로 해석하나(Walvoord, Ladd) 앞서 언급된 ‘네 천사’외에 또 다른 천사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Johnson, Mounce, Morris, 8:3 주석 참조). 본절에서 다른 천사의 역할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인을 쳐 보호 받도록 하는 것이다(3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묵시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이교의 죽음은 우상에 반하여 창조자의 살아 계심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다(4:9, 10;15:7; 마 16:16;26:63; 히 3:12). 요한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비록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을 친다 할지라도 그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시사한다. 한편 ‘인’의 헬라어 ‘스프라기다'(* )는 자신의 문서나 노예, 혹은 소유물 등에 소유권이나(엡 1:3), 보증(고전 1:22)을 나타내는 표시를 뜻한다. 이는 짐승의 표와 대조를 이루어(13:16)인을 맞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소유사 되며(14:1)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호나 안전을 보장받는 자임을 시사한다.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 ‘해 돋는 데로부터’의 헬라어 ‘아포아나톨레스 헬리우’ (* )는 문자적으로 ‘동쪽으로부터’를 의미한다. 인을 가진 다른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온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은 다석 가지이다. (1) 혹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 문에서 올라온다는 예언의 성취로 해석한다(겔 43:4, Swete). (2) 혹자는 메시야가 동방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ibylline 3:652, Erbes, Lohmeyer). (3) 혹자는 ‘동쪽’이 묵시 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종의 자세한 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Mounce). (4) 혹자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동쪽에서 별을 보며 박사들이 온 사실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마 2:1, Barclay, Morris). (5) 혹자는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주는 태양이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암시한다고 가리킨다(De Wette, Hengstenberg). 이러한 다양한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는 몇몇 해석이 있다. (1) 혹자는 ‘하나님의 종’들(1:1;2:20;19:2, 5;22:3, 6)과 ‘우리 하나님'(10, 12절;12:10;19:1, 5)을 합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engel). (2) 혹자는 하나님께 봉사함에 있어서 천사들과 비할 수 있는 존재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Robertson). 두 가지 견해 중 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장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인침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마에 ‘인침’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공개적으로 임할 마귀의 권세로 부터 하나님의 종들이 보호받는 것으로 해석한다(Charles, Clark). (2) 혹자는 이기는 자가 받게 될 흰 돌(2:17) 혹은 성전의 기둥으로 해석한다(Rist). (3) 혹자는 성령 혹은 초대교회 이후의 세례로 해석한다. 세 가지 견해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인’은 소유나 보호를 나타내는 것으로 (9:4;14:1;겔 9:1-7;딤후 2:19) 짐승의 미혹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 대상에서 벗어나 승리와 보호를 약속받는 것을 시사한다(13:7;16:2;20:4, Johnson).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 ‘해하지 말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아디케세테'(* )는 강한 부정 명령의 능동태 가정법으로 ‘해하기 시작하지 말아라’는 의미이다. 이는 인침을 받은 자는 짐승의 미혹에 기만당하지 않고 종말의 재앙에서 보호 받아 승리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7:4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 ‘인맞은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에스프라기스메논'(* )은 완료 수동태 분사로 더이상 변함이 없는 완료된 수를 요한이 들었음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중에서 – ‘이스라엘’에 대한 해석은 본서에서 가장 난해한 해석 중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스라엘을 문자적 의미로 취급하여 유대인 성도들로 해석한다(Bengel, Clarke, Walvoord). (2) 혹자는 ‘이스라엘’자르 문자적 의미가 아닌 영적 의미로 해석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 즉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De Wette, Ladd, Johnson, Moffatt, Charles, Plummer, Vincent, Kiddle, Ris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에서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로, 새 예루살렘 성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예수를 따를는 자를 참이스라엘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14:4;15:1ff. ;21:9-12). 더욱이 5-8절까지 언급된 12지파명도 구약성경에 나타난 12지파명과 다르다.

인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 ‘십 사만 사천’이 누구를 나타내는가에 대한 견해는 세가지이다. (1) 혹자는 순교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Kiddle, Caird). (2) 혹자는 ‘이스라엘’자르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십 사만 사천’도 문자적으로 인치심을 받고 보호함을 받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으로 해석한다(갈 6:16, Walvoord, Richardson). (3) 혹자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십 사만 사천을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완성된 교회로 해석한다(롬 2:28, 29;9:6, 7, Alford, Swete, Beckwith, Vincent). 이 세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한편 144,000에 대한 상징적 숫자 해석은 (3 * 4)** 2 * 10 ** 3 = 144,000이다. 3은 하나님의 수이며 4는 땅의 수로서 곱한 수가 완전수인 12이며, 이 12의 제곱과 충만수 10의 세제곱이 곱해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충만함을 의미한다(Greijdanus, Lohmeyer, Ladd, Johnson).

=====7:5,6,7,8

유다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일만 이천이라 – 요한은 인맞은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열거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이름과 순서와 내용은 문자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Ladd, Lohmeyer, Hendriksen). 왜냐하면 12지파의 순서가 창세기나 에스겔서와 다를 뿐만 아니라 기록된 방식이 독특하여 영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점에서 비롯된 본문의 특징은 다섯 가지이다. (1)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야곱의 장자인 르우벤이 먼저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창 35:22-26;신 33:5-25) 본문에서는 유다 지파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이는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나신 것을 반영하고 있다(창 49:10;대상 5:2;히 7:13, 14, Johnson, Mounce, Morris). (2) 본문에서는 단 지파가 생략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단'(* )이 부주의로 ‘만'(* , man, ‘사람’)으로 기록되었거나(Spitta, Bleek) 혹은 우상 숭배로 인해서 고의적으로 제외되었거나(창 49:17;삿 18:18, 19, 30;왕상 12:29, 30, Clarke), 아니면 렘 8:16을 확대 해석하여 단 지파에서 적그리스도가 나온다는 랍비들의 해석과 연관되어 제외되었다고 한다(Weiss, Charles, Alford, Walvoord). (3)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동시에 등장하지 않고 본문에서 에브라임은 생략되고 대신 요셉이 삽입되어 있다. 이는 에브라임도 단 지파와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로 인히서 생략되었고(호 4:17) 단 지파의 생략으로

12숫자를 맞추기 위해 욥셉이 삽입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Johnson, Mounce). (4) 레위 지파의 삽입이다. 요셉 지파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나뉘어 12지파에 들어가고 레위 지파가 12지파에서 빠져 제사장 지파로서 신분이 격상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에 본문에서는 레위 지파가 삽입되어 혈통적 제사장 지파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5) 모든 지파에 ‘중에 일만 이천’이 반복된다. 이는 12의 1,000배로 완전하고 큰 숫자임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동일하게 ‘…중에'(* , 에크)를 반복하여 인맞은 자들이 선택된 무리임을 암시해준다(Johnson).

=====7:9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앞서 언급된 십사만 사천과 본절 하반절에서 언급되는 ‘셀 수 없는 무리’를 연결하는 표현이다(5:9 주석 참조). 이렇게 요한이 중복적 으로 표현한 것은 144,000이라는 숫자가 영적인 의미의 수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구원의 문이 모든 민족에게 열려져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Morris).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 본문이 누구를 의미하는가에 대하여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큰 무리’가 십 사만 사천이라는 수로 상징된 자들과 동일인이라고 해석한다(Beckwith, Morris, Eller). (2) 혹자는 십 사만 사천과 구별하여 십 사만 사천은 유대인을 가리키고 본문은 큰 환난 가운데서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Lamp). (3) 혹자는 본문이 큰 환난 때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순교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Kiddle, Moffatt). 세 가지 견해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 ‘흰 옷’은 정결과 승리를 상징하는 옷으로(3:4 주석 참조)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 구속받았음을 나타낸다. ‘종려 가지’는 일반적으로 승리나 기쁨의 상징으로 사용된다(요 12:13, Trench, Vicent, Alford).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흰 옷을 입은 허다한 무리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속 하심에 대해 기쁨으로 찬양할 것이다.

=====7:10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 본문은 허다한 무리들의 찬양이가(9절). ‘구원하심’의 헬라어 ‘소테리아'(* )는 허다한 무리 자신들의 업적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어린양의 구속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을 가리킨다(Caird, Weymouth). 허다한 무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속하심에 대해 찬양을 성부와 어린양에게 돌린다(5:13;19:1).

=====7: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 ‘주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클로'(* )는 문자적으로 ‘원형으로’라는 뜻으로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생물들을 옹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5:11 주석 참조).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 ‘엎드려 얼굴을 대고’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산…에피 타 프로소파 아우톤'(* )은 경건한 예배의 행위를 나타낸다(4:10;5:14;11:16;19:4, 10;22:8, Charles).

=====7: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 본문은 모든 천사가 구속된 자들의 찬양에 대해(10절) ‘아멘’으로 화답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으로 5:12절의 찬양과 대조를 이룬다. 5:12절의 찬양과 대조해보면 본문의 찬양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 5:12, 13의 찬미는 어린양에게 바쳐졌으나 본절은 하나님께 드려진다. (2) 찬양 내용 중에서 5:12의 ‘부’가 본절에서는 ‘감사’로 대치되어 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것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구속하신 것에 대한 것이다. (3) 본문에 ‘세세토록’이란 말이 삽입되어 이 모든 것이 영원한 것임을 강조한다. (4) 본문에는 두 번의 ‘아멘’이 사용된다. 처음의 ‘아멘’은 큰 무리의 찬송에 대한 응답이며 마지막의 ‘아멘’은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영광스런 예배의 모습을 암시한다(5:12-14, Morris, Mounce, Lohmeyer).

=====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 ‘장로 중에 하나’는 본서 가운데 나타나는 교회를 대표하는 장로들이 아니라 어떤 천상적인 존재인 듯하다(4:4 주석 참조, Johnson). 한편 ‘응답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크리데'(* )는 ‘아포크리노마이'(* ,’대답하다’)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응답한 사실을 나타낸다. 이는 예언서에서 흔히 등장하는 문답 형식으로(렘 1:11;겔 37:3;슥 4:2, 4, 5) 질문없이 스스로 해석하고 답하는 히브리어 중복성(Hebrew redundancy)을 나타낸다(Swete).

=====7:14

내가 가로되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카'(* )는 완료 능동태로 생생한 증언을 나타낸다(Swete).

내 주여 – 이는 천상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Vincent).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 ‘당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수'(* )는 강조적인 표현으로 ‘바로 당신’이란 의미이다. 이 말에는 자신의 무지에 대한 진지한 고백뿐 아니라 존경과 두려움의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Plummer, Swete).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 ‘큰 환난’의 내용에 대해서는 몇몇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모든 시대의 성도가 겪는 보편적인 환난으로 해석한다(Morris, Alford, Greijdanus, Niles). (2) 혹자는 종말에 겪을 환난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3:10;단 12:1;막 13:19, Charles, Walvoord, Mounce).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큰 환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들리프세오스 테스 메갈레스'(* )에는 정관사 ‘테스'(* )가 사용되어 그것이 특정한 사건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어린양의 피에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 하이마티투 아르니우'(* )는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구문으로 그들의 사죄 받음이 인간의 공적에 의한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속죄피로 말미암은 것임을 시사한다(사 1:18;히 9:14;요일 1:7, Swete, Milligan). 한편 ‘씻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플뤼난'(* )과 ‘희게 하였느니라’의 헤라어 ‘엘류카난'(* )은 모두 부정 과거 시제로 단회적인 행위를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의 희생 사역이 단회적이면서도 그 효력은 영원함을 나타낸다. 허다한 무리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깨끗함을 입고 구속받은 자들이다.

=====7:15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토'(* )는 문자적으로 ‘이것 때문에’라는 의미로, 본문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인한 결과임을 나타낸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 본문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자가 누리게 될 특권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함은 오직 어린양의 속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히 10:19).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 본문은 21:22에 ‘성전이 없다’는 말씀과 상치되는 듯하다. 그러나 본절에서 17절까지는 21, 22장에 나오는 구속받은 자들과 연관된 것이기에(21:3, 4,6)본문의 성전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Johnson). 한편 ‘섬기며’의 헬라어 ‘라트류우신'(* )은 ‘봉사한다’는 의미를 가진 ‘라트류오'(* )에서 파생된 단어로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은 물론 ‘제사장들의 특별한 제사적인 예배’를 의미한다(마 4:10;히 8:5). 이것은 본문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제사장의 중보나 제물의 필요없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며 예배하며 섬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벧전 2:9). 그렇나 섬김과 예배는 ‘밤낮’없이 행해진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에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기 때문이다(21:25;22:5). ‘밤낮’은 쉼이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나타낸다(20:10, Mounce). 구속받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지속적으로 그를 경배하고 섬기게 된다.

보좌에 않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 ‘장막을 치시리니’ 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케노세이'(* )는 미래시상으로 이래에 함께 거하실 것을 나타낸다. 이는 광야에서 여러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출 13:21;대하 7:1-3). 즉 본문은 하나님께 구속 받은 자들과 함께 거하셔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약속의 성취를 나타낸다(겔 37:27;슥 2:10, Morris, Johnson, Mounce).

=====7: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 본문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벧론 포로 상태에서 귀환할 때의 이사야의 진술을 반영한 것으로(사 49:10) 구속 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한 축복을 나타낸다. ‘주림과 목마름’은 단순히 육체적 빈곤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갈급의 상태를 나타낸다. 구속 받은 자들은 그러한 주림과 목마름이 더이상 없는 완전히 충족된 상태를 누리게 될것이다(마 5;6;요 6:35).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 ‘아무 뜨거운 기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 카우마'(* )는 ‘불에 타다’라는 의미를 가진 ‘카이오'(* )에서 파생된 단어로 고통스러운 열기를 말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고통이나(Morris) 혹은 넷째 대접의 재앙을 가리킨다(16:9, Mounce). 한편 ‘상하지 아니할지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데 메 페세'(* )는 ‘떨어지다’의 의미를 지닌’피프토'(* )의 부정관사 시상으로 강한 이중 부정이다. 이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지상에서와 같은 고통스러움이 경단코 없을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성도들이 전형적인 육체의 모든 고통에서 장차 해방될 것임을 시사한다(Mounce, Moffatt, Ford).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 ‘보좌 가운데 계신’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보좌와 이심 사 장로들과의 중간 위치를 가리키나 위치적인 의미보다는 그리스도의 ‘중보자 직임’을 상징한다. 한편 ‘저희의 목자가 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마네이 아우투스'(* )는 ‘보살피다’는 의미의 ‘포이마이노'(* )에서 파생된 미래 능동태로 문자적으로 ‘그들을 보살피실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중보적 사역을 실제로 행하실 것을 약속해 준다(요 21:16;행 20:28;벧전 5:2, Swete, Ford).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 ‘생명수 샘으로’의 헬라어 ‘에피 조에스 페가스 휘다톤'(* )은 어순상 ‘생명의'(* , 조에스)를 강조한다. 이는 다함이 없는 생명의 근원을 시사한다(21:6;22:1, 7;요 4:12, 14:7:38).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을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 본문은 사 25:8을 반영한다.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의 해당하는 헬라어 ‘여살레이프 세이'(* )는 문자적으로 ‘…으로 부터 제거해 버리다’라는 의미의 미래 시상으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구속 받은 자들을 고통과 아픔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시사한다(21:4). 이것은 장차 구속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하며 절대적인 희락과 평강의 축복을 나타낸다.

삽입-안전한 하나님의 종들

요한계시록 제 7장의 내용만큼 많은 해석을 낳은 부분도 드물 것이다. 건전한 해석학적 입장을 고수하는 신실한 학자로부터 극딘격인 이단에까지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연결시켜 본다면 어느정도 입장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이 내용자체가 일곱인의 내용에 포함되 있지만 그 일곱개의 인의 내용에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의 삽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일곱 인의 어느 순서에 넣어서 해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물론 일곱인도 그 순서가 항상 차례대로가 아니라 겹쳐진 것을 보았다).

두번째 이 십임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 질문은 바로 심판의 날[여호와의 진노의 날]을 맞이하여 신판의 두려움에서 외치는 절규였다.

(계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사건이 임하는 여섯째 인 다음에는 8:l의 일곱째 인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무서운 진노의 날을 당하여 심판을 당하는 땅의 족속들이 피할 수 없는 진노 앞에서 “누가능히 서리요!”라고 하였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 망하고 마는 것인가? 그 진노를 능히 이기고 살 자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진다.

이제 그 사실에 대하여서 여러가지 해석들은 뒤로 미루고 성경구절을 살피면서 그 의미에 접근하여 보자.

1.인치심-언제?

이 삽입의 장면은 여섯째 인의 사건이 나타난 후에 보여진 장면이다. 그러나 이 말이 여섯째 인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순서는 단순히 여서째 인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에 그 이후에 나타난 것이다.

다시 이야기의 배경은 앞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가? 첫 부분에서부터 바로 그 시기를 보여준다.

(계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이 부분은 온통 묵시문학적인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 이 절의 표현은 땅의 사방의 바람이 불어서 땅(바다,각종 나무)에 불기 전에 일어난 사건임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 이 표상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6장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연결을 시켜보자.

“네 천사”라고 한 것은 다음의 땅의 네 바람과 연결이 되어 있기에 네 천사라고 기록이 된 듯하다.

“땅의 네 모퉁이”는 단순히 고대의 우주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온 땅에”라는 의미이다.

“땅의 사방의 바람”에서 바람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파괴의 수행자를 나타낸다. 다니엘7:2에서는 땅의 네 바람이 네 마리의 크고 무서운 짐승을 불러 온다. 예레미야 49:36에서는 사방 바람이 여호와의 맹렬한 분노를 열방에게 쏟는다고 한다.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직 쏟아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그 진노의 대상에서 각종 나무가 등장하는 것은 나무가 바람에 가장 예민하게 피해를 입기 때문에 등장한 표현으로 보이며, 그 나무를 사람의 상징으로 해석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물론 성경에서 나무가 사람을 상징하는 경우가 있지만 여기서는 그러한 문자적 근거를 밝히기란 어렵다. 사2:13,14:8,61:3,시l:3 참조).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본질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 진노의 바람은 땅에 부는 바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 분다. 땅의 의미는 6장에서 살핀대로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표현이며, 바다도 요한계시록에서 역시 동일한 의미로 등장을 한다. 그런데 아직 그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천사들이 그 바람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아직도 땅위에 진노의 바람이 불기 전에 어떤 일을 여기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6장에서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은 어디에 있는가?

본질적으로 땅에 혼란이 여러가지 일이 일어난 것은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즉 땅의 네 바람은 진노의 큰 날의 바람인 것이다. 그 진노의 큰 바람이 불기 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2절에서 그 내용에 대하여 설명한다.

(계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해 돋는 데로부터”-구약에서 동쪽은 메시야의 오시는 방향으로 제시되고 있다(사41:25,말3:20). 그러므로 여기의 천사가 오는 방향이 동쪽인 것은 메시야의 사역의 어떤 결과이거나 메시야 시대의 은혜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천사가”-이 천사에 대하여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그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에 관심을 모아야 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구약성경에서 인의 상징은 대제사장의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출28:26.39:30). 그렇게 함으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록하는 방법으로 소수을 나타내는 것임을 보여준다(사44:5). 그리고 그 인을 이마에 침은 에스겔9:4의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는 사실과 연결이 된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인을 치는 표상은 무엇인가? 6장의 질문과 연결하여 보면 진노의 큰 날을 피하는 표시이며, 그것이 우리가 해석한대로 주님 재림시에 악인에게 나타날 진노라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이기고 서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인은 분명히 소속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은 그 인의 주인에 의하여 보호를 받음을 나타낸다.

그러면 그 인은 누구의 인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라고 한다. 사시는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구약성경에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개입하실 때마다 등장하는 이름이다(수3:10,왕하 19:4,16). 그렇다면 인침을 받은 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소유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그 당시 인은 종 이나 자신의 소유의 가축에 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땅을 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외쳤다.

(계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그 인을 치는 사건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여섯째번의 인의 진노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진노의 그 심판의 날 이것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속한 자라는 증거로 인을 치시는 그 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 치시는 것일까? 이 문제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그것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에게 인치는 것이라면 도대체 어떤 사건일까? 이 문제는 누구에제 인을 치느냐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과 연결이 된다.

그 대상은 3,4-14절에서 다루어지지만 한가지 간단한 대답으로 우선 정의를 내리고 다시,언제 어떤 종류의 인인지를 설명하고 다시 대상을 상술하기로 한다.

3절의 정의에 의하면 인침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한다. 어느 누구에게 특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을 치는 것으로(4-12절에서 다시 다룬다). 그렇게 본다면 중요한문제는 우리도 틀림없이 그 인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나는 언제 그 인과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은 무엇으로 어떻게 그 인을 치실(혹은 치신)것인가? 나의 이마에 아무리 만져 보아도 만져지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그 대답은 너무나 분명하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인치심의 때가 언제라고 하는가? “그 안에서 믿어…..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한다. 가장 분명한 대답은 모든 신앙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이미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인은 쇠로 달군 불도장이 아니라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인치심을 받은 자는 진노의 문제에서 확실히 벗어난 것이다. 그 성령의 인치심으로 기업의 보증을 얻게 된 것이다(고후 l:22 ,엡4:30).

이에 대하여 디모데후서2:19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딤후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그 인치심을 받은 자들이요, 진노의 날을 이길 수 있는 자들이다(다음 항목에서 자세히 생각해 보자).

2.누가 인치심을 받는가?

이미 위에서 간단히 다루었지만 이제 다시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루어야만 한다. 그 문제는 3절에서 포괄적으로 말하고, 다시 4-14절을 통하여 길게 설명을 한다. 그 방법은 두가지로 나타난다.

①사도요한이 그 수를 들음

4-8절을 통하여 사도요한은 인맞은 사람의 수를 듣게 된다. 그 슷자는 이스라엘의 각 지파중에서 인맞은 자가 144,000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는 한 지파에 12,000명씩 12지파인데 그 지파의 이름은유다,르우벤,갓,아셀,납달리,므낫세,시므온,레위,잇사갈,스불론,요셉,베냐민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크게 그 내용은 두가지로 나뉘어진다.

한가지는 문자 그대로 여기의 144,000명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간주하는 해석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각지파의 구분이 신약시대에는 족재하지 않는다고 인정이 된다. lO지파는 북왕조가 멸망한 이후 구분이 사라져 포로지에서 흩어져 버렸고, 남왕조의 유다지파만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더우기 이러한 지파개념으로 사람의 수를 헤아리는 방법이나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원의 또 다른 개념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더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를 육체적인 이스라엘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두번째로 이 해석은 새 이스라엘인 교회라고 보는 입장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열두 보좌에 앉아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눅22:30)고 하셨고,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자가 참 유대인이며(롬2:29), 교회는 하나님의 이스라엘(갈6:16)이라고 기록을 하였다. 야고보는 신앙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약l:1)라고 하였고, 베드로는 신자들을 “택하신 즉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라는 이스라엘에게 사용된(출19:6) 용어를 통하여 불렀다(벧전2:9).

그러므로 사도요한이 들은 숫자는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3절에서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며, 동시에 9절 이하에서 직접 그 무리를 볼때에 각 나라에서 나온 큰 무리라는 말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지 않는가?

그러면 144,000이란 숫자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이것은 각지파의 12,OOO명의 숫자에 12지파를 곱한 것이다. 12,000이라는 숫자는 12 X l,000 이라는 것으로 구성이 되는데 이는 완전한 무리들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각 지파의 이름들에 대하여서는 여러가지 견해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지파들이 무려 18가지 다른 방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함이 좋을 것이다. 그 중에 몇 부분을 비교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요한계시록 창세기 에스겔

유다 르우벤 단

르우벤 시므온 아셀

갓 레위 납달리

아셀 유다 므낫세

납달리 스불론 에브라임

므낫세 잇사갈 르우벤

시므온 단 유다

레위 갓 베냐민

잇사갈 아셀 시므온

스불론 납달리 잇사갈

요셉 요셉 스불론

베냐민 베냐민 갓

장자가 아닌 유다가 먼저 기록이 된 것은 메시야가 유다지파의 사자이기에(5:5) 먼저 등장한 것 같고, 므낫세는 나오는데 에브라임 빠진은 아버지인 요셉이 들어가 있음으로 빠진 것이 아니고, 단지파가 빠것은 맨먼저 단지파가 기업을 포기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배교자의 모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삿18:30).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은 그저 12지파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지 어느 지파가 빠졌느냐에는 큰 관심이 없다.

②사도요한이 눈으로 저들을 봄

이제 장면은 들음에서 보는 것으로 9절 이하에서 나온다. 거기에 나타난 모습들이 앞에 나온 144,000명과 다른 무리인가,아니면 같은 무리인가에 대하여 여러가지 견해들이 있으나 앞의 내용이 6:17절에 대한 설명이라면 아직도 그것과 연결된 대답으로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요, 그렇다면 두 부류의 무리가 아니라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요한이 들은 144,000명은 누구인가?

(계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그들은 단순한 혈통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오히려 각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오는 보편적 존재들이며, 문자적인 144,000이 아니라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였다. 이는 분명히 구원받은 교회를 가리키는 내용이다. 그래서 144,000명을 14:4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계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저들의 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것이다(창15:5,32:12).

③장로의 설명을 들음

(계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계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위에서 나타난 모습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의 구절을 찾아 보지는 못하였으나 이제 대화체로 저들이 설명된다. 저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두가지 설명을 하고 있다. 하나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요(현재의 상태), 다른 하나는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하였다(과거의 경험)는 것이다.

여러가지 설명이 이 말씀으로 인하여 주어지나 그대로 보면 의미는 이러하다.

먼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은 사건은 과거의 일이다. 성도들이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함에 대한 상징은 시내산에서 여호와를 맞이하기 위하여 옷을 깨끗히 함에서부터 나온다(출19:l0). 그런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현재의 상태는 어떠한가? 바로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여기의 환난이 관사가 있다고 독특한 어떤 환난(속칭 7년 대환난개념 같은)이 아니다. l:9에서도 일반적인 환난에 대해서도 관사가 붙어있다. 그러므로 여기의 환난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안에서 당하게 되는 환난을 가리킨다(행14:22,마5:10-12,요6:33). 본 구절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온갖 고난과 시험들을 겪는 성도들을 끝까지 지켜 주셔서 승리의 영광의 길에 이르도록 하신다는 사실이다. 결코 주님은 아버지께서 지신에계 주신 자를 한 사람이라도 잃어 버리지 않으시는 것이다(요6:39).

결국 인침을 받은 자는 어느 한 시대의 어떤 독특한 사건을 위한 특별한 어떤 사람을 위한 조치라기 보다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의 백성 전부에 대한 표현이며, 그 인침은 성령의 인치심이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실한 보호를 보증한다.

3.인치심의 결과는?

1]진노를 이기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섬

(계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이는 바로 6:17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다. 저들은 진노를 넉넉히 이기고 어린양 앞에 서 있다. 그리고 흰옷을 입고 여려가지를 들고 있다. 분명히 진노의 큰 날을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다.

이제 여기서 다시 하늘의 동심원에서 바라보던(4,5장) 찬양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 이제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찬양이 나온다.

(계7: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근본적인 내용은 구원에 대한 감사이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구원의 위대성(인치심의 의미)이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하는 것이다. 어느 누가 진노를 이기고 참된 승리자의 구원을 줄 수 있는가? 오로지 하나님과 어린양이시다.

*찬송가 204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이 찬양에 대한 천사들의 화답이 나온다.

(계7: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7: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

*여기서 장로들이 구원받은 성도들과 구별되어 있음을 주의하라!

천사들이 성도들의 구원의 찬송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찬양의 내용은 5장의 찬양부분을 참조하라.

2]인치심 받은 자들이 누리는 결과(삶)

15절 말씀부터 시작하여 놀라운 결과들이 나온다. 이 영화로운 모습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하여서 여러가지 해석들이 있다. 대개 이 부분이 21장에서 반복이 되기에 앞으로 영광스러운 상태 묘사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고, 인의 사건을 병행법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보는 사람은 이 부분이 부활을 기다리는 중간기의 영혼의 상태라고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지금도 적용을 시킬 수 있는 내용들임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의 본질적인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중에 영원히 거하게 되는 사건이 확실히 결정된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내용은 본문에서 세가지 정도로 묶어 볼 수가 있다.

①즐거운 봉사의 삶

(계7: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 낮 하나님을 섬기매…..

우리가 흔히 주 안에서 누리는 안식에 대하여 생각을 하다보면 은퇴생활이나 무위도식하는 생활로 착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은 이제는 온전히 그분이 기뻐하시는 봉사를 하면서 사는 생활이다. 이제 그가 있는 곳이 어디이든지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 앞이요, 바로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다. 이제 그는 밤낮(쉬지 않고 중단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인 것이다.

②영원한 안전

(계7:15) ……….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계7: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신다고 약속하고 있다(겔37:27,슥2:10). 하나님께서 그의 임재로 그들을 보호하시는 것이다. 장막을 치시는 상징은 광야에서 성막(레26:), 구름기둥과 불기둥(출13:21-22),임재의 영광(출40:34,대하7:l-3)등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싸주고 보호하심을 보여준다(사4:5,6).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과 저 하늘나라 중에서 어느 곳이 더 안전한가? 그 대답은 똑 같다. 단지 이 세상이 더 고통이 있고,그곳은 더 행복한 상태일는지는 모르나 더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히 안전한 상태에 이미 거하고 있다(시91:l,5,6,요l0:29.30).

③완전한 만족의 삶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우리의 삶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삶이며(사49:l0),눈물을 씻겨주시는(사25:8) 완전히 만족한 삶이다. 이는 단순히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상태가 고난이지만 내적인 성령안에서 누리는 그 평안과 만족은 영원하다.

요한격시록 제 7장을 통하여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이기는 자를 보았다. 그들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죄에서 해방되었고(칭의-14하), 현재 환난 가운데 살지만 거룩을 지키며,확실한 영화로운 삶을 얻은 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우리로 감사와 찬양이 울려나오게 하지 않는가?

요한계시록 제7장 주석

요한계시록 제7장 주석이

한국설교연구원(www.kip.or.kr)

웹사이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제7장은 여섯째 인(印)과 일곱째 인(印) 사이에 끼워있는 삽입장(揷入章)이다. 여섯째 인은 제6장에서 끝나고 일곱째 인은 제8장에서 시작한다.

(계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계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계 6: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계 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계 6: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계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요한계시록 제6장의 마지막 질문『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에 대한 대답(對答)이 제7장이다.

아무도 그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심판(審判)에서 건짐을 받는다. 그들이 곧 인(印) 침을 받은『십사만 사천』,『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이다(계 7:4, 9).

그들은『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하나님의 보좌(寶座) 앞과 어린 양 앞에『서서』찬양을 드린다(계 7:9).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계 7:10)

(계 7: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수많은 재난(災難)과 고난(苦難)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성도(聖徒)들을『거룩하게』만들어내신다. 이것이 이 땅의 불완전(不完全)한 삶을 사는 성도들의 소망(所望)이며 찬양(讚揚)이다.

(계 7: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계 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계 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계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계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본문 제1절)

『땅의 사방(四方)의 바람』은 이 땅에 불어 닥칠 심판(審判)과 재앙(災殃)이다.

*『이 일 후에』는 제6장의『여섯째 인(印)의 환상 후에』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환상들을 시간적인 배열 순서로 읽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땅 네 모퉁이에 서서『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서 있는 천사(天使)들은『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곧 그 심판(審判)의 재앙(災殃)을 실행(實行)하는 자들이다(본문 제2절). 이들이 제6장의『말 탄 자』들이다.

(슥 6: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슥 6:2)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슥 6:3)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슥 6: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슥 6: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 이 부분의 자세한 해석(解釋)은 스가랴서『설교를 위한 묵상과 주석』을 참고하라.

(계 6: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계 6: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 6: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계 6: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계 6:5)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계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계 6:7)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계 6: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死亡)이니 음부(陰府)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權勢)를 얻어 검(劍)과 흉년(凶年)과 사망(死亡)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본문 제1절)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본문 제3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이마에 인(印)을 치기까지 이 재앙(災殃)을 잠시 유보(留保)하라고 명하신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본문 제2절)

『해 돋는 데』곧『동쪽』은 하나님의 영광(榮光)과 구원(救援)을 가리키는 방향이다.

(수 1: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東方)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겔 11:22) 그 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였더니

(겔 11:23)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

(겔 11:24) 주의 영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영의 환상 중에 데리고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더니 내가 본 환상이 나를 떠나 올라간지라

(겔 11:25) 내가 사로잡힌 자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을 말하니라

(겔 43: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겔 43: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겔 43: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겔 43: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겔 43: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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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설교연구원은 오직『십자가의 신학(神學)』,『십자가의 복음(福音)』만을 선포하고 전하겠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요한계시록 7장 주석 강해설교]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무리(계 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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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무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을 상징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이 인을 쳐 주십니다.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무리(계 7:1-17)

1-8절, 인 맞은 자의 수 14만 4천

[1절]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 . . .

요한은 말한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이 말씀은 시간 순서대로가 아니고 환난 시대에 대한 계시 중간에 삽입된 위로의 말씀이다. 땅 네 모퉁이, 땅의 사방의 바람 등은 온 세상을 가리키는 일상적 표현이다. 바람은 환난을 가리킨다. 네 천사가 땅 사방의 바람을 잡고 있다는 것은 성도가 감당할 만한 것 이상의 환난을 하나님께서 통제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24:21-22,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절]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환난은 중지될 것이다. 인을 친다는 것은 확인과 확증의 표시이다. 중요한 문서들에는 확인의 도장을 찍는다. 하나님의 인은 인 맞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확인하는 것이다. 즉 구원의 보장이다. 이것은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소유로 인치셨으므로 우리를 끝까지 지키실 것이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로마서 8:35, 38, 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4-8절]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 . . .

요한은 또 말한다.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만 4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1만 2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갓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1만 2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1만 2천이라.”

이스라엘 12지파 중 단 지파가 빠졌고 그 대신 레위 지파가 들어 있다. 또 에브라임 지파 대신 요셉 지파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각 지파의 인 맞은 14만 4천은 14만 4천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고, 구속받은 모든 성도의 완전 충만한 수를 상징한다고 본다. 12는 3과 4를 곱한 수로서 완전한 수요를, 1,000은 충만한 수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12x12x1,000은 완전 충만한 수를 상징할 만하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14만 4천을 세상에서 구속받은 모든 성도의 상징으로 볼 만한 근거는, ① 본문이 일반적인 이스라엘 12지파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며, ② 요한계시록 9:4의 황충 재앙에서 그 재앙이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자들에게만 임하는데, 거기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며, 또 ③ 요한계시록 14:3에 보면, 14만 4천은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이라고 불리우기 때문이다.

구속받은 성도들을 이스라엘 지파들에 비유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자들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이라고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약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이다.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6: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9-17절, 흰옷 입은 큰 무리

[9-10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 . . .

요한은 말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흰옷 입은 큰 무리는 앞에서 말한 14만 4천과 동일한 무리라고 본다. 그들은 대환난 전에 인침을 받았고 대환난을 통과하는 자들이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라는 말은 교회의 세계성을 말한다. 하나님의 교회는 온 세계에 하나이며 그 구성원들은 온 세계에 속한다.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다는 말은 구원받은 수가 충만함을 말하며, 이것이 14만 4천명으로 상징되었다고 본다. 흰옷은 역시 성결과 의를 가리키며, 종려가지는 승리와 기쁨을 상징할 것이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대환난을 무사히 통과하여 승리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힘찬 찬송이 있다. 어떤 이들은 구원이 사람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처럼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가르친다(시 3:8; 롬 9:16, 18).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회개할 수도 믿음을 가질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주시고 깨달음을 주셔야만 회개하고 주를 믿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셔야 회개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요 6:37, 44).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은 결국 하나님께 달려 있다. 하나님은 구주이시다. 그는 구원의 길을 지시하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의 능력의 오른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11-12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 . . .

요한은 말한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서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천사들은 성도들의 찬송에 화답하였다. 그들은 구원이 참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일임을 노래한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나 같은 죄인을 그의 기이한 방식으로 불러주셨고 나의 죽었던 영혼을 그의 능력으로 살리셨고 나의 믿음을 지키고 거룩의 열매를 맺도록 나를 항상 보존해 주신다.

[13-14절]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 . . .

요한은 또 말한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 환난을 통과하여 나오는 흰옷 입은 성도들에 대한 환상은 대환난을 직면한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환난을 통과할 성도의 무기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뿐이다(요일 5:4-5).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믿음으로 죄를 이기고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알지 못하는 자는 환난에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종교적 형식은 소유했으나 참 종교의 실질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알곡이 아니고 쭉정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속죄신앙을 가진 자마다 죄와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15-17절]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 . . .

요한은 또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대환난을 통과한 승리한 성도들은 천상에서 완전한 평안을 누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위에 장막을 치셔서 더 이상 주림이나 목마름이 없이 공급하실 것이며 더위로 인한 해가 없도록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며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실 것이다.

본장의 중요한 진리는 구속받은 성도들이 대환난을 통과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인치심이 있기 때문에 잘 감당하고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환난을 통과해야 할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어린양의 피에 우리의 옷을 빨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세상의 환난과 시험을 잘 이겨 나가야 한다.

[신약 히브리어 성경 마태복음] 간음에 관한 예수님의 새로운 법(마 5: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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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사만 사천 명의 정체

제7과, 십사만 사천 명의 정체

시작하는 이야기

한 소년이 걷다가 땅바닥에 동전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년은 급히 그것을 줍고는 몹시도 기뻐하였다. “이건 내 것이다.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 소년은 재미가 나서 그때부터 땅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 뒤로 소년은 어디를 가든 머리를 숙인 채 눈을 크게 뜨고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들을 찾으며 걷게 되었다. 소년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땅의 것에 있었다. 그렇게 평생 동안 땅만 보고 걸어서 드디어 1페니 동전 262개, 5센트 동전 48개, 10센트 은화 19개, 25센트 동전 16개, 50센트 은화 2개 그리고 1달러 지폐 두 장까지 총 13달러 92센트를 땅에서 주웠다.

그러나 그는 땅만 보고 살다가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말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무지개, 가을 서리에 붉게 물든 나뭇잎들, 푸른 하늘과 그곳을 지나는 새하얀 구름들, 빛나는 태양, 사람들의 미소. 무엇보다도 그는 영원하고도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쳤다. 특별히 이 마지막 세상에서 땅만 보고 살면 무서운 일밖에 없다. 눈을 우러러 하늘의 영원한 보좌를 바라보고 살자.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이다.

* 제7장을 시작하며…

제7장에서는 다시 하늘의 광경이 나타난다.

제6장은 여섯째 인 시대에 일어날 사건으로 끝났고 일곱째 인은 8장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제7장은 그 사이에 삽입된 것이다. 이것은 요한 계시록의 독특한 문장 스타일이다.

무서운 대쟁투의 장면들이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요한계시록은 자주 하늘을 열어 하늘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것은 세상의 역사가 아무리 포학하고 성도들에게 힘든 것일지라도 그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결국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시켜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대쟁투의 무서운 계시에 놀란 우리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함일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은 마지막 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을 144,000 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144,000명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그들은 실제 수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수인지, 144,000 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같은 무리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들인지도 우리들의 흥미를 돋운다.

> 네 천사

1. 여섯째 인으로 일어난 사건 후에 요한이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계 7:1).

여기서 땅의 사방은 온 세상을 말하며 예언 해석에서 바람은 나라들 사이에 일어나는 전쟁이나 투쟁을 의미하는 것으로(렘 25:31; 단7:2), 바람을 붙잡는다는 것은 전 세계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제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바람을 붙잡고 있는 천사는 과연 누구인가? 때로는 천사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나타나 하나님의 명령을 수 행하기도 하지만(창 18:2; 단 10:13),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14장의 공중을 나는 세 천사나 18장의 “다른 천사”는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어떤 강력한 복음 전파의 운동이나 하나님의 지상 백성들의 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람을 잡고 있는 천사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을 맞을 때까지 지상에서 악의 세력을 저지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들 혹은 복음 전파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람이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재난을 억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은혜의 시기이다. 그러나 이 바람을 놓는 순간 마침내 네 천사가 놓이고 사단의 악한 계획들과 “인간의 감정의 거센 바람이 저지되는 것이 그칠 때, 각종 투쟁의 요소들이 솟구쳐나올 것이다. 온 세계는 옛날 예루살렘을 휩쓸었던 것보다 더 무서운 파멸에 싸일 것이다”(각시대의 대쟁투, 614). 바람이 땅에나 바다에 분다는 것은 그 재앙의 범위가 전 세계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나무에 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성경 해석에서 수목은 하나님의 백성을 표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 된다.

2. 다른 천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라 말하였는가?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2~3).

이 절에서는 바람을 붙들고 있는 네 천사 외에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난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는 권세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파송된 천사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치는 일을 인간에게 맡기시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천사가 온 방향이 해 돋는 곳이라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 나라에는 이 성경절을 근거로 자기가 한국에 태어난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20여 명이 넘는다. 그들에 의하면 해 돋는 곳은 한국이며 자기가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라는 것이다. 해 돋는 곳이 과연 한국인가? 성경에서 해 돋는 곳이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어떤 특수한 장소를 의미하지 않고, 그냥 해가 솟아오르는 동쪽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다(민 2:3, 3:38; 신 4:41; 수1:15, 12:1, 19:27; 시 50:1; 사 41:25, 45:6; 말 1:11).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쓰이는 것이다. 침례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기를“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추었다고 하였다(눅 1:78~79). 동편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상징이며 하나님의 보좌의 상징이기도 하다(마 24:27). .

그러므로 인치는 천사가 해 돋는 곳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동편으로부터 왔다는 말이든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천사가 동편에서만 올 필요는 없으므로, 인치는 천사들은 하늘의 중대한 사명을 띠고 그리스도께로부터 파견을 받았거나 혹은 동쪽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생각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천사로 해석하는 방법이 성경적이다. 다른 천사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땅의 멸망을 지연시키고 있는 네 천사에게 인치는 사업이 마칠 때까지 전 세계적인 재앙을 붙들고 있으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먼 옛날부터 인은 오늘날의 도장이나 서명처럼 많이 사용했다. 인은 소유주를 나타냈고, 문서의 작성자를 입증하는 것이었으며, 상자나 궤나 무덤 등에 사용하여 다른 사람이 함부로 열어보거나 훼손할 수 없도록 하였다. 옛날 왕들의 인은 그 안에 이름, 통치권, 통치 구역 등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하 나님의 이름과 통치권, 통치 구역들이 명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인은 어디에 나와 있을까?

하나님의 인, 즉 그의 권위의 표는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에 나와 있다. 네 번째 계명에는 여호와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이름이며 영토는 하늘과 땅과 바다, 즉 우주 전체이고, 만물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다스릴 권리가 있음이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겔 20;12, 20) 삼았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의 소유라는 하나님 의 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안식일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단은 사람들이 안식일에 대하여 오해하고 거룩히 지킬 수 없도록 전력을 기울여 노력해 왔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안식일과 주일 제도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고 십계명에까지 포함시켜 거룩히 지킬 것을 명하셨지만 오늘날 안식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소수에 불과한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라 하겠다.

> 십사만 사천 명의 신원

3. 인맞은 자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계 7:4~8).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의 수는 십사만 사천 명인데 열두 지파 중에서 각각 일만 이천 명씩 인을 맞았다고 되어있다. 인을 받을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의 수인지 혹은 상징수인지는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먼저 십사만 사천 명이 문자적으로 실제의 수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의하면 십사만 사천은 특별한 무리들이다. 그들은 살아서 갖가지 재앙을 다 견딘 사람들이며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계 14:4)이다. 이 사람들은 그들밖에 알 수 없는 노래가 있으며 하늘에서 특별한 계급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십사만 사천 명을 실제적 수라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로, 구원받을 자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구원의 성격에 어긋나는 일이다. 성경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지 그 수를 제한하신 일이 없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하나님 편에서 수를 제한하실 이유가 없다. 만일 각 지파에서 정확히 12,000명만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면 구원이 너무나 기계적이 되고 숫자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둘째로, 십사만 사천 명이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현실성이 없다. 12지파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각 지파에서 12,000명씩의 순수한 혈통이 남아 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셋째로, 십사만 사천 명이 만일 실제 수라면 요한계시록 7장의 많은 부분을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해석해야 하며 실제로 이마에 인을 받는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요한계시록은 상징의 책이다.

넷째로,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적 수라고 믿으면 현재 살아 있는 지구의 인구에 비해 그 수가 너무나 적기 때문에 그 제한된 무리 속에 들어가야 된다는 강박 관념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 수라고 보는 개인이나 그룹은 십사만 사천이란 수를 상당히 제한적이고 폐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십사만 사천 명을 특별히 부활한 무리인 하늘 반열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기타 기성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십사만 사천을 강조하면서 자기들의 모임에 들어와야 구원이 있고 십사만 사천 무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섯째로,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적으로 그렇게 제한된 수이며 특별한 무리라면 하늘에는 십사만 사천으로서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하나의 계급이 형성될 것이다.

반면에 십사만 사천을 상징적인 수라고 해석할 수 있는 증거는 많다. 우선 요한계시록 자체가 상징으로 풀어야 할 상징과 상징적 숫자로 가득 찬 책이다. 요한계시록 7장의 이스라엘 각 지파가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인 지상의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거기에서 나온 144,000이란 숫자도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144,000을 (3×4)2×103으로 보고 있다.

즉 3은 삼위 일체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수이며 4는 동서남북 4방위에 근거한 땅과 우주의 수인데 이 두 수를 곱한 12는 성경에서 완전수이다. 따라서 12의 제곱인 144는 최상의 완전수를 의미하며 거기에 충만을 나타내는 10의 세제곱을 곱하여 144,000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은 충만하고 완전한 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만일 십사만 사천 명을 상징적인 수라고 보면 우리가 처음에 제기했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즉 영적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성도들로부터 각각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완전하고 충만한 수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셀 수 없는 무리

4. 요한이 본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누구인가?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10).

요한은 보좌 앞에 서 있는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승리와 구원의 표상인 종려가지를 들고 있었으며 큰 소리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송을 올리고 있었다.

이 큰 무리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십사만 사천 명과 같은 무리인가 아니면 다른 무리인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논쟁이 있어왔지만 성경을 근거로 몇 가지를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바로 직전에 “십사만 사천”이라고 들은 “셀 수 있는 ”인맞은 무리를 바로 다음 장면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말한다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십사만 사천 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서로 다른 무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십사만 사천 명”은 재림 직전에 살아서 하나님의 인을 맞고 재림을 맞이하는 상징적인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고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십사만 사천 명”을 포함하여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체적인 무리를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십사만 사천 명”이 실제의 수냐 혹은 상징이냐 또는 “십사만 사천 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서로 같으냐 다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십사만 사천 명”의 아름다운 품성을 닮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확실히 알 수 없는 “십사만 사천”같은 문제로 자기의 해석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5. 누가 그 노래에 화답했으며 그 노래의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계 7:11~12).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보좌 앞에서 부르는 장엄한 찬송에 모든 천사들도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찬송한다. 찬송은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끝난다.

> 흰 옷을 입은 큰 무리

6. 흰 옷 입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3~14).

요한은 흰 옷을 입은 무수한 무리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 장로 중의 하나가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요한에게 확실히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다. “흰 옷 입은 자”들에 대한 설명은 두 가지다.

첫째,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왔다.

둘째로, 그들은 그들의 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서 희게 한 사람들이다. 큰 환난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흰 옷을 입은 무리들을 십사만 사천과 같은 사람들로 생각한다면 십사만 사천이 살아서 구원을 얻을 사람들이니만큼, 이 환난은 다니엘이 말한 바 재림 직전에 있을 “개국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단 12:1)이나 마지막 7재앙(계 15장~16장) 같은 극심한 환난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흰 옷을 입은 무수한 무리를 “창세로부터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로 생각하면 이 환난도 각 시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했던 환난을 말할 것이다. 이 죄악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환난이었으며 때로는 목숨을 바쳐야 되는 핍박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하였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흰 옷이란 성경에서 의로움과 순결의 상징이며 승리의 상징이다.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린양의 피로 씻는다는 표현은 적절한 것이다.

7. 그들은 하늘에서 어떻게 사는가?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 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5~17).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섬길 특권을 누린다. 그들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가 그들을 그렇게 높여 주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하여 장막을 치시고 그들을 한낮의 뜨거움과 목마름으로부터 구한다. 저희는 다시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고 뜨거운 것들이 그들을 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굶주림과 갈증과 뜨거운 태양 때문에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영원히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생명수 샘가로 그들을 인도하신다. 슬픔과 눈물은 영원히 끝난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 흘러 다함이 없는 강은 수정같이 맑고, 그 가에 있는 나무들은 구속받은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된 길 위에 그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넓은 평원이 아름다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나님의 산들은 높은 봉우리들을 뻗고 있다. 이 평화로운 평원에서, 이 생명 강가에서, 오랫동안 순례자요 방랑자로 살아온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그들이 거할 집을 발견한다”(각시대의 대쟁투, 675).

[요한계시록 7장 설교문] “구원 받은 큰 무리”(계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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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은 요한계시록 7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구원받은 큰 무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받은 큰 무리”(계7:9-17)

♣명제: 구원의 인친 백성들이 큰 무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목적: 나는 주님의 보혈로 인침 받아 큰 무리에 들어갔는가?

사도 요한은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의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선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구원의 인침 받는 지파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구원은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도 없고 구원받을 지파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사도 요한은 이 일 후에 내가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 일 후는 십사만사천 명이 구원의 인을 받은 직후입니다. 이 큰 무리들이 나온 곳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와 인침 받은 백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온 세계 각 나라의 백성들과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큰 무리가 입고 있는 옷은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흰 옷을 입은 것은 죄가 씻겨져서 깨끗하게 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악들이 용서함을 받고 예수님이 대신 죄 값을 치른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큰 무리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종려 가지입니다.

히브리어로 종려가지는 תמר(타마르 8558)입니다. 종려나무, 대추야자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었던 것은 십자가에 혹독하게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학대당하시고 나 때문에 비참하고 천하게 되셔서 모든 피를 흘리신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있습니다. 종려가지는 죄악을 끊어버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게 되는 것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주님이 들어오신 것은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과 비참함과 혹독한 학대를 받기 위해서 들어온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기뻐했다는 것은 나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가 나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종려나무를 통해서 주님의 고난을 깨닫게 되고 주님의 구원이 흘러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나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된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았다면 나는 죄악 가운데 늘 고민하며 고통스럽게 살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계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구원받은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쳐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든 구원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되시는 주님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7:11-12)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서 있다가’는 ίστημι(히스테미 2476 동사, 직설법, 과거완료, 능동태, 복수, 3인칭) 서다, 세우다, 멈추다, 무게를 달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과거완료, 능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이미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함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듯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완료는 천사들이 이미 과거보다 더 이전에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능동태는 천사들이 직접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돌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이 땅에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천사들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린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가 아멘입니다. αμην(아멘 281) 진실로, 그러하도다, 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손길이 없이는 절대 살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께 아멘으로 고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는 찬송입니다. ευλογια(율로기아 2129) 찬양, 축복, 복이라는 뜻입니다. 찬송은 주님을 좋게 이야기하며 칭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복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송할 때 영혼 충만한 은혜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광입니다. δοξα(독사 1391) 광채, 영화, 명성이라는 뜻입니다. 영광은 생각하다, 주관하다, 라는 어근에서 온 말입니다. 영광은 예수님의 명성과 영화와 빛을 생각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고 나타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는 감사입니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존귀입니다. τιμη(티메 5092) 값, 가치, 영예, 존경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존경하며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곱째는 권능입니다. δυναμις(뒤나미스 1411) 힘, 세력, 능력, 역량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권능과 힘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덟째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원초적인 힘과 능력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이길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힘과 권능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서 엎드려 얼굴을 대고 경배했습니다. 영원토록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찬송했던 것입니다.

(계 7:13-14)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장로 중에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흰 옷 입은 무리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나는 알지 못하고 당신이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장로는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당한 환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렘 30:7)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엄청난 환난을 당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환난에서 하나님께서 구해주셨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도 마지막 때에 환난의 때가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큰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장로가 말하는 구원받은 큰 무리들도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고난과 죽음을 당했습니다.

(계 7:15-16)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주님을 위해 순교당한 영혼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습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에서 밤과 낮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제사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섬기매’ λατρευω(라트류오 3000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 3인칭) 섬기다, 봉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현재, 능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형을 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항상 현재로서 지금 당장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많은 섬김이 있어도 현재 우상을 섬기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현재의 신앙과 섬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능동은 항상 주님을 섬길 때 수동적인 자세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섬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현재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장막을 쳐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장막을 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거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혜택은 무엇입니까? 주리지 않는 은혜를 주십니다. 영원히 주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혼의 굶주림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마르지 않게 해 주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영적 갈증을 해소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이 상하지 못하게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복으로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예수님 때문에 고민하고 고생하고 괴롭힘 당한 자들은 어린양되시는 주님이 목자가 되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목자가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화염검으로 막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생명수 샘으로 생명의 열매를 먹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양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목자는 양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양이 목마를 때에 물가로 인도하고 굶주릴 때에 초장으로 인도하는 것이 목자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의 목자가 되사 구원의 은혜를 주셨고 영적으로 굶주리지 않게 말씀의 꼴을 주셨고 갈증 나지 않도록 생명의 물로 채워주신 분입니다.

이런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 때문에 고난당한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끝까지 나를 떠나지 않고 지키시며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백성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항상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에게 주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의 일원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경배를 드리는데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 예배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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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7장 헬라어 설교] “종려나무 가지 흔드는 144000명”(계 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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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7장 헬라어 설교 중에서 종려나무 가지 흔드는 144000명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을 십사만 사천 명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일만 이천 명씩 선택하여 도장을 찍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은 성령 하나님께서 도장을 찍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한 신부는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가 씻김 받고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피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 명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무리는 어린양이 인도하는 데로 가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이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주님이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주님만 의지하면서 주님과 항상 동행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종려나무 가지 흔드는 144000명”(계 7:9-17)

사도 요한은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의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선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구원의 인침 받는 지파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구원은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도 없고 구원받을 지파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9절 메타 타우타 에디돈 카이 이두 오클로스 폴뤼스 혼 아리드메사이 아우톤 우데이스 에뒤나토 에크 판토스 에드누스 카이 퓔론 카이 라온 카이 글롯손 헤스토테스 엔오피온 투 드로누 카이 에노피온 투 아르니우 페리베블레메노이 스톨라스 류카스 카이 포이니케스 엔 타이스 케르신 아우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사도 요한은 이 일 후에 내가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 일 후는 십사만 사천 명이 구원의 인을 받은 직후입니다. 이 큰 무리들이 나온 곳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와 인침 받은 백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온 세계 각 나라의 백성들과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큰 무리가 입고 있는 옷은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흰 옷을 입은 것은 죄가 씻겨져서 깨끗하게 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악들이 용서함을 받고 예수님이 대신 죄 값을 치른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큰 무리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종려 가지입니다.

히브리어로 종려가지는 (타마르 8558)입니다. 종려나무, 대추야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어근은 מרר(마라르 4843)입니다. 흘러나오다, 혹독하다, 슬프다, 학대하다, 비참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었던 것은 십자가에 혹독하게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학대당하시고 나 때문에 비참하고 천하게 되셔서 모든 피를 흘리신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 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있습니다. 종려가지는 죄악을 끊어버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게 되는 것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13절 엘라본 타 바이아 톤 포이니콘 카이 엑셀돈 에이스 휘판테신 아우토 카이 이크라존 호산나 율로게메노스 호 엘코메노스 엔 오노마티 퀴리우 호 바실류스 투 이스라엘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주님이 들어오신 것은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과 비참함과 혹독한 학대를 받기 위해서 들어오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기뻐했다는 것은 나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가 나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종려나무를 통해서 주님의 고난을 깨닫게 되고 주님의 구원이 흘러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나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된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았다면 나는 죄악 가운데 늘 고민하며 고통스럽게 살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호산나 찬송했다고 했는데 율로게오 2127 동사입니다. 문법은 동사 분사 완료 수동태 주격 남성 단수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와 예수님을 찬송합니다. 분사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맞이하면서 찬송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완료 시제는 이 찬송은 오직 주님께만 바치는 찬송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이 주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주님께만 영광의 찬송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수동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을 찬송한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호산나 찬송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율법주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교회에서 호산나 예수님을 찬송하는 사람은 창세전에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10절 토 카데메노 에피 투 드로누 투 데우 헤몬 카이 토 토 카데메노 에피 투 드로누 투 데우 헤몬 카이 토 아르니오

계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구원받은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쳐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든 구원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되시는 주님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구원받은 백성들은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아계시는데 문법이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에 계속해서 앉아 계심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주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11절 카이 판테스 호이 앙겔로이 헤스테케산 퀴클로 투 드로누 카이 톤 프레스뷔테론 카이 톤 텟사론 조온 카이 에페손 에노피온 투 드로누 에피 프로소폰 아우톤 카이 프로세퀴네산 토 데오

12절 레곤테스 아멘 헤 율로기아 카이 헤 독사 카이 헤 소피아 카이 헤 유카리스티아 카이 헤 티메 카이 헤 뒤나미스 카이 헤 이스퀴스 토 데오 헤몬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 아멘

계 7:11-12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습니다. ‘서 있다가’라는 단어는 (히스테미 2476 VILAP3 동사 직설법 과거완료 능동태 복수 3인칭) 서다, 세우다, 멈추다, 무게를 달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과거완료, 능동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이미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함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듯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완료는 천사들이 이미 과거보다 더 이전에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능동태는 천사들이 직접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돌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이 땅에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천사들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린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가 아멘입니다. (아멘 281) 진실로, 그러하도다, 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손길이 없이는 절대 살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께 아멘으로 고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는 찬송입니다. (율로기아 2129) 찬양, 축복, 복이라는 뜻입니다. 찬송은 주님을 좋게 이야기하며 칭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찬송은 복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찬송할 때 영혼 충만한 은혜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광입니다. (독사 1391) 광채, 영화, 명성이라는 뜻입니다. 영광은 생각하다, 주관하다, 라는 어근에서 온 말입니다. 영광은 예수님의 명성과 영화와 빛을 생각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고 나타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는 감사입니다.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존귀입니다. (티메 5092) 값, 가치, 영예, 존경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존경하며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곱째는 권능입니다. (뒤나미스 1411) 힘, 세력, 능력, 역량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권능과 힘이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덟째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원초적인 힘과 능력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이길 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힘과 권능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서 엎드려 얼굴을 대고 경배했습니다. 영원토록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찬송했습니다.

13절 카이 아페크리데 헤이스 에크 톤 프레스뷔테론 레곤 모이 후토이 호이 페리베블레메노이 타스 스톨라스 타스 류카스 티네스 에이신 카이 포덴 엘돈

14절 카이 에이레카 아우토 퀴리에 쉬 오이다스 카이 에이펜 모이 후토이 에이신 호이 엘코메노이 에크 테스 들립세오스 테스 메갈레스 카이 에플뤼난 타스 스톨라스 아우톤 카이 에류카난 스톨라스 아우톤 엔 토 하이마티 투 아르니우

계 7:13-14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장로 중에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흰 옷 입은 무리들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나는 알지 못하고 당신이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장로는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당한 환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큰 환난에서 나왔고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된 사람입니다. 희게 되었다고 했는데 류카이노 3021 동사입니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복수 3인칭입니다. 직설법은 구원받은 백성은 실제로 예수님의 피에 옷을 씻어서 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음을 말합니다. 과거 시제는 요한계시록은 앞으로 일어날 일인데 미래 시제가 아닌 과거 시제를 사용했다는 것은 선택받은 백성은 이렇게 주님의 피에 옷을 빨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원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7절 호이 키 가돌 하욤 하후 메아인 카모후 베에트 차라 히 레야아코브 우미메나 이바셰아

렘 30:7 슬프다 그 날이여 그와 같이 엄청난 날이 없으리라 그 날은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 그러나 그가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엄청난 환난을 당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환난에서 하나님께서 구해주셨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도 마지막 때에 환난의 때가 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큰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장로가 말하는 구원받은 큰 무리들도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된 자들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고난과 죽음을 당했습니다. 구원을 얻는데 야샤 3467 동사입니다. 문법은 동사 니팔(수동태)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한 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 주권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의지나 힘으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음을 말합니다. 우리도 율법의 의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15절 디아 투토 에이신 엔오피온 투 드로누 투 데우 카이 라트류우신 아우토 헤메라스 카이 뉘크토스 엔 토 나오 아우투 카이 호 카데메노스 에피 투 드로누 스케노세이 에프 아우투스

16절 우 페이나수신 에티 우데 딥세수신 에티 우데 메 페세 에프 아우투스 호 헬리오스 우데 판 카우마

계 7:15-16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주님을 위해 순교당한 영혼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습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에서 밤과 낮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제사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선택된 사람들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섬기매’라는 단어는 (라트류오 3000 VIPAP3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 3인칭) 섬기다, 봉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현재, 능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현재형을 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항상 현재로서 지금 당장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많은 섬김이 있어도 현재 우상을 섬기고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현재의 신앙과 섬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능동은 항상 주님을 섬길 때 수동적인 자세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현재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장막을 쳐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장막을 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거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혜택은 무엇입니까? 주리지 않는 은혜를 주십니다. 영원히 주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혼의 굶주림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마르지 않게 해 주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영적 갈증을 해소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뜨거운 태양이 상하지 못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복으로 함께 해주십니다.

17절 호티 토 아르니온 토 아나메손 투 드로누 포이마네이 아우투스 카이 호데게세이 아우투스 에피 조사스 페가스 휘다톤 카이 엑살레입세이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예수님 때문에 고민하고 고생하고 괴롭힘 당한 자들은 어린양 되시는 주님이 목자가 되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목자가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화염검으로 막으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생명수 샘으로 생명의 열매를 먹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양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목자는 양을 구해주는 것입니다. 양이 목마를 때에 물가로 인도하고 굶주릴 때에 초장으로 인도하는 것이 목자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의 목자가 되사 구원의 은혜를 주셨고 영적으로 굶주리지 않게 말씀의 꼴을 주셨고 갈증 나지 않도록 생명의 물로 채워주신 분입니다.

이런 목자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 때문에 고난당한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끝까지 나를 떠나지 않고 지키시며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백성으로 인침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항상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에게 주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에서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의 일원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경배를 드리는데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 예배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헬라어 설교말씀] “교회를 핍박하는 붉은 용 사탄”(계 12:1-6)

[창세기 히브리어 주일 설교문] “아담 족보 셋과 에노스”(창 4: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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