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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52절 | 누가복음 5강 송태근 목사 \”예수님의 성장\” 본문 – 누가복음 2:40-52 / 성경공부는 Cbs성서학당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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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강 송태근 목사 \”예수님의 성장\” 본문 – 누가복음 2: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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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는 CBS성서학당(CBSBible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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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

누가복음 2. … 제 2 장 …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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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누가복음 2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마리아는 이후에도 언급되지만 요셉에 대한 그 어떤 기록도 찾을 수 없다. 52절 예수께서는 신체적으로도 성장을 계속하셨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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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 (눅 2:40~52) – 유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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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40-52절. (40절)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41절)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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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서 예수님은 함께 나사렛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고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 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점점 자라고 하나님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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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누가복음 2장 52절

  • Author: CBS성서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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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2. 1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SegjtALrVs

누가복음 2

예수의 나심(마 1:18-25)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목자들이 예수 탄생 소식을 듣다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아기 예수의 정결예식 22 ㄱ)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ㄴ)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ㄷ)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2장39절~52절(성전과 말씀을 향한 소년 예수의 열정)

유월절에 성전을 방문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가지신 지혜와 하나님과 예수님의 밀접(密接)한 관계(關係)를 강조하고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그 길고 긴 삼십 년 동안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간의 구주로서 자신의 소명을 위하여 기다리며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음을 봅니다. 그분의 삶에 모험과 용기 그리고 정열은 칭찬의 가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극히 훌륭한 감정들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솔로몬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 모리아 궁전보다 더 고귀한 성전을 세우실 때는, 망치나 도끼 혹은 쇠로 된 연장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종려나무가 소리 없이 그 몸체를 키우듯이 일군(一群)의 연장이나 무거운 도끼 소리가 전혀 울리지 않았음을 기억합니다.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39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40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41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42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43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44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45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46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47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49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50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51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52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계시를 받은 성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모습에 대한 기록을 생략한 이유를 묵상합니다.

그분은 모든 어린이들의 본이 될 만큼 거룩하고 순결하며 또한 아름다운 생각과 감정들을 품고 계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우리가 알지 못하게 하셨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조용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인격을 형성해 가시는 그리스도!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의 자람과 생활은 어떠한지 돌아보게 하시고,

어린이의 잠재력이 갖는 혜택과 권능을 감지하고 이 시절을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데 선용(善用)되도록 하옵소서.

이 시간에도 주님의 임하심을 바라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 순종의 세대, 헌신의 세대가 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G. D. Boardman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 (눅 2:40~52)

주제 :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

본문 : 누가복음 2장 40~52절

설교자 : 조정의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

2장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성장기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5가지 항목을 차례로 기술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성장까지의 다섯 항목을 세례 요한의 그것과 서로 비교 대조하며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섯 항목은 ‘탄생’, ‘주위 사람들의 반응’, ‘할례를 받고 이름을 예언된 대로 지은 것’, ‘예언의 찬송’, 그리고 ‘성장기’입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1:80)라고 기록했던 누가는, 예수님에 대해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2:40)라고 기록합니다. 세례 요한에 대한 기록에서 추가된 것이 바로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입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동일하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라갔는데, 특별히 예수님은 지혜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는 성령의 은사를 말할 때 ‘은사’와 같은 단어입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예수님과 함께 했다는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41-51절에서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얼마나 충만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례 요한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일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에 대해 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아이를 키우면서 아마도 ‘이 아이가 메시야가 맞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더디게 자라나는 모습에 그런 의구심을 가졌을 것도 같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이 말씀이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은 30살 이후 공생애 기간부터 메시야였지 그 전에는 아니었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님의 유년기에 대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많은 이단들이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눅 3:22에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들어 그 순간에 인간이었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어릴 때는 그저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또 이와는 반대로 외경에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흙으로 새를 만들어 날렸고, 손가락으로 나귀와 양을 가리키면 그 짐승들이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또 흙으로 장난을 치다가 방해한 친구를 저주하며 죽게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예수님이 죄가 없었다고 말합니다(히 4:15; 벧전 2:22 고후 5:21). 또 그분께 지혜가 충만했다는 것도 성경의 일반적인 가르침입니다(막 6:2).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은 공생애 전 어린 시절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과연 아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야의 임무도 알고 있었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러한 임무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본문에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41).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명절입니다(출 23:17; 34:22-23; 민 16:16). 로마 전역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 중 남자들이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굳이 가족이 다 함께 갈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한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부모는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던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친척들과 가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140-150킬로의 여정이었습니다. 당시는 강도들이 많아 여럿이 함께 이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42-43).

유대인들은 13살부터 성인으로 인정하는데 당시 예수님의 나이는 12살이니 그 이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절기의 관례를 따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유월절 이후에는 7일 동안 무교병을 먹는 절기가 있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합쳐서 유월절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은 이 긴 기간을 머물 장소를 먼저 구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짐을 풀고 머물 장소를 구한 뒤 희생 제사를 드릴 제물을 구하러 다닐 것입니다.

유월절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 있던 애굽에서 탈출할 때 하나님이 그곳에 내리신 몇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과 관련된 것입니다. 마지막 재앙은 모든 장자가 죽는 재앙이었는데 희생 제물의 피가 문에 발라진 집은 심판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유월절=Passover), 그 집 안에서 백성들은 희생제물로 잡은 양과 무교병, 그리고 쓴 나물을 먹었습니다. 쓴 나물은 쓰디 쓴 노예생활을 기억하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행사는 신약시대까지 내려져왔습니다. 모든 남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희생제물을 잡고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 양과 무교병, 쓴 나물을 먹고 4잔의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이후에 무교절이 이어져 7일 간 무교병을 먹고 첫째 날과 마지막 날에 성회로 모여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민 28:19~23). 예수님의 부모는 이 모든 관례에 따라 모든 절기를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부모가 신실한 이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43).

그런데 예수님은 함께 떠나지 않고 예루살렘이 머무셨습니다. 예수님이 아주 어린 아이였다면 부모의 부주의로 아이를 잃어버렸겠지만 이 때 예수님은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남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남으셨을까요?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43-44).

당시 행렬은 여자와 아이를 앞세우고 남자는 뒤에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와중에 친척들 중에 있거나, 부모가 따로 움직이니 서로에게 있으려니 하여 예수님을 놓쳤던 것 같습니다. 4-5일 여정 중 하루를 간 뒤에 예수님이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친척 중에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46).

만일 예수님이 일반적인 아이였다면 어떤 모습으로 있었을까요? 울고 있었을까요? 가축들을 관찰하고 있었을까요? 넓은 광장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을까요? 똑똑한 아이라서 성전에서 가르치는 선생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47).

당시의 수업방법은 질의응답이 많았습니다. 선생이 중앙에 앉고 학생들이 둘러앉아서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하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가운데 계셨고 많은 이스라엘의 선생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아이가 하버드 대학에 있는데 그곳의 세계적인 교수들이 그 아이를 둘러싸고 그 아이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놀라고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교수들은 웬만해서는 그렇게 놀라지 않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아마도 모세의 율법이나 메시아에 대한 것, 즉 유대인의 스승들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것들에 대해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지혜가 얼마나 충만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놀랍다’라는 표현은 ‘물러나다’, ‘정신을 잃다’, ‘이성을 잃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그 정도로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산상수훈을 나누시는데, 그 지혜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마 7:28-29). 예수님은 열두 살의 나이에 유대인의 스승들 앞에서 놀라운 지혜와 권능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아이 예수님은 메시야로서의 임무를 성취할 능력이 있으실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권능이 충만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48).

사흘을 찾아헤맨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참 야속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49). 마리아가 말한 “아버지”는 요셉을 가리키고, 예수님이 말한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개인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말씀하십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가리키거나,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주신 분으로 말하곤 하는데, 여기서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로서의 ‘아버지’를 말하고 있습니다(요 1:14).

공생애 이후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제자들, 백부장과 여러 백성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 되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여러 번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하셨고, 그로 인해 죽임을 당할 위기를 여러 차례 겪으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볼 때, 12살 소년이던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곧 아버지의 권세 아래 복종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시작되어 이스라엘 역사 내내 그림자로 보여진 희생양. 그것이 가리키는 메시야가 자신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깨달음은 그 어떤 지혜 있는 자들도 월등히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을까요? 물론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부모는 소년 예수에게 유월절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을 것입니다. 희생제물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고 그 피가 제단에 뿌려졌을 때 오래전 하나님께서 우리를 노예생활에서 구원해주시고 자유를 주셨다는 것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성전에 남아서 하나님이 주신 임무에 대해 생각했을 것입니다. 죽임 당한 희생양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주님은 훗날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보내시면서 내 피와 살로 새언약을 맺는다고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어린 예수님이 부모에게 했던 말이 너무 무례하지는 않았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셨던 말이 그렇게 무례한 말은 아닌 것은 51절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51).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셨고 그 임무도 아셨으며 능력도 가지고 계셨지만, 때가 이르기까지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 ‘순종하며 받드셨다’는 이 표현은 참 놀랍습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중요한 본이 됩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 도착하셔서 남은 17년의 삶을 평범하게 살아가셨습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예수님의 성장기에 대한 기록입니다. 가브리엘과 사가랴, 엘리사벳, 시므온, 안나를 통해 우리는 메시야가 어떤 분인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큰자이며 구원자이심을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전후로 이런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 자신의 입술에서 나온 증언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하나님께 임무를 받으셨음을, 그리고 그 임무를 성취할 지혜와 권능을 지니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열두 살의 나이에 말입니다.

여러분은 삶에서 많은 지혜가 필요하실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삶에 필요한 지에 대한 지혜를 구할 것입니다. 이미 열두 살의 나이에 모든 지혜에 충만하셨던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가 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 여러분의 영적인 눈이 떠져서 여러분 안에 있는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의 충만함이 여러분에게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그 지혜의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아직 하나님의 지혜에 굴복하지 않으신 분은 이제 그분께 나오십시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라고 했던 베드로의 고백처럼 주님께 나오십시오. 예수님 외에는 진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지혜 앞에 나오시고 그것을 여러분의 지혜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에게 지혜를 부으셨습니다. 열두 살 예수님의 지혜는 선생들을 경이롭게 할 정도로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라가며 더욱 지혜가 커지고 충만해지셨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52).

이제 우리가 만날 예수님은 더욱 커지고 충만해진 지혜와 권능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어지는 누가복음 공부를 통해 우리는 여러 사건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이분이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 누가복음 2장 41절-52절 매일성경묵상 새벽기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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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예수님은, 부모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율법 학자들과 하나님 말씀에 대해 토론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말씀에 충실하였으며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오늘 매일성경묵상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이신 삶의 모범과 그를 닮아야 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말씀묵상입니다.

말씀묵상 찬송 : 새찬송가 387장, 멀리 멀리 갔더니

말씀묵상 성경 : 누가복음 2:41-52

말씀묵상 설교 : 예수님을 닮은 사람

닮아가는 사람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보면, 서로 간에 비슷한 부분들이 보이게 됩니다. 부부도 그러하며 부모와 자식들도 닮아갑니다. 심지어 혈연적으로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직장 동료들도 닮아갑니다.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를 닮아가며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가야만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까지도 주님을 닮아가야만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면서 동시에 우리가 닮고 따라가야만 할 우리의 삶의 푯대가 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닮아가야만 할까요?

말씀을 잘 아는 사람

먼저, 예수님과 같이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12살이 되던 해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부모들과 함께 올라가셨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율법 학자들과 이야기를 하시며 질문도 하시고 대답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율법과 함께 살아온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깁니다.

비록 어린 나이셨지만, 예수님은 성경을 깊이 알고 계셨기에 율법학자들과 대화를 나누실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사역을 감당하실 때, 예수님은 율법 말씀을 자주 인용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잘 먹고 잘 사는 방법도 잘 알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복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성전이 내 아버지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아버지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예수님을 두고 왔던 요셉과 마리아는, 성전으로 다시 올라가 예수님을 찾았을 때,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에 계시다고 대답합니다. 성전이 곧 하나님의 집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입니다. 내 욕심대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며 지키고 계심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를 받은 것처럼 용서하라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용서하며 거룩하게 살아갈 준비가 되셨습니까?

순종하는 겸손한 사람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사렛으로 돌아오신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하나님과 근본적으로 동등하신 예수님은, 피조물인 육신의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함부로 행하지 않으시고, 요셉과 마리아의 말에 순종하심으로 이 땅에서의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 가셨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어른이면서도 나보다도 부족해 보이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는 연장자이신 어르신들을 존중하며 공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더 많이 아는 것 같아도, 겸손히 순종하고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많이 배웠다 할지라도, 어른을 공경하며 순종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갈 것입니다. 만나는 이들 앞에서 겸손한 언행을 함으로써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결단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푯대이며, 우리의 모범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완전히 닮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닮아 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모습을 닮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삶을 닮으며 겸손히 순종하는 삶을 닮아야만 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을 겸손히 닮아 감으로써,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귀한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 주시고 구원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 오늘 나도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겸손하게 살아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셔서 날마다 주님을 더욱 닮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합심기도제목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믿음 가운데 성장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를 붙드시고, 기도로써 어려움들을 이겨내게 하소서.

묵상 및 말씀 요약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는 묵상과설교 말씀입니다. 열두살 되던 해 유월절에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를 따라 예루살램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보니, 예수님은 율법 학자들과 성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그 지식의 갚이가 학자들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왜 여기 있느냐는 부모의 물음에,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나이까?라는 놀라운 대답을 하십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모님께 겸손히 순종하는 삶을 사셨는데, 지혜|와 키가 아름답게 자라셨다고 본문은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모범으로 삼아 예수님 닮은 사람으로 살아가야할 것을 매일성경묵상 후에 새벽기도설교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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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규의 온새기&월새기

누가복음 2장 40-52절

(40절)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41절)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절)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절)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절)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절)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절)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절)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점점 사랑스러워지는 사람 (누가복음 2장 40-52절)

(알림) 온새기 월요일말씀과 홈페이지 주일설교의 차이

매주 월요일은 전날의 주일설교를 일부 발췌해서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로 보내는 날입니다.

오늘은 어제 주일설교의 약 60%를 발췌해서 보냅니다.

주일설교 100% 원문을 보기를 원하면 본 홈페이지 ‘주일설교’ 란에서 보시면 됩니다

어느 날, 성 빈체시오 수도사에게 한 여성이 물었습니다. “수도사님! 밤낮 남편과 싸우는데 어떻게 해야 잘 살까요?” 그때 수도사가 교회 뒤 우물물을 성수(聖水)라고 주면서 말했습니다. “성도님!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면 그 성수를 한 모금 마신 후 삼키지 말고 있다가 남편의 말이 다 끝나면 삼키세요. 그러면 한 달 쯤 후에는 가정이 좋아질 것입니다.”그 후 그녀는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 때마다 수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한 달 후에 가정이 정말 화목해졌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수도사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수도사님! 그 물이 정말 신비하네요.” 그때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물이 신비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 신비한 것입니다.”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문제를 풀 때도 많습니다. 사람됨과 인격성과 영성도 침묵할 줄 아는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기도 응답에는 “그래라(Yes)”는 응답도 있고, “안 된다(No)”는 응답도 있지만 “기다려라(Wait)”는 응답도 있습니다. 그처럼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에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숨어있을 때가 많습니다. 어렸을 때 큰 잘못을 해서 야단맞을 것을 각오했는데 엄한 아버님이 그냥 침묵하시면 그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처럼 침묵과 기다림이 때로는 깊은 사랑을 표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나쁜 일은 대개 좋은 일과 잇닿아 있듯이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과 잇닿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상황만 보지 말고 그 상황 너머의 희망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침묵 중에 기다려 보십시오. 속상하고 섭섭해도 너무 성급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자녀교육의 핵심 요소는 침묵과 기다림입니다. 목회의 핵심 요소도 침묵과 기다림입니다. 침묵과 기다림 속에서 사랑을 느낄 때 비로소 인생은 철든 인생이 됩니다.믿음의 침묵은 문제 해결의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몰라도 침묵하면 중간은 갑니다. 더 나아가 알아도 침묵하면 신앙 및 인간관계에서 최고수가 됩니다. 신비함을 드러내려고 신비한 말을 많이 하면 신비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신비를 지나치게 추구하면 진짜 신비는 사라집니다. 진짜 신비는 떠들썩하게 드러낼 때보다 침묵하며 감출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모를 것은 모르게 두고 자기도 모르는 것이 있음을 드러내야 인간관계도 좋아지고 신앙도 깊어집니다.초대교회 때 예수님을 신비하게 보이게 만들려고 신비한 얘기를 많이 기록한 문서가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독이 되듯이 그런 문서들은 다른 면에서 상당한 정경성을 가졌어도 정경문서가 되지 못했습니다. 신기한 얘기가 많아야 예수님의 신성이 증대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신비한 말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환상을 봤다! 천국을 봤다!”는 말에 끌려 다니면 누군가의 ‘자기 망상과 자기 투사’에 끌려 다니는 비참한 영혼이 될 수 있습니다. 신비를 너무 추구하면 대개 영성이 깊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천박해집니다.예수님의 공생애 전에 신비한 일들이 많았겠지만 그런 얘기들을 다 기록해야 성경과 예수님의 신성이 증대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비한 얘기들이 많아지면 오히려 예수님의 성육신의 의미가 희석될 수 있고 신앙의 본질과 핵심을 놓치기 쉽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신비는 필요하지만 신비가 남용되어 신비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공생애 전의 신비한 얘기들을 거의 감춰놓은 것입니다.본문은 공생애 이전의 예수님의 삶이 기록된 유일한 본문으로 30년간 숨겨진 역사의 커튼이 잠깐 열리고 예수님의 첫 말씀이 기록된 본문입니다. 이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전합니다. 그처럼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본문 40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이 구절에서 “자라며 강하여지고”란 말은 육적인 성장을 뜻하고, “지혜가 충만하며”란 말은 정신적인 성장을 뜻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는 말은 영적인 성장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의 성장은 육신과 정신과 영혼이 균형 잡힌 전인적인 성장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전인성과 균형과 중용의 삶이 있어야 사랑을 받습니다.극단에 치우치면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고 인간성도 점점 병들게 됩니다. 심지어는 좋은 것도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오직 예수!”란 말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러나 그 구호는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은 다 무시해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구호를 잘못 받아들여 부모와 선생과 목회자와 어른을 우습게 아는 후대들을 보면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오직 성경!”이란 말도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러나 그 말은 성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지 다른 책은 읽을 가치도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직 성경!”을 내세우며 다른 경건서적을 인간적인 책이라고 읽지 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그 사람은 오직 자기 말만 듣고 자기 말에만 세뇌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단성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오직 예수! 오직 성경!”이란 말을 더 잘 쓸 때가 많습니다.폭넓은 독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독서’를 멈추면 ‘독선’에 빠집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2대 요소는 책과 멘토입니다. 결국 독서를 멈추면 성장도 멈춥니다. ‘읽는 사람’이 되어야 ‘읽혀지는 사람’도 됩니다. 남의 지혜를 인용할 줄도 알아야 자기 지혜도 인용되고, 남의 머리를 사용할 줄도 알아야 자기 머리도 쓰임 받습니다. 폭넓은 독서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좋은 리더(reader)가 되어야 좋은 리더(leader)가 됩니다.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41절). 예수님도 열두 살 때 유월절 관례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그리고 절기를 지키고 귀가할 때 예수님은 그냥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러 계셨는데 그 사실을 요셉과 마리아는 알지 못했습니다(43절). 그러다가 하룻길을 간 후에 예수님이 동행하지 않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44-45절).그처럼 예수님이 동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실상 예수님이 없는 예수꾼이 되는 것처럼 비극은 없습니다. 왜 요셉 부부가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까? 사람들이 많은 복잡한 성전에서 마음이 분주했기 때문입니다. 삼백만의 인파가 몰린 유월절 축제 마당이었으니 예수님을 잃어버릴 만도 했습니다. 그처럼 마음이 번잡하면 중심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요새 현대인들은 정말 마음이 번잡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볼 시간이나 기도 시간을 잘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군중 교인들 틈에서 예수님이 없이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교인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상 거대한 대중이 몰려다니는 모습은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게 군중 속에서 휩쓸리다 보면 본인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에 의식이 길들여져 몸집 불리기에만 관심을 두고 나눔과 선교를 외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초대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핍박 속에서 예수님 때문에 죽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단 하루도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목적을 위해 교회를 다니기도 해서 알곡과 쭉정이의 구별이 모호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모험적인 희생과 나눔을 체험하지 못한 채 인생을 보낸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항상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모험적인 희생과 나눔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점점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 받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결국 사흘 후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았는데 보니까 예수님이 선생들 중에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46절). 외경 도마복음을 보면 그때 예수님이 율법의 난제들을 풀고 또 어려운 질문을 묻고 답하며 천문학, 의학, 물리학, 철학 등의 얘기도 나눴다고 전합니다. 그처럼 어린 예수님이 당대 최고 석학들과 율법에 관한 말씀을 나누자 주변 사람들은 다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에 놀랐습니다(47절).그 장면을 보고 요셉 부부도 놀랐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물었습니다. “아이야! 왜 이렇게 했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며 너를 찾았다(48절).” 열두 살의 아들이 당대의 석학들과 당당하게 토론하는 장면을 보고 평소에 느끼던 자녀의 신성을 새롭게 느꼈겠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실체를 잘 몰랐기에 그 동안 걱정했던 감정을 표한 것입니다.그때 예수님은 공손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왜 나를 찾으셨나요?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요?(49절)”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인류 구원의 큰 사명을 이행해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실체를 요셉과 마리아는 깨닫지 못했습니다(50절). 다만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마음에 기억해 두었습니다.그 후 예수님은 나사렛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순종해 받드셨습니다(51절). 그리고 공생애 시작 전까지 18년 동안 부모 및 동생들과 지내며 가업을 이어받아 목수로서 가정을 돌보고 부모를 섬겼습니다(막 6:3). 그 후 아버지 요셉에 관한 기록은 더 이상 없는데 18년 중의 어느 시점에 죽으면서 예수님이 가장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결국 순종하며 받으시는 성품 때문에 예수님은 점점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 그처럼 순종하여 받드는 성품을 체질화시키면 반드시 사랑 받고 축복의 문도 활짝 열립니다.외경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전에 행하신 여러 기적을 언급하며 예수님의 신성을 높이려고 했지만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셨음을 언급합니다(52절). 그런 언급은 예수님의 신성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이 철저히 인간이 되셨음을 나타내며 예수님의 성육신의 사랑에 더욱 감동하게 만듭니다. 결국 정상(情狀)이 정상(頂上)으로 가는 최적의 길입니다.불행한 사람들은 ‘정상’보다는 ‘환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환상적인 얘기가 있어야 신성이 증대된다고 여깁니다. 그런 환상적인 방식을 동원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몇 가지 환상적인 기적만 펼쳐도 전 세계 70억의 인류를 며칠 내로 다 예수님 믿게 할 수 있지만 그런 환상을 동원하면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하나님은 마술적인 신앙을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마술사들의 눈속임이 얼마나 신기합니까? 커튼 하나만 통과하면 옷을 다 갈아입는 마술도 신기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신기한 마술들도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그 마술의 비밀을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만큼 마술로도 보통 사람들을 속이기 쉽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술 신앙에 빠지면 영혼이 누군가의 노리개가 될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기한 것으로 신앙의 기초를 세우지 마십시오.인천에서 목회할 때 어느 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한두 시간씩 비몽사몽간에 우주를 날아다니는 환상에 젖은 적이 있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날아다니며 극치의 쾌락이 생생하게 느껴지니까 매일 그 환상에 빠져들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날아다닐 때는 빠르고 느리게 하는 속도 조절도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집사에게 가볼까 하면 빛의 속도로 그 집사의 집 안까지 들어가서 집안 내부까지 환하게 보였습니다.그런 극치의 쾌락적인 환상이 매일 계속되는데 2달쯤 지난 어느 날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런 환상을 즐기고 있지? 이 환상이 하나님의 일에 어떤 유익이 있나?” 냉철하게 생각하자 환상적인 쾌락으로 한두 시간을 보낸 것 외에는 어떤 유익도 없었습니다. 그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이런 환상에 젖지 말게 하시고 이 극도의 쾌락적인 기분을 이겨내게 하소서!” 그래서 마침내 그 환상을 거부하고 아침에 몸이 피곤하면 차라리 ‘숙면 모드’로 들어갔지 ‘환상 모드’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분당으로 이사한 후에도 가끔 그 환상적인 경험이 생각나서 그때의 경험이 또 펼쳐질까 하고 ‘환상 모드’로 돌입하면 여지없이 또 그런 환상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바로 그 환상 체험을 끊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한 번도 환상 모드로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런 유익도 없이 쾌락적인 기분으로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서 그 뒤로는 아예 환상 모드로 들어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너무 환상적인 기분과 환상적인 얘기만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면 영혼이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특별한 기록의도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예수님을 환상적으로 그려내지 않습니다. 몇몇 외경 책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환상적인 얘기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렸을 때 진흙으로 새를 만들었다는 얘기 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성경은 그런 기록들을 철저히 배제합니다.예수님은 인간 가정에서 태어나 인간이 겪는 모든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을 보여주려고 성경에 예수님의 어린 시절 얘기가 잠깐 기록된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기적적인 탄생 후에 공생애를 시작할 30세까지 예수님이 행한 초자연적인 기록을 다 배제하신 것은 환상과 기적 중심적인 신앙을 주의하라는 하나님의 뜻도 있습니다.환상을 좋아하면 과정도 없이 열매만 찾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처럼 지나친 환상 추구는 참된 영성의 길이 아닙니다. 인간은 신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펼쳐진 인간적인 과정도 마땅히 필요한 과정임을 예수님의 인간적인 성장 과정은 잘 교훈합니다. 과정을 생략하고 좋은 결과만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과정에 충실해야 대개 좋은 결과도 얻습니다.분당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아주 인기 있는 칼국수 맛집을 발견했습니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밀가루 파동으로 원가가 오르자 어느 때부터 칼국수 양이 조금씩 줄었습니다. 가격은 착한 가격을 내세우고 양은 슬쩍 줄인 것입니다. 그러면 손님도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아챕니다. 결국 손님들도 하나씩 줄면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슬쩍 줄이는 것이 문제입니다.어느 날, 한 어리석은 농부가 몇 년 동안 노새에게 먹인 귀리가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귀리에 약간의 톱밥을 섞었습니다. 다음날에는 조금 더 섞었고, 그 다음날에는 조금 더 섞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새는 귀리의 양이 준 것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농부는 모든 것이 자기 의도대로 잘 되는 줄 알고 계속 귀리의 비율을 줄이다가 나중에는 거의 톱밥만 먹였습니다. 그래서 비용을 꽤 절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새가 거의 톱밥으로만 된 식사를 마친 후 벌러덩 엎드러져 죽어버려서 결국 몇 배의 손해를 입었습니다.살면서 자신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예수님과의 관계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서 조금씩 외곽으로 밀어내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지만 나중에는 결국 영혼의 붕괴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사십시오.또한 교회 중심적인 삶이 멀어지지 않게 하십시오. 언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까? 성전을 떠난 후였습니다. 요새 예수님을 잃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 사랑의 퇴색 때문입니다. 교회가 지난 이천년 동안 많은 허물을 보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착착 진행시켰습니다. 캘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길 때 교회를 어머니처럼 섬기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면 신앙에 실패가 없습니다.나중에 요셉 부부가 어디서 다시 예수님을 찾았습니까? 성전에서 찾았습니다. 그처럼 교회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에 올 때 예수님 외에 돈이나 권력이나 인맥과 같은 다른 것을 찾으러 오지 마십시오. 교회 내에서 다단계 판매 등은 아예 기생할 틈이 없도록 서로 협력해서 막아내야 합니다. 교회에서 다른 것을 찾으려고 하면 반드시 낙심과 불평과 미움과 섭섭함이 생깁니다.요새 어떤 교인들은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헌신이 겁나서 방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좋은 교회를 찾아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처럼 생명수가 넘치는 말씀과 거룩한 비전과 은혜를 찾아 몸부림을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교회를 힘써 사랑하고 돌보려는 자신의 결단입니다.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3가지로 듭니다. 첫째, 성공자들은 한결같이 비전과 목적에 맞게 살고, 둘째, 성공자들은 환경에 끌려 살기보다 환경을 주도하며 살고, 셋째, 성공자들은 소중한 일에 집중하며 산다고 했습니다.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요새 세월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갑니까? 방심하면 인생을 허둥대다 마치기 쉽습니다. 그런 실패가 없도록 중요한 것이 집중하며 사십시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성공적으로 살려면 단순화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단순하게 만들고, 인간관계를 단순하게 만들고, 삶을 단순하게 만드십시오. 또한 좋은 습관을 만들고 핵심가치와 본래의 사명에 집중하고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마침내 때가 되어 수직상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어느 날, 한 재벌 아들이 경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사막에 불시착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수색대를 조직해 며칠 동안 사막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점차 극한 상황이 되는 것을 느끼고 그 아버지는 사막에 수백 만 장의 전단을 뿌렸습니다. 그 전단에는 사막에서의 생존 방법들을 자세히 쓰는 대신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존아! 내가 지금 너를 최선들 다해 찾고 있단다.”사람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생존을 위해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합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극한 어려움 속에서 맞이하는 고독과 공포를 이겨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전단을 고독과 공포와 좌절감과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어 가던 아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며칠 간 생존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을 최대한 지켜서 결국 구조대를 만나 살 수 있었습니다.지금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아무개야! 내가 너를 사랑한다! 지금 내가 너를 위해 최상의 길을 예비하고 있단다.” 그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고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다시 모시십시오. 사람이 무엇에 집중하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헛된 일에 집중하면 헛된 인생이 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면 중요한 인생이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랑에 집중하며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한 뜻인 나눔의 비전이 흐트러지지 않게 함으로 마침내 때가 되어 수직상승의 은혜를 체험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Luke 2,누가복음 2 NIV;K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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