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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 편 | 시편 2편 14558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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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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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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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1 –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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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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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시편 2 편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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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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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시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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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편

본문 읽기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2: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2: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2: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편2편 주해

구조

시편2편은 여호와께서 시온산에 아들을 왕으로 세우시고 통치하겠다는 선언으로 메시야 시편에 속합니다. 저는 시편2편 구조를 아래와 같이 구분했습니다.

1-3절 열왕들의 모반

4-6절 하나님의 조소(嘲笑)와 선언(宣言)

7-9절 아들을 왕으로 세우심

10-12 아들과 화해하라

1. 1-3절 열왕들의 모반

시편 2편은 하나님의 놀람으로 시작한다. ‘어찌하여’는 이해할 수 없는 이방 나라와 열왕들의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서 놀라신다는 문학적 표현이다. ‘이방 나라’ ‘민족들’ ‘세상의 군왕들’ ‘관원들’은 모두 ‘헛된 일’을 꾸미는 자들이다. 이들은 ‘서로 꾀하’고, ‘우리’라고 부른다. 한 통속이 되어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2절)를 대적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반항에 어이없어 하시고, 황당해 하신다. 그들은 대적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어리석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맨 것’과 ‘그의 결박’은 하나님의 통치, 또는 계명을 말한다. 1부는 땅의 일이다. 이제 시인의 눈은 하늘로 옮겨간다.

2. 4-6절 하나님의 조소(嘲笑)와 선언(宣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그들은’ 땅에 있다. 그들이 분을 발했지만(1절),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분노하신다. 하나님은 선언하신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신다. ‘내가’가 강조된다. 그들은 반역하고 거역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2절)가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시온의 ‘왕’(6절)이다. ‘그들은’ 무력하고 헛된 일을 꾸몄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2부는 천상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선언이다.

3. 7-9절 아들을 왕으로 세우심

‘내가’(7절)는 시온의 왕이다. 그가 여호와께 받은 것을 선포한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선언한다. 고대 왕들은 신들의 아들이다. 항상 자신을 ‘~의 신의 아들’(Divi filius)로 자신을 소개했다. 땅의 왕은 하늘의 하나님을 대리한다. 그는 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통치한다.

‘이방 나라’(8절)는 그의 유업이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이방 나라’(1절)은 분노했을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통치를 거절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시온의 왕은 그 소유가 ‘땅 끝가지’(8절) 이르기 때문이다. 즉 모든 나라, 모든 족속, 모든 방언, 모든 민족들에게 통치권이 행사된다. 시편19편은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시편 19:1-6]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시온 왕의 통치는 곧 말씀의 통치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온 우주를 통치하듯 시온의 왕의 통치 영역도 무한하다. 철장과 질그릇은 시온의 왕이 능력을 드러낸다. 요한은 이 구절을 두아디라교회에 적용시킨다.

[요한계시록 2:26-27]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말씀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그것이 시온 왕의 통치 방법이다. 이제 4부로 넘어가 반항자들이 어떻게 해야 지혜로워지는가를 알려 준다.

4. 10-12 아들과 화해하라

‘그런즉’(10절)은 명백한 사실과 결론이다. 이미 답은 내려졌고, 승패를 끝이났다. 시인의 권면이 이어진다. ‘군왕들아!’는 다정하게 또는 엄위하게 경고 또는 권면일 수 있다. 지혜를 얻어야 한다. 무엇이 진정 자신을 위한 일인지를. 결국 ‘여호와를 경외함’(11절)이 지혜이다. ‘그의 아들’(12절) 여호와가 기름부은 자이며, ‘시온의 왕’이다. 진정한 복은 ‘여호와께 피하는 자’(12절)다. ‘다’는 예외 없음으로 여호와는 비록 반항하고 거역한 자라도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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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1 ]

제 2 편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소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 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 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편 2편 & 성경주석

<시편 2편 서론>

시편의 메시야 시편 중 첫 번째인 시 2편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의 노래”라는 그에 걸맞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시 1편과 2편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시 1편이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는 삶을 사는 선인의 행복과 악인의 궁극적인 멸망을 공표하는 것처럼, 시 2편도 여호와께 대한 열방의 반역이 헛되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보여 준다. 시 1편은 개인들이 가는 두 길을 묘사하고 있는 반면에, 시 2편은 민족들이 가는 두 길을 묘사한다. 시 1편은 복으로 시작하는 반면에, 시 2편은 복으로 끝을 맺는다. “사람은 시도하고 하나님은 처리한다.”라는 말이 시 2편에 나타나 있는 주제인 듯 보인다.

구조적으로는 이 시가 네 연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연이 거의 동일한 수의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연(1~3절)은 우주의 통치자와 메시야에게 도전하고 있는 이 땅의 권력자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둘째 연(4~6절)은 이와 대조적인 모습, 곧 여호와께서 그들의 도전을 무시해 버리시고 메시야를 시온산에 왕으로 세우시는 모습을 보여 준다. 셋째 연(7~9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세상의 합법적인 소유주로 선포하는 명령에 대하여 깊이 숙고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넷째 연(10~12절)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에게 굴복할 것을 권고한다. 이 시는 복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끝을 맺는다(12절).

<시편 2편 개역한글>

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편 2편 성경주석>

2:1 어찌하여 열방이.

이 시는 격렬한 혼돈 상태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돌연히 시작한다(「개역한글판」에서 “열방”으로 번역된 단어가 「제임스왕역」에는 “이방”[heathen]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여기에서 “이방”으로 번역된 단어의 본래 의미는 “나라들”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던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들을 일컫는 용어였다. 루터는 시인의 이 질문을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의역하였다. “여호와와 그의 그리스도께 대적하는 자들이 어찌 형통할 수 있겠느냐?”

2:1 분노하며.

히브리어 라가쉬(ragas∨). 이 단어는 오직 여기에만 나오는 것으로(아람어 형태는 단 6:6, 11, 15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의미는 “격정에 사로잡히다”, “흥분하다”이다.

2:1 민족들.

히브리어의 대구법 원칙에 따르면 이 단어는 “열방”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다.

2:1 경영하는고.

히브리어 하가(hagah). 참조 시 1:2 주석. 이 죄인들은 지금 자신들이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꾀하고 있다. 하나님 정부에 대적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든 의도는 결국 실패로 결말지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2:2 세상의 군왕들이.

2절은 1절의 일반적인 진술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군왕들”은 6절의 “나의 왕”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 “나서며”는 결연한 저항의 태도를 나타낸다.

2:2 기름받은 자.

히브리어 마쉬아흐(mas∨iah.). 이 단어에서 “메시야”가 파생되었다. 문자적으로 “기름부음받은 자”를 의미한다. 마쉬아흐는 두 번 “메시야”로 번역되었다(단 9:25, 26). 고대 관습에 따르면 제사장들과 왕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위해 위임되는 때에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았다(참조 출 28:41; 삼상 10:1). 다윗은 종종 사울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일컬었다(삼상 24:6, 10; 26:9 등). 이 시가 메시야적 의미를 담고 있음이 행 4:25~27을 통해서 입증된다. 참조 마 26:63; 요 1:49; 행 13:33; 롬 1:4; 골 1:18; 히 1:2~5.

2:3 그 맨 것을 끊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이 여호와의 권위에 의해 부과된 속박을 끊고자 하는 자신들의 갈망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시인이 묘사하는 것은 반역자들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의도를 방자하게 선포하고 있는 모습이다.

2:4 웃으심이여.

열방의 떠들썩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는 하늘에서 반역자들의 헛된 시도를 보고 웃으시며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앉아 계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참조 교육, 173; 치료봉사, 417).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계획을 방해하며 또한 그들의 행동노선을 우매한 것으로 돌려놓는다(참조 삼하 15:31).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의 속성들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즉 그는 “웃으신다”(참조 시 37:13; 59:8 등). 탈무드에 “토라(율법)는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영감받은 저자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특성들과 속성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것들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엘렌 G. 화잇이 “가나안의 언어”를 쓸 줄 몰라서 하늘의 영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던 것과 비교하라(초기문집, 19). “웃으시다”의 의미가 “비웃으시다”, “분을 발하시다”, “진노하시다”(4, 5절)라는 단어들에 의해 더 확대 표현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경멸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2:5 그때에…이르시기를.

언뜻 보기에는 하나님이 이 일에 무관심하신 듯하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태도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때에”라는 단어가 하나님이 마침내 자신의 결심을 선포하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2:6 내가 나의 왕을…세웠다.

(「제임스왕역」에는 이 문장에 “이미”[yet]가 첨가되어 있음-역자 주). “이미”(yet)는 보통 “그리고”(and)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접속사를 번역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인용문을 소개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 문장에서 대명사 “나”가 강조되어 있는데, 이 “나”는 여호와를 대적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들을 일컫는 “저희”(5절)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2:6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참조 시 48:2. 시온은 본래 예루살렘 성읍 안에 있는 남쪽 언덕 이름인데, 후에 예루살렘에 대한 시적 명칭이 되었다.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이제는 기름부음받은 자이며, 말씀이며, 하나님의 대변자인 예수가 자신이 아들 됨에 관한 하나님의 큰 선포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의 직분은 다른 어떤 존재에게서 빼앗아 온 것이 아니다. 그의 메시야 직분은 아버지의 명령에 근거한 것이다. 이 명령에는 (1)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과 (2) 그가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8, 9절; 참조 겔 21:27).

2:7 내 아들.

참조 히 1:2, 5; 마 14:33; 16:16; 행 8:37; 요일 4:15.

2:7 너를 낳았도다.

이 말을 아들의 최초 탄생을 의미하는 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에게는 원래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시대의 소망, 530). 성경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석자는 성경 그 자체이다. 영감받은 저자들은 구약의 예언들을 정확하게 적용하였을 것임이 틀림없다. 다른 모든 적용은 인간의 견해에 근거한 것으로, 이것들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들이 아니다(참조 신 18:15 주석). 이 본문의 예언에 대한 영감받은 사도의 주석에 근거해 볼 때, 시인의 이 말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예언임이 분명하다(행 13:30~33).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함으로 결코 모방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선포되었다(롬 1:4).

2:8 내게 구하라.

여호와와 메시야의 관계는 아들의 어떤 요구라도 다 들어주시는 그런 관계이다. 기름부음받은 자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반역자들의 모든 시도가 완전히 허사가 되었음이 강조되고 있다. 아들은 후사로서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는다. 따라서 그는 그와 함께 후사가 된 우리와 그 유업을 나눌 수 있다(참조 롬 8:17 주석).

2:9 철장.

통치자의 권위에 대한 상징. 메시야의 원수들은 철저한 패배를 맛보게 될 것이다.

2:9 부수리라.

참조 계 2:27:12:5; 19:15.

2:10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반역자들 앞에 두 길이 놓여 있다. 그들은 계속 반역하여 멸망에 이르는 길로 나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여 영원한 행복에 이를 수도 있다. 시인은 동료들을 위해 탄원하는 그들의 형제로서 반역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께 굴복할 것을 엄숙히 권고한다. 반역은 어리석은 일이다.

2:10 교훈을 받을지어다.

문자적으로 “충고를 받으라”, “훈계를 받으라.” 시인이 지도자들에게 여호와와 메시야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깨닫고 또한 깨달은 의무를 권장하는 데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충고하고 있다.

2:11 경외함으로.

이 말과 “떨며”라는 말에는 겸손히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에 반역한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지를 깨달은 데서 오는 두려움도 포함되어 있다. “즐거워할지어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는 기쁨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 준다.

2:12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즉 여호와가 당신의 아들로 선포한 메시야를 경배하라. “입 맞추라”라는 말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동방의 관습을 연상시킨다(참조 삼상 10:1). 시인은 메시야에게 반역하려는 자들에게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그의 통치에 굴복하라고 충고한다(참조 요 5:23).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라는 번역이 히브리어 본문을 아주 자연스럽게 번역한 것임에도 고대와 현대의 번역판들에서 이와 상이한 다양한 번역들을 찾아볼 수 있다. 「70인역」에는 이 구절이 “교훈을 붙잡으라”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불가타역」에도 이와 동일하게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판들은 여기에서 “아들”로 번역된 단어에 대한 유대교의 설명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듯하다. 이 설명에 따르면 여기에서 “아들”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벤(ben)이 아닌 아람어 바르(bar)이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유수 이후 이 바르(bar)라는 단어를 토라(Torah)의 훈계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하였다. “입 맞추다”로 번역된 나샤크(nas∨aq)라는 단어는 “결합하다”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나샤크가 “부딪히다”로 번역되어 있는 겔 3:13을 참조하라). 「70인역」의 번역은 이 두 의미를 결합한 것이다. “입 맞추다” 대신 “경의를 표하다”로 쓰인 번역판들도 여럿이 있다(「모팻역」, 「레이(Ray)역」, 미국 유대 출판 협회역). “경의를 표하다”는 “입 맞추다”로 번역된 단어에 대하여 설명을 곁들여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초기교회가 다윗을 시 2편의 저자로 인정하였음에도(행 4:25) 비판적인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시를 바벨론 유수 이후 작품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둘 모두 “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히브리어 벤과 아람어 바르가 시편에서 서로 호환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이미 그 타당성을 상실하였다. 이 두 단어가 BC 14세기에 기록된 한 우가릿 문헌에서 서로 호환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를 통해서 성경의 어떤 책에 아람어 단어들이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그 책이 후기에 쓰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의 발에 입 맞추라”라는 「개정표준역」의 번역은 글자 수의 재배열을 포함한 히브리어 본문의 재구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본래의 히브리어 본문은 번역하기에도 용이하고 또한 그 번역이 문맥상으로도 전혀 무리가 없다. 따라서 원문의 의미에서 동떨어져 있는 「개정표준역」의 번역은 거부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 본문의 번역상의 문제점에 대한 전체적 논의에 관해서는 성경 번역 상의 문제들(Problems in Bible Translation), 144~147을 참조하라.

2:12 길에서 망하리니.

무한한 사랑(요 3:16)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결국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발하여지며 또한 그 진노가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삼켜 버릴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열망하신다(참조 겔 18:30, 31). 그는 죄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32절).

2:12 다 복이 있도다.

이 시는 여호와의 왕을 신뢰하는 모든 이에게 복을 선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모두가 다 죄를 범하였으며 따라서 모두가 다 구세주를 필요로 한다. 자신들의 필요를 깨닫고 메시야를 신뢰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아들인 예수의 통치에 복종하도록 그들에게 호소해야만 하는 엄숙한 의무가 지워져 있다. 시 2편은 메시야의 선교 찬양으로 불리고 있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2018/04/25(수) “시편 2:1-12” / 작성: 정한조

본문 시편 2:1-12

찬송가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시편 개요

시편의 구조 : 150편으로 된 시편은 모두 5권으로 나뉘는데, 모세5경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에 비견되는 제1권은 1-41편까지 41편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노래합니다. 대표적인 시편이 8편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 8:4-5)

출애굽기에 비견되는 제2권은 42-72편까지 31편으로, 구원의 은총을 노래합니다. 대표적인 시편이 51편, 다윗의 참회시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0-11)

레위기에 비견되는 제3권은 73-89편까지 17편으로, 예배와 성소에 대해 노래합니다. 대표적인 시편이 73편, 아삽의 시입니다.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 73:3)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7)

민수기에 비견되는 제4권은 90-106편까지 17편으로, 인생 광야에서의 순례를 노래합니다. 대표적인 시편이 105편, 요셉에 관한 시입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 105:17-19)

신명기에 비견되는 제5권은 107-150편까지 44편으로, 하나님의 율법인 말씀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대표적인 시편이 119편입니다. 119편은 176절이나 되는데 모두 말씀을 노래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시편의 기자와 기록연대 : 시편을 가장 많이 기록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전체 150편 중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73편을 기록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찬양대 대장이었던 아삽이 12편, 그리고 다윗시대에 성전에서 봉사했던 레위지파의 후손 고라자손들이 11편을 기록했습니다. 다윗과 아삽, 고라자손들이 모두 동시대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성경을 기록 연대순으로 분류할 때 시편을 다윗 시대에 시편을 두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편은 그 시대에만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90:10절의 말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는 모세의 시입니다. 다윗의 시대보다 약 450년 앞선 시대입니다. 그리고 시편 137:1절의 말씀,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는 바벨론 포로 시대 다윗의 시대보다 약 450년 뒤선 시대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모세 때부터 포로시대까지 약 900년에 걸쳐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시편 150편 중에서 기록한 사람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101편이고 나머지 49편은 누가 기록했는지 모릅니다. 즉 다윗 다음에 가장 많은 시편을 쓴 사람은 ‘기록자 미상’입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작사자.작곡자가 미상인 곡이 있습니다. 예전에 찬송가에는 작사자.작곡자가 미상인 곡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새찬송가에 작사자.작곡자 미상인 곡들이 상당히 빠진 것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쉽습니다. 작사자가 누구인지, 작곡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곡을 부를 때에, 우리가 그 찬송의 작사자도 되고, 작곡자도 되어서 훨씬 감동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편의 기자가 누구인지를 알 때에 그의 상황과 함께 묵상을 하면 감동이 깊지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기록한 시편을 묵상할 때에도 우리가 그 시편의 기자가 될 수 있어서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시편의 종류 : 시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시로 된 노래의 가사와도 같습니다. 그 가사 중에는 하나님께 자신의 상황을 호소하는 ‘탄원시’가 있고,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심을 노래하는 ‘찬양시’와 ‘감사시’도 있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노래하는 내용(제왕시)도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슬기로우심을 드러내는 ‘지혜시’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성전으로 올라가며 불렀던 ‘순례시’도 있고, 심지어 악인들을 벌해달라는 ‘저주시’도 있습니다.

다른 성경과 달리 시편이 특이한 점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시(찬양)이 성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으로 하나님을 높이면, 그것이 우리의 시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의 몸부림과 애씀을 모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는 시편(찬양)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기쁜 것임에도 아이러니하게 인생이 잘 풀리거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을 때에는 시편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건강이 갑자기 약해져 병상에 눕게 되거나, 사업이 꼬여서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서 아무 것도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여호와는 나의 목자’,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여호와의 집’이라는 말이 폐부 깊숙이 다가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시편은 실패자의 하소연이나 푸념, 넋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 그 실패를 발판삼아 승리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에서 가장 긴 책이 시편이고, 성경 1189장에서 가장 짧은 장도 시편에 있고(117편, 2절), 가장 긴 장도 시편에 있고(119편, 176절), 한 가운데 장(118편)도 시편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손에 쥐고 그 가운데를 펼치면, 그곳이 시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의 한 중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있다면 참 복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왕과 하늘의 왕(1-6절)

오늘 본문 1-3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임명하자, 세상의 왕들이 그 계획을 뒤집기 위해서 반역을 모의합니다. 그 세력을 4가지로 표현합니다. 이방 나라들, 민족들, 세상의 군왕들, 관원들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신하고 과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매신 것을 끊으려고 하고, 하나님께서 묶으신 것을 벗어버리고 합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 보이신 반응을 4-6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인간들 중에서 힘을 쓴다는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독립만세를 외칠 때에 하나님께서 웃으신다고 하십니다. 정확하게 비웃으신다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가소롭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며,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릴 왕을 직접 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이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에,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즉 네 삶의 주인은 네 자신이니까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하나님처럼 살 수 있다고 유혹한 것입니다. 그래서 따서 먹었습니다. 그 이후로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즉 내 인생의 왕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개를 가로저으시며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우리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결코 제대로 된 삶, 영원에 잇댄 삶을 살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이 땅에 영원한 제사장으로, 영원한 선지자로, 영원한 왕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이 시편 2편을 ‘제왕시 또는 메시아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시온의 왕의 통치(7-12절)

7-9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짓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되리라(삼하 7:4)”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가까이는 다윗에게 행한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고, 멀리는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린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반대편에서 하나님 없이 살려는 사람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10-1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세상의 왕들이 영원한 왕에게 도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입을 맞추라고 합니다. 그것은 순종과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다고 약속하십니다. 어제 1장의 말씀에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묵상하는 한다고 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또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의 화려함이나, 세상의 힘에 피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으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심어주신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삶의 자리에서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임을 인정하고, 주님께 피하며,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이 땅에서 역설의 진리를 입증하는 주님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총이 가득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시편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편이 성경 전체에서 한 중간에 있듯, 우리의 삶의 한 중간에 삶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손과 발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노래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울과 실라가 매를 심하게 맞고서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거기에서 찬송을 올려드림으로 옥문이 열렸던 것처럼, 우리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에 하나님께 우리의 시편을 올려드림으로 하나님을 향한 문이 열리는 것을 목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편 2편을 통하여, 주님께서 이 땅의 통치자가 되시며, 인도자가 되심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바라옵나니 주님께서 세상의 통치자와 인도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통치자와 인도자가 되심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며, 내가 내 인생을 더 잘 인도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통치자되심을 인정하며, 주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주님께 피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역설의 진리의 삶을 사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시편 150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편, 당신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시편은 무엇입니까?

2. 지금까지의 삶에서 시편이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3. 하나님께서 당신을 다스리며 인도하고 계심을 가장 또렷하게 느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4.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곳에서 당신의 시편을 쓰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시편 설교문 –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2:1-12)

시편 설교문 –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2:1-12)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본문말씀: 시편2편 1-12

아주 많은 것을 이루고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는 사람이 어느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호텔 직원에게 그 호텔에서 가장 싼 방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호텔 직원도 알 정도로 아주 유명한 부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텔 직원은 그 사람에게 왜 당신 같은 분이 제일 싼 방을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덧붙여서 당신 아들도 그 호텔을 찾으면 가장 좋은 방을 찾는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제일 싼 방부터 찾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호텔 직원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 아들에게는 자기 같은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나 이룬 것으로 보면 당연히 이 사람은 아들보다 더 좋은 방을 구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정작 좋은 방을 구한 사람은 이 사람을 아버지로 둔 아들이고 정작 이 사람은 가장 싼 방을 구했습니다.

저는 이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당장 굶어 죽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건강도 필요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도 느끼면 좀 더 행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짧은 이야기에서 말해주는 보다 중요한 행복의 요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부자는 정작 비싼 방을 얻지 못하고 가장 값싼 방을 구하는데, 그 아들은 가장 비싼 방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일까요? 자신이 그렇게 해도 걱정이 없게 해주는 믿고 의지할 사람, 부자인 아버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고 의지할 대상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았는데요.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생각하면, 엄청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너무 어려운 때가 있어서, 복권을 사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복권 당첨되면, 저만을 위해서 쓰지 않고요. 좋은 일에도 많이 쓰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결과를 기다리는데 당첨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당첨이 되면 이것을 해야 되겠다, 혹은 저것을 해야 되겠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잘못 될까봐 하나님이 생각도 하지 마라.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행복했을까요? 아닙니다. 거의 10에 9는 다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흥청망청 쓰다가 망한 사람이 있고요. 돈이 많으니까, 엉뚱하게도 좋지 않은 일에 손을 대었다가 망한 사람도 있고요. 더 불행하게는 돈 때문에 싸우다가 부부가 이혼을 합니다. 심지어는 가족 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요?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들에게는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고립되어 사는 겁니다. 주변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돈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런 일을 생각해보면,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일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을 하나도 믿지 못하게 될 때에도, 여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문에서 함께 생각할 시편 2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바로 이런 행복입니다. 마지막 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합니다. “피한다.”는 말이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2편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제가 시편 1편을 함께 나눌 때에, 시편은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그 교훈을 우리에게 들려준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시편 1편과 2편은 시편 150편의 서론과 같은 말씀이고, 두 시편에서 시편전체 행복론의 핵심을 말해주고 있다고도 적었습니다. 시편 1편 1절이 “복 있는 사람은, 혹은 행복한 사람은”으로 시작되고, 시편 2편 마지막 12절이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이 복이 있도다. 행복하도다.”라고 말씀하는 데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인생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한쪽에는 행복한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악한 길을 걸어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고요. 반면에,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인생입니다. 이렇게 시편 1편은 두 종류의 사람을 대조하면서,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그리고 누가 불행한 사람인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시편 2편 역시 1편과 유사하게 대조법을 통하여, 행복하게 사는 인생과 불행하게 사는 인생을 우리에게 교훈하여 줍니다.

먼저 1절에서 3절을 보십시다. 이 3개의 절에서 시편기자는 어떤 사람이 불행한 사람인가를 말합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 원어를 보면, “어찌하여?”라는 굉장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원어에서도, 그리고 우리 개역성경도 “어찌하여”라는 말이 한 번 밖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주석서를 보면 사실 “어찌하여”라는 말은 “1절에서 3절까지 모두 적힌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4번 이상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어찌하여”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보통 성경에서 “어찌하여”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탄식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면서 탄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다윗이 부르짖은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27:46)”라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2편에 기록된 “어찌하여”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탄식의 외침이 아닙니다. 시편 2편에서 “어찌하여”는 시편기자의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시편기자가 왜 안타깝고 답답해 하는 것일까요? 지금 시편기자가 보기에 불행한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그 길이 불행한 길임을 모르고 오히려 행복한 길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을 바라보니까 정말로 안타깝고 답답한 겁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냐면요? 1절과 2절에 나와 있는 이방 사람들, 세상에 권세 잡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향하여 대적하고 있습니다. 왜 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이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인데요.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매인 것, 결박은 무슨 감옥에 갇혀 있거나, 올무에 묶여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후에 말씀을 드리겠으나, 4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라고 말씀하지요. 이 말씀은 하늘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짜 왕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권세 잡은 악한 자들이 이것을 인정하기 싫은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오히려 그들을 옭아매는 것과 같고, 그들을 결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유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방의 백성들과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하나님이 없는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신 마음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겁니다. 그것이 참 자유와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때때로 그렇습니다. 사춘기의 자녀들이 “간섭하지 마세요. 내 마음대로 할 겁니다.”라고 부모님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자신들 마음대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진짜 행복할 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착각입니다. 대부분 이런 자녀들은 행복의 길이 아니라, 오히려 탈선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이 없이는 우리의 자녀들은 행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이 답답합니다. 자신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받을 유산을 미리 받아가지고, 아버지에게서 멀리 떠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면서, 삽니다. 처음에는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가진 것을 다 탕진하였습니다. 돼지가 먹는 열매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다가 깨닫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 참된 행복이 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시편 2편에 나오는 권세 잡은 자들처럼 하나님이 없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인생이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인생들이 교회를 비난합니다. 그 이면에 무엇이 있나요? 교회가 필요 없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많은 인생들이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자신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유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시편기자가 고백하듯이, 하나님이 우리 행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2편 기자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 왜 행복할 수 없는가를 알려줍니다. 좀 전에 읽었던 4절을 보시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조금 전에 적었듯이 “하늘에 계신 이”는 세상을 다스리는 진짜 왕이신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그분이 자신에 대적하고 있는 세상의 권세자들을 향하여, 하늘에서 보시고 비웃고 계십니다. 자신을 향하여 대적하는 악한 권세자들에 대하여 “가소롭도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자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지요? 이방의 백성들과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아무리 힘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대적할만한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그들이 어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가소롭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를 부정하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 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권세 잡은 자들이 악하게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하며 하나님께 대적하면 일어나느냐면요? 5절에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이라고 말씀하고, 9절에 “네가(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 믿음의 백성)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라고 말씀하며, 마지막으로 12절 전반절에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대적하는 무리들. 악한 권세들에 향하여 하나님은 무섭게 진노하십니다. 그 진노로 인하여, 악한 자들의 최후는 “망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힘이 있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나님을 대적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결국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멸망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오히려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면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요? 먼저 1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군왕들이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얻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기자가 하나님이 없이 살려는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지혜를 얻으며 교훈을 얻으라.”고 권면하는 겁니다. 어떤 지혜와 교훈을 얻으라고 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세상에서 권세를 잡았다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무시하여 대적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이것이 잘못된 것이고 착각이라는 지혜와 교훈을 깨달으라 그 말씀이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진짜 행복의 길은 무엇인가? 그 지혜와 교훈을 알려줄테니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진짜 행복을 주는 교훈은 무엇일가요? 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 거룩한 두려움을 품고 그분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일. 이것이 인생에게 행복을 주는 길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세상의 악한 자들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짜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인 것을 인정하고, 그 다스리심을 수용하는 인생. 그리하여 왕 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다스리심을 기뻐하는 인생에게 참 된 행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12절 후반절에는 이 말씀을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라고 요약하여 줍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피한다.”는 말은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를 의지할 수 있나요? 믿고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왕이시고 통치자 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생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 여러분. 시편 전체에서 결국 말씀하는 인생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어디에 있냐면요? 바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는 인생들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편 2편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에 관한 지혜요 교훈입니다. 시편 112편 1절로 3절 말씀을 읽으면서 이 설교문을 끝내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외하고 자신의 말씀을 즐거이 순종하는 자에게 후손대대로 이어지는 복과 행복을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 붙잡고, 인생의 최고 행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 길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2) 하나님 없이 오늘도 살아가는 세상의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시편 강해] 시편 2편(제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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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강해] 시편 2편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장르 구분]

제왕시

시편 2편은 전형적인 제왕시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들을 땅의 왕으로 삼으시고, 반항하는 열방의 왕들을 심파하는 내용입니다.

[강해]

신약의 저자들은 시편 2편의 내용을 적극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에 적용합니다. 2편은 아래처럼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시편 2편의 구조

1. 1-3절 열왕들의 반란

2. 4-6절 시온산에 왕을 세움

3. 7-9절 왕에 대한 약속

4. 10-12절 종말론적 권고

1. 1-3절 열왕들의 반란

‘어찌하여’를 통해 열왕들의 반란에 대해 하늘의 하나님께서 놀라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놀람은 무섭거나 갑작스러운 어떤 일에 대한 경악이 아닙니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의아한 놀람입니다. 열왕들이 분노하고 헛된 일을 꾸미는 이유는 2절에서 소개됩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땅의 왕을 거역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열왕들이 ‘분노’했고, ‘헛된 일을 꾸민다’고 말합니다. 마치 사단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아 분노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왜 분노할까요? 그것은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은 그들은 그렇게 하기 싫은 것입니다. 주도권은 자신이 갖고 싶어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분노하고, 서로 마음을 합해 작당합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헤롯과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 서로 원수이면서 작당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4:24-28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열방들이 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은 먼저 ‘분노’(1절)합니다. 그 다음 ‘나서며’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마음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나설 뿐 아니라 꾀합니다. 꾀한다는 말은 마음을 쏟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수고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대적합니다.(2절) 마음에서 행동으로, 행동에서 연합을 통해 실제적으로 대적합니다. ‘왕’들과 ‘관원’이란 표현도 유의해 볼만합니다. 이 표현은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악인들의 연합의 목적은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3절)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 계명을 끊고 벗는 것을 뜻합니다. 김정우는 이 표현이 땅을 침범하려는 혼돈의 물로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을 벗어난 욕망과 탐욕, 무질서와 혼란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범죄와 타락은 정해진 하나님의 계명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들의 반란은 악이요 죄입니다.

2. 4-6절 시온산에 왕을 세움

열왕들의 반란은 ‘헛된 것’(2절)이며, 하나님의 비웃음거리입니다.(4절) 왜냐하면 그러한 노력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교만과 악은 하나님의 비웃음거리입니다. 그들의 악은 하나님께 조금도 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기 때분입니다.(4절) 하늘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공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분노’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분노’(5절)하십니다. 인간의 분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무효화할 것이고 진동할 것입니다.

마침내 시온에 세우신다고 선포합니다. 시온은 ‘내 거룩한 산’(6절)입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구원사적 이름이며, 악인들에게는 심판의 이름입니다. 그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하늘이 초월적 공간이라면, 시온산은 땅에 있으면서 거룩한 곳입니다. 하늘의 거룩성은 절대적이지만, 땅의 거룩성은 상대적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곳입니다. 주님은 모세를 향하여 ‘거룩한 곳’을 정하시고 신을 벗으라 하셨습니다. 소명의 장소, 그곳은 거룩한 곳입니다.

3. 7-9절 왕에 대한 약속

왕을 세우신다는 선언 이후에 왕에 대한 약속이 이어집니다. 3연은 하나님께서 세운 왕이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열거합니다.

ㄱ. 신분: 내 아들이라

고대 세계에서 왕은 신의 후손입니다. 신적 영광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온의 왕을 ‘내 아들’로 입양하십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때 시편 2:7이 인용됩니다.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은 2장에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소개한 다음, 3장에서 세례요한을 통해 왕의 길을 준비 시킵니다. 그리고 곧바로 세례식이 거행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마 27:29)로 놀렸고, 실제로 죄패에 ‘유대인의 왕 예수'(마 27:37)을 붙입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 때 그것을 보던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님을 향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마 27:54)로 선언합니다.

ㄴ.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라

구하라 하시고,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겠다 약속합니다.(8절) 열방들이 분노하고 반역했지만 결국 아들에 의해 지배될 것을 선언하십니다.

ㄷ. 통치하십니다.

이방 나라들은 아들의 통치를 받습니다. 만약 그들이 거역할 때 그들은 철장으로 깨드림을 당할 것입니다. 그 어떤 세력도, 그 어떤 능력도 아들 앞에서 힘없는 질그릇처럼 깨질 것입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작은 돌바위 언덕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그곳을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장소로 불려지게 되었고, 하나님은 시온이란 이름에 구워사적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시온산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장소인 것입니다.

4. 10-12절 종말론적 권고

마지막 연은 종말론적 권고로 마칩니다. 3연을 통해 하나님은 열방의 왕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은 실로 헛것에 불과합니다. 이제 아들과 화해해야 한다고 권고 또는 경고하십니다. 그들의 마지막 삶을 윤택하게 하고 싶다면 아들에게 화해의 키스를 해야 합니다. 그가 복이 있을 것입니다.

나가면서

세상은 분노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적의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순종과 사랑, 섬김과 헌신입니다. 그러나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힌 열방의 왕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명에 반항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서로 뜻을 모으고, 동맹을 맺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을 헛될 것이며, 그들이 수고는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온에 한 왕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 왕은 철장으로 세상을 통치할 것입니다. 그 어떤 나라도, 그 어떤 나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시온의 왕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이미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약은 물리적 힘을 통해 세상을 지배했다면, 예수님은 사랑과 헌신으로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며, 십자가이며, 부활입니다.

시편 2편 주석

출처

시편 2편 硏究

1. 본문 요약

이 시편은 구약에 있어서는 제왕시로서 다윗과 같은 왕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그 내용은 주변 지역에 거하는 반역적인 족속들의 반항에도 불구하고 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편 기자는 이방 나라들을 향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으신 왕에 대적하는 그들의 반역적인 계획들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철장을 가지고 열국을 다스리도록 세우신 아들의 권위에 복종하라고 훈계하고 있다. 1)

시인은 간단하게 전자의 권위 앞에 후자의 권위가 굴복 당해야 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 땅 위에서 생기는 권위와 분쟁은 이러한 권위의 질서와 우열이 뒤바뀌어질 때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의 중심 과제는 그처럼 놀라운 권위를 가지신 분이 누구냐 또 그는 어떻게 그러한 권위를 가져오는가, 여기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는 어떤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가 이 시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2)

2. 형식과 배경 그리고 구조분석

일반적으로 말해서 시2편은 궁중시 (제왕시)로서 히브리 왕조와 관련해서 해석해야만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시 2편은 ‘즉위식’이다. 이러한 분류는 베스터만의 의견을 따르면 제왕시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한 시편의 형식으로서 존재했다기 보다는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이 이스라엘의 왕들과 관련을 맺는 시를 말한다.3)

즉위식은 새로운 왕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는 의식과, 새로운 왕에게 율법서를 공식적으로 수여하는 의식과, 그 왕에게 기름을 붓고 그가 왕위에 올랐음을 선포하는 의식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시편이 다윗 왕가의 즉위식에 관한 시편이라는 사실은 나단의 신탁을 통해서 다윗에게 해준 약속들 (삼하 7: 8-16)과, 이 시편 사이에 유사한 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의하여 명백하게 드러난다. 4)

이스라엘의 약속을 통틀어 ‘왕적인 메시아니즘’(messianisme royal)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유의 기조를 이루는 희망과 신뢰심의 사상적 바탕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같은 역사적인 방대한 흐름이 종교적인 제전을 뒤받침하고 있으며, 그러한 것이 한 왕의 즉위식 혹은 축성식, 왕가의 결혼식, 왕의 기름부음 의식 등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5)

*. 이 시의 문학구조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다.

이 시는 네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있고, 매 연마다 세 개의 절을 할당하고 있으며, 다시 매절은 두 개의 평행적 대구로 형성되어 있고, 각각의 대구는 3박자로 되어있어 매 절마다 3: 3의 규칙적인 박자를 보여준다. 이 시의 철저한 규칙성은 이 시에서 구사하고 있는 거의 완벽함에 가까운 평행법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이 시의 저자가 구사하고 있는 다양한 평행법의 기술은 교차배열법, 정반대조법, 대칭법, 두운법, 각운법, 재담 (word-play), 점진적 확장법 등이며 이 짧은 시안에 이와같은 다양한 시적 기교가 총동원되어있다는 사실은 이 시의 저자가 구약의 어떤 시인과도 비교될 수 없는 대단히 우수한 시인이었음을 암시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6)

*. 문학적 양식에 있어서

本 시는 매우 인상적이면서도, 극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본 시의 기자는 매우 짧은 행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본 시가 제시하고 있는 중요한 순간들의 극적인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본 시 전체를 통해서 병행과 교차대구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본 시의 문학성을 더욱 높여 주고 있다. 그리고 본 시의 구조는 역시 뛰어난 것으로서 생동감과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

본 시의 기자는 소란스럽게 떠드는 이방 나라들을 본 시의 첫 무대로 삼고 있으며,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그가 택하신 왕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다시(교차대구법) 이방 나라들을 -이제는 소란스럽게 떠들지 않고 오히려 진압된 상태에 있는 이방나라들을 -마지막 무대로 삼고 있다. 그리고 본 시의 발음 역시 매우 인상적인데, 시편 기자는 3-5절에서 ‘오’라는 음소를 자주 이용함으로써(히브리시에 흔치 않은) 압운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오’라는 음소는 지상 통치자들의 오만한 말 속에(3절) 처음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오만함을 반영하는 이 음소가 하나님의 대응에 관한 서술(4,5절)에서는 슬픔과 탄식을 뜻하는 음소로 전환되어져 있다. 이와 같이 시편 기자는 다양한 인위적 방법들을 통하여 본시에 힘과 우아함을 더해주고 있으며, 주제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7)

*. 이 시편의 역사적 상황은 정확하게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시편의 역사적 상황은 여호와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이웃 열방들의 위협을 받던 왕국 시대 중 어느 때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특히 초대교회에서 이 시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적인 메시야로서 간주한 사실은 종말론적 메시야 왕국에 대한 꿈이 만발하던 제2성전 시대에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이 시의 내용과 구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충분히 암시해주는 것이라 할 수있다. 8)

시편 기자는 자신이 노래하고 있었던 것, 특히 이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호와와 그의 아들은 시편 기자에 의해, 시편 기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시편 기자는 이전의 계시에 입각해서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의식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확신있게 말하였다. 그의 왕적 보좌는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안전할 것이다. 우주적인 그의 나라도 지속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계획과 약속과 방법에 따라 모든 면들을 완전히 이루실 것이다. 그는 또한 당신의 통치를 통하여 평화와 번영과 안전과 복된 삶의 근원이 되신다. 9)

*. 중요핵심 단어 분석

A. 기름 받은 자 (2절) -왕(6절) -내 아들(7절)

시 2편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은 ‘왕’이다. 2절을 보면 대적자들이 하나님과 왕을 대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받은 자’를 대적한다. 구약성경에서 ‘기름받은 자’는 곧 왕을 의미한다. 왕은 곧 하나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므로 그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나 사람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사람이 된다. 이러한 특별한 관계 속에서 왕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포된다. (7절) 사무엘하 7장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시는 약속 중에 다윗의 아들에 대한 말씀에서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다윗계의 왕들이 스스로 파악하는 자신의 정체성이었다.

B. 나의 거룩한 산 시온 (6절)

6절을 보면 독특한 하나의 표현이 나온다. 바로 “나의 거룩한 산 시온”이다. 우선 왜 이러한 표현이 독특한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구약성경에서 “나의 거룩한 산”이라는 표현은 정확히 9번 나타난다.(사 11: 9, 56:7, 57: 13, 65: 11,25, 66:20, 욜 4: 17, 옵 1: 16, 시2: 6)

이를 볼 때 “나의 거룩한 산”이란 표현은 예언서, 그것도 이사야서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절들을 검토해 보면 가장 많이 “나의 거룩한 산”이란 표현이 나오는 이사야서에서는 직접적으로 시온을 언급한 곳이 없고, 단지 66장 20절에 예루살렘이란 단어가 나올 뿐이다. 또한 이사야서에서 “나의 거룩한 산”을 언급할 때에는 대개 종말론적인 이미지로 사용되었다. 요엘 3장 17절에서는 직접적으로 “나의 거룩한 산 시온”이 언급된다. 이 구절 또한 종말론적인 이미지 속에 둘러싸여 있다. 오바댜 16절에 나온 “나의 거룩한 산”은 뒤이어 나오는 17절에 의해서 시온이란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오바댜에서 나오는 “나의 거룩한 산” 역시 종말론적인 표현 속에 있다. 이상에서 종합해 볼 때, “나의 거룩한 산 시온”이란 표현은 구약성경 내에서는 종말론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사용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이러한 표현은 대개가 포로기 이후의 본문들이라 여겨지는 구절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 비추어 시 2편 6절을 볼 때,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워지는 왕은 종국적이고, 종말론적인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갖게 한다.

C. 하나님의 통치 (왕권)

시 2편을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란 것을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일 뿐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움을 받으면서 왕위에 등극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주권을 온 세상이 깨닫도록 권고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이것이 그의 왕으로서의 직무의 목적 중에 가장 핵심인 것이다. 이 시가 고백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공간적으로는 우주적인, 그리고 시간적으로는 궁극적(종말론적)인 세계 심판의 청사진과 신호로서 나타내어 보여주는 일을 한다. 여기서의 강조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뜻은 그러므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활동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이 그 궁극적 의미와 입지를 가지게 되는 것은 그의 뜻의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 한가운데서 그의 다가오는 왕국에 대한 궁극적인 소망을 인간들에게 계시하시는 이른바, 이 땅의 재판장이시오,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모습이 시편 2편의 중심 주제로서 전개된다. 10)

*. 본문의 구조

시편 2편은 모두 12절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것도 내용상으로는 세 절씩 묶어서 볼 수 있다. 우선 1절을 보면 시의 도입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절은 어찌하여… 하는가? 라는 어투로 시를 시작한다. 2절과 3절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무리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선언이 담겨있다. 대조적으로 4절부터 6절까지는 1-3절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그려진다. 하나님은 대적자들을 향하여 기름부음 받은 자요, 아들인 왕을 그의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선언하신다. 7절에서 9절까지의 3절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왕의 말이다. 그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10-12절까지는 대적자들을 향한 권면과 경고가 담겨져 있다. 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본 시의 기자는 여러 명의 발언자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첫째로, 그는 반역적인 말을 하고 있는 (2: 3) 이방 나라들과 그들의 왕을 등장시키고 있다 (2: 1-2). 둘째로, 선택받은 왕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시는(2: 6) 하나님을 등장시키고 있다(2: 4-5). 셋째로, 자신의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을 내포하고 있는 다윗 혈통의 왕을 등장시키고 있다(2: 7-9). 그리고 넷째로, 자기 스스로 이방 나라들과 그들의 통치자들에게 권면의 말을 하고 있다. 따라서 본 시는 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제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본 시의 각 부분들은 즉위식 시에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말해진 것일 수도 있다. 본 시의 서두(1-6절)는 회중들의 제의적 예언적 지도자들에 의하여 말하여진 것일 수 있으며, 그 다음 부분(7-9절)은 이에 대한 왕의 답변일 수 있고, 마지막 부분(10-12)은 회중들, 혹은 제사장들의 맺음말일 수 있다.11)

제 1연: 지상의 왕들(1-3) 제 2연: 하늘의 왕(4-6)

제 3연: 시온의 왕(7-9) 제 4연: 경고(10-12) (A.바이저 참조)

이를 세분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방과 민족의 반역 4 하나님의 웃음 7 법령의 선포 10 깨달음에 대한 권면

2 왕과 통치자들의 반역 5 하나님의 분노 8 하나님의 약속 11 경외에 대한 권면

3 반역자들의 말 6 하나님의 말 -왕을 세움 9 상징행위 12 반역자들에 대한 경고 복 선언

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본문은 치밀한 대칭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대칭구조는 중앙의 두 절에 집중한다. 이 두 절에서 인용하는 신언(神言)은 이스라엘의 왕권의 기반이다. 왕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것이며, 그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또 한가지 우리가 주목할 것은 대조, 혹은 평행되는 표현이 매 절마다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히브리시의 평행법을 잘 드러내 주고 있는 하나의 예라 하겠다.

3. 본문 주석

제 1연: 땅위의 왕들

1절: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법석대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도모하는가

시인은 수사의문을 통하여 걱정, 놀람과 의분을 표현하고 있다. 그 동안 열방, 즉 이방 나라들(외국들)은 예루살렘의 왕에게 복종하였으나, 이제 반역을 하고 있다. 12)

반역의 형태는 ‘민족들’이라는 단어의 뜻이 ‘병사들’ ( ; 레우밈)이라는 뜻으로 미루어 군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들은 떼로 모여 소동하며, 그들은 허사를 도모한다.’ 교차대구법. 이 구절들은 히브리민족의 이상과 상반되는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히브리민족의 이상이란 모든 나라들과 왕들이 하나님의 왕권과 그가 세우신 주권자를 인정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이상과 같지 않다는 사실이 이스라엘 왕조의 즉위식 때마다 새롭게 인식되어졌다. 13)

이 시는 또한 인간의 권위가 아무리 크고 높다 해도 이런 것들을 누르고 다스릴 수 있는 엄중한 하나님의 권위를 의문부사 ‘어찌하여’로 표시하고 있다. 지상의 왕과 그 신하들이 어떤 계획을 했으며 무슨 모의를 했든지 ‘왜’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해야 함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왜’는 인간사를 비판하는 화살이다. 14)

2절-3절: 땅위의 왕들이여, 방백들이여, 어찌하여 작당하여 음모를 꾸미며 야웨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이에게 대항하여, 그들의 올무들을 끊어버리자, 우리에게서 그들의 사슬의 줄을 던져버리자 하는도다

2절은 1절의 사상을 다시 반복시키고 있는 평행귀로 볼 수 있다. 1절의 ‘나라들’에 대해 2절에는 ‘땅위의 왕들’, 1절의 ‘민족들’에 대하여 ‘방백들’, 그리고 1절의 ‘법석대고 헛된 일을 도모하는’에 대하여 ‘작당하여 음모를 꾸미며’로 대치시키고 있다.

‘작당하여’의 원뜻은 ‘함께 태세를 취한다’, ‘함께 대열을 정한다’, ‘전쟁을 준비한다’는 뜻을 가진다. ‘음모를 꾸민다’는 어떤 거사를 위하여 사전 계획을 비밀리에 공모한다는 뜻이다.

‘올무’(맨 것, 족쇄)와 ‘사슬의 줄’(결박)이라는 용어들은 포로로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헬라 구약성경은 이방나라들의 거친 황소처럼 ‘멍에’를 벗어버리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다. 15)

그들은 여호와와 그가 세운 메시야를 버리고 독립적으로 살고자 한다. ‘올무’와 ‘사슬의 줄’은 그들의 종속적 위치와 복종을 보여준다. 이방 나라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이길 원한다.16)

그들은 이 왕에 예속되어있는 자신들의 상태를 묶여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이를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본 시편의 기자는 긴박성과 극적인 요소를 처음부터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보좌에 오르고 있으나 그는 이방나라들의 폭력과 위협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자신의 통치를 시작하게 될 것이었다. 17)

시인은 또한 이교도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시인은 놀라움을 표시하고 그러한 쓸데없는 노력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이 시 전체의 사상의 흐름을 처음부터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와 대결할 때 자명해지는 그 결과의 현저한 차이를 폭로하는 것이다. 18)

그들의 반역과 대항은 하나님께 대한 직접성을 띠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를 대적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결국 여호와를 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들’과 ‘방백들’이 모함해 일어난다고 해도, 그 행동은 단순히 이스라엘 국왕에 대한 도전과 반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도전과 그 주권을 거부하는 반역행위가 되기 때문에, 이런 모반 행위는 응분의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인은 여기서 하나님 중심적인 역사의 지평을 보면서 세계사적인 지평에서 왕의 정당성과 왕권의 첫 출발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초점은 존재 문제를 위한 지상 권력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인간나라들의 권력과 그 운명의 결정권을 가진 하나님에다 둔 것이다. 19)

제 2연: 하늘의 왕 (4-6절)

4절: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The Lord who sits enthroned in heaven: NEB)

웃으신다.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보좌는 만민과 만물 위에 군림하신 하나님의 권위의 좌를 상징한다. 이제 장면은 땅위의 통치자들로부터, 그리고 하늘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오만한 말들로부터, 그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상에 있는 도울 능력이 없는 왕들은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의 최고의 능력과 대조를 이룬다. 사람과 일시적인 것들은 그들의 주님(아도나이)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과 비교하여 보는 신앙 안에서만 그것이 그렇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높은 보좌 위에서 소인배들을 보고 웃으시며 그들을 비웃으시는 하나님의 장엄한 모습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매우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그 내적 우월성, 두려움이 없는 태도, 그리고 그 평온한 확신을 (사 18: 4) 우리가 갖게 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공적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권능을 알 때에만 비로소 이루어진다. 이 시는 바로 그런 하나님을 증거하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웃음은 그의 주권, 영광, 높으심이 표현이다. 이 웃음의 배후에 하늘의 보좌가 있다. 온 세상 위에 하늘의 보좌가 있다. 20)

5절: 그때 그가 그의 노여움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의 분노 가운데서 그들을 두렵게 할 것이다.

그때는 과거, 미래의 시간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어떤 일의 강조를 의미하여 ‘그래서’로 해석된다. 즉 앞에 일어난 사건의 결과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냉소로 그치지 아니하고 그의 감정이 격화하여 분내심을 표시한다. 21)

그들의 무지를 책하고 그들의 교만을 나무람하신다. 이 소절의 결론은 반역한 지상의 왕들과 통치자들을 위협하는 소리, 아득히 먼 곳에서 우르르 소리를 내는 심판의 천둥소리와 같은 소리로서 매듭 되어진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지상의 제후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가 가진 그의 엄청난 장엄함은 주위에 두려움을 확산시킨다. 22)

6절: 내가 나의 왕을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즉위하게 한다

이 시편의 제의적인 면 -즉 본 시가 즉위식 때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6절의 말씀은 더욱 큰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2절은 기름부음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6절은 왕으로 선택된 자가 공식적으로 왕위에 올랐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23)

즉위하게 한다는 “ I have enthroned” (NEB) 왕위에 오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분이 택하신 왕을 예루살렘에 세우려는 그 분의 결심은 그들 반역의 종말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왕을 세우실 때 또한 그 왕에게 대적하는 자들을 복종시킨다. 아니 (“”” 내가)는 일인칭 인칭 대명사의 강조형으로써 화자를 전면에 내세운다. 인칭 대명사 앞에 붙은 접속사 바 (“, 그리고)도 강조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나는’을 강조한다. 그래서 ‘대적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는 그가 주신 영(令)을 계속 수행할 것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제 3연: 시온의 왕

7절-9절: 내가 야웨의 법령을 선포하노라.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내게 구하여라! 내가 만들겠노라 이방 나라들을 너의 상속으로, 땅의 끝까지 너의 기업으로…네가 그들을 무쇠지팡이로 쳐부수고, 질 그릇 같이 그들을 깨뜨리리라

왕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왕권에 대한 하나님의 계약을 내포하고 있었다. 시온의 왕은 여호와께서 보좌에 앉히신 왕 (NIV)이나 모든 열방을 다스리는 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보좌에 세우신 자가 각인 된 법으로서의 여호와의 영을 전한다. 왕의 권리는 이 令에 기초한다. 이 令은 새 왕의 통치에 정당성을 주는 문서이다. 이것은 새 왕에게 합법성과 정통성을 부여해준다. 24)

이 선포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말씀을 인용하는 왕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가를 말해주는 움직일 수 없는 선언이다. 베니 아타 ( , 너는 내 아들이라!) 여호와께서는 보좌의 설립은 물론이고 하늘 보좌에 계신 왕과 시온산 보좌에 있는 왕 사이의 관계의 근원이 자 강력한 시행자이시다. “내가 너를 낳았도다” ( 예리드티카, : 이 동사는 ‘낳다’라는 뜻의 야라드<<<<>에서 왔다-여기서 낳았도다는 육적인 출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됨에 대한 확대 은유이다.)는 효과가 지속되는 근원적인 행동이라는 점에서 부사(오늘)을 한정한다. 따라서 아들 왕은 하늘의 왕과 시온의 왕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는(삼하 7: 13) 확신을 선포한다. 25)

왕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아들로 삼으셨다는 사실은 그 유업에서 보여진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상속받듯이 왕도 그의 ‘아버지’에게서 왕국을 상속받는다. 그 유업은 반역적인 나라들을 포함하여 이 열방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기름받은 자에게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그 권세로 모든 반역하는 사람들을 박살낼 것이다. (부수리라) 이 비유는 바로가 그의 철장을 이용하여 반역적인 성읍이나 나라를 상징하는 봉납 항아리(질그릇)를 박살내는 애굽의 풍습에서 유추된 것 같다. 이 구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동사 라아( >>> , 깨뜨리다)와 나파츠(>>> , 산산조각내다, 분쇄하다)는 반역자를 궤멸시키는 공격을 묘사한 것이다.26)

이 표현은 ‘세계적이고 절대적인 통치’개념을 전해주고 있다. 27)

구하라는 명령형은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허락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이것을 복음서 기자는 “내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마태11: 27)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나라들을 유업으로 주겠다”는 것은 지상 어느 정권의 영구화를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 세계를 지배할 것임을 말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지상의 왕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권력의 영구화가 아니라, 야웨 하나님께 구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이것은 나라들을 유업으로 받는 자의 주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지상 나라들을 지배 통치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시는 야웨 하나님의 주권의 영구화를 이 지상 왕들, 그 나라들을 통하여 알리겠다는 것이다.28)

제 4연: 경고

10절-12절: 자, 이제 왕들이여, 깨달으라 ! 세상의 판관들이여. 가름침을 받으라 ! 야웨를 경외함 가운데 섬기고, 떨림 가운데 기뻐하여라 ! 아들에게 입맞추어라 ! 그가 노하지 않도록,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라. 이는 그의 노여움이 빠르게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복되어라 ! 그의 품에서 피난처를 찾는 모든 이들.

본 시의 서두에서 무례하고도 오만한 태도를 취하던 지상의 왕들과 통치자들은 (2:1-3) 즉위식 때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주의깊게 숙고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10절) 29)

시편 기자는 세상 군왕들에게 그들의 어리석은 반역( 참조 2: 1)을 포기하고 지혜를 이용하라고 권면한다. 야웨를 경외함 가운데 섬기고, 떨림 가운데 기뻐하기 위해서 그들은 지혜를 얻어야만 할 것이다. “섬기다”(섬기다의 원어는- ,예배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자신을 야웨 발 앞에 던지는 행동이다.) “기뻐하다”, “경외함”, “떨림”은 예배에 있어 의인의 경건한 반응을 묘사한 것이다. 그들은 반역이 아니라 순종의 삶을, 교만이 아니라 두려움( 야웨를 두려워한다는 말은 구약에서는 야웨를 신앙한다는 말과 같이 사용되었다. 이 말은 시편 시인들이 계속해서 히브리 경건의 가장 중심적인말로 사용하고 있다.: 시편 34: 12,111:10,22: 24,31)과 떨림의 삶을, 압제의 음울함이 아니라 환희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들에게 입맞추라”의 의미는 지상의 통치자들이 아들에게(왕: 7절)드려야 할 경의와 존중의 표현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입맞춤은 경의와 복종의 표시이다.: 참조-삼상 10:1; 왕상 19: 18 )30)

따라서 10-12절은 지상의 통치자들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자 모두를 향한 지상 통치자들의 반역과(2절)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바이저는 “야웨를 경외함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정당한 위치를 하나님 앞에서 찾으며, 이 경외심에서만 인간은 그의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 경외심을 버릴 때, 그것은 곧 그의 생명을 잃는 것과 같이 생각했다.”고 11절을 해석한다. 31)

이러한 운명의 결정은 야웨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경외심을 잃고 있다는 것은 야웨의 진노하심 곧 맹렬한 불같은 파괴력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고, 사람이 그 길에서 망하지 않으려면 야웨를 두려워하고(긴급성, 심판의 엄위함) 그를 섬기는 길에 서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32)

하나님께 피한다는 말은 히브리 신앙의 한 표현이기 때문에 이 시인은 이스라엘 왕도사상이 이스라엘의 신앙과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피한다’라는 말은 전쟁이나 재난과 관련된 말이다. 이스라엘이 역사적 삶이 항상 불안했다는 것은 그들의 역사적 지리적 조건에서 온 것이기도 한다. 그래서 ‘평안’이란 것은 그들의 삶의 최고 이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피난처로 하는 대신 지상 권력이나 무력을 피난처로 함은 이스라엘 왕도사상에서 거부되고 있다. 이 피난이 행복의 원천이 된다는 것은 이 제 2편 시인의 독특성이다.33)

이 피난은 아들에게 복종하는 것이고 기름부은 자를 의지하는 것이고 또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오직 아들 안에 있을 때만 하나님의 진노에서 안전하다. 재림은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은 왕에게 반역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진노를 의미하지만, 믿음으로 다윗의 위대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다스리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커다란 기쁨과 보호를 의미한다. 34)

4. 본문의 내용이 구약과 신약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알아 보라.

*. 구약성경에서 시편 2편의 의미와 같은 뜻으로 쓰인 곳

*. 그의 기름 받은 자: 삼상 2: 10, 12: 3,5,16) 시편 20: 7, 28: 8)

*.사무엘하 7장 14절: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 나의 거룩한 산 시온: 나의 거룩한 산이라는 표현 (사 11: 9; 56: 7; 57: 13; 65: 11,25;66: 20; 욜4: 17; 옵 1:16; 시 2:6)

*. 신약성경에서 시편 2편을 인용한 곳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행 4: 25,26)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행 13: 33)

너는 내 아들이라는 말씀: 1.그의 세례에 관한 기사 (마 3: 17), 2. 변화산 사건에 대한 기사 (마 17: 5) 3. 그의 부활에 대한 기사(행 13: 33)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히1: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하셨으니” (히 5: 5)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 2: 27) 그런데 독특한 점은 시편 2편을 다윗의 시라고 언급한 것과 이 인용문을 교회론적으로, 그리스도론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이다.

시편 2편의 사상과 용어들을 빌려서 표현된, 왕으로 태어나실 분의 궁극적인 통치와 승리에 대한 기대를 찾아볼 수 있다. (계1: 5; 2: 27; 4: 2; 6: 17, 12: 5; 19; 5)

5. 본문의 내용이 교부들, 어거스틴, 루터, 칼빈, 한국의 여러 주석가들이나 지도자들에 의해 사용되었는지 알아보라

A. 루터의 해석

루터는 이 시를 신약기자의 뒤를 따라 완전히 기독론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의 시편 2편 강해에 “그리스도”란 말이 189회나 사용되며(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왕국,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 “복음”이란 말은 42회 사용되어 있다.

시편 2편의 원작자는 생각지도 않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이 시 이해에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한 루터는 이 시편 강해 마지막에 이런 말로서 끝을 맺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시는 하늘의 종교와 그 참된 예배를 참 교회와 그 머리로서의 그리스도를 알려주도록 기록했다. 비록 교회는 세상에서 사탄의 지배 아래 있고 우리의 육체까지도 그 불경건한 자들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 것 같이 보이나, 이 왕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교회는 마침내 사탄과 이 전체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 승리는 ‘그에게 피하는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으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교회가 괴롬당하고 핍박당하면서 싸워야 할 모든 큰 환란에서 우리는 두 손을 굳게 잡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가지며 위로를 받아야 하고 축복을 받아야 한다.”

하인리히 보른캄은 루터의 시편 해석이 “복음적인 해석”을 했다고 말한다.

“루터는 역사적 사실적인 해석을 취하지 않고 문자적, 예언적 의미, 즉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예언자 정신에서 해석을 했다. 그의 해석은 항상 그리스도를 지향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교의학적 입장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신자 각 개인의 삶에 있어서 도덕적인 결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서 해석했다. 그가 취한 주석의 목표는…그리스도가 성서의 내용임을 밝히고 개인들에게 심판과 은혜의 계기를 제공하는 방향에서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성서에서 그리스도론적인 이해를 결핍한다면 구약성서는 완전히 혼란을 일으키는 책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H. Bornkamm, Luther and the O.T. 1959. p.88.)

B. 칼빈의 해석

칼빈은 우의적 해석 (Allegorical interpretation) 방법을 지양하고 멜랑히톤의 입장과 같이 무엇보다도 본문의 문장을 우선 문법적으로 살펴 본문의 뜻을 정확히 알아보려는 노력을 한 사람이다. 그의 시편 해석에 있어서는 문법적인 해석에다 “예언자적, 복음적, 그리고 영적 의미를 찾아내는 해석을 첨가시키고 있다.” 칼빈은 시편 해석에 있어서 먼저 다윗과 이스라엘 나라를 관련시킨 다음 그는 그리스도오 신약성서의 교회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시편 해석에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첫째는 율법의 공로를 제외하고 다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인의 교리에서와 , 둘째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개인적인 경건의 강조에서 시편을 해석하고 있다. 칼빈도 그의 주석 속에 “그리스도”란 말을 50회나 사용하고 있다. 이 시가 “권위”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 내용에서 그 권위의 출처와 소유자를 그리스도라 함에 의심하지 않고, 이 권위에 대항하는 모든 지상의 권위들이 그리스도의 권위와 대결하여 이기지 못할 것을 밝혀준다. 이 시의 역사적인 주인공을 다윗이라 함에 의심치 않으나 다윗과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주석을 함보다 다윗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와 이스라엘 나라를 표징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관한 해석에 집중하고 있다. 칼빈도 루터와 같이 기독론적으로 이 시를 해석하고 있다. “다윗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을 했다는 사실은 그가 자기 왕국을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왕국과 그림자로밖에 보지 않았다”고 한다. 칼빈도 그리스도의 왕권과 왕국에 관한 관심에서 이 시를 이해하려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왕국이 여기 예언자적인 정신에 의하여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불경건한 세상의 권세자들이 그리스도를 대항해 싸우는 그리스도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대항해 싸우는 자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를 대항하는 모든 군왕과 그들의 군대를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신 분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시편 2편 전체를 기독론적으로 해석한 칼빈은 다음과 같은 말로서 이 시편 주석을 끝맺고 있다.

“이 시의 모든 국면을 그리스도와의 관련에서 읽는 것이 정당하며, 이 시인은 이 땅 위 왕들과 권위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에게 입맞추는 일에 그 자신이 가담하고 있음을 본다.” 35)

6.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어 보자

A. 시편 2편의 문학적인 구조에 대해 알아보자. 시편 2편에서 사용된 평행법과 교차대조법 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 사용된 구절의 예를 들어보자.

B. 제왕시의 형식을 가져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고, 제왕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의 주된 포인트를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알아보자

C. 시편 2편과 같은 형식의 (제왕시 시편) 시편들을 알아보자

D. 시편 2편에 있어서 중요한 단어의 의미들을 연구해보자. (예: 기름 받은 자, 나의 거룩 한 산 시온, 너는 내 아들이라 등)

E. 시편 2편의 기독론적인 의미를 알아보자. 그래서 시편 2편이 신약의 저자들에 의해 어떻 게 인용되고 있으며,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F. 시편 2편에서 왕과 아들의 관계를 서술해보시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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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런 P.로스, 시편주석. 전 광규역. 서울: 두란노출판사, 1960.

김 정준, 이스라엘 시인정신- 논문집 Ⅱ.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시편 명상.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김 정우, 시편강해 Ⅰ. 서울: 엠마오, 1994.

Claus Weatherman, 시편 해설: 구조, 주제, 그리고 메시지. 노 희원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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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 오브래, 시편은 시인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 서 인석 역주, 왜관: 분도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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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펄전 설교전집, 시편 Ⅰ. 이 고홍역, 대구: 보문출판사, 1992.

게라르드 반 그로닝겐, 구약의 메시야 사상. 유 재원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장 영일, 시편 제 2편: 비평적 주석. 장신논단 ‘96년 9월호.

B.W. Anderson, 시편의 깊은 세계. 노 희원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7.

M. Dahood, Psalms Ⅰ(1-50)-Anchor Bible. Garden City: Double Day, 1965.

H.J. Kraus, Psalms 1-59 A Commentary, trans.H.C.Osward.Mineapolis:Augusburg,1988.

J.L.Mays, Psalms(Interpretation. A Bible Commentary for Teaching and Preaching ) Louisville: Jhon Knox Press, 1994.

7. 설교

제목: 시온의 왕에게 입맞추라

먼저 본문 전체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제 1연은 1절에서 3절까지 지상의 왕들에 대해, 제 2연은 4절에서 6절까지 하늘의 왕에 대해, 제 3연은 7절에서 9절까지 시온의 왕에 대해, 제 4연에서는 10절에서 12절까지 세상 나라와 그 권력자들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에 대한 서술이 중심적인 맥을 이루면서 이 시 전체의 사상의 흐름을 처음부터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와 대결할 때 자명해지는 그 결과의 현저한 차이를 폭로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본 시의 주제는 인간들의 적의를 넘어서 계시는 그 적의를 잠재우시는 궁극적 권위의 주체로서의 하나님과 그 권위의 대행자로서의 ‘하나님의 아들’. ‘왕의 전권을 이양 받으신 시온의 왕’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그 권위를 어떻게 가져오는가, 그 권위와 통치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반응과 태도는 어떠해야 되는가, 시온의 왕에게 입맞추라는 세상 나라들에 대한 경고가 본 시편에서 드러내고자하는 저자의 의도일 것입니다.

제 1연 지상의 왕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2편 1절에서 3절까지입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법석대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도모하는가

땅위의 왕들이여, 방백들이여, 어찌하여 작당하여 음모를 꾸미며 야웨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이에게 대항하여, 그들의 올무를 끊어버리자, 우리에게서 그들의 사슬의 줄을 던져버리자 하는 도다

오늘 시편 2편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중의 하나는 원죄 안에 닫혀있는 인간들, 그리고 그런 죄 된 인간들이 모여서 이룩한 나라, 권력의 성격들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본성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 권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본성적인 적대감은 카인 이후로 그 후예들에게 원죄가 전해져 온 것처럼, 은총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시편 2편의 내용 속에도 그 적의의 문제가 전편에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메튜 헨리는 그의 주석에서 그 적의와 도전을 지옥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반역의 형태가 본 시에서는 군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는데, ‘민족들’이라는 단어의 뜻이 ‘병사들’이라는 뜻으로 미루어 그 도모와 작당함이 함께 대열을 정하여 전쟁을 준비하는 뉘앙스를 주고 있음을 알 수 있게됩니다. 그들의 족쇄와 사슬의 결박은 그들의 종속적인 위치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탈을 꿈꾸고 있으며 자유롭고 독립적이길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 시편의 기자는 처음부터 긴박성과 극적인 요소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보좌에 오르고 있으나 그는 이방 나라들의 폭력과 위협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자신의 통치를 시작하게 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그들의 반역과 대항은 하나님께 대한 직접성을 띠게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결국 여호와를 대적하는 것이 됨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의 다윗에 대한 적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헤롯의 적의가 바로 이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 2연 하늘의 왕, 4절에서 6절까지를 보겠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웃으신다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그때 그가 그의 노여움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의 분노 가운데서 그들을 두렵게 할 것이다. 내가 나의 왕을 나의 거룩한 산 시온에 즉위하게 한다.

여기서 보좌는 만민과 만물 위에 군림하신 하나님의 권위의 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제 장면은 땅위의 통치자들로부터 그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하늘의 왕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도울 능력이 없는 왕들은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의 최고의 능력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웃음은 그의 주권, 영광, 높으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웃음의 배후에 하늘의 보좌가 있습니다. 온 세상 위에 하늘의 보좌가 있는 것입니다.

6절에 즉위하게 한다는 “I have enthroned ” 단어의 뜻은 왕위에 오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택하신 왕을 예루살렘에 세우려는 그 분의 결심은 그들 반역의 종말이 될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왕국을 방해하는 반항자들이 있음에도 그의 시온에서의 보좌는 견고하게 서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헤롯과 사탄과 인간들의 적대감과 살인적인 지옥의 증오를 평정하시고 시온에 그의 보좌를 개설하십니다. 대적자들의 끊임없는 방해와 도모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모든 일을 지휘하시고, 결국 그리스도의 보좌는 그의 교회에, 즉 모든 믿는 자의 마음과 그들이 형성한 사회 속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은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아들의 왕국이 오게 하소서”

제 3연 시온의 왕, 7절에서 9절입니다.

내가 야웨의 법령을 선포하노라,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내게 구하여라 ! 내가 만들겠노라 이방 나라들을 너의 상속으로, 땅의 끝까지 너의 기업으로… 네가 그들을 무쇠지팡이로 쳐부수고, 질 그릇 같이 그들을 깨뜨리리라.

메시야의 왕국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계율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이제 시온의 왕은 야웨의 법령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시온의 왕은 여호와께서 보좌에 앉히신 왕이나 모든 열방을 다스리는 왕도 되는 것입니다. 왕의 권위는 이 令에 기초하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계약에 신실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낳았다”의 뜻은 육적인 출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에 대한 선언인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이미 아들이셨지만, 다윗이 이미 왕으로서 부름을 받았지만 대관식 때까지는 만천하에 선포가 되지 않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도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선언과 기름부음이 있은 후에야 공적 사역을 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과 유대종교에서는 이 점을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구절을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열등과 종속적인 의미로 해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며, 동등하신 것입니다. 사역에 있어서만,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존재론적 삼위일체에서는 대등하신 분이 경륜적 삼위일체에서는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확증하고 그리스도에게 영예를 돌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열등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 아들의 유업은 반역적인 나라들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깨뜨리다와 산산조각 내다 에서 뜻하는 것처럼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통치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지상의 어느 정권도 그의 권력이 영구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온의 왕의 통치는 알파와 오메가가 될 것이며, 그의 통치는 영원할 것입니다. 이제 그의 통치가 영원하고 지상의 권력들의 무상함에 대해서 아는 자들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통치를 찬양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의 유업을 받음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제 4연 경고입니다. 10절에서 12절입니다.

자, 이제 왕들이여, 깨달으라 ! 세상의 판관들이여. 가르침을 받으라 ! 야웨를 경외함 가운데 섬기고, 떨림 가운데 기뻐하여라 ! 아들에게 입맞추라 ! 그가 노하지 않도록,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라. 이는 그의 노여움이 빠르게 불타오르기 때문이다. 복되어라 ! 그의 품에서 피난처를 찾는 모든 이들.

(예화: 소설가 김 승옥의 예 -심판은 내가 한다)

이제 시편 기자는 지혜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 지혜란 그리스도만이 인간에게 합당한 결박을 행하실 분이라는 것과, 그분만이 우리에게 참된 유익을 주시는 ‘사랑의 족쇄, 끈’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반대로 그것을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철퇴와 같고, 길을 가다 망하는 것이고, 깨뜨리고 부숴뜨리는 심판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참 지혜의 출발은 인간 자신의 교만을 제쳐놓고 그리스도의 권위에 굴복하는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입맞추다라는 말씀은 자신을 야웨 발 앞에 던지는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 경외심을 잃게 될 때 인간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허무의 궤적을 좇아가는 무명이 되는 것입니다.

1) 앨런 P. 로스, 시편 주석 , 전 광규 역 (서울: 두란노출판사, 1990), p.37.

2) 김 정준, 이스라엘 시인정신 , 논문집 Ⅱ.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 p.384.

3) Claus Weatherman, 시편해설-구조, 주제, 그리고 메시지, 노 희원 역 (서울:은성,1996).p.149.

4) PETER C. CRAIGIE, WBC 주석, Psalms 1-50 , (서울: 임마누엘, 1991),p.84.

5) 뽈 오브래, 시편은 시인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 , 서 인석 역주 (왜관: 분도출판사, 1994)

pp.59-60.

6) 장 영일, 시편 제2편의 비평적 주석, 장신논단 ‘96. 9월호. p.178.

7) Peter C. Craigie, op.cit. p.85.

8) 장 영일, op.cit. p.200

9) 게라르드 반 그로닝겐, 구약의 메시야 사상, 유 재원外 역,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1997.

p.396.

10) A. 바이저, 시편 Ⅰ , 김 이곤 옮김.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4),p.149.

11) Peter C. Craigie, op.cit. p.84.

12) 김 정우, 시편강해 Ⅰ , (서울: 엠마오, 1994), p.104.

13) Peter C. Craigie, op.cit. ,p.86.

14) 김 정준, 시편 명상 ,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p.17.

15) Peter C. Craigie, op. cit., p.81.

16) 김 정우, op.cit., p.106.

17) Peter C. Craigie, op.cit., p.86.

18) A. 바이저, op.cit., p.146.

19) A. 바이저, op.cit., p.147.

20) 김 정우, op.cit. , p.106.

21) 김 정준, 이스라엘 시인정신 , op.cit., p.348.

22) A. 바이저, op.cit., p.147.

23) Peter C. Craigie, op.cit., p.87.

24) 김 정우, op.cit., p.108.

25) 그로닝겐, op.cit. , p.393.

26) 앨런 P. 로스, op.cit., p.40.

27) 김 정우, op.cit., p.109.

28) 김 정준, 이스라엘 시인정신 , op.cit., p.367.

29) Peter C. Craigie, op.cit., p.88.

30) 앨런 P. 로스, op.cit., p.40.

31) A. 바이저, op.cit., p.148.

32) 김 정준, 이스라엘의 시인정신 , op.cit., p.374.

33) 김 정준, ibid., p.376.

34) 앨런 P. 로스, op.cit., p.41.

35) 김 정준, 이스라엘 시인정신 , op.cit., pp.387-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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