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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 편 | 시편 9편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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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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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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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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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시편 9. 9. 1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2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내 원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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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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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3(목) “시편 9:1-20” / 작성: 정한조

무엇보다도 9편과 10편의 내용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모두 22자입니다. 거의 2절씩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이 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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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7/25/2021

View: 2834

시편 9:9 – 다국어 성경 Holy-Bible

시편 9편 ·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찌어다 ·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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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1/3/2021

View: 5057

시편 9편 & 성경주석

<시편 9편 서론>. 다윗의시, 영장으로 뭇랍벤에 맞춘 노래. 시 9편은 감사의 노래로 불려 왔다. 이 시는 악인들을 벌하시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변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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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7/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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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단상] 시편 9편 1절 – 20절 나의 요새이신 하나님 …

개요 · 1. 시편 9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셨음을 고백하며 그 은혜에 감사의 찬송을 올려 드리는 시이다. · 2. · 3. · 4. · 찬송가 183장, 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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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8/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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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놀라운 일들 (시편 9:1-10) – 헤이워드 침례교회

시편 9편은 다윗이 자신이 일생동안 경험한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신지를 고백하는 고백이요 간증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만난 하나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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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kb.church

Date Published: 6/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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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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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시편 9 편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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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Mnp6R1Xnsds

시편 9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1)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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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9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찌어다

2018/05/03(목) “시편 9:1-20” / 작성: 정한조

본문 시편 9:1-20

찬송가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심판의 찬미(1-8절)

오늘 본문 시편 9편과 내일의 본문인 시편 10편은 본래 하나였다가 2개로 나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로는 히브리어성경과 히브리어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성경> 그리고 <70인역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에는 모두 시편 9편과 10편이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9편에는 표제어가 있는 반면에, 10편에는 표제어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9편과 10편의 내용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모두 22자입니다. 거의 2절씩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한시(漢詩)는 끝자리의 운자를 맞추지만, 히브리 시는 첫 자를 맞추곤 했습니다. 시편 150편 중에는 알파벳 순서로 된 시편이 모두 8개가 있는데, 첫 시편이 9-10편이고,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119편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176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176절이, 8절씩 22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즉 시편 119편 1-8절까지 8절은 히브리어의 첫 알파벳인 ‘알레프’로 시작되고, 9-16절까지 8절은 히브리어 두 번째 알파벳인 ‘베트’로 시작됩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22번째 알파벳까지 하면 176절이 됩니다. 이러한 시를 ‘알파벳 시편’이라 부르기도 하고, ‘답관체 시편(Acrostic Psalm)’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를 쓰는 이유는 시편을 좀 더 잘 외고, 가르칠 때에 편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우리도 성경에 여러 가지를 외울 때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하곤 하지 않습니까? 과거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시공부를 할 때에, 사사시대의 12사사를 그와 같은 방법으로 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과 같이, 시를 그와 같은 방법으로 외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의 표제어가 라고 되어 있습니다. ‘뭇랍벤’이라는 단어가 시편에서 여기에만 나오기 때문에 그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뭇랍벤에서 ‘벤’은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의 막내아들의 이름이 ‘벤-야민’입니다. 그 뜻이 ‘오른손의 아들’입니다. ‘벤허’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는데 벤허가 ‘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뭇랍벤은 ‘아들의 죽음’이란 의미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NIV영어성경은 ‘아들의 죽음을 노래한 곡조를 따라(To the Tune of the Death of the Son)’라고 표제어를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편은 어떤 배경으로 지어졌는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1-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다윗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2가지를 결심을 합니다. 첫째는 ‘주님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둘째는 ‘지존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찬양과 경배’가 무엇인지를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역사(행하심)를 노래하는 것이고, 경배는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하는 것이다.” 물론 노래한다는 것은 목소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은 다윗의 찬양과 경배가 되는 셈입니다.

크고 작은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제 치유자이십니다.”, 또 인생의 질곡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제 삶을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형편없는 나에게도 한결같이 대해 주시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긍휼이십니다.” 또한 내가 어디에 있든지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경배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그 이유를 3-6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다윗이 드리는 감사와 기쁨의 이유는 원수들이 도망을 가다가 넘어졌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와 송사를 변호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셔서 의롭게 심판하신다고 신앙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해 주시며, 의로운 심판을 행하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윗의 삶이 그만큼 정결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의와 송사를 변호해 주신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음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앞에서 바르게 살려는 몸부림이 세상적으로는 재미없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지켜 줍니다.

또한 이방나라를 책망하시고, 그들의 이름을 지우시고, 주님께서 무너뜨린 성읍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출애굽과 가나안 땅에서의 전쟁을 치를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고, 사랑하심의 결과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무리 원하였더라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다면 애굽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백성이 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홍해를 갈라주셨고, 그 바닥을 마른 땅과 같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는 때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노예였기 때문에 군대를 조직하거나,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근원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가나안 땅을 차지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조상 이스라엘 자손들이 성읍을 무너뜨렸다고 하지 않고, “주님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9-20절)

다윗이 하나님에 대해서 9-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오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압제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요새가 되신다고 합니다. 다윗이 사울의 칼을 피해 도망을 다닐 때에 하나님께서 요새가 되심을 깊이 체험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전쟁이 발발하면, 전후방이 따로 없고, 높은 곳 낮은 곳이 따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투기로 공격을 하거나 대포나 미사일을 날리면 높은 곳에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대에는 달랐습니다. 높은 곳의 요새는 전쟁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참된 요새는 자연 지형에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러하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서 체험적으로 깊이 압니다. 시편 27:10에서 다윗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자기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적은 없지만, 혹 그런 처참한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13-14절에서 이렇게 이어집니다.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이 대적자들로 인해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었지만, 하나님의 이끌어주심과 건져올려주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귀신이 들려 점을 치던 소녀를 고쳐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와 박수가 아니라 심한 매질과 감옥에 갇힘이었습니다. 그 때에 바울과 실라는 그 속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사도행전 16:2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참 억울합니다. 바울 일행은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감옥 안이었습니다. 그것도 깊은 감옥이었습니다. 그 때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였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찬송을 드렸다는 것은 빨리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찬송은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 상황에서 찬송을 드렸다고 하는 것은, 그 상황을 진심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 상황으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진심으로 수용하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어주셨고, 간수의 마음의 문도 열어, 그 집안에도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시편은 악인의 심판을 기원하며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19-20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지금 다윗의 기원처럼 시편에는 시인이 하나님께 악인을 벌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내용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시인이 처한 상황이 악인으로 인해서 그만큼 처절하고 고달프고 힘들다는 의미로 수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하소연을 하나님께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해 고통스럽다며 비명을 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욥의 친구와 같이 됩니다. 내가 가진 믿음의 틀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신앙의 전부는 결코 아닙니다.

또한 그 기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고백으로 드리는 것으로 받아야 합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쿠데타를 당하여 도망을 가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신발도 신지 못하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눈물을 삼키며 감람산으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은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시편 3:1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고서도 압살롬과 그와 함께 한 무리들을 내 손으로 해치우겠다고 달려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사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던 시절에도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2번이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한번은 겉옷자락만 가만히 베고, 또 한 번은 머리맡에 있던 병과 칼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믿음의 태도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해가 되는 일도 많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또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으십니다. 그런 때에도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역설의 진리의 삶을 살게 될 때에, 우리가 삶으로 쓰는 시편은 우리의 인생 지도를 은혜와 섭리의 지도를 그려가는 믿음의 색종이가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은총의 현장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하나님이 없이도 인생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오만함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되며, 우리의 매일매일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가장 가치가 있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매 순간은 하나님의 행하심이 이해가 되지 않아 실망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시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과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다 쌓은 후에, 수문 앞 광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를 수문 앞 광장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역설의 진리의 삶을 살아갈 뿐 만 아니라, 매일 나의 시편을 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런 은총 속에 살아가는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가까이 하고,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취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습니까?

2. 당신은 최근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린 찬양과 경배는 무엇이었습니까(목소리로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삶으로 드리는 것도 포함하여)?

3. 당신이 최근에 통과해야 했던 삶의 질곡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 과정을 어떻게 견뎌내고 이겨내셨습니까?

4. 오늘도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신 삶의 자리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자기를 부인하고 역설의 진리의 삶을 구현하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시편 9편 & 성경주석

<시편 9편 서론>

다윗의시, 영장으로 뭇랍벤에 맞춘 노래.

시 9편은 감사의 노래로 불려 왔다. 이 시는 악인들을 벌하시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변호하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오직 한 절(13절)만이 불길한 음조로 이 노래 전체에 흐르는 승리의 선율을 차단한다. 이 시는 답관체 시들, 곧 알파벳의 순서에 따른 시들 중 첫 번째 것이다. 하지만 이 시의 답관체 형식이 이 형식으로 지어진 다른 몇몇 시들에서처럼 엄격히 적용되지는 않았다. 첫째 연의 각 행이 히브리 철자의 첫 글자인 알레프(’alep)로 시작한다. 그 후에는 단지 각 연의 첫째 행만이 이 법칙을 따르고 있는데, 그것마저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매우 규칙적으로 구획된 이 시는 동일한 길이로 된 열 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에서는 답관체 시들에서 통상적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상을 형성하는 데 어떤 두드러진 진전이나 연속성은 없이 그저 그 사상이 여러 다른 측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기만 한다. 이 시에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에도 어떤 사람들은 삼하 8장이 이 시가 지어진 적절한 배경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몇몇 히브리어 필사본들과 「70인역」 그리고 「불가타역」에는 9편과 10편이 하나의 시로 되어 있다.

* 뭇랍벤(Muth-labben) : 의미는 모호하다. 어떤 히브리 필사본들은 무트(mut) 앞에 “위에”(「제임스왕역」)로 번역되는 알(‘al)을 결합해 알무트(‘almut)라고 한다. 그러나 이 복합어도 설명할 수 없는 전문용어이다. 「70인역」은 이 복합어를 따라 알무트 랍벤(‘almut labben)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의미는 “아들의 감추어진 것들에 관하여”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이 어떤 음조의 명칭이거나 첫 구절이며 “아들을 위하여 죽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편 9편 성경주석>

9:11. 전심으로.

매우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시가 시작된다. 이 시에서는 애정의 분열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더 나아가 그의 감사의 표현은 그저 입술로만 하는 표현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는 표현이다.

9:1 주의 모든 기사를.

시인의 찬양의 직접적인 주제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복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열심을 낸다. 3~5절에 하나님의 특정한 개입이 언급되어 있다.

9:2 지극히 높으신.

히브리어 엘룐(‘Elyon). 참조 시 7:17 주석.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분이다.

9:2 찬송하리니.

히브리어 자마르(zamar), “시”를 의미하는 미즈모르(mizmor)라는 명사의 어근. 자마르에는 “노래하다”와 “악기를 연주하다”의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 있다.

9:3 주의 앞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원수는 엎드러진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승리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9:4 나의 의와 송사.

하나님은 의로운 송사를 변호하셨다. 그는 변호자이다.

9:4 앉으사.

보좌에 앉아서(참조 7절) 송사의 시시비비를 결정하는 재판장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다. 그의 판결은 시인의 편을 든 판결이다.

9:5 열방.

(「제임스왕역」에는 “heathen”[이방]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고임(goyim), “나라들”(참조 시 2:1 주석).

9:5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어떤 민족이 정복당하면 이 땅에 있는 나라들 중에서 그 이름이 존속되지 않는다.

9:6 원수.

이 절의 첫 행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원수-그들은 소멸될 것이다-곧 영원한 황폐”이다. 이 절은 원수의 완전한 멸망을 묘사한다.

9:7 여호와께서.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헴마(hemmah)와 더불어서 6절이 끝을 맺는다. 이 단어는 “그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 말이 문맥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번역판에서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가릿어에서 헴마가 “보라”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참조 68, 69쪽). 만약 헴마가 여기서 그 같은 의미로 쓰였다면 이 단어는 7절의 맨 앞에 위치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되면 7절의 앞부분이 “보라,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가 된다. 시인의 시대에는 쓰이지 않던 구두점을 헴마의 뒤가 아닌 앞에 찍으면 이 시의 답관체 형식이 보강된다. 이 같은 조정은 7절을 히브리어 철자 헤(he)로 시작하게 만든다. 현재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9:7 앉으심이여.

(「제임스왕역」에는 “shall endure”[지속할 것이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앉다.” 6절의 멸망과는 전혀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공정한 심판을 행하면서 영원히 그 재판석에 앉아 계신다. “만상이 변하고 쇠퇴함을 보오니 오, 변치 않는 당신이시여, 나와 함께하소서!”

9:8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참조 계 20:12, 13. 하나님은 이 시의 배경이 되는 사건에서 자신을 의로운 재판장으로 드러내신 것처럼 마지막 심판에서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넷째 연을 구성하는 7절과 8절은 답관체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9:9 산성.

히브리어 미스가브(misgab), “안전한 고지(高地).” 참조 시 18:2; 46:7; 48:3.

9:10 주의 이름을 아는.

참조 시 5:11; 7:17 주석.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의 품성을 익히 아는 것을 의미한다.

9:10 의지하오리니.

하나님은 율법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행위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는 분이다(참조 시 62:8; 64:10; 111:5).

9:10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는다.

9:11 시온.

참조 시 2:6 주석; 시 3:4; 5:7.

9:11 찬송하며.

시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의 인자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와 함께 그를 찬양할 것을 요청한다.

9:11 백성 중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 열방에 선포됨으로 그들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또한 그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참조 시 105:1). 이 사상은 시편 전체에 흐르는 사상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 교훈을 깨달았다면 바리새인들이 행한 완고한 배타적 행위들은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9:12 심문하시는.

“심문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가 “찾다”로 번역된 창 9:5을 참고하라. 하나님이 죄 있는 자들을 벌하러 나아오는 형집행자로 묘사되어 있다. 하늘의 관점에서 볼 때 살인은 극악한 범죄행위이다. 피의 보수자인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간과하실 수 없다(참조 창 4:10). 그는 이스라엘의 최근친이며, 무죄한 피흘림에 대하여 복수하기로 서원하였다.

9:12 가난한.

다시 말해서 “고통받는.”

9:13 사망의 문.

히브리인들은 사망을 죽은 자들의 상징적인 거처인 셔올(s∨e’ol)과 연관시켰다. 시적인 영상에서 이 셔올은 문들이 있어서 그 출입이 통제되는 장소로 여겨졌다(사 38:10). 바벨론적 개념에서는 셔올이 죽은 자들을 가두어 놓는 성읍이었는데, 이 성읍은 그들이 산 자들의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도록 빗장이 이중으로 된 일곱 개의 문이 있는 칠중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인은 자신이 사망의 문에 너무나도 가까이 이르러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를 거기에서 건져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지금 그가 처해 있는 위험 중에서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분을 바라본다. “사망의 문”이라는 구절은 시 107:18에도 나온다. 시 9편 전체에서 오직 13절에서만 연속적인 승리의 선포가 중단된다.

9:14 전할 것이요.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기 때문에(시 88:10~12; 115:17) 시인은 산 자들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그에게 청한다.

9:14 딸 같은 시온.

(「제임스왕역」에는 “daughter of Zion”[시온의 딸]로 되어 있음-역자 주). 예루살렘의 거민들. 시온 곧 예루살렘은 모성(母城)으로 여겨졌다. 여기와 위의 11절에서 “시온”이란 이름이 나오는 것은 이 시가 시온 곧 예루살렘이 나라의 수도와 예배의 중심지가 된 후에 지어진 시임을 보여 준다.

9:14 문.

“사망의 문”(13절)과는 대조적으로 이 문은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소식을 나누는(고대에 일간 신문 같은 역할을 함) 성읍의 입구에 위치해 있는 문이었다. 그곳은 (헬라인들의 아고라나 로마인들의 포룸처럼) 어떤 소식을 널리 알리기에 편리한 장소였다.

9:15 열방.

(「제임스왕역」에는 “heathen”[이방]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시인을 향하여 포진하고 있는, 우상을 숭배하는 열방들(참조 시 2:1; 9:5 주석).

9:15 웅덩이에.

이 구절과 다음 구절은 시 7:15과 동일한 사상을 표현한다. 포획 놀이의 두 가지 방식이 여기서 비유적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사상이 아래 16절에서 다시 되풀이된다. 이 형벌은 그 범죄에 적합한 형벌이다.

9:16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열방의 해악이 그들 자신들의 머리로 되돌아가도록 함으로 하나님이 그의 구원하는 능력을 만민 앞에 드러냈다.

9:16 그 손으로.

참조 15절; 시 7:15.

9:16 힉가욘.

이 단어는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는 “묵상”으로 번역된 시 19:14과 “정숙한 소리”로 번역된 시 92:3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 단어는 뜻이 모호하다. 또한 이 시의 이 지점에서 왜 이 말이 첨가되었는지를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이것은 음악적 음향 또는 공적인 연주 때의 막간을 표시하는 것일 수 있다.

9:17 돌아감이여.

문자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동일한 히브리어 동사가 3절에서는 “물러가다”로 번역되어 있다.

9:18 궁핍한 자.

이 단어와 이 절의 후반부에 나와 있는 “가난한 자”라는 단어는 빈곤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압제의 희생자들까지도 의미한다(참조 12절 주석). 궁핍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은 구약의 위대한 진리들 중 하나이다.

9:18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17절의 “잊어버린”이라는 단어에 대한 말놀이. 하나님은 그의 구원과 보호가 필요한 자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9:18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구원에 대한 열렬한 소망을 의미한다.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이 항상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9: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시인은 하나님께 이 땅의 심판자로서 그의 자리에 앉으시라고 엄숙하게 호소한다(참조 시 3:7 주석)

9:19 인생.

히브리어 에노쉬(’enos∨). 힘있는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약하고 무력한 모습의 “사람”을 가리킨다(참조 시 8:4 주석).

9:19 목전.

히브리어 파네(paneh), 문자적으로 “얼굴.” 우가릿어(참조 68, 69쪽) pn도 얼굴을 의미하긴 하지만 이에 더하여 “뜻” 또는 “목적”이라는 의미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실례를 아마르나 편지에 사용된 가나안어 파누(pa

nu)에서 찾아볼 수 있다(참조 제1권, 116~118). 따라서 여기와 다른 몇몇 구절들(이 단어가 “진노”로 번역된 시 21:9, “면책”으로 번역된 시 80:16, “낯”으로 번역된 시 82:2)에서는 파네(paneh)가 “뜻”으로 번역되는 것이 옳은 듯하다. 이같이 번역하면 이 본문은 “열방으로 주의 뜻을 따라 심판을 받게 하소서”가 된다.

9:20 두렵게.

히브리어 모라(morah). 이 단어는 그 자음의 구성이 “선생”을 의미하는 단어와 동일하다. 「70인역」과 「수리아역」은 이 독법을 따른다. 어떤 번역판들은 모라(morah)를 모라(mora’), “두려움”의 철자를 잘못 쓴 것으로 간주한다(「제임스왕역」, 「개정표준역」). 또 다른 이들은 이 단어를 므에라(me’erah), “저주”의 철자를 잘못 쓴 것으로 본다. 이 경우에는 이 구절이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다”로 번역된다.

9:20 인생.

히브리어 에노쉬(’enos∨). 19절에 나온 것과 동일한 단어. 이 시는 온 땅의 심판자의 눈에 비친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강조로 끝을 맺는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설교를 위한 단상] 시편 9편 1절 – 20절 나의 요새이신 하나님(18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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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 시편 9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셨음을 고백하며 그 은혜에 감사의 찬송을 올려 드리는 시이다.

2. 본문에서 시인은 과거에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4절), 현재 자신의 고통을 돌아봐 주실 것을 간구하며(12절), 미래에 인생과 이방 나라에 심판을 내려 달라(19절) 간구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의 책임자는 하나님이시다.

3. 특히 인생은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이 땅에 하나님과 비교할 존재는 없기에, 우리의 유일한 요새는 하나님 뿐이시다.

4. 내가 약하기에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자.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따라 판단이 흐려질 수 있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가장 정확하고 공의롭게 모든 것을 판단하신다.

찬송가 183장, 빈 들의 마른 풀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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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1-20, 개역개정

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이방 나라들을 책망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우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원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나의 요새이신 하나님

사무엘하 10장에는, 다윗이 이끄는 이스라엘과 암몬 족속의 전쟁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전쟁이 있기 전, 암몬의 왕인 나하스가 죽자 다윗이 조문단을 보냅니다. 과거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 나하스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은혜를 기억하며 자신을 도와 주었던 나하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조문단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나하스의 아들인 하눈은 다윗이 보낸 조문단을 모욕하고 쫓아 버립니다. 그리고 적반하장격으로 군사를 일으키고 주변 국가들까지 연합해서 다윗과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결국 승리하게 되는데, 그 승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음을 다윗이 고백합니다. 선의를 악의로 갚으려던 암몬 왕 하눈을 공의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였다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은 분명 선의를 베풀었는데,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였던 다윗의 상황을 오늘 본문이 잘 표현합니다. 4절에서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라고 다윗이 고백합니다. 다윗은 억울하게 전쟁을 치뤄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아셨기에 의롭게 심판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재판관들은 자신의 생각과 이해 관계에 따라 올바른 재판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신명기 24장을 통해 객이나 고아의 송사, 즉 재판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지만(신 24:17), 선지자 사무엘의 아들들조차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즉 올바른 재판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일반 재판관들이야 얼마나 정의롭게 재판하였겠습니까?

사람의 재판은 정의롭지 못할 수도 있으나, 우리 하나님은 공의로 재판하십니다. 오늘 다윗은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맡기고 있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베푸신 공의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4절을 통해, 다윗은 과거 암몬과의 전쟁 속에서 하나님께서 의롭게 심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12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금 현재 가난한 자, 고통 중에 있는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않으시고 계시다고 노래합니다. 또한 19절을 통해 공의의 하나님께서 미래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들과 이방 나라들에 심판을 내려 달라고 간구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신의 요새였습니다. 9절에서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요새란, ‘미스가브'(מִשׂגָּב)로 히브리어 성경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짐승이나 적이 올라올 수 없는 아주 높은 성이나 망대를 의미합니다. 나를 괴롭히려는 대적이 칼을 휘두르며 나를 붙잡으려 이빨을 드러내고 쫓아 와도, 높은 망대인 ‘미스가브’가 되시는 하나님께 피할 때, 우리의 대적이 결코 우리를 건드릴 수 없으며, 우리는 완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억울할 일을 당할 때, 고통 중에 있을 때,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다윗이 피할 높은 요새는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요새가 되시는 다윗의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겪고 있습니까? 공의의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십시오. 괴롭고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높은 요새되신 하나님께 피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답답한 마음에 평강을 주시며, 곤란한 우리의 영혼에 안식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피하는 복된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지치고 상한 우리가 이 새벽에 나와 하나님께 기도하며 주님께 피합니다. 우리의 높은 망대요 요새가 되어 주시어서, 곤란함과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를 숨겨 주옵소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기도

1. 나라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지역 감염자가 생겨나고 있는 이 때, 온 국민이 다시 한 마음으로 사회적 방역에 힘쓰는 지혜로운 나라 되게 하소서. 위정자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주소서.

2. 우리 민족이 복음으로 하나되며, 남북이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3.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합니다. 세계 각 지역과 오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님들을 지켜 주시고, 그 가정을 책임져 주옵소서.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옵소서.

4. 교회와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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